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7.4. INEB 9일째, 소감문 발표, 금요 즉문즉설
“사이비 종교에서 12년, 인생을 허비했다는 자괴감이 듭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INEB 스터디 투어 9일째 날이자 마지막 날입니다. 오전에는 소감문 작성을 한 후 발표하는 시간을 갖고, 오후에는 ‘서로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주제로 추가적으로 더 논의한 후 INEB 스터디 투어를 마무리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8시 30분부터 9층 강당에서 INEB 스터디 투어 9일째 일정을 시작했습니다.

“잘 주무셨어요?”

“Yes.”(네.)

어제에 이어서 ‘서로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주제로 대화를 이어 나갔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온 소비치아 스님이 향후 3년 동안 하고자 하는 주요 사업 계획을 이야기했습니다. 소비치아 스님은 1993년 사미로 출가한 이후, 캄보디아 사회의 깊은 고통과 가난을 극복하기 위해 교육 분야에서 오랜 시간 헌신해 왔습니다. 발표한 내용 역시 교육과 지역사회 발전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교육이야말로 사람들의 의식을 바꾸고,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첫째, 현재 저희에게는 여학생 교육이 우선순위입니다. 학교 인근 토지를 구입해 여학생들을 위한 기숙사를 확충하고자 하며, 이미 일부 토지 매입 계약을 논의 중입니다. 둘째, 교사와 직원의 질이 교육의 질을 좌우합니다. 기술적 지원이 가능한 국내외 단체들과 협력하여, 교육의 질을 높이고자 합니다. 셋째, 장기적으로 사용할 부지를 찾고 있으며, 2헥타르 정도의 토지를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는 대학의 활동 영역을 넓히기 위한 필수 기반입니다. 넷째, 시골 지역에 고등학교를 지을 수 있다면, 학생들이 학업을 포기하지 않을 것입니다. 중등학교는 많지만 고등학교는 멀리 떨어져 있어, 특히 여학생들이 학업을 이어 가기 어려운 현실을 해결하고자 합니다.”

소비치아 스님의 발표 후, 법륜스님은 장기적 지속성을 확보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했습니다.

“지속 가능한 발전 계획이 필요합니다. 기숙사를 일반 여학생용이 아니라 넌(여성 출가자) 전용으로 운영하면 어떨까요? 학생이 되는 동안 4년간을 넌으로 지내는 방식이라면 가족의 반대도 적고, 교육을 받은 여성 중 일부는 이후에도 공동체 활동 영역에 남아 리더로 성장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선 지속적으로 리더를 길러야 합니다. 단지 교육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며, 변화의 주체가 될 사람들을 키워내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작게 참여하면 더 큰 확장성과 지속 가능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대학의 부지 확보는 땅 한 평 사기 운동 방식으로 모금하면 공동체의 소속감과 참여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고등학교 건축은 학교, 지방 정부, 주민, JTS가 협력하여 MOU를 체결하면 가능합니다. 학교는 건축을 책임지고, 지방 정부는 기술자 인건비를, 주민들은 자원봉사를, JTS는 건축 자재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하면 실현이 가능합니다.”

캄보디아의 젊은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꿈꿀 수 있도록 계속해서 연대해 나가기로 하고 대화를 마쳤습니다.

잠시 휴식을 한 후 소감문 작성 시간을 가졌습니다. INEB 참가자 스님들은 지난 9일간의 여정을 되새기며, 흰 종이 위에 그동안 마음속에 쌓인 감상과 생각을 한 글자 한 글자 정성껏 써 내려갔습니다.

소감문 작성을 마치고 10시 30분부터 작성한 소감문을 발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온 담마난다 스님부터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이번 스터디 투어에서 저는 법륜스님이라는 훌륭한 롤모델과 가까이에서 함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이런 기회를 준 정토회와 INEB에 너무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실상사에서의 경험은 믿기지 않을 만큼 강렬했습니다. 전통 사찰의 주지였던 도법 스님께서 기존의 존경을 내려놓고 평등한 공동체,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 가는 모습에 깊은 존경심을 느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협력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서로의 일을 지원하며 공유할 수 있도록 네트워크를 만들 것을 제안합니다."

