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4.21. 중국에서 한국 이동
“이혼소송 중에 스토커, 주거침입으로 고소당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스님은 어제에 이어 오늘도 중국에서 동북아 역사기행 장소를 몇 곳 더 둘러 보고 한국으로 입국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정진과 명상으로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하루 종일 동북아 역사기행 장소 답사를 했습니다. 저녁 6시에 심양 타오셴 국제공항에서 출발하는 인천 국제공항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늦지 않게 공항으로 왔습니다. 수속을 밟고 비행기에 탑승해서 1시간 30분 비행 후 저녁 8시 30분경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짐을 찾고 서초동 정토회관으로 돌아오니 밤 10시가 다 되었습니다. 스님은 짐을 풀고, 원고 교정을 보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종교인 모임과 오전 수행법회, 오후에는 미팅과 포스코청암상 시상식에 참석하고 저녁에는 설법전에서 수행법회 법문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즉문즉설을 소개하면서 글을 마칩니다.

이혼소송 중에 스토커, 주거침입으로 고소까지 당했습니다.

“결혼하고 부부 생활이 힘들었습니다. 전 남편은 일주일에 세 번씩 술을 먹고 다니고, 저에게 짜증을 내는 일이 많았습니다. 여러 가지 이유로 제가 2017년도에 이혼을 결심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스님의 주례사』를 읽게 되었습니다. 책 속에서 스님이 남편이 술을 먹고 들어오면 ‘오늘 집에 들어와 주신 것만 해도 다행입니다.’라고 생각하고 절을 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정말 마음을 고쳐먹고 ‘아이고, 집에 들어오니 다행이다. 안 죽고 돌아와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하며 참고 살아왔습니다.”

“그건 참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집에 들어와서 다행인데 왜 참나요? 참았다는 것은 ‘일찍 들어와야 하는데 늦게 들어오네’ 하고 생각하니까 스트레스받는 것입니다.”

“스트레스를 안 받으려고 했어요. 술을 일주일에 세 번 먹어도 놔두고 살아왔습니다. 그러다가 아이를 갖게 되었습니다. 10년 넘는 결혼생활 동안 부부관계도 없었고, 제가 혼자서 아이를 간절히 원했던 이유로, 어렵게 시험관으로 귀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다가 이혼소송이 시작되면서 상대방이 유치원에 있던 아이를 데리고 잠적해 버렸습니다. 6개월 동안 아이는 유치원에도 못 갔고, 저는 아이를 볼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아이를 찾으러 시댁을 갔었는데. 시댁에서 저를 스토킹으로 고소했고, 아동 학대로도 고소했습니다. 아이를 세뇌해서 거짓 녹취를 만들고, 아이를 정신과에 데리고 가서 엄마를 만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진단서까지 받아왔습니다.

경찰 조사 과정 중에 저의 직장에 피의사실을 통보해서 사회적으로도 처참히 짓밟혔습니다. 당연히 무혐의 처분을 받았지만, 저는 아이의 정서까지 도구로 삼아 한 여자의 인생을 짓밟는 아이 아빠의 그 잔인함에 삶의 의지마저 잃을 뻔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저는 스님께 세 가지를 여쭙습니다.
첫 번째, 법이 이 모든 악행을 심판하지 못한다면 세상의 인과응보, 업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는 것일까? 이번 생에 과보를 받게 되는지, 아니면 다음 생에 받는 것인지 알고 싶습니다.
두 번째는 아이의 아빠이기 때문에 평생 연락을 끊기 힘든 상황인데, 생각만 해도 소름이 돋습니다. 이 지독한 악연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세 번째는 아빠의 이런 행적을 아이에게 사실대로 이야기해야 하는지, 아니면 아이를 위해서 아빠는 좋은 사람이고 훌륭한 사람이라고 미화해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제가 결혼생활이 힘들었지만, 『스님의 주례사』를 읽고 108배를 하는 심정으로 내버려두면서 이혼하지 않고 살아왔는데, 결과가 이렇게 되어서 질문하려고 왔습니다.”

“결국 내 탓이네요? (청중 웃음) 들어 보니 결국 내 탓이네요. (스님 웃음)

첫 번째, 질문자가 생각하는 그런 인과는 없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인과응보라는 것은 ‘복수’의 개념입니다. 누가 나를 한 대 때리면 나도 때려야 하는데, 내가 한 대를 때리지 못했다면 다음 생에 내가 한 대를 때린다거나 길을 가다가 누군가에게 한 대 맞아야 한다는 식의 생각은 부처님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인과응보’라는 것은 특정 종교를 떠나서 옛날 사람들이 억울함에서 해방되기 위해 만들어낸 개념입니다. ‘저놈은 천벌을 받을 것이다, 좋은 데 못 갈 것이다.’ 하는 원한에 대한 위안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원한을 푸는 데 효과는 있지만, 그것이 진실이냐 아니냐의 문제는 아닙니다. 믿음의 영역입니다.”

