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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워싱턴 D.C.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미국 정부, 의회, 싱크탱크 관계자를 만나는 2일째 날입니다.
스님은 미주 정토회관에서 새벽 수행과 명상을 한 후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어젯밤보다 조금 컨디션이 좋아져 산책을 하러 나섰지만, 빗방울이 떨어져 아쉽게 발길을 돌렸습니다. 아침 식사를 마친 뒤 이번 워싱턴 D.C. 방문 일정을 점검하고 미국 의회로 출발했습니다. 비가 오고 월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예상보다 이동하는 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첫 번째 만남은 한인으로서 처음으로 미국 연방 상원 의원으로 선출된 앤디 김 의원(뉴저지주)의 보좌관인 로라 로제버거(Laura Rosenberger) 님이었습니다. 더크슨(Dirksen) 상원 의원 회관에 도착하자 로라 님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로라(Laura) 님은 오래전에 국무부 아시아태평양실 한국과에서 근무할 때 스님을 만나 뵈었던 분입니다. 지난 바이든 정부 시절에는 NSC의 중국, 대만 국장으로 근무했습니다. 오랜만에 만나서 그동안의 안부를 주고받고 반갑게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앤디 김 의원이 바빠서 대신 나왔다고 하고, 스님의 말씀을 잘 전달하겠다고 하였습니다. 오랫동안 안보 분야에서 일을 하였기 때문에 동아시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많은 얘기를 주고받았습니다. 미팅을 마치며 시간을 내어 주어서 고맙다고 서로 인사하고, 스님의 영문 책 『혁명가 붓다』를 선물했습니다.
다음은 국방부가 있는 펜타곤 시티로 이동하여 니나 소이어(Nina Sawyer) 님을 만났습니다. 니나(Nina) 님은 핵 및 반 WMD 부서의 수석 국장(Principal Director)입니다. 작년 미팅에서 국방부 직원을 대상으로 즉문즉설을 요청하였지만, 이번에는 일정상 진행하지 못해 아쉬워하였습니다. 바쁜 일정 중에 귀한 시간을 내어준 니나 님께 감사 인사를 하고 스님의 영문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오후가 되니 비가 개고 한여름처럼 무더워졌습니다. 길가에는 미국의 수도인 워싱턴 D.C.로 단체 여행을 온 학생들이 많이 보였습니다. 근처 푸드 코트로 이동하여 국수로 간단히 점심 식사를 하고, 전문가들과 소그룹 미팅이 있는 NCNK(전미 북한 위원회)로 이동하였습니다.
전미 북한 위원회(NCNK)는 미국 워싱턴 D.C.에 본부를 둔 비영리, 초당적 조직으로, 북한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건설적인 대북 정책 촉진을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2004년에 설립되었으며, 미국 내 대북 전문가, 인권 단체, 학계, 인도주의 단체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미팅 장소에 들어서자 NCNK 사무총장인 키쓰 루스(Keith Luse) 님과 직원들이 반갑게 인사를 하였습니다. 키쓰(Keith) 님은 공화당 외교 위원장을 역임한 고 루거 상원 의원의 보좌관으로 외교 문제를 오랫동안 연구해 오신 분입니다. 스님과 20여 년 넘게 교류해 왔고, 오랫동안 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활동하고 있는 분입니다.
오늘 소그룹 미팅에는 오랫동안 북한 문제와 안보 문제를 담당하며 국무부, 백악관, 싱크탱크에서 근무했던 시드 사일러(Syd Seiler) 님과 KEI(Korea Economic Institute) 교육 디렉터인 엘린 김(Ellen Kim) 님을 비롯하여 NCNK 직원 분들도 많이 참석하였습니다. 서로 반갑게 인사를 하고 1시간여 동안 한반도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스님이 오늘 모임을 마련한 취지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저의 관심은 한반도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과 북한 주민들이 고통에서 벗어나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30년 동안 이 일을 해왔지만 아직 진척된 게 별로 없습니다.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한반도 평화 문제는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 봅니다. 한반도 평화 문제가 해결되면 연이어 북한 주민들의 고통을 덜어 주는 문제도 함께 해결되지 않겠나 예상합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 대해 저도 전부 찬성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한반도 평화 문제에 있어서는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한반도 평화 문제는 파격적인 사고를 해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여러분의 의견도 듣고 싶고, 질문이 있으면 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북미 관계 개선, 북한 인도적 지원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북한의 현 상황과 더불어 미국이 어떤 대북 정책을 취해야 북미 관계가 개선될 수 있는지 많은 조언을 해 주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시드 사일러 님과 엘린 킴 님에게 스님의 영문 책을 선물하였습니다.
