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5.26. 공동체 법사단 수련 2일 차
“직장에서 잔소리하는 성격을 고치고 싶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공동체 법사단 수련 2일 차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새벽 4시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해 온종일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었지만, 다행히 날씨가 맑았습니다. 법사님들은 새벽 기도 이후에 간단히 요기하고 하우스 감자 캐기 울력을 위해 농막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6시 20분, 농막 앞에 모두 모였습니다. 법사님들은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오늘 울력 일감은 하우스에 있는 감자를 캐고 분류하는 일입니다. 스님은 감자를 캘 때의 주의 사항을 일러주며, 수행자로서 일할 때는 일어나는 마음을 살피며 일할 수 있도록 안내했습니다. 농사 울력을 시작하기 전에 "만물에는 다 제자리가 있습니다"라는 명심문을 합송하며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먼저 낫으로 감자잎과 줄기를 베었습니다. 베어낸 잎과 줄기는 옆 두둑으로 옮겨두었습니다. 나중에 밭을 갈 때 잎과 줄기를 한꺼번에 갈아서 거름용으로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스님이 낫질해 나가자, 두둑 끝 쪽에서부터는 법사님들이 감자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녹색 잎이 없어진 곳에 흙이 드러났습니다. 법사님들이 두둑 사이에 앉아 흙 속에서 감자를 캤습니다. 선물용으로 사용할 예정이라 감자가 찍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호미질을 했습니다. 깊이 파지 않으면 감자가 흙 속에 그대로 묻혀 있는 경우가 있어서 잘 살펴봐야 했습니다.

스님은 감자잎과 줄기를 다 베어낸 후 감자 캐기를 함께했습니다. 호미로 흙을 파자 뽀얀 감자가 나왔습니다. 알이 굵은 감자도 있었고, 알이 작은 감자도 있었습니다. 조심스럽게 감자를 캐지만, 캐다 보니 흠집이 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흠집이 나서 상한 감자는 따로 모아 두었다가 저녁에 삶아서 먹기로 했습니다.

감자 캐기가 거의 다 끝날 무렵, 스님은 하우스를 나와 농막 뒤편으로 갔습니다. 위 논과 아래 논둑에서 농사팀 행자 2명이 예초 작업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논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하우스 안에서는 감자 캐기가 모두 끝나고, 감자를 크기별로 분류하여 콘티 상자에 담았습니다.

스님은 법사님 몇 명과 다음 울력을 하기 위해 자리를 이동했습니다. 고인돌 집으로 가는 논둑길이 시누대나무로 덮여 갈 수가 없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대나무가 높이 자라 있어서 논 쪽으로 그늘이 졌습니다. 사람이 다닐 수 있도록 대나무를 치는 울력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작은 전기톱으로 대나무를 잘라보았습니다. 대나무가 깔끔하게 잘리지 않고 톱니가 대나무에 걸려서 작업하기가 어려웠습니다. 낫으로 하니 자른 단면 끝이 뾰족하게 남아서 위험했고, 충전식 자동 전지가위로 자르니 깔끔하게 잘렸지만, 대나무를 하나씩 잘라야 해서 반복적으로 손에 힘을 줘야 했습니다. 가장 좋은 것은 원형 날을 장착한 예초기를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원형 날을 찾을 수가 없어서 작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이 도구 저 도구를 사용해 보면서 가장 잘 잘리는 도구로 대나무를 하나씩 잘랐습니다. 시누대라 굵지는 않았지만, 키보다 큰 대나무에 줄기와 잎이 무성하게 달려 있어서 작업하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한 사람은 대나무를 잡아주고, 스님은 자르는 역할을 했습니다.

잘린 대나무는 법사님들이 끌고 가서 트럭에 실었습니다.

길이 없던 곳에 길이 생겼습니다. 논 쪽으로 졌던 그늘의 크기도 작아졌습니다. 스님은 앞쪽에서 뒤쪽으로 대나무를 쳐 나갔고, 법안 법사님은 뒤쪽 길에서 앞쪽으로 날 예초기로 대나무를 치며 왔습니다. 논둑을 덮었던 대나무를 베자, 길이 시원하게 뚫렸습니다.

