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9.4. 홍콩 경유, 한국 도착
“사람마다 정해진 사주팔자가 있나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약 2주간의 북미 서부, 오세아니아 순회강연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날입니다.

스님은 어젯밤 12시 10분에 퍼스 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7시간 45분을 비행하여 아침 8시에 중간 경유지인 홍콩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에서 간단히 아침 식사를 하고, 스님은 책상이 있는 조용한 공간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피로가 몰려올 법도 한데, 스님은 업무를 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오전 내내 기다렸다가 오후 2시 25분에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습니다.

약 4시간을 비행하여 저녁 7시 5분에 인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짐을 찾고 정토회관에 도착하니 밤 9시가 다 되어 있었습니다.

마중 나온 실무자들이 반갑게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 무사 귀환을 축하합니다.”

“네, 잘 다녀왔습니다.”

스님은 짐을 정리하고, 원고 교정을 본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새벽 3시에 서울을 출발해 두북수련원으로 가서 농사일을 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으므로 지난 8월 23일 시애틀에서 열린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사람마다 정해진 사주팔자가 있나요?

“저는 사람마다 태어날 때 정해진 사주팔자라는 게 있는지 궁금합니다. 특히 ‘해외에서 살아야 잘 풀리는 사주’ 같은 게 실제로 있는지 알고 싶습니다. 제 사례를 들어 볼게요. 30대 초반에 제 친구들은 결혼해서 가정을 꾸리는 시기에 저는 미국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2년만 공부하고 돌아올 계획이었는데, ‘이 시기에 떠나는 게 맞을까?’ 하는 고민이 들어서 기독교 신자임에도 처음으로 사주를 보러 갔습니다. 그분이 제 사주를 보더니 간단명료하게 ‘해외에서 사는 사주를 가지고 태어났으니, 나가서 살아야 더 잘 산다.’라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에 마음이 정리되어 곧바로 미국으로 떠났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좋은 사람을 만나 결혼도 하고, 직장도 다니며 살다 보니 어느새 10년째 미국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정말 이게 내 사주일까?’ 하는 생각이 가끔 듭니다. 원래 계획은 2년 후 돌아가는 것이었거든요. 정말 해외에서 살아야 하는 사주라는 것이 있는 걸까요? 그렇다면 여기 계신 분들도 비슷한 사주를 가졌을까요? 또 저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가도 괜찮을지 궁금합니다.”

“우리 속담에 ‘사주팔자는 자기 하기 나름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천성은 죽을 때까지 잘 안 변해요. 그래서 흔히 ‘타고났다.’라고 표현합니다. 인도에서는 전생으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하고, 중국에서는 생년월일시로 정해진 사주를 타고났다고 합니다. 결국 잘 변하지 않는다는 의미죠. 인도에는 카르마(Karma)라는 말이 있습니다. 흔히 운명으로 번역되지만,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형성된 것’이라고 해석하셨습니다. 불교에서는 이를 업식(業識)이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습관’입니다. 습관이란 무의식적으로 자동화되어 쉽게 바뀌지 않는 행동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운명’, ‘성질’, ‘천성’이라고 부르는 것도 사실은 모두 형성된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담배를 끊기 어려워하는 사람을 보면서 ‘전생부터 담배를 피웠다.’ 라거나 ‘사주에 담배 피우는 팔자가 있다.’라고 말하지는 않잖아요. 누구나 그것이 형성된 습관이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의 성격이나 습관, 기질도 형성된 것이며, 주로 세 살 무렵까지 만들어집니다. 그런데 이런 기질은 한번 형성되면 웬만해서는 쉽게 바뀌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활’한 수준이 아니라면 말이에요. 부활은 단순히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태어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근본적으로 완전히 새롭게 거듭나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환골탈태하듯 기질과 성질이 완전히 바뀌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되는 것이 진정한 부활이에요.

