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6.29. INEB 4일째, 수행·조직 운영·전법에 대한 토론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가 치밀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INEB(참여불교국제연대) 스터디 투어 4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하루 종일 ‘수행’과 ‘조직 운영’을 주제로 대화를 나눈 후 저녁에는 선유동 정토연수원으로 이동하여 ‘전법’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새벽 4시 30분, 대웅전에서 예불과 기도를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INEB 참가자 스님들도 정토회에서 하는 방식으로 예불과 천일결사 기도, 108배를 함께 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대웅전을 나오니, 깜깜했던 하늘이 점차 밝아오고, 희양산 자락을 감싸던 안개도 천천히 걷히고 있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은 후 뇌정산의 맑은 아침 공기를 마시며 발우공양을 하러 대수련장으로 이동했습니다.

INEB 방문단을 포함하여 행자대학원생, 백일출가생, 깨달음의장 바라지, INEB 바라지 등 5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발우공양을 했습니다.


발우공양을 마치고 명상원으로 이동하여 오전 8시부터 정토담마스쿨 학생들과 온라인으로 즉문즉설 시간을 가졌습니다.

정토담마스쿨은 외국인을 위해 영어로 진행되는 정토불교대학 프로그램입니다. 미국, 독일,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스리랑카, 호주에서 9개 그룹의 학생 21명이 온라인 화상회의 방에 접속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읽고 학생들의 소감을 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수업을 시작한 지 2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학생들은 마음가짐과 행동에 작은 변화들이 생기고 있었습니다.

INEB 참가자 스님들도 생방송을 시청하며 스님이 어떻게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는지 참관했습니다.

학생들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하자 스님은 정토담마스쿨에서 배우는 핵심 내용이 무엇인지 강조했습니다.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은 특정한 믿음을 강조하는 종교도, 지식을 중심으로 하는 철학도 아닙니다. 우리의 마음을 다스려 행복해지는 수행이라는 점을 여러분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을 겁니다. 그중 가장 핵심은 부처님이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으신 연기법(緣起法)과, 양극단을 넘어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신 중도(中道)입니다.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 연기와 중도

정토회를 예로 들면, 구성원 개개인은 특별한 존재가 아닙니다. 특별히 착하거나 능력이 뛰어난 것도, 특별한 선한 의지를 가진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시스템을 어떻게 구성하느냐에 따라 정토회라는 단체가 세상에 의미 있는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연기법은 단순히 ‘모든 것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라는 뜻을 넘어서, 여러 요소가 관계를 맺음으로써 새로운 ‘하나’가 되고 그 안에서 제3의 새로운 성질이 나타난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개별 ‘입자’나 ‘인자’도 중요하지만, 그들이 맺는 관계도 중요하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가정에서 남편과 아내가 각각 착실하더라도 두 사람의 관계가 잘못 맺어지면 가정에는 불화와 어려움이 생깁니다. 관계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변하며, 그 관계에서 나타나는 성질은 ‘그 안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자동차가 움직이고 소리를 내지만, 자동차를 분해해도 그 안에 ‘움직임’이나 ‘소리’라는 요소를 가진 존재는 찾을 수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즉 작용은 있지만 실체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무아(無我, 아트만)’이고, 끊임없이 변하는 관계가 ‘무상(無常, 아니차)’입니다.

무아와 무상은 불교 사상과 철학의 핵심입니다. 이것을 알지 못하면 이 세상을 제대로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반면 연기법을 깨닫는 순간 모든 번뇌가 사라집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연기를 보는 자가 나를 보고, 나를 보는 자가 연기를 본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는 중도(中道)입니다. 중도란 단순히 두 길 사이의 중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바르고 정확하게 목표에 이르는 길을 뜻합니다. 한문으로 바를 정(正) 자를 써서 ‘정도(正道)’라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이 ‘정도’는 고정된 길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종종 ‘진리는 정해져 있다.’라고 생각하지만, 부처님 가르침의 핵심은, ‘어떤 것도 절대적이지 않고, 상황과 조건에 따라 바른 길이 달라진다.’라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진리다, 정답이다.’라고 확신하는 태도는 매우 위험합니다. 과학적으로 말하면 ‘불확정성 원리’와도 유사합니다. 중도를 바르게 이해해야 변화하는 상황에 유연하고 정확히 대응할 수 있습니다. 불교에는 수많은 가르침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두 가지가 연기와 중도임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어서 수업 중에 궁금했던 점에 대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세상의 부조리에 분노가 치밀 때, 어떻게 마음을 다스려야 할까요?

“I’ve been learning a lot about the acceptance that there is no fixed point of view, and that I’m not always right. But when I think about global affairs and see powerful people exploiting the weak, with their cruelty and violence, and they don’t seem to be held to account, I feel anger and frustration. I’m frustrated both with the leaders and perpetrators, as well as with those individuals who don’t seem to see the reality of what is happening. What should I do about this anger and frustration? How can I come to terms with the way the world is right now?”