스님은 대나무를 자를 때마다 자동 전지가위를 사용하면서 버튼을 손가락으로 눌러야 해서 손가락이 아팠습니다. 충전기가 무거웠고, 각도 조절을 해야 했기에 손에 힘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길이 뚫리자, 스님은 자동 전지가위를 내려놓고 대나무 옮기기에 손을 보탰습니다.

자른 대나무를 실어 보니 트럭에 가득 찼습니다. 대나무는 두북수련원으로 이동하여 파쇄기 쪽에 적재해 두었습니다.

스님은 땅 위로 튀어나온 나무줄기를 잘랐습니다. 길을 지나다가 걸려서 넘어질 수 있어서 톱을 이용해서 바짝 잘랐습니다.

대나무로 가려져 있던 논둑길이 드러나자, 향존 법사님은 스님께 둑이 낮은 것 같으니 한번 점검해 달라고 했습니다. 스님과 향존 법사님은 논둑을 한 바퀴 돌면서 둑이 낮은 곳을 살펴봤습니다. 어느 부분에 보완이 필요한지 걸으면서 점검했습니다.

오전 8시 40분쯤에 대나무 자르기 울력을 마무리했습니다. 도구와 장화는 씻어서 제자리에 두었습니다. 스님과 법사님들은 울력복을 갈아입고 간단하게 정비를 한 후, 오전 10시에 발우공양을 시작했습니다.

발우공양 시작을 알리는 목탁 소리가 들렸습니다. 모두 착석했습니다. 스님은 자리에 앉기 전에 발우공양 방석 배치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방석을 깐 행자님이 방석과 방석 사이에 한 뼘 정도의 간격을 띄웠는데도, 남자들은 무릎이 닿았습니다. 방석 조정을 다시 한 다음, 죽비 삼성에 소심경이 시작되었고, 발우공양이 시작되었습니다.

“불생 가비라~ 성도 마갈다~
설법 바라나~ 입멸 구시라~”

대중 공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늘 공지 사항을 전한 후 대중들은 스님께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어제에 이어 일상생활에서 방석을 까는 법에 대해서 말씀해 주었습니다.

“방석은 무릎 끝이 닿을 길이만큼 커야 정상적인 크기입니다. 그리고 뒤로는 방석 위에서 절을 할 수 있어야 정상적인 크기인데, 정토회 방석은 정상적인 크기의 한 3분의 2 정도 됩니다.

공간이 협소하지 않으면, 방석을 놓을 때는 앞뒤로는 발 하나 들어갈 만큼 띄우고 놓아야 하고, 좌우는 한 뼘 정도의 길이를 띄우고 놓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앞뒤, 양옆으로 공간을 두고 방석을 깔아야 사람이 다닐 때 방석을 밟지 않고 다닐 수가 있습니다.

정토회 법당에 있는 방석은 크기가 작기 때문에 공간이 허락된다면 그보다 더 많이 띄워야 됩니다. 법회 볼 때는 방석을 세로로 길게 놓기 때문에, 절을 하려면 앞뒤 간격으로는 최소한 발 두 개 정도의 범위를 두고 놓아야 됩니다. 그래야 절할 때 상대편 엉덩이에 부딪히지 않게 됩니다. 방석 규격이 작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좌우는 두 뼘 정도의 크기로 놓아야 됩니다. 그렇게 해야 우리가 방석을 세로 길이로 놓고 앉을 때 무릎이 닿지 않고 무릎 사이가 떨어지게 됩니다. 최소한 한 뼘은 띄워야 됩니다. 덩치가 커서 그렇게 띄워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공간이 좁으면 어때요? 공간이 좁고 사람이 많으면 조금씩 좁히는 것은 괜찮습니다. 지금 우리가 발우공양을 하는 곳인 두북수련원 법당은 충분히 공간이 되기 때문에 공간을 정상적으로 띄우는 게 좋습니다. 정상적으로 띄우지 않으면, 발우를 펴고 찬그릇 놓을 자리가 굉장히 비좁게 됩니다.

