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6.27. INEB 2일째, 교육에 대한 토론, 행복한 대화(1) 서울
“속마음을 털어 놓을 친구가 없어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INEB(참여불교국제연대) 스터디 투어 2일째 날입니다. 하루 종일 INEB 참가자 스님들과 함께 ‘교육’을 주제로 대화를 나누고, 저녁에는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8시에 북한 전문가와 미팅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미국의 이란 공습 이후 북미 관계를 어떻게 풀어 가면 좋을지 대화를 나눈 후 미팅을 마쳤습니다.

9시가 되어 INEB 스터디 투어에 참석하기 위해 9층 강당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눌 주제는 ‘교육’입니다. 먼저 정토회의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영어 정토담마스쿨을 진행하고 있는 자원활동가 김미선 님이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 그리고 행복학교의 교육 목표와 프로그램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정토회의 불교 전법은 정토불교대학 과정으로 시작됩니다. 과정을 수료한 참가자들에게는 정토회 회원이 되도록 권장됩니다. 또한 다음 과정인 정토경전대학 과정으로 넘어갑니다. 정토경전대학 과정 수료자들은 전법회원이 되도록 권장됩니다. 저 자신도 비슷한 길을 걸었습니다. 일반 시민을 위해 종교적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행복학교’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어서 태국 불교학교 왓니크로타람(Wat Nicrotharam) 사원 불교학교의 교장을 역임하고 있는 콩신 스님(Ven. Khongsin)이 학교 운영과 교육 목표를 소개했습니다.

“왓니크로타람(Wat Nicrotharam) 사원 불교학교는 사찰에 상주하는 승려와 사미의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1993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중등 교육 과정을 제공하며, 학생들은 불교 의식에 필요한 지식과 기술뿐 아니라 태국어, 수학, 영어, 윤리 교육도 함께 배우고 있습니다.”

교육 과정에서 지역 사회와 협력하고 자연 보호 및 직업 기술 교육까지 포함하는 전인 교육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다음은 라오스에서 온 사야데지 스님(Ven.Sayadej)이 옹투 승가대학(Ongtue Saṅgha College)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옹투 승가대학은 1929년 설립 이후, 라오스의 대표적인 고등 불교 교육기관으로 성장해 왔습니다. 현재는 불교학과 영어 교육을 중심으로 한 4년제 학위 과정을 운영하고 있으며, 명상 수련과 인턴십이 필수 과정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졸업생들은 전국의 불교 고등학교 교사 및 불교 관련 기관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역사회와의 연계와 국제 불교대학들과의 학술 교류를 통해 통합적이고 현대적인 불교 교육을 추구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발표를 마치고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각자가 하고 있는 활동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고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INEB 참가자 스님들은 정토불교대학과 행복학교의 구체적인 진행 방식과 교육 내용에 대해 많은 질문들을 했습니다. 스님이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여러분의 발표를 잘 들었습니다. 오늘 발표된 세 가지 사례는 서로 각각 다른 대상을 위한 교육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했고, 태국에서는 어린 사미(沙彌)들이 참여하는 정규 교육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이것은 중학교, 고등학교에 해당하는 정규 교과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라오스에서는 출가 승려를 위한 정규 불교대학 교육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이처럼 다양한 교육 대상에 맞춰 불교 교육이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정토불교대학,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실천 중심의 불교 교육

앞에서 설명이 있었지만, 정토회에서 운영하는 정토불교대학에 대해 조금 더 보충해서 설명하겠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의 교육 대상은 불교에 입문하는 일반 성인들입니다. 교육은 온라인으로 진행되며, 일주일에 한 번씩 6개월 동안 수업을 합니다. 19세 이상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습니다. 수업은 보통 7명의 학생이 한 모둠을 구성하여 진행되고, 그 모둠마다 진행자 1명과 진행자를 돕는 돕는이 1명이 배정됩니다. 이러한 반이 7개 모이면 하나의 학급이 되고, 학급당 법사 1명과 운영자 1명이 배정됩니다. 학생들은 궁금한 점이 있을 때 법사에게 자유롭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강의는 매주 50분짜리 영상 두 편이 온라인으로 제공되고, 학생들은 이를 각자 시청합니다. 이후 일주일에 한 번씩 온라인상에서 모여 법문을 듣고 느낀 점을 한 명씩 돌아가며 나눕니다. 법문 내용을 잘 이해하지 못했거나 의문이 생기면 언제든지 담당 법사에게 질문할 수 있고, 개인적으로 답변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매주 법문에서 다뤄진 주제를 바탕으로 한 실천 과제가 주어집니다. 예를 들어, 화를 알아차리는 것이 실천 과제로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화를 냈던 경우, 화가 났지만 참고 넘어갔던 경우 등 불교를 공부하기 전과 비교하여 변화된 점을 스스로 점검해 보게 합니다. 그리고 다음 수업에서 과제를 해보며 느낀 점을 함께 나눕니다. 어떤 사람은 실천이 잘 되고, 어떤 사람은 안 되기도 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서로의 경험을 공유하며 배움을 이어갑니다. 즉, 불교 강의는 각자 시청하고, 함께 모이는 시간에는 주로 소감 나누기를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이것은 불교 사상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불교를 철학적, 교리적으로 이해하기보다는 자신의 삶에 적용하여 괴로움이 없는 열반(涅槃)에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가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리고 한 달 반에 한 번 정도는 전체 학생이 모여서 저와 즉문즉설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교과 내용은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과 ‘부처님의 일생’ 크게 두 가지입니다.

