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부터 3일 동안 문경 선유동 정토연수원에서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청춘캠프'가 열립니다.
스님은 청춘캠프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아침 6시 50분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해 문경으로 향했습니다. 광복절 연휴가 시작되면서 아침부터 고속도로에 차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2시간 만에 도착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차가 막혀서 제시간에 도착하기가 어렵게 되었습니다.
차가 막힌 구간을 피해 국도를 이용하여 쉼 없이 달렸지만 행사 시작 시간인 10시에 겨우 선유동 정토연수원에 도착했습니다.
대강당에는 정토회 청년특별지부 활동가 50여 명이 모인 가운데 오전 10시 정각에 청춘캠프를 시작하는 입재식을 했습니다.
삼귀의와 반야심경 봉독을 한 후 전국에서 모인 모둠별 참가자 소개 시간을 가졌습니다. 경기동부 모둠을 시작으로 경기서부, 경상남부, 경상북부, 서울남부, 서울북부, 충청전라 모둠 순서로 앞으로 나와 자기소개를 했습니다. 스님은 뒷자리에 앉아서 청년들의 소개를 조용히 지켜보았습니다.
불교대학 진행자, 돕는이, 모둠장, 그룹장 등 청년특별지부 책임봉사자 50여 명이 참석했습니다. 대부분 직장생활과 정토회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데, 2박 3일 동안 스님과 함께 청년 전법의 방향을 그려나갈 것을 기대하며 먼 길을 달려왔습니다.
이어서 청년 활동가들이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입재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이번 청춘캠프가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유는 무엇인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청년이 살아야 나라의 미래가 밝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은 사회 초년생이지만 20년, 30년만 지나면 청년이 우리 사회의 중요한 구성원이 되어 각 분야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청년들 중에 미래의 대통령이 나오고, 정부 부처의 장관이 되거나 기업을 이끄는 기업가가 나오게 됩니다. 30년 후의 미래를 예측하려면 국제 관계, 경제 성장, 기술 발달에 대해 살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금의 20대와 30대 청년들이 얼마나 진취적인 기상을 갖고 있는가입니다. 왜냐하면 건강한 몸과 정신을 가진 청년들의 힘찬 기상이 바로 미래를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미래를 바꾸는 결정적 힘, 청년의 힘찬 기상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 불교학생회 회장을 맡아 경상남도와 경상북도 지역 전체를 총괄하는 불교학생연합회를 구성하여 활동했습니다. 그때는 방향을 잡고 이끌 만한 선배가 따로 없었고, 졸업한 선배가 가끔 찾아오긴 했지만 강압적으로 기강만 잡으려 했지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습니다. 방학 때는 수련회 준비도 했는데, 장소 물색부터 밥 짓고 행사 준비하는 모든 것을 학생들이 직접 했습니다. 절에 계신 스님들도 학생들을 가르치려고 하기보다는 시끄럽게 떠든다고 수련장을 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수련 장소를 구하는 게 가장 큰 문제였어요. 그러다가 어찌하여 수련 장소를 구한 다음에는 매 끼니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필수 재료인 쌀은 각자 가져오는 걸로 하고, 양념 재료들은 동네 집집마다 다니면서 조금씩 얻어서 마련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제대로 불교 교육도 받지 않은 학생들이 뭘 안다고 그렇게 열심히 했나 싶습니다. 토요일 오전에 학교 수업을 마치고 나면 오후에 불교학생회 법회를 열었는데, 많을 때는 수백 명이 모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만큼 홍보 활동도 열심히 했습니다. 물론 그 시절에는 불교학생회뿐만 아니라 교회나 YMCA 같은 모임에서도 젊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활동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반면에 요즘 중학생, 고등학생들은 육체적 성장 상태는 아주 좋지만, 스스로 결정하는 자발성이 부족해서 청소년인데도 어린애처럼 보입니다. 