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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아시아 순회강연 중 네 번째 순서로 대만의 수도이자 가장 큰 도시인 타이베이(Taipei)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5시 30분에 숙소를 나와 홍콩 국제공항으로 향했습니다. 6시 10분에 공항에 도착하여 배웅을 나와 준 정토회 회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다들 강연 준비하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다음 만남을 기약했습니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탑승구로 이동하여 비행기에 탑승했습니다. 스님은 비행기 안에서 잠시 휴식을 취했습니다.
오전 8시 10분에 홍콩 국제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50분을 비행하여 현지 시각으로 오전 10시에 대만 타오위안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을 나오자 대만 정토회 회원들이 마중을 나와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스님, 대만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공항을 출발하여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11시 45분에 숙소에 도착했지만 오후 3시부터 숙소를 사용할 수 있어서 곧바로 강연장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국립 타이완 사범대학(NTNU) 내에 위치한 중국어학당 강의실입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강연을 준비하던 봉사자들이 스님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스님, 대만에 오시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요. 잘 지냈어요?”
“네.”
봉사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강연 장소를 둘러보았습니다. 오늘은 강연을 마치고 오후 5시 20분까지 강당을 비워 줘야 한다고 해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먼저 찍기로 했습니다.
“대만, 파이팅!”
스님은 맞은편 교실에서 도시락으로 점심 식사를 하고 강연 전까지 잠시 쉬었습니다.
오후 2시가 되자 강연장 안에는 120여 명의 한국 교민들이 찾아왔습니다. 2014년에 세계 100회 강연 이후 10년 만에 열리는 강연이어서 많은 교민들이 오랜만에 직접 스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한걸음에 달려왔습니다.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끝나자 스님이 무대 위로 천천히 걸어 나왔습니다. 객석에서는 뜨거운 박수와 환호가 터져 나와 스님을 반갑게 맞이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제가 대만에 10년 만에 온 것 같은데, 잘들 지내셨어요?”
“네.”
“제가 2014년도에 세계 100회 강연을 할 때 대만에 왔었습니다. 그때 강연을 들었던 사람 손들어 보세요.”
한두 명만 손을 들었습니다.
“전부 처음 강연을 들으러 온 사람들이네요. 제가 해외에 계시는 교민들을 위해서 1년에 몇 차례씩 순회강연을 하는데, 보통 교민이 많이 사는 곳은 2년에 한 번 꼴은 가는 편입니다. 로스앤젤레스, 뉴욕 등 미국의 서부 또는 동부, 그리고 호주와 같이 교민들이 많이 사는 곳은 매년 방문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대만은 2014년도에 세계 100회 강연을 한 이후 10년 만에 방문했습니다. 여러분을 만나서 반갑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신청한 분들부터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9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한국에 계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가 같이 살자고 하니까 마음이 복잡하다며 어떻게 하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친정 부모님과 사이가 안 좋습니다. 성격이 강하신 분들이어서요. 그 덕분에 일찍 집을 나와서 독립을 하였고, 미국 유학을 가면서 부모님과 별로 부딪힐 일이 없었습니다. 그렇지만 옛날 기억 때문에 부모님과 사이가 가깝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올해 4월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혼자 계시게 되면서, 어머니가 저보고 한국으로 들어와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십니다. 저는 대만에 정착하여 자리를 잡았고, 남편도 대만 사람이고, 아이들도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외국에서 살아 부모님을 제대로 못 모시는 것에 대해서 늘 죄책감이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어머니가 부탁하시니까 좀 부담이 됩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두 달 동안 어머니와 같이 지내 보니 정말 힘들더라고요. 자꾸 저한테 같이 살자고 하시는 게 엄마의 욕심 같고, 어릴 때도 엄마의 정이라는 걸 별로 못 느꼈습니다. 나이 드시고 기댈 곳이 없으시니까 저를 찾는 것 같다는 서운함도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또 모른 척하자니 죄책감도 들고, 지금 모시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것 같은 마음도 듭니다.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갑자기 한국으로 간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어서 고민이 많이 됩니다. 제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스님은 먼저 청중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여러분이 보기에는 이 질문이 고민거리가 될 것 같아요? 안 될 것 같아요?”