누구나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는 4주 마음 공부, 행복학교

그런데 행복학교는 정토불교대학과 성격이 조금 다릅니다. 정토불교대학에서는 아무리 일상 용어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해도 기본적으로 불교 용어와 개념을 배우게 됩니다. ‘사성제(四聖諦)’라는 말도 배워야 되고, ‘중도(中道)’, ‘연기(緣起)’라는 말도 배워야 돼요. 아무리 정토불교대학이 종교를 초월해서 가르친다 말해도 종교가 다르거나 종교에 대한 거부감이 있는 분들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수의 시민들이 거부감 없이 마음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행복학교를 만들었습니다. 행복학교에서는 ‘왜 마음이 괴로운가?’, ‘어떻게 하면 이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이렇게만 접근하고 있어요. 여기에 고집멸도(苦集滅道)와 같은 불교 용어는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고, 교육 과정도 한 달로 짧습니다. 해 보고 좋으면 다음에 또 할 수도 있어요.”

오전 프로그램을 마친 뒤 11시 30분에 모두 함께 지하 식당으로 내려가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자원봉사자들이 환영의 마음을 담아 정성껏 음식을 준비해 주었습니다.

각자 먹을 만큼 음식을 접시에 담은 후 다 함께 테라밧다 식으로 감사 기도를 했습니다.

태국에서 온 콩신 스님이 정갈한 음식을 보고 감탄을 하며 말했습니다.

“매일 이렇게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저희들도 평소에는 이렇게 먹지 않습니다. 스님들이 오셔서 특별히 준비한 음식들입니다.” (웃음)

식사를 마치고 스님은 공양간으로 가서 봉사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오후 1시 30분부터 다시 프로그램을 시작했습니다.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얼마 전 미얀마 지진 피해 구호 현장을 다녀온 JTS 활동가 김윤미 님으로부터 피해 상황과 JTS의 구호 활동에 대한 설명을 들었습니다. 구호 활동 모습을 영상으로 시청하면서 미얀마 이재민들의 아픔에 깊이 공감하며,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기 위한 연대와 지원의 필요성을 다시금 절감했습니다.

이어서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습니다. INEB 참가자 스님들은 일반 시민들이 법륜스님에게 인생 고민을 묻고, 법륜스님의 답변을 듣고 나서 괴로움이 해소되는 현상에 대해 매우 흥미로워했습니다.

스님 앞에서 마음을 열지 못하는 신도들, 어떻게 다가가야 할까요?

