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부터는 서울에서 여러 일정들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스님은 새벽 3시에 두북 수련원을 출발하여 서울로 향했습니다. 차로 3시간 30분 이동하여 오전 6시 30분에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했습니다.

라이브 담마 토크(Live Dharma Talk)를 하기 위해 오전 8시부터 정토회관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했습니다. 미국, 캐나다, 유럽, 아시아 등 다양한 나라에서 영어를 사용하는 200여 명의 정토회 회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한국은 올겨울 유난히 많이 추웠습니다. 여러분이 사는 지역은 어땠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 추위도 지나가고, 제가 시골에 갔더니 영하의 날씨인데도 벌써 꽃이 피어 있었습니다.
겨울이 매섭게 추울 때는 ‘과연 봄이 오긴 올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봄은 어김없이 우리 곁으로 옵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려움이 겹칠 때는 ‘나도 행복할 때가 있겠나’ 이런 생각이 들지만, 재난과 고통도 겨울이 지나가듯 결국은 지나갑니다. 그리고 우리 인생에도 다시 행복이 찾아옵니다.

지난 12월에는 인도양 주변에 사이클론이 100년 만에 있을 만큼 강하게 일어나 스리랑카와 인도네시아 등지에 큰 피해를 남겼습니다. 수마트라 섬의 아체 지역에서는 산사태가 발생해 마을과 농경지를 전부 뒤덮었습니다. 아체 지역은 강성 무슬림이 사는 곳으로 외부에 알려져 있고, 한때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며 투쟁했던 역사도 있었습니다. 그런 배경 때문인지 국제사회에서도 외면받고, 인도네시아 안에서도 상대적으로 소외되어 제가 피해 지역을 방문했을 때 외부 지원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지역을 직접 찾아가 살펴보고, 몇 차례 긴급 지원을 했습니다. 제가 현장을 방문하여 구호품을 전달하고 온 모습을 잠깐 영상으로 함께 보겠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지난 1월에 인도네시아 홍수 피해 긴급구호 활동을 다녀온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영상 잘 보셨습니까. 여러분의 작은 정성이 그분들에게는 큰 도움과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고,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곳에도 이렇게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우리가 편리하게 쓰는 돈 가운데 조금만 아껴 보시해도, 그들에게는 삶을 버틸 수 있는 큰 도움이 됩니다. 여러분이 내주신 후원금이 이렇게 소중하게 쓰이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부터 차례대로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1시간 40분 동안 다섯 명이 스님에게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사랑할수록 집착이 커져서 결국 더 괴로워지는 마음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This week’s Wednesday Dharma talk on breakup really resonated with me, because when I love someone, I tend to become deeply attached. You said that we simply need to feel the pain of a breakup, and there is no other way around it. As a monk, you don’t live within romantic relationships, so I wonder how you can offer such wise and comforting advice. Do you experience similar forms of attachment and loss in other ways? Or does your insight come from deep observation, meditation, or something else? I’m curious how this kind of wisdom is gained, and how I might learn to suffer less.”(지난주 수요법회에서 설법해 주신 이별과 관계에 대한 스님의 말씀이 저에게 깊이 와 닿았습니다. 저 또한 누군가를 사랑하면 깊이 집착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별의 아픔은 그저 온전히 느껴야 하며, 다른 방법은 없다고도 말씀하셨습니다. 스님은 수행자이시기에 연애관계를 직접 경험하지 않으실텐데, 어떻게 그렇게 지혜롭고 위로가 되는 말씀을 해 주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혹시 다른 형태의 집착이나 상실을 통해 비슷한 경험을 하시는 건가요? 아니면 깊은 관찰이나 명상, 또는 다른 어떤 방법을 통해 그런 통찰을 얻으신 건가요? 이러한 지혜는 어떻게 얻어지는 것인지, 그리고 제가 어떻게 하면 덜 괴로울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괴로움에서 벗어나는가, 이것이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든, 가족 간의 애정이든, 심리적으로는 다 비슷합니다. 각각의 상황에 따라 약간의 심리적 차이는 있지만, 그 차이는 아주 작고 공통점이 훨씬 많습니다. 