이어서 스님과 키쓰(Keith) 님 두 분이 1시간 정도 더 미팅 시간을 가졌습니다. 키쓰(Keith) 님은 2002년도에 처음 북한을 방문했을 때와 그 후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받았던 여러 질문과 에피소드를 스님에게 들려 주었습니다. 또한 키쓰(Keith) 님은 한반도의 평화와 북미 관계 개선, 대북 인도적 지원을 위해 본인보다 더 오랫동안 활동하고 있는 스님에게 존경을 표했습니다. 함께 긍정적인 자세로 계속 노력해 보자고 하면서 대화를 마무리했습니다. 9월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스님의 영문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이어서 리치 타플(Rich Tafel) 목사가 최근에 새로 이사한 교회로 이동하였습니다. 코로나 팬데믹 기간에 온라인 예배를 겸하면서 관리 유지비가 많이 드는 큰 교회에서 작은 공간으로 이사했다고 합니다.
교회에 도착하니 스님과 오랜 인연이 있는 애나벨 박(Annabel Park) 님과 리치 목사님이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간단히 저녁 식사를 준비해 주어서 먼저 식사를 하였습니다. 애나벨 박 님과 정토회 회원들이 정성껏 준비해 준 맛있는 저녁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오늘 행사 제목은 “Finding Spiritual Grounding in Uncertain Times: An Interfaith Dialogue with Venerable Pomnyun Sunim and Rev. Rich Tafel(불확실한 시대에 영적 중심 찾기: 법륜스님과 리치 타플 목사의 종교 간 대화)”입니다. 목사님과의 대담은 이번이 세 번째로, 현재 미국 사회의 불안과 변화에 대한 시각, 그리고 개인적 경험에서 나오는 지혜를 두 분에게 청해 듣고자 마련된 자리입니다. 1시간 반 동안 줌 화상 회의와 유튜브 생중계도 함께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사회자인 애나벨 박 님이 두 분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I have invited my two most trusted spiritual teachers. Right now, both America and Korea are in chaos and crisis. In this situation, I truly feel suffocated and frustrated. What is the essence of this chaos we are experiencing now? And how should we live?"
(제가 가장 신뢰하는 두 영적 스승을 모셨습니다. 지금 미국, 한국 모두 혼란과 위기 속에 있습니다. 저는 이런 상황 속에서 정말 숨이 막히고, 좌절됩니다.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이 혼란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요?)
