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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아시아 순회강연을 무사히 마치고 대만을 출발하여 한국으로 귀국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아침 7시에 숙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아시아 지회 활동가들과 함께 숙소 근처 대안 산림 공원으로 산책을 나섰습니다.
대안 삼림 공원(大安森林公園)은 ‘타이베이의 허파’라 불릴 만큼 울창한 숲과 넓은 잔디밭, 연못, 생태 습지까지 갖춘 도심 속 생태 공원입니다.
약 26헥타르 규모의 공원에는 노랑불꽃나무, 녹나무, 벵골 보리수, 대만 풍나무 등 수십 종의 아열대 나무들이 자라 있었습니다. 울창한 숲길을 거닐며 내년에는 어떻게 강연을 할지 이야기도 나누었습니다.
산책을 마친 후 숙소로 돌아오자 스님과 오랜 인연이 있는 대만의 학자 한 분이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뇌과학과 기공을 오랫동안 연구하신 분인데, 한반도와 양안 관계(兩岸關係)를 비롯한 동아시아 평화를 위해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마친 뒤 스님은 손님에게 아시아 지회 활동가들을 소개했습니다. 손님은 아시아 지회 활동가들에게 진심 어린 당부를 전했습니다.
“법륜스님은 단 1초도 자신을 위해 쓰지 않는 분입니다. 오직 세상을 위해 모든 시간을 쓰고 계시지요. 스님 곁에 있을 수 있을 때, 무엇이든 묻고 배우시길 바랍니다.”
“네, 고맙습니다.”
손님을 배웅한 후 스님은 아시아 순회강연을 함께한 아시아 지회 활동가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다들 수고 많았어요.”
“스님, 조심히 돌아가십시오.”
작별 인사를 나누고 오후 3시 40분에 대만 타오위안 국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4시 30분에 공항에 도착한 후 대만 정토회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출국 수속을 한 후 탑승구 앞으로 이동하여 비행기 출발 시간까지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보았습니다.
저녁 6시 55분에 출발 예정이었던 비행기는 25분 연발이 되어 7시 20분에 이륙했습니다.
2시간 40분을 비행한 후 현지 시각으로 밤 11시에 인천 국제공항에 착륙했습니다.
입국 수속을 한 후 공항을 나오자 수행팀 활동가들이 아시아 순회강연을 무사히 마치고 귀국한 스님을 맞이했습니다.
“스님, 잘 다녀오셨습니까?”
“네, 잘 다녀왔습니다.”
차를 타고 곧바로 서울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어제까지 기온이 36도까지 올라가던 무더위가 한풀 꺾이고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었습니다.
새벽 1시가 다 되어 서울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짐을 풀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시아 순회강연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내일은 스리랑카 종교인 모임을 한국으로 초청하여 ‘화해와 평화를 위한 아시아 종교 간의 대화’라는 주제로 열리는 국제화해학회 개막식에 함께 참석한 후 4박 5일간의 여정으로 대화의 시간 및 한국의 종교 기관과 통일 전망대를 방문하는 일정을 가질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11일 홍콩에서 열린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는 이제 한국 나이로 마흔이 되었습니다. 이 정도 나이를 먹으면, 심적으로 여유가 생기고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모든 것을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갈수록 오히려 예전의 저와는 달리 웃는 기회도 줄어들고, 슬픈 것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일도 함께 줄어든 것 같습니다. 사소한 것에서 더 많은 행복을 느끼며 살고 싶은데 여기저기서 많은 조언을 들어도 피부로 와닿지 않고 실천으로 이어지지도 않습니다. 스님께서는 번뇌가 없으신가요? 번뇌가 있으시다면 어떤 번뇌를 가지고 계시나요? 일상생활 속에서 소소하게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스님만의 비법을 알려 주신다면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첫째, 질문자의 지금 상태는 지극히 정상적이에요. 어릴 때는 깔깔댈 일도 있고, 슬퍼할 일도 있습니다. 그러나 나이가 들어 이것저것 다 경험해 보면 이것도 별일 아니고, 저것도 별일 아닙니다. 예를 들면, 중고등학교 다닐 때는 월말 고사에서 성적이 오르거나 내리는 것에 큰일이 난 것처럼 울고불고 난리였지만, 지금 돌아보면 중학교 2학년 때 학기말 고사에서 성적이 조금 올랐든 내렸든 그게 그렇게 중요한가요? 아니잖아요.