인간이 잘 성장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지식을 배우고 영양가 많은 음식을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청소년기에 스스로 무언가를 해본 경험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젊은이들의 힘찬 기상을 만들어 줍니다. 1970년대에 대학을 다닌 청년들은 유신체제에 맞서서 저항하며 감옥에 갇히기도 했습니다. 경제 개발이 시작되면서 사회는 효율성을 중시했지만, 정치적 탄압으로 분위기는 억압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엄혹한 상황에서도 일부 청년들의 저항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는, 젊은이라면 너도나도 두려움 없이 부당한 억압에 저항을 했습니다. 저는 당시에 대학생들을 지도하고 있었는데, 대학교에서도 교수가 학생을 가르친다기보다 학생들이 모든 것을 결정하고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갔습니다. 대학생들의 저항이 커지면서 학교의 주도권이 교수보다 대학생들에게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요즘 대학은 어떻습니까? 행정 담당자와 교수가 다 결정하고, 대학생들은 그저 따르기만 합니다. 과거와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대학교에 가면 학생운동을 열심히 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청년 시절에는 기상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민주화 운동을 했던 청년 세대들은 60대가 되어도 현재의 20대 청년 세대보다 기상이 더 강합니다. 저는 그들의 청년 시절을 칭찬하려는 것도, 비난하려는 것도 아니에요. 다만 젊은 시절에 부당한 억압에 맞서 저항한 그 기상을 가졌기 때문에 사회에 나와서도 현실을 외면하지 않고 열심히 살았다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게 바로 청년의 기상입니다.
부모 세대의 간섭 속에 자립심을 잃어버린 청년들
오늘날 청년들의 자발성 부족 현상은 이미 20년 전에 일본에서도 나타난 문제입니다. 예전에 저희 세대의 부모님들은 초등학교를 못 가거나 초등학교만 겨우 다닌 경우가 많았어요. 그렇기 때문에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에 대해 부모가 도움을 줄 수가 없었고, 학생이 스스로 정보를 찾아보고 선배들에게 물어보며 결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부모가 자식보다도 학력이 높고 더 많은 정보를 알고 있어요. 그래서 ‘대학은 이렇게 가라’, ‘유학은 이렇게 가라’ 하며 간섭을 하게 되는 겁니다.
오늘날 청년들이 의존적인 이유는 게을러서도 아니고 타고난 기질 때문도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애완용 동물처럼 하나하나 알려주는 환경 속에서 자라서 스스로 결정을 해볼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스무 살, 서른 살이 되어도 내가 인생의 주인으로서 결정을 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물론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닙니다. 어릴 때부터 예술이나, 체육, 방송, 연기 등 특정 분야에서 재능을 발휘하는 소수는 옛날보다 더 자발적으로 살아갑니다. 그러나 다수의 젊은이들에게는 패기와 기상이 많이 없어졌어요. 기술적인 지식은 많을지 몰라도 스스로 결정하는 능력이 많이 없어진 것입니다. 저는 우리 청년들이 움츠러들지 말고 힘찬 기상을 가지고 활동했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이나 정토회 회원이 되라는 게 아니라 청년으로서 자발적인 기상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청년 세대의 망설임과 불안을 떨쳐낼 축제, ‘청년 페스타’
최근 기사에 따르면 현재 우리나라 청년 중에서 40만 명이 직업이 없다고 해요. 그렇다면 우리가 젊은이들에게 힘찬 기운을 불어넣고 좋은 기상을 심어주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합니다. ‘청년 페스타’를 열어서 무겁지 않으면서 유익한 자리를 만들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많이 와도 내용이 없으면 아쉬움이 남습니다. 사람만 많이 오고 내용이 없는 행사를 우리가 굳이 할 필요는 없겠지요. 그런 것은 전문 기획사에서도 많이 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조금 가볍지만 내용도 담긴 행사를 했으면 합니다.
이런 취지에 여러분이 동의한다면 구체적으로 어떻게 만들지는 여러분이 직접 기획해야 합니다. 스님이나 법사님들의 아이디어도 좋지만, 그것보다는 청년 여러분이 직접 고민하고 실행해 보는 과정을 경험해 보는 것이 정말 중요합니다. 직접 기획하고 진행을 해봐야 문제가 무엇인지 알 수 있고, 앞으로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도 알게 됩니다.
