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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한 달에 한 번 있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과 정토회 회원들이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는 수행법회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아침 식사 장소인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1층으로 이동했고 마침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 교무님도 차례로 지하 1층 식당에 도착했습니다. 평화재단 봉사자들이 정성껏 준비한 아침 밥상에는 스님이 두북수련원 근처에서 캔 봄나물이 반찬으로 올라왔습니다. 스님과 종교인 분들은 식사를 한 후 평화재단 회의실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6월에 있을 스리랑카 방문과 종교인들과의 만남 일정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이어서 종교인 분들은 개헌의 물꼬를 열 수 있는 방법이 현재 상황에서 가능한지, 지방자치제 선거 일정을 고려할 때 국민 투표 실행이 가능한지, 종교 지도자들이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었습니다.

“여러 가지 국제 정세, 국내 정세로 목소리를 내기가 어려운 상황이긴 합니다만, 이란에서 초등학생 150여 명이 수업하다가 폭격받아 사망했다고 하는데, 미국을 적시해서 비난하기보다는, 종교인으로서 이렇게 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종교인들은 트럼프의 행보에 대해 세계 평화를 위해, 양심의 소리를 내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의 고민이 있었습니다. 세계 평화 이야기가 나오면서, 자연스럽게 한반도 평화, 북한과의 관계 등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남북한이 강대국 사이에 처한 상황을 잘 활용하여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에 대해서 나눴습니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면, 우리는 대중 정책과 대러 정책을 북한이 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북한을 통해서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고, 북한의 중계로 우리가 러시아의 관계를 풀 수 있습니다. 분단이라는 상황이 강대국 사이에서 오히려 이로울 수 있습니다.

남북한이 서로 연결고리가 되어서 북한은 중국과 친하니 중국을 상대하고, 남한은 미국과 친하니 미국을 상대하면, 동아시아의 평화를 가져오는 유리한 국면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분단된 상황을 억지로 하나로 통일해서 만들지 말고, 분단을 활용해서 갈등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려면 남북 관계가 개선되어야 합니다. 남북이 독립을 한 상태로 동맹을 맺고, 협력하는 것이 어떨까요?”
헌법 개정 문제에 대해서는 실무적으로 좀 더 확인해 보기로 하고, 종교인 모임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종교인 분들을 배웅한 후 3층 설법전으로 향했습니다.

설법전에서는 12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한 가운데 오전 10시가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낭독하며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도 화상 회의 방에 입장하여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지난주에 열린 세계 명상 포럼 현장을 담은 특집 영상을 본 후, 주간 정토행자의 소식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대중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2차 천일결사 입재 후 10일이 지난 시점에서, 매일 정진하고 수행법회에 참여하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 언급하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하기 싫다’라는 생각에 사로잡혀 중간에 기도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기도를 빠뜨린 것이 아쉬워 보충하기도 하지만, 한 번, 두 번, 세 번 빠지는 것이 거듭되다 보면 기도를 빠뜨리는 것에 대해 더 이상 미안함조차 느끼지 않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기도하기 전의 원래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매주 있는 수행법회는 우리 스스로를 점검하는 자리가 됩니다. 매일 정진을 잘하고 있는가를 돌아보고, 만약 이번 주에 제대로 정진하지 못했다면, 그 자리에서 다시 마음을 가다듬고 처음 시작하는 마음으로 새롭게 출발할 수 있습니다.
매일 정진하는 것이 형식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고,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는 것이 솔직하지 못한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은 굳이 훈련하지 않아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게 됩니다. 하지만 우리 삶의 문제는 내키지 않을 때, 하기 싫을 때도 할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또한 우리가 하고 싶은 일이 있을 때 그것을 멈출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만약 하고 싶은 일이 손해가 되는 일이고 독약과 같은 것이라면, 하고 싶더라도 기꺼이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반대로 하고 싶지 않은 일이 이익이 되고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일이라면, 하고 싶지 않더라도 기꺼이 해낼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럴 때 비로소 우리의 삶은 자유로워집니다.
자유란 단순히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만약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자유라면,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자유를 잃게 됩니다. 진정한 자유는 ‘하고 싶은 것’으로부터도, ‘하기 싫은 것’으로부터도 벗어날 수 있을 때 비로소 이루어집니다.