태국에서 온 콩신 스님은 정토회의 효율적 운영 방식에 큰 감동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정토회는 신뢰와 상호 존중을 바탕으로 운영되는 공동체입니다. 특히 일하는 방식에서의 효율성 강조가 인상 깊었습니다. 이 경험은 저로 하여금 더욱 분명한 목표와 결과를 향해 일하는 태도뿐 아니라, 개인적인 수행과 깨달음의 여정에도 정진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었습니다.”

라오스에서 온 사야데지 스님은 정토회에서 제작한 다양한 활동 영상을 보며 깊은 감동을 받았고, 자신도 소속 기관을 위해 무언가 해야겠다는 영감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정토회에서 보여준 여러 영상들은 저를 울컥하게 만들 정도였습니다. 영상 속에서 법륜스님이 보여 주신 깊은 자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제가 참여할 일이 있는지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제가 하고 싶은 일이 제 능력을 넘어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번 INEB 스터디 투어에서 배운 것은, 적어도 제가 봉사하고 있는 절과 공동체를 위해서는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캄보디아에서 온 폭판 스님은 사회를 위한 헌신적인 노력과 상호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이번 경험은 저에게 사회를 위한 일에 더욱 헌신해야겠다는 용기를 주었습니다. 또 제가 속한 공동체를 발전시키기 위한 비판적 사고와 창의적인 아이디어도 얻게 되었습니다.”

태국에서 온 프라윈 스님은 환경 문제, 특히 산림 복원을 위한 국제적 협력의 필요성을 언급했습니다.

“법륜스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단지 물질적인 성과를 유지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을 지키려는 철학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환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제적 협력을 어떻게 해 나가야 할지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소감문 발표를 하다 보니 점심 식사를 해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동남아에서 온 스님들은 오후 불식이라는 계율을 지켜야 해서 12시 전에 식사를 해야 합니다. 점심을 먹고 나서 소감문 발표를 이어 가기로 하고 다 함께 지하 공양간으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점심은 마지막 환송 오찬입니다. 맛있게 드세요.”

INEB 참가자 스님들은 테라바다 식으로 감사 기도를 한 후 식사를 시작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담소를 나눈 후 오후 1시 30분부터 다시 소감문 발표를 이어 갔습니다.

캄보디아에서 온 소비치아 스님은 한국의 참여 불교와 정토회의 체계적 운영에 대해 배웠다고 했습니다.

“정토회 활동가들은 매우 친절하고 열린 마음을 가졌으며 맡은 일에 대한 책임감이 강합니다. 이곳에서 정토회가 하고 있는 참여 불교에 대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미얀마에서 온 키티사라 스님은 조화로운 공동체 협력에 대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저는 정토회가 매우 사려 깊은 공동체라는 사실을 알고 크게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함께 일하고, 함께 살며, 조화롭게 협력하는지를 배웠습니다.”

마지막으로 법륜스님도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여러분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으며, 무엇이 부족한지를 잘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의 활동 속에 불교를 넘어서는 대사회적인 활동은 부족하지 않은가 하는 아쉬움도 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교가 지역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여러분 나름대로 굉장히 고민하고 애쓰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불교의 사회적 역할을 이어 가는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많은 승려가 출가자의 본분을 잊어버리고, 삼보정재(三寶淨財)를 통해 자기 일신의 안락을 추구하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가운데 여러분은 자신과 주변을 위해 헌신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점에서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상가 대중들이 그저 자기 혼자 안온하게 살아가는 데 급급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새롭게 교육을 시도하거나 지역 사회에서 환경 운동을 실천하면서 무언가 해 보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나 자랑스럽게 느껴졌습니다. 물론 여러분이 겉으로는 말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굳이 이렇게 해야 하나, 그만두고 싶다.’라는 마음이 들었던 적도 많았을 거라 생각됩니다.

