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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아시아 순회강연 중 첫 번째 순서로 싱가포르(Singapore)에서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뒤, 오전 7시에 간단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숙소 바로 앞에 공원이 있어 식사를 마치고 잠시 산책을 나섰습니다.
공원 입구에 다다랐을 때,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번개가 하늘을 가르기 시작했습니다. 잠깐 공원을 둘러보다가 급히 숙소로 발걸음을 돌렸습니다.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숙소에 들어서자 곧 세차게 비가 내렸습니다.
오전 9시부터는 숙소에서 수행법회 생방송을 진행했습니다. 한국 시간으로는 오전 10시가 되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 회의 방에 입장하자 삼귀의 반야심경을 봉독한 후 지난 한 주 동안의 정토행자들의 소식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정토회 회원들이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지난 일주일 동안 곳곳에서 봉사를 해준 회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요즘 날씨가 꽤 무덥지요? 지난주에 저도 INEB 스터디 투어를 하러 오신 동남아 스님들을 접대하느라 이곳저곳을 다녔는데 정말 더웠습니다. 이번 주에도 무더위가 계속되고 있네요. 제가 어릴 적 기억에는 8월 초쯤 되어야 햇살이 내리쬐는 마당이나 길거리에 나가기가 어려울 정도로 무더웠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7월 초인데도 그때의 8월 초만큼이나 무덥게 느껴집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이상 고온 현상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여름이 비교적 선선한 유럽에서도 40도까지 오르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기후 변화를 몸소 체감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무더위에도 봉사자 여러분의 활동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지난주에 가장 큰 일은 전법회원들의 정일사 수련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정일사 수련에 참여해 주신 전법회원들과 수련을 진행해 주신 법사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외국에서 오신 INEB 손님들을 위해 서울정토사회문화회관, 문경수련원, 두북수련원에서 정성껏 공양 바라지를 해 주신 각 지부 회원 여러분께도 이 자리를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저는 지금 싱가포르에 와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싱가포르, 호찌민, 홍콩, 대만을 순회하며 즉문즉설 강연을 이어 나갈 예정입니다. 순회강연을 마치고 다음 주에는 한국에서 여러분을 다시 뵙겠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그림 그리는 일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자신이 실망스럽다며 어떻게 하면 그림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독일에서 순수 미술을 전공했고, 그림을 그리며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졸업 후 10년 동안 파트 타임으로 일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지만, 작업실에 앉아 있어도 작업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그림을 그릴 때뿐만 아니라 아침 기도를 할 때도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머릿속이 계획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그 일에 집중이 되는데, 정말 잘하고 싶은 그림을 그리는 시간에는 오히려 유튜브를 보거나 잡념이 많아집니다. 그래서 저 자신이 실망스럽습니다. 어떻게 마음을 가져야 그림을 그리는 작업에 몰입할 수 있을까요?”
“젊은 사람이니까 제가 솔직하게 얘기해도 괜찮겠어요? 혹시 상처받고 원망하지 않겠어요?”
“네, 괜찮습니다.”
“사실 질문자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게 아니라 유명해지고 싶은 거예요.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다면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자고, 일하러 가야 한다는 생각조차 잊고, 그림을 그릴 겁니다. 그런 사람이야말로 그림을 그리고 싶어하는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림으로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은 큰데, 정작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은 그만큼 크지 않은 거예요. 유명해지려면 그림을 억지로라도 그려야 하니 그게 괴로운 겁니다. 마치 공부는 하기 싫은데 1등은 하고 싶은 사람과 같습니다. 서울대학교에는 가고 싶은데 공부는 하기 싫은 마음이에요. 그러니 책상 앞에 앉아도 공부는 안 되고 자꾸 잡념만 떠오르는 것이죠.
