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오전에 정토불교대학 학생들을 만나고, 오후에 북한이탈주민들을 만나고, 저녁에는 보건의료인들을 만나기로 한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오전 10시부터 서울 정토회관 방송실에서 정토불교대학 학생들과 온라인으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학생들은 지난 9월에 입학해 실천적 불교사상 교과를 1회 공부하고 마음 나누기 수련을 마친 시점이어서 아직 배운 내용이 그렇게 많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학습 내용을 돌아보고 궁금함을 해소하기 위해 자리가 마련되었습니다.
스님이 카메라 앞에 자리하자 삼귀의와 수행문을 낭독한 후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학생들의 소감을 들어본 후 다 함께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입학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았습니다. 거기다가 추석 연휴가 끼어서 수업은 세 번 정도 했을 것 같네요. 수업하면서 느낀 의문을 묻기에는 조금 이르지 않나 싶기도 합니다. 하루를 공부해도 의문이 있을 수 있으니까,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질문들이 많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여덟 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사람들 앞에 서기만 하면 긴장되고 불안해 마음을 편히 나누지 못한다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편하게 말하고 싶은데, 왜 사람들 앞에 서면 이렇게 불안할까요?
“저는 불교대학 수업 시간에 소감 발표나 마음 나누기가 힘들었습니다. 뭘 말해야 하는지 신경이 쓰이고 불안감도 느꼈습니다. 잘 보여야 하는 사람도 없고 시험을 보는 것도 아닌데 긴장이 되었어요. 다른 분들이 발표할 때 잘 듣는 것도 공부이건만, 정작 ‘내가 뭐라고 말할까’에 더 신경이 쓰였습니다. 직장에서도 여러 사람 앞에서 말해야 하면 미리 다 적어놓고 아예 내용을 외웁니다. 저는 사람들과 편하게 소통하고 싶은데, 제가 어떻게 보일까에 신경을 씁니다. 어떤 관점을 가지면 이런 불안감 없이 편안하고 당당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나누기’를 할 때는 ‘소감 나누기’와 ‘마음 나누기’가 있습니다. 이 두 가지는 비슷해 보이지만, 그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마음 나누기란 지금 이 순간 내 마음의 상태를 그대로 알아차리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지금 화가 나 있다면, 그저 ‘화가 났습니다’ 하고 말하는 거예요. 이처럼 마음 나누기는 짧고 단순합니다. 문장이 길어지면 그것은 이미 생각 나누기이지 마음 나누기가 아닙니다.
예를 들어 질문자의 경우, 마음 나누기는 ‘지금 제 마음이 조마조마합니다.’, ‘지금 불안합니다.’, ‘지금 답답합니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한 문장만 덧붙이면 충분합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자꾸 걱정이 되기 때문입니다.’
‘말을 잘하고 싶은 마음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잘 보이고 싶은 생각이 올라오기 때문입니다.’
‘스님의 말이 잘 이해되지 않아 답답합니다.’
마음 상태는 미리 적거나 준비할 필요가 없습니다. ‘무슨 말을 해야 하지?’ 하고 미리 생각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생각 나누기가 되어버립니다. 진정한 마음 나누기는 그저 지금 이 순간의 내 마음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고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 저는 시원합니다. 왜냐하면 스님의 설명을 듣고 이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저는 기쁩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던 것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지금 이 순간 느끼는 내 마음을 그대로 표현하면 됩니다. 어제의 마음도 아니고, 다른 사람의 마음도 아닙니다. 오직 지금 이 순간의 내 마음, 그리고 그 마음이 일어난 이유를 간단히 덧붙이면 충분합니다. 즉, ‘어떻습니다.’ 하는 한 문장과 ‘이유는 이렇습니다.’ 하는 한두 문장 정도면 됩니다. 그래서 마음 나누기는 세 문장을 넘지 않습니다. 말이 길어진다면, 그것은 이미 마음이 아니라 생각을 나누는 것입니다. 마음 나누기는 본래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지금 마음이 답답합니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만 말해도 충분합니다. 지금 느껴지는 마음을 솔직히 드러내는 것, 그것이 바로 마음 나누기입니다.
반면에 소감 나누기는 마음 나누기에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것입니다. 방금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며 느낀 소감을 이야기할 때 말이 좀 길어졌지요? 그건 바로 ‘생각’을 나누고 있기 때문입니다. 소감 나누기는 지금 마음의 상태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경험이나 그때의 생각을 되짚어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정토불교대학을 어떻게 듣게 되었는지, 즉문즉설을 통해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 등을 이야기하는 것이죠. 즉, 소감에는 ‘지금 마음이 긴장됩니다’ 같은 현재의 마음 표현에 더해 그 마음이 생기게 된 자기 생각과 해석이 함께 담깁니다. 만약 열 명이 20분 동안 소감을 나눈다면, 한 사람당 평균 2분 정도 이야기하면 됩니다. 누구는 조금 길게, 누구는 짧게 하더라도 길어야 3분, 짧아도 1분 이상은 필요합니다. ‘아무 소감도 없습니다’라는 말은 사실 말하기가 싫다는 뜻이에요. 소감은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생각나는 대로 짧게 이야기하면 충분합니다.
