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9.22. 태국 3일째, 방콕 교민 즉문즉설
“다국적 가족 속에서, 정체성을 어떻게 가져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방콕 공항 근교에 JTS 연수원 설립을 위한 부지를 답사하고, 방콕에 사는 한국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한 후, 한국으로 귀국했습니다.

오늘 새벽 1시 30분에 숙소에 도착한 스님은 잠시 취침을 한 후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하고 오전 10시에 JTS 연수원 부지를 답사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정토회 회원 황소연 님 부부도 함께 동행했습니다. 방콕에 있는 두 개의 공항에서 한 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JTS 연수원 후보지 몇 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린 곳은 방콕 수쿰윗 지역에 위치한 자스민 시티 호텔(Jasmine City Hotel)입니다. 이곳은 교통과 주변 환경이 편리해 국제적인 모임과 강연 장소로 많이 이용되는 곳입니다. 오늘은 이곳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열렸습니다.

오후 4시 30분부터 강연장 옆 대기실에서 태국 국경변 메솟 지역에서 난민 지원 활동을 하고 돌아온 JTS 봉사자들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스님은 먼저 봉사자들에게 현지 상황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이번에 메솟에는 안 가고, 북쪽 치앙마이 주 국경을 다녀왔습니다. INEB(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에서 그 지역의 여자 아이들을 보호할 필요가 있다고 해서요. 여러분은 서쪽 메솟 지역을 다녀왔는데, 직접 가서 보니 어떤 도움이 더 필요하던가요? 한국 기준으로 보면 뭐든 다 부족해 보이겠지만, 미얀마 내부의 상황보다는 그래도 국경 밖의 상황이 나은 편입니다.”

봉사자들은 네 차례 방문을 통해 파악한 현지 상황을 보고했습니다. 어떤 학교에서는 300인분의 급식을 준비한다고 하는데 실제로는 몇십 인분의 양밖에 안 되어 보일 만큼 식량이 부족했고, 어떤 학교는 인근 쓰레기 매립장 때문에 아이들이 자주 아프다고 했습니다. 학교마다 상황이 달라 어떤 곳은 큰 도움이 필요하지 않지만, 어떤 곳은 화이트보드, 의자, 책상, 문구류가 절실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현재 난민 캠프의 상황 변화를 설명했습니다.

“메솟에 미얀마 난민이 왔다 갔다 한 건 수십 년 됐습니다. 최근 우리가 다시 관심을 갖게 된 건 4년 전 쿠데타 이후 분쟁이 생기면서 난민이 많이 넘어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긴급 구조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몇 년이 지나니까 이제 다들 집을 짓고 정착해서 살고 있네요. 예전처럼 임시 천막이 아니라 아예 정착해서 학교도 거의 정규 학교처럼 운영되고 있고요. 이제 이곳은 긴급 구호가 필요한 난민 캠프라기보다는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빈곤 지역으로 보는 게 맞습니다. 대부분 집도 있고, 아이들도 학교를 다니고 있으니까요. 이제 메솟을 지원한 지 4년이 지났으니 이제 지원 방식을 바꿔야 할 때가 됐습니다. 긴급 구호는 철수를 하든지, 아니면 빈곤층 지원으로 방향을 전환해서 지속 가능한 형태로 바꾸든지 말입니다. 여러분들의 이야기를 잘 들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강연장으로 가 보았습니다.

강연을 준비하는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숙소에서 도시락으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저녁 7시부터는 강연장 옆 대기실에서 지역 인사들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새로 선출된 한인회 회장을 비롯해 9명의 지역 인사들과 만났습니다. 스님은 최근 유럽 순회강연을 하고 온 내용과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을 답사하고 온 내용을 공유한 후 태국 한인회 활동에 대해서도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강연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 7시 30분이 되자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상영되었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스님이 큰 박수를 받으며 무대 위로 걸어 나왔습니다. 스님은 지난 일주일 동안 난민들을 만나고 온 소식을 전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난 8월부터 세계 곳곳에 있는 교민 사회를 찾아다니며 순회강연을 다니고 있습니다. 올해 비행기를 몇 번 타야 하는지 세어 보니 69번이나 되었어요. 부럽죠? 한 번 타기도 어려운 비행기를 이렇게 많이 타니 얼마나 좋아요? 요즘 저는 계속 이동하며 살고 있습니다.

