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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스님은 오늘 오전에는 여러 미팅과 오후에는 인터뷰 촬영, 저녁에는 전국법사회의 분과 워크숍에서 법문을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한 후 오전 8시부터 정토사회문화회관 접견실에서 여러 사람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오전에 5건의 미팅 후,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공양간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습니다.

점심 식사 후에 스님은 주방으로 들어가서 손님용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격려했습니다. 오늘 오후에 스님 인터뷰 촬영이 있어서 방송 관계자들이 일부 회관에 방문하고, 저녁에 일부 외부 손님들이 방문해서 총 25명이 지하 1층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할 예정입니다. 회관 점심 공양 시간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쪽에서는 손님용 저녁 식사 준비로 봉사자들의 손길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습니다. 공양간을 나와서 손님들 식사 장소인 무대 위도 둘러보고 체크했습니다.
스님은 오전부터 계속된 미팅 이후에 늦은 점심 식사를 하고 사무실로 올라와서 잠깐 쉴 틈도 없이 바로 인터뷰 촬영에 앞서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잘 지냈어요? 인도 갔다 와서 좀 쉬었어요?”
스님은 지난 4월 8일부터 13일 인도 콜카타와 보드가야, 둥게스와리 지역에서 방송 촬영을 하고 왔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 특집으로 마련된 SBS 새로운 예능 프로그램인 ‘법륜로드-스님과 손님’은 5월 19일 저녁 9시 첫 방송을 앞두고 있고 총 4부작으로 제작 방송될 예정입니다.

인도 현지 촬영은 끝났지만, 마지막 스님의 인터뷰 촬영이 오늘 오후 2시부터 정토사회문화회관 옥상 법당인 ‘대성초당’을 배경으로 예정되어 있습니다. 인도에서 함께 했던 제작진들, 작가들이 마지막 촬영을 위해서 정토사회문화회관을 방문했고, 스님은 인터뷰 촬영에 앞서 작가들과 마지막 점검을 했습니다.

인도의 후덥지근한 날씨로 예상치 못한 여러 변수 속에서 고생하며 촬영했던지라, 한국에서 다시 만나니 반가움이 컸습니다. 인도 거리 촬영 장면이 많고 클락션 소리까지 녹음되어 오디오 상태가 양호하지 않아 오늘 예정된 스님 인터뷰 분량이 꽤 많았습니다. 촬영팀은 사전에 회관을 방문하여 촬영 장소를 둘러보고 촬영 준비를 미리 세팅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 오후 5시까지 스님은 옥상 대성초당 안에서 인터뷰 촬영을 했습니다.
스님의 인터뷰 촬영이 끝날 때쯤에 인도에서 함께 촬영했던 출연진들이 회관에 도착해서 옥상 법당으로 왔습니다. 스님과 함께 방송을 촬영했던 출연진들은 방송인 노홍철, 배우 이상윤, 이기택, 이주빈, 가수이자 래퍼인 올데이프로젝트의 조우찬입니다. 노홍철 님은 다른 일정으로 오지 못했고, 4명의 출연진이 인터뷰 촬영을 막 끝낸 스님과 반갑게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대성초당에 대해서 간단하게 설명하고, 제작진들, 출연진들과 함께 대성초당을 배경으로 단체 사진을 찍었습니다.

인터뷰 촬영이 다소 늦게 끝나서 서둘러 건물 지하 3층으로 내려갔습니다. 지하 3층에 대강당을 둘러보고, JTS 사진전을 같이 둘러보았습니다. 인도 현지 촬영을 다녀온 지라 스태프들과 출연진들은 인도 JTS 사업에 관해 관심이 있었고, 인도 JTS 초창기 시절 스님의 젊었을 적 모습에 놀라워했습니다. 배우 한지민 님이 필리핀 오지 마을로 구호 활동 다녀온 사진이 보이자 반가워하는 출연진도 있었습니다.