(요즘 모든 것이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과 내가 항상 옳은 건 아니라는 걸 받아들이는 데 대해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세계 각국의 현안에 대해 생각해 보면,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약한 사람들을 잔인하고 폭력적으로 착취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전혀 느끼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엄청난 분노와 좌절감을 느낍니다. 비단 가해자나 힘을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금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좌절감을 느낍니다. 이 분노와 좌절감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지금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는 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오늘날 세상에서 벌어지는 많은 일들을 보면, 10년이나 20년 전과 비교해 부정의(不正義)가 심해졌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불평등은 커지고 차별은 깊어졌으며, 평화마저도 깨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상황이 나빠졌다고 느끼는 것은 과거를 기준 삼아 현재를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만약 기준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파시즘 시대에 둔다면, 지금은 오히려 그때보다 나아졌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좋아졌다.’ 혹은 ‘나빠졌다.’라는 평가는 어디를, 누구를,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리 평가된다는 거예요. 하지만 기준점 자체를 내려놓고 바라본다면, 단지 ‘변화가 일어났다.’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전에는 A였는데 지금은 B가 되었다.’라는 변화만 인식하면 마음속 분노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분노 없는 상태에서 ‘B를 받아들일 것인가, 아니면 A로 되돌릴 것인가’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B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저 수용하면 되는 일입니다. 그러나 A로 되돌리고자 한다면, 내가 해야 할 역할과 책임이 생깁니다. 그 노력은 반드시 성공하는 것도 아니며, 불확실한 길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 딜레마 속에서 고뇌가 생깁니다. B를 받아들이기엔 싫고 A로 돌아가기 위한 노력은 힘에 겨울 때, 그 갈등과 고민 속에서 번뇌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행자라면 먼저 현재의 B라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속에 분노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A가 더 정의롭다고 생각한다면, 그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이럴 때 우리는 분노 없이 변화를 위해 노력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고 판단된다면, 성공 여부와 관계없이 그 변화의 길이 지금 내 삶이고, 곧 보살의 길입니다.

여러분이 어느 나라에 살든, 어떤 문제를 고민하든, 바꾸어야 할 것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과의 연대가 필수적입니다. 그러나 단지 ‘정의로워야 한다, 바르게 나아가야 한다.’라는 기준에만 집착하면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해 괴로움이 커집니다. 반면 변화에 무작정 순응하는 사람은 변화를 받아들이지만, 변화를 일으키지는 못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변화된 현실을 직시하며 자신이 추구하는 목표에 맞게 필요하면 변화를 일으키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해되셨나요?”

“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시각을 심어 주신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9시 30분에 대화를 마치고 다음 시간을 기약했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INEB 정토회 방문단과 대화를 나누기 위해 명상원 정념당으로 향했습니다. 9시 45분부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오늘의 대화 주제는 ‘수행’과 ‘조직 운영’입니다.

먼저 정토회 국제연대팀 여지원 활동가가 ‘정토회의 수행과 조직 운영’이라는 주제로 정토회가 어떻게 개개인의 수행을 토대로 공동체를 유지해 나가고 있는지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생생하게 들려 주었습니다.

“정토회 회원이 되기 위해서는 수행, 봉사, 보시 세 가지를 실천해야 합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매일 천일결사 기도를 하고, 매주 수행법회를 듣고, 매년 명상 수련에 참가하며 수행자로서의 삶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모든 활동이 자원봉사로 이루어지며, 수행자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다양한 교육과 수련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투명한 재정 운영과 민주적인 의사 결정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누구나 자신의 상황에 맞게 봉사할 수 있도록 다양한 회원 체계를 두고 있습니다.”

발표 후 정토회의 조직 운영과 재정, 회원 제도에 대해 다양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전체 회원 수는 얼마나 되는지, 회원이 된 이후 실제로 사람들이 더 행복해졌는지, 정토회의 구조를 처음부터 체계적으로 구상한 것인지 등 구체적인 질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활발한 질의응답을 통해 정토회의 철학과 운영 방식에 대한 관심과 공감이 깊어졌습니다.

라오스에서 온 사야데지 스님은 정토회의 조직 운영 방식을 ‘담마 시스템’이라고 평가하며 발표를 듣고 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수행자들이 꾸준히 수련을 이어 오면서 정토회라는 조직에 대한 믿음이 생긴 것 같습니다. 이것이 바로 ‘담마 시스템’의 힘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정토회에 와서 자원봉사를 하는 사람들은 내면에 상당한 영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삶의 변화를 경험한 사람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생깁니다. 그런 사람들은 쉽게 조직을 떠나지 않을 것이고, 당연히 다른 조직을 위해 일하지도 않겠죠. 물론 제가 틀릴 수도 있겠지만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이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자신의 시간을 내어 봉사를 하면서 매일 아침 정진도 해야 합니다. 이렇듯 의무는 분명한데 사실 정토회를 통해 어떤 개인적인 이익을 얻는 것은 거의 없습니다. 정토회에서는 ‘보시하면 복을 받는다.’ 라거나, ‘봉사하고 보시하면 죽어서 좋은 곳에 태어난다.’라는 식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오랫동안 활동을 이어 나가려면 활동 자체가 그들 각자에게 보람과 기쁨이 되어야만 합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봉사를 하게 되는 요인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봉사를 지속할 수 있는 이유, 수행과 주인 의식

첫째, 정토회 회원들은 매일 수행을 통해 개인적인 문제와 가족 문제 등 삶의 고통을 덜어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1년에 두 번 이상 정기적으로 집중 수행을 하면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문제들을 해소하고 있습니다. 또 매주 열리는 수행법회에서 자신의 어려움을 말할 수 있는 즉문즉설에 참여합니다. 필요하다면 법사님에게 개인 상담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즉 수행을 통해 자기 스스로 기쁨이 늘어나고 있는 것을 느낍니다.