마치 사람과 침팬지를 보면 완전히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유전자를 비교하면 99%가 같고 1%만 다른 것과 같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좋아하고 거기에 집착하는 것은, 그 대상이 사람이든 물건이든, 또 사람 가운데서도 누구이든 기본적으로 공통점이 훨씬 많고, 각각의 경우에 나타나는 차이점은 매우 적습니다. 어떤 집착에서 벗어나려 할 때 그 공통점을 발견하게 되면, 다시 말해 집착의 원인을 깊이 들여다보게 되면,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런데 타인이 겪는 고통에 도움을 주려면 공통점의 발견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차이점, 즉 각 경우의 특수한 부분까지 살필 수 있어야 비로소 타인에게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이것을 불교의 가르침으로 표현하면 이렇습니다. 우리는 모든 존재에 반드시 그 존재일 수밖에 없는 실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실은 실체가 없습니다. 초기불교에서는 이것을 '무아(無我)'라고 하고, 대승불교에서는 '공(空)'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법이 공하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면 자신의 번뇌가 사라집니다. 이것을 성문의 지혜라고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겪는 고통은 큰 틀에서는 같지만, 고통의 종류에 따라, 사람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그 각각의 차이까지 알아야 상대를 제대로 도울 수 있습니다. 앞서 말한 '제법이 공하다'는 지혜를 '통찰지(洞察智)'라고 하는데, 이것은 본인이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지혜입니다. 반면, 중생을 구제하려면 각각의 경우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들을 두루 파악하는 분별지(分別智)를 갖추어야 합니다. 이것을 '보살의 눈', '보살의 지혜'라고 합니다.
우리가 지식으로 아는 것은, 아는 만큼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아는 만큼의 지혜만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경험을 통해 얻는 지혜는, 경험이 많이 쌓이면 경험 밖까지 예측이 가능한 통찰지(洞察智)가 생겨납니다. 쉽게 말하면, 지식으로 아는 것은 백 가지 지식을 쌓았으면 백 가지에 대해서만 압니다. 그러나 경험으로 쌓인 지혜는, 백 가지 경험을 했다면 백 가지만 아는 것이 아니라 그 밖의 수백 가지도 대부분 예측이 됩니다. 이것을 한문으로는 ‘문리(文理)가 트였다’고 말합니다. 아는 것이 어느 순간 확 확장되어서, 직접 경험하지 않은 것까지도 보일 때를 표현한 말입니다. 예를 들어 많은 경험을 통해 사람을 치료한 한의사의 경우, 경험이 많이 쌓이면 환자가 딱 들어오는 순간 얼굴색을 보고, 목소리만 들어도 무슨 병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그것이 100% 정확하다고는 할 수 없어서 환자 이야기를 들어보고 진맥해서 확인하고 치료하지만, 환자가 들어올 때부터 99%는 이미 파악하는 셈입니다. 경험은 어느 정도까지 쌓여 어떤 한계점을 넘어가면 경험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지혜가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비하게 받아들일 필요는 없습니다. 통찰력이라는 것은 과학과 같습니다. 일종의 빅데이터와도 같아요. 일정한 데이터가 쌓이면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게 됩니다. 인공지능도 어느 단계 이상을 넘어가면 자기 스스로 발전할 수 있는 상황에 이른다고 하지요. 앞으로 인공지능이 이 단계를 넘어가면 유익함도 있지만 많은 위험을 초래할 것이라고 예측합니다. 지금까지는 인간이 만들어준 프로그램과 인간이 주입한 정보 안에서만 인공지능이 활동했는데, 그것이 많이 쌓여 어떤 임계점을 넘어가면 사람의 손을 떠나 마치 사람처럼 스스로 작업을 해 나가게 될 겁니다. 좋은 면도 있지만 굉장히 위험한 점도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사람을 만나서 사랑하거나 헤어질 때, ‘만나서 좋으면 꼭 같이 있어야 한다’, ‘헤어져서 아프면 벗어나려고 다시 만나야 한다’ 이렇게 생각할 게 아니라, ‘만날 때는 이런 마음이 일어나는구나’, ‘헤어질 때는 이런 고통이 따르는구나’ 이렇게 관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그 원인은 무엇일지 살펴보고, 원인을 모르겠으면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헤어져 보면서 원인을 자꾸 규명해야 합니다.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 속에서 내 마음이 어떤 식으로 움직이는지, 그 마음과 고통의 원인은 무엇인지, 마치 학문을 공부하듯이 연구해야 합니다. 그렇게 몇 번 경험하다 보면, 이 마음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그 원리를 알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마음의 이치를 탐구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여러분을 보면, 여러분은 욕심이 많고 게으르다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를 키운다고 하면, 아이가 공부를 잘하고 내 말을 잘 듣기를 원하고, 내가 바라는 대로 되기만을 바랍니다. 그런데 아이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왜 저항하는지에 대한 연구는 전혀 하지 않습니다.