청중이 웅성거리며 대답했습니다.
“될 것 같아요.”
다시 스님이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는 전혀 고민거리가 안 될 것 같아요. 고민거리가 될 것 같다면 이유는 딱 한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전혀 고민거리가 될 일이 아닌데 고민거리가 된다면 어떤 문제가 있기 때문에 고민거리가 될까요?”
다시 청중이 웅성거리며 대답했습니다.
“죄책감이요.”
“부모와 자식 간의 인연이요.”
“욕심이요.”
다양한 대답이 나왔습니다. 다시 스님이 대답을 이어갔습니다.
“혹시라도 고민거리가 된다면 그 이유는 친정 엄마에게 재산이 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경우에만 고민거리가 될 것이라고 짐작이 되어요. 친정 엄마에게 재산이 좀 있어요?”
“네, 있습니다.” (웃음)
“어떤 상황인지 설명을 들어 보면 곧바로 짐작이 딱 가야 되는데, 여러분은 좀 둔한 것 같아요. 저는 질문을 듣자마자 ‘아, 부모가 재산이 좀 있구나.’ 하고 짐작이 갔습니다. 재산이 없으면 이건 고민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어릴 때 부모님하고 관계가 별로 안 좋았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일찍 집을 나와서 오랫동안 부모님과 떨어져 살았다고 했잖아요. 최근에 두 달 동안 함께 살아 보니까 지금도 별로 관계가 안 좋다고 했습니다. 옛날에는 관계가 안 좋았는데 지금은 아주 좋다고 하면 고민거리가 될 수 있거든요. 더군다나 남편이 한국 사람도 아니고 대만 사람이고, 이미 대만에 정착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고민거리가 되겠어요? 상식적으로는 전혀 고민거리가 안 되어야죠.
그리고 엄마 입장에서도 사이가 안 좋은 딸에게 같이 살자고 제안할 때는 재산 없이는 그런 제안을 할 수가 없어요. 재산이 있으니까 ‘너 한국 와서 나를 좀 돌보고 같이 살면 이 재산을 다 너에게 줄게.’ 이런 생각이 들어서 엄마가 제안을 한 겁니다.
질문자에게도 죄책감, 부모 자식의 인연 등 여러분이 말한 것들이 다 작용을 했겠지만, 그런 것들은 핵심이 아닙니다. 핵심은 엄마가 재산이 있다는 겁니다. ‘밖에서 돌아다니면서 번다고 해봐야 얼마 못 버는데, 한국 들어가서 어머니를 약간 돌보면 오히려 더 많은 재산을 물려받을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겁니다. 물론 질문자가 의도적으로 계산을 했다는 얘기는 아닙니다. 고민이 되는 이유는 무의식 세계에서 이런 생각이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여동생이 한국에 있긴 하거든요. 부모님 재산은 부모님 뜻대로 하고, 여동생이 있으니 여동생에게 다 줘도 저는 불만이 없습니다. 여동생이 부모님 옆에 오래 있었으니까요. 저는 불만 없이 대만에서 지내면 됩니다. 그런데 제 동생도 부모님의 성격이 강하셔서 부모님을 안 좋아하는데 어쩔 수 없이 옆에 있으면서 필요한 일을 한 겁니다. 동생도 저한테 ‘너는 여태까지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았으니까, 이제는 한국 들어와서 딸 노릇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이렇게 얘기하고 있습니다. 또 이모들도 돌아가면서 저한테 전화하셔서 이제는 한국에 들어와서 어머니를 모셔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하십니다. 저도 엄마가 가진 재산을 받고 싶다기보다 주변에서 그런 말을 자꾸 들어서 고민이 되는 겁니다.”
