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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지난 1년 동안 전법회원 교육을 수료한 분들을 위해 발심행자 수계식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건강이 계속 좋지 않아 오전에는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전으로 예정되었던 해외 법인 이사회는 저녁 시간으로 연기했습니다.
오후에는 몸을 추스르고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1시에는 ‘세계 명상의 날’ 포럼을 준비하는 실무자들과 회의를 진행했습니다. 실무자들은 어제 회의 내용을 바탕으로 세부 프로그램을 보완해 왔습니다. 스님과 함께 행사 진행 방안을 다시 한 번 구체적으로 점검한 뒤 회의를 마무리했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스님은 발심행자 수계식을 하기 위해 3층 설법전으로 향했습니다. 설법전에는 120여 명의 수계자들이 자리해 있었습니다. 10여 명의 해외지부 수계자들은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오후 2시 정각에 타종, 예불, 반야심경을 하며 발심행자 수계식을 시작했습니다.

신규 발심행자들이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은 삼귀의와 오계의 의미에 대해 설명한 후 앞으로 발심행자가 되면 어떤 실천 덕목을 지키고 살아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재가 수행자에게는 어떤 경우에도 지켜야 할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즉, 비록 출가하지 않고 가정을 유지하며 살더라도, '적어도 이 정도는 지켜야 수행자라 할 수 있다' 하는 최소한의 기준이 있다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계율을 잘 살펴보면, 그 바탕에는 '자연 생태의 원리'와 '최소한의 사회 윤리'가 깔려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계율은 '다른 생명을 때리거나 죽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작은 풀벌레도 스스로 살아갈 뿐, 다른 벌레에게 '살려 달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자연의 모든 생명은 스스로 생명을 유지하며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작은 풀벌레라도 누군가 자신을 때리거나 죽이는 것은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생명도 해를 입기 바라지 않으니, 부처님께서는 '다른 생명을 해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다른 생명을 무조건 도우라는 뜻이라기보다, 최소한 다른 생명을 해치지는 말라는 뜻입니다. 수행자에게 '남을 돕는 일'이 필수 조건이 아니라 '남을 해치지 않는 것'이 최소 기준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세속적 가치관에서는 필요에 따라 남을 때릴 수도, 죽일 수도 있다고 여겨 온 시절이 있었습니다. 과거에는 부모나 교사가 훈육을 이유로 아이를 때렸고, 주인이 말 안 듣는 하인을 때렸으며, 남편이 아내를 때리기도 했습니다. '때려야 바르게 된다'는 관점 속에서 이런 폭력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었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때려도 누구도 간섭하지 못했고, 주인이 하인을, 부모와 교사가 아이를 때리는 것도 '교육상 필요한 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돌아볼 점은 이제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인식이 자리 잡았지만, 일부 사람들은 여전히 부모가 자식을 때리는 것은 '교육상 필요할 수 있다'고 여긴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자신이 맞는 것은 부당하다 여기면서, 남을 때리는 것은 쉽게 정당화합니다. 사극 드라마에서 주인이 하인을 때리거나 죽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하는 것도 그런 시대 인식이 반영된 것입니다. 동아시아에서는 부모가 자식을 때리는 것을 '가법(家法)'이라 하여 당연시했고, 남편이 아내를 때리는 일도 관습적으로 용인되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바로 그런 시대에, 수행자는 어떤 이유로도 때리거나 죽이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폭력과 살인이 난무하는 세상은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고통스러운 세상입니다. 인류가 지옥을 묘사할 때 칼로 베고, 창으로 찌르며, 불로 태우고, 뜨거운 물에 담그는 끔찍한 곳으로 그려 온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폭력과 죽임으로 고통을 주는 곳이 곧 지옥입니다. 가해자는 여러 이유를 대며 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당하는 사람에게는 그야말로 생지옥입니다.