“저는 자기가 한 행동은 자기 자신에게 돌아온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렇게 해석해야 합니다. 내가 그 남자를 미워함으로써 내가 고통받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로부터 나아가 나에게로 돌아온다’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이 나쁜 짓을 했으니 그 사람이 꼭 벌받는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생각하는 것은 복수의 개념입니다. 지금 질문자는 복수심에 가득 차 있어요. 불교는 복수하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내가 복수심을 가지면 내가 괴로워진다는 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인연과보입니다. ‘인과응보(因果應報)’가 아니라 ‘인연과보’라고 합니다. ‘응보’의 ‘응’은 응징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벌받느냐고 물으니 안 받는다고 대답한 것입니다.

만약 인과응보가 있다면, 여러분이 죽은 후에 천당에 갈 수 있을까요, 없을까요? (청중 웃음) 못 갑니다. 여러분들, 남의 생명 많이 잡아먹었어요, 안 잡아먹었어요? (웃음) 만약 한 만큼 그대로 인과응보를 받는다면 여러분들 다 한 번씩 회로 떠져야 하고, 삶아져야 하고, 구워져서 먹혀야 하지 않겠어요? 인과응보라면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내가 한 짓은 생각도 안 하고 남이 한 짓만 생각하는 것은 잘못된 인과응보의 개념입니다. 옛날에는 과잉 복수의 개념도 있었습니다. 잘못하면 죽여야 한다는 식입니다. 함무라비 법전에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복수를 하라는 뜻이 아니라 과잉 복수를 하지 말라는 뜻이었습니다. 상대가 내 눈을 뺐으면 나도 상대의 눈만 빼고, 이를 뺐으면 이만 빼야지 더 이상 복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복수가 당연하던 시대에 과잉 복수의 부작용이 크니 그것을 막기 위해 만든 법이었습니다.

요즘도 증오심에 따른 과잉 복수가 많습니다. 질문자가 ‘믿습니다’라고 하는 것은 남편이 천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가르침은 복수의 개념이 아닙니다.
구약의 신은 응징의 개념이 강합니다. 소돔과 고모라 이야기를 보면 믿지 않는다고 벌을 내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전환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에게도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라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 같으면 ‘저 두 사람은 지옥에 보내버리십시오’라고 했겠죠? (웃음) 그러나 예수님은 용서를 말했습니다. 그래서 첫째, 질문자가 생각하는 인과응보는 없습니다. 두 번째 질문이 무엇이었나요?”

“이 지독한 악연의 고리를 어떻게 끊어야 하는지요?”

“그냥 내버려두면 됩니다. ‘잘 살아라.’ 하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저는 아이의 아빠라서 상대와 계속 연락해야 합니다.”

“아이 아빠인데 왜 연락해요?”

“아이와 만나게 해줘야 합니다.”

“그건 아이의 아빠로서만 관계를 맺으면 됩니다. 남녀관계나 부부관계는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조차도 싫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러면 아이를 상대에게 넘겨주면 되죠.

독약이 든 음식이 있는데, 나는 먹고 싶어요.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안 먹든지 아니면 먹고 죽든지 둘 중의 하나예요. 전 남편과 관계를 맺기 싫으면 아이와도 인연을 끊으면 됩니다. 아이가 보고 싶어서 만나야 한다면 전 남편과도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사회법이 그러합니다. 엄마 혼자만의 아이가 아니니까요. 그런 생각도 역시 독선입니다.”

“정상적인 부부관계 없이 저 혼자 시험관을 통해서 아이를 낳았는데요.”

“요즘은 어떻게 아이를 낳았는지가 중요하지 않아요. 대리모라는 것도 있어요. 여자의 난자와 남자의 정자를 수정시켜서 다른 여자의 자궁에서 넣어서 아이를 낳는 겁니다. 그리고 대리모는 돈을 받습니다. 옛날 관념으로 보면 아이를 낳은 사람이 엄마인데, 대리모는 아이에 대한 아무 권리가 없어요. 돈을 준 사람에게 권한이 있어요. 이게 과연 바람직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법이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내가 낳았지만, 나만의 아이가 아닐 수 있어요. 시험관으로 내가 낳았지만, 남편의 정자가 들어 있으면 법적으로 아이에 대한 권한이 반반이에요.”

“저는 법적인 것보다는 도덕적인 면을 말하고 싶습니다.”