그런데 남들 앞에서 말을 하게 되면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기고, 그 생각 때문에 자신감이 떨어져 오히려 입을 열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사실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는 것이 힘든 게 아니라, 가장 어려운 건 바로 ‘소감 나누기’와 ‘마음 나누기’입니다. 이 두 가지 때문에 공부를 계속하기가 망설여질 때도 있습니다. ‘그냥 조용히 듣고 가면 되는데 왜 굳이 나누기를 해야 하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요. 그런데 정토회에 조금만 다녀보면 알게 됩니다. 정토불교대학의 백미(白眉)는 바로 이 나누기 시간입니다. 스님의 법문을 듣는 것도 좋지만, 서로의 마음을 나누는 시간에는 진짜 서로 간에 교감이 생깁니다. 법문은 일방적으로 듣는 것이지만, 마음 나누기는 마음과 마음이 오가는 상호 교감의 시간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평소에 마음을 잘 나누지 않습니다. 혼자 고립된 채 살아가는 경우가 많지요. ‘항상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이 자리 잡고 있어서 관계를 맺는 것도 서툴고, 자꾸 움츠러듭니다. 그래서 정토불교대학에서는 일부러 나누기를 자주 시키는 것입니다.
시간이 조금 지나면 변화가 생깁니다. 처음에는 말이 짧고 어색했는데, 졸업할 즈음이 되면 오히려 할 말이 너무 많아집니다. 그래서 ‘시간을 좀 더 늘려달라’ 하고 아우성치게 되지요. 지금은 주어진 시간이 남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두 달만 지나 보세요. ‘왜 시간을 딱 70분으로 정해 놨습니까? 더 길게 하면 좋겠습니다.’ 이런 요청이 이어질 겁니다. 인도 성지순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엔 ‘16일은 너무 길어요’ 하던 분들이, 막상 다녀보면 ‘조금 더 길었으면 좋았을 텐데요.’ 하고 말합니다. 이처럼 진짜 교감이 시작되면, 그 시간은 언제나 짧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경전 강의를 들으면서 기뻤습니다. 그동안 이해하지 못했던 구절이 이제는 이해가 되었어요.’
‘경전 강의를 들으면서 답답했습니다. 아직도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됩니다. 전혀 어렵지 않아요. 마음 나누기는 짧습니다. 길어야 30초를 넘지 않아요. 여기에 자신의 경험이나 하고 싶은 말을 조금 덧붙이면 충분합니다. 이런 식으로 꾸준히 연습하다 보면, 사람들과 대화할 때 미리 메모를 준비하는 습관에서도 자연스럽게 벗어날 수 있습니다.
물론 논문 발표나 사례 발표처럼 형식을 갖춰야 하는 자리에서는 간단한 메모가 필요합니다. 그건 생각 나누기에 해당하기 때문이에요. 잊지 않기 위해 줄거리를 정리하거나 전체 내용을 미리 적어 와서 읽는 것도 괜찮습니다. 말하다 보면 빠뜨릴 수도 있고, 끝나고 나서 ‘그 이야기를 못 했네’ 하고 아쉬워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직장에서 사람들과 이야기하거나, 더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할 때 많이 떨려서 편안하기가 좀 힘듭니다. 이 마음을 어떻게 내려놓고 편안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사람들 앞에 섰을 때 마음이 떨리면, 그저 ‘지금 마음이 떨립니다.’라고 말하면 됩니다. 그 마음을 감추려 하니까 오히려 더 힘든 거예요. 그냥 솔직하게 ‘여러 사람 앞에 서니 떨리네요. 부족하지만 잘 들어주세요.’ 혹은 ‘제가 언변이 부족합니다. 두서 없지만 한번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시작하면 됩니다. 잘하려고 하니까 떨리는 겁니다. 물론 어떤 발표는 준비가 필요하지만, 굳이 외울 필요는 없습니다. 특히 소감 나누기나 마음 나누기에서는 메모조차 필요 없어요. 그때그때 지금의 마음 상태를 그대로 말하면 충분합니다.
익숙해지려면 반복 연습이 필요합니다. 불편한 일도 여러 번 해보면 자연스러워집니다. 그래서 발표가 망설여지는 사람일수록 더 자주 발표를 해봐야 합니다. 한두 번 하다 보면 금세 익숙해져요.