전쟁과 지진 속 보호받지 못한 아이들, 어떻게 도와야 할까요?

지난 일주일 동안은 미얀마, 캄보디아, 태국을 답사했습니다. 미얀마는 지금 내전이 계속되고 있어서 군부가 소수 민족 거주 지역을 폭격하고, 소수 민족은 유격전 방식으로 저항하고 있습니다. 이러다 보니 사람들이 고향을 등지고 다른 지역으로 피난을 가서 미얀마 안팎으로 난민이 생기고 있습니다. 이들은 국내에서 안전한 곳으로 이동하는 국내 난민과 태국과 방글라데시 쪽으로 국경을 넘어오는 국제 난민으로 나누어집니다. 게다가 올해 초에는 지진이 일어나 큰 피해를 보았습니다. 만달레이와 사가잉 두 지역의 지진 피해가 제일 크다고 해서 그 지역을 답사하고 왔습니다. 난민촌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전쟁 때문에 도망을 왔는지, 지진 때문에 도망을 왔는지 물어보니 ‘두 가지 다입니다.’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지진 피해자들은 주로 도로변에 천막을 쳐 놓고 살고 있었고, 전쟁 난민 중에는 부모와 헤어진 아이들도 많았습니다. 이 경우 남자아이들은 머리를 깎아 사미승을 만들고, 여자아이들은 넌(nun, 비구니)으로 만들어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난민들을 어떻게 지원할지 돌아보았습니다.

태국에서 미얀마와 접하고 있는 지역이 메솟과 치앙마이 지역인데, 치앙마이 쪽 국경은 치앙마이에서 차로 5시간이나 걸립니다. 이 국경 지역은 미얀마와 태국 쪽 모두 같은 샨(Shan)족이라서 난민들이 비록 불법 체류이긴 하지만 비교적 잘 정착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걸 보니 우리 북한 동포들이 식량난으로 인해 중국으로 넘어왔을 때가 생각났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대부분 두만강을 건너왔는데, 그 주변에 우리 조선족이 살고 있으니까 초기에는 보호가 잘 되었거든요. 하지만 나중에 북한 주민들이 너무 많이 넘어오자 인신매매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생겼습니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난민과 이주민이 많이 발생하고 있고, 그로 인해 각 나라 안에서도 갈등이 매우 심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이민자들을 증오하는 극우적인 경향이 세계적으로 급속히 번지고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볼 때 근본 문제는 빈부 격차입니다. 지금 빈부 격차가 급속도로 벌어지고 있거든요. 나라와 나라 사이의 빈부 격차뿐 아니라 한 나라 안에서도 빈부 격차가 심해지고 있습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의 빈부 격차가 심해지면서 가난한 나라 사람들은 자기 나라에서 살기 어려우니까 잘 사는 나라로 합법적이든 불법적이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주를 하고 있습니다, 조금 살 만한 부자 나라도 그 안에 빈부 격차가 심하니 그 나라 안의 가난한 사람들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사람들이 자기들의 일자리를 뺏는다며 저항을 매우 심하게 하고 있습니다.

보통 우파는 부자이고 좌파는 가난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지금 유럽이나 미국의 극우주의자들 중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민자에 대한 저항 때문에 이전의 좌우 이념 대립과는 성격이 다른 면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민족주의도 더 강화되고 있습니다. 평등을 지향하고 사회 보장이 잘 되어 있는 선진국에서는 자기들끼리 살면 사회 보장 혜택을 많이 받잖아요. 그런데 이민자가 자꾸 들어오면 혜택을 나눠야 하니까 저항이 크죠. 우리나라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북한과의 통일을 반대하는 여론이 높습니다. 통일이 되면 가난한 북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가진 것을 나눠 줘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영국이 유럽 연합(EU)에서 탈퇴한 이유도 유럽 연합(EU) 안에서 동유럽하고 사회 보장 혜택을 나누어야 한다는 것 때문이었지요. 특히 노년층이 반대가 심해서 결국 유럽 연합(EU)을 탈퇴하게 된 것입니다.

