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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35차 인도 성지순례 넷째 날입니다. 오늘은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성지, 보드가야를 순례했습니다.

새벽 4시 30분, 짙은 안개가 내려앉은 쁘락보디홀에서 순례단은 새벽예불을 드리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예불을 마치고 새벽 5시에 순례단은 학교 운동장에 모였습니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가운데, 스님이 오늘의 일정을 간단히 안내했습니다.

“오늘은 보드가야 대탑을 참배하는 날입니다. 여기서부터 걸어서 보드가야까지 가보겠습니다. 부처님이 강가에 쓰러지신 곳을 지나 명상센터 부지에서 도시락으로 아침 공양을 하겠습니다. 수자타 공양터, 우루벨라가섭 교화터와 수자타 탑을 참배하고 보드가야 대탑까지 가겠습니다.
우리가 보드가야로 가는 길은 대부분 마을 길입니다. 마을 길을 걸어갈 때는 소란스럽지 않게 이동해 주세요. 자, 그럼 천천히 걸어가겠습니다. “

스님이 먼저 학교 담장을 나서 마을 길로 들어섰고, 순례단은 긴 행렬을 이루어 뒤따랐습니다. 사방은 아직 어둠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순례단은 휴대전화 불빛으로 발밑을 비추며, 잠든 마을 사람들에게 방해되지 않도록 말없이 조용히 걸음을 옮겼습니다.


수자타아카데미를 출발한 지 한 시간이 지나자, 동쪽 하늘이 밝아오며 안개가 걷히고 서서히 주변 풍경이 드러났습니다.


이윽고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모래밭이 펼쳐졌습니다. 이곳이 바로 부처님께서 전정각산에서 고행을 마치고 걸어 내려오셨던 네이란자라 강변입니다. 6년 고행 끝에 뼈와 가죽만 남은 부처님께서는 강물에 목욕하시다가 물살에 휩쓸려 강가에 쓰러지셨습니다. 마침, 이 강변에 우유를 짜러 오던 수자타가 부처님을 발견하고 유미죽을 공양했습니다.


오늘 순례단이 마주한 네이란자라 강은 휩쓸려 내려갈 정도로 깊지는 않았지만, 종아리까지는 물이 차올랐습니다. 순례단은 모두 신발을 벗고 물속에 들어섰습니다. 강물은 잔잔했고 다행히 물이 차갑지 않았습니다.




강을 건너 모래밭을 지나자, 부처님께서 쓰러지셨던 자리에 도착했습니다. 순례단은 경전을 독송하며 그 순간을 마음속에 그려보았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자 길게 이어진 벽돌담이 나타났고, JTS 명상센터 부지에 도착했습니다.


오전 7시 30분, 명상센터 부지에 조를 나누어 앉아 도시락으로 아침 공양을 했습니다.


식사 후 스님은 명상센터 부지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네이란자라 강변에서 쓰러지셨던 곳과 매우 가깝습니다. 이 부지에 명상센터를 짓고자 했지만, 아직 관리할 인연이 갖춰지지 않아 짓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중 누군가는 조기 은퇴 후 이곳을 맡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스님이 말을 마치자 웃음이 번졌습니다. 순례단은 수자타가 유미죽을 공양한 자리를 향해 다시 길을 나섰습니다. 명상센터 부지 앞에는 인근 마을에서 모여든 아이들과 어른들이 길게 줄을 서 있었습니다. 매년 스님이 사탕을 나누어주곤 했는데, 오늘은 법사님들이 준비해 온 사탕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수자타 공양터에 도착한 후, 순례단은 넓게 대열을 펼쳐 공양터를 향해 삼배를 올리고 경전을 독송했습니다.




독송을 마치고 출발하며 스님이 다음 여정을 안내했습니다.
"부처님은 유미죽을 드신 후, 최후의 결전에 나서는 장수처럼 보드가야로 가셔서 보리수 아래에서 용맹정진하셨습니다. 지금 이대로 보드가야 대탑으로 걸어가면 부처님의 발자취에 가장 가까운 길입니다. 그러나 이 주변에는 우루벨라가섭을 교화하신 자리와 화룡을 보관한 굴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을 거쳐 수자타 탑을 지나 대탑으로 가겠습니다."
스님은 이동하는 중에 우루벨라가섭 교화 사례와 수자타의 공양에 대해 그림 그리듯 세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순례단은 부처님이 우루벨라가섭을 교화한 터와 화룡을 보관했던 뱀굴을 둘러본 후 수자타 탑으로 계속 걸어갔습니다.




