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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들이 한국을 방문한 지 3일째 되는 날입니다. 한국의 여러 종교 단체를 직접 방문하여 서로 대화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출발하기 전에 스님이 잠시 오늘 일정에 대해 안내했습니다.
“오늘 첫 번째로 방문하는 곳은 한국 기독교 장로회 소속의 경동교회입니다. 박종화 목사님이 경동교회의 담임 목사를 오랫동안 역임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방문하는 곳은 천도교 중앙대교당입니다. 박남수 교령님이 천도교의 최고 책임자를 역임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방문하는 곳은 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 총무원입니다. 네 번째로 방문하는 곳은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입니다. 박경조 주교님이 대한성공회의 주교를 역임하셨습니다. 모두 옛날에는 각 종교의 최고 책임자였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서 은퇴를 했습니다. 자, 그럼 출발합시다.”
오전 8시에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출발하여 경동교회로 향했습니다.
반포대교를 건너자 서울 중구 장충동에 위치한 경동교회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본당 건물로 들어가는 진입로를 따라 예배당으로 향했습니다.
경동교회는 신학적 상징과 미학적 독창성을 지닌 건축물로 유명한 곳입니다. 본당 건물은 세상을 위해 기도하는 손을 형상화하고, 본당 건물로 들어가는 진입로는 부활을 향한 골고다 언덕길을 형상화했다고 합니다.
경동교회의 원로 목사이신 박종화 목사님이 교회의 문을 열고 나와 손을 흔들며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경동교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예배당 내부로 들어서자 햇빛이 내리비치는 십자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습니다.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들은 엄숙함을 느끼며 조용히 십자가 앞으로 다가갔습니다.
먼저 박종화 목사님이 경동교회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 교회는 올해로 설립 80주년이 되었습니다. 이 교회의 설립자인 강원룡 목사님은 한국 사회에서 종교 간의 대화를 가장 먼저 시작한 분입니다. 저는 젊은 시절에 강원룡 목사님을 만나 여기까지 왔습니다. 우리 종교인 모임 멤버들은 매년 크리스마스가 되면 이곳에 모여 함께 성탄절 예배를 드리기도 했습니다. 크리스마스에는 법륜스님이 경동교회에 와서 설교를 하고, 부처님 오신 날에는 제가 정토회에 가서 설법을 합니다.” (웃음)
법륜스님과 박종화 목사님의 교류 활동에 대해 모두가 웃으며 공감을 했습니다.
이어서 경동교회 신정기 장로님이 경동교회의 역사와 건축 양식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습니다.
“이곳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곳입니다. 여러분 앞에 보이는 17미터 높이의 큰 십자가와 여러분 뒤에 보이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작은 십자가들만이 이 교회의 유일한 장식물입니다. 이 교회의 외벽은 수많은 갈라진 벽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러분이 계신 내부는 오직 노출된 콘크리트로만 되어 있습니다. 외벽은 수많은 사람들의 삶의 고통을 의미합니다. 내부의 노출된 콘크리트에는 동그란 구멍이 박혀 있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자국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건축한 이유는 세상의 고통을 안고 이곳에 들어와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힘을 보고 다시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담기 위해서입니다. 스테인드글라스의 작은 십자가들은 우리는 누구나 다 자신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한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나니 예배당이 새롭게 보였습니다. 다 함께 십자가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잠시 차담을 나누기 위해 선교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차담을 나누며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분들은 경동교회에 대해 궁금한 점을 질문했습니다. 대화가 오가는 가운데 법륜스님도 경동교회와의 인연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경동교회는 기독교라는 종교를 떠나 한국 사회에 크게 이바지한 곳입니다. 1980년대 한국 사회는 산업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사회 전반에 큰 어려움과 갈등이 발생한 시기였습니다. 농촌이 붕괴하고 농민들이 도시로 몰려오면서 도시 빈민이 늘었고, 노동 조건도 매우 열악했습니다. 그런 때 경동교회는 ‘크리스천 아카데미’를 운영하여 사람들의 고통을 해소하고, 한국 사회의 갈등을 완화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단순히 기독교 교리를 전한 것이 아니라, 국민 교육을 시행하며 사회 문제에 대응해 온 역사를 지닌 곳입니다.