노래도 마찬가지입니다. ‘노래해 봐라’ 하면 ‘저 노래 잘 못해요.’라고 말하죠. 그런데 사실 그건 ‘못한다’가 아니라 ‘잘 못한다’는 뜻이에요. ‘노래해 봐라.’라고 했지, ‘노래를 잘해 봐라.’라고 한 게 아니잖아요. 그냥 ‘학교 종이 땡땡땡’을 부르든, ‘산토끼 토끼야’를 부르든, 무슨 노래든 하면 되는 겁니다. 그런데 우리는 ‘잘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혀 ‘저는 노래 못해요.’ 하며 물러서게 되는 겁니다. 사람들은 질문자가 가수가 아니라는 걸 다 알고 있어요. 그러니 못 불러도 아무 문제없습니다. 다만 스스로 가수와 비교하며 위축되는 거예요. 그러니 자꾸 사람들 앞에서 말하는 연습을 하세요. 할수록 익숙해집니다. 남 앞에서 말이 너무 길어지는 사람은 짧게 말하는 연습을, 자꾸 나서는 사람은 말하기보다 듣는 연습을 하면 됩니다.”
“사실 지금 소감 나누기 하는 것도 약간 떨립니다. 그런데 스님 말씀 중에 제 마음에 제일 잘 와닿은 건 ‘하라고 했지, 잘하라고 한 적 없다’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제가 직장에서 같은 일을 15년 넘게 하고 있는데, 사람들 앞에서 이야기하거나 사회를 보는 일을 자주 합니다. 한 달에 한 번은 꼭 하니까, 이제는 좀 잘할 때도 되지 않았나 싶었는데, 아직도 떨리거든요. 제가 오늘 새겨들어야 할 것은, 너무 잘하려고 하니까 긴장됐다는 겁니다. 다른 사람들은 술술 잘하는데, 저는 미리 적은 메모를 들고 말하는 것을 스스로 부끄러워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스님 말씀을 듣고, 이것도 괜찮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는 메모 없이도 그냥 해보세요. 말을 하다 실수를 하더라도 ‘죄송합니다. 제가 머리가 좀 나빠서요.’ 하며 자연스럽게 넘기면 됩니다. 너무 완벽하게 하려 하지 말고, 필요할 때는 메모를 활용해도 괜찮습니다. 가끔 메모를 보면서 말해도 전혀 문제 되지 않아요. 그걸 창피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도 TV에 나와 연설할 때 실제로는 모두 원고를 보고 읽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내가 옳다’는 생각을 내려놓으면 주관이 없는 사람처럼 되는 건 아닐까요? 잘못한 사람을 합리화하게 되는 건 아닐까요?
명절이나 긴 연휴에 혼자 지내다 보면 외로움이 크게 느껴집니다. 혼자 있어도 괴롭지 않으려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할까요?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되면 인생이 무미건조하지 않을까요? 희로애락이 있는 삶이 오히려 더 인간적인 것은 아닐까요?
화가 난 걸 알아차리고 화를 내지 않기로 선택했을 때, 그것은 화를 참는 것과 다른 걸까요?
상대의 집착이나 강요로 내가 괴로움을 느낄 때, 내 마음만 다스리는 것으로 충분할까요? 현명하게 대응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추가 질문을 더 받은 후 12시가 되어 대화를 마쳤습니다. 학생들은 모둠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이어 갔습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 2시부터는 북한이탈주민들과 함께하는 통일축전에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방송실 카메라 앞에 자리하자 한복을 입은 사회자가 인사말을 했습니다.
통일축전은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는 행사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지역별로 여덟 곳에서 900여 명이 함께 모여서 참여했습니다. 또 온라인으로 400여 명 참여해서 총 1,3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평화와 통일에 대한 염원을 새기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스님이 북한이탈주민들을 위해 격려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남북 간에는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나올 만큼 긴장이 매우 높았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한국에도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전쟁 위험은 다소 완화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 간의 긴장은 여전히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APEC 정상회담을 계기로 북한과 미국 최고 지도자 간의 ‘깜짝 만남’을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실제로 어떻게 될지는 누구도 아직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이번 달 초 워싱턴 D.C. 를 방문해 미국 측의 입장과 북한 측의 분위기를 모두 들어보았습니다. 양측 모두 대화의 의향은 가지고 있지만, 아직 구체적인 준비 단계에는 이르지 못한 듯했습니다. 만약 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만나 대화를 시작한다면, 그 흐름 속에서 남북 간의 대화 역시 이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나 올해 안에 남북 대화가 이루어지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대화의 물꼬가 빨리 트여 한반도의 긴장이 조금이라도 완화되고, 여러분이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더 자유롭고 쉽게 연락할 수 있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남북의 긴장은 여전하지만, 대화의 물꼬는 트이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중국 단둥을 방문해 압록강 건너편의 신의주를 직접 바라보았습니다. 북한은 요즘 하루가 다르게 곳곳에서 높은 건물들이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평양 뿐 아니라 국경 인근의 여러 도시에서도 활발히 건설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여전히 북한 주민들이 먹고 살기조차 어려운 현실에 처해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번 추석에도 여러분들은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며 마음 한편이 허전하셨을 것입니다. 남북이 대화를 재개하고 왕래가 허용된다면, 고향을 다시 찾을 수 있는 길이 열릴 날도 머지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비록 지금은 통일이 멀게 느껴지더라도, 머지않아 그리운 가족과 고향을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이어서 지역별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광주전라 지부를 시작으로 미리 연습한 구호를 힘차게 외쳤습니다.