그림을 잠시 안 그리고 지내 보면 어떨까요? 그냥 아르바이트만 하면서 생활해 보는 거예요. 아르바이트를 할 때는 집중이 잘 된다고 했잖아요. 그 이유는 당장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일이 재미있어서가 아니라 돈을 벌 수 있으니까 집중이 되는 거예요. 그런데 그림은 유명해져야만 돈을 벌 수 있는데, 유명해질 수 있을지 아닐지 불확실하니 집중하기가 어려운 거예요. 그러니 당분간 그림을 쉬어 보세요. 그림을 안 그려도 아무렇지 않고 오히려 마음이 편하다면 그만두는 게 낫습니다. 아무리 그림을 전공했어도 그만두는 게 나아요.
저도 법문을 할 때는 하기 싫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법문 시간이 되어 강연장에 들어오는 것이 힘들지는 않아요. 그런데 농사일에 몰두하고 있을 때는 법문 시간이 다가오면 ‘가야 하나?’ 하고 잠깐 망설여집니다. 밭에서 풀을 베고 있는데 ‘스님, 법문 시간이 다 되어 갑니다!’ 하고 누가 알려 주면 세수하고 옷 갈아입고 가야 한다는 생각이 드니까 좀 귀찮아요. 이걸 보면 제가 평생 법문을 하며 살아왔지만, 사실은 법문이 진짜 좋아서 하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정말 좋아하는 일은 농사를 짓는 일 같습니다. 농사일은 땀을 뻘뻘 흘리면서 해도 즐겁거든요. 몸이 안 좋아서 주변에서 걱정하고 말려도 저는 그냥 일어나서 농사일을 하러 갑니다. 습관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좋다는 얘기겠죠. 원래는 70세가 되면 승려 생활을 은퇴하려 했는데 여의치 않아서 못 했습니다. 하지만 80세쯤 되면 승복을 벗고 은퇴해서 그냥 농사짓다 죽으면 좋겠어요. 죽을 때는 하고 싶은 일을 하다가 죽는 게 제일 좋습니다. 물론 그렇게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 바람은 그렇습니다.
그것처럼 질문자도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은 게 아니에요. 그림에 약간의 소질은 있지만 그보다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이 더 큰 겁니다. 유명해지고 싶어서 억지로 그려야 하니까 자꾸 망념이 생기는 거예요. 저는 책을 볼 때 망념이 잘 생기지 않습니다. 책을 안 봐도 되지만 궁금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책을 보니까 억지로 읽는 법이 없어요. 정말 궁금해서 ‘이게 뭐지?’ 하고 책을 펼치면, 눈이 아파서 그만두거나 너무 늦은 시간이 돼서야 멈추게 됩니다.
그림을 그리기 싫으면 안 그려도 됩니다. 그런데 질문자는 그림을 전공했고 유학까지 다녀왔으니 ‘어쨌든 그림으로 성공해야 한다.’라는 목표가 마음속에 있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정작 마음은 원하지 않는데 억지로 그림을 그려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자꾸 잡념이 생기는 거예요. 정말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당분간 쉬어 보면 어떨까요?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만 가볍게 그리는 겁니다. 1년쯤 쉰 뒤에도 아무런 미련이 없다면 앞으로는 그림으로 먹고살겠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게 좋습니다. 대신 그림은 취미로만 그리고, 새로운 직업을 찾아 생활하는 겁니다. 이렇게 관점을 가지면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교통정리가 될 거예요. 다소 아픈 얘기였을 수도 있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질문자는 어떻게 생각해요?”
“네, 좀 더 솔직하게 저를 되돌아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9월에 전시회가 있어서 지금 당장 그만두기는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이번 9월까지만 힘들어도 해 보세요. 그다음부터는 더 이상 억지로 고민하지 말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됩니다.”
“네, 9월까지 열심히 전시회를 준비하고, 그 후에는 미련 없이 그만두겠습니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이번에는 정말 최선을 다해 보세요. 하기 싫어도 ‘이번이 마지막이다!’ 하면서 열심히 그려 보세요.”