마을 길로 들어서자 하체가 마비된 마을 사람 한 명이 스님께 구걸을 했습니다. 스님은 반갑게 인사를 하며 보시금을 건넸습니다.

"이분은 보시금을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
스님은 순례단에게 그 인연에 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제가 처음 인도에 왔을 때 캘커타에서 분유를 사달라고 했던 한 여인을 도와주지 않은 적이 있어요. 그 일로 자책을 한 후 한동안은 구걸하는 모든 이들에게 막 퍼주고 다녔습니다.(웃음)
그러다 보니 온 동네 아이들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게 되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시골에 가니까 가난한 아이들이 더 많은 거예요. 저는 과자를 주려고 하는데 그들은 전혀 받으려 하지 않았어요. 그때 깨달았어요.
'아, 아이들이 단지 가난해서 구걸을 하는 게 아니라 주는 사람이 있다 보니 구걸을 하는구나. 내가 아이들을 거지로 만드는구나.‘
그래서 다시 한동안은 구걸하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어느 날 제가 수자타 탑 터를 순례하는데 이분이 제게 보시를 요청했어요. 저는 주지 않았어요. 그런데 하반신이 마비된 몸으로 두 팔로 기어서 우루벨라가섭 수행터까지 쫓아온 거예요. 그때 다시 깨달았어요.
'아, 이 사람은 내 도움을 간절하게 원하는 사람이었구나.'
그때 치우친 생각을 버리는 중도를 깨달았어요. 그리고 상대를 거지로 만들지 않으면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고민 끝에 시작한 것이 수자타아카데미입니다."
스님의 말씀이 끝나자, 순례단 사이로 먹먹한 침묵이 흘렀습니다.
어느덧 수자타 탑 근처에 이르렀습니다. 자전거를 끌고 스님과 순례단을 호위하듯 따라오던 마을 사람이 더 이상 자전거를 끌고 갈 수 없는 길을 만나자 스님께 인사했습니다.
"내년에 또 봬요. “
"그래요, 잘 지내요."

스님은 그분을 위해 잠시 축원을 한 뒤 수자타 탑을 향해 계속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곧 수자타 탑에 도착해 스님은 수자타의 공덕에 관해 설명했습니다.

"부처님이 깨닫기 전 마지막으로 공양을 올린 이는 수자타였습니다. 이름 없는 수행자에게 올린 그 공양이야말로 최고의 공덕으로 전해집니다. 오늘날에도 진정한 공덕은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돕는 데 있습니다."

스님의 설명이 끝나고 순례단은 탑을 한 바퀴 돌며 석가모니불을 염불 했습니다.



수자타 탑을 참배한 후 순례단은 네이란자라 강을 가로지르는 큰 다리를 건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자리를 향해 계속 걸어 나갔습니다.

오전 9시 20분, 저 멀리 마하보디 대탑(Mahabodhi Temple)의 윤곽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순례단 사이로 나지막한 탄성이 흘렀습니다. 대탑을 향해 걷는 발걸음에 절로 힘이 들어갔습니다.