“저희는 오전에 4개 조로 나눠 체육대회를 신나고 재미있게 했습니다. 그 기운 담아 인사드리겠습니다. 평화!! 통일!! 화합!! 희망!!”
지역별 소개 시간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장기자랑이 펼쳐졌습니다. 각 지역별로 음악, 춤, 시 낭송, 악기 연주 등 다양한 형식의 공연이 이어지며 따뜻한 감동과 웃음을 전했습니다.
인생의 어려움을 돌아보며 희망을 담은 노래 ‘꽃길’을 부르는 분, ‘첫사랑’ 노래를 차분하게 열창한 분, 귀여운 율동과 함께 ‘나는 문어’ 노래를 불러 밝고 유쾌한 무대를 선보인 어린이 중창단, 두만강을 건넜다는 이유로 희생된 사람들을 기리는 자작시를 낭송한 분, 플루트 연주 ‘천년학’으로 북향민들의 그리움과 외로움을 표현한 분 등 각 지역의 무대가 계속되었습니다.
특히 화성지역 통스타 팀은 ‘합창에 이어 이번엔 춤이다!’라는 구호 아래 신나는 무대를 선보였습니다. ‘한잔해’를 개사한 ‘통일해’라는 노래에 맞춰 희망찬 안무를 펼치며 어려움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장기자랑의 열기가 점점 뜨거워지는 가운데 잠시 스님과 대화하는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두 명이 스님에게 인생 고민을 이야기하고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그중 한 명은 요양 시설에서 어르신들의 마지막을 자주 마주하며 마음이 지칠 때가 있다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누군가의 마지막을 지켜보는 사람은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저는 8년간 노인 장기 요양 시설에서 간호조무사와 사회복지사로 어르신들을 보살펴 왔습니다. 성품이 모두 다른 어르신들을 돌보다 보면 가끔 슬럼프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대략 일주일에 한 번꼴로 단체 대화방에 부고 소식이 올라오는데,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말조차 올리기 어려울 때가 있습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황혼기에 들어선 스님께서도 언젠가 돌봄이 필요하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저와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마음으로 임해야 자기 일에 충실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노인들은 거동이 불편하기 때문에 돌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다 보면, 함께하던 분의 임종을 자주 맞이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슬프지만 인생의 자연스러운 과정입니다. ‘돌아가시지 않으면 좋겠다’는 것은 돌보는 사람의 바람일 뿐, 죽음은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자연 현상입니다. 그래서 첫째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편안하게 지내시다가 가시면 좋겠다’ 하는 마음을 가지면 좋습니다. 돌아가신 일을 너무 슬퍼하거나 붙잡으려 하기보다, 그분이 마지막 순간까지 평안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됩니다.
둘째로, 노인을 대할 때는 요구하기보다 그분의 뜻에 맞추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나이가 들면 몸이 굳어질 뿐 아니라 생각과 마음도 유연하지 않게 됩니다. 그래서 흔히 ‘고집이 세졌다’라고 표현하지요. 부모가 자식의 말을 잘 듣지 않는 것도 고의가 아니라, 그만큼 생각이 쉽게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어르신이 뭔가를 요구하실 때는 가능한 한 그분의 뜻에 맞추어 드리는 것이 좋습니다. 내가 ‘이건 이렇게 하세요’라며 요구하기보다 ‘네, 알겠습니다’ 하고 존중하는 태도로 응대하면 됩니다. 물론 모든 요구를 다 들어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럴 때는 ‘죄송합니다, 어르신. 이건 제가 하기 어렵습니다.’ 하고 정중히 말씀드리면 됩니다. 할 수 있는 일은 기꺼이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공손하게 사양하는 것, 이것이 가장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노인을 돌보는 일을 하다 보면, 죽음을 자주 접하게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상입니다. 반대로 어린아이를 돌보는 사람은 그런 일을 거의 겪지 않겠지요. 그러니 ‘죽음이 잦아서 괴롭다’라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마지막까지 이분이 편안하도록 도와드려야겠다’ 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면 일이 한결 가벼워집니다.
