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6.12. 미국 출발, 한국으로 이동
“아내가 환각에 시달립니다, 남편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안녕하세요. 오늘 스님은 하루 종일 비행기로 이동하며 하루를 보냈습니다.

어젯밤 11시 30분에 샌프란시스코 공항을 출발한 스님은 밤새 비행기 의자에 앉아 원고 교정을 본 후 쪽잠을 잤습니다.

아침이 되자 어둠이 걷히고 망망대해의 구름바다가 펼쳐졌습니다.

다시 해가 저물었습니다. 비행기는 13시간을 이동하여 한국 시간으로 내일 새벽 4시 30분에 인천 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미국과 한국의 시간대 차이로 인해 비행기 안에서 하루가 통째로 지나가 버렸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6월 12일 하루를 보낸 셈입니다. 체감상 ‘없어진 하루’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3일 장수 죽림정사에서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아내가 환각에 시달립니다, 남편으로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뭘까요?

“작년에 스님께 질문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제 아내가 과대망상이 있는데, 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여쭈었더니, 그때 스님께서는 ‘수행을 열심히 하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난 지금은 환각 증상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아내가 직장을 그만둔 지 2년이 넘었는데, 당시 직장 동료들로부터 많은 억압을 받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경험을 저에게 대입하여, 제가 하는 말과 행동을 마치 그 사람들이 한 것처럼 여기며 저를 많이 미워하고, 따로 살겠다고까지 합니다. 결국 멀쩡한 집을 놔두고 원룸을 얻어 나가 살고 있습니다.

집에 있으면 귀신이 오는 것 같고, 소파에 앉아 있으면 무언가가 덮치는 느낌이 든다며 불안해합니다. 담당 의사도 예후가 좋지 않다고 했고요. 원룸을 작업실처럼 활용하라는 조언에 따라, 낮에는 원룸에 머물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런데 최근에는 잠이 오지 않는다고 새벽 네다섯 시에 집을 나가 원룸에 가서 혼자 있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저는 제 아내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할지 스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병원에 입원시켜 치료받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상태가 환각 증상 정도라고 하니 강제로 입원시킬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본인의 동의가 있어야 입원이 가능합니다. 남편이나 아내라는 이유로 강제로 입원시키면 인권 침해로 간주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발적인 동의 없이 입원을 강행하면 오히려 위험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법적으로 강제 입원은 매우 제한적입니다.

현실에서는 최선의 선택이 어렵다면 차선을, 차선도 없다면 차악을 선택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 이 상황에서 최선은, 아내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 두 번째 선택은, ‘그대로 놔두는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상태가 괜찮아서가 아니라, 달리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입원을 시킬 수 있는 경우는 몇 가지 법적인 기준이 있습니다. 기물을 파손하거나, 타인에게 상해를 입히거나, 누가 봐도 명백히 이상한 행동을 하는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길거리에서 배변을 하거나 옷을 벗는 행동이 여기에 해당됩니다. 그러나 질문자의 아내는 환각 증세가 있긴 해도 아직 그런 수준에 이르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정신 질환자가 배우자나 자녀일 경우, 위급한 상황에서는 때리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런 행위는 현행법상 모두 폭행으로 간주됩니다. 제가 30년 전에 정신 병원을 방문했을 때 보호자가 환자를 거의 죽을 만큼 때리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어요. 이유를 물으니, 안 때리면 말을 듣지 않는다는 거예요. 하지만 요즘은 그런 식의 통제는 명백한 인권 침해로 간주됩니다. 환자를 묶어 두는 조치조차도 정당한 의학적 근거와 법적 절차 없이는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냥 두는 수밖에 없다.’라고 제가 말씀드리는 겁니다. 이 상황을 두고 자꾸 신경쓰고 괴로워하면, 결국 자신만 힘들어집니다. 자다가 나가면 그냥 나가게 두세요. 나중에 확인해서 원룸에 있으면 다행이고, 길거리를 헤매다가 들어와도 다행이라 생각하고 그냥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다가 아내가 자발적으로 병원에 가겠다고 하거나, 또는 누가 봐도 이상한 행동을 하면 그때 의사에게 이야기해서 입원을 시키면 됩니다. 물론 법적 기준으로 강제 입원에 해당하지 않는 상황이면 입원을 시킬 수 없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강제로 입원시켜 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습니다.”

“제가 굉장히 힘들고 괴롭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을 주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답은 ‘그냥 놔두어라’는 거예요. 그대로 두지 못하는 건 자기 수행의 문제이지, 아내와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놔두는 것’은 ‘어떻게 하라’는 것보다 오히려 쉬운 일이에요. 그런데 자꾸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자기 방식대로 하려는 집착이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그 책임을 아내에게 전가해서는 안 됩니다. 혼자 판단해서 그냥 놔두자니 혹시 내가 무책임한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 수 있지만, 스님이 ‘그냥 놔두는 수밖에 없다.’고 하니까 간단하잖아요. 설령 스님이 ‘지금 강제 입원을 시키세요!’라고 말한다 해서 입원을 시킬 수 있어요?”

“큰소리가 나겠죠”

“만약 입원이 가능하다면 시도해 보세요. 다만 사전에 정신과 의사와 충분히 상의하여, 아내를 병원에 데리고 갔을 때 바로 입원이 가능하다는 확답과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냥 데려갔다가 본인이 거부하면 입원이 불가능하고, 강제로 입원시키면 현행법상 위법 행위가 돼요. 물론 우리가 일상에서 작게는 법을 어기며 살아갈 때도 있긴 하지만, 스님이 ‘위법 행위를 해도 된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두는 수밖에 없다.’라고 제가 말씀드리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내일은 새벽 4시 30분에 인천 공항에 도착한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이동하여 오전에는 병원 진료를 받고, 점심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과 식사를 하고, 오후에는 외교·안보 전문가들과 미팅을 한 후, 저녁에는 금요 즉문즉설 온라인 생방송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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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뚝연기

에공ᆢ그 좁은 비행기안에서ᆢ그렇게 오랜시간을ㅠ없던 병도 절로 나겠네요ㅠ병원진료 잘받으시고요ᆢ병원보다 더 중요한건 '휴식'입니다ᆢ부디 스님일정을 줄이셔ㆍ일정없이 쉬실 수 있으신 날을 많이 만드시길 빕니다ᆢㅠ연세와 건강에 맞게요ㅠ
부탄다녀오신 뒤 몸이 안좋으신데다,곧바로 백일법문에 목을넘 많이쓰시고 과로하셔ㅠ더ㅠ스님의 휴식을 기원합니다ᆢ
질문자분 힘드시겠네요ㅠ

2025-06-16 01:03:10

CACTUS

장시간 비행기 타는 것도 힘드는 일인데 이제 나이도 있으시니 직항이라도 타시면 좋겠네요. 부디 건강 챙기시길 빕니다.
감사합니다.

2025-06-15 23:02:42

이현주

스님은 항상 반짝반짝 빛나십니다
사진 속에서도
동영상에서도
책 속에서도
늘.....
관세음보살
모두 건강하세요

2025-06-15 20: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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