또 다른 예로, 결혼해서 20년을 같이 살다가 배우자가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줬다고 해봅시다. 그러면 우리는 배우자가 나만 사랑하기를 원하거나, 화를 내거나, 울기만 하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서는 연구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건 굉장한 연구 대상이잖아요? 우리에게 일상적이지 않은, 예상 밖의 일이 일어나면 그것은 다 연구 대상입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배우자와도 좀 더 자세히 이야기를 해봐야 하고, 그 상대 이성과도 이야기를 해봐야 하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계속 연구해야 합니다. 그러다 보면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를 발견할 수 있잖아요.
이것은 화낼 일이 아니라 연구할 대상입니다. 연구 결과로 원인이 밝혀지면, 배우자가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원인을 내가 충족시켜 주든지, 내가 할 수 없는 부분이라면 그분과 잘 살라고 하고 내 길을 가든지, 이렇게 연구한 결과를 가지고 판단해야 합니다. 차가 고장 났을 때 고장의 원인을 살펴서 고치는 게 나은지, 아니면 폐차하고 새 차를 사는 게 나은지를 결정하는 것과 똑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런 연구는 하지 않고, 그냥 화만 내고 울고, 다시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감정적인 낭비만 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연구하는 자세를 갖는다면, 이런 경우를 백 가지쯤 겪고 ‘인간의 심리가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상대에 따라서는 이렇게 움직이는구나’ 하고 분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앞으로 나에게 어떤 일이 생겨도 내가 어떻게 움직일 가능성이 높은지 예측할 수 있습니다. 이 정도 되면 자기 자신을 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자꾸 좋은 결과만 바라지 말고, 연구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통찰력이 생깁니다. 통찰력이 생기면 어떤 문제에 대해서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선택의 결과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세도 갖게 됩니다.

만약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가 말썽을 일으켜 문제아가 되었다면, 이것을 연구해서 청소년 문제 전문가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을 글로 쓰면 베스트셀러가 될 수도 있고요. 만약 남편이 바람을 피웠다면, 이것을 연구해서 중년 남성의 심리를 알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칩니까? 남편이 다른 여자를 만났다는 것보다, 연구 케이스가 생겼다는 게 훨씬 더 중요하지 않나요? 여러분은 정말 중요한 것에는 관심이 없고, 하찮은 것에 늘 관심을 가지고 전전긍긍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행자는 항상 각각의 상황에 따라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늘 관찰하고 연구해 나가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연구하는 자세를 가지면, 어떤 일의 결과가 괴로움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해도 되지 않네. 원인이 뭐지? 그럼 저렇게 해볼까?’ 이렇게 늘 연구하는 자세를 갖게 되면 그 일이 더 이상 괴로움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Thanks for the perfect answer.”
(완벽한 답변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다양한 질문과 스님의 답변이 이어지는 가운데 9시 40분이 되어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스님은 며칠째 목이 계속 붓고, 건강도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간신히 법문을 하긴 했지만, 오후에는 도저히 법문을 이어가기 어려울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일요일이었지만 문을 연 병원을 찾아가 긴급히 치료를 받았습니다. 치료를 마친 뒤, 스님은 다시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지하 대강당에서 열리는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 합동 졸업식에 참석했습니다.

오늘은 5개월간의 공부를 마치고 새로운 시작으로 나아가는 뜻깊은 날입니다. 오프라인반 졸업생 분들, 온라인반 개근상 수상자 분들 등 400여 명이 지하 대강당에 자리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낭독한 후 법사단장인 선주 법사님이 축하 인사와 더불어 졸업 현황에 대해 경과 보고를 했습니다.

이어서 축하 공연으로 정토불교대학 오프라인반 학생 신수연님이 조용필의 ‘단발머리’를 신나게 불러주어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다음은 지난 5개월의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의 과정을 돌아보는 ‘우리들의 이야기’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화면 가득 빛나는 졸업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마주하니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함께 웃고 공부했던 지난 5개월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다음은 졸업장 수여식을 했습니다. 이번 정토불교대학 졸업생은 해외를 포함하여 총 1,482명입니다. 정토경전대학 졸업생은 해외를 포함하여 총 886명입니다. 시상은 정토불교대학 학장인 법륜 스님이 해주었습니다.
대표 수상자가 무대 위로 올라오자 스님이 졸업장을 수여하고, 악수를 건냈습니다.