“그게 바로 질문자가 착각하고 있다는 거예요. 그렇다면 질문자는 자신의 마음을 모르고 있는 겁니다. 예를 들어, 저희 부모님이 이제 승려 생활을 그만두고 결혼을 하면 어떠냐고 제안을 했다고 합시다. ‘젊을 때는 혼자 살아도 괜찮지만 늙으면 반려자가 있어야 한다. 지금은 젊으니까 혼자 살아도 괜찮은데, 늙으면 외로워진다.’ 이렇게 온갖 얘기를 해서 설득을 합니다. 그런 얘기를 듣고 제가 ‘결혼을 해야 하나, 안 해야 하나.’ 이런 고민이 생긴다면, 그 이유는 그들이 한 얘기 때문일까요? 이미 내 마음속 깊은 곳에 ‘결혼을 한번 해볼까?’ 하는 생각이 있어서 고민이 되는 걸까요? 나는 결혼할 생각이 추호도 없는데 옆에서 자꾸 얘기하니까 고민이 되는 걸까요? 어떻게 생각해요?”
“나에게 그런 생각이 있어서 고민이 되는 겁니다.”
“나는 아무 생각이 없는데 옆에서 계속 말한다고 해서 고민이 될까요? 옆에서 누가 말한다는 것은 하나의 자극을 준 것에 불과합니다. 그 자극이 나에게 번뇌가 될 때는 내 마음속에 이미 이유가 있는 거예요.
하나 더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내가 어떤 남자하고 결혼하려고 하는데, 부모가 계속 반대를 한다고 합시다. 부모가 반대를 해서 결혼을 고민하게 된다는 것은, 부모가 반대하기 전에 이미 그 남자에게 부족함을 느꼈다는 것을 말합니다. 내 마음속에 뭔가 마음에 안 드는 점이 있기 때문에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과 오랫동안 떨어져 살아서 죄책감도 들고, 이런저런 이유가 떠오른다면, 그것도 다 고민이 되는 이유이긴 합니다. 그러나 질문자도 스스로 그런 이유 때문에 고민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질문자가 자기를 정확히 모르는 거예요. 엄마 역시도 어릴 때 잘해주지도 않았고 지금 살갑지도 않은 딸에게 그런 얘기를 할 때는 재산이 좀 있다는 겁니다. 아무것도 없으면서 딸한테 전화해서 ‘나를 돌봐라.’ 이런 말을 하기는 쉽지 않죠. 재산이 좀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예요.
그래서 질문자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대만에서 월급 받아서 꼬박꼬박 모으면 십 년이 지나도 5억 원 밖에 못 버는데, 엄마를 잘 모시면 십 년 후에 엄마가 돌아가신 뒤 20억 원을 물려받을 수 있다고 합시다. 후자가 경제적으로 훨씬 효과적입니다. 그럴 때는 한국에 들어가서 엄마를 모실 수가 있습니다. 이걸 불효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그런 마음으로 한국에 들어가야 엄마가 질문자를 구박해도 질문자는 돈을 벌러 갔기 때문에 그런 구박이 아무렇지 않게 들리게 되는 거예요.
동생은 돈이 되는 일을 왜 안 하려고 할까요? 엄마가 성질을 자꾸 부리니, 아무리 돈이 좋아도 그 성질을 못 견디는 겁니다. 그래서 언니한테 미루는 거예요. 그러나 질문자가 그런 일을 능히 이겨내면 질문자의 몫이 점점 커집니다. 이런 입장이 분명하면 엄마가 아무리 성질을 부려도 큰 문제가 안 돼요. 그러나 엄마가 불쌍하고 죄책감이 들어서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엄마가 성질을 부리거나 어릴 때 상처 입은 말을 하면, 한국에 간 걸 후회하게 됩니다. ‘괜히 한국에 왔다. 대만에 내린 뿌리까지 다 버리고 한국에 와서 이게 뭐 하는 거지?’ 이런 번뇌를 하게 됩니다.
그러니 전혀 고민할 일이 아니에요. 엄마 얘기는 그냥 귓등으로 들으세요. ‘엄마가 혼자 살기 힘드시구나’, ‘돈 좀 있다고 또 나를 부리려고 하시는구나.’ 그냥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고민하지 말고 이렇게 얘기하세요.