어떤 일이 성공했는지 실패했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무언가 부족해서 실패했다면 그 부족한 부분을 보강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은 곧 실패가 아닌 성공이 되는 겁니다. 우리는 이런 관점에서 사물을 봐야 해요. 젊은이들에게는 실패할 기회가 필요합니다. 아무 노력도 없이 함부로 해서 실패하라는 게 아니에요. 정말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는데도 실패한다면, 그것을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몇 번의 실패를 통해서 우리는 더 좋은, 더 새로운 기획을 다시 해낼 수가 있으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2박 3일 동안 함께 머리 맞대고 의논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여러분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될 것입니다. 이런 경험들이 회사에서, 직장에서, 공부를 할 때도 움츠러들지 않고 해낼 수 있는 힘이 될 거예요. 또 여러분이 사회에서 배운 기술적인 경험을 가지고 정토회에서 자원봉사 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반대로 정토회 활동을 통해서 얻은 경험을 학문 연구나 회사, 직장에 다시 적용해 나가고, 이렇게 서로 상생하는 작용을 해나가야 합니다.
바로 그런 취지에서 ‘청년 페스타’를 한번 열어보자는 아이디어가 나온 겁니다. 이번에 경험이 쌓이고 노하우가 생기면 한국뿐만 아니라 일본, 베트남, 태국, 인도 등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참여하는 ‘국제 청년 페스타’를 해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결과물이나 성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런 행사를 통해 젊은이들이 마음속의 망설임과 불안을 떨쳐내고, 힘차게 앞으로 나아갈 용기와 기상을 얻는 것입니다.”
청년들은 큰 박수로 스님의 말씀에 화답했습니다.
모두 각자 집에서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내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서로의 음식을 나누어 먹으며 한층 더 친밀한 분위기가 이어졌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나와 정토회’를 주제로 모둠별 대화 시간을 가졌습니다. 청년들은 캠프에 참가하기 전, 사전에 스님의 저서인 '혁명가 붓다' 책을 학습하고 토론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전 토론에 이어서 오늘은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순간과 깨달은 점이 무엇인지 서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오후 3시부터는 스님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청년들은 수행자로서 활동하면서 생기는 고민에 대해 자유롭게 질문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여덟 명이 손을 들고 수행, 환경, 복지, 평화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생긴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수행을 하면 괴로움이 점점 줄어드는지, 어느 순간 괴로움이 완전히 없어지는지, 스님의 경험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스님은 언제 괴로움이 없어졌다고 느끼셨나요?
“저는 괴로움이 없어지길 원해서 수행하기 시작했고, 수행한 3년을 되돌아보면 점점 괴로움이 없는 상태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스님께서는 처음 수행을 시작한 시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괴로움이 점점 줄어들었는지, 아니면 특정 시점부터는 비슷한 상태인 건지 궁금합니다. ‘내가 괴로움이 완전히 없어졌구나!’하고 느끼는 계기가 있었다면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궁금합니다. 스님은 언제 ‘괴로움이 없어졌다’고 느끼셨나요?”
“저는 지금도 괴로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질문자가 질문하신 대로 괴로움이 완전히 없어진 계기가 무엇인지 대답하기가 조금 곤란하네요.” (웃음)
“약간 비밀일 것 같다고 생각하긴 했습니다.”