이어서 개근상, 정근상을 각 대표 수상자에게 수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온라인으로 함께하고 있는 불교대학 졸업생들에게 졸업장, 개근상, 정근상을 수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이 ‘졸업을 축하합니다.’라고 하자, 모두 ‘고맙습니다.’ 하고 상장을 받았습니다.

다음은 경전대학 졸업장 수여식을 했습니다. 대표 수상자가 무대 위로 올라오자 스님이 졸업장을 수여하고, 악수를 건냈습니다.

이어서 경전대학의 개근상, 정근상을 각 대표 수상자에게 수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온라인으로 함께하고 있는 경전대학 졸업생들에게 졸업장, 개근상, 정근상을 수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고맙습니다.”
다음으로 대표 수상자들이 무대 가운데로 모여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객석에서도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하는 서로에게 축하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이어서 불교대학 개근상 수상자 197명과 정근상 수상자 190명의 명단을 화면으로 보았습니다. 그리고 경전대학 개근상 수상자 118명과 정근상 수상자 112명의 명단도 함께 보았습니다.

다음으로 졸업생들과 5개월을 함께한 봉사자들이 졸업생들을 위해 축하 공연을 보여 주었습니다. 엄정화의 ‘페스티벌’에 맞춰 신나는 율동이 펼쳐지자 모두가 큰 박수와 환호를 보냈습니다.



개성 넘치는 멋진 공연에 졸업식장은 순식간에 축제의 장으로 변했습니다. 뜨거운 박수가 쏟아지는 가운데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에 다니면서 삶의 변화를 경험한 네 명의 졸업 소감을 들어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나누기를 통해 숨기고 싶은 마음을 드러낼수록 '아, 그래서 그랬구나' 하고 어린 시절의 저를 안아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부모님 또한 같은 괴로움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체감하자, 그 깨달음은 용기가 되었습니다. 수행 연습을 빌미로 부모님께 처음으로 사랑이라는 말을 건넸습니다. 그 이후 '내가 변해 봤자'라는 회의감은 '내가 변해야 세상이 변한다'라는 확신으로 바뀌었습니다..."

"부모라면, 선생님이라면, 성직자라면, 최소한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하고 타인을 내가 만든 상 안에 가두고 그 상에서 벗어날 때마다 비난하고 화를 내고 있는 제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내가 만든 틀 속에서 내가 옳기에 남이 그르다고 생각한 결과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세상에 무엇이든 내가 모르는 '그럴 수 있는 어떤 이유'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불교대학을 와서 평생 몰랐던 이치를 깨닫게 되고, 예전과 다른 사람으로 살고 싶어졌습니다...“

"기도하면서 부처님의 삶을 따르고 싶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 싶지만, 제가 살아온 모습은 너무나 요원한 것 같아 깊은 좌절감이 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참회에 대한 스님의 법문을 반복해서 듣고 기도를 계속하면서, 과거에 잘못 살았던 제 자신도 받아들이고 조금씩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경전대학과 함께한 모든 순간들이 후회와 회한이 많았던 저의 과거에 따뜻한 위로가 되었고, 앞으로 남은 시간은 잘 살아갈 수 있겠다는 희망과 용기를 북돋아 주는 시간들이었습니다...“

"내가 지금 괜찮으면 과거에 있었던 모든 일들, 지나쳤던 모든 사람들은 지금의 괜찮은 나를 만드는 데 일조했던 분들이니까 전부 감사한 분들이구나. 무언가를 얻어서 행복해지려 했던 지난 내 삶은 마치 산에서 물고기를 잡으려고 노력했던 것과 같았구나. 언제 어디서 어떤 일이 생기든지, 지금 내 마음이 괜찮은 것에 집중하는 것이 자유와 행복에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삶의 변화를 진솔하게 나누어 준 네 분의 감동적인 소감이었습니다.

다음으로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 학생들의 감사한 마음을 담아 법륜스님에게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학생들도 큰 박수로 감사의 뜻을 함께 전했습니다.

이어서 바른 법으로 인도해 준 법륜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스승의 은혜를 함께 불렀습니다. 현장에 참석한 졸업생들도 다같이 일어나 큰 박수로 감사의 뜻을 함께 전했습니다.


졸업생들은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의 학장인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졸업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정토불교대학 졸업생들을 위해 기념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괴로움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말고, 겸손하고 검소하게 살 때 삶이 자립되고 여유가 생긴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정토불교대학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경전대학 졸업생 여러분에게도 진심으로 축하 말씀을 드립니다.
인생을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많은 어려움에 부딪칩니다. 내가 하고자 하는데도 안 되는 것, 그것이 어려움입니다. 이런 어려움에 부딪칠 때 여러분은 대부분 괴로워합니다.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절망하거나, 불평을 합니다.