두 번째 계율은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거나 훔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야생 동물도 누군가 자기 먹이를 빼앗으려 하면 거세게 저항합니다. 물리적으로 맞아 죽지 않더라도, 먹을 것을 빼앗기면 결국 굶어 죽기 때문입니다. 생명에게 폭력과 죽음이 가장 큰 고통이라면, 그다음으로 큰 고통은 생존에 필요한 것을 빼앗기는 일입니다. 이 또한 자연 생태의 원리에 기초한 계율입니다.
이를 두고 '불교가 자본주의적 사유재산을 인정한다'라고 오해할 수 있으나, 이는 '인간의 기본 생존권을 보호한다'는 관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사람은 먹어야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므로, 타인의 기본 생존에 직결되는 것을 함부로 빼앗거나 훔쳐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 계율은 '삿된 음행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강제적인 성적 학대는 인간 사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연 생태계에서도 일부 나타나는 것으로 보입니다. 최근 제가 접한 연구보고서가 있습니다. 어느 무인도에서 암컷 거북이들이 절벽에서 떨어져 많이 죽는 현상의 원인을 추적한 내용이었습니다. 조사 결과, 그 섬에서는 수컷이 암컷보다 훨씬 많았다고 합니다. 암컷의 배란기가 되면 수컷들이 한꺼번에 달라붙어 서로 엉키고, 암컷은 이를 피해 도망 다니는 일이 반복되었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히 수컷을 피하다 실족한 것으로 보았지만, 더 자세히 살펴보니 인간의 자살과 비슷한 양상이 관찰되었다고 합니다. 번식 과정에서 수컷들의 끊임없는 접근에 암컷이 극도로 지쳐, 스스로 절벽 쪽을 선택한다는 해석이 나온 것입니다. 이 연구가 얼마나 정확한지는 단정할 수 없지만, 제한된 실험 환경에서도 암컷들이 비슷한 행동을 보였다는 보고가 함께 실려 있었습니다. 이를 통해 야생 동물 사이에서도 성적 스트레스가 발생할 수 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성적 문제는 원하는 사람에게는 즐거움이 될 수 있지만, 원하지 않는 상대에게는 매우 큰 고통이 됩니다. 특히 인간 사회에서는 윤리라는 사회적 통념과 결합하면서 그 고통이 한층 커질 수 있습니다. 재물을 잃거나 신체 일부를 다치는 것보다, 성적 학대에서 오는 정신적 고통이 오히려 더 크고 오래 지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상대가 원하지 않는 성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지금은 이를 '성폭행'이라고 합니다. 강제로 신체를 만지는 행위는 '성추행'이라 합니다. 가해자는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 있지만, 당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고통이 됩니다. 저는 여러 사람과 즉문즉설을 하면서, 성적 학대로 인한 정신적 피해가 얼마나 깊고 오래가는지를 자주 보아 왔습니다. 어릴 때 당한 일이 성인이 된 뒤 결혼 생활에까지 큰 영향을 미치는 사례가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추행과 성폭행을 금하는 것'이 세 번째 계율의 핵심입니다.

재가 수행자에게는 부부간 성생활이 허용됩니다.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이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다만 재가 수행자라 하더라도 상대가 원하지 않는데 강제로 하는 성적 행위는 금지됩니다. 이는 사회적으로도, 자연 생태의 관점에서도 옳지 않습니다.
또한 서로 좋아서 하더라도 '삿된 음행'에 해당하는 경우가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상대가 미성년자인 경우입니다. 상대가 동의했더라도 미성년자라면 범죄가 됩니다. 둘째, 배우자가 있는 사람과의 관계입니다. 그런 관계는 상대의 배우자에게 큰 고통을 주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아내나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 고통이 얼마나 큰지 짐작이 될 것입니다.