“저희는 모두 테라밧다 스님들입니다. 일반적으로 불교 신도들은 테라밧다 스님들을 굉장히 존경하고 우러러보며, 편하게 대하기 어려워합니다. 특히 남성들은 스님 앞에서 더욱 말을 조심하며 자유롭게 대화하지 못합니다. 2000년에 제가 정토회에 왔을 때, 법륜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면서 놀랐습니다. 질문자들이 자신의 괴로움과 트라우마를 아주 편하게 털어 놓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도 제 명상 센터에서 그런 방식으로 마음 나누기나 토론을 시도해 봤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고, 자기 내면의 문제를 스님들에게 털어 놓지 않았습니다. 테라밧다의 전통 안에서는 일반 신자들이 스님들에게 괴로움을 쉽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듯합니다. 아마도 스님들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그런 것 같습니다. 법륜스님은 어떻게 일반인들과 자유롭게 소통하고 일할 수 있는지 궁금합니다. 차 한 잔 마시면서 편하게 이야기 나누고 싶은데 신도들은 저를 어려워하는 것 같아 고민이 됩니다.”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테라밧다 전통에서는 그러한 성향이 조금 강하다고는 할 수 있을 뿐이지 사실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즉문즉설은 오랜 시간 동안 쌓인 신뢰의 결과입니다. 어떤 이야기도 법륜스님에게는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즉문즉설은 단지 스님 개인에게만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된 장소에서 자기 내면을 드러내는 일입니다. 이는 사실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성폭행을 당했다든지, 이혼을 했다든지, 그런 개인적인 이야기를 많은 사람 앞에서 꺼낸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하지만 말하지 않으면 해결이 안 되니까 털어 놓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은 세상 어디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꺼내는 건 어렵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면담은 거의 하지 않습니다. 특별한 경우, 정치인이나 연예인들처럼 사회적으로 파문을 일으킬 수 있는 매우 예외적인 사례들만 개인 상담을 합니다. 대부분은 공개적인 즉문즉설 자리에서 질문이 이루어집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하는 것을 어려워하지만, 사실 그들이 겪는 일은 모두 세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그래서 이야기를 꺼내 놓는 것 자체가 이미 치유될 준비가 절반은 되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사람들이 스님에게 와서 개인적인 괴로움에 대해 대화하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일생을 보면 부처님께서는 항상 사람들의 괴로움을 듣고 이야기하셨습니다. 아들이 죽어서 괴롭다는 사람도, 질병이나 가족의 죽음으로 힘든 사람도 부처님을 찾아왔습니다. 뭐든지 말해도 된다고 해서 사람들이 다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전에 신뢰가 쌓여야 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자신의 이야기를 부모에게도 잘 하지 않으니까요.”

태국에서 온 콩신 스님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르칠 수 있는지 자신의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스님은 행복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정의한 후 어떤 관점을 갖고 사람들과 즉문즉설을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사람들이 진짜 행복해지려면 어떤 교육이 필요할까요?

“태국에서는 현재 교육 개혁이 진행 중입니다. 사람을 더 전문적이고, 행복한 존재로 성장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 그 목표가 얼마나 충족되고 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교육은 점점 아이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하는지를 중심으로, 그 역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저는 제가 일하는 학교에서 행복에 초점을 맞추고 싶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에게는 정말 많은 괴로움이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이 행복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 하는 것처럼 행복해지는 법을 제가 운영하는 학교에 도입해 보고자 합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지 스님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우리가 건강하다고 할 때 어떤 상태를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힘이 세야 건강한 걸까요? 빨리 달릴 수 있어야 건강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아프지 않은 것이 건강한 것입니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대로, 노인은 노인대로 아프지 않으면 되고, 장애인은 장애가 있더라도 아프지 않으면 건강한 상태입니다.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곧 아픈 것은 아닙니다. 이렇게 육체적 건강을 ‘아프지 않은 것’이라고 정의하듯이,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르면 행복은 ‘괴로움이 없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니르바나는 괴로움이 없는 상태입니다. 즐거운 것이 행복이 아니라 괴로움이 없는 것이 행복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행복은 즐거움을 뜻합니다. 그러나 즐거움이 있으면 반드시 괴로움이 있습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은 끊임없이 되풀이되는데, 이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인도의 전통문화에서는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을 윤회라고 하지만, 부처님의 가르침에서는 즐거움과 괴로움이 되풀이되는 것을 윤회라고 합니다. 윤회가 끊어진다는 것은 괴로움과 즐거움이 되풀이되는 것이 멈춘다는 뜻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괴로움이 없는 상태’는 동시에 ‘즐거움도 없는 상태’가 됩니다. 즉, 고요 적정한 상태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니르바나’라고 말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즐거움을 행복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먼저 ‘괴로움이 없는 상태가 행복’이라는 관점을 갖도록 한 후 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늘 괴로움이 일어납니다. 그렇다면 왜 괴로운가를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나의 현재 상태를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괴롭다면 왜 괴로운지를 살펴보고, 괴로움의 원인을 규명해야 합니다. 그래야 결과적으로 괴로울 일이 없다는 것을 자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이렇게 접근하면 누구나 괴로움 없이 살 수 있다는 자각에 이르게 됩니다. 니르바나를 너무 추상적으로 보지 말고, 누구나 증득할 수 있는 상태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괴로운 상태에 머물러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집착’입니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무지’입니다. 이 근본 무지를 깨뜨리고 사실을 사실대로 알게 되면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은 알아차림입니다. 먼저 내가 괴로운 상태라는 것을 자각해야 합니다. 현재 내가 무지의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 무지의 상태에서 올바른 알아차림이 지속되면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그래서 항상 자신의 상태를 먼저 점검해야 합니다. 괴로움이 밖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나의 무지에서 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접근하면 사람들이 불교 용어를 몰라도 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시험에 떨어져서 괴롭다고 말한다면, 시험에 떨어진 것이 왜 괴롭냐고 물어봅니다. 그러면 ‘그럼 시험에 떨어졌는데 즐겁습니까?’라고 되묻습니다. 제가 다시 묻습니다.