‘수행자에게는 괴로움이 없다’라고 말할 때, 이 말은 ‘어려운 일이 없다’거나 ‘모든 일이 저절로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어려움은 똑같이 있지만, 그 어려움을 해결할 뿐 괴로워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예를 들어 길을 가는데 벽돌이 떨어져 머리를 다쳤다면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으면 됩니다. 괴로워한다고 병이 낫는 게 아닙니다. 먼저 치료를 받고, 이런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도록 원인을 규명해야 합니다. 원인을 찾아보니 건물 지을 때 남겨둔 벽돌 쓰레기가 원인이었을 수도 있고, 만약 간판이 떨어졌다면 간판이 낡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원인을 알았으면 일정 기한이 지난 간판은 새로 달도록 주의를 준다든지, 건물 옥상에 돌멩이나 벽돌 같은 위험한 물건을 두지 않도록 한다든지, 이렇게 우리의 삶을 개선해야 합니다. 시험에 떨어졌다면 아직 공부가 부족하다는 뜻이니 다시 공부하면 됩니다. 그것이 괴로워할 일은 아닙니다.
이런 관점에서 인생을 보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괴로움 없는 인생’을 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우리가 가진 에너지 대부분을 자신을 괴롭히는 데 사용합니다. 자기 인생을 살고 남는 에너지를 남을 위해서도 조금 써야 하는데, 자기 인생을 살기에도 에너지가 부족하다고 느낍니다. 에너지를 자기를 괴롭히는 데 써버리니 자꾸 도움을 요청하게 됩니다. 부모나 형제에게 도와달라고 하고, 세상에 도와달라고 하고, 사람에게도 하나님에게도 부처님에게도 빌게 됩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 ‘네가 원하면 도와준다’고 하니까 여기저기 다녀보고 많이 도와주는 곳을 좋아하고, 그런 곳을 ‘영험이 있다’고 하며, 어디가 더 나은지 몰려다니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자립이 안 된 사람들입니다.

작은 벌레도 나뭇잎을 갉아먹으며 자기 삶을 자기가 삽니다. ‘도와주세요’라는 말을 안 해요. 그러나 ‘해치지 말아 주세요’라고 할 수는 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도 살아 있는 생명을 함부로 해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자연계의 모든 생명은 자기 삶을 스스로 자립해서 살아갑니다. 숲속에 사는 어린 토끼가 살아가기가 힘들까요?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살아가기가 힘들까요? 숲속의 토끼가 훨씬 더 힘듭니다. 그래도 토끼는 숲속에서 이런저런 위험을 피하면서 잘 살아갑니다. 누구 보고 ‘도와주세요’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토끼보다 훨씬 큰 능력을 가지고 살아가면서도 늘 도움을 요청합니다. 이렇게 도움을 받아서 사는 존재가 중생입니다.
아무 도움 없이 스스로 살아가고, 오히려 남을 도와줄 수 있는 존재, 이것이 보디사트바, 즉 수행자입니다. 수행자는 능력이 좋아서 그런 게 아닙니다. 가진 에너지는 큰 차이가 없습니다. 다만 그 에너지를 어디에 쓰느냐의 차이입니다. 자기를 괴롭히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으면 사람은 에너지가 남습니다. 토끼는 도움도 안 받지만 도와줄 능력도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도와줄 능력이 있으니, 스스로 자립하고 남도 조금 도울 수 있습니다. 이럴 때 ‘자리이타’, 즉 자기를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하는 보살이 됩니다.

