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부탄 트롱사에서 지속 가능한 개발 워크숍을 마무리하고 젬강으로 이동하는 날입니다.
부슬부슬 비가 내리는 아침,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트롱사의 산자락에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을 마친 후 볶음밥과 김치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오전 9시가 되어 워크숍을 시작했습니다. 어제에 이어서 게옥별로 2025년 마을 개발 계획 발표가 이어졌습니다. 각 게옥 대표들은 어제보다 한층 자신감 있는 목소리로 발표를 이어 갔고, 참가자들도 차분히 집중하며 서로의 계획을 경청했습니다. 스님도 린첸 님의 통역을 통해 발표 내용을 바로바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발표가 모두 끝난 후, 스님이 정리 말씀을 했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마을 주민들의 생활을 개선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여러분이 조금 더 봉사하는 마음으로 참여해 주신다면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데 큰 힘이 될 것입니다.
첫째, 집을 새로 짓거나 고치는 일은 본래 주민 개인이나 마을 공동체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데 개선이 필요함에도 개인이나 마을에 돈이 없어 손을 못 대고 있는 집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JTS에서는 재료를 지원하여 주민들이 스스로 집을 고칠 수 있도록 돕고자 합니다.
둘째, 도로를 포장하거나 다리를 놓고, 부족한 식수를 끌어올리는 일은 정부가 해야 할 프로젝트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정부 예산이 부족하기 때문에 정부가 해 줄 때까지는 오래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게 기다리는 방법도 있지만, 만약 재료만 지원해 주면 마을 사람들이 급한 것부터 먼저 해 보겠다고 나선다면 JTS에서 재료를 지원할 수 있습니다.
JTS의 재정이 어디서 나오는지 궁금하실 겁니다. 이 돈은 한국 정부의 지원금도 아니고 한국 기업체에서 후원한 돈도 아닙니다. 여러분과 같은 평범한 개개인이 10달러 20달러씩 모은 보시금입니다. 한국의 많은 절에서는 보시금을 모아 절을 짓는 데 사용합니다. 하지만 JTS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부처님이란 무엇인가? 부처님은 돌로 만든 불상도 아니고, 하늘에 계신 분도 아니다. 사람이 어리석을 때 중생이라 하고, 깨달으면 부처라고 하니, 곧 사람이 부처다. 그러니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돕는 것이야말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는 일과 같다. 더 이상 건물을 짓거나 탑을 세우고 불상을 만드는 것을 불사라고 하지 말고, 어려운 사람을 돕는 일을 불사라고 하자.’
이것이 JTS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JTS가 받은 보시금은 정말 어려운 사람, 꼭 필요한 사람에게 지원합니다. 만약에 제가 절을 짓거나 탑을 세운다면, 그 진행 상황을 여러 번 직접 확인할 것입니다. 이 프로젝트도 그런 마음으로 추진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총 열한 차례 부탄을 방문하며 하나하나 점검해 왔습니다. 또한 보시금을 낸 사람들에게 이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정확히 설명해서 신뢰를 주고 있습니다.
첫째, 이 돈은 절 짓는 데 쓰는 불사금과 같기 때문에 절대 낭비해서는 안 됩니다. 둘째, 꼭 필요한 곳에는 아끼지 말고 써야 합니다. 정부 예산은 남으면 쓰고, 모자라면 중단되는 경우가 있지만, JTS의 후원금은 남으면 다른 데 쓸 수 있고, 모자라면 추가 요청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내 돈이라면 어떻게 쓸 것인가.’ 하는 마음가짐으로 꼭 필요한 곳에만 정확히 써야 합니다. 예를 들어, 집을 지을 때는 튼튼해야 하므로 시멘트, 모래, 자갈 모두 좋은 자재를 써야 합니다. 그러나 도로포장은 산에 있는 돌을 깨서 쓰거나, 강가에서 모래를 퍼다 써도 괜찮습니다. 만약 모래와 자갈을 구할 수 없다면 사서 써야겠지만, 동네에서 구할 수 있다면 주변 자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우리가 주민들을 돕고자 이런 일을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민들은 불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균형이 맞지 않거나, 서로 공평하지 않다고 느껴질 때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 마을은 돈을 아끼려고 산에서 돌을 깨서 쓰고, 모래는 강에서 가져와 썼는데, 건넛마을에서는 자갈과 모래를 다 돈 주고 샀다고 하면, 마을 사람들이 불만을 터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마을이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그런 차이는 주민들에게 충분히 설명해서 납득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집을 지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집은 지붕만 지원해도 충분한 반면, 어떤 집은 지붕과 시멘트를 함께 지원해야 하고, 또 어떤 집은 목재 살 돈까지 필요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아주 형편이 어려운 집은 동네 사람들이 도와준다고 해도 며칠은 목수의 손을 빌려야 할 수도 있습니다. 