분열의 시대, 바른 길을 끝까지 가야 하는 이유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80년간은 평등, 평화, 사회적 정의 같은 민주 이념이 풍미했다면, 지금은 거꾸로 역풍이 전 세계적으로 부는 것 같아요. 그래서 나라와 나라 사이의 갈등도 심해지고, 나라 안에서 양극화 문제와 정치적 극단 또한 심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정치인들이 싸우는 것을 보면 거의 막장 드라마 같잖아요? 국회 의원들이 국회 안에서 시정잡배 같은 말을 쓰면서 스스로 품격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쓰는 말도 보면 한 나라의 지도자가 일반인보다 더 험한 언사를 공개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감정 조절이 잘 안 되는 시대인 것 같아요. 여러분도 화를 많이 내죠? 그래도 어떡합니까! 세상이 어떻든 우리는 전쟁을 막아야 하고, 평화를 지켜야 하고, 어려운 사람을 도와야 하고, 기후 위기를 극복해야 하고, 빈부 격차를 줄여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렇게 노력해도 상황은 더 나빠질 것 같습니다. 그럼 노력할 필요가 없을까요?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살이가 그렇지 않습니다. 인생살이는 결과만 놓고 볼 수는 없어요. 그것이 바른 길이라면 결과에 연연하지 않고 나아가야 합니다. 평가를 단기간에 하지 않고 100년 뒤에 봤을 때 과연 그때 우리가 무엇을 하는 게 중요했을까, 이런 관점을 가지면 이런 사회적 혼란에 덜 휘둘리게 될 것입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네 명과 대화를 나눈 후 현장에서 여섯 명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열 명과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다국적 가족 안에서 흔들리는 정체성에 대해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가족이 서로 다른 불교 전통과 예법 속에서 살아가며 ‘내가 옳다’는 집착이 커지고, 때로는 내가 틀렸을 가능성을 인정하기가 어렵다는 고백이 이어졌습니다.

다국적 가족 속에서, 정체성을 어떻게 가져야 할까요?

“저희 가족은 모두 다른 국적의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과 같이 지내면서 점점 한국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어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제가 가지고 있는 고집, 아집이 점점 커지는 것 같아요.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면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잘 어울리며 지낼 수 있는 스님의 지혜를 듣고 싶습니다.”

“한국인의 정체성이라 하면 어떤 것을 말하는 건가요?”

“저희 남편은 태국인이고, 집에서 일하는 분은 미얀마 분입니다. 다 같은 불교 신자이지만, 그들의 불교는 제가 알고 있는 것과 다릅니다. 제가 지금까지 보고 들어왔던 스님들의 모습과 이 나라 스님들의 모습은 많이 달라요. 저희 딸은 국적이 다른 엄마, 아빠뿐만 아니라 많은 시간을 집안을 돌봐주는 미얀마 분과 같이 지내다 보니 자연스럽게 미얀마 식으로 스님께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생각하는 방식, 사람을 대하는 방식, 화를 내는 방식을 비롯해 모든 것이 다르다 보니 제가 그동안 살아오며 옳다고 믿었던 것들이 흔들립니다. 저는 다른 사람들과 의견이 다르거나 제 생각이 틀렸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그것을 빨리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게 잘 되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잘못 살아왔다는 것을 스스로 깨닫고 인정하기가 어려워요.”

“질문자는 불교의 핵심 사상이 뭐라고 생각하나요? 본인이 기억나는 대로 한 가지만 말해 보세요. 불교 사상에 대하여 보통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불교 사상의 핵심은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여라.’ 하는 것이 아닌가요?”

“맞습니다.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돼요. 태국은 이렇구나. 미얀마는 이렇구나. 두 번째로 불교에는 공(空) 사상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에서 공(空)이라는 게 무엇인가요? 옳고 그른 게 있다는 뜻인가요? 없다는 뜻인가요?”

“옳고 그른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네, 옳고 그른 것이 없다는 것이 불교의 핵심 사상입니다. 그러나 기독교 사상은 선악이 분명합니다. 그래서 천사와 사탄이 있잖아요. 불교에는 그런 게 없습니다. 본래 옳고 그름이 없기 때문에 ‘시비를 떠나라!’ 이렇게 가르칩니다. 불교에서는 생멸(生滅), 즉 태어나고 사라지는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불생불멸(不生不滅), 생도 아니고 멸도 아닌 것입니다. 불구부정(不垢不淨), 깨끗한 것도 더러운 것도 아닙니다. 부증불감(不增不減), 늘어나는 것도 줄어드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불교의 핵심 사상입니다. 질문자는 불교를 전혀 모르고 있네요.