“수행이란, 하기 싫어도 능히 해낼 수 있고, 하고 싶어도 능히 멈출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종교는, 하고 싶은 것을 못 할 때는 ‘할 수 있는 상황으로 바꿔주세요’, 하기 싫은데 해야 할 때는 ‘하지 않아도 되게 해 주세요’라고 비는 것을 기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먹고 싶은데 조금만 먹으면 안 될까요?’ 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먹고 싶어도 그 안에 독이 들어 있다면 멈출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지혜입니다. 먹고 싶어도 그것이 몸에 해로운 마약이나 담배라면 멈춰야 합니다. 또 내가 과체중 상태라면 아무리 먹고 싶어도 과식하지 말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나에게 해롭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을 알면서도 멈추지 못합니다.
지금 전 세계를 보면, 먹을 것이 없어서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을 돕는 데 드는 비용보다, 너무 많이 먹어서 과체중이 된 사람들이 체중을 줄이기 위해 쓰는 비용이 훨씬 더 많이 듭니다. 살을 빼기 위해 쓰는 약값이 영양실조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돕는 비용보다 몇 배나 더 많이 든다는 것입니다. 솥에 물이 끓으면 불을 빼야 하는데, 불은 놔두고 찬물을 한 바가지 붓고, 다시 끓으면 또 한 바가지 붓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기후적 관점에서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아지는 것이고, 개인적 관점에서는 건강을 해치는 것이고, 인류적 관점에서는 마땅히 먹어야 할 사람은 먹지 못함과 동시에 다른 한쪽은 너무 먹어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수행적 관점에서는 이런 모순을 멈춰야 합니다. 멈춤으로 내 건강을 회복하고, 식량 가격 상승을 막고, 가난한 사람이 굶지 않고 먹을 수 있는 길을 열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줄여서 기후 위기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가만히 생각하고 살펴보면 이것이 나도 좋고 남도 좋은, 바른길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얼핏 생각하면 ‘내 마음대로 하겠다는데 왜 문제냐?’ 이렇게 받아들이게 될 수 있습니다. 계율(戒律)이라는 것은 이를 막기 위한 것입니다.

기술은 발달했을지라도 기술을 통해 우리가 어떤 것을 접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의식이 넓어질 수도, 좁아질 수도 있습니다. 스스로 공부하는 대신 모든 것을 인공지능에 맡기고 찾기만 하면 대뇌가 작아진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뇌가 퇴화한다는 것이지요. 우리 인간의 몸에 있던 꼬리가 사용하지 않아서 퇴화했듯, 앞으로 뇌를 사용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기술은 빠르게 발달하고 인간의 뇌는 퇴화할 수 있습니다. 이런 문제를 어떻게 극복해 나갈 것이냐 하는 과제에 직면해 있어요. 그래서 거창하게 ‘수행’이라고 하기보다 ‘생각을 내려놓고 정신을 맑게 하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정신도 몸과 마찬가지입니다. 현대인들이 너무 편리를 쫓다 보니 늘 운동 부족에 시달리잖아요. 그래서 집에서 나가지도 않는 자전거를 타고 제 자리에서 뜀박질합니다. 어쩔 수 없이 그렇게라도 운동을 보충하는 거죠.

기술을 사용해서 편리를 도모하되 그것에 대한 검증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 내비게이션은 잘못되었다.’든지 ‘이런 작용은 잘못되었다’라고 검증할 수 있는 능력이 점점 없어지고 있어요. 계산기를 두드려서 계산하다 보면 ‘계산기가 잘못되었다’라는 생각은 할 수가 없잖아요. 우리가 주유소에서 계기판에 숫자가 돌아가는 걸 보면서 기름을 넣잖아요. 누군가 고의로 기계의 숫자를 조작해도 알기가 어렵습니다. 이렇듯 점점 검증할 수 없어지는 거예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내 자유의 영역은 많아질까요? 적어질까요? 적어집니다. 우리가 문명을 발달시켜 온 힘은 나의 자유의지를 좀 더 넓히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인간의 자유의지가 좁아지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우리는 자연을 개발해서 우리의 삶이 좀 더 풍요로워지길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기후 위기로 인해 오히려 우리 삶의 토대를 스스로 파괴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의 흐름을 거부하라는 말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 무엇이든 ‘내가 주인이 되어 이런 것을 활용할 수 있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내가 주인이고 돈이 내 필요에 의해서 쓰여야 합니다. 돈이 주인이고 내가 돈의 노예가 되면 안 되잖아요. 마찬가지로 내가 기술을 활용해야지 반대로 내가 기술의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종교의 위험성도 이런 부분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내가 힘들어서 종교에서 도움을 받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세뇌가 되면 어떨까요. 나중엔 반대로 내가 종교의 단순 이용물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괴로움이 없는 사람, 자유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수행입니다. 다른 사람도 괴로움이 없는 사람이 되도록 이 좋은 법을 제공하는 것이 전법입니다. 한시적이든 지속적이든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사람에게는 환경을 개선해 줍니다. 이게 우리의 사회적 실천입니다. 기후 위기를 극복하는 환경 실천과 갈등을 극복하는 평화 실천,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을 지원하는 구호 실천. 이 세 가지가 우리가 가야 할 실천 목표입니다. 이게 우리 정토행자가 살아가는 삶의 방향입니다.
2차 천일결사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습니다. 처음부터 우리가 중심을 잡고 하면 쉬운데 자꾸 꾀를 쓰고 물러나면 하기 싫은 마음이 올라옵니다. 자꾸 싫은 마음에 끌려가면 정말로 어려운 일이 돼요. ‘일어나기 싫다, 일어나야 하는데’ 하면서 계속 누워 고민하게 됩니다. 벌떡 일어나서 불 켜고 세수하면 아무 일도 없어요. 그러니까 오늘부터라도 벌떡 일어나서 수행 정진하시길 바랍니다.”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온라인 질문자가 1명, 현장 질문자가 1명 있었습니다.