둘째, 정토회에서 봉사함으로써 일종의 자부심을 느낍니다. 좋은 일을 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갖게 됩니다. 예를 들어, 시리아 지진 피해 지역에 학교를 세우거나 부탄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 사업을 하는 모습을 봤을 때 내가 낸 보시금이 의미 있게 쓰였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인도 수자타 아카데미가 운영되는 모습을 보면 자랑스러운 마음이 생깁니다. 이렇듯 실질적인 이익보다는 자신의 활동에 대한 긍정적인 만족을 얻는 것입니다. 사람은 무언가를 얻었을 때도 기쁨을 느끼지만, ‘자신이 어떤 역할을 해냈다.’라고 느낄 때 보람이라는 기쁨이 생깁니다. 보람을 느끼는 사람은 지속해서 봉사를 하게 됩니다.

셋째, 자신들이 함께 의논하고 결정하고 실행하면서 일이 진행되다 보니, 단순히 저를 따르는 소극적인 태도보다는 ‘이 일은 나의 일이다.’하는 주인 의식을 갖게 됩니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그만두는 경우가 종종 생기는데, 그 이유는 대부분 너무 힘이 들어서입니다. 봉사를 하면서 동시에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병행하는 일이 너무 벅차서 그만두는 경우가 더러 있습니다.”

이어서 미얀마에서 온 키티사라 스님이 ‘개인 수행’을 주제로 발표를 했습니다. 키티사라 스님은 마음 챙김과 지혜, 절제된 노력이 괴로움에서 벗어나 열반에 이르는 길이라고 강조하며, 보이는 이익(가정의 평화), 보이지 않는 이익(영적 성장), 궁극적 이익(지혜와 해탈)을 불교 수행의 세 단계로 설명했습니다.

“제가 운영하는 ‘보디아예냐 명상센터(Bodhi Aye Nyein Meditation Center)’는 사마타 명상과 위빠사나 명상을 결합한 45일, 15일, 9일 명상 수련을 통해 깊은 수행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또 다른 활동인 ‘담마스쿨’은 미얀마 전역에 6천여 개의 학교를 설립해 청소년에게 불교 교육과 도덕 교육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지혜와 자비가 함께할 때 사회적 실천은 선택이 아닌 당연한 삶의 표현입니다.”

키티사라 스님은 수행과 교육, 사회봉사가 하나로 이어져야 함을 강조해서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대화가 깊어져 가고 있을 무렵 점심 시간이 되었습니다. 다 함께 정정당으로 이동하여 식사를 했습니다.

INEB 참가자 스님들이 접시에 음식을 담아 자리에 앉자 식사를 준비해 준 자원봉사자들이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들은 자원봉사자들을 위해 축원 기도를 해 주었습니다.

스님은 자원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정성껏 준비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식사를 마치고 스님은 INEB 정토회 방문단 모두에게 부채를 하나씩 선물했습니다.

“더울 때마다 부채를 펼쳐 시원한 바람을 쐬어 보세요.”

잠시 휴식 시간을 가진 후 오후 1시 30분부터 다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온 담마난다 스님의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저는 스리랑카에서 와폴라 라훌라 재단과 그 산하 연구소인 WRI(Walpola Rahula Institute)를 설립하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팔리어 삼장과 주석서 연구, 불서 출판 등을 통해 초기 불교 교육을 확산하고 있으며, 동시에 종교 간 긴장 완화와 화해를 위한 ‘종교 간 대화 프로그램’과 ‘쌍둥이 학교’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치유 및 생계 향상 프로젝트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WRI에서는 불교의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며, 승가 개혁과 사찰의 변화, 미래의 스님과 사찰을 준비하는 ‘Heta BhikShuva’, ‘Heta Pansala’ 프로그램을 운영 중입니다. 조직은 이사회, 운영위, 자원봉사자 중심으로 구성되며, 재정은 전적으로 대중의 자발적 후원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발표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주제를 다시 한 번 강조해 주었습니다.

“오늘 대화하고자 하는 주제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개인이 어떻게 수행해 나갈 것인가입니다. 둘째, 그렇게 수행하는 사람을 기초로 어떻게 조직을 운영해 나갈 것인가입니다.”

먼저 라오스에서 온 사야데지 스님이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정토회는 어떻게 정부 지원 없이도 안정적으로 운영될 수 있을까요?