‘시험에 떨어진 것이 지금 당장의 일인가요, 며칠 전에 이미 결정된 일인가요?’

며칠 전에 당락이 결정됐다고 대답합니다. 만약 시험에 떨어져서 괴로운 것이라면, 그때부터 이미 괴로웠어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결과 발표를 보기 전까지는 웃고 지내지 않았나요? 결국 그 순간에 일어난 변화는 몰랐던 것을 알게 된 것뿐입니다. 시험에 떨어진 사실을 그 순간에 알게 되었을 뿐인데 왜 괴로운 걸까요? 이런 식으로 접근하다 보면 괴로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만약 오늘 병원에 가서 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고 합시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암이 오늘 생긴 것은 아닙니다. 이미 어제도 몸속에 암이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어제는 괴롭지 않았고, 오늘은 괴롭습니다. 왜일까요? 그냥 모르던 사실을 오늘 알게 된 것뿐입니다. 암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오히려 다행입니다. 그런데도 괴롭다고 느끼는 이유는 암이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의 마음 때문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접근하면 누구나 괴로울 일이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됩니다. 이런 자각이 바로 행복으로 가는 길입니다. 행복은 ‘즐겁다’라는 뜻이 아니라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누구나 건강하게 살 수 있듯이 누구나 괴로움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가끔 다쳐서 아프기도 합니다. 그러나 치료하면 낫게 됩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때로는 괴로울 수 있지만 다시 사실을 자각하면 괴로움 없는 상태에 이를 수 있습니다. 정토불교대학에서 사성제와 팔정도 등 근본 교리를 배우는 이유는 이러한 사실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에 목표가 있습니다.

우리가 안다고 할 때 그것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감촉하고 머리로 생각해서 아는 것입니다. 나에게 있어서 이 세계는 ‘안다’는 것을 통해 존재합니다. 안다는 것은 특별한 게 아니고 단지 십이처(十二處)의 작용일 뿐입니다. 이렇게 붓다의 가르침을 실제 삶 속에서 체험적으로 접근해 가야 합니다. 물론 일반적으로는 짧은 시간 내에 이런 사실을 자각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꾸 일상생활 속에서 꾸준히 수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변화가 금방 일어나는 사람이 있고, 더딘 사람도 있으며, 때로는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습니다. 사람들이 정토불교대학에 다니면서 마음이 조금 편안해지면 다시 주변 사람들에게 정토불교대학을 추천하게 되고, 그렇게 해서 점점 확산되어 나갑니다. 그렇지만 아직 정토불교대학이 한국 사회 전체에 보편적으로 확산된 상태는 아닙니다.”

2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후 잠시 휴식 시간을 가졌습니다.

다시 대화를 시작하기 전에 정토회가 작년에 6.13만인대법회를 진행한 영상을 시청하고 행사의 취지를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질문을 받았습니다.

모두 행복학교에 대해 높은 관심을 보여서 스님은 행복학교의 교과 과정에 대해 더욱 자세하게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이어서 ‘신입자 교육’을 주제로 본격적으로 토론을 했습니다. 다양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북한에는 불교가 있나요?”, “태국에서 북한을 방문할 수 있나요?”, “스님은 북한 사람들과 어떻게 접촉하시나요?” 등 남북 관계와 북한의 종교 상황에 대한 관심도 있었습니다.

오전에 콩신 스님이 발표한 내용에 대해서도 참가자들의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불교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이 일반 대학에 진학할 수 있나요?”, “왜 일반 학교 대신 승려학교에 다니는 건가요? 경제적인 이유인가요, 아니면 불교 수행에 대한 관심 때문인가요?” 등 태국의 교육 제도에 대한 의문을 해소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 불교에 대한 질문도 나왔습니다.