그러니 부활이란 단순히 몸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하는 게 아닙니다. 기독교에서 흔히 말하는 ‘육체의 부활’로만 이해하면 너무 낮은 차원의 해석이에요. 진정한 부활은 사람이 근본적으로 거듭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의 기질이 바뀌기 어렵다 보니 사람들은 점점 ‘운명은 이미 정해져 있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인도 사람들은 ‘왜 저 사람은 저런 기질을 가졌을까?’, ‘태어날 때부터 갖고 태어난 게 아닐까?’, ‘그럼 그 기질은 어디서 왔을까?’라고 물었습니다. 이러한 질문에 대해 인도 문화는 그 답을 ‘전생’에서 찾았습니다. 전생에서 지은 업의 결과가 현생으로 이어지고, 그 씨앗이 자라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고, 열매가 다시 씨앗이 되어 이번 생으로 이어진다고 본 거예요. 중국에서는 생년월일시, 이 네 가지로 사람이 타고나는 기질과 천성이 정해진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주팔자예요. 또 이름은 다르지만, 운명은 신이 정한다는 관점도 공통적으로 나타납니다. 기독교에서는 하나님이, 이슬람에서는 알라가, 중국에는 옥황상제가, 한국에는 하느님이 사람의 운명을 정한다고 믿었어요. 이처럼 과거 문화에서는 운명의 원인을 보면 ‘전생’, ‘사주팔자’, ‘신’ 이렇게 세 가지로 설명해 왔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이 문제를 깊이 통찰하신 끝에 ‘운명은 형성된 것이지 불변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부처님의 핵심 가르침은 무상(無常)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고,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는 않습니다. 쉽게 바뀐다면 애초에 ‘성질’이라고 부르지도 않았겠죠. 성격이나 습관을 바꾸려면 꾸준한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마지막 유훈으로 ‘불방일 정진(不放逸 精進)’, 즉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라.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라는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습관은 오랜 시간 쌓인 결과이기 때문에, 바꾸려면 그만큼 오랜 시간 꾸준히 정진해야 합니다.

형성된 것에는 크게 두 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 유전적 요인입니다. 예를 들어, 새가 흙을 물어다 집을 짓는 건 배워서가 아니라 유전자에 새겨진 본능이에요. 사람에게도 기본적인 유전적 기질이 있지만, 사람 사이의 유전적 차이는 매우 작습니다. 둘째, 정신적으로 형성된 일종의 ‘앱’ 같은 것이 있습니다.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앱이 깔려 있어서, 그 앱에 따라 세상을 보고 듣고 느끼는 거예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천성이나 운명이라는 것도 사실은 형성된 성향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성향이나 기질을 반드시 다 바꿔야 하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어떤 성향 때문에 큰 손실을 본다면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화를 잘 내는 성격은 때로는 장점이 될 수 있지만, 그 성질 때문에 큰 피해를 본다면 고쳐야겠죠. 역사 속에서도 성질을 다스리지 못해 나라를 위태롭게 한 장수들이 있었잖아요. 이렇게 자신에게 해가 되는 성향을 개선하는 것, 그게 바로 수행입니다. 이것이 곧 ‘운명을 바꾸는 길’이고, 기독교식으로 표현하면 ‘거듭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표현만 다를 뿐 수행은 불교에만 있는 게 아니에요.

만약 제가 스님이라는 사실을 숨기고 사주를 보러 간다면, 무당이 제 사주에 자식이나 배우자 복이 있다고 말할까요? 아마 없다고 할 겁니다. 왜냐하면 무당은 어느 정도 무의식을 읽어 내는 기질이 있기 때문이에요. 흔히 신기가 있다고 하는데, 신기가 있는 사람들은 대체로 직관력이 뛰어납니다. 말소리만 들어도 그 사람의 심리가 무의식적으로 전달되는 거예요. 그래서 부모님이 돌아가신 일로 무당을 찾아가면, 들어서자마자 ‘너희 어머니 돌아가셨구나!'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깜짝 놀라지만 사실 과거의 일은 무의식에 남아 있고, 무당은 그 일부를 읽어 내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아직 오지 않은 미래는 읽을 수 없어요. 대신 내가 걱정하는 부분을 읽어 낼 뿐입니다.

