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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라오스를 방문한 지 2일째 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비엔티안 시내에 위치한 왓옹뜨 사원(Wat Ong Teu Mahawihan)으로 향했습니다.
스님이 사원에 도착하자 사야데즈(Sayadej Vongsopha) 스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었습니다. 사야데즈 스님은 2013년 INEB 스터디 투어에 참가하여 정토회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2023년에는 스님이 이곳을 방문하여 대화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왓옹뜨 사원은 1563년 라오스의 수도가 비엔티안으로 이전되면서 세워졌습니다. 크기 5.8m, 무게 12,000kg의 황동 불상(옹뜨)을 모시고 있습니다. 라오스에서 두 곳밖에 없는 일반 대학 격의 승가대학이 있어 불법을 공부하는 승려들이 많은 곳이기도 합니다.
스님은 먼저 불상에 참배한 후 사야데즈 스님과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사야데즈 스님은 이곳에서 승가대학을 운영하며 많은 승려들에게 불법을 가르치고 있다고 합니다.
“2013년에 정토회를 방문하여 공부한 것이 제가 불교 활동을 하는 데에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6월에 INEB 방문단으로 오시면 그동안 활동한 성과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려 주세요.”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스님이 영어로 출간한 『혁명가 붓다』를 선물했습니다.
“부처님의 일생 중에서 사회를 변화시킨 혁명가로서의 측면에 대해 제가 법문 한 내용을 엮은 책입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해야 불교의 사회 실천이 나올 수가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겠습니다.”
사원을 나온 스님은 하루 종일 예정된 미팅을 가졌습니다. 미팅을 마치고 나니 하루 해가 저물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주 금요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를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는 1남 4녀 중 막내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 부모님은 둘째 오빠까지는 옷을 사 주셨지만, 저는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부모님을 따라 옷 가게에 가 본 기억조차 없으니까요. 제 위의 언니는 옷이 방 하나를 가득 채울 정도로 많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언니는 명품을 모으고, 저는 아주 싼 옷을 사서 버리거나 반품한다는 점입니다. 이런 제 씀씀이에 대해 남편은 관대한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무언가 부족하다고 느껴지면 쇼핑하고 싶은 욕구를 자제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정토회에서 봉사하면서 생활비가 평소보다 30퍼센트나 줄어든 걸 보며, 제 자신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집에만 있으면 ‘뭘 좀 사러 나가 볼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고개를 듭니다. 물론 빚을 내서 쇼핑하는 일은 없지만 절제를 잘 못합니다. 수행자로서 저는 어떤 마음가짐으로 제 자신을 다스려야 할까요?”
“첫째, 우선 ‘기준을 어디에 둘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합니다. 내 행동과 삶의 태도를 문제 삼을 때, 무엇을 기준으로 삼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수행자를 기준으로 할 것인지, 일반 시민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먼저 기준을 정해야 합니다.
일반 시민을 기준으로 한다면 질문자에게는 큰 문제가 없어요. 이때 문제가 되는 경우는 남의 물건을 뺏거나 훔치는 행위를 하거나, 과도한 소비로 생긴 빚을 나중에 못 갚아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라면 일반 시민 기준으로도 자질 부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질문자처럼 남편과 갈등을 빚는 것도 아니고, 내 돈의 범위 안에서 쇼핑을 즐기는 것이라면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다양한 취미 활동에 돈을 씁니다. 어떤 사람은 술을 마시는 데 쓰고, 어떤 사람은 골프나 보석, 그림, 혹은 차(茶)를 마시려고 돈을 쓰거나 비싼 옷을 사기도 합니다. 이런 취미 생활을 그들은 고품격 문화생활이라고 하지, 소비 중독이라는 말을 쓰지 않습니다. 질문자도 마음에 드는 물건을 사 왔다가 이튿날 가져가서 바꾸고, 또 사고 바꾸고 하는 것을 일종의 재미로 느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간도 있고, 남편도 잔소리 안 하고, 빚을 내서 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너무 문제 삼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럼 그렇게 해서 쌓이는 물건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사 놓고 안 쓰는 물건은 한 달에 한 번씩 정리해서 정토사회문화회관 7층 ‘되살림’ 공간에 가져다 놓으면 됩니다. 술은 마시면 없어지지만, 물건은 쌓아 두면 공간만 차지하잖아요. 재활용 센터에 기증하면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으니까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민할 만한 문제가 아니에요.