“정토회 말고도 한국에 다른 불교 교육 기관이 얼마나 있나요? 국가에서 운영하는 곳도 있나요?”

“태국 불교학교에서는 승려들조차도 불교를 선택하지 않습니다. 법, 사회학, 정치학, 과학을 공부하고 절을 떠나서 취직을 합니다. 한국은 어떤가요?”

모두들 불교 신자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상에 대한 걱정을 이야기했습니다. 이에 대한 스님의 생각을 이야기하며 오늘의 토론을 마무리했습니다.

“불교 신자가 줄어들고, 출가하는 승려가 줄어드는 현상은 비단 한국만의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이 지나면 여러분이 사는 나라도 점점 비슷한 상황을 겪게 될 겁니다. 물론 한국만큼은 아닐 수 있겠지만요. 그래도 전반적으로 비슷한 방향으로 변해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여러분도 지금부터 대응책을 함께 고민해 봐야 합니다.

젊은 세대가 떠나는 불교, 다시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저는 현대 문명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희망이 부처님 가르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사람들이 물질적으로 부족했기 때문에 종교적으로 복을 비는 행위가 성행했습니다. 이제는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었지만, 여전히 마음의 괴로움은 남아 있지 않습니까? 이 괴로움에 대해 정신적인 치료가 필요한데, 여기에는 부처님 가르침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명상도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명상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서 지혜를 증득해야 합니다. 붓다의 근본 가르침으로 돌아가서 마음이 작용하는 원리를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교육은 일상생활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하고, 내용이 쉬워야 해요. 전통적인 종교관을 넘어서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연구하고, 그것을 사람들의 고뇌를 없애는 데 적용하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대한불교조계종에서는 올해부터 명상을 국민적으로 확대하는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적으로 불교를 전파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며칠 후에 조계종을 방문하여 관계자의 설명을 직접 듣겠지만, 조계종은 젊은이들과 문화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습니다. 과거의 권위적이고 관념적인 접근은 더 이상 젊은 세대에게 통하지 않기 때문에 보다 친근한 문화적 접근을 고민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JTS가 지진과 전쟁으로 파괴된 시리아에서 4천여 명이 다니는 학교를 재건한 영상을 함께 본 후 대화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손님이 찾아와서 스님은 곧바로 접견실로 이동하고, INEB 참가자 스님들은 지하 공양간으로 이동하여 간단한 다과를 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10분에 2층 쉼터에서 만나 다 함께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지하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스님과 INEB 참가자 스님들이 대강당에 입장하자 모두가 큰 박수로 환호했습니다. 오늘은 인디밴드 ‘요술당나귀’의 신나는 노래 공연과 함께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이어서 정토회 청주지회 이선호 님이 ‘나이야 가라’ 노래를 개사하여 ‘번뇌야 가라’ 노래를 흥겹게 불러 주어 강연장에는 웃음과 활력이 가득 퍼졌습니다.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이 끝나자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로 올라왔습니다. 유튜브 생방송에는 390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인사말을 했습니다.

“오늘은 스리랑카, 태국, 미얀마, 라오스, 캄보디아에서 온 여러 스님들께서 한국 불교와 정토회를 견학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스님들께 환영의 박수 한번 부탁드립니다.

괴로움이 사라지는 대화, 지금 시작해 볼까요?

즉문즉설은 어떤 지식이나 믿음을 전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미리 준비된 이야기를 하는 것도 아니고, 우리 마음속에 있는 고뇌를 그냥 편안하게 드러내어서 함께 이야기해 보는 시간입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별일 아니네!’라는 생각이 들 수 있습니다. 혼자 생각할 때는 죽을 것 같이 괴롭고 큰일처럼 느껴졌지만, 같이 대화를 나누다 보면 ‘그렇게 힘들어할 일은 아니었네!’하고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이런 대화를 법문(法問)이라고 해요. 부처님의 교리를 설명하는 것이 법문이 아니라, 괴로움에 대해 함께 대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 괴로움이 사라지게 되는데, 그게 바로 법문입니다. 영어로는 담마 토크(Dhamma Talk)라고 하지요.

오늘 이 시간은 여러분과 법문을 나누는 자리입니다. 각자 삶에서 겪고 있는 번뇌와 괴로움을 소재로 삼아 대화를 해보는 거예요. 얼핏 보면 개인 상담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법문을 하는 겁니다. 법문의 소재는 여러분이 살아가면서 겪는 구체적인 어려움이고, 그 어려움을 바탕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입니다.”

