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6.3.11. 스리랑카 3일째, 파싸라 500가구 물품 지원
“사람을 만나면 불안해집니다. 10년이 지나도 왜 나아지지 않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스리랑카 파싸라로 가서 사이클론으로 무너진 다리와 수로를 살피고, 수해를 입은 500가구에 쌀을 전달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오전 5시 30분에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어제 점심에 남은 볶음밥을 데워 간단히 식사를 마쳤습니다.

오전 6시가 되어 차를 타고 아직 어둑한 새벽빛 속으로 출발했습니다.

평지를 지나 우바주에 들어서자 오르막과 내리막이 굽이굽이 이어졌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차(茶)로 유명한 우바주의 구불구불한 산길을 따라 계속 달렸습니다.

산길 곳곳에 홍수로 무너진 돌과 흙이 쌓여 있고, 통행이 가능하도록 포클레인이 흙을 치우고 있었습니다. 국도도 아직 복구가 덜 되어서 지역의 작은 길은 더더욱 복구될 수 없을 것 같았습니다.

산길을 4시간 넘게 달려 오전 10시 45분, 오늘 구호 물품 배분을 진행할 파싸라 지역의 사찰에 도착했습니다. 이 마을에 태풍으로 끊어진 다리를 보수해달라는 요청이 있어서 배분 전에 직접 가보기로 했습니다. 큰 차량으로 갈 수 없어 차에서 내려 걷기 시작했습니다. 유치원 아이들이 달려 나와 스님 일행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15분을 더 들어가자 마두가스탈라와(Madugastalawa) 마을이 나타났습니다.

오전 11시, 논을 지나 마을 주민의 집으로 갔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다과를 차려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손으로 빚은 스리랑카 전통 음식들이었습니다.

모여 있는 마을 사람들에게 스님이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묻자, 마을 대표가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사이클론 '디트와(Deetwa)'가 이 마을을 강타한 것은 3개월 전이었습니다. 바둘라구 전체에서 약 50명이 사망했고, 이 마을도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사이클론은 다리를 끊었고, 수로를 무너뜨렸고, 도로를 파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두 가지를 부탁했습니다.

“무너진 다리를 복구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망가진 농수로를 보수하고 싶습니다.”

"가서 봅시다.“

스님이 일어나 걷기 시작하자 일행이 뒤를 따랐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이더니 스님 뒤로 긴 행렬을 이루었습니다.

잠시 후 임시로 만든 출렁다리에 도착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통나무 위에 나뭇조각을 나란히 얹어 만든 다리였습니다.

원래는 1951년에 세워진 와이어 케이블 다리가 있었습니다. 길이 110피트(약 33미터), 폭 3피트. 사람뿐 아니라 오토바이도 지나다니던 다리였습니다. 그런데 사이클론에 완전히 끊어졌습니다. 다리 양쪽으로는 5개 마을에 약 800가구가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강 건너 아이들이 학교에 가려면 반드시 이 다리를 건너야 했고, 아픈 사람이 병원에 가려면 이 다리 없이는 방법이 없었습니다.

스님은 임시로 만든 다리를 살피고는 가장 먼저 건넜습니다.

다리를 건너 조금 위로 올라가자, 원래 케이블 다리가 있었던 흔적이 남아있었습니다.

강 아래로 내려가 물양과 폭을 살펴본 후 수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습니다.

수로가 산허리를 따라 이어졌습니다. 중간중간 무너진 곳을 임시로 때워 놓은 흔적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산에서 흙이 흘러 내려와 수로를 막고, 물이 넘쳐 둑이 무너지는 일이 반복되어 온 흔적이 곳곳에 남아있었습니다.

"여기에 수로가 터졌네요. 그냥 두면 점점 흙이 쓸려 내려가 나중에는 크게 무너지기 때문에 그전에 시멘트로 보수를 해서 미리 예방을 해야 합니다.“

야트막한 오르막을 오르자, 갑자기 시야가 열렸습니다. 울창한 산속에 다랑논들이 층층이 펼쳐져 있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이 논에서 약 90가구가 이 수로 하나에 기대어 농사를 짓고 있다고 했습니다.

