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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님은 오전에 농사 울력을 하고 이후에 손님들과 경주 일대 산책을 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하고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울력복으로 갈아입고, 도구를 챙겨서 정거리 누님댁 밭으로 향했습니다.
지난번, 비 온 다음 날에 누님댁 밭의 엄나무 가지치기를 하려고 갔습니다. 비가 와서 밭이 많이 질어서 가지치기할 수 없었습니다. 다음을 기약하고 스님은 키가 닿는 작은 나무 몇 그루만 가지치기하고 돌아 왔습니다.
스님은 지난번에 하지 못했던 나무 가지치기를 하러 누님댁 밭에 왔습니다. 법사님들과 손님 일행도 함께 와서 같이 농사 울력을 했습니다.


스님과 향존 법사님은 나무 가지치기를 하고 법사님들과 손님들은 누님댁 밭에 있는 고사리, 상추, 달래, 머위, 개미취 등 봄 나물들을 채취했습니다.

스님은 가죽나무부터 시원하게 가지치기했습니다. 자동 전지기와 전기톱, 전지 가위 등 가지치기에 필요한 도구들을 챙겨왔습니다. 엄나무는 가시가 많아서 가시에 찔리지 않는 특수 장갑도 챙겨왔습니다.

가죽나무를 시원하게 잘랐는데, 누님이 와서 더 잘라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가죽나무 다 베어 버리소. 스님. 더 베어도 됩니다. 가죽나무가 얼마나 잘 자란다고요. 싹둑 베어도 잎을 다 따지도 못할 만큼 또 납니다.”
“지난번에 잘라 달라고 해서 싹 잘라드렸더니, 너무 많이 잘랐다고 야단맞았어요. 진짜 다 잘라낼까요?”
“다 잘라주이소. 내 허리가 굽어서 다 따지도 못합니다. 봄에 어마어마하게 잎이 나는데 다 못 땁니다. 싹 잘라주이소.”

무릎길이 정도만 남기고 가죽나무를 싹둑 잘랐습니다.

가죽나무에 붙은 여린 가죽 잎들을 따로 떼어 내었습니다. 가죽나무잎으로 장아찌를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한곳에 잘 모아두었습니다. 이파리를 떼어 낸 나뭇가지는 한쪽에 잘 정리해 두었습니다. 가죽나무가 먼저 정리되었습니다.

다음은 엄나무 가지치기를 시작했습니다. 엄나무가 여러 그루가 있었습니다. 어떤 엄나무는 너무 커서 가지치기를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습니다.

스님은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전기 자동 전지로 작은 가지들을 먼저 잘랐습니다. 굵은 가지는 전기톱을 이용해서 잘랐습니다. 굵은 나뭇가지가 어디로 떨어질지 몰라서 스님은 톱질을 하기 전에 신중을 기했습니다. 주변에 사람들이 다치지 않도록 계산해서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제법 큰 엄나무가 있었습니다. 전기톱으로 몇 번을 베어서야 가지가 잘렸습니다.

잘린 엄나무 가지는 다시 더 조각을 내서 밭 가장자리 한쪽에 모았습니다. 엄나무에 가시가 날카롭게 나 있어서 특수 장갑을 끼지 않고서는 만질 수가 없었습니다. 스님이 신은 고무장화 밑창을 뚫고 엄나무 가시가 박혀서 올라왔습니다. 장화 밑창에 엄나무 가시가 촘촘하게 박혔습니다.

가지치기를 시작한 지 1시간이 지났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지 못하고 바로 농사 울력에 참여한 손님들은 간단하게 아침 식사를 하러 밭에서 나갔습니다. 스님도 가지치기하던 것을 잠깐 멈추고 휴식을 하고 참을 먹었습니다. 준비해 온 따뜻한 짜이와 마을 근처에서 뜯은 쑥으로 직접 만든 쑥떡을 콩고물에 묻혀서 맛보았습니다. 누님이 다시 지팡이를 짚고 밭으로 와서 가지치기할 나무와 아닌 나무들을 알려주었습니다.
“저기 죽은 밤나무 가지도 베어주소.”