곧바로 질문을 받고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일곱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속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주변에 없어서 외롭다며 어떻게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속마음을 말하지 못할 때 외로움을 어떻게 풀 수 있을까요?

“저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속마음을 얘기하기가 어렵습니다. 일상적으로 소통하는 데는 문제가 없는데 깊은 속마음을 얘기하는 게 어렵습니다. 진심을 나눌 수 있는 친구가 없다고 생각하니 외롭습니다. 주변에 제가 힘들다고 말하고 싶은데 말을 못 하겠습니다. 이걸 그냥 끌어안고 살아가야 하는지, 아니면 이 외로움을 해소할 방법이 있는지 궁금해요.”

“깊게 얘기하고 싶으면 그냥 깊게 얘기하면 되잖아요? 말을 못 하겠다고 하는데, 정말 말을 못 하는 건가요, 아니면 말하기 싫은 건가요?”

“말하기 싫은 거 같아요.”

“말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되지요.”

“그럼 외롭게 살아야 할까요?”

“그건 본인이 선택하는 겁니다. 본인이 말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것이지, 누가 외롭게 만들었다고 말할 수는 없어요. 말하기 싫으면 그냥 말을 안 하고 살면 됩니다. 그런데 또 왜 외롭다고 할까요?”

“지금 돌이켜보니까 제가 말하기가 싫었던 것 같네요.”

“말하기 싫어서 안 했으면 그걸 인연과보로 받으면 되지요. 내가 상대에게 아무 얘기도 안 하는데, 상대가 나한테 시시콜콜 털어놓겠어요? 그러니 내가 얘기하고 싶으면 얘기하면 되고, 말하고 싶지 않으면 안 하면 됩니다. 그건 내 자유예요. 마찬가지로 상대에게도 그럴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외롭다는 말에는 별 의미가 없어요. 왜 외롭다고 느낄까요? 언제 외롭다고 느껴지나요?”

“그냥 제가 속마음을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느끼는 것 같아요.”

“질문자는 방금 속마음을 내어 놓기 싫다고 했잖아요. 말할 사람이 없는 게 아니라 내가 내어 놓기가 싫어서 안 하는 것인데, 왜 얘기할 사람이 없다고 그럴까요?”

“네, 그러네요.”

“본인이 마음을 내어 놓기 싫다고 했지요? 얘기할 사람이 없어서 못 내어 놓는 건가요, 아니면 내가 내어 놓기 싫어서 안 하는 건가요?”

“마음을 내어 놓고 싶은 사람이 아직은 없는 것 같아요.”

“내어 놓고 싶은 사람을 찾고 있는 거예요?”

“그런 것 같아요.”

“그런 사람은 죽을 때까지 없을 거예요. 지금 질문자는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절대 나를 비판하지 않고 다 받아줄 사람을 찾고 있는 겁니다. 그런데 내 얘기를 누군가가 다 받아줄 거라는 기대는 현실적이지 않아요. 상대가 어떤 반응을 하든 그건 그 사람의 자유이고, 나는 마음을 내어 놓고 싶으면 그냥 내어 놓으면 됩니다. 못 내어 놓는 게 아니라 내어 놓기 싫은 겁니다. 그런데도 ‘사람이 없어서 못 내어 놓는다’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자기 문제를 다른 사람의 탓으로 돌리는 거예요. 제가 보기에는 질문자의 관점이 잘못 잡힌 것 같네요.”

“네. 제 관점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잘못되었는데요?”

“그동안 제가 말하고 싶지 않았다는 것을 몰랐던 것 같아요.”

“질문자는 내어 놓고 싶은데 못 내어 놓는다고 생각했잖아요? 그런데 사실은 내어 놓기 싫어서 말을 안 했던 거예요. 못 내어 놓는 것이 아니라는 거예요. 아침에 알람이 울렸는데 누워서 ‘일어나야지, 일어나야지’ 하는 것은 일어나고 싶은데 못 일어나는 거예요? 아니면 일어나기 싫어서 안 일어나는 거예요?”

“일어나기 싫어서 안 일어나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몸이 말을 안 들어서 못 일어난다.’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몸이 문제가 아니라 내가 일어나기 싫은 거예요. 책임은 누구한테 있어요? 바로 나한테 있는 것입니다. 일어나기 싫으면 안 일어나면 됩니다. 그러면 지각을 하겠지요. 지각이라는 과보를 받아들이면 됩니다. 과보를 받기 싫으면 일어나기 싫어도 일어나야 해요. 그럴 땐 어떻게 일어나야 할까요? 그냥 벌떡 일어나면 됩니다. 어떻게요? 벌떡 일어나 버리면 됩니다.