다랑논을 지나 큰 보리수 아래에 도착했습니다. 답사를 떠난 지 약 45분이 지나있었습니다. 온몸이 땀으로 젖었습니다.

스님은 보리수 그늘 아래 마을 주민들과 동그랗게 둘러서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툭툭(tuk-tuk, 삼륜 오토바이)이 다닐 수 있을 만큼 폭이 넓은 다리를 원했습니다. 스님은 다리 문제는 먼저 정부에 요청해 보는 것이 낫지 않겠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마을 대표는 사이클론이 나기 전부터 낡은 다리를 보수해달라고 요청해 왔지만 아직까지 아무 응답이 없었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그 말을 듣고 마을 안에 다리를 지을 만한 기술자가 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마을 출신 기술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또 스리랑카 JTS 현지 활동가 쌈밧(Sambath) 님은 정부에서 기술자로 일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잘 됐습니다. 그러면 마을 사람들이 노동을 하고, JTS는 재료를 제공하고, 정부는 기술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세 단체가 함께 하면 되겠네요."

수로 보수에 대해서도 이야기가 구체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지금 물 새는 곳만 고치지 말고, 앞으로도 위험하겠다 싶은 곳들을 이번에 한꺼번에 다 고치면 좋겠어요. 이미 수로가 터진 뒤에는 공사가 커지지만, 미리 막으면 간단합니다. 그런데 노동은 마을 주민들이 해야 해요. JTS는 조인 투게더 소사이어티(Join Together Society)라는 뜻입니다. 지원해 주는 게 아니라, 힘을 합해서 같이 하자는 뜻입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스님은 이 일에 쓰이는 돈의 의미에 대해서도 덧붙였습니다.

“JTS에서 지원하는 돈은 큰 기업에서 지원하는 돈도 아니고, 정부가 지원하는 돈도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시한 절 돈입니다. 일반적으로 절에 들어오는 돈은 대부분 다 절을 짓는 데 씁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중생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이 곧 불사입니다. 절을 짓는 것보다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JTS는 무너진 다리를 놓고 농수로를 보수하는 이 일을, 절을 짓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료 하나라도 허투루 써서는 안 됩니다. 이 돈은 삼보정재(三寶淨財), 즉 절 돈이기 때문에 아주 아껴서 써야 해요. 그러나 꼭 필요한 곳에는 써도 됩니다.”

마을 주민들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각 사업에 대한 견적서와 제안서를 작성해 제출하기로 하고 논의를 마쳤습니다. 주민들이 도로 보수가 필요한 구간도 보여주고 싶다고 해서 12시 45분에 다시 산길을 올랐습니다.

고개를 넘어가자, 마을 주민의 집이 있었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물을 대접하고 싶어 했지만, 스님은 집에 들어갔다가 나오면 시간이 지체될 것을 염려해 정중히 사양했습니다. 그러자 마을 주민들이 의자와 코코넛 물을 들고 쫓아왔습니다. 발걸음을 재촉하던 스님도 잠시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목을 축인 뒤 마을 주민들을 따라 보수가 필요한 길을 직접 걸으며 살펴보았습니다.

내리막길 끝에 다시 끊어진 다리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직접 답사를 해보니 한 가지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마을 주민들이 툭툭이 지나갈 정도로 폭이 넓은 다리를 원했지만, 다리를 건너도 툭툭이 오를 수 없는 가파른 비탈길이 이어진다는 것이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그 길을 정비하면 툭툭도 다닐 수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까지 살펴본 후 다리를 건너 오후 1시 20분에 차를 마셨던 그 마을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점심이 차려져 있었습니다. 그사이 주민들이 따뜻한 밥과 반찬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1시 50분에 구호 물품 배분 장소인 사찰로 이동했습니다.

