스님의하루

2026.06.23. 상추 수확, 청주 행복한대화
남편과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충북대 개신문화관에서 행복한대화가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수행과 명상을 한 후 새벽 6시부터 집 안에 있는 상추 수확을 위해 울력을 준비 했습니다. 때 아닌 샛날이 찾아와서 한 여름의 날씨가 마치 가을처럼 쌀쌀 했습니다.

안개가 자욱하고 보슬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우비를 입고, 장화를 신고 엉덩이 받침을 하고 상추를 수확했습니다. 작은 텃밭에는 몇 주 전 법사단 운력 시간에 심어뒀던 상추가 금새 자라있었습니다.

“와, 상추가 배추 만큼이나 잘 자랐어요”

스님은 상추잎을 하나하나 땄습니다. 꽃상추, 청치마상추, 적상추까지 상추 종류만 세종류였습니다. 상추 잎을 한잎한잎 따서 종류별로 가지런히 바구니에 담아 내일 종교인모임 조찬에 사용하려고 잘 포장했습니다.

“법사님, 가지런하게 잘 맞춰서 담아주세요”

함께 울력을 돕는 법사님에게도 요청했습니다.

상추를 수확한 후에 상추밭, 깻잎밭, 딸기밭, 화단을 정리하고 7시가 조금 넘어 울력을 마친 후, 스님은 수확한 상추로 아침공양을 했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입맛도 없고 움직이는 것도 힘들었는데 새벽에 수확한 상추와 깻잎으로 공양을 하니 다시 몸상태가 회복되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이제야 입맛이 조금 돌아오나봐요 (웃음)”

스님은 아침공양을 마치고 원고 교정을 하러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교정을 마치고 정비를 한 후 스님은 치료를 위해 부산으로 출발했습니다.

치료 후 돌아와서 잠시 휴식을 한 후, 오후 3시 50분경 충남대학교에서 진행되는 행복한대화 강연을 하기위해 청주로 출발했습니다.

오후 6시 30분 충북대학교 개신문화관에 도착하자 로비에는 행복한대화 강연에 참가하려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마침 주 과테말라 대한민국 대사를 지냈던 추연곤 대사님 부부가 스님을 뵙기위해 강연장에 찾아왔습니다. 추연곤 대사님은 2014년 스님이 세계 100강을 하러 과테말라에 갔을 때 대사관저에서 스님을 오찬에 초대해 함께 시간을 보내고 강연도 들었던 인연이 있습니다.

“스님! 안녕하세요 7년만에 스님을 뵙니다”

“어서오세요. 잘 지내셨어요”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오늘에야 스님께 인사드리네요”

스님과 추연곤 대사님은 서로의 손을 마주잡고 반갑게 인사했습니다

스님은 최근에 부탄 지속가능한개발 프로젝트 답사 다녀왔던 이야기와 건강에 대한 이야기를 함께 했습니다. 옛 추억과 서로의 근황을 나누다보니 어느덧 강연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스님은 추연곤 대사님에게 책을 선물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하고는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오늘 사전공연으로는 목원대학교 음악학과 교수 윤덕현님의 재즈공연이 있었습니다. 루이암스트롱의 ‘What a wonderful world’와 영화 ost인 ‘Butterfly’ 두 곡의 노래를 트럼펫연주와 함께 선보이며 멋진 무대를 선사했습니다.



공연이 끝나자 스님은 윤덕현님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책을 선물했습니다.

충북대학교 개신문화관의 733개 좌석이 가득 차고, 유튜브에 4803명이 동시 시청하는 가운데 스님의 청주 행복한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이 무대 위에 오르자 사람들의 커다란 박수 소리가 강연장을 가득채웠습니다.



“안녕하세요 법륜입니다.

교수님 노래 잘 들었죠? 저희들을 위해 좋은 노래를 불러주셔서 감사합니다. 방금 공연이 끝나고 교수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는데 교수님이 제게 그랬어요. ‘스님은 어떻게 대본도 없이 사람들에게 좋은 답을 주십니까?’(웃음)

저는 여러분에게 답을 준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여러분과 대화를 한다고 생각하고있어요.