마하보디 대탑 안에 들어서자 55미터 높이의 첨탑이 하늘을 찌를 듯 서 있었습니다. 사각형 기단 위로 수직으로 뻗어 오른 탑의 형상이 부처님의 깨달음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순례단은 스태프가 미리 준비해 둔 공간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대중이 일제히 대탑을 향해 서서 청법가로 법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께서 보리수 아래에서 마왕의 세 가지 유혹을 물리치고 마침내 깨달음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경전의 기록에 따르면, 부처님께서 이곳 보리수 아래에서 깊은 선정에 드셨을 때, 마왕의 세 가지 유혹이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부처님이 욕망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워진다는 것은 곧 욕계 전체가 흔들린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자재천왕이 머무는 천궁이 마치 지진이 난 것처럼 크게 요동쳤다고 합니다.
놀란 자재천왕이 인간 세상을 내려다보니, 티끌만한 인간 하나가 욕계를 벗어나려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욕계 전체가 무너질지도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자재천왕은 곧 천궁으로 자녀들을 불러 모아 이렇게 말합니다.
‘욕망에서 벗어나려는 수행자가 하나 생겼다. 내가 지금까지 본 인간 가운데 이런 이는 처음이다. 저 사람을 무너뜨려야 한다.’
그리고는 세 딸에게 명해 부처님을 유혹하게 합니다. 마왕의 세 딸은 선정을 닦고 있는 부처님 곁으로 내려와 노래하고 춤을 추며 달콤한 말로 유혹을 시작합니다.
‘꽃이 피고 새가 우는 이 아름다운 봄날에 욕락을 즐겨보면 어떻겠느냐. 젊을 때는 욕락을 즐기고, 수행은 늙어서 해도 되지 않겠느냐. 열반은 얻기도 어렵고, 얻은들 무엇하랴. 우리의 아름다운 몸매를 보라. 함께 즐겨보면 어떠리.’
이런 노래로 부처님을 흔들려했던 것입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마음을 고요히 가다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잘 채색된 항아리에 똥이 가득 찬 것과 같구나. 나는 욕락을 즐기지 않노라. 물러가라.’

여기서 잘 채색된 항아리는 즐거움을 상징하고, 그 안에 가득 찬 똥은 괴로움을 뜻합니다. 즉, 겉으로는 즐거움처럼 보이지만 그 실상은 괴로움이라는 사실을 꿰뚫어 보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손을 들어 그들을 가리키자, 아름다운 젊은 여인들은 순식간에 노파로 변해 부끄러워하며 달아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표현은 오늘날 여성의 시각으로 보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상징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아름다운 젊은 여성은 욕락의 즐거움을, 노파는 그 끝에 따르는 괴로움을 상징합니다. 손짓 한 번에 젊은 여인이 노파로 변했다는 것은, 즐거움이 곧 괴로움임을 분명히 알아차렸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 욕락에 대해 부처님의 마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마왕은 딸들의 유혹이 통하지 않자, 이번에는 천 명의 아들들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활과 창 등 온갖 무기를 들고 가서 부처님을 무찌르라는 것이었습니다. 마왕의 아들들이 창칼을 휘두르고 화살을 쏘아댔지만, 부처님께는 성냄도 두려움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을 가엾게 여기는 자비심이 일어났습니다. 그러자 날아오던 화살과 창끝이 부처님 몸 가까이에서 모두 꽃으로 변해, 꽃잎이 되어 떨어졌다고 합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왕의 아들 가운데 절반인 오백 명이 붓다에게 항복하고 귀의합니다.
마왕은 유혹도, 협박도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전혀 다른 모습으로, 웃는 얼굴을 하고 부처님께 다가옵니다. 그리고 자신의 자리, 곧 자재천왕의 지위를 물려주겠다고 제안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나는 아무것도 바라는 바가 없노라.’ 하시며 그 제안을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이 대목을 읽다 보면, 첫 번째 유혹을 넘기는 것도 쉽지 않고, 두 번째 협박을 견디는 것도 만만치 않은데, 그것마저 지나고 나서 이 세 번째 유혹 앞에서는 저 같으면 무너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지금,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이 참 많지 않습니까. 남북통일의 과제도 있고, 평화를 지켜야 할 책임도 있습니다. 자재천왕이란 무엇입니까? 원하기만 하면 무엇이든 이룰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런데 진정한 해탈이란, 그런 ‘원함’ 자체가 사라진 상태입니다. 더 이상 무엇도 유혹이 되지 않는 세계, 바로 그것이 해탈인 것입니다.