나이가 60대쯤 되어서 돌아보면 한 해 재수한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일까요? 별로 중요하지 않게 느껴지잖아요. 그런 것처럼 인생의 여러 가지를 경험해 보면, 그때는 중요하다고 느꼈던 것이 지나 놓고 보면 중요하지 않았던 것도 있고, 반대로 그때는 별로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은 것이 나중에 보면 오히려 중요한 것이었던 경우도 있습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울증 같은 정신 질환이 생기지 않는 이상 대부분 감정의 높낮이가 점점 작아지는 것이 정상이에요. 사람들은 감정이 무뎌졌다고 표현하지만, 사실은 그게 정상적인 상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자가 지금 느끼는 감정 상태는 매우 정상적입니다.
둘째, 인생에서 정말 괴롭다고 할 게 뭐가 있을까요? 여러분이 생각할 때, 두 사람이 이혼한다는 게 괴로울 일이에요? 우리는 원래 다 혼자 살았잖아요. 그러다가 함께 사는 게 좋겠다 싶어 결혼했다가, 살아 보니 별로 좋지 않아서 헤어진 거잖아요. 그게 뭐가 문제일까요? 많은 삶의 방식 중 하나로 같이 사는 방식도 취해 봤고, 혼자 사는 방식도 취해 봤을 뿐이에요. 이혼해 봤자 결국 결혼하기 이전하고 똑같잖아요. 그런데 그게 무슨 큰일이겠어요? 잘 따져 보면 별일 아니에요.
오늘 병원에서 암을 발견했다면 큰일이 난 걸까요? 암은 오늘 생긴 게 아니에요. 어제도 있었고, 그제도 있었던 암이에요. 만약 큰일이라면, 어제도 큰일이었고, 그제도 큰일이었지, 왜 갑자기 오늘 큰일이 되는 거예요? 암이 있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 나쁜 일이에요? 그럼 발견하지 못한 것이 좋은 일이에요? 당연히 발견하는 게 좋은 일이죠. 그러면 오늘 나쁜 일이 생긴 게 아니라 좋은 일이 생긴 거예요. 암은 원래부터 있었고, 오늘은 그걸 내가 알게 된 날일 뿐입니다. 그런데도 ‘오늘 나쁜 일이 생겼다.’라고 말한다면 그 말은 ‘차라리 암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좋았겠다.’ 이런 뜻이 됩니다. 암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 좋았겠다면 왜 돈을 들여서 암 검사를 했나요? 애초에 암을 발견하려고 검사를 한 거잖아요. 그러니 의사한테 ‘축하드립니다. 드디어 발견하셨군요. 잘 찾아내셨습니다.’ 이렇게 얘기해 줄 수가 있는 겁니다. 예전에는 몰랐으니까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가 없었지만, 이제 암이 있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 선택의 여지가 많아진 거예요. 어제처럼 오늘도 그냥 암을 놓아 두고 살자고 선택할 수도 있고, 수술을 하자고 선택할 수도 있고, 다른 방식으로 대응하자고 선택할 수도 있어요. 오늘 암을 발견해서 너무 괴롭다면, 그 이유는 암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따져 보면, 사는 데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 스님과 여러분이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 대화의 뿌리는 다 별일이 아니라는 거예요. 살다 보면 이런 일도 생기고, 저런 일도 생겨요. 결혼할 때 저에게 와서 ‘축하합니다.’라고 글을 써 달라고 하면 저는 안 써 줘요. 결혼이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 지금은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결혼할 때는 많은 사람들의 축하를 받았지만, 막상 살아 보면 결혼생활 때문에 죽겠다고 하잖아요. 애를 낳았을 때는 기뻐했다가 막상 키우면서는 힘들다고 아우성이고, 직장에 취직했다고 축하 파티를 해 놓고 직장생활 때문에 힘들다고 합니다. 가게를 개원했을 때는 엄청 기뻐하다가 가게 때문에 괴로워합니다. 여러분이 잘 됐다고 했던 것이 결과적으로 괴로움의 원인이 되잖아요.