“네, 알겠습니다. 스님께 많이 혼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따뜻하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생각보다 적게 혼난 거예요? 그럼 더 혼내 줄게요.” (웃음)
“스님의 솔직한 의견 감사드립니다. 저를 더 솔직하게 돌아보고 이번 전시만큼은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네 명과 대화를 나눈 후 11시가 되어 수행법회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수행법회를 마치고 싱가포르 정토회 회원들과 함께 인근 식당에서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늘 강연을 준비하기 위해 회원들은 직장에서 휴가나 반차를 내고 모였습니다. 그 마음이 고마워 스님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강연 준비할 게 뭐가 있다고 휴가까지 내고 준비를 해요?” (웃음)
회원들은 스님의 말 속에 담긴 격려를 알아듣고 모두 함께 웃었습니다. 한 분은 스님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스님 건강은 어떠세요? 작년에 오셨을 때보다는 안색이 좋아 보이시네요.”
“좋은 상태는 아니에요. 이제 건강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도 잘 안 나네요.” (웃음)
식사를 하며 싱가포르 현지 상황과 회원들의 근황을 나누었습니다. 한 회원은 고마운 마음을 전했습니다.
“제가 싱가포르에 와서 여행업을 하고 있었는데, 코로나 팬데믹이 길어지면서 많이 힘들었습니다. 그때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을 졸업한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정토회가 아니었다면 정말 버티기 어려웠을 겁니다. 고맙습니다.”
충분히 대화를 나눈 후 오후 2시가 넘어 숙소이자 강연 장소인 YWCA 포트캐닝 센터로 돌아왔습니다.
숙소로 올라가기 전, 오늘 저녁 강연 장소를 미리 둘러보았습니다.
봉사자들은 곳곳으로 흩어져 강연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럼 수고해 주세요. 저는 올라가 보겠습니다.”
숙소에서 업무도 보고 잠시 휴식을 한 후 저녁 6시가 되어 오늘 강연이 열리는 YWCA 대강당으로 향했습니다. 봉사자들이 강연장을 찾아온 교민들을 반갑게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저녁 6시 20분부터는 강연장 앞 대기실에서 싱가포르 지역 인사분들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싱가포르 한인회 회장과 부회장, 여성회장, 대사관에서 공사를 비롯한 많은 분들이 자리하여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워낙 해외를 많이 다니시잖아요. 이번이 몇 번째 해외 강연이신가요?”
“올해는 이번이 처음 하는 해외 강연입니다. 상반기에는 서울에서 100일 동안 움직이지 않고 백일법문을 했습니다. 백일법문이 끝나고 첫 번째 해외 강연이 싱가포르입니다.”
한인회 회장은 올해가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올해가 한국과 싱가포르가 수교를 맺은 지 5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한국 교민이 2만 5천 명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행사를 준비 중에 있습니다.”
지역 인사분들은 스님에게 다양한 질문을 했습니다. 해외를 많이 다니시는 스님이 무엇을 느끼는지 다들 궁금해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나라마다 강연을 많이 다니시는데 교민 사회마다 특징들이 있나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는, 동남아는 가난한 나라들이 많고 유럽에는 부유한 나라들이 많으니까, 교민 사회도 동남아는 가난할 것 같고 유럽이 부유할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입니다. 동남아는 대부분 투자 이민을 많이 갔기 때문에 교민 사회가 그 나라에서 상위 계층에 속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유럽은 대부분 노동 이민을 많이 갔기 때문에 그 나라에서는 하위 계층에 속한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미국은 투자 이민과 노동 이민이 반반 섞여 있지만요.”