장비 치옥 같은 마을은 마을 안에 집을 지을 줄 아는 사람이 아예 없을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의논을 거쳐 며칠간 목수를 지원해야 합니다. 그러면 또 다른 마을에서 ‘장비 치옥은 JTS에서 목수를 지원해 주었는데, 왜 우리는 안 해 주느냐.’ 하는 불만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잘못 대처하면 촉바가 괜한 욕을 먹게 됩니다. 이럴 때는 꼭 필요한 경우에만 예외로 지원이 이루어졌다는 점을 주민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히 설명해야 합니다. 또 어떤 집에 더 많은 자재가 지원될 경우 ‘왜 저 집은 많이 주고 우리는 적게 주느냐?’ 하는 말이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럴 때도 그 집이 어떤 사정으로 더 많은 지원이 필요했는지를 구체적으로 알려 주어야 사람들이 납득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공짜로 나눠 주는 일입니다. 내가 상대에게 공짜로 돈을 얻어 내는 게 쉽지, 주는 게 훨씬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집에는 세 명이 살고, 어떤 집에는 다섯 명이 산다고 해 봅시다. 가구별로 똑같이 나눠 주면 다섯 명 사는 집에서 ‘우리는 사람이 더 많은데 왜 똑같이 줍니까?’ 하고 불만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사람 수대로 나눠 주면 이번에는 또 다른 집에서 ‘왜 저 집은 많이 줍니까?’ 하고 문제를 제기합니다. 무엇을 어떻게 나누느냐에 따라 불만이 생기기 때문에 무상으로 나눠 주는 일은 항상 어렵습니다.
JTS 사업도 이런 문제가 반드시 생깁니다. 기본적으로 JTS의 원칙은 목수나 기술자 지원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목수나 기술자가 꼭 필요하다면, 관청에서 따로 예산을 세워서 처리해야 합니다. 만약 JTS 예산에서 인건비를 사용하려면, 반드시 운영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이 인건비는 예외 사항이기 때문에 꼭 필요한지를 분명히 설명해야 합니다. 또 어떤 작업에서는 포크레인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도 마찬가지로 관청에서 예산을 세워야 합니다. JTS는 어디까지나 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활동만 지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람이 살다 보면 예외가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예외는 아주 특별한 경우에만 허용된다는 점을 촉바나 겁이 충분히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주민들이 오해를 해서 불만이 생긴다면, JTS 활동가가 직접 마을에 가서 주민들에게 설명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좋은 일을 하면서 오해받고 비난받는 일이 생겨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첫째, 우리 마을을 조금 더 깨끗하게 가꿔 봅시다. 누가 해 주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직접 하는 일입니다. JTS에서는 이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료를 지원하겠습니다. 비록 팀푸처럼 잘 살지는 못하더라도, 시골에 산다고 해서 지저분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깔끔하게 정돈해서 살아 보자는 것입니다.
둘째, 농수로 문제입니다. 지금은 수원지에서 논까지 물이 오는 거리가 3킬로미터에서 5킬로미터나 되다 보니 물 유실이 많습니다. 이 구간은 주민이 손대기 어렵기 때문에 정부에서 해야 할 사업입니다. 그런데 논까지 도착한 물이 논 사이를 흐르면서도 여전히 많이 유실됩니다. 이 부분은 정부가 해 주는 구간이 아니기 때문에 주민들이 직접 개선해야 합니다. 그래서 농수로 보수는 유실이 심한 구간만 선별해서 진행하면 됩니다. 유실이 심하지 않은 곳은 굳이 손댈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작업은 상당히 힘든 일입니다. 왜냐하면 논 사이에 농로가 없기 때문이에요. 농로가 있다면 그 옆으로 쭉 수로를 낼 수 있겠지만, 지금은 재료를 짊어지고 먼 거리를 걸어가야 합니다. 그러니 꼭 필요한 곳만 최소한으로 진행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모든 구간을 시멘트로 시공하기도 어렵습니다. 경사가 급한 곳은 물이 빠르게 흘러서 유실이 거의 없지만, 평지처럼 물이 천천히 흐르는 구간은 유실이 많아서 시멘트 수로가 꼭 필요합니다.
