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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님은 오전에 법사님들, 손님들과 함께 농사 울력을 하고 오후에 손님들을 배웅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스님은 텃밭에서 상추를 솎았습니다. 상추가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있어서 빠르게 수확하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잎이 부드러운 상추와 아삭한 상추로 나눠서 수확했습니다. 상춧잎뿐 아니라 상추 줄기까지 먹을 수 있는 부드러운 상추는 줄기 째로 상추를 수확했습니다. 텃밭의 상추를 다 수확하고 나니 오전 7시가 되었습니다. 3 바구니 가득 나왔습니다. 스님은 부드러운 상추와 아삭한 상추를 고루 담아서 손님들과 지인들에게 줄 선물용으로 포장했습니다.

오늘은 산윗밭으로 농사 울력을 하러 갔습니다. 법사님들과 손님 일행들도 함께 농사 울력을 하러 가겠다고 따라나섰습니다. 손님들도 모자를 쓰고 장갑을 끼며 만반의 준비를 하고 스님을 따라나섰습니다. 엉덩이 방석, 호미, 낫을 챙겨서 산윗밭으로 갔습니다. 산윗밭은 경사가 있어서 평지보다 더 천천히 올라갔습니다.

산윗밭에 도착하자 스님은 밭 안내를 해 주었습니다. 아랫단에는 도라지와 더덕이 심겨 있다고 했는데, 풀들밖에 보이지 않았습니다. 윗단에는 하얀 목단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제일 안쪽 고랑에는 도라지 밭이라고 하는데, 도라지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풀이 많이 자라서 도라지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팀을 나눠서 농사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법사님 2명은 더덕밭으로 가서 풀매기했습니다. 스님은 손님 1명과 함께 쑥을 베었습니다. 풀매기가 어려운 사람들이 그늘에 앉아서 쑥을 손질할 수 있도록, 쑥들을 베어서 주었습니다. 더덕밭에도 쑥이 많았습니다. 법사님 2명은 더덕밭의 풀매기를 하면서 나온 쑥을 베어 보탰습니다. 스님이 낫질하자, 금방 한 바구니가 가득 찼습니다. 손님은 스님 옆에서 베어 낸 쑥과 풀들 가운데서 쑥만 골라서 바구니에 넣고 쑥 다듬기 팀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스님은 쑥을 베며 설명해 주었습니다.
“‘빈집이 쑥대밭이 되었다’라는 말이 있지요? 여기 쑥들 사이로 보이는 마른 나뭇가지가 쑥대예요. 시골에 빈집이 생기면, 마당에 제일 먼저 자라는 것이 쑥대예요. ‘쑥대밭이 되었다’라는 말은 폐허가 되었다는 뜻이에요.”
듣고 있던 행자님들이 ‘아~ 그렇구나.’ 하며 말했습니다. 스님이 더덕밭 쪽으로 가서도 쑥을 베었습니다. 그곳에도 쑥이 잘 자라 있었습니다.

“스님~ 이 나무가 가죽나무인가요?”
더덕밭에 한 그루 나무가 삐죽이 있었습니다. 보광 법사님이 궁금해서 스님께 여쭤봤습니다.
“가죽나무는 아니에요. 가죽나무처럼 보여도 그것은 붉나무예요. 가죽나무, 옻나무, 붉나무가 다 비슷하게 생겼는데, 자세하게 보면 달라요.”

스님은 낫으로 쑥을 쓱쓱 베었고, 더덕밭에서 나온 쑥도 바구니에 담았습니다. 쑥 다듬기 팀에 쑥을 거의 3바구니를 가져다주었습니다. 스님은 쑥 다듬기 팀에 가서 직접 쑥 다듬는 법도 자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


“쑥대 쪽 가까이 있는 것은 질겨서 못 먹어요. 이 쑥은 쑥떡을 해 먹을 용도로 사용할 거예요. 끝에서부터 이렇게 하나씩 이파리를 떼고, 윗부분은 부드러워서 이렇게 잘라내면 됩니다. 다 손질이 된 것은 여기 봉투에 담아주세요.”
직접 시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쑥을 씻어서 삶아 냉동실에 넣어두고 필요할 때마다 쑥떡을 만들어 먹어도 된다고 설명도 덧붙였습니다. 쑥 다듬기 팀의 일감이 어느 정도 마련되자, 스님은 도라지밭으로 갔습니다.