인간 윤리나 생태 윤리의 관점에서 문제가 되는 행위 가운데 상당수는 범죄로 규정되기도 합니다. 윤리적 문제 중에는 형법상 범죄에 해당하는 것도 있고, 해당하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간통죄가 폐지된 지금, 간통은 더 이상 형법상 범죄는 아닙니다. 다만 부부 관계의 약속을 어겼으므로 이혼 사유가 될 수 있고, 배우자에게 정신적 피해를 주었으므로 손해배상을 청구당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구속이나 형사처벌 대상은 아닙니다. 성인이 자기 신체를 어떻게 쓸 것인지는 개인의 자유라는 관점이 반영된 결과이기도 합니다. 외도를 지속한다면 그에 따른 손실은 감수해야 하지만, 범죄인처럼 처벌받지는 않는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외도의 법적 판단은 시대와 사회에 따라 달라집니다. 무슬림 사회에서는 큰 중범죄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강제적 성행위는 어떤 사회에서든 생태계의 원리에도, 자연에도 어긋나는 행위입니다. 합의가 있었다 하더라도 상대가 미성년자이거나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라면, 이는 인간 사회의 기본 윤리에 반합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라면 이런 삿된 음행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재가 수행자 여러분은 가정을 이루어도 되고, 직장에 다녀도 됩니다. 정직하게 번 돈으로 자유롭게 살아도 됩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로도 남을 때리거나 죽이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됩니다. 폭력적인 영화나 스포츠를 보며 즐기는 것 또한 수행자가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장사나 투자로 이익을 얻더라도, 그 과정에서 남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남의 것을 빼앗거나 훔치는 일이 있다면, 수행자의 자격에 어긋납니다. 가정을 이루고 살더라도 상대에게 강제적인 성적 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서로 좋아한다 하더라도 상대가 미성년자이거나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라면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재가 수행자라면 반드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계율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네 번째 계율 '거짓말하지 말라'와 다섯 번째 계율 '술에 취하지 말라'에 대해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 자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계를 ‘나를 지키고 사회를 정화하는 최소한의 약속’으로 제시하며, 발심행자가 된다는 것은 권리만이 아니라 책임을 함께 지는 수행공동체의 주인이 되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 다섯 가지 계율, 즉 오계만 잘 지켜져도 우리 사회는 평화롭고 살기 좋은 곳이 됩니다. 누구나 폭력적으로 살지 않고, 이익을 원하더라도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어떤 경우에도 상대의 의사에 반하는 성추행을 하지 않으며, 남을 속이거나 욕설하지 않고, 술이나 마약에 취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그런 사람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어쩌면 세상에서 일어나는 범죄의 대부분은 따지고 보면 이 다섯 가지를 어기는 데서 비롯됩니다. 그래서 계율은 나의 재앙을 막고 나를 행복으로 인도하는 길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를 정화하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는 이 기본적인 것조차 지키지 않으면서 '사람인데 그럴 수도 있지' 하며 계율을 어기는 것을 합리화합니다.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사람의 특징은 아닙니다. 사람의 진정한 특징은 바르게 사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도 무엇인가를 어겨 놓고 '사람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며 스스로를 정당화합니다.
수행자라면 이 다섯 가지를 생명처럼 지켜야 합니다. 경전에 나오는 구리가 장자가 계를 받을 때 ‘몸과 목숨을 바쳐 지키겠습니다’라고 서원했던 것처럼 말입니다. 출가하지 않고 재가 수행자로 살 수 있게 해주는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인데, 집을 떠나 수행하는 것에 비하면 이 정도 계율을 지키는 것이 왜 어렵겠습니까. 집을 떠나 수행하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면 기꺼이 계율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계율을 ‘나를 속박하는 것’으로 여긴다면 아직 수행의 관점이 바로 서지 않은 것입니다.

정토회에서는 오계를 받아야 수행자의 범주에 들어오게 됩니다.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고 정토회에 나온다 하더라도 계를 지키려 노력하고, 설령 지키지 못했을 때는 참회하는 마음을 내야 수행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를 받지 않았거나, 받아 놓고도 지킬 마음이 없다면 수행자라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정토회는 창립 당시부터 ‘수행공동체’로 출발했기 때문에 회원 모두가 계를 지키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법문 듣는 것만 좋아하고 실천은 어려워하는 분들이 늘어났습니다. 그래서 선택이 필요했습니다. 계율과 상관없이 자유롭게 활동하고 싶은 분들은 일반 회원으로 두고, 계를 지키겠다고 약속하는 분들만 ‘발심행자’ 또는 ‘정회원’이라 부르기로 한 것입니다. 발심행자란 수행자가 되겠다고 발심한 사람이란 뜻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바로 그 발심행자가 되는 것입니다.