자립이란 내가 어떤 특별한 능력을 발휘해야 되는 게 아닙니다. 모든 사람은 태어나서 성장하는 과정에서만 도움을 받도록 되어 있고, 성인이 되면 도움을 안 받아도 됩니다. 모든 생태계가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자립이 안 된다면, 그건 어리석어 삶을 잘못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일부 종교에서는 이렇게 자립이 안 된 사람들을 모아 놓고 ‘네가 원하면 도와준다’고 하면서 자립을 더 해치고, 더 의지하도록 만들고, 더 어리석게 만들기도 합니다. 그래서 수행과 종교는 차이가 있습니다. 존재 자체는 자립이 되도록 만들어져 있는데, 어리석어서 다만 에너지를 자기 괴롭히는 데 쓰기 때문에 자립이 힘든 겁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 안 되면 이런저런 방법을 찾아 보면 되지 괴로워할 일은 아닙니다. 뭔가 무너졌으면 다시 쌓으면 되지 괴로워할 일이 아닙니다. 괴로워한다고 그게 쌓아지는 것도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는 대부분 에너지를 괴로워하는 데 씁니다. 다시 쌓을 생각은 안 하고 ‘왜 힘든 일을 나에게 시키느냐’ 하며 불평하거나,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괴로워하면서 에너지를 씁니다. 오히려 ‘어떻게 하지?’ 궁리하면서 다시 시도해 보는 데 에너지를 써야 합니다. 이러다 보면 처음에는 조금 힘들지만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자립이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에너지를 대부분 낭비하니, 기본적인 자기 삶조차 유지가 잘 안 되고 내내 헐떡거리는 겁니다.
이렇게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게 되면, 검소하고 겸손하게 살 수 있습니다. 검소하고 겸손하게 살면 지구 환경을 위해서도 좋습니다. 또한 현재 수입으로도 남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껄떡거리지 않게 됩니다. 어디를 가든지 잘난 체하려면 돈이 좀 들어요. 그런데 겸손하게 살면 에너지 낭비가 굉장히 적습니다. 겸손하게 살면 화나고 짜증날 일이 굉장히 적어요. 교만하면 세상에서 인정을 안 해주기 때문에 늘 마음에 짜증이 있고, 화가 있고, 불만이 생기게 됩니다. 특별히 무엇이 변해야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현재 내가 가진 에너지를 어떻게 쓰느냐가 관건입니다. 여러분은 마치 은행에서 빚을 내서 사치품 사고, 마약하고, 담배 피우듯이 자기 몸을 괴롭히는 데 에너지를 낭비합니다. 그러니 늘 빚쟁이가 되어 도와달라고 해야 합니다.
그런데 겸손하고 검소한 관점에서 인생을 살면 내가 가진 에너지를 나에게 쓰고도 남습니다. 자기를 버리고 하라는 게 아닙니다. 여유가 생기게 되기 때문에 남에게 도움이 필요하면 조금 도와줄 수 있게 된다는 겁니다. 도와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내가 도와준다고 간섭할 필요도 없어요. 내가 먹어야 할 밥을 조금 적게 먹고 남을 주는 것입니다. 먹기 싫다는 사람에게 왜 주겠습니까? ‘배가 고파요’ 할 때 내가 먹던 밥을 한 숟가락 줄 수 있는 겁니다. 나는 한 숟가락 덜 먹어도 살 수 있으니까요.