그리고 발우 뚜껑과 발우 수건은 뒤에 놓는 것이 정석이 아니고, 원래는 방석 오른쪽에 놓아야 됩니다. 우리가 공간이 좁아서 지금은 방석 뒤쪽에 놓는 거예요. 그런데 이제는 발우 뚜껑과 발우 수건을 뒤에 놓는 것이 정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뒤에 이렇게 놓으면 허리를 더 돌려야 하니까 불편하잖아요. 항상 옆에 딱 놓고 바로 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상적입니다.

여러분들이 발우공양 인원 숫자가 적을 때는 사이를 조금 넓혀서 뚜껑과 수건을 오른쪽 옆에 놓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 이렇게 하면 좁습니다. 이만큼 떨어져야 뚜껑을 놓기가 안전합니다. 공간이 좁으면 할 수 없이 뒤로 놓을 수밖에 없습니다.

법사들은 점검하고 수정해 주는 역할을 해야

정토회 공동체가 지역이 나누어져서 생활하고 있기 때문에, 특히 행자원에서 좁게 살다 보면 좁은 곳에서 하는 방식이 그냥 규칙이 되어버려요. 그리고 이 염불 목소리도 가끔 늘어져 있는데도 자기들끼리 늘 그렇게 하다 보면 그게 정상이 됩니다.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에 가서 학생들이 판차실(오계) 하는 것을 보면 완전히 늘어져서 노래가 되어 있거든요.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우니까 그게 정석이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사단은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발우공양에 참석하거나 어떤 행사에 참석할 때, 염불 곡조가 늘어나거나 어떤 규칙이 변형되었거나 좁게 쓰던 것이 정석화되어 있으면 수정해 주는 역할을 해줘야 합니다. 그래야 같은 규칙이 오래도록 갈 수가 있습니다. 안 그러면 인도 공동체와 다르고, 서울 공동체와 다르고, 문경 공동체와 다르고, 다 달라질 위험이 있습니다.

자리 중간이 빌 때는 다 움직이지 말기

발우공양 시작할 때는 차수대로 앉는 게 정상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정으로 중간에 자리가 하나 비었다고 하면, 방석을 빼거나 사람이 발우를 들고 옮기지 말고, 맨 끝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자리에서 일어나서 그 빈자리에 가서 채워버리면 전체가 이동할 필요가 없어집니다. 이것은 비상시에 할 수 있는 방법입니다.

법회 때도 마찬가지예요. 자꾸 우리는 앞쪽 자리가 비어 있으니, 앞으로 오라고 하면서 전부 다 일어나서 앞으로 오라고 합니다. 그렇게 하지 말고, 안내하는 사람이 앉아 있는 사람들은 그대로 두고 맨 뒤에 있는 사람을 앞으로 오게 해서 채워버리면 다른 사람이 움직이지 않아도 됩니다. 공동체에는 기본적인 질서가 있지만, 무조건 질서만 지키는 게 아니라 효율성도 함께 배려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발우공양이 끝나고 법사님들은 조별로 설거지 및 생활 공간을 청소했습니다.

오후부터 스님은 법사님들과 여러 주제에 대해서 논의했습니다. 정토회 미래 비전과 관련해서 문화에 대한 논의가 있었습니다. 천도재에 대한 논의부터 의복에 대한 것까지 다양한 문화적 주제를 다루었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전야문화제를 치르고 나서 나온 여러 아이디어와 앞으로 수행 문화를 어떻게 만들어가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지에 대한 논의도 있었습니다. 미래 세대인 청소년과 청년들을 위한 전법 활동과 프로그램에 대해서도 논의가 있었습니다. 이후 공동체 운영 세칙에 대한 점검, 사회활동 위원회 구성에 대한 논의, 외국인 정토행자들의 공동체 입방에 대한 건, 수련원 공간 활용 방안 등에 대한 주제로 논의했습니다. 또 깨달음의 장 수련 진행과 공간 사용에 대한 것, 올해 초파일 행사에 대한 평가와 회관을 방문한 어린이들을 위한 프로그램 준비 등에 대해서도 논의했습니다.