셋째, 도로 보수입니다. 기본적으로 도로 정비는 정부 사업이지만 예산을 기다리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립니다. 그래서 당장 급한 곳은 우리가 먼저 수리하자는 것입니다. 제가 다녀 보니 특히 세 구간이 문제였습니다. 첫 번째는 경사가 너무 가팔라서 차가 오르기 힘든 구간입니다. 특히 비가 오면 더 올라가기 어려운 곳입니다. 두 번째는 비가 오면 땅이 질어서 차량이 빠지는 구간입니다. 그런 곳은 돌만 채워도 개선됩니다. 세 번째는 물이 도로를 가로질러 흐르면서 도로가 계속 파이는 구간입니다. 이런 곳은 관을 땅 밑에 묻어서 물길을 아래로 보내거나, 시멘트를 이용해 차량이 지나갈 수 있도록 물길을 유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비가 와도 차량 통행이 가능합니다. 만약에 5킬로미터 도로 중에서 20미터짜리 구간 다섯 곳만 보수해도 차가 다니는 데 큰 지장이 없게 됩니다. 이렇게 3년 정도만 꾸준히 하면 마을 생활이 훨씬 편리해질 것이라 생각합니다.
제가 보기에 이 일은 매년 11월부터 4월까지, 농한기에 마치는 것이 좋습니다. 5월부터 10월까지는 농번기라서 주민들이 농사일로 바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자재는 반드시 먼저 준비해 놓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월급 주고 일 시키는 노동자를 쓰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일하다가 잠시 쉬게 되면 주민들이 다 가 버립니다. 다시 모으려면 힘들어요. 실제로 시범 사업을 할 때 공사 도중에 자재가 떨어지니까 자재를 다시 구하는 데 시간이 걸렸고, 그 사이에 주민들이 다 돌아가 버렸습니다. 자재가 도착해도 일할 사람이 다시 모이지 않아 공사를 못 하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겁, 촉바, 행정관이 함께 계획을 잘 세우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러분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점을 꼭 명심해 주시기 바랍니다.”
스님의 말씀이 끝나고 잠시 차 한잔을 나눈 뒤, 10시 30분부터 질의응답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탕십지 게옥의 겁이 마이크를 들고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시범 사업 결과를 영상으로 보거나 말로만 들어서, ‘정말 잘됐을까?’ 하는 의심이 있었습니다. 실제로 몇 퍼센트나 믿어도 될지 반신반의한 상태였지요. 그런데 어제, 오늘 이틀 동안 스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각 게옥의 발표를 들으면서 이제는 확신이 생기고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스님께서 이 사업을 하나의 ‘불사’로 여기시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저희를 도와주시는 모습을 보며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사실 이런 일은 저희가 스스로 책임지고 해야 하는 일인데, 이렇게 계속 도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이어서 여러 가지 질문과 제안 사항이 나왔습니다.
자식에게 집을 물려주고 본인은 무주택자가 된 경우가 있습니다. 단순한 문제처럼 보이지만, 가족 간 갈등 등 복잡한 사정이 얽혀 있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도 고려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존 수도 시설이 있어도 30~40년 된 낡은 시설은 고장 난 곳이 많습니다. 겉보기에 멀쩡해도 실제로는 기능하지 않는 경우가 있어, 내년쯤이라도 이런 곳도 지원을 검토해 주시길 바랍니다.
지붕만 문제고 집 상태가 괜찮아 보인다고 해도, 실제로는 형편이 어려워 수리를 못 하는 가구가 많습니다. 외형뿐 아니라 실제 사정도 함께 고려해 주셨으면 합니다.
시범 사업 때는 자갈과 모래도 지원됐는데, 본 사업에서는 제외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사실인지 확인 부탁드립니다.
집을 지을 때, 50%만 지원받는 경우에도 꼭 JTS의 기본 설계를 따라야 하는지 궁금합니다. 어느 정도 자율성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각각의 질문에 자세히 답해 주고, 건의 사항도 모두 수렴했습니다. 질의응답을 마치고 스님이 공무원들을 격려하는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만났으니까, 부처님의 가르침 한 가지를 암송해 보고 마치겠습니다. 정토(淨土)라는 말 들어보셨죠? 불교에서 말하는 이상 국가, 즉 부처님의 나라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보살이라는 말도 아실 겁니다. 수행자라는 뜻입니다. 소승 불교의 수행자는 비구라고 하고, 대승 불교의 수행자는 보살이라고 합니다. 소승 불교에서는 출가한 스님만 수행자라고 하지만, 대승 불교의 보살은 출가한 수행자와 재가 수행자 모두를 포함합니다.