인생은 자신이 좋을대로 자연스럽게 살면 됩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살면됩니까?’ 라고 묻는다면 ‘니 좋을대로 살아라’ 하고 답합니다.

자연의 모든 생명은 정답을 정해놓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산 속의 다람쥐도 마찬가지입니다. 다람쥐가 도토리가 없다고 화가 나서 땅바닥을 데굴데굴 구를까요? 도토리가 적으면 적은 대로 먹고, 많으면 저장해 두었다가 먹습니다. 자연의 모든 생명은 어릴 때는 어미의 보호를 받지만 성장하면 스스로의 생을 살아갑니다. 이것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자신이 좋을대로 자연스럽게 살면 됩니다.

제가 국제구호활동을 할 때에도 홍수로 집이 떠내려 갔다고 해서 집 없는 사람 모두를 돕지는 않습니다. ‘제가 땅이 있고, 기초석을 놓기 위해 돌도 구해두고, 흙과 나무도 준비해 두었는데 지붕재와 내장재는 마련하지 못했습니다’ 하는 사람들을 도와줍니다.

왜냐하면 저의 지원이 그 사람의 자립에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의 지원이 상대방이 스스로 일어서는데 보탬이 된다면 기꺼이 지원합니다. 그러나 제가 돕는 것이 오히려 그 사람의 자립을 해친다면, 그것은 자연의 질서에 어긋나는 일이기에 돕지 않습니다.

즉, 자립하는 것이 자연스러움입니다.

여러분이 어린아이를 돌보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맞습니다. 그러나 스무 살이 넘은 자식을 걱정하고 돌보는 것은 자연의 이치에 어긋납니다. 만약 여러분이 스무 살이 넘은 자녀 문제를 가지고 제게 질문을 한다면 저는 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웃음) 저는 여러분의 인생을 도와주려는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다만, 대화를 할 뿐입니다. 여러분 모두 스무살 넘은 성인이잖아요.

즉문즉설은 여러분과 대화하는 시간입니다

대화를 하려면 우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줘야 합니다. 그 다음은 상대의 마음을 알아줘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내 생각을 이야기 하고 싶으면 조금 하면 되요.

예를들어 남편이 죽어서 힘들다는 사람이 있어요. 그러면 제가 물어봅니다. ‘결혼하기 전 혼자였을때도 잘 살았습니까 못 살았습니까?’ 대부분 혼자 잘 살았잖아요. 남편을 잃었다는 것은 본래 혼자였던 상태로 돌아가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결혼해서 살아보니 ‘나는 인생을 함께할 사람이 필요하다’하면 다시 좋은 인연을 찾으면 되는 것입니다.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듯이 자신이 경험한 부분만 전부라고 생각하는 것을 편견 또는 사로잡힘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한 가지 경험에만 사로잡혀 있을 때 저는 ‘이렇게도 생각해 봐라, 저렇게도 생각해 봐라’하면서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안내할 뿐입니다.

‘아이를 혼자 키우는게 힘들어요’

‘아이를 혼자 키우는게 왜 힘들어요? 동물들도 다 새끼 낳아서 혼자 키우잖아요. 개가 강아지를 다섯 마리 낳아서 혼자 키운다고 힘들어 하는거 봤어요?’

이렇게 대화를 주고 받다보면, 남편을 잃은 게 문제입니까 내가 괴로워하는게 문제입니까? 내가 괴로워하는 게 문제예요. 남편이 술을 먹든, 바람을 피우든 이러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워하는 내가 문제구나! 하고 알아차려집니다. ‘내가 고집이 세네, 내가 화가 많네, 내가 욕심이 많네, 별일 아니네!’ 하고 자각을 하면 괴로움이 해결 되고, 자각을 하지 못하고 계속 남 탓을 하면 괴로움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내가 결정하는 것이 내 인생의 주인입니다