북한 옥수수 지원 사업을 하고 스님이 보육원의 아이들을 만났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면서 웃음꽃이 피었습니다. 저녁 식사 시간이 되어서 손님들과 함께 지하 1층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지하 1층 무대에는 손님들을 위한 뷔페식 상차림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손님들이 식사 장소로 모이자, 스님이 설명했습니다.
“자, 다 오셨어요? 여기는 절이라서 고기 음식이 없습니다. 채식으로 준비했습니다. 자기 먹을 만큼 덜어서 충분히 드시기 바랍니다. 여기 봄에 나는 제철 식재료로 식사를 준비했습니다. 두 군데로 나눠서 배식하시면 됩니다. 방송 촬영한다고 수고 많았어요. 편하게 많이 드세요.”

스님이 앞장서서 배식을 시작했습니다. 손님들이 한두 명씩 줄을 서서 배식하고 자리에 앉았습니다. 스님이 공양 게송을 하자 자리에 앉은 손님들도 함께 손을 모아 공양 게송을 하고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무대 오른쪽 테이블에는 작가들이 모여서 앉았고, 중간 테이블에는 스님과 출연진들이 앉았습니다. 무대의 왼쪽 테이블에는 제작진들이 모여서 앉았습니다. 예상했던 인원보다 몇 명 더 오셔서 옹기종기 끼여 앉아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스님은 공양 준비한 봉사자들을 잠깐 무대로 오라고 했습니다. 공양 봉사자들이 무대로 오자 스님이 소개했습니다. 봉사자들에게 오늘 식사하신 손님들은 프로그램 제작진과 작가들임을 알리고, 방송 촬영을 같이 했던 출연진은 한명 한명 소개했습니다. 봉사자들은 아는 방송인이라며 박수를 치며 환호했습니다. 손님들에게는 오늘 식사를 준비해 주신 봉사자들이고, 이 음식들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이 만든 것이라고 소개해 주었습니다. 간단한 인사 시간이었지만, 스님의 안내와 소개로 분위기가 훈훈해졌습니다.
어느 정도 식사가 끝나자, 스님은 각 테이블로 가서 다시 인사를 하고, 담소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손님들에게 말했습니다.

“저기 밖에 책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본인이 좋아하는 책 한 권 골라서 본인의 이름을 적어주면 사인 해드리겠습니다.”

손님들은 스님의 여러 책 중에서 한 권씩 골라서 포스트잇에 본인 이름을 적어 두었습니다. 인기가 있었던 것은 스님의 신간인 ‘탁’과 스테디셀러인 ‘행복’이었습니다. 스님이 한 권 한 권 제작진들의 이름을 쓰고 사인을 해서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출연진들과 수고한 메인 스태프들에게는 우리말 사전을 선물했습니다.

“이것은 벽돌책인데, 우리말 사전입니다. 이것 받으신 분들은 과제가 있습니다. 이 사전에 수록되지 않은 순우리말을 찾아서 저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다 읽어보면서 찾으면 어렵습니다. 일상 생활 속에서 이 말은 우리말 사전에 뭐라고 되어 있을까? 찾아보고 없으면 제보해 주시면 됩니다. 이렇게 제보해 준 것들을 모아서 개정증보판을 다시 내게 됩니다.”
벽돌책을 받은 사람들은 책의 두께에 놀라워했고, 책을 받고 그 무게에 놀라워했습니다.

출연진의 막내인 조우찬 님은 바로 즉석에서 책 포장을 뜯어서 안을 살펴보며 관심 있게 봤습니다.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스태프들이 있어, 스님과 삼삼오오로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지하 공양간 무대가 포토존이 된 것 같았습니다. 손님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셀카를 찍으며 기념했습니다.

사진 촬영 시간이 끝나자, 스님은 손님들을 배웅하기 위해서 1층으로 갔습니다. 로비에서도 한참을 이야기하고 회관 밖으로 나왔습니다.