도라지밭에는 이미 풀 매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칡넝쿨과 마른 쑥대들이 엉켜 있어서 낫질과 호미질이 쉽지 않았습니다. 몇 명은 마른 넝쿨들을 제거하는 작업을 했고, 몇 명은 앉아서 도라지 사이에 있는 잡초를 뽑았습니다. 스님이 도라지밭으로 와서 일손을 보탰습니다.
“여기 이 밭에는 흙이 단단해서 도라지에 잔뿌리가 많이 생겨요. 도라지가 일자로 쭉 자라야지 먹을 것이 있는데, 여기는 땅이 부드럽지 못해서 일자로 자라기가 어려워요. 도라지를 약으로 먹으려면 6년 정도는 키워야 한다고 해요. 3년 정도는 그냥 도라지나물 정도로 먹을 수 있습니다.”
“스님, 여기는 왜 이렇게 도라지들이 촘촘하게 심겨 있어요?”
오늘 도라지밭의 풀을 처음 매본 손님 1명이 궁금해서 물었습니다.
“이 밭은 예전에 도라지를 키웠던 밭이에요. 도라지꽃이 활짝 피면 여기가 보라색 천지였어요. 도라지는 3년 이상 키우게 되면 뿌리가 썩을 확률이 높아요. 썩지 않게 하려면은 3년이 되기 전에 캐서 다른 곳에 심어주면 됩니다. 이 밭은 예전에 있던 도라지가 꽃을 피우고 씨앗이 떨어져서 자라서 촘촘하게 심겨 있어요.”
스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생활 속에서 먹는 도라지가 그냥 땅에서 쉽게 나는 것이 아니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라지나물이 내 입에 들어오기까지 몇 년이 걸린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풀이 무성한 도라지밭을 10여 명이 붙어서 풀을 매었습니다. 넝쿨을 제거하는 사람, 풀을 뽑는 사람, 뽑은 풀을 한쪽으로 치우는 사람. 하다 보니 각자 역할을 나눠서 하게 되었습니다. 도라지밭이 상당히 길어서 언제 끝날까 싶었는데, 풀을 맨 곳을 돌아보니, 도라지만 남아 있었습니다.

“풀 뽑고 나니까 도라지밭이 맞네요.”
풀만 있는 줄 알았던 밭에, 풀을 매고 나니 도라지가 남았습니다.

도라지밭을 다 매고 나서,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해가 점점 강해지고 기온이 올라갔습니다. 농사 울력 휴식 시간에 마시는 물 한 컵은 어느 음료수보다 더 시원했습니다.

아랫단에 있는 도라지밭이 남았습니다. 스님은 아래 도라지밭으로 가자고 제안했습니다. .
잠시 쉬었던 사람들은 아래 도라지밭으로 갔습니다.

아랫단 도라지밭은 윗단 도라지밭보다 더 풀이 많았습니다.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누군가가 넝쿨을 정리하고, 누군가는 풀을 뽑기 시작했습니다. 앞에서부터 하나씩 해 나가니 풀 매기에서 속도가 조금씩 났습니다.
아랫단 도라지밭에 풀매기를 한지 20분이 지났습니다.
스님이 몇 시인지 물어봤습니다.
“10시 40분입니다.”
“20분밖에 안 지났다고요. 시간이 정말 안 가네요.”
함께 풀매기했던 행자 1명이 힘이 들었는지, 시간이 안 간다고 해서 다들 크게 웃었습니다. 한바탕 크게 웃고 다시 풀매기를 시작했습니다.

“저희 멈춤과 살핌 할까요?”
행자님이 1분 명상을 제안해서 1분 동안 울력을 멈추고 호흡을 살피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분 끝났습니다.”
“아니, 1분이 이렇게 짧아요? 울력할 때는 시간이 그렇게 안 가더니, 명상할 때는 이렇게 시간이 빨리 가네요.”
손님 중 1명이 이렇게 이야기하자, 다들 한바탕 웃었습니다. 명상을 제안했던 행자님이 다음에는 명상을 2분을 하겠다고 하며, 다시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다들 풀매기를 하면서도, 이런저런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고유가 시대에 비행기 값이 비싸서 해외 이동이 쉽지 않다는 이야기, OTT(over-the-top media service) 시장 이야기 등 여러 이야기도 나눴습니다. 아랫단 도라지밭의 풀매기를 시작한 지 1시간이 되자 풀매기가 끝났습니다.