오늘 비가 안 온다고 소풍 날짜를 잡았는데 비가 옵니다. 그러면 날씨를 탓 해야할까요 내가 취소를 할지 말지 결정 하면 됩니다. 첫째 비가 오니까 소풍을 취소해도 되고, 둘째 비가 와도 우산을 쓰고 소풍 가면 됩니다. 셋째 우산이 없는데 소풍가고 싶으면 비 맞고 소풍 가면 됩니다. 정답이 있는게 아니예요. 내가 좋을대로 결정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면 여러분은 자기 인생의 주인이 아니예요. 남편 때문에, 아내 때문에, 직장상사 때문에 괴로워 하다보니 자꾸 다른사람에게 끌려 다니는것입니다. ‘스님 덕분에 제가 살았습니다. 스님 덕분에 제가 이혼을 안 했습니다.’하는 것은 스님이 여러분 인생을 결정한게 아니라 여러분 스스로가 자기 좋을대로 결정한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이게 괴롭습니다’ 하는게 또 인생이예요 (웃음)

자, 그러면 찻집에 앉아서 스님이랑 대화하는 것처럼 편안하게 이야기 해 보세요.”

남편과 싸우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

“저는 결혼한 지 22년 차입니다. 직장 생활하면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좋아서 결혼했습니다. 살아보니 저 한테도 잘해주는 편입니다. 사주기도 잘 사주고, 돈도 잘 벌어서 돈 걱정 없이 지금까지 잘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격이 안 맞아요. 저희가 자꾸 싸우는 이유는 남편이 제가 말대꾸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냥 제 생각을 말한 것뿐인데 ‘또 말대꾸한다’라며 자꾸 뭐라고 합니다. 싸우다 보면 제 자존감이 많이 건드려지고, 그러다 보니 싸움이 더 커집니다. 요즘에는 싸우다가 제가 먼저 이혼 얘기까지 하게 됩니다.

저는 스님께 위로도 받고 싶고, 남편도 좀 혼나면 좋겠는데, 스님 유튜브를 찾아보니 질문해도 별로 좋은 소리를 안 해주시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질문을 할까 말까 고민이 됐습니다. 저는 남편과 안 싸우고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잘 살고 싶어서 질문하게 됐습니다.”

“질문은 본인이 하지 말고 남편이 하게 하지 그랬어요? 그러면 남편이 혼나는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좋았을 것 아니에요. (웃음) 이왕 마이크를 들었으니 질문자와 대화할까요? 아니면 야단맞기 힘드니까 남편에게 마이크를 넘기겠어요?”

“저랑도 짧게 대화하고, 남편도 많이 혼내주셨으면 좋겠어요.” (웃음)

“알겠습니다. 그럼 질문자하고 먼저 얘기해 봅시다. 남편이 인물도 괜찮고, 잘해주고, 돈도 잘 벌면 그만하면 괜찮네요.”

“네, 괜찮아요.”

“질문자 눈이 어디 보통 눈이겠어요? 괜찮은 남자를 골랐겠죠. 허접한 남자를 고르진 않았을 것 아니에요. 내가 ‘이 남자 괜찮다. 돈도 잘 벌고 사람도 괜찮네’ 하고 골랐다면, 그 남자는 평균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라는 얘기입니다. 질문자가 ‘법륜 스님 괜찮네’, 또는 ‘이 사람 괜찮네’라고 생각했는데 세상 사람들이 다 ‘그 사람 나쁜 사람이야’라고 하면, 질문자가 사람 보는 눈이 부족한 거잖아요. 질문자는 자기 눈이 괜찮다고 생각하나요, 모자란다고 생각하나요?”

“모자란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모자라는데 무슨 자존심이 있어요? 자존심이 있다는 건 적어도 ‘내 판단이 어느 정도는 옳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는 거예요. 만약에 질문자가 사람 보는 눈도 없고, 결정하는 힘도 없고, 잘 모른다면 남편 하자는 대로 하면 되죠. ‘당신이 더 잘 아니까 알아서 하세요. 저는 따라 할게요’ 하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내 자존심을 건드려서 못 살겠다’라고 하잖아요. 그 말은 결국 ‘나도 보는 눈이 있고 들을 귀가 있다. 너만 옳은 게 아니라 나도 옳다’ 이런 생각이 있으니까 힘드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왜 사람 보는 눈이 없다고 하나요? 속으로는 남편보다 내가 보는 눈이 더 정확하다는 생각이 있어요, 없어요?”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보다 남편이 더 월등한 것 같아요.”