먼저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경험했던 시기와 비교해 본다면, 지금은 변화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로 인해 예전에는 겪어 보지 못했던 일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첫 번째로는 기후 위기를 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런 기후 문제를 겪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사태가 심각한데도 위기를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어쩌면 몰라서 실제보다 더 큰 두려움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번에 겪었던 코로나 팬데믹 때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처음에는 그 위험성을 제대로 알지 못해서 방치했었고, 이후에는 지나치게 놀라서 모든 이동과 활동을 중단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런 과정들을 거치며 지금은 위험을 관리할 수 있는 여유가 생겼죠. 그런 것처럼 기후 위기도 우리가 그 내용을 좀 더 분명하게 알면 어느 정도는 관리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여전히 기후 위기에 대한 의식을 충분히 갖고 있지 못해서 제대로 대응이 이뤄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10년, 20년이 지나 그 부작용이 심각하게 나타나고 위험이 눈앞에 도래했을 때에야 비로소 대응을 하게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쩌면 그때는 또 너무 늦어서 제대로 대처하지 못해 많은 희생을 치를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로는 국제 질서의 변화입니다. 인류는 2차 세계 대전 때 많은 혼란과 고통을 겪었습니다. 수많은 생명이 희생되었고, 그로 인해 깊은 반성과 함께 유엔이라는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세계 평화를 위해 인류가 공동으로 대응해 나가기로 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 질서가 어느 정도 형성되었습니다. 물론 냉전 시대에는 소비에트와의 갈등도 있었지만, 큰 틀에서는 미국 중심의 국제 질서가 지속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후 공산주의가 붕괴되고 동유럽이 무너지면서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는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오히려 미국이 앞장서서 지금까지 형성해 온 국제 질서를 허물어뜨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우리는 매우 당황스러운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지금까지 익숙했던 질서가 갑자기 허물어지니까 지금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지금 새로운 질서가 세워진 것도 아닙니다. 질서 변화의 시기라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혼란의 본질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혼란은 바깥세상에도 있지만, 특히 우리 마음 안에 있는 것입니다. 내가 세상을 바라보며 ‘이 세상은 이렇다.’ 하고 알고 있을 때는 정신이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그런데 현재의 세상이 내가 알고 있던 시스템이나 관념으로는 도저히 이해되지 않을 때 우리는 혼란을 느끼게 됩니다.
저는 세상이 혼란스러운 게 아니라 ‘조금 빨리 변한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변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까 그것을 혼란스럽게 느끼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변화된 세계를 그에 맞게 제대로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의 인식만을 고집하면 세상이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야 안정감을 느낄 것입니다.
그래서 세상의 변화에 대응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옛날에 인식하고 있던 그 세계로 세상을 되돌려 놓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지금의 변화된 세계를 새로운 인식의 틀을 통해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어느 것을 선택하는 것이 옳다는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심리적 안정을 구한다면 이렇게 할 때 안정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거나 경험이 많은 사람일수록 이런 경우에 혼란을 많이 느낍니다. 어린아이들은 과거에 만들어진 고정 관념이 없기 때문에 원래부터 세상이 그런 줄 알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변화된 세상을 보다 깊이 이해하기 위해 우리가 가진 인식의 틀을 새롭게 조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만일 이 변화가 잘못됐다고 생각한다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리기 위한 사회적 실천 활동이 필요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행동할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불안해하기만 하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리치 목사의 답변까지 들은 후 에나벨 박 님이 계속해서 질문하고 스님이 답변했습니다.
“I feel like we need some way of really being able to maintain our sense of moral clarity. And if we focus on inclusion and respecting multiple sides, I'm afraid of losing connection with my moral instinct. So how do you balance the two? I want to be compassionate towards people that I think are being immoral or evil, but at the same time I feel the need to protect people who are being harmed. So how do you balance being inclusive and compassionate while also being protective and morally clear?”
(우리가 도덕적 명확성에 대한 감각을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포용성에 초점을 맞추고 여러 관점을 존중하다 보면 제 도덕적 직관과의 연결을 잃을까 봐 두렵습니다. 그렇다면 이 둘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할까요? 부도덕하거나 악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연민을 갖고 싶지만, 동시에 피해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필요성도 느낍니다. 그래서 포용적이고 자비로우면서 동시에 보호적이고 도덕적으로 명확한 태도의 균형을 어떻게 맞춰야 할까요?)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살아온 환경과 받아온 교육에 따라 가치관이 서로 다릅니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의 믿음이나 신념을 존중하라는 것은 그것이 옳다든가 그것을 따르라는 말이 아닙니다.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도 아니고, 잘못된 것도 아니고, 그저 다를 뿐입니다.