둘째, 왜 이런 습관이 들었을까요? 예를 들어, 일반적인 자전거는 몇십만 원이면 충분한데 자전거 동호회에 가 보면 수천만 원짜리 자전거를 타는 사람도 있어요. 오토바이 동호회에서는 몇억 원짜리 오토바이를 타기도 하고, 차(茶) 동호회에선 한 판에 몇천만 원짜리 차를 자랑하기도 합니다. 커피나 포도주 애호가들도 마찬가지예요. 어떤 사람은 지하실에 포도주 통을 가득 쌓아 두기도 해요.
좋게 보면 취미지만, 나쁘게 보면 다 중독입니다. 이 중독은 허전함에서 생겨납니다. 마음이 허전할 때 그것을 채우려는 행동이 나타나는 거예요. 아이들이 계속 게임을 하는 것도, 유튜브나 TV를 끊임없이 보는 것도 다 중독입니다. 바쁘거나 해야 할 일이 많은 사람은 그럴 시간조차 없습니다. 결국 중독은 마음의 허전함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질문자가 계속해서 물건을 사고 다시 반품하기를 반복하는 행동도 마찬가지예요. 뭔가 마음에 빈 공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물건에 대한 결핍에서 시작한 허전함이 지금까지 마음에 남아서 물건을 끝없이 사는 것으로 채우려는 거예요.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중학교 때까진 공부를 잘했는데 부모가 여자라는 이유로 고등학교나 대학 진학을 막았다면, 학력에 대한 열등의식이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나중에 여건이 나아지면 끊임없이 공부하러 다니는 경우가 많습니다. 연세 드신 분들 중에 열심히 공부하는 분들을 보면, 학벌에 대한 열등의식을 가진 경우가 많아요. 학벌에 대한 부족함을 보충하려는 마음이 계속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가지에 집착하는 태도를 ‘중독성’이라고 표현합니다. 중독성의 뿌리는 마음의 허전함에 있습니다. 내면에 비어 있는 공간이 있을 때는 중독성이 생기고, 그 공간이 채워지면 중독성도 자연스럽게 사라집니다. 담배 피우는 심리는 어떨까요? 글 쓰는 사람이 담배 피울 때를 상상해 보세요. 글이 술술 써질 때 담배를 빼서 뭅니까? 아닙니다. 글이 잘 안 써지고 막힐 때 담배를 찾게 됩니다. 술도 마찬가지예요. 뭔가 스트레스를 받을 때 술을 마시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하게 됩니다. 이처럼 중독은 허전함이나 답답함에서 발생합니다.
수행은 이런 마음의 빈 공간을 메워 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되면 자연스럽게 중독성이 줄어들거나 사라지게 됩니다. 봉사하느라 바빠서 못 하기도 하지만, 더 본질적으로는 수행 과정에서 내면의 허전함이 점차 채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습관적인 행동들도 줄어들거나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질문자도 지금 자신의 행동이 중독성이라는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셋째, 수행자는 모든 습관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합니다. 심지어 좋은 습관에서도 자유로워져야 하는 것이 수행자입니다. 습관성으로 한다는 것은 종속돼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질문자가 하는 행위는 좋은 습관도 아니잖아요. 특히 지금처럼 환경 위기가 심각한 시대에 과도한 소비는 중독이며 일종의 사회적 범죄에 가깝습니다. 수행자라면 반드시 고쳐야 할 습관이에요. 물론 일반 시민의 입장에서는 큰 잘못 아니니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다고 칭찬받을 일도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염두에 둬야 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봉사 활동을 열심히 하거나, 법당에 와서 법문을 듣고 수행을 하면서 어릴 때 생긴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것이 좋습니다. 봉사에 몰두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쇼핑에 쏟던 시간과 에너지가 줄고, 그 과정에서 마음의 허전함도 점차 채워집니다. 습관적인 행동은 일정 기간 멈추면 점차 약해지게 됩니다. 또, 보람 있는 일이나 수행으로 내면을 채우면 습관성이 저절로 줄어듭니다. 혹시 자신도 모르게 습관적으로 물건을 샀다면 자책하지 말고 자각하게 되면 다음 날이라도 재활용 센터에 보시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물건을 필요한 사람이 쓸 수 있게 됩니다.”