“요즘 저는 우리 세대가 부모 세대보다 더 똑똑하고 경제적으로도 더 풍요롭게 사는 마지막 세대일지 모른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릴 때 저는 부모님이 ‘가르쳐 주지 않아도 잘한다.’라는 말을 자주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식 세대는 부모보다 더 나아지는 것이 당연하다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막상 제 아이들을 보니, 앞으로 얼마나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걱정이 됩니다. 큰 아이는 남편과 같은 전공으로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그 나이에 이미 알고 있던 것들을 큰 아이가 아직 잘 모르는 모습을 보며 아이의 미래가 걱정되었습니다. 여행을 함께 다닐 때도 아이가 새로운 것에 크게 관심을 보이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이 아이가 과연 나보다 더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보다 부족해 보이는 아이들을 어떤 마음으로 키워야 할지 고민입니다.”
“먼저 인류의 역사를 살펴보면, 문명이 늘 발전을 거듭해 온 것은 아닙니다. 중간중간 문명이 쇠퇴하고 기술이 낙후되어, 사람들의 삶이 오히려 나빠지는 시기도 있었어요. 예를 들어 고대 이집트 문명이 오랜 기간 번성하다가 쇠퇴했고, 이후 지중해 지역에서는 에게 문명과 그리스 문명, 로마 문명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이어졌습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이 무너진 뒤 유럽은 이른바 중세 암흑기를 겪게 되었는데, 이는 발전이라기보다 퇴보에 가까운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후 이탈리아에서 르네상스 운동이 일어나고,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대항해 시대를 열어 전 세계를 탐험했습니다. 이어 네덜란드와 영국이 차례로 해양 패권을 장악했고, 영국은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라 불릴 정도로 세력을 넓혔습니다. 패권 경쟁으로 1차, 2차 세계 대전을 겪게 되었고, 이후의 패권은 미국으로 이어졌으며, 앞으로는 중국이나 인도가 다시 부상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이처럼 인류의 역사는 지구를 한 바퀴를 도는 것처럼 흥망성쇠를 반복해 왔습니다.
우리 개인의 삶도 비슷합니다. 우리가 태어난 시대를 돌아보면, 우리가 결코 좋은 조건에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일제강점기를 겪었고, 해방 직후에는 전쟁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매우 가난했고, 정치적으로는 독재 체제를 경험했습니다. 그런 환경 속에서 1950년대와 60년대, 길게는 70년대에 태어난 세대가 지금의 50대, 60대, 70대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민주화 과정을 거치며 전반적으로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조금씩 나아지는 상황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나 인간의 삶이 본래 늘 이렇게 발전하는 것이라고 자연스럽게 믿게 된 측면이 있습니다.
그러나 시야를 조금만 넓혀 보면 그렇지 않은 사례도 많습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경우, 1960~70년대에는 북한이 남한보다 더 잘 살았어요. 그러나 80년대 이후 북한이 급격히 쇠퇴하면서 1990년대에는 생활 수준이 크게 떨어졌습니다. 군사 기술이나 핵무기 같은 분야는 발전했을지 몰라도, 일반 주민들의 삶의 질은 오히려 더 어려워졌습니다. 이처럼 역사적으로 볼 때 사람들의 삶이 나빠지는 일도 충분히 일어날 수 있으며, 그것이 특별히 이상한 일만은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상승 곡선의 한 시기를 살아왔기 때문에, 세상이 늘 좋아지는 방향으로만 흘러간다고 생각하기 쉬웠던 것이죠.