“스님께서 정토회의 조직 운영에 대해 설명하시는 걸 들으면서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습니다. 제가 속해 있는 대학교는 정부가 운영합니다. 그런데도 다른 대학에 비해 뒤처져 있고, 캄보디아와 비교해 봐도 라오스는 아직 여러모로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큰 문제 중 하나는 저희 학교에서 선생님으로 일하는 스님들이 대부분 다른 나라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이분들에게 충분히 급여를 드릴 수 없다는 점입니다. 스님들에게 월급을 따로 지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교통 문제도 큽니다. 숙소가 학교와 멀어 스님들이 툭툭이를 탈 때도 자비로 부담해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이직을 고민하기도 합니다. 해외에서 공부를 마친 후 우리 대학에 와서 계속 가르칠지, 아니면 환속(還俗)하고 다른 직업을 가질지 늘 고민합니다. 학교 선생님들이 화장실이나 도서관 같은 시설을 보수하고 싶어도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건물을 보수하거나 새로 지을 때도 정부 지원이 아니라 개별 후원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정부 학교임에도 여러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정토회를 보면 정부 지원 없이도 조직만으로 안정적으로 운영됩니다. 저희와는 참 큰 차이가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마치고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됩니다. 스님께서 이 프로그램이 끝난 뒤 저에게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면 좋을지 제안이나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스님은 정토회가 걸어온 길을 설명하며 수행자는 조직 운영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여러분이 계신 동남아시아 5개 국가와 한국은 종교 활동의 배경이 매우 다릅니다. 여러분이 사는 5개 국가는 모두 불교 국가이기 때문에, 정부와 불교 종단이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종단의 일이 곧 정부의 일이기도 한 경우가 많죠. 제가 부탄에서 활동하면서 봐도, 정부 예산의 상당 부분이 불교 사찰을 운영하는 데 쓰입니다. 그래서 정부 관료들이 절 운영에 정부 예산을 너무 많이 쓴다고 불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JTS처럼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돈을 쓰는 게 아니라 사찰을 짓고 불상을 만드는 데에 많은 예산을 쓰는 거예요. 그러니 주민들 입장에서는 ‘안 그래도 쓸 돈이 없는데 왜 이렇게 절에만 돈을 쓰느냐.’ 하고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한국은 어떤 종교도 국교로 정하지 않고, 정부와 종교는 철저히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학교 교육에는 우리가 개입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정부가 교육을 전적으로 책임지기 때문입니다. 미얀마처럼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정토회를 이해하려면, 여러분 나라에 있는 기독교 단체를 떠올려 보시면 됩니다. 그들에게 정부가 아무런 지원을 하지 않잖아요? 정부와 아무 관계없이 스스로 활동합니다. 물론 외국에서 지원이 들어오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스스로 자립해 나갑니다. 정토회도 그런 방식으로 활동해 점차 확장해 온 단체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립 구조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전통 불교는 절이 문화재로 지정되면 정부 지원을 받기도 하고 관광 수입도 있습니다. 하지만 정토회는 그런 것이 전혀 없이 오직 회원들의 회비와 후원금뿐입니다. 정토회가 다른 절에 비해 수입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돈을 내면 복을 받는다든지, 죽어서 좋은 곳에 간다든지 하는 얘기를 일절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복을 비는 종교가 아니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우치는 수행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복을 비는 행위가 없습니다.

지금의 정토회가 이런 수행 단체로 여기까지 오기에는 사실 많은 시간이 걸렸습니다. 한국 사회 안에서도 매우 특이한 경우라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현재 정토회는 모든 것이 자원봉사 체제로 운영됩니다. 그래서 수입이 많아서가 아니라 지출이 적기 때문에 재정에 조금 여유가 있는 것입니다.

외국에서 공부한 스님들은 불교를 공부하고 돌아오더라도, 스스로를 전문적인 학교 선생님처럼 생각하기 때문에 월급이 필요한 거예요. 만약 승려가 아니라면 월급을 받을 수 있지만 승려이기 때문에 월급을 못 받으니 밖으로 나갈 수밖에 없는 겁니다. 저는 이것이 수행적 관점이 덜 잡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어느 쪽이든 해결이 필요합니다. 하나는 시스템이 이분들의 생활을 안정적으로 보장해 주든지, 아니면 스님 개개인이 수행자로서 헌신적으로 새로운 것을 시작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정토회는 후자의 길을 걸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반면 현재 조계종의 스님들은 종단에서 후원을 받기 때문에 전자의 방식을 따르고 있습니다.