우리들의 선배이신 술락 시바락사 박사님, 달라이라마 성하님, 틱낫한 스님, 고사난다 스님, 닥터 아리야라뜨네 박사님은 반세기 전부터 불교의 가르침에 따라 사회적 이슈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분들은 돌아가셨거나, 연세가 많아 활동이 어려워졌습니다. 그분들의 뜻을 어떻게 이어 나갈 것인가 하는 것이 오늘날 INEB의 큰 과제인 것 같습니다.

또 하나의 과제는 단순히 그 뜻을 계승하는 것을 넘어, 그 뜻을 어떻게 더 확장하고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입니다. 지금까지는 INEB이 각 활동가들을 단순히 연결하는 역할만 했다면, 앞으로는 공동으로 협력하는 길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여러분이 각국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맡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스터디 투어 프로그램에서는 구체적인 과제를 함께 논의하였기에 더욱 친밀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열심히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소감문 발표를 모두 마친 후 스님이 이야기를 이어갔습니다.

정토회는 사부대중이 아닌 일부대중입니다

“부처님은 출가하여 수행자가 되기 전에는 한 나라의 왕자였습니다. 왕자로 살 때에는 많은 하인을 거느리고 살았지만, 출가한 이후에는 더 이상 하인을 두지 않았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지위나 신분에 관계없이 수행자로 만나는 모든 사람들과 도반이 되셨습니다. 상가 구성원들 역시 상하 관계가 아니라 모두 도반으로서 평등하게 관계를 맺었습니다. 출가 전에는 주인과 하인의 관계였더라도 수행자가 된 이후에는 모두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가능하면 이러한 평등성을 지켜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관계가 잘못 맺어지면 금방 상하 관계가 되어 버리기 쉽습니다. 정토회의 구성원은 사부대중(四部大衆)이 아니라 일부대중(一部大衆)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남자, 여자, 승려, 재가자라고 나눠서 구분하지 않고 그냥 일부대중일 뿐입니다.

가난한 나라에 가서 구호 활동을 하다 보면 ‘돕는 사람’과 ‘도움을 받는 사람’으로 나뉘면서 상하 관계가 형성되기 쉽습니다. 현지인들이 저를 ‘승려’라고 부르지만, 실제로는 승려로 대하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사람’으로 대합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평등한 관계가 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저는 가능하면 평등한 관계를 만들기 위해 노력합니다. ‘도움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업무를 나누어서 함께 협력하는 관계’라는 개념입니다. 이런 취지에서 단체 이름을 ‘Join Together Society(JTS)’라고 지은 것입니다.

돕는 관계를 넘어, 함께하는 길로

또 하나 제가 늘 유념하는 점은 지원이 자칫하면 자립을 해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당장은 지원이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지원이 자립을 무너뜨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자립심을 키우는 방향의 지원이 될 수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어떤 방식이 자립심을 해치지 않고 오히려 자립심을 키울 수 있을지를 늘 고려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오늘 여러분의 발표를 듣고 JTS가 어떤 부분에서 어떻게 협력을 할 수 있을지 함께 이야기 나눠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도 도움을 받는 사람들의 자립을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그리고 여러분이 JTS로부터 어떤 도움을 받을 수 있을지 함께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어제 충분히 토론하지 못한 ‘서로 어떻게 협력할 것인가’를 주제로 다시 대화를 이어 나갔습니다. 스님은 JTS의 지원 원칙을 강조하며 각자의 조건과 환경에서 어떤 노력을 해주면 JTS가 어떤 지원을 해줄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태국에서 불교 교육, 지역 개발, 농업 등 다양한 프로젝트를 고민 중인 콩신 스님은 의욕이 넘쳤지만, 방향이 정해지지 않아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이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너무 많은 영역에 관심을 두면 실행이 어렵습니다. 불교 학교도 잘 운영하고 싶고, 주민들의 소득 증대도 돕고, 노인들도 돕고 싶다면, 이 모든 걸 다 하려다가는 결국 힘들어 지치게 됩니다. 그중에서 본인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을 선택해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라오스 옹투 승가대학에서 불교 교육을 이끄는 사야데지 스님은 정부나 승가 본부의 지원 없이 외롭게 고군분투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도 스님이 한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학교를 짓고, 운영하고, 확장해 나가는 데 있어서 정부나 승가의 지원 없이 혼자 하려 하면 한계가 많습니다. 라오스 불교 승가 본부나 정부 기관과 협력 관계를 맺어 자금이나 인력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필요합니다. 혼자 하지 말고, 시스템을 만들어야 합니다.”