“매대에 할인하는 물건이 보이면, 마음에 드는 것도 아닌데 여러 개를 사서 쌓아 두게 됩니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왜 이런 걸 샀을까?’ 하는 자책과 함께 불쾌한 감정이 밀려와서 결국 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죄책감이 들었는데, 앞으로는 불필요한 물건을 사더라도 다음 날 재활용 센터에 보시하겠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엄마가 곁에 없었습니다. 그 영향인지 마음 한 켠에 늘 허전함이 자리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봉사할 때는 그 허전함이 사라지는데, 집에 혼자 있을 때면 쓸쓸함이 밀려와서 시간을 유익하게 보내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마트를 돌아다니면서 시간을 허비하는 일이 반복됩니다. ‘체력만 된다면 봉사를 일주일 내내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 봤지만, 애들 밥도 챙겨야 하고 집안일도 해야 해서 7일은 힘들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일주일에 3일은 봉사하고, 나머지 4일은 그 충만한 기운으로 지내 보려 합니다. 문제는 제 상태를 제때 알아차리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자기 상태를 자각하고 스스로 통제할 수 있다면 알아서 잘 살면 됩니다. 하지만 제어하지 못한다면 당분간은 일주일 내내 봉사하러 나오는 게 좋습니다. 예를 들어, 술을 끊을 수 없다면 병원 치료를 받아야 하듯이, 마약도 스스로 통제하지 못하면 환경을 바꿔 강제로라도 끊게 해야 합니다. 아이들이 핸드폰이나 게임에 중독되었을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하지 말라고 하면 저항하고 갈등만 커집니다. 그럴 때는 인터넷이 안 되는 여행지에 데려가야 합니다. 처음에는 답답해하고 울기도 하지만, 그 환경에 적응해야지 어쩌겠어요. 그렇게 적응한 후에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면 어느 정도는 절제할 수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지 않고도 살아본 경험’이 생겼기 때문이에요. 그 경험을 바탕으로 시간을 정해서 하도록 통제하면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게 됩니다. 하지만 10시간씩 하다가 단번에 2시간으로 줄이라고 하면 고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과식하는 습관을 고치려고 절식을 해 보면 잘 안 되잖아요. 그럴 때는 강력한 처방으로 단식을 먼저 하는 겁니다. 한 숟가락만 먹어도 큰 은혜처럼 느껴지고, 그것만으로도 살아갈 수 있다는 경험이 쌓여야 절식이 쉬워집니다. 육식을 끊고 채식으로 바꾸려 할 때도 마찬가지예요. 적어도 21일간 단식을 해서 기존 식습관을 털어낸 다음에, 보식을 시작할 때는 일체 육식을 안 하는 겁니다. 그러면 체질을 바꾸기가 좀 수월해집니다.
마찬가지로 질문자도 지금의 습관성 소비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일단 일주일간 매일 봉사를 하는 것이 좋습니다. 집안일이나 육아로 힘들다면 가족과 상의해서 남편에게 부탁을 좀 해 보세요. 그게 어려우면 한 달, 두 달, 석 달이라도 꾸준히 봉사하거나 더 나아가 아예 백일출가를 해서 몸에 밴 습관을 어느 정도 빼야 합니다. 물론 집으로 돌아오면 예전 습관으로 돌아가기 쉽지만, 그때부터는 약간의 노력만 하면 어느 정도 절제가 가능합니다. 이렇게 환경과 조건을 바꾸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스님은 내일도 라오스에 머무르며 예정된 일정을 가진 후 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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