질문자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해도 ‘태국은 저렇구나.’ ‘미얀마는 이렇구나.’ ‘있는 그대로 보니 서로 다르구나.’ 하고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원래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것이 불교의 핵심 사상입니다. 질문자가 불교를 털끝만큼이라도 알고 있다면, 미얀마 불교와 태국 불교, 한국 불교가 각각 다르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이 사람과 저 사람,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름을 시비하지 않게 됩니다. 질문자는 지금 자신이 틀렸다는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느냐고 질문했는데, 그 사람이 틀린 게 없듯이 나도 틀린 게 없어요. 서로 다른 것에 대해 질문자 본인이 ‘나는 옳고 네가 틀렸다.’고 하다가 그게 아니다 싶으니 이번엔 ‘내가 틀렸다.’ 하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처음엔 ‘네가 틀렸다.’고 하고, 두 번째는 ‘내가 틀렸다.’고 하는 거예요. 네가 틀렸다, 내가 틀렸다는 것은 아직도 옳고 그름, 맞고 틀림이 있다는 관점에 서 있는 거예요.”

“그렇다면 저도 맞고, 그도 맞다는 말인가요?”

“아니에요. 그도 안 틀리고 나도 안 틀리고, 그도 안 맞고 나도 안 맞는 거예요. 맞고 틀린 게 없으니까요. 서로 다르다는 것입니다. 합장을 이렇게 하면 옳고, 저렇게 하면 틀린 게 아니라 서로 인사법이 다른 것입니다. 절하는 법이 다르고, 불상 모양이 다르고, 절 모양이 서로 다를 뿐입니다. 그가 틀리지 않았듯이 나도 틀리지 않은 거예요. 반대로 그도 맞지 않고 나도 맞지 않습니다. 맞고 틀리는 것이 본래 없고, 그저 다를 뿐이에요. 두 사람이 옷을 입고 있을 때 누구는 맞게 입고 누구는 틀리게 입은 것이 아니라 옷 색깔이 다르고 모양이 다를 뿐입니다. 얼굴빛이 희면 좋고 검으면 나쁜 것이 아니라 얼굴 빛깔이 서로 다른 거예요. 남자는 우월하고 여자는 열등한가요? 아닙니다. 그 반대도 아니고요. 그냥 성별이 다르고 인종과 종교, 믿음이 서로 다른 것입니다. 같은 불교라도 나라별로 그 모습이 다르고, 우리나라 안에서도 종파별로 다르고, 사찰별로 다르고, 그리고 같은 사찰 안에서도 스님에 따라 다 조금씩 다른 거예요. ‘왜 저 스님은 저렇게 말씀하시는데 이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시냐?’라고 생각한다면, 그 이유는 같아야 한다는 관점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저 스님은 저렇게 말씀하시네.’ 이렇게 보면 되는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질문자는 아이가 헷갈리지 않겠느냐고 걱정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아이는 세 가지를 동시에 보면서 적응하는 거예요. 우리는 한 가지에 적응했다가 다른 것을 하니까 헷갈리지만, 질문자의 아이는 세 가지를 동시에 경험하고 있는 거예요. 어른들은 공부할 때 집중해서 한 가지만 해야 한다고 생각하죠. 음악을 듣든지 공부를 하든지 하나만 해야 한다고 하는데, 어릴 때부터 귀에 음악을 틀어 놓고 공부해 온 아이들은 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것입니다. 한국말을 다 배우고 나중에 영어를 배우는 것이 우리가 해 온 방식인데, 질문자의 아이는 어릴 때부터 엄마한테는 한국어를, 아빠한테는 태국어를, 가정부에게는 미얀마어를 배우게 되면, 세 언어가 동시에 모국어가 되는 거예요. 대신 모국어가 하나인 사람보다는 조금 수준이 부족할 수는 있어요. 그러나 그것을 가지고 아이의 정체성이 태국이냐, 한국이냐, 미얀마냐 고민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과거의 사람을 기준으로 했을 때나 그런 구분이 필요한 것이지 아이의 정체성은 세 가지를 조금씩 다 가지고 있는 거예요.”

“네, 진짜 맞는 말씀 같아요. 사실 시어머니는 필리핀 분이시라 영어만 쓰시는데, 그래서 아이가 4개 국어를 동시에 합니다.”