“그럼 남편이 하자는 대로 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매번 그러지는 않고요.”

“매번 그렇지 않다는 말은 때때로 나도 옳은 때가 있다는 말이지요?”

“그렇죠.”

“질문자가 남편을 골랐잖아요. 지금 생각해 보니 ‘내가 완전히 미쳤었구나. 눈이 삐었다’ 싶을 정도로 잘못 고른 것 같아요? 아니면 ‘몇 가지 문제가 있지만 그만하면 괜찮다’라고 생각해요?”

“그만하면 괜찮죠.”

“그런데 이제는 더 못 살겠다며 이혼 얘기까지 나왔다고 했잖아요. 만약 이혼하면 이 남자가 괜찮은 남자니까 다른 여자들도 괜찮게 볼까요, 안 좋게 볼까요?”

“괜찮게 보겠죠.”

“그러면 얼른 데려가지 않겠어요? 질문자가 손 떼기만 기다리는 여자가 지금 많아요. (웃음) 질문자는 이혼하고 남편보다 더 나은 남자를 만날 수 있다는 확신이 있나요? 돈도 더 많고, 인물도 더 좋고, 성격도 나한테 다 맞춰주는 남자를 만날 자신이 있어요?”

“그런 사람을 만나기는 좀 힘들 것 같은데요.”

“그럼 나중에 다른 여자가 남편을 데려가 버리면 후회하지 않겠어요? 지금은 기분이 나빠서 이혼했는데, 나중에 돌아보니 이만한 남자가 없는 거예요. 차를 한 대 샀는데 흠집이 좀 났다고 기분 나빠서 팔아버렸어요. 그런데 새 차를 살 형편은 안 되고 중고차를 사러 갔더니, 아무리 찾아도 내가 타다가 판 차만 한 게 없어요. 다시 찾으니 벌써 다른 사람이 사 갔어요. 그러니까 지금 생각을 잘해야 됩니다. (웃음)


질문자가 원하는 만큼 이 남자가 안 되는 건 맞아요. 내가 원하는 만큼 안 되니까 고민이 되고 스님한테 질문하는 거겠죠. 다 만족하면 질문할 필요도 없잖아요. 그런데 현실에서 이 남자 말고 다른 사람을 선택한다고 했을 때, 이만한 남자를 찾을 수 있겠느냐는 거예요. 이 남자가 내 마음에 안 드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다른 남자를 찾는다고 해서 이만한 남자가 세상에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남자는 아니지만 현실에서는 이만한 남자가 없다면 최선은 아니더라도 차선을 선택해야 합니다. 남자가 인물도 괜찮고, 돈도 잘 벌고, 아내한테도 잘해줘요. 대신에 잔소리를 좀 하는데, 질문자는 그게 듣기 싫다는 말이잖아요. 그런 남자는 시장에 내놓으면 데려갈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스님, 저도 뭐 굳이 가겠다는 남자를 붙잡지는 않습니다.”

“그러니까 남편은 잘난 사람인 건 맞아요. 시장에 내놓으면 남편을 원하는 여자가 많을 겁니다. 질문자도 질문자 남편만한 괜찮은 남편을 만나기 쉽지 않을 수 있어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조금 부족한 점은 있지만, 다시 골라도 이만한 남자를 만나기 쉽지 않아요. 그건 인정하나요?”

“네. 그런데 제가 남편에게 바라는 건 잔소리를 조금만 줄여달라는 거예요. 열 번 할 걸 두세 번만 줄여줘도 좋겠습니다.”

“그런데 남편은 오히려 질문자가 말대꾸 한다고 생각한다면서요? 남편 입장에서 말대꾸라는 건 결국 잔소리라는 거잖아요.”