“풀 뽑고 나니까 도라지밭이 맞네요.”
여기가 정말 도라지 밭이었나 싶었던 밭이, 도라지만 남았습니다. 옆에는 밭을 잘 갈아 놓았는데, 명아주가 자라서 명아주 밭이 되어버렸습니다. 법사님들과 손님들은 울력 마무리를 하고 밭에서 나올 준비를 했습니다.

해가 점점 머리 위로 올라왔습니다. 햇살이 뜨거웠습니다. 쑥 다듬기 팀 2명은 그늘을 찾아서 자리를 다시 잡고 쑥 다듬기로 했는데, 스님이 베어 준 쑥을 다 다듬지 못했습니다.

농사 울력을 마쳐야 하는 시간이 되어서 다듬지 못한 쑥은 챙겨 가서 마당에서 점심 식사 전에 다듬기로 했습니다. 도구들을 챙겨서 산에서 내려와 작은 승용차에 실었습니다.

차는 이동하고, 사람들은 천천히 걸어 내려왔습니다.

오전 11시 40분쯤이 되었습니다. 쑥을 다 다듬지 못해서, 3팀으로 나눠서 쑥 다듬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한쪽에서는 점심 식사 준비를 했습니다. 간단하게 면을 삶아서 먹으려고 했지만, 차리다 보니 한 상 푸짐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텃밭에서 키운 상추, 고수가 밥상 위로 올라왔습니다. 쑥 다듬기와 점심 준비를 마치자 점심 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은 법사님들과 손님들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고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3시, 손님들은 떠날 채비를 했습니다. 오늘 채취한 산나물, 상추, 고수, 쑥떡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저녁 5시 30분, 경주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손님들에게 인사하며 배웅했습니다. 스님은 외출하러 나온 김에 경주에 들러서 민간 치료용 약을 받고 두북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 식사 후에는 오늘 일을 많이 해서 피곤하다며 일찍 취침에 들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4월 진행되었던 즉문즉설의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는 두 자녀를 둔 46세 가장입니다. 아버지께서 45년간 음향기기 판매업을 하셨는데, 9년 전부터 제가 그 일을 이어받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미 하향세에 들어선 업종이지만 회복될 것으로 판단하고 새로 건물까지 지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매출이 급감하면서 지금은 대출 이자조차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아버지는 자수성가하신 분인데, 저는 아직 경제적 도움을 받고 있습니다. 자식으로서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아버지는 이제 쉬셔야 할 나이고, 제 자식들은 점점 커가고 있는 상황에서 제가 역할을 못 하고 짐이 되는 것 같아 괴롭습니다. 그래서 지금 하고 있는 사업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으로는 평생 해온 일을 그만두고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것이 두렵기도 하고, 또 아버지가 해오신 일을 제가 그만두어도 되는지 고민이 됩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업을 정리하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끝까지 버티는 것이 나을지 모르겠습니다. 또 부모님께 의지하고 있는 이 상황을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는 게 좋을지 질문드립니다.”
“한 10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국민의 약 90%가 농사짓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농사짓는 사람이 10%도 되지 않아요. 그렇다고 해서 나머지 80%의 사람들이 일이 없어 놀고 있는 건 아닙니다. 회사원이나 자영업 등 다른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비슷한 변화가 일어날 거예요. 인공지능이나 로봇이 보편화되면 사회가 전반적으로 바뀔 것입니다. 지금 있는 직업의 70~80%가 없어질 수 있어요. 그렇다고 해서 사람들이 직업을 잃고 다 굶어 죽는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시대에는 새로운 일이 생깁니다.
옛날에는 출세할 수 있는 길이 서당에 가서 공부해서 과거에 급제하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서당에서 배운 것으로 산업사회에서 직업을 갖기 어려워요. 그래서 동네마다 있던 서당이 다 사라졌습니다. 이처럼 지금 있는 학교도 미래에는 필요 없어질 수도 있습니다. 지금 학교는 점점 제 기능을 잃어가고 있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조선시대에 젊은이들이 과거에 매달리듯이 요즈음은 대학에 매달리고 있습니다. 세상이 너무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어서 앞으로 어떻게 바뀔지 가늠이 안 될 정도인데, 그런데도 사람들은 그동안 해오던 방식에 매달리고 있어요.