정토회에서 발심행자가 된다는 것은 수행공동체의 명실상부한 구성원이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때부터 수행은 권리이자 의무가 됩니다. 선거권을 포함해 정토회의 주인으로서 모든 결정권이 주어집니다. 책임지는 만큼 권리가 주어지고, 권리가 있는 만큼 책임도 따르는 법입니다. 반대로 ‘나는 내 마음대로 다니고 싶을 때 다니고, 하고 싶을 때 하고, 자유롭게 하겠다’라고 한다면, 회원으로서의 어떤 권리도 갖기 어렵습니다.”
이어서 참회, 연비, 수계 약속이 이어졌습니다.




"저희 수계 제자들은,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옵니다. 한량없는 옛적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부처님 법을 알기 전에 이미 지었던 살생과 투도와 사음 등 몸의 세 가지 죄업이 한량없을 것이 온대, 이제 저희는 몸과 말과 생각을 가다듬어 지극한 마음으로 참회하겠나이다."
오계를 지킬 것을 약속한 수계자들은 불단 앞으로 나가 헌화를 했습니다.


스님은 전법활동가로서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발심행자들을 위해 간절한 마음을 담아 발원 기도를 해주었습니다.

“오늘 전국 각지에서 수행 정진해 온 정토행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청정한 계율을 지키며 꾸준히 정진할 것을 서원하였습니다. 삼보에 귀의하고 오계를 받아 지키며, 수행자로서 성실하게 정진하겠다고 다짐하였습니다. 이는 참으로 소중하고도 귀한 인연입니다.
우리 중생은 오랜 세월 어리석음에 사로잡혀 업을 짓고, 그 과보를 받으며 생사윤회를 반복해 왔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자신이 겪는 고통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 제대로 돌아보지 못한 채, 부모를 잘못 만나서 그렇다거나, 친구를 잘못 사귀어서 그렇다거나, 남편이나 아내를 잘못 만나서 그렇다거나, 전생의 죄가 많아서 그렇다거나, 사주팔자가 나빠서 그렇다며 온갖 핑계를 대고 남을 탓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제 부처님의 바른 법을 만나 사실을 사실대로 살펴보니, 우리 모든 중생은 본래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도록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마음 속에 있는 탐진치 삼독을 없애면, 우리 또한 불보살님들처럼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어떤 방향으로 살아가야 할지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 쌓여 온 어리석음과 나쁜 습관은 하루아침에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고, 또 넘어지면 다시 일어서며, 멈추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정진을 계속하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다짐하고 또 다짐하지만, 때로는 어리석은 생각이 우리를 사로잡아 언제 수행을 발심했는지조차 잊고, 후회하거나 자책하며 지금까지 살아온 습관대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관세음보살님께서는 저희를 외면하지 마시고 자비로 어여삐 여기시어, 오늘 발심한 초심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만들고자 하는 정토세상에 이르기까지 부지런히 정진할 수 있도록 해 주시옵소서.”

다음은 수계첩을 수여했습니다. 스님이 대표로 한 분에게 수계첩을 전했습니다. 이어서 온라인으로 참석한 분들에게도 랜선으로 수계첩을 전했습니다.


