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9.8. 유럽 순회강연(1) 런던(London)
“상처가 아직 남아 있는데, 어떻게 과거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2025년 법륜스님의 유럽 순회강연 중 첫 강연이 영국 런던(London)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어젯밤 10시 25분에 인천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현지 시각으로 오전 7시 15분에 암스테르담 공항을 경유한 후 7시 40분에 런던 히드로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스님은 밤새 비행기 안에서 쪽잠을 잤습니다.

수하물을 찾고 오전 8시가 넘어서 공항을 나왔습니다. 런던 정토회 회원들이 마중을 나와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공항을 나와 곧바로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런던 시내에서 지하철 노조 파업이 있어서 교통이 엄청 막혔습니다. 공항에서 숙소까지 2시간 50분이 걸렸습니다. 원래 오후 2시에 스님의 책을 영국에서 출판한 출판사와 미팅이 잡혀 있었는데, 오후 4시로 연기를 했습니다.

오늘 스님이 머물 숙소는 런던 정토회 회원인 김누리 님의 댁입니다. 숙소에 짐을 풀자 런던정토회 회원들이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잘 지내셨습니까?"

강연 준비 상황을 보고 받고 서둘러 점심식사를 하고, 출판사로 이동했습니다.

영국의 대표적인 출판사들이 입주해 있는 카멜라이트 하우스(Carmelite House)에서 오후 4시부터 출판사와 미팅을 시작했습니다.

출판사 담당 직원인 에밀리 님과 스님의 책에 대해서 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템즈강이 내려다 보이는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서 담소를 더 나누었습니다.

출판사와 가까운 지역에 강연장이 있어서 곧바로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세인트 존 워털루 교회(St John’s Church, Waterloo)입니다. 1820년대에 지어진 그리스 리바이벌 양식의 교회 건물로, 현재는 예배와 함께 문화·예술 행사가 열리는 역사적 공간입니다. 오늘은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이곳에서 열렸습니다.

스님은 강연장에 도착하여 곳곳에서 역할을 맡아 일하고 있는 봉사자들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저녁 7시에 런던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2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님이 모습을 보이자 뜨거운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먼저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런던의 날씨가 참 좋네요.”

“네.”

“어제까지만 해도 한국은 여전히 더웠습니다. 기온이 33도까지 올라가서 여름 날씨 같았어요. 게다가 올해 여름에는 곳곳에 폭우가 쏟아져서 홍수 피해도 많았고, 강릉은 사상 유례없는 가뭄으로 식수 공급조차 어려운 상황입니다. 기후 변화로 인한 피해가 매우 심각한 것 같습니다. 제가 런던에 오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런던 사람들은 기후 변화가 영국의 날씨를 더 좋게 만든다며 웃는다고 하네요. 여러분도 그런 이야기를 들어보셨어요?”

“네.”

“이곳에 와서 보니 기후 변화로 인해 해양성 기후임에도 불구하고 습하지 않게 느껴집니다. 마치 지중해의 날씨처럼 맑고 건조한 느낌이에요. 지구 전체의 기후가 변화하는 것이니 나쁜 지역이 있으면 좋은 지역도 있겠지요. 시베리아는 앞으로 농경지로 개발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소비 중독이 불러온 기후 위기, 우리는 왜 멈추지 못할까요?

지구 전체적으로 보면 기후 변화는 식생의 변화를 불러오고, 이는 여러 생물종의 소멸이나 이동을 가져오게 됩니다. 현재의 기후 조건에서 가장 우월하게 살아가는 종은 우리 인간입니다. 그래서 기후 변화는 인류에게 큰 위협이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기후 변화가 곧 지구의 종말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인간 종이 없어진다고 해서 지구가 종말 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여러 위험 신호가 나타나고 있지만 우리는 소비를 멈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소비는 마약과도 비슷합니다. 한번 중독되면 끊기가 굉장히 어렵습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느끼고 있을 겁니다. 걷다가 자전거를 타면 다시 걷게 되기가 어렵고, 자전거를 타다가 오토바이를 타면 다시 자전거를 타기 어렵습니다. 오토바이를 타다가 자동차를 타게 되면, 다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기는 힘들지요. 편하고 빠르게 사는 데 익숙해지면 다시 되돌아가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죽음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리게 됩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시커멓게 변한 폐 사진을 보여주며 죽음의 위험이 있다고 말해야 담배를 끊습니다. 그렇게 직접적으로 보기 전까지는 몸에 안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끊었다 피웠다 계속 반복하는 겁니다. 마약이 가장 중독성이 강하다고 하지만, 제가 볼 때는 소비의 중독성이 가장 심각한 것 같습니다.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하는 가치관이 형성되다 보니, 과소비가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고 오히려 부러워합니다. 그래서 고치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술이나 담배는 건강에 해롭다는 것을 알고도 끊지 못하는데, 소비는 오히려 좋은 것으로 알고 부러움의 대상이 되니 멈추기가 더 어렵습니다.