용한 무당은 과거는 잘 맞히지만 자기 운명은 모릅니다. ‘과거를 아니까 미래도 알겠지.’ 하는 생각은 착각이에요. 무당은 아마도 질문자의 활달한 기질을 읽고 ‘집에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라!’, ‘한국에 있지 말고 외국으로 가라!’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저도 딱 한번 가봤어요. 이제는 사주를 보러 가지 않고 저 자신을 믿으려고 합니다.”

“사람이 어린 나이에 죽는 걸 단명이라고 하죠. 그럼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학생들은 모두 사주에 단명한다고 나왔을까요? 지금 사주를 본다면 ‘대부분 그렇다.’라고 할지도 모르지만, 사고가 나기 전에는 그렇게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예를 들어, 제가 결혼을 했다면 분명히 ‘아내도 있고 자식도 있는 팔자’라고 나왔겠죠. 그런데 제가 스님이 되는 삶을 선택했기 때문에 지금은 ‘아내 복도 없고 자식 복도 없다.’ 이렇게 나오는 거예요. 어떤 사람은 절대 하지 않겠다고 한 일을 결국 하게 되기도 하지만, 그것 또한 자신의 선택입니다. 결혼을 선택하면 사주에 배우자 복, 자식 복이 나오고, 혼자 살면 없다고 나오는 거예요. 제가 이렇게 빙빙 돌려 말하는 뜻을 이해하시겠어요?”

“네, 저도 생각해 보니 제 선택이었고, 그 선택에 만족하며 앞으로도 제 선택을 믿고 가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옛날에는 결혼을 한 번밖에 할 수 없었고, 얼굴도 모른 채 만나 보지도 못한 사람과 결혼해야 했습니다. 특히 과거 여성들은 사회 활동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결혼이 운명을 좌우했어요. 그러니 미래에 어떤 남자와 결혼할지가 늘 궁금하고 불안했어요. 그래서 그 불안을 잠재울 안전장치로 궁합이 생겨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몇 년씩 사귀고, 심지어 동거까지 하면서 서로를 확인하는 시대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과연 궁합을 볼 필요가 있을까요? 물론 사람 속을 다 알 수는 없지만, 요즘은 결혼 후에 이혼도 할 수 있고, 재혼도 가능하잖아요. 옛날에는 궁합이 필요했지만, 지금은 본인이 직접 만나서 검증하는 것이 훨씬 정확합니다.

요즘도 부모들이 ‘궁합이 안 좋다.’라고 말하는 건 사실 결혼을 반대하고 싶을 때입니다. 여러분도 연인이 자꾸 결혼하자고 하는데 마음이 내키지 않으면 ‘궁합이 안 좋다더라.’ 이런 핑계를 댈 수 있겠죠. 그러니 지금 시대에는 사주나 궁합을 하나의 과거 문화로 존중하면 됩니다. 그걸 가지고 운명이 정해져 있다거나 해외로 나갈 팔자가 있다는 식으로 절대시할 필요는 없어요. 그래서 제가 첫마디에 ‘팔자는 본인 하기 나름이다.’라고 말씀드린 것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2025 9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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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팔자

팔자는 본인하기 나름이다 !
최진실이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고 한 말이 생각나네요 ㅎㅎㅎ
모친이 사주팔자를 맹신해서 넌 남편복이 없어서 이혼할꺼라고 결혼을 못하게해서 40세 넘어 결혼식도 못하고 혼인신고만 하고사는데 예전처럼 매일 밥해주고 빨레해주고 청소해달라고 도우미 쓰면 돈아깝다고 10년동안 이혼하라고 괴롭혔는데 작년부턴 잘 안하시네요 ㅎㅎ

2025-09-07 20:49:18

박민주

고맙습니다

2025-09-07 20:07:49

길상

진정한 부활은 사람이 근본적으로 거듭나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2025-09-07 18:45: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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