폭판 스님은 자신이 맡고 있는 불교대학의 건물이 낡았고, 열악한 환경을 개선하고 싶어했습니다. 하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해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이 말했습니다.

“학교 건물 하나를 짓는다고 해서 그 지역의 교육이 나아지는 것은 아닙니다. 학교를 유지할 교사와 운영 시스템이 있어야 하고,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배우고 싶어하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합니다.”

야심 찬 비전을 품고 있던 프라윈 스님은 1000 에이커 규모의 국제 불교 공원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 중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이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국제 불교 공원을 만들고 싶다고 하셨는데, 먼저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계획을 세우는 게 필요합니다. 공간보다 중요한 건 사람입니다. 함께할 사람을 먼저 모으고, 그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공간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담마난다 스님은 수행 중심의 교육에서 더 나아가 현대 사회에 맞는 실천적 교육 모델을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이 말했습니다.

“먼저 교육에 대한 커리큘럼을 체계화하고, 그것을 실행해 보고, 교육 효과를 점검해야 합니다. 효과가 있다면 다른 사찰에서도 확대 시행이 가능합니다. 또 그 내용을 번역해서 다른 나라와도 공유할 수 있습니다. 정토회가 그런 작업을 도울 수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다양한 활동을 기획 중인 키티사라 스님은 여러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지만, 실행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 깊었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이 말했습니다.

“여러 좋은 아이디어를 갖고 계신데, 그 모든 것을 동시에 하려고 하다 보면 정작 하나도 제대로 이루기 어렵습니다. 우선순위를 정해서 꼭 하고 싶은 일 한두 가지를 먼저 실행해 보세요. 구체적으로 예산, 인력, 시간 계획까지 세워서 시작해야 실패하더라도 수정 보완해서 그다음 단계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참가한 모든 분들에게 정성 어린 조언을 해준 후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논의한 모든 사업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붓다 담마(Buddha Dhamma)입니다. 이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필요하고, 이 세상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사람들이 삶 속에서 붓다 담마를 어떻게 하면 쉽고 바르게 적용할 수 있도록 할 것인가’입니다. 이를 통해 사람들이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합니다.

삶 속에서 붓다 담마를 실천하는 길

부처님 당시에는 대부분의 수행자가 출가하여 상가를 이루고 함께 법을 전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그런 방식이 쉽지 않아요. 그러나 집을 떠나지 않더라도 누구나 자신의 삶 일부를 이 법을 전하는 데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절에 와서 복을 비는 신자는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사회적 활동가가 되기는 어렵습니다. 보살이라면 ‘내가 먼저 자립하고 남을 돕겠다’ 하는 마음을 조금이라도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이 모일 때 비로소 우리는 사회 변화를 이끄는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개개인들이 수행을 해야 하며, 법에 대한 올바른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 수행자들로 구성된 조직이 되어야 법을 전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사회적 실천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방법으로 함께 세상을 정의롭게 만들어 나가야 합니다.