여기 뜨거운 불덩어리를 손에 쥐고 있다고 합시다. 손이 뜨겁겠지요. ‘앗 뜨거워!’ 하면서도 놓지를 못하고 ‘이거 어떻게 놓습니까?’ 하고 묻습니다. 이것은 놓는 방법을 몰라서 묻는 걸까요? 놓기 싫어서 안 놓고 있는 걸까요?

실제로는 뜨거운 걸 쥐고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앗, 뜨거워!’ 하면서 내려놓지요. 어떻게 놓아요? 그냥 놓습니다. 뜨거운 줄 알면 그냥 놓습니다. 방법이 없어요. 그런데 여러분들은 자꾸 ‘이걸 어떻게 놓아요?’라고 묻습니다. 그 질문은 ‘놓기 싫다’라는 뜻일까요? ‘놓고 싶다’라는 뜻일까요?”

“놓기 싫다는 거예요”

“맞아요. 안 일어난 상태일 때는 ‘일어나야 하는데!’라는 각오와 결심이 필요합니다. 일어나 버리면 각오도, 결심도 필요 없어요. 수행도 마찬가지입니다. 수행에는 각오와 결심이 필요 없습니다. 각오하고 결심한다는 것은 아직도 누워있다는 뜻이에요. 여러분들은 늘 각오와 결심만 하지 실제로는 아무 일도 해결되지 않아요. 본질을 꿰뚫어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싫다’라는 마음이 본질인 것을 꿰뚫으면, 자고 싶으면 그냥 자면 됩니다. 그러면 다른 손실은 생기지만 잠은 잤잖아요. 아니면 그냥 일어나 버리면 됩니다. 그러면 잠은 못 자도 지각은 안 하니까요.

예를 들어, 음식에 독약이 들어 있다고 해봅시다. ‘이 음식을 먹고 싶습니다’라고 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은 아주 간단해요. ‘그 음식에는 독약이 들었다’ 이 말씀으로 끝입니다. 독약이 들었다는 것은 사실에 대한 설명이지, ‘먹어라’, ‘먹지 말아라’ 하는 명령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언제나 사실만 말씀하셨습니다. 허황된 이야기는 하지 않으셨고, 진실만 말하셨습니다. 그 사실을 내가 자각하면, 그다음은 내가 선택하는 겁니다. 먹고 싶으면 먹고, 죽으면 됩니다. 욕망을 따르면 과보가 따라와요. 돈을 빌리면 이자까지 갚아야 하는 과보가 생깁니다. 그걸 알고 ‘그래, 갚지 뭐’하고 결정을 하면 됩니다. 저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 설사합니다. 그래서 보통은 안 먹어요. 그런데 자꾸 권유를 받으면 어떡할까요? 먹습니다. 그리고 설사를 해요. 그런데 ‘괜히 먹었다’라는 말은 안 합니다. 먹을 때 이미 설사할 것을 예측했기 때문에 ‘과보를 받는구나’ 합니다.

저는 전 세계를 돌아다닙니다. 비행기 사고나 교통사고로 죽을 확률이 높겠지요. 그러면 사고가 났을 때 제가 후회할까요? 후회하지 않아요. 그건 내가 선택한 삶이고, 그에 따른 결과일 뿐입니다. 여러분은 그만큼 확률이 높아지는 일을 하고 있으면서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후회를 하면서 ‘괜히 했다’ 이렇게 말해요. 그것은 자기 선택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는 태도입니다.

진실을 모르면 후회를 하고 괴로워합니다. 하지만 진실을 알면 선택을 내가 합니다. 먹고 나서 배가 아파도 좋다면 먹으면 됩니다. 아프기 싫다면 안 먹으면 돼요. 그런데 사람들은 ‘먹고 싶은데 어떻게 안 먹어요?’라고 말합니다. 부처님은 ‘그래도 먹지 마라’하고 말씀하셨지만, 저는 ‘먹고 죽어라.’ 이렇게 말합니다. 자기가 그 길을 선택했으니 그 과보를 받으라는 거예요.

질문자는 못 내어 놓는 게 아니라 싫어서 안 내어 놓는 것입니다. 그건 상대방의 문제가 아니라 나의 문제예요. 내가 다른 사람을 못 믿기 때문이고, 결국 그로 인해 외롭게 되는 것도 나 자신입니다. 말하기 싫으면 혼자 살면 됩니다. 말을 꼭 해야 할 이유도 없어요. 평생 묵언하며 살아도 괜찮아요. 다만 내가 내어 놓는 것이 좋겠다고 느껴진다면 그때 말하면 됩니다.