마왕은 다시 이렇게 말합니다.
‘열반이란 이름만 있을 뿐 실제로 그런 경지는 존재하지 않는다. 공연히 헛된 노력은 하지 마라.’
그러자 부처님께서 조용히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과거 생에 한 번 큰 공덕을 지어 자재천왕이 되었다. 그러니 네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다. 그러나 나는 과거 생에 수없는 공덕을 지었기에, 능히 열반을 증득할 수 있다.’
이에 자재천왕이 비웃으며 말합니다.
‘내가 과거 생에 한량없는 공덕을 지었다는 것은 천하가 다 안다. 그래서 자재천왕이 되었으니까. 그런데 너는 지금 어떤 모습이냐? 밥은 얻어먹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고, 옷은 주워 입는 삐쩍 마른 거지에 불과하지 않느냐. 그런 네가 한량없는 공덕을 지었다는 것을 무엇으로 증명하겠느냐?’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오른손으로 정수리를 한 번 만지고, 다시 오른쪽 무릎을 쓰다듬은 뒤 손끝으로 땅을 가리키며 말씀하셨습니다.
‘지신이여, 나의 과거 공덕을 증명하라.’
그 순간 지신이 땅에서 솟아 나와, 붓다가 과거 생에 한량없이 공덕을 지어왔음을 증명합니다. 이를 보고 마왕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 부끄러워하며 물러납니다. 마왕이 물러난 뒤, 새벽녘 샛별이 떠오르고, 그 별빛을 보는 순간 부처님께서는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습니다. 수하(樹下)에서 마왕을 항복받고 깨달음을 이루었다 하여 이를 ‘수하항마상’, 또는 ‘항마수도상’이라 부릅니다. 선정에 든 모습으로 오른손을 무릎 위에 얹고 손끝이 아래로 향한 불상은, 모두 이 깨달음의 장면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부처님께서는 마음속 모든 욕망의 뿌리를 완전히 뽑아내셨습니다. 욕망이 사라지자, 지혜의 눈이 열리며, 세 가지 지혜가 드러났습니다. 이를 삼명(三明)이라 합니다.
첫째는, 어떤 원인을 지으면 미래에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분명히 아는 지혜입니다.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르는데, 그 결과의 모습을 꿰뚫어 보는 지혜를 천안통(天眼通), 또는 천안명(天眼明)이라 합니다.
둘째는, 지금 드러난 결과를 통해 과거의 원인을 아는 지혜입니다. 이를 숙명지(宿命智), 또는 숙명통(宿命通)이라 합니다.
셋째는,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따른다는 이치를 늘 분명히 알아차리고 있는 지혜입니다. 이를 누진명(漏盡明)이라 합니다.
이렇게 삼명의 지혜가 열리자,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두려움도 무지도 고통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고뇌의 최후라 선언하노라. 나는 신과 인간의 모든 굴레에서 벗어났다.’
그래서 부처님을 찬탄할 때 ‘천상천하 무여불(天上天下 無如佛)’이라 말합니다. 천상은 신들의 세계를, 천하는 인간 세계를 뜻합니다. 신과 인간 가운데 붓다와 견줄 이는 아무도 없다는 의미입니다. 또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이라는 말 역시, 사람과 신들 가운데 붓다가 가장 존귀하다는 뜻으로 붙여진 찬사입니다.
붓다는 열세 살 때 농경제에 참석했다가 ‘하나가 살기 위해 왜 하나가 죽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품고 출발했습니다. 그리고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삶의 고뇌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길을 끝내 찾아냈습니다. 모든 중생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스스로 증득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도를 이루었다 하여 이를 성도(成道)라 하고,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났다고 하여 열반(涅槃)을 증득했다고 하며, 모든 속박에서 벗어났다고 하여 해탈(解脫)을 얻었다고 표현합니다.
성도 하신 부처님께서는 이제 이 법을 전할 사람, 함께 대화할 사람을 찾으십니다. 수행할 때 만났던 두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났기에, 옛 도반들을 찾아 바라나시로 향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처음으로 법을 설하게 됩니다. 이 모든 일이 바로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이 자리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이어서 대중은 경전을 독송하고 10분간 명상을 했습니다.




명상을 마친 후 대중은 가사를 수하고 대탑을 향해 예불을 올렸습니다.


이어서 스님은 부처님께서 둥게스와리에서 중도를 발견하셨고, 이곳 보드가야에서 연기를 깨달으셨다며 불교의 핵심 사상에 대해 법문을 했습니다.