라오스의 경우에는 종단이 아직 불교를 발전시킬 충분한 운영 능력이나 조직 체계를 제대로 갖추지 못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종단이 변화해서 이런 문제들을 제대로 후원할 수 있도록 체계를 바꿀 필요가 있습니다. 라오스가 경제적으로 어렵다고는 하지만, 불교 종단에는 정부 지원금이나 후원금이 어느 정도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그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를 잘 결정해야 합니다. 지금 질문하신 스님 말씀을 들어 보면, 교육에 충분히 투자하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결국 다른 길은 정토회처럼 밑에서부터 개별적으로 운동을 시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그렇게 하려면 많은 어려움을 겪어야 합니다. 돈을 모으는 것뿐만 아니라 필요한 일도 다 스스로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엄청난 자산이기 때문에 사람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길게 보면 건물을 하나 짓는 것보다 훌륭한 사람 한 명을 확보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공부야 나무 밑에서도 할 수 있지만, 훌륭한 선생님 한 분은 쉽게 얻을 수 없지 않습니까. 물론 정부나 종단이 그렇게 해 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방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제가 여러분과 이런 대화를 나누는 이유도, 정부나 종단을 제외하고 ‘우리가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함께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부탄에서 하는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을 발전을 위해 정부가 지원해 주면 좋지만 그렇지 않으면, ‘그냥 가난하게 살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스스로 뭔가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합니다.”

이어서 소비치아 스님이 캄보디아에서 불교대학을 운영하며 느낀 점과 고민을 이야기하고, 미얀마에서 온 키티사라 스님이 미얀마에서 담마스쿨을 운영하며 느낀 점과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토론을 마무리하면서 태국에서 온 프라 윈(Ven. PHRA Win)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조직 운영은 항상 세 가지 M이 문제입니다. Money(돈), Man(사람), Management(경영)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뜻과 계획이 있어도 실행에 옮기기 어렵습니다.”

열띤 토론을 마치고 20분간 휴식을 했습니다. 잠깐 쉬어갈 겸 스님이 방송문화예술인들의 모임인 길벗과 연탄 배달 봉사를 함께한 모습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JTS의 한국 내 지원 사업에 대해 설명한 후 다시 토론을 이어 갔습니다. 사회 정의를 실현하는 행동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각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미얀마에서 온 키티사라 스님은 종교 간 갈등과 정치적 개입 속에서도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교육과 공존을 지키기 위해 구체적인 활동을 해 왔다고 소개했습니다. 태국에서 온 콩신 스님은 불교 승려들이 투표권이 없는 반면 병역 의무는 존재한다며 제도적 불균형을 지적했습니다. 특히 승려는 여권 신청을 할 때 일반 시민 신분이 아닌 승려 신분으로만 가능하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 법륜스님은 시대 변화에 따라 계율 해석도 달라져야 한다는 점에서, 승려들도 시민으로서 최소한의 권리는 보장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반면 스리랑카에서는 승려도 시민권과 투표권이 있으며, 국회 의원 출마까지 가능하지만 차량 운전은 금지되어 있는 등 여전히 제도적 모순이 존재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나라별로 종교와 정치의 관계, 승려의 사회적 권리와 역할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함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창 토론을 하는 가운데 스리랑카의 담마난다 스님이 자신이 겪은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리랑카의 경제가 무너지고, 사람들이 1000여 명이나 모여 항의하던 때였습니다. 저는 직접 그 현장에 가서 사태를 지켜보고 개입하게 되었습니다. 제 의도는 단 하나, ‘폭력을 쓰지 말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리에서 제 사진이 찍혔고, 시위가 폭력적으로 변하면서 ‘이 승려가 폭력 시위대에 가담했다.’라는 식으로 보도가 나갔습니다. 하지만 저는 진심으로 좋은 뜻으로 폭력을 막고 싶었을 뿐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저는 뒤로 물러설 수도, 그렇다고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었습니다. 이렇게 공격을 받는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이에 대해 스님이 말했습니다.

“사람은 살다 보면 뜻하지 않게 오해를 받기도 합니다. 우리가 잘못하지 않았더라도, 이를 테면 자동차를 몰다가 사고가 날 수 있잖아요. 차 사고가 났다고 해서 꼭 나쁜 의도로 운전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다쳤다면 치료는 받아야 하죠. 그런 것처럼 어떤 일은 아무리 좋은 의도로 했더라도 그 결과가 상대에게 어떻게 전달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르게 비칠 수 있습니다. 결국 아무리 좋은 마음으로 한 일이라 해도 그것이 온전히 상대에게 전달된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원치 않는 과보를 받기도 해요.”

이어서 캄보디아에서 온 폭판 스님(Ven. Pok Pan)이 질문했습니다.

소통을 잘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스님의 경험을 조금 더 듣고 싶습니다. 평소 소통이나 관계는 어떻게 이어 가고 계신가요? 관계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스님의 소통 방식이 궁금합니다.”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저도 소통을 잘 못해요. 그냥 대강하고 있는 거예요. (웃음) 굳이 말씀드리자면, 소통을 잘하는 비결은 ‘잘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잘 들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소통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진정한 소통은 ‘듣는 것’입니다. 내가 말하는 것을 상대가 그냥 듣고 있는 것을 소통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게 소통이라면 왕이야말로 제일 소통을 잘하는 사람이겠죠. 왕이 말하면 신하들이 듣기만 하니까요. 하지만 그것은 진짜 소통이 아니에요.