예전에는 우리가 선진국이 이루어 놓은 것을 모방하면서 발전해 왔습니다. 그래서 미국을 보면 30년 후 한국의 모습을 예측할 수 있었고, 일본을 보면 20년 뒤 한국을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달라요. 한국은 미국, 일본과 비슷한 선상에 와 있기 때문에 누군가가 시행착오를 거듭해서 만들어 놓은 성공 사례가 없어요. 우리도 선두에 있기 때문에 안전하게 따라 하기만 하면 되는 모델이 없는 상태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사회가 어떻게 변화할지 짐작할 수 있는 예시도 없어요. 이제는 우리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남이 해 놓은 것을 따라 벤치마킹할 때는 실수가 적었지만, 새로운 것을 창조할 때는 열 번을 시도해도 한 번 성공하기 어려워요. 그래서 사회가 발전하려면 엄청난 연구개발비가 필요하고, 시행착오를 겪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 100년까지 서양을 따라 배우는 입장이었어요. 모방할 때는 원본과 조금만 달라도 틀린 게 됩니다. 그런데 창조는 없는 것을 새로 만들어 내는 것이니까 틀린 것은 없습니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는 게 바로 창조의 과정입니다. 그래서 수많은 시행착오를 실패로 보지 않고 창조의 과정으로 보아야 해요. 나 스스로에 대해서도 타인에 대해서도, 사회적으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창조를 할 수 있습니다.
교육도 변화해야 합니다. 지금까지는 이미 만들어진 지식을 배우고 맞고 틀린 것을 구분하는 교육을 해왔어요. 그런데 이런 교육으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하는 인재를 양성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삼성 같은 기업에서도 새로운 것을 개발하는 인력으로 외국 인력을 많이 채용해요. 외국 사람들이 더 똑똑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훈련을 받아왔기 때문에 창조가 필요한 분야에 더 적합한 것입니다. 현재 우리는 공부를 잘하면 이과는 의대에 가고, 문과는 법대에 가서 의사나 변호사를 하는 게 목표예요. 그런데 인공지능이 상용화되면 의사나 변호사는 더 이상 좋은 직업이 아닐 가능성이 높아요. 지금이야 모두가 선망하는 직업이지만, 30년 뒤에 우리 아이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도 좋은 직업일지는 알 수 없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이 없어요.
지금까지 산업사회의 핵심은 지식과 기술이었습니다. 그래서 기술과 지식을 가진 사람이 단순노동을 하는 사람보다 더 높은 대우를 받을 수 있었어요. 그 결과 지식과 기술을 가진 사람을 대량으로 양산하는 시스템이 오늘날의 학교 교육입니다. 그런데 AI와 로봇이 보편화된 시대에는 단순히 지식과 기술을 익히는 것만으로는 큰 의미가 없습니다. 필요한 정보는 검색해서 바로 쓰면 되거든요. 어릴 때 주산과 암산을 배웠지만 지금은 쓸모없어진 것과 같은 이치예요.
이제는 많은 것이 대체되는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지금의 학교도 그대로 유지될 수 있을까요? 더 이상 기존의 지식을 배우고 기술을 익히는 데만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어졌는데도, 우리는 여전히 같은 방식의 교육을 반복하고 있어요. 일종의 낭비적인 교육을 계속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다고 대안을 쉽게 내기도 어려워요. 교육 관계자도 그 경험밖에 없고, 학교 선생님도, 학부모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은 아직 잘 모르니 결국 모두가 익숙한 이 길만 계속 가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변화된 시대에는 오히려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길을 찾아갑니다. 기성세대는 아이들을 나무라지만, 아이들은 기존의 길이 아니라는 걸 느끼고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섭니다. 그 과정에서 방황하는 시간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이런 변화 속에서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분야가 자영업이에요. 일반 가게든, 숙박업이든, 영화배우나 작가도 넓게 보면 자영업입니다. 회사에 소속되어 체계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위험에 처해 있기는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조직적으로 대응하며 변화의 속도를 늦추고 있어요. 그런데 자영업자는 개인 단위이기 때문에 조직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지요. 그래서 변화의 충격을 가장 먼저 받게 됩니다. 질문자도 자영업자지요?”