여러 안건으로 논의하다 보니 식사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후 4시에 이른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메뉴는 맛이 잘 든 열무 물김치를 곁들인 시원한 냉면이었습니다. 스님은 음식을 잘 만들었다며 식사를 준비해 준 공양 당번들에게 격려하고 냉면 한 그릇을 비웠습니다. 후식으로 새까맣게 잘 익은 오디가 나왔습니다. 오디를 맛본 법사님들이 맛있다고 하며 어디서 온 오디인지 궁금해했습니다. 오디를 준비한 행자님이 설명했습니다. 농막 뒤쪽 위 논에 큰 오디나무가 있는데, 그곳에 천막을 깔아두어서 자연적으로 떨어진 오디를 주워 왔다고 했습니다. 농사 팀장님이 천막을 깔아두면 좋겠다고 제안해서 얻은 오디였습니다.

이른 저녁 공양 이후 스님과 법사님들은 정토회 미래 비전에 대해서 논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저녁 9시가 되기 전까지 열띠게 논의했습니다. 논의를 마친 후 법사님들은 SBS의 두번째 방송인 <법륜 로드-스님과 손님>을 시청했습니다. 문화에 대해 논의했던 날이라 예능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는 것이 더욱 의미 있었습니다. 공동체 법사단 수련 2일 차의 일정이 마무리되면서 스님의 하루 일과도 마무리되었습니다.

내일은 공동체 법사단 수련 3일차 수련이 있습니다. 오전에는 수행법회가 있고, 오후에는 집중 회의와 산책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오늘은 대중들을 위한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4월 대구 경북대학교에서 진행된 즉문즉설에서의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직장에서 잔소리하는 성격을 고치고 싶어요

“저는 40대 초반 여성 직장인으로 굉장히 꼼꼼하고 깔끔한 성격입니다. 예민한 편이라 따로 의식하지 않아도 주변 상황이 계속 눈에 들어옵니다. 이런 성향은 업무적으로 도움이 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제 기준을 부하 직원에게 그대로 적용하다 보니 고민입니다. 저는 업무에서 거듭 확인하는 것을 기본으로 생각하는데, 그것이 잘 이루어지지 않으면 직원들을 꾸짖거나 감정적으로 반응하게 됩니다. ‘내 눈에는 보이는데 왜 저 사람 눈에는 안 보일까’라는 생각이 들며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상대는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을 이해하려고 하지만, 실제로 잘못을 마주하면 저도 모르게 화를 내게 됩니다. 그 결과 직장에서 잔소리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 이러한 부분을 고치고 싶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말로는 고치고 싶다고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면 실제로는 고치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 같아요. 고쳐야 한다고는 생각하지만, 자신의 성격이 잘못됐다고 여기지는 않는 거예요. 결국 ‘이렇게 부족한 사람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내가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내가 맞춰야 하나, 아니면 있는 그대로 살아야 하나?’ 이런 고민을 하는 것인데, 그냥 있는 그대로 사셔도 됩니다. 꼼꼼하고 정확하게 잘 점검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에요.”

“그런데 타인의 잘못을 과하게 지적합니다.”

“잘못한 것은 지적해야지요.”

“네, 그건 맞습니다만···.”