노인들은 몸과 마음이 굳어져 있어서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가 어르신께 맞추는 것이 훨씬 현명합니다. 원하시는 것을 모두 해드리려 하면 내 마음이 지치고, 거절할 때는 ‘못 해요!’라고 말하기보다 ‘죄송합니다, 어르신. 이건 제가 하기 어렵습니다.’ 하고 부드럽게 말씀드리면 됩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일한다면, 노인을 돌보는 일도 부담이 아니라 따뜻하고 가벼운 보살핌의 길이 될 것입니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노인들을 보살피신다니, 그 마음이 참 고맙습니다. 벌써 저를 보살핌이 필요한 나이라고 걱정하시는 걸 보니 저도 많이 늙었나 봅니다.” (웃음)
즉문즉설을 마치고 다시 장기자랑 시간을 이어갔습니다. 애절한 감정이 담긴 ‘미운 사랑’을 불러 관객들의 마음을 울린 분, 색소폰으로 등려군의 명곡 ‘월량대표아적심’을 연주하며 사랑과 그리움의 감정을 표현한 분, 걸그룹 에스파의 ‘위플래쉬’에 맞춰 힘찬 댄스를 선보여 활력을 더한 분, 옛 추억이 담긴 ‘찔레꽃’을 부르며 따뜻한 감성을 자아낸 분, 북한 노래 ‘용서하시라’를 통해 어머니와 스승님에 대한 그리움을 노래한 분, ‘꽃길’을 부르며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 분, 특별한 악기인 에어로폰으로 이별의 노래를 연주하며 감미로운 선율을 선사한 분까지 모두 고향에 대한 애틋한 마음, 그리고 평화와 통일에 대한 간절한 염원이 담긴 공연을 보여 주었습니다.
흥겨움을 뒤로하고 마지막으로 스님이 북한이탈주민들이 간절히 그리워하는 고향 소식을 전하며 닫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여러분이 그토록 애타게 기다리는 고향 소식과 고향 방문은 아직 조금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습니다. 현재 북한이 남한과의 대화를 전면 중단한 상태이기 때문에, 당장은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이번 APEC 정상회담을 앞두고 북미 간의 깜짝 대화가 성사될 가능성에 대비해 몇 가지 제안을 해 두었습니다. 그중 하나는 북한 원산 관광지구에 미국인의 관광을 허용하는 방안입니다. 북한은 원산에 훌륭한 관광단지를 조성해 두었지만, 외국인 방문이 거의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북한 출신 미국 교민들을 위한 추모 공간 조성입니다. 고향에 살아서 돌아갈 수는 없어도, 죽은 뒤에는 고향 땅에 묻힐 수 있도록 평양 근교에 수목장 형태의 추모 시설을 만드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자손들이 북한을 방문해 조상을 기리고, 동시에 북한을 여행할 수 있는 기회도 생길 것입니다. 현재 북한은 6·25 전쟁 당시 숨진 미군들의 유해를 다수 발굴해 보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중 일부를 미국에 송환하는 과정을 통해 북미 간의 가벼운 대화가 다시 시작된다면, 이는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남북의 문은 닫혀 있지만, 대화의 길은 다시 열릴 것입니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어느덧 72년이 흘렀습니다. 아직까지도 우리는 전쟁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제는 종전협정이 필요할 때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한반도의 전쟁 위험이 사라지고, 남북 간에도 보다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관계가 이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북한 소식을 조금 전해드리겠습니다. 최근 북한에서는 밀 농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동안 주로 옥수수를 재배했지만, 일부 지역에서 보리와 밀을 시험 재배해 본 결과 생산량이 더 늘어났다고 해요. 비료가 부족한 북한의 현실에서는 비료를 많이 필요로 하는 옥수수보다 상대적으로 비료 의존도가 낮은 밀의 생산 효율이 더 높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우려했던 것보다는 상황이 조금 나아진 셈이지요.
현재 북한은 남한과의 대화를 전면 중단한 상태이며, 남한의 어떠한 지원도 받지 않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제가 북한 주민들을 돕던 일도 지금은 멈춘 상태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조만간 남북 간의 교류가 다시 시작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하루빨리 고향을 방문할 수 있도록 저 역시 계속 노력하겠습니다. 비록 통일이 당장 이루어지지는 않더라도, 고향을 오가며 가족과 만나고 소식을 주고받을 수 있게 된다면 그것 만으로도 큰 일이지요. 그러니 우리 함께 그런 날을 향해 희망을 잃지 말고 나아갑시다.
