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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님은 오전에 농사 울력을 하고, 오후에는 영화 관람을 하고, 요양병원을 다녀왔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고 텃밭을 가꾸었습니다.


밭에 잡초도 뽑고, 쌈 채소도 수확했습니다. 오전 울력을 마치고는 외출 준비를 했습니다.
오늘은 요양병원에 입원 중인 속가 형님을 만나러 요양병원을 방문했습니다.


평일이라서 차가 막히지 않아서 1시간 이내로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큰 대학병원에는 사람도 많고 차도 많았습니다. 주차할 공간을 겨우 찾아서 주차했습니다. 스님은 입원 중인 형님 병실로 가서 병문안을 하고 왔습니다.
오후에는 제주 4.3 사건을 다룬 정지영 감독의 ‘내 이름은’이라는 영화를 볼 예정입니다. 몇 년 전에 5월 말에 정지영 감독님이 스님을 찾아와서 새로 제작하는 영화에 대해서 후원을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정지영 감독님은 당시 영화계의 어려워진 투자환경과 영화 소재의 무게감으로 제작비를 모으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그럴 때 저명인사들을 찾아다녔습니다. 스님은 그 당시 정지영 감독님이 만난 사람 중 한 명이었습니다. 정지영 감독님은 크라우드 펀딩으로 시작해서 영화 제작을 시작했고, 여러 어려움이 있었지만, 베를린영화제출품까지 3년 가까이 시간이 걸렸습니다. 배우 염혜란 님의 주연으로 이달 15일에 개봉한 ‘내 이름은’은 개봉 5일 만에 10만, 4월 25일 기준으로 15만여 명의 관객들이 관람했습니다.
개봉하기 전 스님을 초대했지만, 대구 강연이라 가지 못했습니다. 며칠 전 정지영 감독님이 유럽으로 출국하면서 스님에게 전화를 해서 꼭 한번 관람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마침, 스님의 시리아 해외 일정이 취소되어 시간적으로 여유가 생겼고 부산 인근에 병문안 올 일이 있어서 오늘 영화를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영화 시작 시각이 오후 1시 10분이어서 근처 식당에서 간단하게 짜장면으로 점심을 먹고 영화관으로 향했습니다.

“영화관 가본 지가 얼마인지 모르겠어요. 40년도 더 된 것 같은데…. 내 기억 속에 영화관에서 마지막으로 본 영화가 미국에 갔을 때, 티베트 스님들의 수행 이야기를 다룬 영화였던 것 같아요. 거기서 티벳어로 염불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뜻은 모르겠고, 내 귀에는 ‘내가 공하다, 내가 공하다, 내가 공한 것도 공하다’ 이렇게 들렸어요.”
영화 시작 시간을 기다리며 스님이 마지막으로 영화관을 가본 지가 언제인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이 40년 전에 갔을 때 영화관과 지금 영화관은 많이 달랐습니다. 평일 낮이라서인지 영화관에 사람들이 별로 없었습니다. 직원들도 거의 보이지 않았고, 스낵 바에서도 직원이 1명 정도만 있었습니다.

스님이 보려는 영화 ‘내 이름은’을 상영하는 곳은 2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일반 좌석의 상영관이었는데 리클라이너 의자(등받이가 뒤로 가고 발 받침대가 올라오는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기능성 의자)로 개조되면서 90여 석 정도로 조정된 곳입니다. 요즘 영화관은 리클라이너 의자로 된 개조된 상영관들이 많습니다.

스님은 어두운 상영관으로 들어가서 자리에 앉았습니다. 영화관 조명이 꺼지고, 영화가 상영되었습니다. 2시간 가까이 숨죽여서 봤습니다.

영화가 끝나자, 쉽게 자리를 일어나지 못했습니다. 영화가 주는 여운이 길었습니다.
스님은 2시간 동안 움직이지 않고 영화를 보았습니다. 오랫동안 한 자세로 앉아 있어서인지, 스님은 다리가 저려서 곧바로 의자에서 내려오지 못했습니다. 스님은 어두운 영화관의 계단을 조심히 천천히 내려왔습니다. 상영관을 나와서 차를 타기 위해서 주차장으로 향했습니다. 주차장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영화를 같이 봤던 행자님이 물었습니다.
“제주 4.3사건이 뭐예요? 왜 그렇게 사람들을 마구잡이로 죽였어요? 너무 잔인해요.”
차로 돌아와서는 제주 4.3 사건에 대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기도 하고, 영화를 본 소회도 나누었습니다. 제주 4.3 사건은 제주도민들에게는 가슴 아픈 역사였습니다. 민간인들에 대한 공권력의 학살이 6~7년 동안 계속되었다는 사실과 이러한 사실이 밖으로 드러나지 못했던 배경들, 일제 강점기 해방 이후 남북한이 갈라지면서 발생한 복잡한 상황들이 얽혀 있었다고 하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궁금함이 생기니 모르던 역사를 찾아보게 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대통령이 정부를 대표해서 희생자 유족들에게 사과했다고 하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다소 무겁고, 어려운 주제로 이념적으로 접근하지 않고 인간의 고통에 대해 보편적으로 접근한 예술 영화였습니다. 많은 사람이 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영화관을 나와서 스님은 요양원에 계시는 형수님을 만나러 울산 지역의 한 요양원으로 갔습니다. 요양원에 도착해서 형수님을 만나고 안부를 묻고 근황을 이야기하고 나왔습니다.

서둘러 차를 타고 두북수련원으로 왔습니다.

스님이 두북 수련원에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손님들이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게 되었습니다.