노동자 교육, 농민 교육, 여성 교육, 계층 간 대화, 종교 간 대화를 주선했고, 남북 평화를 위한 노력에도 앞장섰습니다. 이후 한국 사회가 민주화될 때, 중심에 있었던 많은 인재들이 바로 이곳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경동교회는 하나의 교회를 넘어 한국 사회 근대화에 큰 공로를 세운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오늘 방문해야 할 곳이 많아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인사를 나누고 경동교회를 출발하여 천도교 중앙대교당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9시 15분에 천도교 중앙대교당에 도착하여 다 함께 참배를 했습니다.
천도교 서소연 교무 관장이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들을 반갑게 환영한 후 건물의 역사에 대해 자세하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천도교 3대 교주였던 손병희 선생의 발의로 1918년에 중앙 교당을 신축하기로 결의했고, 그해 12월에 터를 닦는 의식을 치렀습니다. 다음 해인 1919년에는 천도교가 3.1운동을 주도했기 때문에 공사를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3.1운동이 진정이 된 다음에 1921년에야 완공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공사비는 교인들이 성금을 모아 충당했고, 남은 돈은 모두 3.1 독립운동에 필요한 자금으로 활용했습니다.”
교무 관장이 설명을 마친 후 박남수 전 교령님이 추가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 지역에 많은 독립운동가들이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3대 종교가 이 지역에 자리를 잡고 독립운동을 준비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건물 앞에 도로의 이름이 3.1대로입니다. 왜냐하면 3.1운동을 일으킨 도로이기 때문입니다.”
독립운동의 역사가 서린 곳을 자세히 둘러본 후 다 함께 천도교 수운회관으로 이동하여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현재 천도교를 대표하고 계신 박인준 교령님이 스리랑카 종교인 지도자분들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천도교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어서 천도교에 대해 간략히 소개해 주었습니다.
“천도교는 사람을 한울님으로 모시는 종교입니다. 저희는 사람을 한울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을 대할 때는 한울님처럼 섬겨야 한다는 것이 천도교의 핵심 가르침입니다. 천도교는 대한민국이 고비 때마다 큰 희생을 했습니다. 대한민국을 있게 한 정신이 천도교에서 나왔다고 저희들은 자부하고 있습니다. 3.1운동 당시에는 300만 명의 교도를 가졌을 정도로 한국 제1의 종교였습니다. 3.1운동을 하면서 천도교가 가진 모든 자금과 인력을 사용했기 때문에 일본의 극심한 탄압을 받았고, 그 결과 지금은 교세가 약화된 상황입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뿌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천도교에 대해 많은 관심을 갖고 연구하고 있고, 새로운 도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설명을 듣고 스리랑카에서 온 아누라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설명 잘 들었습니다. 스리랑카에서도 한국의 3.1운동과 비슷한 운동이 있었습니다. 스리랑카에서도 여러 종교인들이 연합해서 영국의 식민지 지배에 저항하는 운동을 했습니다. 한국에서는 천도교가 민족 종교로서 중심 역할을 했다면, 스리랑카에서는 불교가 그 역할을 했습니다.” (웃음)
대화를 나누다 보니 다음 장소로 이동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천도교에서 나눠준 기념 선물을 하나씩 받아 들고 수운회관을 나왔습니다.