어떤 지도자가 국민과 소통한다는 것은 국민의 목소리를 귀기울여 듣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소통을 잘 하고 싶다면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그냥 들으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남의 말을 듣는 것보다 내 말을 하기가 더 쉽습니다. 그래서 소통이 어려운 거예요. 많이 들으세요.”

이 외에도 해외에도 정토회 사무실이 있는지, 활동가들의 가족이 정토회에 대해 항의를 하거나 반대 시위를 한 적이 있었는지, 태국에서는 출가를 하려면 부모의 허락이 필수인데 정토회의 출가자들도 모두 부모의 동의를 받았는지 등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조직 운영에 대해 많은 대화를 나눈 후 스님이 제안했습니다.

“저녁 식사는 간단히 먹고 산책을 합시다. 이렇게 경치가 좋은 곳에 와서 방 안에만 앉아서 이야기만 하고 있을 순 없잖아요. 근처에 선유동 계곡이라고 경치 좋은 곳이 있습니다.”

오후 5시 30분에 저녁 식사를 하고 선유동 계곡으로 이동했습니다. 차를 타고 학천정에 내린 후 선유동 계곡을 따라 난 산길을 함께 걸었습니다.


계곡을 따라 흐르는 시원한 물소리가 더위에 지친 마음까지도 식혀 주는 듯했습니다.


선유동 정토연수원으로 돌아온 INEB 참가자 스님들은 간단히 정비 시간을 가진 후 저녁 7시 10분에 대강당에 모였습니다.


저녁 예불을 하기 전에 스님이 정토회 법사단의 일원인 묘향 법사님의 부고를 알렸습니다. INEB 참가자 스님들은 묘향 법사님을 위해 기도를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면서 묘향 법사님에 대해 간단히 소개했습니다.

“어제 묘향 법사님이 돌아가셨습니다. 묘향 법사님은 정토회 법사단에서 나이가 젊은 분에 속합니다. 대학생 때 정토회 공동체에 입방 하여 지금까지 활동을 해왔습니다. 오랫동안 정토출판 부서를 이끌어 오시다가 법사 수계를 받고 나서는 법사 교육을 담당하셨습니다. 암 진단을 받고 나서 갑자기 병세가 악화되어 돌아가시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가 마음 아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인생인데 어떡하겠습니까. 여러분이 기도를 해 주신다고 하니 정말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INEB 참가자 스님들을 대표하여 담마난다 스님이 이 기도에 담긴 의미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법륜스님께서도 사랑하는 제자의 부고가 안타까워서 마땅히 장례식에 참석하고 싶으시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저희와 함께 시간을 보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그래서 저희들도 함께 위로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저희들이 각자 자신의 나라에서 했던 모든 선행의 힘으로 묘향 법사님이 가시는 길에 평화로움이 깃들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하려는 의식은 저희들의 간절한 마음을 모아서 한 곳에 담는 의식입니다.

빈 잔은 돌아가신 분을 상징합니다. 옆에 있는 주전자는 우리 모두를 상징합니다. 그 안에 있는 물은 법사님에 대한 감사함과 우리들의 선의를 상징합니다. 이제 물을 빈 잔에 담겠습니다. 잔이 넘칠 때까지 물을 따르겠습니다. 이것은 묘향 법사님의 평온함을 위해 빈 잔이 차고 넘칠 때까지 우리의 진심을 주겠다는 의미입니다.”

담마난다 스님은 빈 잔에 물을 가득 부었습니다.


그리고 다 함께 테라밧다 방식으로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묘향 법사님을 위한 기도를 마친 후 저녁 예불을 했습니다.

해가 저물자 무더위가 한풀 꺾이며, 저녁 바람이 살랑살랑 불어와 몸과 마음을 식혀 주었습니다.


저녁 7시 30분에 회의실에 모여 다시 발제와 토론을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국제협력팀 최지선 활동가가 정토회의 전법 활동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수행, 전법, 실천을 핵심으로 하는 정토회의 전법 활동을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부처님의 일생을 살펴보면,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으신 뒤 45년 동안 한순간도 쉬지 않고 전법 활동을 이어 가셨습니다. 이처럼 부처님의 법을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 널리 전하는 것은 불자에게 매우 중요한 사명입니다. 정토회가 특히 강조하는 것도 바로 이 점입니다. 정토회에서는 수행, 전법, 사회 실천, 이 세 가지를 핵심 가치로 삼고 있습니다. 먼저 자신을 위해서는 수행을 통해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타인을 위해서는 부처님의 법을 적극적으로 전하며, 나아가 사회를 위해서는 정의와 평화를 실현하는 사회 활동을 펼칩니다.