'알았어요, 어머니. 남편이랑 애들도 대만에 있어서 한국에 들어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런 생각은 아예 하지도 마세요'
오히려 엄마 옆에 있는 동생한테 '네가 혼자서 책임지게 해서 미안하다. 내가 한국에 들어가는 것은 생각해 보니 어렵겠다. 네가 돌보든지, 너도 힘들면 혼자 살도록 놓아 드려라.' 이렇게 얘기하세요. 어머니도 돈이 좀 있으니 자식들한테 기대기 힘들면 남자친구를 사귈 거예요. 아니면 가정부를 두고 살 겁니다. 그러니 걱정할 일이 아닙니다.
질문자의 마음속에 어머니의 재산에 대한 미련이 있다면, 그 점을 분명히 하고 한국에 들어가야 후회를 안 하게 됩니다. 그게 아니라면 전혀 고민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머니의 재산은 어머니가 살아 계실 경우 그 재산을 누구를 주든 어머니의 자유입니다. 길 가는 사람을 주든, 절이나 교회에 기부를 하든, 동생을 다 줘버리든, 자기를 돌보는 사람에게 주든, 그건 어머니의 자유예요. 그러나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남은 재산에 대해서는 자식이 둘이니 법적으로 50퍼센트씩 나누도록 되어 있습니다. 내가 어머니를 돌봤든, 동생이 어머니를 돌봤든, 그건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그러니 ‘내가 어머니를 더 많이 돌봤으니 내가 더 많이 재산을 가져야 된다.’ 이런 생각을 하면 안 됩니다. 어머니가 살아 계실 때 내가 많이 돌봐 드려서 재산을 물려주는 것은 어머니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법적으로는 무조건 자녀 사이에서는 똑같이 재산을 나누도록 되어 있습니다. 누가 더 돌봤는지 안 돌봤는지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 것 때문에 사람들이 억울해하고 분해하지만 법이 그렇게 되어 있는 걸 어떡하겠어요.
그러니 더 이상 고민하지 마세요. 대신 조금 더 자주 어머니를 찾아가 보세요. 일 년에 한 번 찾아갔다면 앞으로는 일 년에 두 번을 간다든지, 전화를 한 달에 한 번 했다면 보름에 한 번 하는 식으로 해보세요. 비록 떨어져 지내지만 이렇게 관계를 유지하는 게 원수도 되지 않고 훨씬 좋아요. 한국에 들어가서 엄마랑 같이 살면 싸워서 원수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결국 대만으로 다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면 재산도 못 챙기고, 대만에 뿌리박아 놓은 것도 뽑히고, 죽도 밥도 안 됩니다. 지금 질문자는 독약이 든 음식이 빛깔이 좋아 보이니까 먹을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는 거예요. ‘주위에서 자꾸 먹으라 그러는데, 먹어야 됩니까?’ 이렇게 질문하는 것과 똑같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은 고민거리가 전혀 안 돼요. 오늘부터 이에 대한 생각을 딱 끊으세요. 계속 고민이 된다면 ‘돈 때문에 그렇구나.’ 이렇게 생각하세요. 계산을 해본 다음 이익이 된다면 한국에 들어가서 엄마가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말고 돌보세요. 돈이 되는 일이니까 후회할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말하고 싶은 것은 인생을 어떻게 살 거냐는 겁니다. 내가 선택한 것에 대해서 후회를 하지 않으려면 관점을 분명하게 가져야 해요. 그래야 자신이 한 결정에 대해 후회를 안 하게 됩니다.
본인이 고민하는 진짜 이유를 모른 채 '엄마가 오라고 해서... 어쩌고...' 이런 마음으로 한국에 들어가게 되면 반드시 후회하게 됩니다. ‘엄마가 나를 보고 싶다고 해서 내가 가는 것이다.’ 이런 생각은 본질이 아닙니다. ‘내가 엄마를 보고 싶어서 내가 한국에 간다.’ 이렇게 생각하고 결정을 해야 후회가 없습니다. 그래야 어떤 문제가 생겨도 내가 가고 싶어서 간 것이니까 내 책임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엄마가 오라고 해서 왔다고 생각하면 나중에 어려움이 생길 때 엄마를 원망하게 됩니다. 결국 엄마하고 원수가 되는 거예요.”