부처님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혼자서 수행을 시작하셨고, 마침내 첫 번째로 깨달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오늘날 우리는 여러분과 함께 시작할 수 있고, 최소한의 시설도 갖고 있습니다. 부처님과 비교했을 때 우리는 많은 것을 갖고 있기에 ‘하겠다!’ 하는 마음을 내기만 하면 못 할 일이 없습니다. 함께 협력한다면 훨씬 더 잘할 수 있어요. 그런 마음으로 INEB(참여불교국제연대)이 창립이 되었고, 우리가 이렇게 만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함께 협력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긴 시간 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이어서 INEB 참가자 스님들이 고국으로 돌아가서도 꾸준히 활동해 줄 것을 당부하며 스님이 격려의 말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다양한 이야기들을 하니까 제가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실 저는 특별하게 내세울 만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태어난 곳도 시골이고, 가정형편도 시골에서 중간 정도였습니다. 교육도 고등학교에 다니다 말았고, 승가대학도 다니지 않았습니다. 유학도 가지 않았고, 다른 특별한 교육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저와 비교하면 여러분들은 뭐든지 저보다 낫습니다. 나이도 젊고, 더 많은 교육을 받았고, 가진 것도 많기 때문에 여러분이 살아가는데 문제 될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 절에 들어왔기 때문에 세속 친구가 별로 없을 뿐만 아니라, 승가대학도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스님 친구도 거의 없습니다. 그리고 전통 사찰의 기반도 없습니다. 저의 은사 스님은 매우 훌륭하신 분입니다. 그분의 제자 중에는 대학을 졸업하고 유학을 다녀온 분도 있고, 대학교 총장을 지내신 분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은사 스님으로부터 아무런 지원을 받지 않았어요. 그래서 지금도 은사 스님께서는 저에게 ‘너만 못 도와줘서 미안하다.’라고 하십니다.

불가능은 없습니다, 꾸준히 걸으면 됩니다

그렇지만 저는 수행이 꼭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수행은 저처럼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저는 경제적 지원을 받아본 적도 없고, 전통 불교의 권위를 누려본 적도 없습니다. 불교가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서 그냥 젊은이들과 모여서 불교 운동을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절을 빌려서 활동했는데, ‘민중 불교’를 한다는 이유로 쫓겨났습니다. 그 당시 사회 분위기에서는 사회 정의를 위해 활동하면 ‘민중 불교’라고 비난을 받았습니다. 대학생들과 함께 활동하다 보면 시대적 분위기상 사회 운동을 할 수밖에 없었는데, 대학생들은 사회 과학 책을 읽고 사회 운동을 했지만 제가 읽은 책이라고는 불교 경전밖에 없었습니다. 다만 과학자가 되고 싶었던 마음이 있어서 과학에 대한 관심이 늘 있었고, 역사에도 흥미가 많아서 혼자서 이런저런 책을 읽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래서 가끔 저는 대중에게 ‘저는 돌팔이입니다.’라고 말하곤 합니다. 한국말로 돌팔이는 의사 면허증은 없지만 병을 잘 고치는 사람을 뜻합니다. 정식 교육을 받은 건 아니지만 실제로는 잘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저는 모든 분야에서 돌팔이입니다. (웃음)

저는 특별한 무언가를 가지고 있어서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 평범함 속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제가 접한 것이라곤 부처님의 가르침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저는 부유한 집안 출신도 아니고, 물려받은 유산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처음부터 젊은이들과 함께 자원봉사로 시작했고, 재정적인 운영은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자립적으로 해왔습니다. 처음 사무실을 내고 자체 건물을 마련하는 데까지 14년이 걸렸습니다. 그동안 모금을 한 건 단 두 번 뿐입니다. 한 번은 땅을 마련하기 위해서였고, 한 번은 북한 동포들을 돕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때는 제가 대중에게 집을 팔아서라도 보시를 하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북한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 외에는 별도의 모금을 한 적이 없습니다.

지금 정토회가 하는 많은 일들도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것은 아닙니다.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도 우리는 멈추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일주일 동안 통역할 사람을 고용해서 이 프로그램을 진행했다면, 하루에 백만 원을 줘도 통역할 사람을 구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모두 무료로 봉사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외국에서 자비로 비행기 타고 와서 통역해 주는 분도 계시고, 운전도 자원봉사로 해 주십니다. 정토회에서는 이런 자원봉사자 분들께 식사만 제공해 드릴 뿐입니다. 그 덕분에 이렇게 많은 일을 함께 해낼 수 있는 것입니다.