상대가 나와 다름을 인정하게 되면 마음속에서 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상대가 잘못됐다고 생각하니까 화가 나는 거예요. 조금 더 심해지면 상대를 악마화하기도 합니다. ‘저런 존재는 없어져야 한다.’ 하는 극단적인 생각으로 나아갑니다. 그렇게 되면 폭력과 살인도 합리화되고, 전쟁도 정당화됩니다. 지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것은 바로 이런 시각에서 비롯된 행위입니다. 그러나 다름을 인정하면 화가 일어나지 않고, 화가 나지 않으면 상대를 있는 그대로 볼 수가 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면 ‘그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말할 수 있겠구나.’ 하고 상대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들이 옳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 없는 사랑은 폭력이 됩니다. ‘내가 당신을 좋아한다.’ 하는 것은 나의 일방적인 입장입니다. 상대의 믿음이나 행위를 그 사람의 입장에서 이해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의 생각에 내가 동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해도 됩니다. 다만 그 행동에는 폭력성이 없어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이들과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대화하면서 해결점을 찾아 나가야 합니다. 대화를 통해 서로 합의할 수도 있고, 합의가 되지 않으면 각자의 생각대로 따로 갈 수도 있습니다. 합의하는 길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런 관점을 가져야 내 마음에도, 우리들의 관계에도 평화가 깃들 수 있습니다.
저는 불교의 가르침을 공부했지만 예수의 가르침 중에 깊은 감동을 받은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그를 못 박은 사람들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 지은 죄를 알지 못하나이다.’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은 당시의 사형 집행인입니다. 요즘으로 말하면 교도소 직원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들은 자신들이 죄를 짓는다는 생각은 못하고, 그저 자기 직업을 수행한 것이었어요. 만약에 이 일로 그들이 벌을 받는다면 얼마나 억울하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맡은 역할을 인정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자기 죄를 모른다.’ 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관점이 바로 보통 사람의 한계를 넘은 신의 마음일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인 동시에 신이 되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보통 사람인 우리는 이런 관점을 갖기가 어렵죠. 그러나 우리가 신앙을 갖는 이유는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고자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신앙인들은 예수님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줍니다. 신앙인들이 오히려 더 미워하고, 증오하고, 폭력적이기까지 합니다. 세상의 수많은 분쟁과 전쟁의 밑바탕에 종교가 있습니다. 오늘날 사회에서 일어나는 여러 극단적인 행위의 대부분이 종교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인들은 ‘내가 어느 종교를 갖고 있느냐.’보다 ‘내가 믿는 그 가르침을 제대로 따르고 있는가.’ 하는 자문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믿음에 대한 반성과 자각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스님과 리치 목사님이 서로에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리치 목사님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You have spoken about your experience of being tortured in prison. How did you maintain compassion for your torturers while being tortured? You advocate for a compassionate approach, but how would you respond to someone who says, 'That's weakness. What you're doing is actually creating danger'?"
(스님은 감옥에서 고문을 받은 경험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고문을 받으면서 어떻게 고문을 하는 사람에 대한 연민을 유지했나요? 스님은 자비로운 접근을 말하고 있는데 '그건 약함이다.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은 실제로는 위험을 조성하는 것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에게는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는 경찰에 잡혀 가거나 고문을 당하는 일이 제게 일어날 거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착하게 살았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일이 제게 닥쳤습니다. 그때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기치 않은 상황에 처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을 잡아 가고 고문하는 시스템이 존재하는데, 내가 그 대상이 되지 않는 게 중요한 걸까요? 아니면 그런 시스템 자체가 사라지는 게 더 중요한 걸까요? 처음엔 저도 ‘나만 아니면 된다.’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바로 제가 그 일을 겪은 겁니다. 그때부터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그렇게 행동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을 이해하게 되면서 분노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미워하고 증오하게 되면, 결국 개인에 대한 복수나 그런 제도를 만든 집단에 대한 복수로 나아갈 겁니다. 저는 그런 방식의 혁명은 또 다른 희생과 복수를 낳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그들을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 제도는 없어져야 한다고 굳게 믿었습니다. 