이런 공부를 조금씩 터득해 가면, 여러분이 산다는 게 얼마나 소중한지 자각하게 됩니다. 아침에 눈 뜨고 살아 있는 것에 감사하고, 숨 쉴 수 있는 공기가 있음에 감사하고, 먹을 수 있는 밥이 있음에 감사하고, 어딘가 갈 수 있도록 차가 있음에 감사하고, 이런 마음이 가슴속에 자리하면 얼굴이 저절로 밝아집니다.
지금은 어느 종교니, 어느 철학이니 하는 것이 중요한 시대가 아닙니다. 내 삶이 온전해지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은 혼자 가만히 있으면 불안하잖아요. 삶이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혼자 가만히 있어도 아무렇지 않아야 합니다. 그게 먼저입니다. 그리고 ‘바쁘다’는 것은 내 역할이 많고, 나를 필요로 하는 일이 있다는 겁니다. 필요하다는데 잠을 안 자고 해야죠. 반대로 ‘한가하다’는 것은 아무도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그러면 한가함을 즐기면 되지, 여기저기 기웃거릴 이유가 없습니다. 이것을 옛 선인들은 ‘물이 절벽을 만나면 폭포가 되어 흐르고, 호수를 만나면 고요히 멈춘다’라고 표현했습니다. 인연을 따라 산다는 뜻입니다. 바빠서 힘들어 죽겠다는 말도 안 하고, 할 일 없어 심심해 죽겠다는 말도 안 합니다. 어느 것이 더 좋다고도 말하지 않아요. 그냥 인연이 지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겁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정토불교대학에서 우리 마음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괴로움이 왜 생기는지, 괴로움으로부터 어떻게 자유로워지는지 공부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면서, 한 사람이 스스로 괴롭지 않고 또 세상 사람들에게 괴로움 없는 길을 어떻게 전파했는지를 보며 ‘나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자긍심을 가질 수가 있었습니다. 그 공부를 여기서 끝내지 말고, 앞으로도 일상 속에서 계속 확인하고 연습해 가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경전대학 졸업생들을 위해 기념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경전대학에서는 불교 가운데서도 주로 대승불교를 배웠습니다. 대승불교는 마음공부를 조금 더 깊이 하는 교육과정입니다. 누구나 마음공부를 하고 나면 남을 해치는 것보다는 남을 돕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 ‘남을 도와야 한다’라고 규정하게 됩니다. 이렇게 ‘남을 도와야 한다’고 규정하게 되면 또 부작용이 생깁니다. 남을 돕지 않는 사람을 나쁜 사람이라고 여기게 되기 때문입니다. 남을 돕는 것은 선택입니다. 도우면 좋은 일이지, 돕지 않는다고 해서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이처럼 대승불교는 소승불교의 가르침이 관념화되었을 때, 그것을 깨뜨려 주는 가르침입니다. 즉 어떤 정해진 진리가 있다는 관점을 깨는 것입니다. 진리라고 정해진 진리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진리가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진리는 인연을 따라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금강경에서는 ‘무유정법’을 배웠고, 반야심경에서는 ‘공(空)’ 사상을 배웠습니다. 여러분은 그동안 이런 공부를 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배운 내용을 일상에서 적용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매일 옷을 아무 데나 벗어 놓는다든지, 그런 문제로 갈등이 심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공부하고 보니 그것이 다 습관인 거예요. ‘무엇을 어떻게 놓아야 한다’는 법은 본래 없습니다. ‘옷은 옷걸이에 걸자’ 하고 우리가 정한 거지, 그것이 절대적인 건 아니에요. 그 사람은 어릴 때부터 혼자 살았는지, 가난한 환경에서 살았는지 모르지만, 옷을 옷장에 넣고 정리하는 삶을 살지 않고, 벗어서 아무 데나 놓고 살아온 겁니다. 그러니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아내 입장에서는 ‘옷걸이에 거는 게 뭐가 어렵냐’, ‘수건은 왜 수건걸이에 걸지 않느냐’, ‘걸레를 왜 아무 데나 두느냐’ 이렇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절에 오면 긴장해서 그렇게 할 수 있어도, 집에서는 긴장을 풀기 때문에 자기 습관대로 사는 거예요. 일부러 부인을 애먹이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살아온 습관대로 하는 것뿐입니다. 거기서 갈등이 생기는 겁니다.
이렇게 마음 공부를 하게 되면 상대를 점점 이해하게 됩니다. ‘저 사람은 나쁘다’가 아니라 ‘저렇게 살아서 저렇구나’ 하고 이해하게 됩니다. 여기서 내가 취할 수 있는 행동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남편이 습관대로 살도록 두는 것입니다. 내가 필요하면 옷 벗어 놓은 것을 옷걸이에 걸어 놓고, 수건을 아무 데나 던져 놓으면 수건걸이에 걸어 두고, 걸레를 아무 데나 놓으면 제자리에 놓으면서 살면 됩니다. 남편이 나에게 주는 이익이 100이라면, 이런 일은 1이나 2도 안 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 1이나 2 때문에 싸워서 100을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둘째, 남편의 습관을 고칠 필요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면 남편을 ‘깨달음의 장’에 먼저 보내세요. (웃음)