기후 위기 시대, 부유층의 과소비는 중범죄입니다

기후 변화의 측면에서 보면 과소비를 일삼는 부유층은 일종의 중범죄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부유층이라고 해서 반드시 소비를 많이 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소유와 소비는 조금 다르니까요. 재산이 많아도 검소하게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볼 때, 소비가 많은 부유층은 기후 위기 시대에 인류를 위기에 빠뜨리는 가장 큰 중범죄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러분들은 그런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이 문제는 개선되기가 어려울 것 같아요. 인류가 어느 순간 죽음의 위기에 도달하면 변화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현재로서는 기후 위기의 징조가 많이 보이긴 하지만 인간의 소비는 더 확대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기후 위기가 당장 생존을 위협할 수준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금 런던에서는 오히려 살기 좋아졌다고 하지 않습니까. 이런 상황이라면 기후 위기 문제가 해결되기는 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님은 청중의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다며 무릎 관절이 안 좋음에도 불구하고 2시간 동안 서서 강연을 했습니다. 사전에 5명이 질문을 신청하여 대화를 나누었고, 이어서 현장에서 2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과거 상처의 기억이 쉽게 사라지지 않아 억울한 마음이 남는데도 주변에서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는 말을 들어 혼란스럽다며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는 가르침을 일상에서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상처가 아직 남아 있는데, 어떻게 과거에 연연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스님의 법문 중에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는 말씀을 참 좋아합니다. 그런데 막상 일상생활에서 실천하려고 하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 부분이 있어서 질문드립니다. 예를 들어 피해자와 가해자로 나누어 생각해 보면, 피해자는 과거 상처의 기억이 마음속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앙금이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 가까운 친구들, 심지어 가해자까지도 모두 ‘과거에 왜 그렇게 연연하느냐?’, ‘신경 쓰지 마라!’고 하면 피해자로서는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왜냐하면 피해자의 상처는 아직 남아 있는데,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는 말은 아무 조치도 취하지 말라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저는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는 말씀을 제대로 알고 실천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그렇다면 질문자에게는 ‘과거에 연연하라’ 하고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앞으로 ‘과거에 연연하라’ 하고 외우면서 노력해 보세요.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과거에 연연하면 됩니다. (웃음)

‘이것을 놓아라.’ 하니까 ‘이것을 어떻게 놓습니까? 안 놓아집니다.’라고 되묻습니다. 이럴 때는 ‘그럼 그냥 들고 있어라.’ 하고 말해주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얼마나 쉽습니까? 이와 마찬가지로 질문자에게 ‘과거에 연연하라’ 하고 말씀드리는 겁니다.”

“제 질문은 과거에 연연하지 않기 위해 어떻게 실천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물론 과거에 연연하는 것은 쉬운데, 그러면 고통이 따른다는 걸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연연하지 않을 방법을 묻는 것입니다.”

“질문자는 과거에 연연하지 않으려니 고통이 따른다고 했잖아요. 이러나저러나 고통이 따르는 것은 둘 다 마찬가지니까 과거에 연연해 보세요.”

“너무 어렵습니다.”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네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나를 납치해서 성매매나 강제노역 같은 일을 시키려 했다고 합시다. 내가 거부하자 강제로 마약을 주사하는 거예요. 처음에는 맞지 않으려고 했지만, 반복적으로 주사를 맞다 보니 결국 중독이 되었어요. 나중에는 스스로 마약을 달라고 하게 되었습니다. 마약을 주면 시키는 대로 다 하겠다고 하게 된 거죠. 그러다 경찰에 발견되어 감금에서 풀려납니다. 풀려났으니 모든 게 원상복구가 될까요? 아니에요. 몸속에 남은 마약에 대한 의존성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결국 나는 다시 몰래 마약을 구하다가 단속에 걸립니다. 이때 나는 ‘이전에 납치되어 강제로 마약 주사를 맞았으니 내 책임이 아니다’라고 주장할 수 있을까요? 원인이 어떻든 지금은 내가 마약에 중독된 것이 문제인가요, 아니면 나를 납치해서 마약을 투약한 사람이 문제인가요?”

“저라면 처음에 마약을 투약하게 된 게 제 의지가 아니었다는 걸 항변하겠습니다.”

“내가 원해서 마약을 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이 강제로 주사를 놓은 것이니 나는 마약 사범이 아니라는 주장을 법률이 인정해 줄까요?”

“그래서 너무 억울할 것 같습니다.”