“보세요. 금방 자기가 옳다고 하잖아요. (웃음) 그냥 생긴 대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덜 주면서 지적하는 방법이 있을까요? 어차피 지적은 하게 될 것 같은데, 상대의 마음을 덜 다치게 하고 제 화도 가라앉히는 방법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화를 억누르면 오히려 더 크게 폭발할 위험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웃으면서 참고, 그다음에는 이를 악물고 참다가 결국 크게 터지게 됩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잔소리가 되더라도 그때그때 조금씩 표현하는 편이 오히려 나을 수 있어요. 한국 사람은 흔히 세 번까지는 못 참는다고 하죠. ‘보자 보자 하니까,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이렇게 참은 화는 결국 한꺼번에 터져서 갈등과 상처를 더 크게 만듭니다. 반면 그때그때 표현하면 다소 번거로울 수는 있어도 큰 싸움으로 번지지는 않습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람 관계에서 ‘내가 옳다’는 것은 내 기준일 뿐, 상대의 기준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두 사람이 함께 걸을 때, 한 사람은 앞서가고 한 사람은 뒤에 간다고 해봅시다. 앞에 가는 사람은 ‘왜 빨리 안 오지?’라고 생각하고, 뒤에 가는 사람은 ‘왜 저렇게 서두르지?’라고 생각해요. 부부 사이에서도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외출할 때 남편은 먼저 대문 밖에 나가 있고 아내는 아직 준비 중일 수 있어요. 남편은 ‘아내는 늘 늦게 나온다’라고 생각하고, 아내는 ‘저 사람은 늘 자기만 먼저 나간다’라고 생각합니다. 각자의 역할과 상황이 다르기 때문이에요. 남편은 주로 바깥일을 하고 집안일을 하지 않기 때문에 본인 옷만 입으면 바로 나갈 수 있습니다. 반면 아내는 집안일을 하다 보니 창문도 닫아야 하고, 부엌도 살펴야 하고, 이것저것 정리하고 나가야 해서 시간이 더 걸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아내는 ‘남편은 늘 혼자 먼저 나간다’라고 생각하고, 남편은 ‘아내는 항상 늦는다’라고 여기게 됩니다. 이처럼 모두가 자기 기준에서 보는 거예요. 결국 이것은 내 기준일 뿐입니다.

질문자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저와 비슷한 면이 많네요. 저 역시 이런 성격으로 이 나이까지 사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대중 웃음) ‘내가 옳다’는 생각은 어디까지나 내 기준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를 볼 뿐이지, 절대적인 기준은 본래 없어요. 내 기준으로 보면 상대가 부족해 보이지만, 상대의 기준으로 보면 나는 잔소리가 많고 간섭이 심한 사람일 수 있어요. 이런 상태에서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습니다. 정말로 자신을 바꾸고 싶다면 ‘상대와 내가 서로 다르다’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해요.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질문자가 그게 될까요? 이 얘기를 굳이 안 하는 이유는, 해봐야 안 될 것 같아서예요.”

“제가 요즘 스님 동영상을 많이 보고 있습니다. ‘알아차림’을 말씀해 주셔서, 요즘은 화가 날 것 같으면 ‘아, 내가 화가 났구나’, ‘화가 나려고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며 한 번 정도는 참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참으면 안 돼요. 참는 것은 알아차림이 아닙니다. 참는다는 것은 이미 화가 났다는 거예요, 화가 난 상태에서 억누르면 반드시 압력이 쌓여 터지게 됩니다. 저 역시 저를 관찰해 보면 그렇습니다. 그래서 참지 말고, ‘화가 났구나’ 하고 알아차리기만 하면 됩니다. ‘내가 화가 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아직 화를 안 냈기 때문에 부작용이 없고, 이미 화를 내버렸다면 ‘내가 또 화를 냈구나’ 하고 자책할 것이 아니라 ‘화내서 미안합니다’ 하고 참회하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이 참회가 잘 안됩니다. 내가 화를 낸 이유를 상대가 틀려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내가 화를 내는 것은 내 문제다’라고 자각하지 못하고 ‘네가 문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참회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화를 낼 때마다 참회해야 합니다. 그것은 상대의 문제가 아니라 내 문제이기 때문이에요.

방법은 세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생긴 대로 사는 것입니다. ‘내 성격이 이런 걸 어떡해’ 하고 받아들이면서 사는 겁니다. 화도 내고 욕도 좀 먹으면서 사는 것이죠. 둘째, ‘알아차림’을 하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말한 대로 욕을 좀 덜 먹고 살려면 ‘아, 화가 나는구나!’, ‘내가 화를 냈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조금 완화가 돼요. 화를 내더라도 금방 사과하게 되니 함께 살아갈 만한 사람이 됩니다. 셋째, 근본적으로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옳고 그름이 본래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이에요. 성격이 다르고, 믿음이 다르고, 생각이 다릅니다. 이 경지에 이르면 화날 일이 없습니다.