다시 천도교 중앙대교당으로 이동하여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서둘러 차를 타고 종로구에 위치한 조계사로 향했습니다. 차로 10분을 이동하자 금방 조계사에 도착했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조계사 경내를 함께 둘러보았습니다. 대웅전에서는 염불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고, 마당에는 아름다운 연꽃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는 8각 10층 석탑을 참배하고 대웅전 앞에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조계사 경내를 장식한 연꽃을 지나 일주문 앞에 이르러 스님이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여기가 일주문(一柱門)입니다. 절에 들어갈 때 항상 제일 먼저 들어가는 문이 일주문입니다. 일주문을 기준으로 이쪽은 부처님의 나라, 저쪽은 중생의 나라로 나뉩니다. 그러나 사실은 이쪽과 저쪽이 둘이 아니고 하나입니다. 둘이 아니라는 의미로 불이문(不二門)이라고 쓰기도 합니다.”
경내를 둘러보고 나니 조계종 총무원장을 예방하기로 한 시간이 되었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이 있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은 얼마 전 불이 나서 복구 작업이 한창이었습니다. 그래서 조계사 템플스테이 홍보관 3층에 마련된 총무원장 임시 집무실에서 예방을 하기로 했습니다.
조계종 총무원장 진우 스님이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분들을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총무원장 진우 스님은 종교인들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노력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종교 간 분쟁이 계속되어 왔고, 지금도 일부에서는 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종교는 사람들이 행복하게 사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종교 간에 이해관계에 의해서 다툼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종교의 본래 목적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그래서 종교인들은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리랑카와 한국에서 이런 종교인 모임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안심이 됩니다. 더군다나 저희 조계종을 방문해 주신 것에 대해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스리랑카에서 온 아사지 스님이 종교인들을 대표하여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다르마샥티의 활동을 소개했습니다.
“한국 대승 불교를 대표하는 조계종에서 저희를 환대해 주어 고맙습니다. 스리랑카는 국민의 70퍼센트가 불자이고, 테라바다 불교를 믿고 있습니다. 스리랑카에 있는 4개 종교가 모여서 다르마샥티라는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쓰나미 등 자연재해가 있을 때 저희들은 서로 돕는 활동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화해와 평화를 이루기 위해 모든 민족과 종교를 동등하게 대하고 있습니다.”
진우 스님이 웃으며 질문했습니다.
“한국은 다양한 종교가 그렇게 친하지는 않지만 서로 잘 지내는 편인 것 같습니다. 스리랑카에서는 4개 종교가 서로 갈등하지 않고 잘 지내나요?”
아누라 목사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네, 그럼요. 잘 지냅니다.”
법륜스님이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스리랑카는 종족 간의 갈등으로 30년간 내전을 했습니다. 그런 속에서 4개의 종교가 화합하며 지낸다는 것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겁니다.”
진우 스님은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에 대해서도 많은 관심을 보였습니다.
“종교인 모임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십니까?”
법륜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저희 종교인 모임은 크게 세 가지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남북 관계를 개선하는 일을 하고, 둘째,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하고, 셋째, 남한 안에서의 국민 통합을 이루어내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북한 동포 돕기 운동을 함께 하면서 시작하게 되었고, 매달 모임을 하는데 벌써 27년이 되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서둘러 조계사를 나왔습니다.
다음은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으로 향했습니다.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들이 성당에 도착하자 박경조 전 주교님이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대한성공회를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곳에서 5년 동안 주교를 맡아서 일했습니다. 오늘 안내는 우리 교회의 명예 성직자님이 영어로 직접 해주시겠습니다.”
주교좌성당의 곳곳을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습니다.
“1890년 당시 조선에 성공회 선교를 위해 영국으로부터 파송된 주교와 신자들이 현재 성당이 위치해 있는 곳의 한옥을 매입하면서부터 이곳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1910년에 두 번째로 부임한 주교가 이 성당을 새로 건축할 계획을 세웠고, 그의 후임자인 세 번째 주교가 영국 건축가를 초청하여 이 대성당을 설계했습니다. 1926년에 1차 완공을 한 상태에서 우리는 거의 70년간 이 성당을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첫 번째 완공은 원래 설계대로 완전히 완성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첫 번째 완공 후 70년이 지나 1992년에 이 대성당은 원래 설계대로 확장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예배당으로 이동하여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보시는 바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을 들고 우리를 축복하고 계십니다. 책에는 라틴어로 ‘Ego sum lux mundi’라고 쓰여 있는데, 이는 ‘나는 세상의 빛이다.’라는 뜻입니다. 아래쪽에는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가 있고, 오른쪽에는 예언자 이사야, 왼쪽에는 복음사 요한이 있습니다. 맨 왼쪽에는 최초의 순교자 성 스테판이, 맨 오른쪽에는 어린이들과 함께 성 니콜라스 주교가 있습니다.”