여러분이 좋아하는 것에 대해 스님도 같이 좋아해 주지 않는 이유는 스님이 여러분의 좋음을 질투해서가 아니에요. 여러분의 모습을 보면 좋은 게 결국 나쁜 것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결론을 조금 보류하자는 겁니다. 좋은 일이 될지 나쁜 일이 될지 조금 더 지켜보자는 거예요. 이렇게 조금만 거리를 두고 살피는 관점을 갖는다면 결국 다 별일이 아니에요. ‘별일이 아니다.’라는 말이 매우 중요합니다. ‘인생지사 새옹지마’라는 말처럼 처음에 좋은 일이 나중에도 반드시 좋은 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나쁜 일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쁘다고만 할 수도 없습니다. 그래서 일어난 일에 대해 너무 흥분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합리적으로 풀어나갈 수 있을지를 생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서 너무 슬픕니다. 이 슬픔을 어떻게 없앨 수 있나요?’라는 질문을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인류가 탄생한 직후부터 지금까지 죽지 않은 사람이 있는지를 따져보면, 사람이 죽는 게 무슨 큰일이겠어요. 죽음은 늘 일어나는 일이잖아요. 슬프지 않아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닙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잘 살펴보면 결국 별일 아니라는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아이에게 밤 10시가 되면 이를 닦고 자라고 말했는데, 아이가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이를 안 닦고 텔레비전만 보고 있어서 화가 많이 났다고 합시다. 그런데 만약 아이가 갑자기 사고로 죽어 버린다면 이를 닦았는지, 밤 10시에 잤는지가 중요할까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이런 이치를 알면, 아이가 이를 안 닦아도 좋고, 밤 10시에 안 자도 좋고, 그냥 살아만 있어도 좋게 느껴집니다.
제가 느끼는 소소한 행복이란 ‘안 죽고 살아 있다!’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꼭 살고 싶다는 건 아니에요. 아침에 눈 떠 보니 살아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이에요? 돈을 잃어버렸다, 남편이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웠다, 아내가 집을 나갔다, 이런 문제들은 다 아침에 눈 뜨고 살아 있으니까 생기는 문제잖아요. 아침에 눈이 안 떠지면 이런 문제가 생겨나지 않습니다. 모두 다 살아 있으니까 생기는 문제들입니다.
전쟁이 일어난 곳에 가 보면 참 가슴이 아파요. 현장이 너무 비참해서 전쟁은 절대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전쟁을 일으키는 사람들은 ‘통일해야 한다.’, ‘영토를 되찾아야 된다.’, ‘뭘 지켜야 한다.’ 등 여러 가지 이유를 가지고 있어요.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저는 전쟁이 안 일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질 뿐입니다. 전쟁을 겪은 나라의 난민촌에 가 보면, 10년 동안 유엔(UN)이 주는 식량만으로 살아온 사람들을 만납니다. 만약 내가 그 사람이라고 상상하면 아무 희망도 없고 참 갑갑할 것 같아요. 저도 어릴 때 너무 가난해서 밥을 굶은 적이 있기 때문에, 절대 빈곤에 처한 사람들이 최소한 밥은 잘 먹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픈 사람은 치료를 받았으면 좋겠고, 어린아이들이 어떠한 상황에서도 기본적인 초등 교육은 받았으면 좋겠어요. 아이들이 커서 성공하길 바라는 것이 아니에요. ‘만약 내가 그 상황에 처했다면 이 정도의 생활은 가능했으면 좋겠다.’라고 생각하는 수준까지만 지원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일만 하기에도 엄청 바빠요.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꼭 해야 한다고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금 안 죽고 살아 있으니까 살아 있는 동안에는 그런 일을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제가 가장 무아지경(無我之境) 상태에 이를 때는 참선할 때도 아니고, 염불할 때도 아니고, 농사를 지을 때입니다. 농사를 짓고 있을 때 누군가 ‘스님, 법문하러 갈 시간입니다.’라고 부르면 약간 귀찮은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제 인생 막바지에는 농사꾼이 되려고 해요. 예전에는 70살까지만 승려 생활을 하고, 그 이후에는 농사꾼으로 살려고 했어요. 그런데 지금 70살이 넘었는데도 아직 은퇴를 못했습니다. 80살이 되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싶어요.
저는 여러분이 어떤 질문을 해도 ‘무슨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나.’ 이런 생각을 절대 하지 않습니다. ‘내 손톱 밑에 박힌 가시가 제일 아프다.’는 말이 있듯이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고민이 제일 큰 문제라고 느껴요. 그래서 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고민을 귀담아듣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의 고민을 들어 보면 다 별일 아니에요. 질문자가 열심히 이야기를 하니까 듣긴 듣지만, 잘 들어 보면 다 별일 아닙니다. 오늘도 많은 분들이 고민을 이야기해 주셨는데, 특별한 일이 있었나요? 저와 대화를 나눠 보니 다 별일 아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잖아요. ‘지금 내가 하는 고민은 별일 아니다.’ 하는 관점을 갖고 인생을 살아가면 희망이 생깁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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