정토회의 핵심 가치, 수행·전법·사회 실천

특히 전법을 위해서는 지금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최대한 동원하려 합니다. 물론 수행자들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 최고의 전법이지만, 현대 사회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유튜브로 즉문즉설을 꾸준히 내보내고, 다른 SNS 채널을 통해서도 다양한 법문을 전하고 있습니다. 책을 출판하기도 하고요. ‘깨달음의장’ 같은 수련 프로그램은 정토 행자가 아닌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어서 처음 불교에 입문하는 사람에게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이런 바탕 위에서 행복학교가 운영되고 있고요. 정토회가 구체적으로 사람들과 인연을 맺는 통로는 행복학교, 정토불교대학, 깨달음의장 이 세 가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출판과 SNS가 넓은 토대를 형성한다면, 깨달음의장과 행복학교, 정토불교대학은 정토회가 사람들과 직접 만나는 접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한 단계 더 깊이 들어가면 경전대학이 있는데, 이것 또한 법을 전하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이외에 사회 실천 활동도 간접적으로 전법에 큰 도움이 됩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노력이나 북한에 대한 인도적 지원은 대외적으로 불교에 대한 이미지를 개선합니다. JTS가 하는 다양한 국제 구호 활동이나 에코 붓다에서 하는 환경 실천 운동 또한 사람들에게 불교에 대한 좋은 이미지를 전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다양한 활동을 통해 전법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이후 참가자들은 ‘틱톡은 왜 사용하지 않나요?’, ‘스님의 하루는 어떻게 매일 작성될 수 있나요?’, ‘스님의 하루에 실리는 법문은 어떻게 선정되나요?’, ‘정부에서 SNS를 검열하거나 댓글 부대의 공격을 받는 일은 없었나요?’, ‘영어 유튜브 구독자의 연령, 성별 분포는 어떻게 되나요?’ 등 주로 온라인 전법 활동에 대한 질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스리랑카의 담마난다 스님은 법륜스님이 어떻게 현대인들에게 맞는 개방적인 대화 방식을 취하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전통 교육을 받은 스님이 어떻게 즉문즉설을 하게 되었나요?

“스님들이 계를 받기 위해 교육을 받을 때는 전통적인 방식으로 아주 엄격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배우고 말하도록 훈련받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45년 동안 사람들을 만나 전법을 하실 때, 실제 문제점에 대해 말씀하시며 열린 대화를 하셨지, 정해진 대화만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법륜스님도 즉문즉설을 통해 전통적인 말씀만 하지 않고, 매우 직접적이고 열린 대화를 하시던데, 그렇게 엄격한 전통 교육을 받고도 어떻게 그런 대화를 하실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중학교 때 처음 절에 갔습니다. 고등학교 때는 경주 지역 불교학생회 부회장과 회장을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한국이 전통 불교 분위기라 학생들이 절에 오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학생들은 시끄럽게 떠들고, 또 보시도 하지 않으니 절에서 싫어했어요. 그래서 수련을 하려고 해도 절을 구하기가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겨우 어떤 절을 빌려 수련하다가도 몇백 명이 모였다가 쫓겨난 적도 있었습니다. 첫째는 시끄럽다는 이유였고, 둘째는 여학생과 남학생이 함께 와서 시시덕거리는 게 보기 싫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학생들을 위해, 조금 떠들어도 되는 수련장을 갖는 것이 우리의 소원이었습니다.

또 학생들을 가르치는 스님들의 법문 내용이 할머니들에게 이야기하는 수준이라 학생들에게는 안 맞았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중고등학생을 위한 교육 내용을 만들고 수련을 지도했습니다. 그 뒤에는 대학생들을 위해서도 강의를 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학생들 눈높이에 맞게 과학적이고 합리적으로 설명하게 된 거죠. 전통 불교는 절 안에서 아무리 훌륭해도 밖에서는 아무도 모르니 ‘알아야 가치가 있지, 모르면 무슨 가치가 있나’, ‘이 아이들에게 맞는 불교를 해야 한다.’ 이런 관점이었습니다. 저는 불교를 좋아하면서도 전통 불교에는 늘 아쉬움을 느꼈기 때문에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맞게 법문을 하기 위해 더 많이 연구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대중과 더 많이 대화하는 쪽으로 가지 않았나 싶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INEB 참가자 스님들은 오늘의 법륜스님이 있기까지 그 배경이 무엇인지에 대한 관심이 많았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다양한 불교 전통에 전문성을 갖게 되셨나요?

“스님은 민주화 운동도 하셨다 하고, 예전에 머리를 기른 채 봉암사에서 부목으로 일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마하야나(대승 불교, Mahāyāna), 테라밧다(상좌부 불교, Theravāda), 젠불교(선불교, Zen Buddhism)의 여러 전통에 대해 모든 전문성을 갖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전문성이 없습니다. 돌팔이입니다. 다만 이런 문제 의식을 늘 갖고 있었어요. 마하야나(대승 불교)에서는 테라밧다(상좌부 불교) 교리를 대체로 부정합니다. 그런데 선불교를 공부하면 이번에는 또 마하야나를 부정하죠. 이게 한국 불교의 큰 문제라고 봤습니다.