“당연히 억울하겠지요. 그러나 법적으로 이 사람은 마약 사범입니까, 마약 사범이 아닙니까?”

“법적으로 마약 사범으로 판결이 난다면 어쩔 수가 없겠지만, 나의 상황을 항변해서 최대한 정상 참작이 되도록 노력할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그 사람이 마약 중독자인가요? 주사를 놓은 사람이 마약 중독자인가요?”

“그 사람이 마약 중독자입니다.”

“그럼 이것을 극복하려면 자기가 극복해야 하나요? 남이 극복해 주어야 되나요?”

“본인이 극복해야 됩니다.”

“그런데 계속 과거에 다른 사람이 나에게 마약 주사를 놓아서 생긴 문제라고 원망한다면, 자기가 마약 중독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됩니까, 안 됩니까?”

“억울해하기만 하고 치료에 소홀하다면 도움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원인이 어디서 시작되었든 현재 마약에 중독되어 있는 사람은 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이건 내 문제라는 거예요. 내가 극복해야 됩니다. 과거에 내가 누구 때문에 마약 중독이 시작됐다는 얘기를 만 번 해봐야 지금 내가 마약 중독을 치료하는 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됩니다. ‘어떻게 시작되었든, 누구 때문에 시작이 되었든, 지금 이것은 내 문제다, 내 문제는 내가 극복해야 한다.’ 이렇게 생각해야 치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됩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10년 전에 성추행을 당해서 마음에 상처가 남아 있다고 합시다. 그래서 지금도 남자가 다가오면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남자 친구가 어깨에 손만 올려도 깜짝 놀라며 인간관계에 불편함을 느낀다면, 지금 나를 괴롭히는 건 과거의 가해자일까요, 지금의 나 자신일까요?”

“스스로 자기 생각에 갇혀 있는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일이 어떻게 시작되었든 지금 현재 상황에서는 내 문제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경험이 현재와 미래의 내 삶에 악영향을 준다면 그 과거에 얽매이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에 매여서 지금 현재의 내 삶과 미래를 해치기 때문입니다.

그 과거의 일이 특정 공간과 관련이 있다면 그 공간을 벗어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일까요? 아니면 어디에 있든 내 정신력을 길러야 할까요? 만약 그 공간에서 지금도 가해가 이어지고 있다면 당연히 해결해야 합니다. 그러나 가해자가 감옥에 갔거나 이미 죽어버렸다면 나의 치유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가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 나의 치유는 별개입니다. 10년 전에 나를 성폭행한 사람을 잡아서 처벌하고 감옥에 가두어 책임을 묻는 것은 사회 정의를 위해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내가 치유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나를 가장 소중하게 여기라는 말씀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아닙니다. 과거가 현재와 미래에 장애가 된다면 그 과거를 버려야 한다는 말입니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려도 울분이 올라오는 게 아니라, 단지 그런 일이 있었다는 정도로 담담해질 만큼 치유가 되면 그 경험은 오히려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과거가 현재와 미래의 삶에 도움이 되는 작용을 하는 겁니다. 다른 사람이 성폭행을 당했다고 할 때 그를 더 깊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고, 내가 극복한 경험을 들려줌으로써 그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어요. 경험을 한 그 순간은 불행이지만, 그것을 극복하면 나에게 유익한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어떤 정도가 되면 극복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 경험이 나의 현재와 미래에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을 때 극복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는 것은 과거를 무시하거나 이야기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만약 내가 성추행을 당하고 집에서 밤새 울고 있으면 누구에게 도움이 되겠습니까? 내 아까운 시간만 허비되고, 베개가 젖어서 빨랫거리만 늘지요. 창피해서 고발도 못 하면 사회 정의를 위해서도 도움이 안 됩니다. 고발은 복수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 사회 정의를 세우기 위해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복수는 실제로 나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성추행범이 10년 형을 받았다면 나의 피해가 그만큼 크다는 건데, 그걸로는 상처가 극복될 수 없어요. 나는 성추행을 하나의 사건 사고로 받아들여서 극복하고, 이러한 피해가 타인에게 발생하지 않도록 사회 정의를 위해 가해자를 고발하고 응징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수행적 관점에서는 지나간 과거에 연연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어릴 때 부모님이 때리고 욕해서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다고 합시다. 그로 인해 부모를 미워하며 살면 그것은 나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어린아이가 상처를 받은 일 자체를 잊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 상처가 현재와 미래의 나를 불행하게 만든다면, 이것은 내가 극복해야 한다는 겁니다. 엄마가 ‘그때 너를 때려서 미안하다’ 하고 사과한다 해서 상처가 치유되는 게 아닙니다. 아마 엄마는 그때 자기가 자식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걸 모를 거예요. ‘다 너 잘 되라고 했지, 잘못되라고 했나’ 이렇게 말할 겁니다. 엄마의 사과를 통해 치유를 받는 것은 수행이 아닙니다. 어릴 적 엄마로부터 받은 상처에 대해 ‘엄마도 인생이 얼마나 고달프고 힘들었으면 자기 자식을 그렇게 때리고 욕을 했겠나. 그때 엄마의 정신 상태를 생각해 보면 그럴 수가 있었다’ 하고 이해하게 될 때 치유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자기 상처를 자기가 치유해야 합니다. 다른 누구도 치유해 줄 수 없어요. 사람들은 다 자기 살기 바쁘기 때문이에요.”