“어떤 문제에 대해 남은 괴로워하지만 나는 괴로움이 없을 수도 있고, 또 어떤 문제에 대해서는 나에게 괴로움이 일어나지만 알아차림을 통해서 금방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어떤 순간부터 괴로움이 완전히 없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삶을 정체된 것으로 보기 때문에 생기는 일이에요. 예를 들어, 돈을 빌리면 이자를 쳐서 갚아야 합니다. 보통 사람은 궁할 때 돈을 빌리는 쪽으로 행동하지만, 수행자는 돈을 안 빌리는 쪽으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래도 꼭 빌려야만 하는 필요성이 있어 빌릴 때는, 당연히 이자를 쳐서 갚는다는 자세를 갖기 때문에 빚 갚는 것에 대해서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수행자는 인연을 짓지 않아서 과보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필요에 의해서 혹은 나도 모르게 인연을 지어 버렸다면, 그 과보를 기꺼이 받습니다. 남이 볼 때 저 사람은 괴로워한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어려움을 예상해 버리면 더 이상 어려움이 아니게 됩니다. 칭찬을 받으려고 했는데 비난을 받으면 괴롭지만, ‘이렇게 하면 일부 비난을 받을 수밖에 없다’라는 것을 알고 내가 행하면 실제로 비난을 받아도 큰 괴로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떤 계기를 통해서 깨달음이 오거나 큰 변화가 일어날 때는 대체로 불행한 일을 겪을 때입니다. 고문을 당한다든지, 큰 실수를 저질렀을 때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작은 잘못은 자기가 잘 인식을 못하지만, 큰 잘못을 저지름으로써 자신의 본질을 깨닫는 경우도 있고, 큰 고통을 겪으면서 변화의 계기가 마련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일부러 고통을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고행주의자가 되는 거예요. 그러나 나에게 닥친 재앙이나 고통은 피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입니다. 그런 고통이나 재앙이 닥쳤을 때 수행적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 오히려 더 큰 자극의 계기가 될 수 있어요. 선지식들의 예를 봐도 큰 잘못을 계기로 거꾸로 환골탈태하거나, 큰 억울함을 당하면서 그걸 통해 자기를 보는 기회를 얻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고문을 일부러 당해야 하나?’, ‘감옥을 일부러 가야 하나?’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는데, 제 말은 그런 경우를 당하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많은 고통을 당하면 주관적 시간이 길어집니다. 1년 고통을 당하면 편안한 10년 동안 배울 수 있는 것을 짧은 시간에 배울 수 있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려움이나 고통을 일부러 청할 필요는 없지만, 다가오는 어려움을 굳이 외면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런 관점을 가지면 어떤 일을 할 때 두려움이 줄어듭니다.
재앙마저도 복인 줄 알면 세상의 모든 일이 다 복이 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괴로워하지 않는 게 아니라, 본래 괴로워할 일이 없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에요. 괴로워할 일이 있는데 억지로 참고 이겨내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는 그냥 일이 있을 뿐이지 그 일 자체가 괴로울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때 생기는 심리적인 부작용으로 인해 괴로움이 발생하게 된다는 것을 자각하고 내려놓으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본래 괴로울 일이 없음을 자각하는 거예요. 예를 들어, 이혼을 한다고 할 때 ‘어떻게 하면 이혼을 하면서도 안 괴로울까’ 이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이혼 자체가 괴로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병원에 입원하는 것, 암 진단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냥 하나의 사건일 뿐이지 괴로울 일은 아니라는 거예요. 이 세상에서 다반사로 일어나는 일 중의 하나인데, 내가 그걸 원치 않으니까 괴로울 일이 되는 거예요. 내가 원하면 행운이 되고, 내가 원하지 않으면 재앙이 되는 것일 뿐입니다. 결국 원하고 원하지 않는 것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면 세상의 모든 일은 그냥 세상의 일일 뿐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극단적 주장이나 근거 없는 이야기를 반복하는 사람까지도 ‘다름을 인정하는 것’이 가능하려면 어떤 수행적 관점이 필요할까요?
피곤하거나 바쁠 때에도 환경 실천을 꾸준히 이어가기 위해서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면 좋을까요?
스님께서 처음엔 인도 아이들을 도우셨다가, 애들이 거지가 되는 것을 보고 후원을 끊으셨다가, 결국 학교를 세우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스님의 마음이 어떠셨나요?
새로 개정될 <새로운 100년> 책은 언제 출판되며, 출간 후 북콘서트 같은 국민과의 소통 행사가 계획되어 있나요?
정토회의 의결 구조에서 실제 사업을 하는 전법활동가와 의결권자 사이에서 어떻게 삼의제 취지를 살려야 할까요? 청년 유입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봉사자 부족 문제는 어떡하죠?
부처님께서는 ‘하나가 살려면 왜 하나가 죽어야 하는가’라는 고민을 하셨는데, 연기법을 깨달아서 그 고민이 해결된 건가요?
일과 수행을 하나로 보는 관점에서, 일할 때는 애써야 하는지 아니면 수행처럼 편안하게 해야 하는지 헷갈립니다.