휴식 시간이 끝나자, 스님은 바로 사다리를 밤나무 쪽으로 이동해서 밤나무의 가지치기를 했습니다. 밤나무는 엄나무보다 키가 높았습니다. 굵기도 굵어서 가지를 치는 데 힘도 많이 들고, 높이 올라가야 했습니다. 단번에 가지를 자르지 못했고, 여러 번 나눠서 가지를 잘랐습니다.

‘툭’하면서 큰 나뭇가지가 땅으로 떨어졌습니다. 스님이 여러 그루의 나무를 가지치기한 뒤라 손에 힘이 다 빠졌습니다. 스님이 사용한 자동 전기 전지는 배터리가 무거워서 잡는 것 자체가 힘이 많이 들어갔습니다. 법사님과 행자들이 떨어진 큰 나뭇가지를 전기톱과 전지가위로 이동하기 쉽게 적당한 길이로 잘랐습니다.

밤나무를 끝으로 농사 울력을 마쳤습니다.

도구와 연장을 챙기고 채취한 봄나물을 봉지와 바구니에 담아서 차에 실었습니다.

누님 댁으로 가서 인사를 드리니 과일, 단호박 식혜, 도토리묵이 한 상 차려져 있었습니다. 노인 둘이 살고 있어서 엄두도 못 냈던 가지치기를 스님이 해 준 덕분에 누님은 뭐라도 먹고 가라고 하시며 먹을거리를 챙겨 주었습니다. 집에서 직접 만들었다는 단호박 식혜와 도토리묵은 일품이었습니다.
오전 10시쯤에 스님은 손님 일행과 함께 울주 천전리 암각화가 있는 반구대로 산책하러 갔습니다. 공룡 발자국이 있는 곳으로도 유명하고, 암각화가 있는 곳으로 유명한 곳입니다.
스님은 손님 일행과 산책 후에 식당에서 칼국수로 점심을 먹었습니다. 손으로 직접 밀어서 칼국수 면이 쫄깃했습니다. 스님의 지인분이 점심 식사 후에 근처 딸기 농장을 둘러보면 좋겠다고 제안해서 스님은 손님 일행들과 딸기 농장을 다녀왔습니다. 딸기 농장을 둘러보고 오후 4시쯤에야 두북으로 돌아와서는 휴식을 취했습니다.