예배당을 한 바퀴 둘러본 후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순교자들을 추모하는 공간까지 둘러본 후 성당을 나왔습니다.
현재 주교님이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한옥 건물로 향했습니다.
한옥 건물 안에는 역대 성공회 주교님의 사진들이 걸려 있었습니다. 박경조 주교님은 한국인으로서 4대 교구장을 역임했습니다. 박경조 주교님이 현직 교구장인 김장환 주교님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이분은 젊은 시절에 민주화 운동도 열심히 했고, 인생을 아주 열정적으로 사신 분입니다. 현재 대한성공회 7대 교구장을 맡고 있는 주교님입니다.”
이어서 김장환 주교님이 스리랑카의 종교 지도자분들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저희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방문해 주신 것을 환영합니다.”
이어서 주교님이 대한성공회에 대해 간략하게 소개를 해주었습니다.
“저희 대한성공회는 대한민국의 근현대사와 함께해 온 곳입니다. 한국 사회가 산업화가 되면서 경제 성장을 이룰 때 그 그늘 아래에 있던 가난한 사람들을 선교하는 일에 오랫동안 집중했습니다. 나눔의 집이라는 선교 기관을 만들어서 가난한 지역에 가서 그들과 함께 살면서 인권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서 헌신을 다했던 자랑스러운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한국 사회가 독재의 권력 아래에서 신음하고 있을 때 민주화를 위한 6.10 항쟁 운동이 일어났는데, 그 진원지가 바로 이곳 성공회 주교좌성당이었습니다. 그리고 분단된 남북의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는 일도 해오고 있습니다.”
주교님의 설명이 끝나자 법륜스님이 한마디 덧붙였습니다.
“한국의 여러 종교 중에 가장 진보적인 종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산하에 성공회대학교가 있는데 한국에서 진보적인 학자들을 많이 양성해 낸 곳입니다.”
스리랑카에서 온 아누라 목사님은 스리랑카에도 성공회교가 있다고 소개하면서 교회 안에 내재해 있던 종족 갈등 요소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스리랑카에도 감리교와 성공회교가 있는데, 종족에 따라 교회도 나뉘어 있는 것이 갈등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가령 타밀족 성공회교와 싱할리족 성공회교가 있고, 타밀족 감리교와 싱할리족 성공회교가 있는 식으로 분리가 되어 있어 갈등이 있었습니다. 저희가 생각해 낸 해결책은 5년마다 주교를 양쪽 종족이 번갈아 가면서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 방식이 갈등 해결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주교님이 웃으며 공감했습니다.
“정말 지혜롭게 해결했네요.”
마지막으로 주교님이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분들에게 기념 선물을 나눠 주었습니다.
이로써 종교인 모임 구성원들이 소속된 각 종단을 둘러보는 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스님이 다음 일정을 안내했습니다.
“다음 일정은 한반도의 남북한을 가르는 군사 분계선 안으로 들어가는 일정입니다. 여기서 점심 식사를 하고 출발하면 일정이 늦어지기 때문에 이동하면서 차 안에서 도시락을 먹겠습니다. 괜찮습니까?”
“No problem!”
(문제 없습니다!)
다 함께 밖으로 나와 기념사진을 찍은 후 대한성공회 주교좌성당을 출발해 남북 분단의 현장인 DMZ(한반도 비무장지대)로 향했습니다. 비가 세차게 내리는 가운데 창밖으로 철책선이 보이고 휴전선이 가까워지고 있었습니다.