우리가 처음 불교를 배울 때는 불교의 근본 사상을 배우잖아요. 그런데 막상 대승 불교 경전을 보면 이런 근본 가르침을 소승 불교라고 낮춰 부릅니다. 테라밧다 불교를 초등학생 수준이라며 깎아내리고, 대승 불교는 대학 수준이라며 자부하죠. 그런데 선불교로 가면 아예 경전을 읽고 공부하는 것 자체를 부정해 버립니다. 이러니 공부를 하면 할수록 심리적으로 불교의 가르침이 한 곳으로 모이지 않고 오히려 혼란이 깊어집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주로 테라밧다만 공부하니까 별다른 문제 의식을 잘 못 느낄 수 있습니다. 마하야나를 공부하면 테라다를 부정하고, 선불교를 공부하면 또 마하야나를 부정하고, 그러다 보니 ‘불교의 본질은 과연 무엇인가?’라는 문제 의식을 가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본래 부처님의 가르침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왜곡되고 관념화되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본래의 불교 가르침으로 돌아가자.’ 해서 새로운 불교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기존의 불교에서 보면 이런 사람들은 사이비란 말이에요. 그래서 ‘너희가 하는 것은 불교가 아니다.’하고 배척했습니다. 그러자 새로운 불교를 주장한 사람들은 ‘너희는 작고 우리는 크다.’라며 스스로를 마하야나(대승 불교)라 부르고 상대는 히나야나(소승 불교)라 깎아내린 겁니다. 그런데 중국에 들어온 마하야나는 또 지나치게 학문화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부처님의 진정한 가르침이 아니다.’라며 선불교가 새롭게 일어난 것입니다. 책이나 경전을 붙들고 공부하는 것을 불립문자라고 하면서 부정하고, ‘너의 마음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듯이 직접 봐라.’라고 한 거죠.

이런 과정에서 보면 부처님의 초기 가르침과 대승 불교, 선불교의 초기 가르침은 다 내용이 일치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마하야나, 테라밧다, 선불교를 구분하지 않게 됐습니다. 그래서 정토행자들은 먼저 테라다의 근본 가르침을 먼저 배우고 부처님의 일생을 익힙니다. 그리고 마하야나는 모든 경전을 다 배우는 것이 아니라 대승 초기의 가르침만 공부합니다. 그것은 근본 가르침과 맥을 같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마하야나는 뒤로 갈수록 거의 힌두교 수준으로 변해 갑니다. 선불교도 초기의 문제 의식은 근본 불교와 같지만 지금의 선불교는 본래의 직관력이 많이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저와 정토행자들은 근본 불교 가르침과 일치하는 관점에서 선불교와 대승 불교를 공부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어질수록 대화도 점점 깊어졌습니다.

스님은 경전 속에서 인도의 전통 사상이 들어간 요소를 걷어내야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며 인류문화학사적으로 부처님의 일생을 재해석하여 설명했습니다.

스님의 열정적인 설명에 올해로 10년째 INEB 정토회 방문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는 안챌리 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스님이 이렇게까지 깊이 부처님 법에 대해 말씀하신 건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아 스님도 행복해 보이고, 또 스님이 하시는 말씀을 다른 스님들도 이해하고 계신 것 같아 저도 기쁩니다.”

스님이 되물었습니다.

“이해하는지 아닌지 자기가 어떻게 알아요?”

안챌리 님이 다시 웃으며 말했습니다.

“알 수 있답니다. 여기서 제일 행복한 사람은 법륜스님이신 것 같습니다.”

사야데지 스님은 테라밧다(소승 불교)와 마하야나(대승 불교)는 두 개의 날개와 같다며 스님의 설명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예전에 어떤 불교 학자가 마하야나와 테라밧다를 새의 두 날개에 비유했습니다. 새가 한쪽 날개로는 날 수 없듯이 두 가지가 함께 가야 한다는 뜻이지요.”

다시 스님이 말했습니다.

“저는 테라밧다를 제대로 공부해야 마하야나든 선불교든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근본 불교를 모르고 마하야나와 선불교를 공부하는 것은 마치 1층 없이 2층, 3층 집을 짓는 것과 같다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테라밧다에서 비구니 제도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열띤 토론이 이어졌습니다. 스리랑카, 태국, 한국 등 각국의 승가 전통 속에서 비구니 출가의 역사적 정당성과 제도적 한계에 대해 의견이 오갔고, 법륜스님은 테라다에서도 성평등의 관점에서 비구니 제도의 허용을 다시 검토해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습니다.

오늘은 열띤 토론이 이어진 끝에 밤 10시에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새벽 4시에 일어나 4시 30분에 예불을 드리고 두북수련원으로 출발하겠습니다.”

하루 종일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모두들 피곤한 기색 없이 웃으며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INEB 스터디 투어 5일째 날입니다. 아침 일찍 문경을 출발하여 두북수련원으로 이동한 후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하고, 오전에는 경주 남산에 올라 천룡사를 방문하고, 두북수련원의 농장을 둘러본 후, 오후에는 ‘사회 실천’을 주제로 집중 토론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8

0/200

길상화

감사합니다

2025-07-02 11:53:36

장윤희

스님의 하루가 저의 일주일과 같습니다. 법륜스님의 삶과 부처님의 삶을 가까이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2025-07-02 11:05:54

산이

오늘하루두 감사합니다~

2025-07-02 10:55:26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