저녁이 되어서 밖이 어두워지자, 회관 밖에 달린 천장의 연등이 더 밝아 보였습니다. 스님은 출연자들에게 부처님 오신 날 사회인사 법회 때 오라고 초대했고, 출연진들과 스태프들은 오늘 저녁 식사를 잘 먹었고 감사하다며 마지막 인사를 했습니다. 출연진들과 스태프들이 차량에 탑승하고 가는 것을 보고 스님은 사무실로 올라왔습니다.
스님은 잠시 사무실에 들렀다가 전국법사회의 분과 워크숍이 진행되고 있는 9층 강당으로 왔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 스님의 인사 말씀을 듣기 위해서 분과위원 법사님들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토회는 법사님들로 구성된 5개 분과가 운영되고 있는데, 오늘은 31명의 분과위원이 모두 모여서 1박 2일 동안 워크숍을 하기로 했습니다. 강당에는 29명의 법사님이 온라인으로 5명의 법사님이 함께 참석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강당에 도착하자 법사님들이 스님께 삼배로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은 오늘 일정이 많았던 관계로 간단하게 인사만 하고 가려고 했으나, 두 명의 법사님이 스님께 질문을 드렸습니다.

30분 정도 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기념 촬영 후에 스님은 워크숍 장소를 나왔습니다.
오늘 아침 8시부터 저녁 8시까지 스님은 쉴 틈 없이 사람을 만나고 인터뷰 촬영을 하면서 하루를 보냈습니다. 내일은 외부 미팅 후에 두북으로 이동하고 온라인 즉문즉설에 참여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대중들을 위한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4월 경주에서 있었던 즉문즉설의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저는 천주교 신자입니다. 30년 전에 시장에서 한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그 할머니가 길에 주저앉아 있는 걸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어서 그 할머니 집까지 함께 갔습니다. 가서 보니, 생활이 매우 어려우시더라고요. 저의 친정과 시댁이 농사를 지어서 형편이 되는대로 된장, 고추장 같은 것을 많이 가져다드리고 자주 찾아뵈었습니다. 그러다가 경주로 이사를 와서는 아이 여섯 명에 아빠 없는 가정을 도왔습니다.
9개월 전에는 장로교회 다니는 한 자매를 알게 되었고, 계속 돌봤습니다. 그 자매는 담배를 자주 피우는 골초였어요. 어느 날 아침, 우리 집에서 그분과 딸기를 먹고 있는데 남편이 갑자기 들어왔습니다. 담배 냄새가 난다고 하더니, 이틀 뒤에 ‘그 담배 냄새 많이 나는 사람 우리 집에 들이지 말라’고 했습니다. 제가 그 말을 전하니 교회 다니던 자매님이 저에게 이별을 선언했습니다. (관중 웃음)
스님, 예수님도 ‘누가 네 이웃이냐?’ 하셨고, 불교에서도 부처님이 자비를 말씀하시고, 천주교에서도 자비를 말하는데, 자비가 도대체 뭡니까?
종교를 믿지 않는 비신자들에게 이야기해도 천 원짜리 한 장 도와주는 사람 없고, 신자들에게 이야기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침, 점심, 저녁도 못 먹고 너무 배가 고파서 950원짜리 우유 하나로 버티는데도 아무도 도와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커피 두 잔 사준 사람 한 명 있었을 뿐, 나머지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저는 남편이 주는 생활비로 사는데, 그중 절반 이상을 그 자매님한테 썼습니다.
여기 계시는 모든 분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정말 우리는 이웃을 돌보고 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자. 우리 모두 이웃을 돌보고 살자고 말씀하십니다. 고맙습니다.
굳이 설명한다면, 불교 신자 가운데 부처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기독교 신자 가운데 기독교, 예수의 가르침대로 사는 사람이 별로 없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질문자는 자비가 뭐냐, 자비가 세상에 실현되지 않아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도 이상하지 않습니다. 질문자가 직접 천주교, 성당에 다니는 신도 백 명을 봐도 정말 단 돈 천 원이라도 이웃을, 불쌍한 사람을 위해서 돕는 사람이 없잖아요. 그 사람들은 예수님의 가르침하고 관계없이 천주교에 다니고, 예수님의 가르침 없이 기독교에 다니고, 부처님의 가르침 없이 절에 다닙니다.