차 안에서 김밥과 샌드위치를 나눠 먹으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오후 1시 30분에 파주 통일대교에 도착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민간인 통제 구역이기 때문에 검문소를 통과해야 합니다.
바리케이드가 겹겹이 쳐진 검문소를 통과하여 산으로 난 도로를 따라 올라가자 도라산 전망대가 나타났습니다.
도라산 전망대 안으로 들어가자 안내원이 반갑게 인사를 하며 자세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아쉽게도 비가 많이 내리고 안개가 짙어서 북한 땅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안내원이 모형으로 만들어 놓은 비무장 지대를 가리키며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비무장 지대의 특성, 사천강과 군사 분계선, 북한 초소와 침투 터널, 개성 공단, 대성동 마을, 판문점(JSA), 그리고 사천강 전투의 역사적 의미까지 상세한 설명을 해주어서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분들은 마치 맑은 날에 풍경을 직접 본 것처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저기 북한 산들이 보이는데 산속에는 지하 벙커들이 숨겨져 있습니다. 군사 물자와 서울 남쪽 수원시까지 도달할 수 있는 장거리 포병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개성시가 여기에 있고, 개성시 남쪽에 개성 공단이 있습니다. 개성 공단은 남북 간 경제 협력의 상징이었지만, 군사적·정치적 긴장 고조로 인해 완전히 가동이 중단되었습니다.
저 아래 강이 보이시나요? 12시 방향으로 보이는 저것이 사천강으로 자연 경계선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군사 분계선이 바로 그 앞에 지나간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강 왼쪽 언덕 위에 있는 작은 콘크리트 구조물이 북한 초소입니다.”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들은 전쟁이 얼마나 참혹했는지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며 전쟁의 비극에 대해 깊이 공감했습니다. 왜냐하면 스리랑카 역시 오랜 내전을 겪으며 수많은 생명을 잃었기 때문입니다.
안개에 가려 북한 땅을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모니터 속에 나오는 영상물을 통해 북한 땅을 생생하게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화면 속에는 기정동의 빈 건물들, 개성 공단의 멈춰 선 공장들, 그리고 북한 초소의 모습이 또렷하게 담겨 있었습니다. 맑은 날에 촬영된 이 영상들은 불과 몇 킬로미터 떨어진 곳에 있는 또 다른 세계의 모습을 보여 주었습니다. 한때 남북 경제 협력의 상징이었던 개성 공단이 텅 비어 있는 모습과, 북한 근로자들이 거주했던 기정동 아파트 단지가 무인 상태로 방치된 장면은 분단의 현실을 더욱 생생하게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친절하게 안내해 준 안내원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도라산 전망대를 나왔습니다.
오후 2시 40분에 도라산 전망대를 출발하여 다시 서울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돌아오는 길에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분들은 이태원에 있는 이슬람 사원을 방문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온 무슬림 리더 피르도스(Firdous) 님은 한국에서 만난 이슬람 사원을 보고 무척 기뻐했습니다.
잠시 기도를 한 후 사원을 나와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과 주교님, 교령님, 신부님, 교무님은 오후 4시에 평화재단 회의실에 도착하여 곧바로 종교인 모임을 했습니다. 원래는 다음 주에 종교인 모임을 하기로 했는데, 이번 행사에 대한 평가 회의를 겸해서 일주일 앞당겨서 오늘 모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먼저 평화재단에서 다가오는 8월 14일에 광복 80주년 기념식과 기념 포럼을 열고자 하는 계획에 대해 발표하고 종교인 분들의 의견을 수렴했습니다.