“잘 알아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약 먹고 죽을 사람을 한 명 살렸네요. 지금 이렇게 길게 얘기하는 이유는 이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후회를 하는 겁니다. ‘엄마가 결혼을 하라고 해서 결혼했다.’ 이런 식으로 자꾸 생각을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주변 상황이었을 뿐이고, 최종 결정은 내가 한 거예요. 이런 관점을 가져야 여러분들이 자신의 삶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화를 잘 조절하지 못합니다.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무난하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인생의 목표인데 요즘 삶이 너무 단조롭습니다. 미래를 행복하게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저는 초등학생인데, 대만에 온 지가 얼마 안 되어서 영어를 잘 못합니다. 뚱뚱하기 때문에 친구들이 많이 놀려서 고민입니다.
행복한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괴롭지 않으면 행복한 것인가요? 행복한 순간에도 과거의 괴로움을 생각하게 됩니다.
제 눈에 날파리처럼 하얀 것이 흐릿하게 보입니다. 이것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있어서 불안합니다.
4살 아이의 괴팍한 기질이 저와 아버지를 닮은 것 같습니다. 아이의 괴팍한 기질을 바꾸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대만에서 생활한 지 2년째입니다. 제가 전공한 영어를 활용하기 위해 왔지만 중국어만 사용하게 되어서 이직을 고민 중입니다. 회사의 부당한 처사에 이의 제기를 하는 게 좋을까요?
오늘은 유학 온 초등학생부터 한국 교민, 그리고 현지 대만인까지 다양한 분들이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대만인은 평소에 법륜스님의 유튜브 영상을 자주 보던 대만사범대학교 학생이었습니다. 우연히 포스터를 보고 강연 소식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교수님께 양해를 구하고 학교 수업을 빠진 뒤 즉문즉설 강연에 참석했다고 했습니다. 질문을 꼭 하고 싶다고 해서 통역을 하여 스님과 대화도 나누었습니다.
1시간 30분 동안 강연을 하기로 했지만 대화를 나누다 보니 2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아쉽지만 다음을 기약하고 오후 4시가 넘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시작했습니다. 강연에 참가한 교민들은 길게 줄을 서서 스님에게 사인을 받고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 덕분에 제가 정말 많이 행복해졌습니다. 감사합니다.”
책 사인회를 마치고 스님은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과 함께 둥글게 모여 앉아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대만에는 한국 교민들이 많지 않아서 오늘처럼 한국 사람이 많이 모인 행사는 처음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유튜브에서만 보던 사람들이 직접 얼굴을 보고 한자리에 모인 것에 대해 다들 감격해했습니다.
“제가 대만에 온 지 28년이 되었는데,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이 모인 모습을 본 게 오늘이 처음입니다. 이렇게 많은 한국 사람들과 긴 시간 동안 한국어로만 대화를 나눠 본 것은 제가 대만에서 처음 경험하는 일입니다. 너무 뜻깊은 날이었습니다.”
“평소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듣고 많은 도움을 받았기 때문에 그 은혜를 갚고자 봉사를 신청했습니다. 외부에서 피켓을 들고 안내하는 역할이었는데, 다리가 아팠지만 마음은 뿌듯했습니다.”
“평소에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이 정말 큰 위안이 되었어요. 오늘 제가 한 일은 질문자에게 마이크 전달해 주고, 스님이 사용할 마이크 켜 드리는 것밖에 없는데, 이 일이 제 인생에서는 너무 뜻깊은 일이었습니다. 제가 대만에 온 지 20년이 되었는데 오늘이 가장 의미 있는 날이었습니다.”
“살면서 누구나 힘들 때가 있잖아요. 스님의 법문을 들으며 죽지 않고 버텼는데, 오늘 스님을 직접 만나게 될 줄이야 꿈만 같습니다. 먼지 같은 삶을 살지 않으려고 도움이 되고자 봉사까지 했는데, 덕분에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고 갑니다.”