이렇게 우리는 상대를 이해하고 인정하고 받아들이든지, 아니면 개선하기 위해 상대에게 맞는 방식으로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괴로워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싸운다고 해결될 일도 아닙니다. 한두 번 말한다고 되는 일도 아니에요. 옛날 같으면 두드려 패는 방법도 있었겠지요. 그런데 지금 시대에는 폭력이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자기 버릇이고, 습관이고, 어떤 면에서는 취향일 수도 있습니다. 그 취향을 폭력으로 고치겠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지금은 선생님이 아이를 때려도, 부모가 아이를 때려도, 주인이 종업원을 때려도 모두 학교폭력, 가정폭력, 직장폭력에 해당합니다. 모범을 보이거나, 대화를 통해 푸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혜를 발휘하려면 내 마음속에 분노가 없어야 합니다. 분노가 없어야 상대를 이해하기도 쉽고, 해결책을 찾기도 쉽습니다. 내 마음속에 분노가 있고 짜증이 있다는 것은 ‘내 방법이 옳다’는 것에 집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새로운 방법을 찾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이렇게 경전 공부를 했으면, 이제는 일상에서 조금씩 그걸 적용해서 자기 삶에 변화가 오도록 해야 합니다. 공부가 내 것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통해 내가 먼저 자립하고, 조금 남는 것을 세상과 이웃에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나 하나만으로는 큰 도움이 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작은 돈과 힘을 많이 모으면 큰 힘이 될 수 있다’라고 생각해서 ‘모자이크 붓다’가 되자는 운동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한 분들은 경전대학으로 가게 됩니다. 또한 정토불교대학을 졸업하면 정토회 회원이 될 수 있습니다. 회원 자격을 얻으면 깨달음의 장에도 갈 수 있고, 인도 성지순례도 갈 수 있으며, 명상 수련에도 참여할 수 있습니다. 회원 가입을 하고, 경전대학도 다니고, 양쪽을 다 해도 됩니다. 일정이 너무 바쁘면 회원 자격은 나중에 얻고, 우선 경전대학부터 먼저 다녀도 됩니다. 경전대학을 졸업한 뒤에 회원 가입을 해서 수요일마다 수행법회에 참석해도 되고, 다른 수련과 봉사를 이어가도 됩니다.
그러니 경전대학을 졸업하신 분들도 ‘이제 끝났다’ 하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정토회 회원이 되어 수련에 꾸준히 참여하시고, 시간도 있고 열의도 있다면 전법회원 교육에도 참여하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번 졸업을 축하드립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학습과 정진을 이어가시기 바랍니다.”
졸업생들은 스님의 법문을 가슴 깊이 새겼습니다.

다음은 졸업생들의 1분 스피치 시간을 가졌습니다. 현장에서 졸업 소감 나누기를 진행했습니다. 무대 아래에 마이크가 준비되자 누구든지 앞으로 나와 자신이 느낀 소감을 자유롭게 이야기했습니다.

"좋은 스승 한 분만 있어도 바른 길로 갈 수 있다는 그 얘기를, 제가 항상 아이들 가르치면서 생각하고 있는데, 저는 정말 훌륭한 스승이신 법륜스님을 만나서 정말 행복하게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전대학에서 만나겠습니다."
"2011년부터 법륜스님의 법문을 꾸준히 들어왔는데 혼자서는 해결이 안 돼서, 깨달음의 장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게 되었습니다. 그 어두운 동굴 속에서 환하게 빛으로 인도해 주셔서 너무 고맙고, 불교대학을 통해 모든 분들의 은혜로 살아가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너무 늦게 철이 들어서 이제서야 너무 고마운 마음입니다."

"졸업식이라고 거창한 부분들을 생각했던 것 같은데, 스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당장 내 지금의 일상, 내 집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어떻게 비우고 어떻게 마음을 다잡을 것인가, 그런 부분을 생각하니 좀 더 가볍게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법륜스님의 가르침과 씨름하는 대신 졸음과 씨름하다 보니 어느새 졸업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더라도 그 과정을 정토회에서 함께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겐 큰 수행임을 압니다. 정토회는 종교 단체가 아닌 것 같습니다. 정부 부처로 만들어 국가적으로 추진해야 할 아주 중요한 단체인 것 같습니다."

"우울증이나 불안증이 심해서 그걸로 변명을 하고 살았었는데, 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공부하면서 우울증도 많이 나아지고 불안 증세도 많이 완화된 것 같습니다. 정토회를 알기 전에는 이렇게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 잡고 이야기하는 것도 정말 힘들었을 것 같은데, 오늘 이렇게 소감 나누기하면서 너무 기쁩니다."
"저는 가톨릭 신자입니다. 15년 전 뉴욕에서 스님께 고민을 여쭤본 적이 있고, 그때 진로에 대해 고민하던 차에 스님께서 아무거나 해도 된다고 하셔서 다 접고 한국에 와서 시작을 했습니다. 그 후 10년 동안 속세에서 여러 고난을 거치며 성당과 교회, 다시 경전대학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불법을 등불로 삼아 깨어 있는 사람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아멘."

소감을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졸업식을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졸업식 이후 정토회의 다양한 프로그램 속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사홍서원으로 졸업식을 마쳤습니다.


생방송을 종료하고 단체사진을 찍은 후 무대 위에서 반별 단체 사진 촬영을 했습니다.

온라인반부터 오프라인반까지 연속해서 단체 사진을 촬영한 후 마지막으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원고 교정을 한 후 몸이 아파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온라인으로 시애틀정토회, 콜럼버스정토회 이사회에 참석하고, 주간반 전법회원 법회 생방송을 한 후, 오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연달아 미팅을 하고, 저녁에는 저녁반 전법회원 법회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왜 우리는 내 문제엔 간절하고, 세상의 고통엔 침묵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