지금 남북 관계가 단절된 듯 보여 여러분의 마음이 조마조마하시겠지만, 지난 70여 년의 분단 역사를 돌이켜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전쟁이 날 것처럼 보이다가도, 내일이면 통일이 될 것 같고, 모레 다시 경색되었다가도 또다시 풀리기를 반복해 왔지요. 그러니 지나친 기대나 실망 모두 내려놓으시길 바랍니다. 지금처럼 상황이 경색되어 보여도 곧 풀릴 것이고, 또 어떤 때는 통일이 눈앞에 다가온 듯해도 다시 어려워질 수도 있습니다. 한반도 문제는 늘 그렇게 오르내림을 반복해 왔습니다. 제 예상으로는 올해 연말이나 내년 상반기쯤 미국과 북한의 대화가 재개될 것 같습니다. 남북 관계도 그 이후에 풀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한때 북한이 지나치게 고립되어 ‘이러다 무너지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러시아와의 군사 협력으로 안보 기반을 다졌고, 최근에는 중국과의 관계도 서서히 개선되고 있습니다. 곧 중국과의 경제 교류도 재개될 전망이며, 중국의 전자상거래 기업이 북한 진출을 준비 중이라는 소식도 들려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여전히 변화가 느린 것 같지만, 실제로는 북한이 세계의 흐름에 발맞춰 조심스럽게 국제사회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는 중입니다. 아직 밖으로는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았지만, 내부에서는 분명 변화의 조짐이 여기저기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고향 방문보다 먼저 중요한 것은 서로 소식을 자유롭게 주고받을 수 있는 환경입니다. 현재도 전화나 물품 전달이 비공식적으로 가능하긴 하지만, 비용이 많이 들어 쉽지 않지요. 이런 교류가 합법적이고 안정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면 고향 방문의 길도 훨씬 빨리 열릴 것입니다. 그러니 희망을 잃지 마시고, 한국에서 생활을 잘 정착시키며 힘을 기르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걱정을 조금 내려놓고, 언젠가 고향에 연락하고 도움을 전할 수 있는 날을 대비해 조금씩 준비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무엇보다 여러분 자신이 이곳에서 먼저 행복하게 잘 사는 것, 그것이 고향과 가족을 위한 가장 큰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럼 김장철에 다시 뵙겠습니다. 내년에도 이런 뜻깊은 자리를 마련하겠습니다. 오늘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정말 반가웠습니다.”
행사를 마치며 장기자랑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인기상, 장려상, 우수상, 최우수상이 차례로 발표되었고, 참가자들은 서로를 축하하며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최우수상은 ‘통일해’라는 노래에 맞춰 희망찬 안무를 펼친 화성지역 통스타 팀에게 돌아갔습니다. 통스타 팀의 공연을 다시 보며 온라인 통일축전 행사를 마쳤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으로 함께한 전국의 참가자들은 서로의 사연을 나누며 하나 된 마음으로 통일의 희망을 노래할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오후 5시부터는 보건 의료인을 위한 온라인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의료인 정토회에 소속된 200여 명의 회원들이 화상회의 방에 입장했습니다.
의료인 정토회는 창립 이후 매년 스님과 함께 하는 즉문즉설 법회를 꾸준히 열고 있습니다. 그동안 의료인 정토회가 걸어온 길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필리핀 민다나오에서 의료 봉사 활동을 하고, 안산, 일산, 부산에 있는 JTS 다문화 센터에서 매주 일요일마다 소외 계층을 위한 무료 진료를 진행하고, 각종 정토회 행사 때마다 의료 지원을 해온 모습을 돌아볼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의료인 정토회의 노고에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 의료인 정토회의 과제에 대해 이야기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세계 곳곳에는 여전히 의료 사각지대가 존재합니다. 즉, 의료 혜택을 충분히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마지막 유언에서 공양의 공덕을 강조하시며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첫째는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주는 것이고, 둘째는 아픈 사람을 치료해 주는 것입니다. 그만큼 의료 지원은 매우 소중한 일입니다.