다들 광복 80주년이라는 큰 의미를 담기에는 기념식만으로는 부족하지 않느냐는 의견을 이야기하면서 전쟁 방지와 국민 통합을 염원하는 좀 더 적극적인 행동들을 해 나갈 필요성을 이야기했습니다. 종교인 분들의 의견을 경청한 후 스님도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광복 80주년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행동을 촉구하고, 국민적인 호소를 끌어내는 움직임을 광복절에 맞춰 추진하려면 봄부터 준비했어야 하는데, 대통령 탄핵과 조기 대선 등으로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올해는 광복절에 맞추기는 어렵겠고, 연말이나 내년 봄에 추진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번에 스리랑카에서 활동하는 종교 간 연대 단체인 ‘다르마샥티(Dharmashakthi)’의 생생한 경험을 들으면서 우리보다 훨씬 어려운 상황에서도 평화를 위한 실천 활동을 해낸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내전 중에도 행동했던 그분들에 비하면, 우리는 훨씬 나은 조건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도 이번 광복 80주년 기념행사를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장기적인 과제로 삼아 지속적으로 이어 나가 보면 좋겠습니다.
이번에 스리랑카 다르마샥티 모임을 한국에 초청하여 종교 간 국제 연대의 첫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앞으로 이 활동을 잘 평가하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의 교류도 확대해 보려 합니다. 원래는 여러 나라의 종교인들을 함께 초청하려 했습니다. 예를 들어, 캄보디아는 반군에게 점령지의 주지사 자리를 내주는 방식으로 평화를 이루어낸 경험이 있습니다. 스리랑카는 반군을 완전히 소탕한 뒤에야 화해가 이루어졌습니다. 이렇게 국가마다 상황과 해법이 달라 한 시간 반이라는 제한된 시간 안에 모두 소개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앞으로 이런 국제 행사를 지속적으로 열어서 인도네시아, 캄보디아, 스리랑카 등 각국의 사례를 모아 보면 좋겠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넘어 아시아 전체의 평화를 위한 종교인 교류의 장을 우리가 만들어 나가 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종교인 모임의 좌장이신 박남수 전 교령님께서도 말씀하셨듯이, 단발성으로 끝낼 것이 아니라 꾸준히 이어가도록 합시다.”
이어서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분들이 평화재단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서로 소감을 나누는 시간을 갖자고 제안했습니다.
“이제 간단히 소감을 나누고 마무리하겠습니다.”
다 함께 한자리에 둘러앉아 지난 2박 3일 동안 함께 지내며 느낀 점을 나누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김홍진 신부님이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다르마샥티(Dharmashakthi)의 30년에 걸친 여정에 깊은 경의와 존경을 표합니다. 다르마샥티에서 꾸준히 이어온 활동은 저에게 큰 영감을 주었습니다. 특히 여러분이 말씀하신 열 가지 원칙 중에서, ‘우리(We)’라는 복수 표현이 아닌 ‘나(I)’라는 일인칭 단수를 사용한다는 점이 매우 인상 깊었습니다. 여러분의 여정에 앞으로도 더욱 아름다운 결실이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어서 김대선 교무님이 소감을 말했습니다.
“종교 간 대화 없이 평화는 없습니다. 스리랑카에서도 종교 간 대화를 통해 평화가 오래 지속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다음은 이슬람교 지도자 피르도스(Firdous) 님이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종교인 모임이 이룬 많은 성과에 대해 잘 들었습니다. 저희 활동의 기반은 ‘통합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이 ‘통합의 정신’으로 꾸준히 활동하셔서 반드시 남한과 북한의 평화적인 통일을 이루시기를 기원합니다. 남과 북의 모든 사람이 평화롭고 자유롭게,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기원합니다. ”
이어서 다르샤카(Darshaka) 힌두교 사제님이 소감을 말했습니다.
“외국을 방문할 일이 생기면 낯선 곳에 있다는 이질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 한국 방문에서는 마치 집에 온 듯 따뜻하고 편안한 감정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희를 위해 베풀어 주신 모든 환대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저희는 남북한의 평화와 화합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우리가 어떤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할 때, 신과 우주는 반드시 그것을 도와줄 것이라 믿습니다. 여러분은 정말 훌륭한 분들이며, 신께서도 여러분을 도우실 것입니다. 저희도 늘 여러분을 지지하며 함께하겠습니다.”