“스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말씀하신 것도 이와 일맥상통합니다. 원수를 미워하는 것은 세상 사람 누구나 다 하는 일이에요. 그렇게 해서는 원한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적어도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런 굴레에서 벗어나는 길을 가야 하지 않겠습니까? 원수를 사랑하라는 것은 원수를 좋아하라는 게 아니라 원망과 미움에서 벗어나라는 말입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어릴 때부터 독립적으로 살아온 게 익숙했고, 영국으로 와서 국제결혼을 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니와 갈등이 생기고 나니 남편과도 불편해집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 영국에 온 지 3년쯤 되었고 취업도 했지만 아직 언어의 장벽을 느낍니다.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가 잘할 자신감도 없어 불안합니다.

  • 삼십육계 줄행랑을 가기 전에 충분히 다 해봤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실패하는 것과 포기하는 것의 차이가 무엇인가요?

  • 내가 우울증을 겪고 나니 그 영향으로 딸도 우울증을 겪었습니다. 이런 죄책감과 걱정을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 아내가 말기암 판정을 받고 나니 앞으로 어린 자식들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합니다.

  • 죽음이 두렵습니다. 스님도 죽음이 두렵나요? 죽음의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스님이 강연을 마무리하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신체가 병들었을 때 치료하면 낫듯이 우리의 마음도 괴로울 때 조금만 돌보면 누구나 괴롭지 않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즉문즉설을 듣는 것도 필요하지만, 행복학교에서 조금 더 나를 행복하게 하는 방법을 배워 본다든지, 아니면 정토불교대학에서 마음 작용의 기본 원리와 사유 체계의 형성 원리에 대해 공부해 본다든지, 하는 것도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마음 공부를 통해서 종교가 무엇이든 어디에 살든 관계없이 여러분들 모두 행복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강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책 사인회가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책을 가슴에 품고 줄지어 섰습니다. 스님도 사람들의 눈을 맞추고, 사람들도 스님의 눈을 맞추며 한 마디씩 건넸습니다.

강연장 뒤편에서 사람들이 계속 책을 사서 줄을 섰습니다. 사인회는 끝날 듯 끝나지 않았습니다.

모든 참석자들이 강연장을 빠져나간 후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스님은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강연장을 나왔고, 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과 함께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강연장을 밤 10시까지만 사용할 수 있고, 준비했던 의자 250개 중 150개도 모두 정리해야 했습니다. 단 1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봉사자들이 돌아가며 느낀 점을 간단히 나누었습니다.

“온라인으로만 뵙다가 이렇게 직접 뵙게 되니, 보름달을 만난 듯 밝고 따뜻한 기운을 마음에 안고 돌아갑니다.”

“몸이 힘들어 잠시 누웠는데, 스님은 끝까지 서서 강연하시는 모습을 보고 제 나약함과 스님의 강인함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처럼, 함께 나누어하니 하나도 힘들지 않았습니다.”

처음 참가한 봉사자와 경험 있는 봉사자 모두 함께한 시간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많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숙소로 다시 돌아오니 밤 10시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숙소와 식사를 준비해 준 김누리 님과 아담 님 부부, 런던 강연을 총괄한 전현미 님과 유럽 강연 전체 총괄 추희숙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스님의 책을 선물했습니다.

스님은 원고 교정과 몇 가지 업무들을 처리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유럽에서의 첫 번째 강연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내일은 새벽 4시에 일어나 기차를 타고 프랑스 파리로 이동합니다. 오후에는 현지인들을 위해 불어 통역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한국 교민들을 위해 유럽 순회 두 번째 강연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2025 9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13

0/200

견오행

늘 함께 합니다.고맙습니다.()()()

2025-09-11 08:17:22

세주행

스님의 살인적인 스케쥴
나태한 제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듭니다
오랜 트라우마로 힘들었는데
제 일임을 또한번 각인합니다
지금 저는 아무 문제없습니다
지금 이대로 감사합니다
스님 고맙습니다

2025-09-11 08:11:27

운정

한 사람이라도 더 괴로움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스님의 빡빡한 스케줄에서 그대로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2025-09-11 07: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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