돈에 연연하지 않아도 할 수 있는 일은 참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께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꾸준히 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출가한 수행자는 돈에 끌려 다녀서는 안 됩니다. 걸식을 할 때 음식을 달라고 요구해서는 안 되고 주는 대로만 받아야 하듯이, 그런 마음으로 사회 실천도 해 나간다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어요. 다시 한 번 함께해 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선물을 나누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INEB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무(Moo) 님에게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무(Moo) 님은 이번 여정을 통해 새로운 결심을 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이번 방문을 통해 단순한 지식뿐 아니라 그 안에 담긴 정신과 에너지를 배웠습니다. 돌아가서 지금 하던 일만 계속하는 것이 아니라, 뭔가 새로운 것을 직접 만들어 보고 싶다는 의욕이 생겼습니다.”

각국에서 온 스님들의 고민은 다양했지만, 그 안에는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하는 공통된 열망이 담겨 있었습니다. 법륜스님의 조언은 단지 방향을 제시하는 데 그치지 않고, 각자의 조건 속에서 실현 가능한 길을 함께 찾도록 이끌었습니다. 누구도 완벽하지 않지만, 서로의 지혜를 나눌 때 우리는 조금 더 멀리 갈 수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각국에서 온 스님들에게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저는 강의 요청을 많이 받지만, 일절 돈은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수행자는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선물이 들어오기도 합니다. 오늘 여러분에게 드리는 선물은 제가 돈을 주고 구입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받은 선물을 모아 두었다가 드리는 것입니다.” (웃음)

“Thank you.”(고맙습니다.)

통역을 하느라 수고한 활동가들, 운전을 하느라 고생한 활동가들에게도 선물을 전달했습니다.

“직장에 휴가까지 내고 봉사를 해주어서 고마워요.”

선물 전달식을 마치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로써 9박 10일 동안 진행된 INEB 스터디 투어 프로그램을 모두 마쳤습니다. 다 함께 지하 공양간으로 이동하여 간식을 먹으며 담소를 더 나눈 후 스님은 INEB 참가자 스님들과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스님은 서울 정토회관 방송실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생방송에 3900여 명이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2025년 올해는 광복 80주년입니다. 일본에 나라를 빼앗기고, 온갖 고초를 겪다가 나라를 되찾은 지 벌써 8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극심한 가난과 고통을 겪었지만, 지금 우리나라는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고, 한국산 제품과 한류 문화가 전 세계를 주름잡고 있습니다. 정말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할 정도로 큰 변화가 있었지요. 하지만 이렇게 물질적인 성과가 있었음에도 ’ 한국 사람들이 과연 행복한가?’를 조사해 보면 ‘그렇지 않다.’라는 결과가 나옵니다. OECD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자살률이 가장 높고, 출산율이 가장 낮습니다. 즉, 행복도가 매우 낮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자살률이 높다는 건 지금 살기가 힘들다는 뜻이고, 출산율이 낮다는 건 젊은이들이 미래를 희망적으로 느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나라 밖 외국인들이 보기에는 한국은 참 살기 좋은 나라인데, 정작 이 속에 살고 있는 우리는 ‘힘들다’, ‘괴롭다’ 아우성치고 있어요. 물론 민주주의를 더 발전시키고, 평등 지수와 사회 보장 제도를 더 확충하는 일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만으로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통계 자료가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한국 사람들은 성격이 급해서 쉽게 화를 내고, 욕심도 많고, 고집이 세다 보니 사회적 갈등 지수가 매우 높습니다. 이런 요인들이 우리의 행복도를 떨어뜨린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즉문즉설은 단순히 개인의 어려움을 해소하는 것을 넘어서 대한민국 국민 전체의 행복도를 높이기 위한 운동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마음 관리를 잘할 수 있도록 도와서 대한민국 국민들의 행복도를 높이자는 뜻으로 즉문즉설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오늘도 무엇 때문에 괴로운지, 그것이 정말 괴로움의 원인인지를 한번 살펴보도록 합시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들이 차례대로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네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사이비 종교를 탈퇴한 뒤의 외로움과 공허함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사이비 종교에서 12년, 인생을 허비했다는 자괴감이 듭니다