스님은 오계를 서원한 대중이 ‘미래의 부처’라는 수기와 불명을 받는 뜻과 그 이름이 정해지는 방식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은 재가 수행자로서 가장 기본이 되는 오계(五戒)를 지키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이로써 부처님의 길로 나아가는 첫걸음을 내디뎠기 때문에 ‘당신은 미래에 부처가 될 것입니다.’라는 수기(授記)를 받게 됩니다. 수기를 받는 일이 곧 불명(佛名)을 받는 것입니다. 꾸준히 정진해 나가면 언젠가 성불할 것이니, 장차 부처가 될 때 당신의 이름, 곧 불명을 미리 받는 것입니다. 다만 지금은 아직 부처가 아니므로, ‘부처의 길로 나아가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보살’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면 그 부처의 이름은 어떻게 정할까요? 팔만대장경에는 이미 성불했거나 앞으로 성불할 부처님의 명호가 만 가지가 전해집니다. 이를 ‘만불명호경(萬佛名號經)’이라고 합니다. 만불명호경에 실린 부처님들과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의 인연을 지어 불명을 정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받은 수계첩에는 ‘당신의 불명호는 만불명호경의 몇 천 몇 백 번째 명호’라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의 명호에는 좋고 나쁨이 없습니다. 모두가 부처님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많은 명호는 부처님께서 스스로 지은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 온 이름이 전해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석가모니불은 석가족 출신의 성자란 뜻으로 ‘석가모니’라 불렸습니다. 어떤 명호는 출신 지역이나 종족, 나라와 관련되기도 합니다. 또 지혜가 태양처럼 밝으면 ‘일광불’, 달빛처럼 은은하면 ‘월광불’, 중생을 위해 공덕을 태산처럼 쌓으면 ‘공덕상불’과 같이 사람들의 인연과 인식 속에서 불려 온 이름이 곧 불명이 되었습니다.

부처님의 명호 가운데 ‘지(智)’, ‘일(日)’, ‘월(月)’, ‘광(光)’, ‘등(燈)’ 같은 글자가 들어가면 지혜를 상징하고, ‘자(慈)’, ‘공덕(功德)’이 들어가면 중생을 위해 베푼 공덕을 드러내는 이름인 경우가 많습니다. 혼탁한 세상 속에서도 매우 청정하게 살아가신 경우에는 ‘연(蓮)’이나 ‘향(香)’ 같은 글자가 들어가기도 합니다. 같은 사람이라도 인연에 따라 그 모습이 다르게 비춰지듯, 명호도 인연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이어서 법사님들이 한 분 한 분에게 수계첩을 전했습니다.


모든 수계자들이 수계첩을 받고 자리에 앉자 스님은 전법회원에 대해 설명해주었습니다. 수계 대중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스님에게 꽃을 선물하고, 바른 길로 인도해 준 것에 대해 삼배를 올렸습니다.


법사단장인 선주 법사님이 수계를 받은 대중들을 환영하는 영접사를 한 후 사홍서원으로 수계식을 마쳤습니다.


마지막으로 수계자들은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어지는 2부 프로그램에서 소감 나누기를 이어나갔습니다. 스님은 회의를 하기 위해 접견실로 향했습니다.

오후 5시에는 JTS 사무국장과 3월 말에 진행할 예정인 부탄 정부 관계자 초청 행사를 어떻게 준비할지 논의했습니다.

부탄 정부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여 다양한 현장을 배울 수 있도록 친환경 농업, 협동조합 운영, 공동체 기반 자립 모델을 실천해 나가고 있는 현장을 방문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하기로 했습니다. 홍성 생태공동체 마을, 청양군, 임실 치즈협동조합, 실상사 사찰 농촌 공동체, 제주 귤농장 등 여러 곳을 방문해 보는 일정을 점검하고 회의를 마쳤습니다.

저녁에는 해외 법인 이사회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저녁 7시에는 독일정토회 이사회에 참석하여 2025년 사업보고와 결산, 2026년 사업계획과 예산을 심의하고 승인했습니다. 곧이어 저녁 8시에는 미주정토회 이사회에 참석하여 사업보고와 계획, 예결산을 검토하고 승인한 후 9시에는 미국 좋은벗들과 워싱턴정토회 이사회에 참석하여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올해 사업계획을 점검하고 승인했습니다. 해외 법인 이사회를 모두 마치고 나니 밤 10시가 되었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3.1절 107주년 기념 특별법회가 정토사회문화회관 대강당에서 열리고, 오후에는 제19차 통일의병대회가 온라인으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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