“특히 스님께서는 사람들의 고민을 많이 들어 주시잖아요. 사람의 고민이 어디에서나 다 비슷하겠지만 그래도 차이가 있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동남아에 사는 교민들은 한국에 사는 사람들과 고민하는 내용이 별로 차이가 없어요. 그러나 유럽에 사는 교민들은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유럽에 오래 살았는데도 유럽 사람이 아니고, 그렇다고 한국으로 돌아가기에는 한국이 편한 것도 아니고, 이로 인해 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다는 질문을 많이 받습니다. 또 주로 해외에 사는 교민들은 부모가 연로해서 돌아가실 때가 다 되었을 때 보살피지 못해서 심리적인 부담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동남아에 사는 교민들은 한국을 자기 집 드나들 듯이 자주 왕래하기 때문에 그런 고민들이 비교적 약한 편이죠.”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강연을 시작할 시간이 다 되었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 다 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300여 명의 교민들이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끝나고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서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원래는 서서 강연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고 다리를 많이 쓰다 보니 무릎이 아파서 오래 서 있기 어렵습니다. 예의에 어긋날 수 있지만 부득이하게 앉아서 강연하게 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2년 전 이곳에 왔을 때만 해도 서서 강연을 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등산을 하고 난 뒤 다리가 시큰거려 ‘그냥 두면 낫겠지.’ 하고 지나갔는데, 나중에 병원에서 정밀 검사를 해보니 관절판이 파열됐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너무 오래 서 있거나 걷지 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서서 강연을 하거나 걷는 게 제가 주로 해온 일인데 좀 곤란해졌습니다. 그래도 70년 넘게 잘 써 왔으니 ‘이만하면 됐다.’ 싶습니다. 앞으로 강연 시간이 길어지면 이렇게 앉아서 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괜찮으시죠?”
“네.”
“어제 어떤 분이 제가 싱가포르에 간다고 하니 ‘스님, 거기 엄청 덥습니다.’ 하더군요. 그런데 막상 와 보니 별로 안 덥네요. (웃음)
요즘은 한국이 오히려 더 덥습니다. 낮 기온이 35도까지 올라가는 날이 많고요. 서울은 공기가 안 좋아 햇살이 덜 따갑지만, 지방으로 내려가면 햇살이 정말 뜨겁습니다. 예전보다 평균 기온이 올라간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얼마 전에는 경상북도 산불 피해 지역을 둘러보고 왔습니다. 피해 주민들 얘기를 들어 보니, 바람이 태풍처럼 강해서 불길이 번지는 속도를 사람이 도저히 따라잡지 못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불이 산 하나를 넘고 또 하나를 훌쩍훌쩍 넘어 동해 바다까지 갔습니다. 동해 바다가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바다가 없었다면 불길이 계속 이어졌을지도 모릅니다. 산불이 정박해 둔 배까지 태우고 바닷가에도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나서야 끝이 났습니다. 예전에는 호주, 시베리아, LA, 캐나다에서나 볼 수 있었던 대형 산불이었기 때문에 늘 남의 나라 일로만 여겼는데,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되었습니다. 지난 30년간 발생한 산불로 탄 면적을 합친 것만큼의 면적이 이번 한 번의 산불로 소실되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피해 규모가 컸고, 인명 피해도 적지 않았습니다. 불길이 너무 빨리 번져서 골짜기 암자에 살던 스님들이나 시골 노인분들은 피할 틈조차 없었다고 합니다.