그 믿음이 제가 사회 활동에 참여하는 동기가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부조리나 차별을 마주할 때 외면하지 말고, 함께 힘을 모아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분노는 단시간에 큰 힘을 내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 힘으로 목표를 이루면 큰 만족을 느끼기도 하고요. 하지만 실패할 경우에는 굉장한 패배감이 따라옵니다. 그런데 분노 없이 차근차근 일을 해나가면 어떨까요? 목표에 도달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나아갈 수 있습니다. 저는 이것이 단순히 약해진 게 아니라 오히려 평화적인 방법으로 끝까지 갈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는 힘이 빠졌다고 평가할 수도 있겠지만, 저는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스님도 리치 목사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미국 사회뿐만 아니라 전 세계가 큰 혼란을 겪고 있습니다. 저는 이 현상이 단순히 좋다 나쁘다가 아니라, 기존 질서를 무너뜨리기 때문에 생겨나는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지 벌써 80년 가까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사회는 많이 변했고,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시스템도 필요합니다. 지금 이 상황이 새로운 시스템으로 나아가는 출발점일까요? 아니면 기존의 시스템을 무너뜨림으로써 더 나쁜 결과로 이어지는 시작일까요? 목사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물론 이 시기를 지나야 평가할 수 있을 겁니다. 수십 년이 지난 뒤 돌아본다면, 변화된 사회를 반영한 새로운 시스템으로 향한 출발이었는지, 아니면 다시 세계 대전과 같은 치열한 경쟁과 혼란으로 향하는 시작이었는지 평가할 수 있겠죠.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미국에 사시면서 미국 시민들의 요구나 변화를 직접 보고 계시니, 이 상황을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우리는 여기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약간 혼란스럽게 느껴집니다. 그런데 이곳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는 건, 이곳 사람들의 어떤 요구가 있었다는 뜻이 아닐까요? 도대체 시민들의 어떤 요구가 있었기에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고 이런 일이 벌어진 걸까요?”
리치 목사님이 답변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일어나는 일을 트럼프 현상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미국의 양당 모두에서 '2차 대전 후 우리가 도왔던 나라들을 지원하는 것에 지쳤다.' 하는 감정이 끓어오르고 있었습니다. 거기에 더해서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세계에 민주주의를 가져다주어야 한다.'는 매우 공격적인 외교 정책을 취했습니다. 이라크 침공은 나중에 알고 보니 정보가 매우 부정확했고 실행도 잘못되어서 중동의 불안정을 초래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국민들은 더욱 불만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 우리 군인들이 이라크에서 죽어야 하는가? 왜 우리 군인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 죽어야 하는가? 왜 젊은이들이 이런 일을 해야 하는가? 왜 우리가 세계의 경찰이어야 하는가? 우리가 얻는 것이 무엇인가?'
미국인들이 이런 의문을 갖는 이유는 미국 안에도 제대로 된 도로가 없고, 청소년들은 펜타닐을 사용하고 있고, 일자리도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은 세계화를 통해 손해를 봤고, 사람들이 '이제 그만하자!' 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트럼프만의 문제가 아니라 양당 모두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세계 여러 곳에서 경찰 역할을 한다는 세계관이 힘을 잃었습니다. 이런 고립주의는 재앙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미국인들은 이를 통해 다시 배움을 얻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리치 목사님의 답변을 듣고 스님도 이에 대한 의견을 말했습니다.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다 보니, 이건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도 지난 몇 달 동안 정치적 혼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한국의 혼란이었지, 미국의 혼란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미국의 혼란은 전 세계 모든 사람이 함께 겪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의 안정은 곧 세계의 안정으로 이어지기도 하죠. 이건 단순히 ‘우리는 세계에 영향을 주고 싶지 않다.’라고 말한다고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에요. 이미 세계는 지금까지 미국 중심으로 움직여 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미국의 이익인 동시에 전 세계의 이익이 될 수 있는 길을 미국 시민들이 함께 찾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지금은 기후 위기 시대이기 때문에 세계가 더 협력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코로나 팬데믹 같은 문제도 세계가 협력해야 극복하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협력보다는 각자도생의 길을 택했고, 그로 인해 혼란은 더 커졌습니다. 이 문제는 어떤 나라든, 그게 미국일지라도 조금 더 자기 나라를 넘어서는 사고방식을 가져야 인류 전체의 문제를 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이 모든 것을 책임져야 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역할은 해야 하지 않을까요? 꼭 군사적인 힘이 아니더라도 협력을 주선하는 그런 역할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저는 조금 아쉬움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에나벨 박 님은 두 분에게 요즘 무엇을 위해 기도하는지 질문했습니다. 스님이 먼저 답변했습니다.