배분 장소에 도착하자 스리랑카JTS 현지인 활동가들과 마을의 봉사자들이 뜨거운 햇볕 아래 분주히 배분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배분을 시작하기 전, 현장을 먼저 살폈습니다. 원래 계획은 들어오는 사람과 나가는 사람이 같은 문을 사용하는 것이었는데, 입구가 좁아 혼선이 생길 것을 우려해 즉석에서 동선을 바꿨습니다. 들어오는 문과 나가는 문을 분리하고, 좁은 입구는 한 줄로 서도록 정리했습니다. 훨씬 안정적이고 질서 있게 배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후 2시가 되어 배분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직접 쌀 포대를 주민들에게 건네주었습니다. 한 가구에 쌀 10kg 두 포대씩이었습니다.

쌀을 받아 든 주민들은 환하게 웃었습니다.

묵직한 포대를 머리에 이고 걸어가는 할머니, 두 포대를 번갈아들며 균형을 잡는 아주머니, 포대를 어깨에 걸치고 성큼성큼 걸어가는 젊은이. 사이클론이 지나간 마을 길 위로 쌀 포대를 안은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포대가 무거울수록 웃음은 더 환했습니다.

잠시 후 스님은 쌀 포대를 건네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쌀을 나르는 일을 도왔습니다.

한 시간 만에 배분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오늘까지 봉사를 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활동가들에게 단주를 선물했습니다.

오후 3시 15분에 다시 차를 타고 구불구불한 산길을 내려와 다시 산을 올랐습니다.

목적지는 해발 2,000미터가 넘는 누와라 엘리야(Nuwara Eliya)였습니다. 스리랑카의 높은 산 위에 자리한 도시입니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기온이 뚝 떨어졌습니다. 낮의 열기가 언제 그랬냐는 듯 서늘해졌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6시 50분에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저녁은 라면이었습니다.

스님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밀린 업무를 처리하고 밤 9시가 넘어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스리랑카 중부 지역에 위치한 감폴라 마을로 이동하여 홍수 피해 마을들을 두루 살펴보고 점검한 후 1,000가구에 쌀을 배분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 27일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린 금요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사람을 만나면 불안해집니다. 10년이 지나도 왜 나아지지 않을까요?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스물여섯 살 청년입니다. 부모님 두 분 모두 청각장애가 있으셨고, 아버지는 14년 동안 병상에 계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님의 잦은 갈등과 가정불화 속에서 자랐고, 형들 사이에서 지내며 많은 스트레스를 겪었습니다. 그 영향인지 지금까지 10년 넘게 신경성 위염을 앓고 있습니다. 예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여전히 마음 깊은 곳에는 불안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은 자립해서 혼자 살고 있지만, 사람들과 깊은 관계를 맺는 일이 어렵고 타인을 만나는 것 자체가 부담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군대를 다녀오고 대학을 졸업하면 자연스럽게 나아질 줄 알았는데, 이런 마음의 습관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얼마 전 즉문즉설 영상에서 저와 비슷한 처지의 여고생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때 스님께서 업식을 깨려면 행자 생활을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제 마음의 습관을 바꿔 보려고 수행도 하고 마음공부도 하며 노력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좋아졌다고 느낀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려 하면 다시 불안이 올라오고 거리를 두게 됩니다. 이런 상태로 지금처럼 살아가도 괜찮은지, 아니면 스님 말씀대로 행자 생활을 해야만 이 업식에서 벗어날 수 있는지 여쭙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담배를 피우는 습관이 있다고 해봅시다. 이 습관은 고칠 수도 있고, 안 고치고 그냥 살 수도 있습니다. 무조건 고치는 것이 좋다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고칠 각오가 충분히 되어 있거나 중독성이 약하다면 고치는 것이 낫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결심해도 의지가 약하거나 중독성이 강해서 금연에 계속 실패한다면, 고치려고 할수록 스트레스를 받고 자기 학대만 더 심해질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그래, 담배 피우고 한두 해 먼저 죽지'하고 과보를 감수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내 습관을 인정하고 그에 따른 과보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심리적 불안이 있다면 치료도 받아 보고, 정신과에도 가 보고, 백일출가처럼 절에서 행자 생활도 해보면서 여러 노력을 해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해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면, 이제는 선택해야 합니다. 내가 더 집중해서 이 습관을 고칠 것인지, 아니면 이 정도는 감수하고 살 것인지 결정해야 합니다. 가장 어리석은 것은 고치지도 못하면서 계속 '고쳐야 하는데, 고쳐야 하는데…' 하며 스트레스만 받는 것입니다. 그럴 때는 차라리 내 약점을 인정하고 받아들이세요.