이런 기후 위기는 어느 한 나라만의 노력으로는 대응하기 어렵습니다. 전 인류가 힘을 모아도 쉽지 않죠. 특히 미국에 트럼프 대통령이 들어선 뒤 파리 기후 협약 등 국제 공조가 깨지면서 각자도생으로 가다 보니 미래에 대한 전망이 더 어두워졌습니다. 그래도 싱가포르는 원래 더운 나라니까 큰 문제는 없겠죠? 오히려 괜찮아질 수도 있겠다 싶네요. 이런 얘기를 시작으로 여러분과 대화를 나눠보겠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부터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아홉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회사의 조직 개편으로 원치 않게 싱가포르에 오게 되었다며 본사에서 밀려난 것 같아 서운한 마음을 어떻게 다스리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싱가포르에 부임한 지 이제 막 3주 차가 된 주재원입니다. 작년 연말 회사 조직이 개편되면서 제가 맡고 있던 팀에서 물러나 싱가포르 주재원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주재원으로 나간다고 하면 축하해 주기도 하지만 저로서는 너무 갑작스러운 변화였습니다. 초기부터 현지 직원들을 데리고 업무를 준비하라는 지시를 받으면서 회사에 대한 서운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막상 이곳에 와 보니 약간은 자포자기하는 심정도 들고, 한편으로는 ‘그래도 열심히 해보자.’ 하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몇 년 뒤 제가 나이가 더 들어 본사로 돌아갔을 때 과연 제 자리가 남아있을까 하는 불안감도 큽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해외에 파견된다는 것은 좋은 점과 나쁜 점이 반반씩 있습니다. 정부 조직이든 회사 조직이든 마찬가지예요. 중심부, 즉 최고 책임자가 있는 곳에 있어야 승진이 잘 되는 것이 세상일입니다. 그런데 한번 변방으로 밀려나면 다시 그 줄을 잡기가 쉽지 않죠. 그런 면에서 보면 질문자가 싱가포르에서 몇 년 근무하고 돌아가면 중심부에 자리 잡기가 조금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이미 위치가 그렇게 된 거예요. 한마디로 말하면 이미 변방으로 밀려난 것입니다. 이 사실을 먼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어떻게 모두가 얼굴 역할만 할 수 있겠어요? 손발 역할도 누군가는 해야죠. 질문자가 중심에서 좀 벗어난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도 이런 역할이라도 하며 이 직장에 다니는 것이 낫겠다면 기꺼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선 상황에 대한 진단을 이렇게 분명히 내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재능 있는 사람이 중앙 부서에서 근무하면 자기 직책에 한정된 역할만 하기 때문에 오히려 재능을 발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재능을 보여도 그 성과는 대부분 윗사람의 공으로 흡수되기 마련이에요. 그래서 개인이 빛을 보기 어려운 구조입니다. 그런데 변방에 가면 밀려나기는 했어도 기회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도 그렇습니다. 임금 곁에 있으면 당장은 먹고살기 좋지만, 국가나 사회가 혼란스러울 때는 변방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터전을 일구고 군대를 일으켜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질문자에게 재능이 있다면 지금이야말로 마음껏 선보일 기회입니다. 변방에서는 여러 일을 종합적으로 한꺼번에 다루어야 합니다. 젊을 때 중소기업에 들어가는 것이 대기업에 들어가는 것에 비해 월급은 적어도 다양한 경험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되곤 하죠. 영업도 하고 회계도 하고 청소도 하며 혼자서 다양한 경험을 다 할 수가 있으니까요. 반면 큰 회사에 다니면 10년을 일해도 맡은 일 외에는 잘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렇게 서로 장단점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밀려났다고 해서 꼭 불리하다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 전 정부에서 미움을 받아 밀려난 사람은 정권이 바뀌면 어떻게 될까요? 오히려 유리해집니다. 반대로 권력의 핵심에 있었던 사람은 정권이 바뀌면 오히려 옷을 벗어야 하죠. 지금 한국에서 윤석열 정부에 잘 보여 12.3 비상계엄의 핵심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지금 모두 책임을 져야 하잖아요. ‘인생지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처럼, 유리한지 불리한지는 당장에는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언제나 유리한 쪽만 생각하며 ‘변방이 좋다.’, ‘중심이 좋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다 뜻대로 되지 않으면 ‘변방이라서 불리하다’, ‘중심이라서 불리하다.’라고 여기기가 쉬워요. 질문자가 밀려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반드시 나쁜 결과만 가져오는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저도 한때 불교계에서 왕따를 당한 적이 있었는데 결과적으로는 그 덕분에 종교 간 대화의 중심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스님들과만 친하게 지냈으면 세상에서 저를 크게 평가하지 않았을 거예요. 왕따를 당하다 보니 저는 오히려 신부님, 목사님, 주교님과 친구가 되었고, 덕분에 국내 종교 간 대화를 넘어 국제적인 평화 활동으로까지 활동 영역을 확장할 수 있었습니다. 남북 관계가 좋지 않을 때 교류 협력 활동을 하면 국내에서는 비난을 받기도 하지만, 국제 사회에서는 높게 평가받습니다. 저도 그 덕분에 막사이사이상 평화와 국제 이해 부문에서 수상을 할 수 있었어요. 이처럼 지금 보기에는 불리한 일이 훗날 유리할 수도 있고, 지금 유리한 일이 언젠가는 불리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 유불리를 너무 섣불리 단정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질문자는 밀려난 것이 맞지만, 그것이 꼭 불리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관점을 잡아야 합니다.