“부처님이 살았던 당시의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 요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첫째는, 끊임없이 힘으로 전쟁을 벌이다 보니 이제는 무력이 아니라 정의와 법으로 세상을 평화롭게 통합할 정치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요구였습니다. 다시 말해, 정의로운 왕이 나와야 하지 않겠느냐는 바람이 있었던 것이죠. 이때 사람들이 말하던 이상적인 왕이 바로 전륜성왕입니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이런 전륜성왕의 출현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수많은 사상가들이 저마다 자기주장을 펼치다 보니, 도대체 누구의 말이 옳고 누가 틀린 지를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입니다. A라는 사람은 ‘이것이 진리다.’라고 말하고, B는 ‘그렇지 않다.’라며 부정합니다. 그러면 C가 다시 B의 말을 부정합니다. 이렇게 서로가 서로를 부정하다 보니, 사람들의 정신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체를 완전히 깨달은 자가 출현해서 이런 혼란을 잠재워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생겨났습니다. 이분이 바로 붓다였습니다.
붓다란 일체를 깨달은 자를 말합니다. 일부만 아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을 통찰적으로 깨달은 존재입니다. 수많은 주장 가운데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를 분명히 가려 줄 수 있는 사람, 다시 말해 ‘이것은 이래서 잘못되었고, 이것은 일리가 있으며, 이것은 아예 엉터리다.’ 하고 확실하게 교통정리를 해 줄 수 있는 존재를 바랐던 것입니다. 어두운 밤에 불을 켜듯, 한순간에 전체가 환히 보이게 하는 그런 깨달은 자를 붓다라고 합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아, 깨달았다.’라고 말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입니다. 붓다란 ‘일체지자(一切智者)’, 즉 모든 것을 깨달아 혼란도 없고, 어리석음도 없으며, 오류 또한 없는 존재를 뜻합니다. 그런 이가 출현해 이 시대의 혼란을 정리해 주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붓다의 일생을 보면, ‘이 아이는 세속에 머물면 전륜성왕이 될 것이고, 출가하면 부처를 이룰 것이다.’라는 아시타 선인의 예언이 등장합니다. 이 장면은 바로 그 시대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붓다는 결국 이러한 중생들의 희원(希願)에 대해, 전륜성왕의 길이 아니라 붓다의 길로 응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근본적으로 보면, 불교는 겉으로 드러난 용어만 가지고는 다른 사상과 쉽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붓다’, ‘열반’ 같은 말은 불교에서만 쓰는 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서는 염주를 불교의 상징처럼 여기지만, 인도에 가보면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도 염주를 사용합니다. 한국에서는 만(卍)자가 불교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인도에서는 그것이 길상을 뜻하는 보편적인 표식이어서 집집마다 붙어 있습니다. 이런 문화적 차원에서만 보면, 불교를 다른 사상과 구분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불교만이 지닌 사상적 특징은 무엇일까요? 크게 보면 두 가지입니다. 바로 중도(中道) 사상과 연기(緣起) 사상입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었을 때 무엇을 깨달았느냐고 묻는다면, 그 핵심은 연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각각 따로 떨어진 개별 존재들의 집합이 아니라, 서로 긴밀히 연결된 하나의 존재라는 깨달음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의 내용을 이렇게 표현하셨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생겨남으로 저것이 생겨나고, 이것이 멸하면 저것도 멸한다.’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이 연기법이 바로 불교 사상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수행의 핵심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는 중도입니다. 이 두 가지 개념은 불교에만 있습니다. 다른 사상에서도 붓다라는 말이나 열반이라는 말은 사용하지만, 연기와 중도라는 용어는 불교에서만 사용되고 있습니다.