다른 사람과 깊은 관계를 못 맺는다고 했는데, 깊은 관계라는 게 도대체 무엇입니까? 다 추상적인 이야기입니다. '나는 깊은 관계를 못 맺는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하나의 심리적 불안입니다. 보통 사람들도 그렇게 깊은 관계를 많이 맺고 사는 것은 아닙니다. 질문자는 왜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합니까?“

"제가 성인이 되고 지금 나이까지 살아보니, 아직은 노력하면 바꿀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을 만나는 일이 크게 즐겁지는 않습니다. 친구들은 많이 놀러 다니고 어울려 지내는데, 저도 마음으로는 그런 삶을 누리고 싶은 욕구가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그렇게 해도 잘 즐기지 못하다 보니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습니다.“

"저 역시 친구를 만나 여기저기 다니는 것이 즐거운 일은 아닙니다. 저는 친구를 만나 돌아다니고 싶지도 않고, 그런 것을 즐기지도 않습니다. 그렇다고 혼자 있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잖아요. 하고 싶지도 않으면서 또래 사람들이 만나서 웃고 떠드는 모습을 보고 부러워합니다.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그런 것이 부럽다면 가서 사람을 만나고, 밥도 사고, 여행 경비도 대면서 어울려 다니세요. 아니면 아예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외향성이 있고 내향성이 있듯이, 혼자 있기를 좋아하는 것은 병이 아니라 하나의 성격적 특성일 뿐입니다. 내향적인 사람이 남들처럼 어울려 놀고 싶다면 그만큼 노력을 해야 합니다. 노력은 하지 않으면서 그것을 부러워하니까, 마치 내가 병이 있는 사람처럼 느껴지는 것입니다.
여자 친구와 사귀고 싶다면 움직여야 합니다. 혼자 가만히 있기를 좋아하고 돌아다니기 싫어하는데, 어느 여자가 와서 자기에게 매달리겠습니까? 질문자 성격을 보면 혼자 살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면 그게 문제입니까? 문제가 아닙니다. 혼자 살면 됩니다. 질문자가 문제라고 느끼는 것은 몸은 움직이기 싫으면서 마음은 여자와 함께 사는 삶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것이 자기를 괴롭게 하는 것입니다. 머리를 깎고 승려가 되면 질문자 성격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밖에 나가지 않아도 되고, 사람을 많이 만나지 않아도 됩니다. 승려 자질에 오히려 잘 맞습니다.

질문자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불안이 조금 있을 뿐입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살면 됩니다. 사람을 많이 만나고 싶지 않으면 혼자 지내면 됩니다. 가끔 심심하다 싶으면, 싫어도 나가서 사람들과 차 한 잔 정도는 하면 됩니다.

감나무 밑에서 입을 벌리고 감이 떨어지기를 바라면 안 됩니다. 감이 먹고 싶으면 감나무 밑으로 가야 합니다. 감이 땅에 떨어져 있으면 주워야 하고, 나무에 달려 있으면 손을 뻗어 따야 먹을 수 있습니다. 움직이기 싫다면 감을 먹겠다는 것을 포기해야 합니다. 사람을 사귀고 싶으면 싫어도 나가야 하고, 싫어도 말을 걸어야 합니다. 같이 살고 싶으면 성격을 바꿔야 합니다. 안 바꾸려면 같이 살고 싶다는 욕망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2026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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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오행

늘 함께 합니다.고맙습니다.()()()

2026-03-14 07:17:45

구자정

고맙습니다.

2026-03-14 07:07:37

차덕환

욕심임을 알고 선택을 하며 살겠습니다

2026-03-14 06:5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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