현재 JTS는 배고픈 이들을 위한 식량 지원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으며, 아이들을 위한 학교 건립도 큰 규모로 추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가난한 지역들을 방문해 보면, 음식이나 옷, 학교도 물론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아플 때 치료받을 수 있는 의료 지원이라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의료 분야의 전문가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JTS 사업 중 의료 지원 부문이 다소 미흡한 실정입니다. 이런 가운데 여러분이 필리핀 민다나오 사업장에서 의료 봉사를 해주셨고, 앞으로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가 있는 둥게스와리(Dungeshwari) 마을에서도 의료 활동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또한 부탄 지역에서는 지속 가능한 개발의 일환으로 안과 수술, 보청기, 노인을 위한 틀니 지원 등의 사업을 추진 중이며, 특히 틀니 지원은 이미 실행을 위한 답사 단계에 들어가 있습니다. 이런 활동들이 의료인 정토회를 중심으로 점점 확대되고 있다는 점에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가난보다 힘든 것은 아픈데 치료받지 못하는 고통입니다
저는 정토회가 이러한 일들을 보다 체계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가 하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바로 정토회가 자체 의료기관, 즉 종합병원을 보유하는 것입니다. 규모가 크지 않더라도 자체 병원이 하나 있으면, 의료 봉사 활동을 훨씬 효율적이고 조직적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의료인 여러분은 개인 병원을 운영하거나 큰 병원에 근무하면서 해외 봉사에 참여하기 때문에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체 병원이 있다면, 이곳이 의료용품 지원과 봉사활동의 거점이 되어 의료인들이 더욱 효율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오늘날처럼 온라인으로 모든 것이 연결된 시대에는, 의료인 정토회 내부에서도 안과·치과·내과 등 전공별로 네트워크를 구성해 진료를 지원하는 시스템을 구축하면 좋겠습니다. 이러한 기반이 마련된다면 해외 의료 봉사 역시 훨씬 수월해질 것입니다. 따라서 병원 설립 계획을 장기적으로 구체화해 나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기반이 갖춰진다면, 앞으로 의료 사각지대 지원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예를 들어 북한의 경우 식량과 생활 여건도 어렵지만, 실제로는 의료 지원이 가장 절실한 상황입니다. 최근 평양에 1000개 병상 규모의 병원을 신축했지만, 내부 시설은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들여온 중고 의료기기로 대부분을 채우고 있으며, 소독약이나 거즈 같은 기본적인 의약품과 소모품조차 부족하다고 합니다. 남북 관계가 개선되어 북한이 구호품을 수용하기만 한다면, 대형 의료기기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러한 기초 의약품과 소모품은 전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협약을 추진하려 합니다.
현재 인도에서 운영 중인 소규모 클리닉 역시 의료인이 상주하지 않아 보건소 수준에 머물러 있는 현실입니다. 의료인은 평균적으로 다른 직종보다 수입이 높기 때문에, 65세에 은퇴하고 이후 10년 정도 봉사하겠다고 나서는 경우가 많지 않습니다. 오히려 70세, 80세까지 일하는 경우가 많아 봉사자를 확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이 인생의 일정 시기까지는 가족과 생계를 위해 일하고, 65세 이후부터 10년은 세상을 위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가치관을 가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평생을 봉사하지는 못하더라도 그 정신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국내에 작더라도 자체 의료 기반을 마련해야 합니다. 그래야 해외 의료 봉사도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동남아시아처럼 경제 수준이 일정 수준에 도달한 지역에서는 식량이나 물품보다 의료 지원이 가장 시급한 분야입니다. 그동안 우리가 주로 식량, 물품, 학교 지원에 집중해 왔다면, 이제는 의료 지원이야말로 그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라는 점을 인식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러한 사명과 비전을 품고 적극적으로 참여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의료인 정토회의 첫 번째 목표는 수행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자신의 병원에서 마음이 어려운 환자를 잘 돌보는 것입니다. 두 번째 목표는 시간을 내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특히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을 돕는 것이지요. 더 나아가 세계의 의료 사각지대를 지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를 들어 시리아의 경우, 저희에게 들어오는 가장 큰 요청이 병원을 지어주거나 리모델링해 주고, 병원에 필요한 기기나 약품을 지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현재 JTS는 의료 분야의 기본 역량이 부족해 이런 요청에 충분히 대응하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전문성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앞으로 꼭 살려졌으면 좋겠다는 마음입니다.”
의료인들이 더 자주 봉사를 해줄 것을 당부하면서 참석자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다섯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환자를 진심으로 대하지만 귀찮음과 불공평한 업무량 때문에 불만이 생긴다며 이런 갈등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의사로서 환자를 돕고 싶지만, 일이 많아지면 귀찮은 마음이 듭니다
“저는 한방병원에서 전공의 과정을 수련 중인 한의사입니다. 제 병원이 아니다 보니, 환자를 위해 더 잘 치료해 주고 싶은 마음과 해야 할 일이 늘어나서 귀찮은 마음 사이에서 갈등합니다. 새로운 환자가 입원하면 해야 할 일이 늘어나고 귀찮다는 마음이 먼저 듭니다. 물론 직접 환자를 대면하면 측은지심과 그 환자를 위한 마음이 생겨서 진심으로 대하지만, 주변 동료들에게 투덜거리거나 일이 늘어서 나오는 한숨은 멈출 수가 없네요. 또 직장동료보다 제가 맡은 환자 수가 많은 편이라 이것 또한 불공평하게 느껴집니다. 이러한 마음가짐을 바르게 고치고 싶습니다. 스님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좋은 의사가 되려면 임상경험이 많아야 할까요, 적어야 할까요?”
“많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환자가 많이 배정되어야 할까요, 적게 배정되어야 할까요?”
“많이 배정되어야 합니다.”
“환자를 많이 배정해 주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환자가 많다고 불평하는 것은 스스로 좋은 의사가 되기를 포기하는 것과 같습니다.