“저는 12년 동안 사이비 종교에서 신앙생활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최근 그곳이 잘못된 곳이라는 것을 깨닫고 탈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후련함보다는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의 젊은 시절을 허비했다는 자괴감이 더 큽니다. 그리고 탈퇴를 결심하며 그 안에서 맺었던 인간관계들도 모두 정리하다 보니 가족 외에는 지인이 거의 남아 있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힘든 것은, 종교 안에 있을 때는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고, 무엇을 이루어야 하는지에 대한 꿈과 목표가 확실했는데, 그곳을 떠나고 난 지금은 인생을 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이 듭니다. 앞으로 어떻게 인생을 살아가야 할지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질문자의 이야기를 들어 보니까 그곳은 사이비 종교가 아닌 것 같아요. 거기에 있을 때는 인생의 목표가 분명했지만, 지금은 목표가 없잖아요. 그러면 오히려 목표가 분명했던 그때가 더 낫지 않아요? (웃음)

지금 질문자는 ‘10년 동안 마약을 하면서 하루하루를 잘 보냈는데, 마약을 끊고 나니까 하루하루가 너무 심심해서 할 게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것과 비슷해요. 10년 만에 마약을 끊은 것은 잘한 일인가요, 아니면 허전함이 크니까 마약을 끊은 것은 잘못한 일인가요?”

“잘한 일입니다.”

“사이비 종교에서 12년 동안 있다가 나왔다면, 20년, 30년 있다가 나온 것보다 낫지 않아요?”

“낫습니다.”

“그러면 잘한 거잖아요. 만약 질문자가 길을 가다가 넘어졌다면 일어서는 게 나아요, 앉아 있는 게 나아요?”

“일어서는 게 낫습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는 ‘안 넘어졌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만 하고 있는 거예요. 물론 안 넘어졌으면 좋았겠지요. 하지만 이미 넘어졌으면 이제는 일어서는 게 더 낫습니다. 지금 질문자가 할 일은 다시 일어서서 길을 가는 겁니다. 한 번 넘어져 본 사람은, 언제 어떤 상황에서 넘어졌는지를 알기 때문에 앞으로는 더 주의할 수 있어요. 그런데 아직 안 넘어져 본 사람은 그런 경험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앞으로 넘어질 확률이 더 높습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비슷한 상황이 다시 생겼을 때, 사이비 종교에 빠져 보지 않은 사람보다 질문자가 오히려 더 조심할 수 있어요. 내가 외롭고 허전할 때 누군가가 다가와서 함께 해보자고 해도, 쉽게 유혹당하지 않게 됩니다. 예를 들어, 행복학교 홍보를 봤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하는 게 아니라, 우선 행복학교가 어떤 곳인지 조사하고, 법륜스님이 어떤 사람인지도 찾아본 뒤에 판단하는 태도를 갖게 된다는 겁니다.

지금은 12년이 손실 같아 보이겠지만, 그래도 20대에 겪은 일이잖아요. 나중에 50대가 되어서 이런 일을 겪는 것보다는 나아요. 지나고 보면 그 12년은 별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고등학교 졸업하고 1년 재수를 하면, 친구는 대학에 다니는데 나는 입시 공부를 하니 그 차이가 굉장히 크게 느껴지지만, 10년만 지나고 나면 재수를 했는지 삼수를 했는지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질문자가 경험한 12년도 마찬가지예요. 그러니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너무 생각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이비 종교란 본래 없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믿음을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조직이 있을 뿐이에요. 예를 들어 성추행, 성폭행을 하거나 돈을 갈취하는 건 사이비 종교가 아니라 범죄잖아요. ‘사이비’라는 단어는 주류 종교에서 벗어났다는 의미일 뿐이에요. 유대교 입장에서는 기독교가 사이비이고, 가톨릭 입장에서는 개신교가 사이비예요. 결국 사이비냐 아니냐는 시대와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이비인지 아닌지가 아니라 ‘범죄를 저질렀느냐’ 하는 것입니다. 종교를 이용해서 범죄를 저지르는 건 분명 잘못된 일입니다. 질문자는 지금 혹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있나요?”