“대만에 와서 봉사 활동을 오늘 처음 해보았습니다. 저도 세상에 잘 쓰일 수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어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나누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힘든 시간을 보내다가 오늘 강연을 계기로 많은 위안을 받았다고 합니다. 이번 대만 강연을 총괄한 양은미 님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대만에는 정토회 회원이 거의 없어요. 그래서 지인들에게 연락해서 강연 준비를 시작했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오늘 강연을 들으면서 ‘이렇게 고생했는데 강연을 2시간만 할 게 아니라 5일을 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강연장 대여 시간이 끝나 가니까 제시간에 못 끝낼까 봐 가슴이 조마조마했습니다. 저는 무조건 강연을 준비해야 하는 사람이어서 선택의 여지가 없었는데, 여기 모이신 다른 분들은 선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묘덕 법사님이 어려운 조건 속에서도 마음을 내어 봉사해 준 분들을 위해 격려의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수고한 서로를 격려하며 큰 박수와 함께 소감 나누기를 마쳤습니다.
소감 나누기를 마치고 근처 채식 식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저녁 6시부터는 이번 아시아 순회강연에 동행한 아시아 지회 지원팀 활동가들과 저녁 식사를 하며 평가 회의를 했습니다.
이번 아시아 순회강연은 싱가포르, 호찌민, 홍콩, 타이베이, 4개 도시에서만 조촐하게 진행해 보았습니다. 순회강연 일정이 그렇게 길지는 않아서 스님도 몸 상태가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순조롭게 강연 일정을 소화했습니다.
각자 강연 준비 과정에서 느낀 점을 가볍게 이야기했습니다. 먼저 정토회 아시아 지회장을 맡고 있는 조정은 님이 총평을 해주었습니다.
“아시아 지역은 7월이 국제 학교 방학 기간이라 대부분 한국에 들어가 있어서 참가자 모집에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내년에는 7월은 피하고, 6월이나 9월에 강연을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홍콩과 대만은 정토회 회원이 거의 없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열정적으로 강연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봉사를 하신 분들이 수행에 관심이 많아지셔서 온라인 정토불교대학을 안내해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만 강연을 총괄한 양은미 님은 한국 교민이 많이 살지 않는 곳은 현지어 통역 강연을 해보면 좋겠다는 제안을 했습니다.
“요즘 K팝, K드라마, K컬처에 대한 관심이 뜨겁기 때문에 현지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들이 정말 많아요. 대만은 한국 교민의 수가 너무 적어서 차라리 중국어 통역 강연을 하면 참가자를 많이 모집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평가와 제안을 듣고 스님도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현지어 통역 강연을 하고 싶으면 낮에 통역 강연을 하나 더 잡고, 저녁에 한국 교민 강연을 하면 돼요. 통역 강연에 한국 교민들이 섞여 있으면 스님의 말이 아직 통역이 안 되었는데 한국 교민들이 먼저 웃어 버려서 현지인들에게는 별로 안 좋아요. 그래서 현지인들만 따로 통역 강연을 잡아야 됩니다. 샌프란시스코나 미니애폴리스는 한국 교민이 거의 살지 않아서 아예 영어 통역 강연만 하고 있거든요.
이번에 아시아에서 강연을 못한 도시가 하노이, 방콕, 쿠알라룸푸르, 프놈펜이네요. 마닐라와 자카르타는 하반기에 강연을 할 예정이고요. 그러면 내년에는 제안한 대로 강연 시기를 조정해 보겠습니다. 그리고 모든 도시에서 매년 강연을 하기보다는 격년에 한 번씩 하는 걸로 조정하고요.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저녁 8시에 회의를 마치자 하루 해가 저물었습니다. 숙소로 돌아온 스님은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본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하였습니다.
내일은 스님과 오랜 인연이 있는 대만 학자 분과 미팅을 한 후 공항으로 이동하여 저녁 7시에 대만을 출발하여 현지 시각으로 밤 11시에 한국 인천 공항으로 귀국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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