화엄경에 ‘보살에게 있어서 정토란, 이미 완성된 세계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보살이 활동하는 세계이다.’ 이런 말이 나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마을을 예쁘게 가꾸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그 일이 완성되면 정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수행자에게 정토는 다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완성을 향해 내가 일을 하고 있을 때 이미 내 마음속에서는 정토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 말은 어떤 이상을 향해 마음을 내고 실천할 때 우리는 이미 그 이상 세계에 도달한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완성된 세계를 ‘저기 어딘가에 정토가 있다.’라고 하여 ‘타방정토(他方淨土)’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내 마음속에 형성된 정토는 ‘유심정토(唯心淨土)’입니다. 타방정토를 만들기 위해 보살이 활동하고 있다면, 이미 유심정토가 이루어진 상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보살은 결과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 결과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를 소중하게 여깁니다. 한번 따라 해 보세요.
‘보살에게 있어서 정토란, 이미 완성된 세계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보살이 활동하는 세계이다.’
여러분이 지금 우리 마을을 예쁘게 가꾸겠다고 마음을 내고 함께 활동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이미 정토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스님은 혹시 촉바 중에 염불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두 명의 촉바가 나와서 염불을 선창했습니다.
참가자들도 모두 손을 모으고 함께 염불을 외웠습니다. 스님도 합장한 채 그 소리를 들으며 마음을 모았습니다. 참가자들의 염불 소리가 장엄했습니다.
염불이 끝나고 스님이 어떤 마음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하는지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우리는 트롱사(Trongsa)에서 큰 불사를 하고 있습니다. 이 불사는 많은 중생을 고통에서 구하는 일이며, 단지 큰 불상을 세우거나 절을 짓는 일보다도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염불과 기도를 함께 올리며 이 뜻이 꼭 성취되기를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이 불사를 진행하겠습니다. 또한 우리가 이 길을 함께 갈 수 있도록 부탄이라는 나라를 있게 해 준 국왕 폐하의 은혜도 함께 되새겨 봅니다. 이 모든 인연에 감사드립니다.”
이어서 스님은 준비해 온 선물을 나누어 주었습니다.
“제가 일본에서 바로 오는 바람에, 방콕에서 수건을 준비해 왔습니다. 워크숍 기념 문구를 인쇄하지는 못했습니다. 미안합니다. 대신 마음속으로 워크숍 기념이라고 새겨 주세요. 여행용 치약과 칫솔은 한국에서 가져왔습니다. 이 염주는 제가 보드가야에서 받아온 것입니다. 지금 이 염주를 여러분 목에 걸어드릴 건데요, 이걸 받는 순간부터는 보살이 되는 겁니다. 이제부터는 불평불만 없이 최선을 다해 이 불사를 진행해 주시기 바랍니다.”(웃음)
스님은 직접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염주를 걸어 주었습니다.
선물 증정이 끝난 뒤 건물 밖으로 나와 단체 사진을 찍고 워크숍을 마무리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하고, 그동안 수고한 숙소 직원들에게 인사를 전한 뒤 오후 1시 10분에 다음 워크숍이 열릴 젬강으로 출발했습니다. 트롱사 종각 소속 공무원들이 스님을 배웅했습니다.
굽이굽이 안개 낀 길을 세 시간 넘게 달려 오후 3시 50분에 젬강 로열 게스트 하우스에 도착했습니다.
젬강 로열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젬강 지역 워크숍을 총괄하는 기획 담당관과 농업 담당관이 스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차를 마시며 안부를 나눈 후 스님은 숙소에 짐을 풀고 원고 교정을 했습니다.
저녁 7시에는 젬강 주지사가 스님을 뵙기 위해 숙소로 찾아왔습니다. 젬강의 관광 개발과 공무원 운영, 외국인 관광객 유치 어려움 등 다양한 주제를 두고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주지사가 물었습니다.
“부탄 같은 작은 나라가 중국과 인도 사이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스님이 답변했습니다.
“현재 부탄은 중국과 인도 사이에서 중립적 입장을 밝히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도 쪽으로 분명한 입장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중국에 적대적으로 나설 필요는 없습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인도보다 부탄을 더 미워하게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에요. 그렇게 되면 부탄이 직접 공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현실적인 선택은 한쪽 편에 서되, 다른 한쪽에게는 ‘양해해 달라.’ 하고 우호적인 태도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부탄은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인도와 가까운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인도와 가깝다고 해서 중국을 적대시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중국 입장에서는 부탄과 인도의 긴밀한 관계를 보고, 부탄이 중국을 멀리하거나 압박하려는 것 아니냐는 오해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부탄은 전혀 그런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지만요."