저녁 6시가 되어 즉문즉설 시간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밥과 국, 반찬 한 가지는 청년특별지부에서 바라지 봉사를 하러 온 분들이 3일 동안 준비해 주기로 했습니다. 바라지들이 만들어 준 밥과 국, 그리고 집에서 준비해 온 반찬으로 맛있게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에 대강당에 모여 함께 예불을 했습니다.
저녁 대화 시간을 시작하기 전에 잠도 깰 겸 함께 노래 부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신나는 노래를 열창하자 청년 활동가들도 모두 일어서서 어깨동무를 하고 목청껏 노래를 따라 불렀습니다. 순식간에 대강당 가득 활기가 넘쳤습니다.
뜨거운 열기를 뒤로 하고 마음을 고요히 하는 명상을 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저녁 대화의 주제는 ‘세계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가’입니다. 스님은 기후 위기와 급변하는 국제 정세 속에서 청년 활동가들이 어떤 비전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지금 세계는 어디로 나아가고 있을까요? 첫째, 지구적 차원으로 보면 기후 위기가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 폭염이나 폭우, 산불과 같은 자연재해가 갈수록 빈번하게 일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 미국과 중국의 패권 경쟁이 치열해면서 전 세계가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워질 가능성이 큽니다. 옛날 미국과 소련의 패권 경쟁 시대에는 진영이 둘로 나눠져서 일정 범위 안에서는 질서가 어느 정도 잡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국제법도 효용이 없게 되면서 세계 곳곳에서 분쟁과 전쟁이 확대되는 국면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어느 시점에서는 패권 경쟁에서 이긴 나라가 새로운 국제 질서를 세울 수도 있고, 승패 없이 서로 국력만 낭비하다가 중국이 분열하고, 미국도 몰락하면서 전 세계가 무법지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미래를 정확히 예측하기 어렵지만, 갈수록 분쟁이 심화되고 국제 질서가 무질서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 있습니다.
기후 위기와 패권 경쟁, 세계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인공지능(AI)이나 로봇과 같은 과학 기술이 발전하면서 나라 간의 빈부격차뿐만 아니라 각 나라 안의 빈부격차도 극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로 인해 생존에 어려움을 겪는 극빈층의 고통은 더욱 커질 수 있습니다. 특히 분쟁 지역이 늘어나면서 난민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기후 난민까지 겹치면서 전 세계가 난민 문제로 더욱 심각한 문제에 직면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들이 한순간에 일어나는 게 아니라 10년, 30년, 50년 동안 조금씩 심화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아무튼 젊은 여러분들이 살아갈 시기에는 지금보다 훨씬 혼란스러운 시대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혼란스러운 시기가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란 걸 알 수 있습니다. 중국의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나 부처님이 계셨던 인도 당시에도 전쟁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혼란한 시기였지만, 기존의 이념이나 질서가 무너지면서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는 창의적인 생각과 실험들이 활발히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 흐름 속에서 인도에서는 붓다를 비롯한 많은 사상가가 출현했고, 중국에서도 제자백가라고 불리는 많은 사상가가 출현했습니다. 이때 중국에서는 철기 문명이 아주 빠른 속도로 발달했고, 양자강(扬子江) 이남이 개발되면서 문명의 발전이 크게 이루어졌습니다.
혼란한 시대일수록 청년의 작은 용기가 세상을 바꿉니다
이와 같이 시대적 혼란은 고통과 절망을 불러오는 동시에 창의적인 사람들이 출현하고 새로운 발전을 이뤄내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미래를 예측하고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어떤 상황이 닥치더라도 그것을 빠르게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자생력과 적응력을 갖추는 게 필요합니다. 시대가 빠르게 변화할 때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 변화를 체감하기 어렵습니다. 변화라는 것은 하루아침에 갑자기 오는 게 아니라, 한쪽에서는 과거가 유지되는 동시에 다른 한쪽에서는 과거가 붕괴되고 새로운 것이 생겨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변호사, 의사가 최고의 직업이다’, ‘학벌이 중요하다’라고 생각하지만, 생각과 다르게 이러한 질서도 빠른 속도로 붕괴되고 있습니다. 이는 마치 조선조 말엽에 과거제도가 폐지되기 직전까지 출세의 수단으로 큰 역할을 했던 것과 비슷합니다.