다음은 박경조 대한성공회 주교님이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여러분을 통해 큰 영감을 받았습니다. 화해와 평화로 가는 길은 어쩌면 인간 본성과는 반대되는 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끊임없이 전쟁과 갈등이 일어나는 것이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길을 가야 한다는 다짐을 다시 한 번 하게 되었습니다.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종교인들이 각자의 종교적 근원으로 돌아가 새로운 힘을 얻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함께 모여 큰일을 이루어 오신 이야기를 들으며, 저 역시 새로운 각오를 다지게 되었고 생각의 폭도 한층 넓어졌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여러분께서 우리에게 평화의 씨앗을 심어 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그 씨앗이 우리 안에서 자라, 언젠가 다양한 좋은 열매로 맺어지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법륜스님이 소감을 말했습니다.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초청에 응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작년에 스리랑카를 방문했을 때 여러분의 모임에 참여해 그동안 활동해 온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참여하고 있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종교인 모임’과 유사한 점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이번에 서울대학교에서 국제화해학회가 개최되어 여러분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이번에 여러분의 이야기를 들으며 제가 알던 것보다 훨씬 어려운 일을 성공적으로 해내셨다는 점을 알게 되어 감명 깊었습니다. 앞으로도 여러분의 활동이 지속되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여러분의 소중한 경험을 바탕으로 저희도 남북 간 평화를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불편한 점이 있었다면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다음은 아누라 목사님이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번에 저는 여러분이 매우 좋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있고, 굉장히 성숙하고 희망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하셔서 좋은 성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평화와 화합, 그리고 화해는 긴 여정입니다. 많은 사람이 마음 깊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고, 팀워크 또한 확실히 느꼈습니다. 저희를 위해 수고하신 스태프들, 그리고 공양간에서 봉사하신 분들의 노고에도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아사지 스님이 소감을 말했습니다.
“지난 며칠 동안 저희는 매우 뜻깊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앞으로는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더라도, 마음만은 늘 연결되어 있기를 바랍니다. 남한과 북한이 하나가 되는 날, 그 힘은 실로 크리라고 생각합니다. 외부 세력은 남과 북이 통일되는 것을 원치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남과 북의 마음을 하나로 잇기 위해 애쓰시는 여러분께 진심으로 축복을 전합니다. 제가 이번에 크게 느낀 점은 스리랑카 내부의 여러 불교 단체들 또한 남북한의 통합을 진심으로 기원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저는 종교 지도자들이 정치인들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종교인 모임의 좌장인 박남수 교령님이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3일 동안 여러분이 이곳에서 받아 가신 것보다 남기고 가신 것이 더 크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의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바로 행동하는 마음이구나.’ 하고 배웠습니다. 그동안 저는 나름대로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여러분을 뵙고 ‘내가 참 게으르구나.’ 하고 깊이 반성하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덕분에 용기를 얻었고,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받은 것이 훨씬 많습니다. 여러분의 행동이 곧 가르침이었습니다. 그 가르침을 마음에 새기고 앞으로도 평화 운동과 종교 연합 활동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화해와 평화를 위한 아시아 종교 간 대화의 여정을 마무리하였습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서로 부등켜안으며 그동안 쌓은 우정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종교인 분들이 모두 돌아가고,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분들은 숙소로 이동하여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길고 깊었던 하루를 가슴에 품은 채, 모두 평화로운 밤을 맞이했습니다.
내일 스님은 하루 종일 평화재단을 찾아오는 사회 인사들과 연달아 미팅을 할 예정입니다. 한편 스리랑카 종교 지도자분들은 한국 근대역사박물관, 경복궁, 인사동을 둘러보며 한국 사회에 대한 이해를 넓히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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