“잔소리라기 보다는요. 예를 들면 저희가 산을 자주 가는데, 남편이 주말에 산성에 가자고 하더라고요. 저는 예전에도 여러 번 갔고, 주말에는 할 일도 많으니까 오늘은 좀 쉬고 싶다고 했어요. 그랬더니 남편이 ‘그건 핑계야. 네가 가기 싫으니까 안 가는 거지. 그냥 가기 싫다고 하지 왜 핑계를 대?’ 라고 해서 다투게 됐습니다.”

“그 말이 맞기는 하잖아요.”

“네. 듣고 보면 맞는 말인데 기분이 나빠요. 그리고 저는 가기 싫은 것보다 갔다 오면 제가 해야 할 일이 자꾸 밀리니까 거절했던겁니다.”

“정리하면, 질문자가 해야 할 일이 밀리니까 가기 싫은 거잖아요. 가기 싫은 건 맞잖아요. ‘갔다 오면 할 일이 많아서 가기 싫다’라고 하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가기 싫은 건 아니야. 일이 많아서 못 가겠어’ 이렇게 말하는 게 맞을까요? 핵심은 싫은 거예요. 다만 싫은 이유가 있는 거죠. 질문자가 먼저 ‘여보, 나 오늘은 가기 싫어’ 라고 솔직하게 말하고, 남편이 ‘왜 싫은데?’ 하고 물으면 ‘주말이라 하루 쉬고 싶기도 하고, 딸 학원도 데려다줘야 하고, 방 청소도 해야 하고, 할 일이 태산 같아. 당신은 다녀와서 쉴 수 있지만 나는 그러지 못하잖아’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남편도 ‘그럼 내가 다녀와서 당신 일 좀 도와줄게. 그러니 같이 가자’ 같은 대안을 제시 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가 생각이 좀 짧았던 것 같은데요.” (웃음)

“그런데 스님! 저희 남편도 평소에 꼭 스님 말씀하시듯 저를 그렇게 설득하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자존심을 지키는 게 아니고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거예요. 지금 질문자는 ‘자기가 알아서 좀 해주면 어때서’라는 마음이 가득한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의 남편이 아직 그 수준까지는 안 됩니다. 질문자가 사람 보는 눈이 조금 부족했던 거예요. 인물과 돈은 봤는데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까지는 못 본 거죠. 이런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질문자가 남편에게 알려줘야 합니다.

주말에 등산을 가자고 하면 ‘여보, 난 오늘 가기 싫어’라고 솔직하게 말하세요. ‘왜 싫은데?’라고 물으면 ‘갔다 오면 할 일이 너무 많아’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러면 남편도 ‘알았어’ 하고 안 갈 수도 있고, ‘다녀와서 내가 절반은 해줄 테니 같이 가자’라고 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질문자가 먼저 ‘그럼 당신이 절반을 해줄래? 그러면 갈게’ 이렇게 말할 필요는 없어요. 그냥 ‘가기 싫어’라고 솔직하게 말하면 충분합니다. 상대가 원하는 게 솔직하게 말해 달라는 거잖아요. 물론 또 어떤 사람은 그렇게 직설적으로 말하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변명을 조금 섞어야 해요.

질문자의 남편은 변명하지 말고 솔직하게 말해 달라는 사람이에요. 앞으로는 싫으면 싫다고,
좋으면 좋다고 말하면 됩니다. 대신 이유는 설명해 줘야 해요. ‘왜 싫은데?’라고 물으면 왜 싫은지 설명해 주면 됩니다. 남편에게 마이크를 넘길 필요도 없겠네요. (웃음) 자신의 문제가 해결되면 된거지, 상대방이 어떻게 살든 질문자가 상관할 일은 아니에요.”

“이래서 제가 질문하기를 망설였어요. 무슨 말씀인지는 제가 깨달았습니다.”

“질문자만 깨달으면 됩니다. 상대방이 깨닫느냐 아니냐는 내가 관여할 일이 아니에요. 질문자는 결국 남편을 좀 바꿔서 자기에게 맞추고 싶은 거잖아요.”