또 한편으로는 아이들이 우리보다 못하다고 단정하기도 아직 이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어릴 때 주산을 배워 암산을 잘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계산기를 사용합니다. 우리 눈에는 계산도 제대로 못 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아이들은 계산기를 활용해 훨씬 빠르게 일 처리를 합니다. 저는 지도만 펼쳐 놓으면 어디든 길을 찾아갈 수 있었고, 어릴 때는 세계 지도를 보며 나라 이름과 수도를 외우는 놀이도 많이 했어요. 그러나 요즘 아이들은 그런 방식으로 지식을 습득하지 않죠. 대신 필요할 때 검색을 통해 정보를 찾는 데 훨씬 능숙합니다.
얼마 전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를 방문했을 때, 아이들이 사회 수업을 하고 있었어요. 인도 주변 나라의 이름을 아느냐고 묻자, 한 아이가 아시아 지역 40여 개 국가를 줄줄 외웠습니다. 그런 아이가 있는가 하면, 국가 이름을 하나도 모르는 아이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아이들의 모습은 서로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그 차이만으로 아이들의 미래를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비록 어려운 환경에 놓여 있더라도 아이들은 결국 자신이 살아갈 시대에 맞게 자라나게 됩니다.
제가 생각할 때, 질문자의 아이는 별문제가 아닙니다. 아이가 문제라고 생각되는 것은 본인이 수행해서 별문제 아님을 아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본인 기준에서 아이를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 세대는 그 세대의 기준으로 보는 거예요. 농경 사회에서 산업 사회로 넘어올 때는 자녀가 밖에 가서 용접일을 하는데, 부모가 볼 때는 모내기 시기에 모내기도 할 줄 모르고 ‘저게 뭘 먹고 살겠나?’ 걱정합니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가 생각지도 못했던 다른 일을 하고 삽니다. 이를테면 1년 내내 남의 집 머슴살이하고 벼 10섬 받는데, 공장에 가서 일하면 한 달만 일해도 그만큼 받을 수 있습니다.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에 너무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는 그 세대는 그 세대가 준비할 것이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오늘의 젊은 세대가, 뇌를 안 쓰고, 퇴화하듯이, 부모가 너무 과잉 보호를 해서 의욕이 없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도, 베트남의 아이들을 보면 한국의 같은 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어른스럽습니다. 어릴 때 자기가 신문 배달도 하고 우유 배달도 하고 그렇게 하면, 돈벌이에 대해 궁리합니다. 모든 것이 대부분 갖춰져 있으면 궁리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세대는 등산, 여행, 자연에 대해 궁금해하지만, 요즘 청년들은 궁금해하지 않는 편입니다. 그러니까 산에 가면 전부 나이 든 세대들만 있어요. 젊은 세대들은 골프에도 관심이 별로 없데요. 문화가 달라지는 거예요. 그것이 저는 나쁘다고 보기보다는 다르다고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자녀 세대들은 그들 세대 대로 살 것입니다. 그들이 부족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하고 연구 거리는 되지만, 너무 근심 걱정은 할 필요가 없습니다. ”
“스님 법문 듣고, 아이 대입까지는 아이 기준에 맞춰서 잘 보냈습니다. 성적에 맞는 대학을 넣으니까 정말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아~ 정말 스님 말씀이 맞았구나. 아이가 성인이 되면서부터는…. 아직 저의 수행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걱정 안 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자녀가 자주적으로 되려면 내버려둬야 합니다. ”
“수행에 더 정진하겠습니다.”
대화가 끝나자, 법회를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점심시간에 식사 모임이 있어 지하 1층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식사 후 접견실로 이동하여 미팅을 이어 나갔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평화재단 회의실에서 ‘안중근의 동양 평화론, 다시 보기’라는 주제로 평화재단 3월 연구 세미나가 열렸습니다. 조성찬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 원장님의 강의와 세미나가 진행되었습니다. 하나누리에서 추진 중인 초국경 사업인 라선 자립마을 사업(2019~2026)의 다양한 사례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뤼순 감옥에서 안중근 의사가 집필한 『동양 평화론』을 사상적 토대로 동북아 평화경제공동체의 구체적인 비전을 함께 모색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내일이 바로 안중근 의사의 순국일(1910년 3월 26일)이어서 더욱 의미가 있었습니다.