연기법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면, 그 바탕에는 무상(無常)과 무아(無我)의 통찰이 놓여 있습니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고정된 실체로 존재하는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대부분의 종교와 철학은 어떤 형태로든 영원한 실체의 존재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 불교는 인도 안에서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종교와 철학과도 뚜렷이 구별됩니다. 오히려 이러한 관점과 가장 가까운 것이 현대 과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붓다는 무엇을 깨달았는가?’라고 묻는다면, 한마디로 연기법을 깨달았다고 정리할 수 있습니다. 이 중도와 연기를 바르게 이해해야 비로소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고, 동시에 세상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들이 왜 그렇게 전개되는지도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얻으신 뒤 45년 동안, 고뇌를 안고 있거나 의문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며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당시에는 사상 간의 경쟁이 매우 치열했기 때문에, 그 만남이 논쟁의 형식을 띠는 경우도 적지 않았습니다. 붓다를 따르는 이들이 늘어나자, 다른 종교나 사상 진영에서는 일부러 논쟁에 능한 사람을 보내 붓다를 꺾으려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붓다는 제자들에게 늘 ‘논쟁하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누군가 시비를 걸거나 논쟁을 걸어와도, 붓다는 웃으며 대화를 이어가셨고, 상대의 질문을 끝까지 진지하게 듣고 그에 맞추어 답하셨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면 상대 스스로가 ‘아, 내가 졌구나.’ 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나중에는 웅변이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도 붓다와의 논쟁을 권하면, ‘가봐야 망신만 당한다.’라며 모두 사양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붓다는 누구를 만나든 논쟁하지 않으셨습니다. 옳다, 그르다를 판단하지 않고, 그 사람이 처한 상황과 그가 안고 있는 문제에 맞추어 대화를 나누셨습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스스로 ‘알겠습니다.’라고 말하게 되었지, 붓다가 일방적으로 ‘이렇게 해야 한다.’라고 단정한 적은 없었습니다.
이 가르침의 출발점에는 두 개의 큰 바탕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천의 관점에서는 중도이고, 진리의 관점에서는 연기입니다. 전정각산 아래 둥게스와리에서는 중도를 발견하셨고, 이곳 보리수 아래에서는 연기의 이치를 깨달으셨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붓다는 바로 이 중도와 연기의 관점에서, 평생 설법을 이어가신 것입니다.
겨울이 되면 이곳 보드가야 대탑은 사실상 티베트 불교의 중심지가 됩니다. 우리처럼 500명 규모의 순례단이 와 봐야 한쪽 구석으로 밀려나기 십상이에요. 수만 명이 한꺼번에 몰려오니 관리하는 쪽에서도 그들을 배려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예요. 날씨가 조금 더 더워지면 이번에는 태국, 스리랑카, 미얀마에서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직접 와서 보면, 그들이 지닌 믿음의 깊이가 정말 크게 느껴집니다. 정토행자가 아무리 열심히 기도해도, 이곳에 오면 명함도 못 내밉니다. 경전을 염송 하고, 오체투지를 하며 며칠 밤낮을 이어서 기도하거든요. 저는 처음 성지순례를 왔을 때, 그들의 산만한 모습에 한편으로는 실망하면서도, 동시에 그 열성에는 깊이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들이 기도하는 정성을 보면, 우리는 사실 아무것도 아닙니다. 트럭에 천막을 싣고 와서 아무 데나 천막을 치고 거기서 숙박하며 기도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순례하는 방식도 사실은 그들의 영향을 받은 것입니다. ‘티베트 사람들도 저렇게 하는데, 우리가 못 할 게 뭐 있나?’ 하는 마음이 들어서 이런 형태의 성지순례를 시작하게 된 거예요. 저들만큼은 못 하더라도, 우리도 순례자답게 순례를 해보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것도 힘들다고 하지만, 저 사람들이 볼 때는 우리의 순례는 오히려 호화판일 겁니다.” (웃음)

오후 1시에 참배를 마친 뒤, 스님은 순례단에게 두 시간의 자유 시간을 주었습니다. 대중은 각자 대탑 안을 둘러보며 성지를 마음에 새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님은 수자타아카데미로 먼저 돌아왔습니다. 오후 1시 30분에 도착해 점심 공양을 하고 여러 업무를 처리했습니다. 저녁 예불 후에는 인도 JTS 사업을 소개하고 질의응답을 받는 시간이 예정되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저녁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말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인도에서 활동하신 법사님들께서 직접 질문을 받는 것이 더 의미 있을 겁니다.”
모든 일정을 마친 뒤, 스님은 내일 일정을 점검하고 숙소에서 원고를 교정하며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온라인으로 수행법회 방송을 한 뒤 수자타아카데미 개교 32주년 기념식에 참석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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