“백 퍼센트는 아니지만 비슷합니다.”

“제가 질문자의 남편을 무슨 수로 바꾸겠어요. 그러니까 자기 문제만 해결하면 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두 사람이 바가지를 머리에 뒤집어쓰고 있어서 앞이 안 보여요. 서로 좋아서 껴안으려고 해도 앞이 안보여서 자꾸 부딪힙니다. 이때 서로 부딪히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대가 바가지를 벗으면 앞이 보일테니 두 사람이 안 부딪히겠죠.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앞이 안보여서 옆에 있는 어머니와 부딪히고 아버지와도 부딪힐 겁니다. 그런데 내가 바가지를 벗으면 다른 사람들이 모두 바가지를 쓰고 있어도 내가 피해 갈 수가 있어요. 그러니까 중요한 건 내 바가지를 벗는 걸까요, 남의 바가지를 벗겨 주는걸까요?”

“내 바가지요.”

“그래요. 자기 바가지만 벗으면 되는데 왜 남의 바가지까지 벗겨 주려고 하나요. 자기 바가지도 못벗고 헤매면서 말이죠. 혹여 ‘나는 바가지를 써도 좋지만 중생의 바가지는 벗겨줘야 한다’는 이런 보살심 때문인가요? (웃음) 내 눈만 뜨면 됩니다. 내 눈만 뜨면 세상 사람들이 다 눈을 감고 있어도 부딪힐 일이 없어요. 다른 사람 이야기는 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편이 등산을 가자고 하면 ‘남편이 등산을 가고 싶어하는구나’ 하고 알면 됩니다. ‘왜 또 등산을 가자는거야?’ 하지 말고, ‘아, 등산 가고 싶어요?’ 하고 받아주면 됩니다. 다만 자기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래도 남편이 계속 가자고 강요한다면 그때는 계산을 좀 해봐야죠. ‘이 사람이 나보다 돈도 많고 능력도 좋고 여러모로 장점이 많으니, 갈등을 일으키면 내가 손해겠다’하면 싫지만 참고 가면 됩니다. 반대로 ‘당신 없어도 내가 잘 살 수 있다’ 싶으면 ‘싫어. 당신 혼자 가세요’라고 말하면 되는 거예요. 이것을 이해타산 이라고 합니다.

내가 누군가를 좋아하면 내가 을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달리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사람들은 상대방을 좋아하면서도 자기가 갑이 되려고 해요. 그래서 괴로움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당신은 나의 왕이로소이다’라는 마음으로 을의 자세를 딱 갖춰야 합니다. 남편이 옳다는 뜻이 아니라 ‘아, 남편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하고 이해한 뒤에 ‘그런데 내 마음은 이렇다’라고 표현하면 됩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박수)



그 외에도 여러 질문이 있었습니다.

  • 재혼한 남편이 자신이 데려온 아이들을 챙기는 모습이 불편합니다
  • 사이가 좋지 않은 부모님의 관계를 제가 회복시켜드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 최근 갑상선 암에 걸려서 수술을 했고, 일상으로 복귀를 했으나 스스로가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 ‘부모님의 관계 개선’과 같이 내가 노력하더라도 해결될 수 없는 일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바라봐야할까요

강연을 마치고 로비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님 책에 사인을 받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렸습니다


사인회를 마친 뒤 청주 행복한대화를 준비한 69명의 봉사자들과 함께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봉사자들이 요즘 부쩍 건강 상태가 좋지 않은 스님을 위해 준비한 구호를 외쳤습니다.

“스님! 건강하세요”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서울로 이동했습니다.

밤 11시 30분이 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짐을 풀고, 원고 교정을 하면서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평화재단에서 종교인모임을 하고, 설법전에서 오전 오후 수행법회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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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자정

고맙습니다.

2026-06-26 07:11:07

무위성

“내 바가지를 먼저 벗자”. 고맙습니다.

2026-06-26 07:05:54

최영관

고맙습니다...

2026-06-26 07: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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