조직의 인사 문제에 대해서는 불만을 가져 봐야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인사권은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잖아요.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은 생각할수록 머리만 아프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사실 불만은 내가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만약 내가 해외로 나가고 싶었는데 보내 주지 않았다면 그때도 불만이 생겼을 거예요. 그러니 ‘나는 한국에 있고 싶었는데 해외에 파견되었으니 내 뜻과 달라서 기분이 좀 나쁘다.’ 하는 정도로만 여기세요. 이미 변방으로 밀려난 입장에서 인사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불만까지 표시한다면 승진은 더 불리해집니다. 오히려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원하지는 않았지만 싱가포르에 막상 와보니 생각보다 괜찮은 점을 많이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현지 직원들을 이끌며 한 곳의 최고 책임자가 되어 보는 것도 괜찮아요. 용의 꼬리보다는 뱀의 머리가 낫다는 말도 있잖아요. 이런 관점을 갖고 한번 살아 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현장에서 즉석 질문까지 받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아쉽지만 다음 강연을 기약하며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곧바로 무대 아래로 내려와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의 사인을 받았습니다.
참가자들은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한 마디씩 했습니다. 책 사인회가 끝나고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싱가포르, 파이팅!”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봉사자들은 묘덕 법사님과 함께 소감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들 스님의 법문 속에서 그동안 많이 들었던 ‘모자이크 붓다’가 무엇인지 체험하는 시간이었다며 기쁜 마음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작년에는 강연 참가자로 왔는데, 그때 많은 봉사자들을 보고 너무 고마웠어요. 그래서 올해는 봉사자로 참여했습니다. 봉사를 하고 나니 뿌듯합니다. 강연 끝나고 한 분 한 분과 눈빛을 마주치니 모금도 많이 해 주셔서 더 기쁜 마음입니다.”
“봉사자들이 곳곳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정확하게 해 내시는 모습을 보면서 ‘이것이 모자이크 붓다구나.’ 하는 것을 느꼈습니다.”
“오늘 강연에서 스님이 마음이란 늘 변하기 때문에 믿을 바가 못 된다고 하셨잖아요. 저도 강연을 준비하면서 올라오는 마음이 수십 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봉사가 수행이 되는구나 하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강연 전에 몇 명이나 올까 걱정을 많이 했어요. 막상 강연을 시작했을 때 자리가 꽉 찬 모습을 보면서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혼자서 해낸 게 아니라 이렇게 많은 봉사자들과 함께 해냈다는 사실이 더 큰 기쁨으로 다가왔습니다.”
수고한 서로를 격려하며 큰 박수와 함께 소감 나누기를 마쳤습니다. 숙소로 돌아와 밤 11시가 넘어서 오늘 일정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싱가포르에서 출발하여 베트남으로 이동한 후, 저녁에는 베트남 호찌민에서 아시아 순회강연 두 번째 강연을 이어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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