“질문자 부부는 이미 분쟁이 생겼습니다. 분쟁이 있다는 건 이미 도덕적으로 해결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러므로 이제 법적인 부분만 남은 거예요. 그래서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도 내가 아이를 키우려면 반드시 법적인 아이 아빠의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고 말씀드립니다. 세 번째 질문에, 아이에게 아빠에 대한 사실을 말해줘야 하는지 아니면 훌륭한 아빠라고 말해야 하는지 물었습니다. 훌륭한 아빠라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고, 나쁜 아빠라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어요. 그냥 아빠라고만 이야기하면 됩니다.

질문자가 말했던 게 모두 사실 그대라면 법원 판결이 그렇게 나오지 않습니다. 남편에게 아이에 대한 접근금지명령이 떨어졌을 겁니다. 지금 질문자가 분노에 차서 너무 자기 생각에 빠져있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아이를 유치원에서 데리고 간 행위는 사실상 납치 아닌가요? 그런데 도리어 저는 시댁 사람들한테 주거 침입과 스토킹으로 고소를 당했습니다. 아이도 멀쩡히 잘 다니던 유치원을 6개월째 못 갔습니다.”

“내 관점에서 생각할 때는 그렇지만, 남편도 역시 부모니까 데려갈 권리가 있는 거예요. 질문자가 상대방 집으로 찾아가지 말고, 아이 실종신고를 하면 법적으로 데려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확실하게 남편 집에 있는 것도 아닌데 집주인 허락 없이 찾아가면 스토킹 또는 주거 침입이 성립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어떤 여자 집에서 바람을 피웠다고 가정해 봅시다. 화가 나서 그 집에 쳐들어가서 멱살 잡고 싸우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주거침입죄로 고소당합니다. 내가 분하고 억울한 걸 생각하면 감정적으로는 이해가 되지만, 법적으로는 주거 침입을 한 거예요. 왜냐하면 사람은 자기의 신체를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정의 되어 있어요. 물론 불륜에 대해 고소해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남의 집에 들어가면 주거 침입이 되고, 머리채를 잡으면 폭행죄가 됩니다.

상대방은 질문자를 주거 침입으로 고소할 수 있습니다. 조사를 해보고 기각할 수도 있고, 입건할 수도 있는 거죠. 이건 그들의 합법적 행위예요. 반대 상황도 마찬가지입니다. 질문자도 남편에 대해 아기를 납치했다고 고소할 수 있습니다. 그 부분이 인정받을 수도 있고 기각당할 수도 있어요. 이를 두고 부도덕한 행위라고 하는 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금 질문자는 너무 큰 분노에 차 있어요. 이는 자기를 괴롭히고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법적으로 아이에 대한 가장 큰 권리는 엄마한테 있어요. 그러나 상대가 만약 ‘아기의 엄마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고 주장하면 아이를 뺏기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 분노를 가라앉히고 조금 차분히 기다리며 차근차근 법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습니다.

분쟁이 생겼다는 건 어느 한쪽이 100퍼센트 옳다고 할 수 없어요. 질문자 이야기를 들으면 질문자가 다 옳은 것 같지만 또 상대방 이야기 들어보면 상대도 나름의 입장이 있습니다. 그런 부분은 재판을 통해서 해결하면 됩니다. 재판할 때는 다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야기합니다. 뉴스를 보면 1심에서 이렇게 판결이 났다가 2심에서 뒤집히기도 합니다. 다들 자기주장을 하는 거예요. 재판에서 지면 ‘사법부는 다 썩었다’라고 하지요. 누구나 화가 나면 이렇게 됩니다. 각자 자기 관점에서 할 말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시 한번 정리를 해보면 첫 번째, 상대가 인과응보로 천벌을 받을 거라는 건 우리의 믿음이지 사실이 아닙니다. 그럴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로, 악연의 고리는 아이를 포기하지 않는 이상 끊을 수가 없습니다. 아이와 관계 맺는 한은 끊어지지 않아요. 이건 악연이 아니고 그냥 인연입니다. 내가 아이와 엄마의 인연이 있듯이 상대는 아빠의 인연이 있는 것일 뿐이라고 답변드립니다.
세 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훌륭한 아빠라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고 나쁜 아빠라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아빠가 나쁘다고 이야기하면 아이에게 상처가 됩니다. 자기가 생각할 때 안 좋은데 좋은 아빠라고 말하는 건 거짓말이에요. 엄마가 아이에게 거짓말하는 것도 옳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이에게는 그냥 아빠라고 말해주면 됩니다.”

“네. 감사합니다.”

전체댓글 12

0/200

하니

고맙습니다

2026-04-24 08:43:03

정의웅

지혜로운 말씀 감사합니다

2026-04-24 08:26:02

견오행

늘 함께 합니다.고맙습니다.()()()

2026-04-24 08:18: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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