"한국도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비슷한 입장에 놓여 있거든요. 한때 중국과의 관계가 좋았을 때,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각기 중심을 두며 상당한 이익을 봤습니다. 그러나 최근 중국과 미국 간의 갈등이 심화되면서, 한국의 입장이 점점 더 곤란해지고 있습니다. 일본은 비교적 명확하게 미국 편에 섰지만, 한국은 일본처럼 행동하기 어렵습니다. 지리적으로 중국에 더 가깝기도 하고, 한국이 미국 쪽으로 치우칠수록 북한은 중국 쪽으로 더 기울어질 가능성이 높아요. 그렇게 되면 통일은 점점 더 어려워지겠죠.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혹시 한국이 중국 쪽으로 기울지 않을까 의심하고, 중국은 한국이 자기 나라에서 돈은 벌어 가면서 미국의 입장을 따른다며 불만을 품습니다.
그런 가운데 우리나라의 정치가 하나로 통합되지 못하고, 여전히 둘로 나뉘어 있습니다. 소위 보수 세력은 미국과의 동맹을 중시하고 상대적으로 중국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이에요. 반면에 진보 세력은 중국과의 관계를 되도록 우호적으로 가져가려고 합니다. 윤석열 정부 때는 미국 쪽으로 완전히 기울었고 그 결과 중국과의 갈등이 심화됐죠. 이런 식으로 우리가 먼저 나서서 중국을 공개적으로 반대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랜 우방국인 미국과의 관계에서 어쩔 수 없는 우리 처지에 대해 중국에 양해를 구하는 외교가 필요합니다. 설령 미국 쪽으로 방향을 정하더라도 말이에요.
그런데 지난 정부는 먼저 나서서 중국을 반대하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니 중국이 볼 때 얄밉단 말이에요. 외교 정책을 좀 잘 못한 것입니다. 다시 진보 정권이 들어서자, 이번에는 미국이 의심하고 있어요. ‘혹시 중국과 내통하지 않나, 북한과도 뭔가 연계된 것 아닌가.’ 이렇게요. 사실 한국의 입장에서는 중국과도 북한과도 우호적으로 지내는 것이 필요한데, 미국은 늘 그것을 의심합니다. 그래서 저는 한국의 새 정부 관계자들에게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서두르지 말라고 말합니다. 지금은 미국이 의심하고 있기 때문에 굳이 의심을 살 필요는 없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날 기회가 되면 ‘한반도 문제는 당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 우리가 도울 테니 당신이 북한과의 관계를 꼭 풀어 달라.’ 이렇게 말해야지, ‘우리가 미국과 북한 사이를 중재하겠다.’라고 나서면 안 됩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남들이 하지 못한 일을 자기가 해낸다고 말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를 설득하려면 ‘한국 전쟁이 끝난 지 72년이 지났지만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당신만이 끝낼 수 있다.’ 하는 식으로 말해야 합니다.
지난 정부는 남북 관계를 오히려 악화시켰고, 새 정부는 그 반대로 남북 관계에서 성과를 내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럴 때가 아닙니다. 미국을 전면에 세우고 우리는 뒤에서 조율하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외교는 본질적으로 실용적이어야 합니다. 이념에 치우치면 실익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 실제 외교 현장을 보면, 국가의 이익보다는 국내 정치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려는 계산으로 외교를 이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인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국가 전체의 이익이 희생되는 우를 범하게 되는 것이죠.
트럼프 대통령도 미국 내에서 이민자 문제를 자꾸 부각하며 적을 만들어서 내부를 통제하려는 전략을 씁니다. 푸틴 역시 전쟁을 통해 권력을 강화했고, 우크라이나의 젤렌스키나 이스라엘의 네타냐후도 전쟁이 없으면 권력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전쟁으로 정치적 입지를 유지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겉으로는 모두 국가의 이익을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권력 유지라는 사익이 작동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부탄도 자칫 잘못하면 친중국파와 친인도파로 갈라질 수도 있습니다. 실제로 네팔이 그렇거든요.” (웃음)
대화를 마치며 스님은 주지사님에게 영문판 『혁명가 붓다』 와 보드가야에서 가져온 염주를 선물로 드렸습니다.
주지사님을 배웅하고 밤 9시가 되어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젬강 지역 공무원 및 마을 대표들과 함께 지속 가능한 개발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3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
다음 글이 없습니다.
이전글“험담에 휘말려버린 직장 생활, 어떻게 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