“한반도의 평화가 저의 가장 큰 염원입니다. 두 번째는 북한 주민들이 삶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보다 나은 삶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요즘 세상에서는 개개인이 물질적 풍요 속에서 살면서도 굉장히 스트레스를 받고 있습니다. 저는 사람들이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은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길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는 이런 생각을 바꿔서 적게 소비하면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 지구가 겪고 있는 기후 위기의 핵심은 과도한 소비와 이로 인한 이산화탄소 배출에 있습니다. 즉 소비를 줄여야만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소비 지향적인 가치관으로는 기후 위기를 벗어날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 문제를 계속 이야기하고 생활 속에서 실천하려고 하지만, 소비 중독은 마치 마약 중독처럼 우리 인류에 퍼져 있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리치 목사님의 답변을 들은 후 줌 화상 회의에 참석한 분들과 현장 참석자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 분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How do you protect your peace of mind while not being seduced into denial or false hope? In other words, how do you, as spiritual leaders, guide people to keep their perspective?"
(부정이나 거짓 희망에 유혹당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마음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을까요? 다시 말해서, 스님은 영적 지도자로서 사람들이 올바른 관점을 유지하도록 어떻게 인도하십니까?)
“우리가 어떤 일을 짧은 시간 동안 관찰하면, 성공이냐 실패냐 하는 승패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러나 시간을 좀 더 길게 두고 바라보면, 그것은 다만 우리가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과정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안을 성공과 실패의 관점으로 보지 말았으면 합니다. 우리는 수많은 실패를 통해 목표를 향하여 나가 가는 과정 속에 있습니다. 지금 실패라고 여겨지는 것도 전체 과정 안에서 보면 ‘실패’라기보다 ‘연습’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런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은 시합처럼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나 일단 일이 끝나고 나면 ‘그것은 연습이었다.’라고 여깁니다. 지난 일들은 다 연습이었고, 지금 이 순간은 시합이며, 그 또한 지나가고 나면 연습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의 의미는 ‘최선을 다하되 결과에 연연하지 말자’는 뜻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실패란 없습니다. 모든 것은 경험으로 남습니다. 그 경험이 쌓이고 쌓이면 다음에는 성공할 확률이 좀 더 높은 쪽으로 나아가게 되겠죠. 이런 관점으로 살아간다면 당장의 일에 너무 좌절하지 않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한 분의 질문을 더 받은 후 세 번째 대담을 마쳤습니다. 갈수록 더 깊어져 가는 대담에 감사하며 행사를 잘 마쳤습니다.
현장에 참석하신 정토회원들과 사진 촬영을 한 후 스님은 몸이 안 좋아서 말을 많이 못한 것에 대해 양해를 구했습니다. 행사를 주관한 애나벨 박 님과 리치 목사님에게 스님의 영어 책을 선물로 드렸습니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새로 이사를 하면 선물로 보시를 합니다.”
스님은 즉석에서 갖고 있던 돈을 리치 목사님에게 보시하였고, 목사님도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래된 집이라 리모델링도 해야 하고, 창문도 갈아야 하는 상황이었습니다. 스님은 새로 이사 온 곳인 줄 미리 알았다면 미리 보시금을 더 준비해 왔어야 했는데 하며 아쉬워하였습니다.
교회 앞에서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헤어진 뒤 미주 정토회관으로 이동하였습니다. 회관에 도착한 스님은 정토회 회원들이 준비해 준 식사를 한 후 휴식을 취했습니다.
스님은 지난 30년간 해 왔듯이 북미 관계 개선, 아시아의 평화, 북한 주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위해 오늘도 한 땀 한 땀 정성 들여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내일도 계속 소식을 전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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