“네.”
“그렇다고 사양산업이라고 다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요즘도 한문을 가르치는 서당이 서울에 하나쯤은 있어요. 대장간도 거의 없어졌지만 여전히 남아 있는 곳이 있습니다. 사양산업이라도 특성을 살리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정리를 해야 하고요. 얼마나 오래 했느냐는 중요한 기준이 아니고, 지금 상황에서 살아남을 수 있느냐가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지금 정리하면 5억 손해이고, 5년 뒤에 정리하면 10억 손해라면 어느 쪽이 낫겠습니까? 당연히 손해가 적은 쪽이 낫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상하게도 큰 손해를 보고 나서야 문을 닫으려고 합니다. 그래야 미련이 안 남으니까요. 또 주변에 자기 특성을 살려서 살아남은 사례를 보면 ‘내가 괜히 정리했나’ 하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은 잘못된 생각이에요. 내가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그대로 인정하고 미련을 두지 않는 것이 중요해요. 결국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내가 특성을 살려 계속해 보든지, 아니면 미련을 내려놓고 정리하든지요. 무엇을 할지는 새로운 시대 속에서 스스로 찾아야 합니다. 만약 찾지 못한다면 있는 조건에서 먹고살다가 상황에 맞게 조정해 나가면 됩니다. 1부가 안 되면 2부로 가고, 그것도 안 되면 또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이것이 인생이라는 거예요. 삶이 힘든 이유는 대부분 과거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런 관점부터 먼저 정리할 필요가 있어요.
국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양산업이라고 해서 한 번에 문을 닫아버리면 많은 국민이 큰 고통을 겪게 됩니다. 그래서 국가에서는 점진적으로 조정하면서 고통이 한꺼번에 닥치지 않도록 사회안전망을 구축해 나갑니다. 아이들이 3분의 2로 줄었다는 것 알고 계시지요? 그렇다면 유치원과 초등학교도 줄어야 합니다. 그런데 교사는 계속 배출되고 있어서 임용고시를 만들어 진입을 제한하고 있어요. 예전에는 교대나 사대를 졸업하면 바로 교사가 되었지만, 지금은 임용고시를 통과해야 합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3년, 4년씩 시험을 준비하며 묶여 있게 됩니다. 그 후에도 바로 발령이 나는 것이 아니라 또 기다려야 해요. 이는 엄청난 인력 낭비지요. 그렇다고 교원 수를 줄이려면 학교를 줄여야 하는데, 학교나 교수들이 난리가 나요. 그래서 학교도 못 줄이고, 결국 교사 수도 줄이지 못합니다. 대신 한 반의 학생 수를 줄이는 방식으로 대응합니다. 예전에는 한 반에 60명이었지만, 50명, 30명, 20명대로 줄이면서 국가 재정은 그만큼 더 들어가지요. 이렇게 점진적으로 완화는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교육대학과 사범대학의 규모를 줄여야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피해를 안 입으려고 해요. 그래서 퇴직자는 그대로 두고, 신규 채용만 줄이는 방식으로 조금씩 조정합니다. 그러니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는 거예요. 회사도 은퇴한 인력만큼만 신규 채용하든가, 업무를 자동화해서 인원을 줄입니다. 기존 인력은 강하게 저항하니까 정년퇴직까지 두거나 명예퇴직을 시키고 새로 채용하지를 않아요. 그래서 일자리가 안 생기는 거예요. 이처럼 사회는 변화 속에서 조금씩 조정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보면, 질문자의 상황도 다시 볼 수 있어요. 내가 게을러서가 아니라 시대 변화 속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라면, 아버지의 도움을 받는 것이 꼭 나쁜 일일까요? 정부에서 지원받는 것은 괜찮고 아버지에게 도움받는 것은 안 됩니까? 그렇게 볼 필요는 없어요. 물론 그것에 전적으로 의지해서 살아가는 건 바람직하지 않지만, 아버지에게 여유가 있고 내가 어려움을 겪고 있다면 도움받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아버지가 가진 돈을 그대로 두면 어디에 쓸 건데요? 정부에서 융자받아 쓰듯이 아버지에게 도움받아 쓰는 것도 괜찮아요. 상황이 나빠지면 정부 지원도 못 갚는 경우가 있듯 아버지에게 받은 것도 그런 상황이 생길 수 있지요. 그렇다고 해서 무책임하게 하라는 말은 아닙니다. 다만 이런 과정에서 도움받는 것을 지나치게 죄책감으로 볼 필요는 없다는 관점입니다.”
“네.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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