“아니요, 지금은 완전히 마음을 접었습니다.”

“이번 경험을 잘 살리면 오히려 질문자의 인생에 도움이 될 수도 있습니다. 앞으로 종교뿐만 아니라, 이와 유사한 상황이 닥쳤을 때 질문자는 다른 사람보다 덜 속을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전화나 메시지로 ‘저한테 투자하면 돈을 벌 수 있습니다.’라는 식의 유혹이 와도 예전처럼 쉽게 속지 않고 한 번 더 체크를 해보게 될 거예요. 지난 12년을 아쉬워할 게 아니라 '넘어졌지만 다시 일어나서 가면 된다.'라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은 한 곳에 너무 몰두해 있다가 갑자기 탁 놓아버리니까, 당장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고 허전한 상태인 거예요. 그러나 1년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채워져요. 걱정하지 마세요. 혹시 지금 직장을 구하고 있나요?”

“네. 현재 직장을 구하고 있습니다.”

“좋습니다. 앞으로 직장을 나가게 되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맺게 되고 친구도 생깁니다. 다만, 지금의 허전함을 빨리 채우려고 서두르다 보면 또다시 이상한 데에 빠질 수 있어요. 어딘가에 빠진다는 건 마음이 허전하다는 거예요. 돈이 부족할 때 누가 돈을 준다고 하면 거기에 혹할 수 있고, 연애에 허전함을 느낀다면 그것을 미끼로 다가오는 사람한테 또 빠지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사귈 때도 ‘주의해야겠다.’라는 관점을 갖고 직장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또 건전하고 공인된 종교를 믿으면서 인간관계를 만들어 가면 됩니다. 그렇게 하다 보면 지금의 허전함이 자연스럽게 채워질 겁니다. 한 1년만 지나면 괜찮아집니다. 너무 서두르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스님의 말씀을 듣고 나니까, 이제는 정말 새로운 인생을 시작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앞으로 직장도 다니고 새로운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쌓아갈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런데 마약을 끊었다 해도, 나중에 그 허전함을 못 이겨서 다시 손대는 사람도 많잖아요. 마약을 해봤기 때문에 두 번 다시 안 하는 사람도 있지만, 해봤기 때문에 오히려 다시 빠지기 쉬운 사람도 있습니다. 질문자가 지금은 괜찮다고 느낄 수 있지만, 만약 공허함과 허전함을 못 이기면 다시 그곳에 빠질 위험이 있어요. 그러니 중요한 건 일상을 빨리 회복하는 겁니다. 직장을 구하고, 새로운 친구를 사귀고, 허전하지 않은 하루하루를 보내야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자신만의 삶을 차근차근 만들어가는 게 중요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어린 아기를 둔 엄마로서 복직과 양육 중 무엇을 우선해야 할까요?

  • 장애가 있는 언니와 무관심한 엄마 사이에서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결혼 준비 과정에서 계속 돈을 요구하는 엄마와의 갈등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넘었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을 기약하며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INEB 사무총장 무(Moo) 님과 동남아 각국의 여러 단체들과 어떻게 서로 연대하고 협력할지 회의를 하고, 오후에는 두북수련원으로 이동하여 저녁에도 무(Moo) 님과 회의를 이어 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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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상화

감사합니다

2025-07-07 17:51:21

수월

세계, 각국 스님들께 새마을 사업을 잘 할수있도록 부처님 법. 으로 잘설명하셔서 고맙습니다 부디 스님들께서 돌아 가 셔서 새마을 씨앗이 살아나기를 간절히 🙏

2025-07-07 17:10:47

무량덕

정토회원인 것이 자랑스럽습니다.

2025-07-07 14:4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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