정리하면, 상대를 이해하면 화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옳고 그름이 있으면 화가 납니다. 그럴 때는 알아차림을 해야 합니다. 그것도 어렵다면 그냥 생긴 대로 사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에는 고통이 좀 따릅니다.”

“네, 말씀 감사합니다. 노력해 보겠습니다.”

“무슨 노력을 해요?”

“화를 안 내도록 알아차리는 노력이요.”

“화를 안 내려고 노력하면 안 돼요. 화를 안 내려고 하면, 질문자 성질에 화가 날까요, 안 날까요? 화를 안 내려고 하는데도 화가 나면 ‘내가 이것도 안 되나?’ 하며 자신을 학대하게 됩니다. 그건 상대를 탓하는 것과 똑같아요. ‘저 인간은 이것도 못 하나?’ 하듯이, 자신에게 ‘나는 이것도 못 하나?’ 하면서 자기학대를 하는 거예요. 남 탓이 내 탓으로 바뀐 것일 뿐입니다. 이렇게 누구를 탓하는 것은 수행이 아니에요. 수행은 누구도 탓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화가 났으면 ‘화가 났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되고, 화를 냈으면 ‘화를 내서 미안합니다’ 하고 참회하면 됩니다.

더 근본적으로는 ‘서로 다르다’라는 것을 이해하면 됩니다. 그러면 화날 일이 없습니다. 얼마 전 방송 촬영차 인도에 다녀온 적이 있어요. 방송팀은 인도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는데, 그 사람들이 계획해서 일을 진행했습니다. 저는 인도를 100번쯤 가봤기 때문에 그들이 일하는 것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이 좀 들었어요. 그러나 같이 간 다른 일행들은 인도가 처음이니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었죠. 모르면 답답할 이유도 없는 법이니까요. 저는 훤히 아니까 ‘이렇게 하면 더 수월할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는 게 병인 거예요. (웃음) 방송은 제가 주도해서 온 게 아니라 남이 주도한 촬영에 제가 따라간 것이기 때문에 PD가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데, 자꾸 제 입에서 아는 소리가 나오려는 거예요. ‘이렇게 하는 것보다는 저렇게 하는 게 더 낫습니다’라는 말이 입 밖으로 나오려고 했어요.

이때는 ‘아, 내가 지금 이렇구나’ 하고 알아차리면 됩니다. 누가 옳고 그른 것은 원래 없습니다. 그 사람들은 틀렸다는 생각이 추호도 없어요. 제가 물어보니 잘하고 있대요. 원래 이렇게 하는 거래요. (웃음) 그런데 거기에다 제가 뭐라고 하겠어요. 반대로 그 사람들이 스님을 보면 ‘아이고, 스님이 시키는 대로 안 한다.’ 이렇게 생각할 것 아니에요. 이렇게 관점이 다른 것이지, 누가 옳고 그른 것은 없습니다.

첫째, 화가 날 때는 ‘화가 나는구나!’ 하고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둘째, 만약 화를 냈다면 ‘화를 내서 죄송합니다’ 하고 참회하면 됩니다. 셋째, 참회도 어렵다면 그냥 성질내고 욕을 얻어먹으면서 살아도 됩니다. 대신 과보를 좀 받아야 해요. 중요한 것은 어떤 선택을 하든 이를 악물고 노력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꾸준히 연습을 되풀이할 뿐이지, 결코 애를 쓰면 안 돼요. 애쓰면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알겠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전체댓글 3

0/200

이수정

고맙습니다.

2026-05-29 06:45:03

최영관

고맙습니다...

2026-05-29 06:21:48

금강선

스님께 늘 점검받을 수 있어서 고맙습니다.
매일 익히고 체득해 나갑니다.

2026-05-29 06: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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