한 낮의 뜨거움이 가라앉고 저녁이 되니 바람이 시원했습니다. 오후 5시 즈음, 스님은 손님 일행과 남산 삼릉 일대의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저녁 7시에는 농사 울력 때 채취했던 봄나물과 쌈 채소로 풍성하게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손님들과 인도와 필리핀에서 온 법사님들, 옛날 정토회에서 함께 일했던 멤버들도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며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저녁 식사 후 스님은 원고 교정을 하고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농사 울력으로 도라지밭 풀매기를 하고 오후에는 손님 배웅으로 외출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4월 통영에서 열린 즉문즉설 내용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제 고민은 퇴근하고 집에 오면 글도 좀 쓰고 싶고, 그림도 그리고 싶은데요. 막상 집에 가면 휴대폰으로 영상이나 영화를 보면서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그래, 오늘 일 열심히 하고 왔으니까 이게 행복이지.’ 하는 생각을 하다가도 ‘이렇게 인생을 낭비해도 되나?’ 싶은 마음도 듭니다. 그런데 휴대폰으로 영상이나 영화를 보면 너무 재미있어요. 일 안 하고 노는 것도 아니고, 오늘도 열심히 했으니 이렇게 지내도 괜찮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제가 계속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요?”
“질문자가 그렇게 살고 싶다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어요. 인생을 살면서 다섯 가지만 지키면 됩니다. ‘남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 남의 물건을 훔치거나 빼앗는 것,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하는 것, 욕설하거나 거짓말하는 것, 술에 취해 행패를 부리는 것.’이 다섯 가지만 아니면 남 눈치 보지 말고 마음대로 살아도 됩니다. 남이 어떻게 살든 간섭도 하지 말고요. 그렇게 자유롭게 살면 됩니다. 휴대폰으로 영상 보는 게 죄는 아니잖아요.”
“제가 오랫동안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이 있는데요. 놀기는 하지만 마음은 불편합니다. 글을 쓰려고 자리에 앉으면 잘 안 써지기 때문에 괴로워요.”
“글을 쓰려고 하는데 잘 안 써진다면 안 쓰면 됩니다. 괴로울 일이 아니에요. 밥을 먹으려고 식당에 갔는데, 안 먹고 싶으면 안 먹으면 되죠. 이처럼 글이 안 쓰여지는 것은 괴로울 일이 아닙니다. ‘왜 괴로울까?’라고 스스로 질문을 해보세요. 글이 안 써지는데 왜 괴로울까요?”
“저는 재미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여기 독이 든 음식이 있습니다. 그런데 독이 들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보면, 향기와 빛깔이 좋아서 ‘먹어야지.’ 하는 마음이 듭니다. 제가 옆에서 보고 ‘거기 독 들었다.’라고 말해 줍니다. 그러면 ‘아, 그래요?’ 하고 안 먹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님, 여기 독이 든 줄은 아는데 안 먹으려고 해도 계속 먹고 싶어요. 어떻게 하면 될까요?’라고 묻습니다. 그러면 저는 ‘먹고 죽으면 됩니다.’라고 말합니다.
무지, 즉 모르는 것은 옆에서 알려 주고 깨우쳐 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알고는 있는데 잘 안됩니다.’라고 할 때는 다른 사람이 도와줄 수가 없어요. 글을 쓰면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질문자는 글은 안 쓰고 휴대폰 영상을 보며 시간을 보냅니다. 글을 쓰면 좋다는 것을 안다면 글을 쓰면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계속 놀고 있는 겁니다. 그러면 계속 그렇게 하세요. 그건 누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그렇게 하면 좋은 작품을 못 만들지 않습니까?’라고 묻는데, 그것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것을 갖고 싶은데 손에 쥐면 뜨겁습니다. ‘뜨거워요. 어떻게 하면 놓을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거예요. 이게 놓는 방법의 문제일까요? 뜨거우면 ‘앗, 뜨거워!’하면서 얼른 바닥에 놓으면 됩니다. 그냥 놓는다, 즉 방하착(放下著)입니다. 그런데 손에 쥐고 있으면서 ‘어떻게 놓아요?’라고 말합니다. 놓는 방법을 묻는 걸까요, 놓기 싫다는 걸까요? 놓기 싫다는 마음이지요. 그러면 손에 쥐고 있으면 됩니다. 대신 손을 데면 됩니다. ‘손 데는 것은 싫어요.’ 하고 또 물어요. 그럼 그냥 놓으면 됩니다. 이건 방법의 문제가 아닌데 여러분은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는 않고 생각만 많은 거예요.
질문자도 글을 쓰고 싶으면 그냥 쓰면 되고, 쓰기 싫으면 그냥 안 쓰면 됩니다. 그래도 글을 쓰는 게 좋다는 것을 알면 쓰기 싫어도 쓰면 됩니다. 음식에 독이 든 것을 알면 먹고 싶어도 안 먹고, 그래도 먹고 싶다면 먹고 죽으면 됩니다. 간단한 문제예요. 그런데 사람들은 독이 든 음식을 먹고도 안 죽는 방법을 찾습니다. 이런 심리를 이용해서 일부 종교에서는 부처님께 빌거나 하느님께 빌면 먹어도 안 죽는다고 믿게 하기도 하죠.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빌리면 갚아야 하는데, 갚기는 싫어합니다. 어떤 사람은 안 갚아도 되는 것처럼 가르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이치에도 어긋납니다. 질문자도 하고 싶으면 하면 되고, 안 해도 살 수 있으니 안 하는 겁니다. 글을 안 써도 살 수 있잖아요. 만약 글을 안 쓰면 죽는다고 한다면 영상을 계속 보고 있을까요, 글을 쓸까요? 지금은 안 써도 살만하니까 안 쓰는 겁니다.
심리적으로 보면 의식에서는 ‘써야 한다.’라고 하지만, 무의식에서는 ‘그냥 영상이나 보면서 놀아도 돼.’라고 하는 것이죠. 내면에서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그냥 질문자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됩니다. 인연을 지었으면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이면 되고, 과보를 받기 싫으면 인연을 짓지 않으면 됩니다. ‘하고 싶기는 한데요….’ 같은 말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독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면 그냥 안 먹으면 됩니다. ‘어떻게 안 먹어요?’ 이런 질문 자체가 필요 없습니다.”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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