수행은 꼭 무언가를 해야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안 하고 과보를 받는 것도 수행입니다. 중요한 건 그 과보를 기꺼이 받아들이는 자세예요. 때로는 몸에 무리가 될 일도 생기지요. 그러면 안 하거나, 하기로 결정하고 아플 걸 감수하면 됩니다. 저도 아플 걸 알면서도 일이 겹치면 그냥 합니다. 그런 후 아프면 ‘그럴 줄 알았지’ 하고 받아들여요. 아프다고 괴로워하지 않고, 후회도 하지 않습니다. 그냥 몸이 아픈 것을 받아들입니다.

질문자도 이제 선택하셔야 합니다. 하기 싫어도 마음을 내어 놓고 외롭지 않게 살 것인지, 아니면 움켜쥐고 외롭게 살 것인지,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어요?”

“내어 놓는 법을 연습하겠습니다.”

“좋습니다. 정토불교대학을 다니면 ‘마음을 내어 놓는 연습’을 할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것을 ‘마음 나누기’라고 부릅니다. 마음을 내어 놓는 것도 연습이 필요합니다. 처음에는 말이 목에 딱 걸려서 나올 듯 말 듯 하지만, 계속하다 보면 별거 아닙니다. 혼자 끙끙대고 있을 땐 크게 느껴지지만, 막상 말로 내어 놓아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경우가 많아요. 마음을 내어 놓고 나면 사실은 아무 일도 아닙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부모님이 사주를 이유로 결혼을 반대합니다. 부모님 도움 없이 결혼하려고 하는데, 아버지가 남자친구와 그 부모님까지 가만두지 않겠다고 해서 무서워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 대기업에서 25년간 근무 중인데, 곧 권고사직을 받을 것 같습니다. 버틸 수도 있지만 제2의 인생을 살아볼까 합니다. 나이 오십에 새로운 도전을 해도 될까요?

  • 아르바이트 생활을 전전하다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시간 대비 유튜브 수입은 불안정하고, 구독자 눈치도 많이 보며 점점 지쳐갑니다.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할까요?

  • 동네에서 모아타운 사업을 한다고 외지인들이 들어와서 주민들의 동의를 받고 있습니다. 사업을 반대하기 위해 주민들을 규합해야 하는데, 머리가 아프고 가슴이 답답합니다.

즉석에서도 세 명의 질문을 더 받은 후 밤 9시가 넘어서 강연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무대 아래에서 책 사인회가 열렸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님의 신간 ‘혁명가 붓다’를 한 권씩 들고 스님에게 사인을 받았습니다.

“스님 덕분에 제 고민이 많이 해결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다들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스님은 한 사람 한 사람과 눈을 맞추며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강연을 준비해 준 행복운동특별본부 서울제주지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INEB 참가자 스님들은 10층 회의실로 이동하여 마음 나누기 시간을 가졌습니다. 미얀마에서 온 키티사라 스님이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즉문즉설 강연에서 법륜스님의 답변이 제가 생각했던 답변이랑 달랐습니다. 부모님이 결혼을 반대해서 고민이라고 누가 물으면 저는 부모님의 말을 들으라고 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대답은 도덕적일지 몰라도 오히려 질문자에게 고통을 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법륜스님의 대답은 어떤 결정이든 옳고 그름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결정을 하든 과보를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자 질문자의 고뇌가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떻게 삶 속에 적용이 되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법륜스님의 메시지를 곧바로 이해하고 감동을 받는 INEB 참가자 스님들의 모습을 보고 스태프들도 모두 감동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불교가 어떻게 사람들의 괴로움을 해결해 주는지 많은 토론을 한 후 구체적인 사례까지 직접 보고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내일은 INEB 스터디 투어 3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문경 봉암사를 방문하여 조계종에서 운영하는 선방이 어떻게 운영되고 있는지 견학하고, 오후에는 문경 정토수련원에서 ‘수련’을 주제로 집중 토론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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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람

스님 너무 감동스럽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연과보를 꿰뚫어보고 담담히 받는 수행자가 되겠습니다.

2025-06-30 09:45:55

KSY

매일 감사드립니다.🙏

2025-06-30 09:34:57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

2025-06-30 09: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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