JTS가 운영하는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에는 ‘빌리지 닥터(Village Doctor)’라고 불리는 지역 의사가 있습니다. 인도에서는 의사 밑에서 1년 정도 보조로 일하면, 정식 의과대학을 나오지 않았더라도 의사가 '이 사람은 1년 동안 나의 보조로 일했습니다.'라고 서명만 해주면 동네에서 약을 판매하거나 간단한 치료를 할 수 있는 ‘빌리지 닥터’ 자격이 주어집니다. 의사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보니 생겨난 제도입니다.
우리 수자타 아카데미에 있는 의사도 이런 빌리지 닥터인데, 놀랍게도 외상 치료 실력은 한국 의사들보다 뛰어납니다. 그 이유는 하루에도 수십 명의 환자를 진료하며 많은 임상 경험을 쌓았기 때문입니다. 전갈이나 뱀에 물린 환자, 다리가 부러진 환자, 종기가 난 환자 등 다양한 환자를 끊임없이 치료하다 보니 실제 현장에서의 대응력이 매우 높습니다.
물론 인도 의사들이 항생제를 과도하게 처방하는 경우가 있어, 한국 의사들이 보고 놀랄 때도 있습니다. 이는 분명 바람직하지 않은 점이지만,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빠릅니다. 인도에 가서 감기에 걸렸을 때 인도 의사에게 처방을 받으면 금세 낫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반면 한국 의사의 처방은 비교적 약해, 효과가 느리게 나타납니다. 이런 현상은 인도의 현실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대부분의 환자들이 가난하기 때문에, 약을 먹고도 증상이 금방 나아지는 것을 느끼지 못하면 병원에 오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도 의사들은 환자들이 단기간에 증세를 개선시킬 수 있는 ‘강한 처방’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임상 경험이 많으면 병을 잘 고칠 수 있습니다. 특히 한의사의 경우에는 임상 경험이 쌓일수록 실력이 향상됩니다. 기계로 진단하고 치료하는 분야라면 기술 습득이 더 중요할 수도 있겠지만, 한의학은 사람의 몸을 직접 진맥하고 침을 놓는 등 환자의 상태를 세밀하게 살펴야 하는 학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풍부한 임상 경험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따라서 질문자가 훌륭한 한의사가 되기 위해서는 가능한 한 많은 임상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의사들의 임상 기회를 빼앗아서라도 배우려는 자세가 필요할 정도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다른 의사들과 비교해 ‘내 환자가 너무 많다’라고 불평한다면, 이미 관점이 잘못된 것입니다. 설령 초과근무를 하거나 식사할 틈도 없이 바쁘게 진료하더라도, ‘임상 경험이 많아지는 것은 내게 주어진 소중한 기회다’라는 관점을 가진다면 그 어떤 어려움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론 요즘은 옛날과 달리 환자를 진료하면 반드시 진료기록을 남겨야 하다 보니, 임상 기회가 많아질수록 기록해야 할 행정 업무도 함께 늘어납니다. 그래서 더 힘들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선생님들 중에도 ‘아이들만 가르치면 좋겠는데, 행정업무가 너무 많아 힘들다’라고 하시는 분들이 있지요. 하지만 가르침과 행정은 떼어낼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환자만 진료하고 싶다’라고 해도, 진료기록과 처방은 결국 의사가 직접 기록해야 합니다. 그것이 의사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러한 일을 귀찮게 여기기보다, 환자를 진료한 뒤 그 결과를 기록하고, 증상에 맞게 처방을 내리는 것까지 모두 의사의 역할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습니다. 한의사는 특히 임상 경험이 곧 실력으로 이어지는 직업입니다. 그러니 환자를 많이 보는 것을 귀찮게 여기지 말고, 오히려 그것을 즐겁게 받아들이고 감사히 여겨 임상 경험을 많이 쌓는다면 더 훌륭한 한의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보니 일단 부끄러운 마음이 좀 들었습니다. 앞으로 더 많은 경험을 쌓아서 훌륭한 한의사가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환자에게 충분히 설명하려다 보니 진료 시간이 자주 늦어집니다. 환자의 이해를 우선해야 할까요, 아니면 약속된 시간을 지켜야 할까요?
외국인 환자를 이해하려 하지만 규칙을 어기고 이기적인 태도에 화가 납니다. 이런 감정을 어떻게 바라보고 다스려야 할까요?
36년 공직 생활을 마치고 퇴직을 앞두고 있습니다. 앞으로의 삶을 어떻게 정리하고 준비해야 할까요?
죽음을 두려워하는 환자들에게 신앙에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 위로와 힘을 줄 수 있을까요?
보건 의료인으로서 어떤 관점을 갖고 봉사를 해나가면 좋을지 올바른 관점을 가질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저녁 7시가 되었습니다. 다음 강연 때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여러 가지 업무들을 본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정토회 상임천일준비위원회와 회의를 한 후 다문화 가족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오후에는 청년 페스타 행사를 준비하는 서포터스 워크숍에 참석한 후 저녁에는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