“요즘 한국 시골 마을에서 이장을 하려면 5개 국어를 동시에 해야 해요. 왜냐하면 시집온 여성들이 필리핀 여성도 있고, 태국 여성도 있고, 베트남 여성도 있고, 중국 여성도 있으니까요.” (웃음)

“아이처럼 잘 받아들여 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옳다 그르다 하지 말고, ‘이 사람은 이렇구나.’, ‘저 사람은 저렇구나.’ 하고 보는 겁니다. 틀린 게 아닙니다. 서로 다를 때 나에게 선택의 자유가 생깁니다. 방을 이렇게 닦을 수도 있고, 저렇게 닦을 수도 있는 거예요. 어느 것이 틀리고 맞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나는 내 방식을 선택하면 되는 것입니다. 물론 질문자도 아이에게 ‘여러 가지 길이 있지만, 우리는 이 선택을 하자!’라고 말할 수는 있습니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방법도 있고 이런 방법도 있지만, 이곳은 내 집이니까 이 방식으로 했으면 좋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거예요. 당신이 잘못했다고 말하지 말고요. 이런 식으로 대화를 하면 화를 내지 않고도 조정을 할 수 있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화를 내지 않고 마음을 다스리며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원하는 일을 이루고 난 뒤 찾아오는 공허함을 어떤 가치관으로 채우며, 또 어떻게 욕심을 내려놓을 수 있을까요?

  •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시대에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며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화를 잘 내지 않는 내가 만만해 보일 때, 편하게 살려면 어느 정도는 분노를 표현할 필요가 있을까요?

  • 거짓말이 만연한 사회에서 아이에게 거짓말을 어떻게 가르치고 지도해야 할까요?

  • 부모상을 겪은 뒤 커진 불안을 어떻게 줄이고 마음의 평안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 정년퇴직 후 후회 없이 잘 살기 위한 삶의 방향은 무엇일까요?

  • 상속받은 사찰을 불자로서 팔아도 될까요? 어떻게 처분하는 것이 좋을까요?

강연을 마칠 무렵 전 한인회 회장께서 몇 년 전 스님에게 질문을 하고 큰 깨우침을 얻은 것이 지금까지 큰 힘이 되고 있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참석한 교민들도 두 시간 넘게 열강을 해준 스님에게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참석한 대부분의 청중이 스님에게 사인을 받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청중이 모두 강연장을 빠져나가고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방콕, 파이팅!”

이어서 동그랗게 둘러앉아 봉사자들과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봉사자들이 돌아가며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태국에 26년 거주한 사람부터 6개월밖에 안 된 사람까지 다양한 봉사자들이 참가했습니다. 방콕 정토회 회원들 뿐만 아니라 마닐라에서 온 아시아지회장, 국제지부 소속 회원들도 함께 강연을 준비했습니다. 봉사자들의 소개가 끝나자 스님이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다시 한 번 여러분들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오늘 소개를 쭉 들어 보니 태국에 오래 산 사람들이 많네요. 오늘 강연에 사람들도 많이 참여했고, 사람들이 질문도 차분하게 잘했습니다. 수고하셨어요.”

마지막으로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전했습니다.

“제일 중요한 건 정진입니다. 꾸준히 정진을 해서 우선 내가 괴로움이 없어져야 봉사도 하고 다른 일도 할 수 있습니다. 자기 인생이 힘들면 세상에 베풀 여유가 없어지니까요. 그러니 부지런히 정진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여러분이 여러 가지 뒷받침을 해주셔서 편안하게 답사를 잘 다녔습니다. 이런 자리를 빌어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밤 10시 30분에 방콕 수완나품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11시 30분 공항에 도착해 배웅을 나온 아시아지회 회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출국 수속을 마친 뒤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비행기는 새벽 1시 20분이 되어 방콕 공항을 이륙했습니다.

내일은 오전 8시 45분에 인천 공항에 도착한 후 곧바로 두북수련원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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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웅

지혜로운 말씀 감시합니다.~

2025-09-25 07:44:09

감로화

옳고 그름이 없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는 연습 꾸준히 합니다🙏

2025-09-25 07:39:28

김경숙

스님은 밤 낮이 없으신 것 같고 전 세계를 이웃집 드나들 듯 하시니 건강이 염려 됩니다. 조용하게 봉사하시는 정토회 봉사자분들도 정말 대단합니다. 부처님의 공 사상 잘 새겨 실천하겠습니다. 스님과 봉사자 분들께 감사합니다.

2025-09-25 07:3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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