성경의 마태복음 25장 32절부터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최후의 심판 날 왕께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다 일으켜 세워 양 떼와 염소 떼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너희들은 지옥에 갈 거라고 하니까, 주여! 왜 우리가 지옥에 가야 됩니까? 라고 물었습니다. 그러니까 너희들은 내가 목마를 때 마실 걸 주지 않았고, 굶주릴 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병들었을 때 약을 주지 않았고, 헐벗었을 때 입히지 않았으며, 나그네가 되었을 때 영접하지 않았고, 감옥에 갇혔을 때 면회하지 않았다.’
이렇게 6가지를 말했어요. 그들이 ‘주여, 주가 언제 그런 적이 있습니까?’ 그러니까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않는 것이 곧 나에게 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했잖아요. 그래서 성경에 의하면 심판 기준이 교회에 얼마나 다녔냐, 교회에 돈을 얼마나 헌금 했느냐, 교회 건물을 몇 개 지었느냐 이런 것이 기준이 아니고, 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자 한 명에게 어떻게 대했느냐가 천국에 가는 기준입니다.
그런데 그 기준에 따라 사는 사람은 극히 드물어요. 그게 현실이에요. 기독교만 그런 게 아니고, 불교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면 기독교와 불교인들은 지금 뭘 가지고 불교, 기독교를 삼느냐? ‘내가 부처님께 기도하면 복 준다, 안 되던 사업 잘 되고, 아픈 병 낫고, 나쁜 짓 좀 많이 했지만 열심히 믿고 기도하면 죽어서 극락 가고 천당 간다.’ 이런 기대와 믿음을 가지고 절에 가서 절하고, 교회 가서 기도한단 말이에요. 절 짓는데 돈 내고, 교회 짓는데 돈 내면 내가 세상에서 조금 못된 짓을 해도 죄를 사해주고, 죽어서는 좋은 곳으로 간다고 이렇게 믿습니다. 그런 믿음을 예수님은 말한 적이 없고, 부처님도 말한 적이 없어요.
복을 빌고 복을 구하는 것이 필요하다면 부처님이 무엇 때문에 왕위를 버리고 출가하셨습니까? 이런 것을 기복신앙이라고 하는데, 그러면 이것이 나쁜 것입니까? 아닙니다. 복을 비는 것도 개인의 자유입니다. 복을 비는 사람들을 나쁘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 예수 가르침대로 안 하네’라고 말할 수는 있어요. ‘그 사람들 부처님 가르침대로 안 하네’ 이렇게 말할 수 있지만 ‘그 사람들 불교인 아니다’ 이렇게 말할 수는 없어요.
현실에 존재하는 불교는 그것이 불교이기 때문이에요. 신앙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신앙에서는 부처님이 뭐라고 했든 중요하지 않아요. 내가 뭘 믿든지 그것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인도에 가보면 뱀을 믿는 신앙도 있고, 원숭이를 믿는 신앙도 있고, 심지어 쥐를 믿는 신앙도 있어요. 그걸 어리석다고 말하지 않아요. 신앙은 개인의 자유입니다. 그들은 그들이 믿는 신앙을 따를 뿐이에요.
그런데 질문자가 예수님 가르침을 잣대로 놓고 ‘너는 왜 자비를 안 베푸냐, 예수님 말씀대로 안 하느냐?’ 이렇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 기준을 절대화해서 나는 옳고, 너는 틀렸다고 하는 것은 올바른 자세는 아닙니다. ‘나는 이렇게 믿고, 이런 기준으로 살아간다. 그런데 저 사람들은 저렇게 살아가는구나.’ 서로 믿는 것이 다를 뿐이에요.
내가 옳다고 주장하게 되면 남이 그르게 돼요. 내가 옳고 네가 그르다고 하면 불교가 아닙니다. 그러니까 질문자가 어려운 사람을 형편껏 돕는 것은 잘하는 일이에요. 그렇게 하시는 것은 질문자의 자유입니다. 대신에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렇게 안 하는 사람이 틀렸다고 하는 관점은 위험하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기독교는 옳고, 불교는 틀렸고, 천주교는 옳고, 무슬림, 개신교는 틀렸고, 장로파는 옳고, 감리교는 틀렸고, 이렇게 시비 분별에 휘말리게 됩니다.
그래서 다만 질문자는 ‘저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따라 저는 살아갑니다. 제가 가는 것이 좋아 보이시거든 여러분들도 저처럼 해주십시오.’ 이렇게는 얘기할 수는 있지만, ‘너네는 틀렸다.’ 이렇게 보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관점을 이렇게 가지면 좋겠다고 말씀드립니다.”
“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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