연구세미나가 끝나고 곧바로 오후 4시부터는 평화재단 기획위원회 회의에 참석했습니다. 회의는 6시까지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다음 일정을 위해서 회의가 끝나자, 바로 지하 식당으로 가서 저녁 식사를 하였습니다. 식사 도중에 갑자기 찾아온 손님과 미팅하게 되어서 2층 쉼터로 갔습니다.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저녁 예불 시간이 지나고, 저녁 법회 시간이 다가왔습니다. 손님을 배웅하고 스님은 사무실로 왔습니다. 저녁 예불 시간 이전에 공동체 행자 한 명과 약속이 있었는데, 앞의 미팅 일정이 밀리면서 약속한 시각에 행자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저녁 예불 시간 이후에서야 잠깐 얼굴을 볼 수 있었습니다.
“ 나 기다린다고 저녁 예불을 못했겠네…. ”
“ 저녁 예불 따로 드리라고 일러두었습니다.”

스님은 저녁 법회를 앞두고, 접견실에서 회향하는 공동체 행자와 잠깐 만났습니다. 스님을 만나러 온 행자는 12년의 공동체 생활을 마무리하고 스님께 회향 삼배를 드리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행자는 스님께 회향 삼배를 드리고, 스님은 회향하는 행자에게 새출발하는 마음가짐과 격려의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저녁 법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길게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설법전으로 이동해야 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은 행자에게 내일 다시 시간을 내어서 만나자고 이야기하고는 가사와 장삼을 입고 설법전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늦지 않게 설법전에 도착하였습니다. 주간 정토행자 소식 영상을 본 후, 대중들은 삼배로 스님께 법을 청했습니다.

“세계 명상 포럼은 많은 분들의 준비로 행사가 잘 끝났습니다. 많은 분들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행사를 준비해 준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제가 내일 인도네시아 아체 지역으로 출장을 가게 되었습니다. 또 이번 초파일 특집으로 인도에 가서 해외 촬영하게 되어 오늘 마지막 점검 회의를 하게 되었어요. 제가 법회를 끝까지 못 하고, 조금 일찍 끝내겠습니다.”

스님은 사전 질문 신청자와 대화를 마치고 마무리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면, 여기까지 하고 영상을 보겠습니다.”
“잠시 입정하겠습니다.”
스크린이 내려오고 대중들이 명상하는 동안, 스님은 설법전을 나와 사무실로 조용히 이동했습니다.

회의실에는 방송 관계자들이 먼저 와서 사전 회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5월 부처님오신날에 방송될 특집 프로그램 제작에 관한 회의로 스님과 함께하는 최종 점검 회의였습니다. 스님은 출가열반재일 입재 법문 후에 바로 해외 출장 일정이 있어서, 오늘밖에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촬영 일정, 코스, 장소 점검 등이 있었습니다. 일정을 확인하던 중에 출연진 1명이 촬영에 조금 늦게 합류하게 되는데, 비행기 시간을 확인해 보니, 스님이 알고 있던 시간대와 달랐습니다.
“ 다시 확인해 보니, 스님 말씀이 맞네요. ”
회의에 참여한 작가님들이 다시 한번 더 비행기 시간대를 확인했습니다. 스님은 빡빡한 촬영 일정 속에서 출연진들이 최대한 촬영을 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의견을 주었습니다. 인도 현지 교통편을 구하지 못했다고 했을 때는, 다른 방법으로 이동하는 의견을 주었습니다. 특정 지역에 관해서 확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스님이 직접 아이패드로 지도 앱을 열어서 찾아보며 확인했습니다.

방송 관계자들은 스님과 논의 사항을 정리해 오고, 스님은 확인하고 점검하면서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1시간 30분 정도의 전체 일정을 점검이 끝나고 준비할 사항들에 대해서 최종 정리한 후 회의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늦은 시간까지 함께 점검 회의를 해 준 방송 관계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하며 기념 촬영으로 마무리했습니다.

내일 스님은 아침 일찍 평화재단에서 북한 전문가들과 조찬 모임을 한 후, 오전에는 출가열반재일 입재 법문을 하고, 오후에는 미팅과 점검 회의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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