지금 우리가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지 못한 채 미중의 패권 경쟁에 휘말려서 남북 간의 전쟁까지 일어난다면 우리는 큰 고통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남북이 적절히 잘 협력한다면 동아시아에서 우리의 영향력을 넓힐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위기나 기회가 오더라도 개인과 국가 모두가 다양한 시나리오를 미리 준비해 두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이 현재 내 삶과 미래를 불안하게 하는 요인이라고 받아들이기보다는, 새로운 도전과 기회의 창으로 바라보고 준비하는 게 더 바람직합니다.
오히려 이런 혼란한 시기에는 우리가 조금만 잘해도 돋보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마치 어두운 밤에는 작은 촛불도 굉장히 밝은 빛을 발하는 것과 같습니다. 패권 경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같이 무너지는 쪽으로 갈 건지, 아니면 작은 촛불이 되어 전 세계에 희망을 줄 건지가 앞으로 우리의 과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수행자로서 어떤 상황이 와도 ‘삶이란 이러나저러나 한 세상이다.’라고 가볍게 여기며 크게 흔들림이 없이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살아있는 동안에는 어떤 위기에도 대응할 수 있는 힘을 갖추어서 세상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과 희망을 줄 수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우리는 새로운 문명과 역사를 만들어 간다는 자부심을 갖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그런 삶이 다른 어떤 삶보다 훨씬 더 보람 있는 삶이라 생각합니다.
혼란한 사회일수록 사람들의 고통과 괴로움은 더 커지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부처님의 바른 법은 많은 사람에게 희망을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하는 것뿐만 아니라 선택의 자유가 나한테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모든 것은 내가 선택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라는 관점을 갖고 여러분이 새로운 문명을 하나씩 만들어 나간다면, 현재 정토회가 하고 있는 일이 청년들에게 새로운 가치관으로 정립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소비를 줄이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 힘으로 싸우지 않고도 평화롭게 살 수 있는 길,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서 보람차게 살 수 있는 길이 방황하는 청년들에게 작은 구심점이 되지 않을까 하는 그런 희망을 가져봅니다. 그 구심점을 만들기 위해서 많은 인원이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 정도의 규모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사회 실천 활동을 주제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다섯 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북극 항로 개척과 러시아·북한과의 협력이 한국의 미래에 어떤 기회를 열 수 있다고 보시나요?
남북이 통일하지 않고 두 국가 체제를 유지한 채 종전을 선언한다면, 그 장단점과 한국의 바람직한 태도는 무엇일까요?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극우 포퓰리즘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그것이 심화될 때 우리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동북아 역사 연구와 협력이 현실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청년들이 할 수 있는 작은 실천은 무엇이며, 역사 연구 지원의 구조적 문제는 왜 반복된다고 보시나요?
인공지능이 발전하는 미래 사회에서 개인의 행복을 증진시키면서 불평등을 줄이려면 우리는 어떤 관점으로 인공지능을 사용해야 할까요?
모든 질문에 답변을 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더 질문하고 싶은 청년들이 많았지만 여기서 마무리를 하고, 내일 계속해서 대화를 이어가기로 하고 청춘캠프 1일째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청춘캠프 2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문경 수련원에서 고(故) 묘향법사님 49재 막재에 참석하여 영가 천도 법문을 하고, 오후에는 청춘캠프에 참석하여 ‘청년 페스타’를 어떻게 준비할지 청년 활동가들과 본격적으로 토론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0
조유정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있었는데, 아이들이 뛰어노는 아래층 강당에서는 이런 청년캠프가 열리고 있었구나! 잘 알게 되었습니다. 스님의 하루를 읽으며 이 시대의 청년들의 생각과 생활을 좀더 이해하게 되는 것 같아요. 오늘도 고맙습니다.
2025-08-18 08:09:00
광원
청년들은 경험이 기상이 된다는 말씀이 남고, 청년들의 힘이 느껴집니다. 고맙습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