두북수련원에 도착하니 김용주 변호사님과 지방 선거 후보자들이 두북수련원을 방문하여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스님은 반갑게 인사를 하고 사무실로 손님들을 모셔서 차를 대접했습니다. 30분간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사진을 찍고 미팅을 마무리했습니다.
손님들을 배웅한 후, 스님은 짐을 챙겼습니다. 간단하게 저녁 식사를 한 후 저녁 8시경에 서울로 출발했습니다. 자정이 다 되어서야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에 도착했고, 스님은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수행법회가 있는 날입니다. 스님은 내일 오전에는 서울 서초동 정토회관에서 법문할 예정이고 이후에는 미팅으로 하루 일과를 보낼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4월 진행했던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하고 글을 마무리합니다.

“저는 지적 장애가 있는 열일곱 살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입니다. 지난 1년 사이 언니와 남동생을 병으로 떠나보낸 뒤, 저와 제 아이는 모두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커졌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아이가 ‘엄마, 죽는 거 아니지?’라고 자주 묻습니다. 최근에는 여동생이 복강경 수술을 했는데 동생이 혹시라도 잘못될까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주변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또다시 나를 떠날까 싶어 걱정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걱정을 안 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산에서 뱀한테 물렸다고 예를 들어봅시다. 즉시 병원에 가서 해독제 주사를 맞으니까 아무 일 없었습니다. 이런 하나의 경험이 다음에 어떤 작용을 할까요? 뱀한테 한 번 물린 뒤로 뱀이 무서워지고, 풀숲만 들어가도 또 뱀에게 물릴까 봐 겁이 난다면 이것은 트라우마입니다. 쉽게 말해 마음에 상처가 생긴 것이지요. 비슷한 속담으로는 ‘뱀 보고 놀란 가슴, 새끼줄 보고 놀란다.’, ‘자라 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가 있습니다. 반대로 뱀을 무서워했는데 한번 물려보니까 따끔할 뿐이지 해독제 주사를 맞으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되었다면 어떨까요? 오히려 뱀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들어서 ‘뱀한테 물려도 별거 아니네.’라고 여길 수가 있습니다. 이 경우에는 그 사건이 경험이 된 겁니다. 다시 말해 하나의 사건을 상처로 삼으면 빚을 진 것처럼 앞으로 내 인생에 장애가 되고, 경험으로 삼으면 앞으로 내 인생에 재산이 됩니다.
사람이 죽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누군가의 죽음을 겪고 난 뒤에 또 누가 죽을까 봐 전전긍긍하며 지낸다면, 그것은 트라우마입니다. 반면 ‘좀 힘들긴 하지만 살아있는 사람은 또 살아가는구나!’ 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면, 하나의 경험이 됩니다. 지금 질문자는 이 일이 상처로 남아서 트라우마 증상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정신건강의학과에서 적절한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해요. 아이도 같은 증상으로 힘들어한다면, 아동 심리 치료를 하는 곳에 가서 트라우마 치료를 받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다면 수행이란 무엇일까요? 하나의 사건을 경험으로 삼는 일이에요. 엄마가 죽으면 못살 것 같았는데, 막상 그 이후에도 내가 잘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 ‘누가 죽더라도 잠시 어려움은 있겠지만 사는 데 큰 지장은 없겠구나.’라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겪는 많은 사건을 경험으로 삼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일을 하다가 일을 못 한다고 욕을 먹었을 때, 다음에도 욕을 먹을까 봐 일하는 게 무섭고 두렵다면 그것은 트라우마가 된 거예요, 그런데 ‘처음에는 못해서 욕먹어 먹었지만 익숙해지니 괜찮네’라고 할 수 있으면 그것은 경험이 된 거예요. 결국 중요한 것은 사건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경험을 자꾸 쌓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어떤 나쁜 일이 연달아 일어난다고 해서 재수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예를 들어 숫자 1부터 6까지 적힌 주사위를 던지면, 1이 나오거나 2가 나오거나 6이 나옵니다. 각 숫자가 나올 확률은 6분의 1이에요. 그런데 실제로 던져보면 숫자 1이 딱 여섯 번 중에 한 번만 나오지는 않아요. 여섯 번 던져서 여섯 번 다 나올 수도 있고, 한 번만 나올 수도 있고, 한 번도 안 나올 수도 있어요. 이걸 실험적 확률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주사위를 계속 던져서 백 번, 천 번, 만 번 이렇게 던지는 횟수가 늘어나면 1이 나올 확률이 점점 6분의 1에 가까워집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비도 주사위와 같은 원리입니다. 비가 항상 적당히만 오면 좋겠지만 어떤 때는 팍 쏟아져서 홍수가 날 때도 있고, 어떤 때는 비가 너무 안 와서 가뭄이 들 때도 있습니다. 이때 적당히 오는 것만 자연이고, 많이 오거나 아예 안 오는 것은 자연이 아닐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두 자연 현상입니다. 긴 시간 동안 관찰하면 ‘홍수는 십 년에 몇 번 정도고, 가뭄은 십 년에 몇 번 정도다’라고 알 수 있어요. 큰 홍수나 가뭄이 십 년이나 이십 년 만에 한 번쯤 올 수 있기 때문에 제방을 쌓거나 댐을 짓거나 지하수를 파서 미리 대비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대비를 해 두면 비가 적당히 오면 다행이고, 많이 오거나 적게 와도 어느 정도는 감당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대비하며 살아가는 것이 인생살이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도 소용이 없을 정도로 비가 마구 쏟아질 때도 100년에 한두 번쯤 있지요. 그럴 때는 피해를 입을 수밖에 없어요. 이건 내가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니라, 이것조차 자연 현상의 일부인 거예요.”
“네, 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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