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6.4. 라오스 방문 1일째
“성적이 떨어졌다고 미안하다는 아이,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스님은 3일 동안 라오스를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백일법문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해외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새벽 4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인천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 핸드폰을 열자 제21대 대통령 선거 결과가 속보로 떠 있었습니다. 선거 결과를 확인한 후 스님은 인천 공항 출국 수속 카운터로 향했습니다.  

출국 수속을 마친 후 탑승구 앞에서 대기하는 동안 아침 해가 떴습니다. 오전 6시 45분에 인천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5시간 10분을 비행하여 현지 시각으로 9시 55분에 베트남 호찌민 공항에 착륙했습니다.  

호찌민 공항에서 6시간을 머문 후 오후 4시 10분에 라오스 비엔티안 공항으로 출발할 예정이었지만 비행기 출발이 계속 지연되어 결국 밤 9시가 돼서야 이륙했습니다. 무려 10시간 이상을 공항에서 기다린 셈입니다. 이후 1시간 35분을 비행하여 현지 시각으로 밤 10시 30분에 비엔티안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예정되어 있던 저녁 일정은 모두 취소되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하니 밤 12시였습니다. 새벽 4시에 정토회관을 나와 약 22시간이 걸려 라오스에 도착한 것입니다.  

저가 항공을 이용하다 보니 비행 일정이 지연되고, 경유지에서 대기하는 시간도 길어 하루가 다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오늘 안에 올 수 있어서 감사하다.’라며 개의치 않았습니다.  

숙소에 도착한 뒤에는 짐을 풀고 내일 일정을 간단히 논의한 후, 원고 교정을 하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 30일에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린 금요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성적이 떨어졌다고 미안하다는 아이,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저는 남편이 사고로 사망한 뒤 혼자 두 아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저에게 자주 미안하다고 합니다. 특히 둘째가 ‘돈 많이 벌어서 엄마 드릴게요.’, ‘성적이 떨어져서 미안해요.’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제가 평소에 공부하라고 다그치지도 않습니다. 그저 ‘아침밥 꼭 먹어라.’, ‘잠 좀 푹 자라.’, ‘건강 해치지 않게 공부 좀 그만해라.’ 이런 말만 하는데도, 아이는 울면서 ‘성적 떨어져서 미안해요.’, ‘앞으로 부자 돼서 엄마를 행복하게 해 드릴게요.’라고 합니다. 저는 스스로를 끈적거리지 않는 엄마라고 생각하는데, 아이가 왜 그러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현재 저와 둘째 아이는 정신과에 주기적으로 다니며 점검을 받고 있습니다. 앞으로 저는 어떤 관점으로 아이를 대해야 할까요?” 

“아이들이 그렇게 말하는 건, 혼자 살아가는 엄마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여서 그런 거예요. 엄마를 위로하고 싶은 마음에서 그런 말을 하는 겁니다. ‘공부를 잘해서 엄마가 보람을 느끼게 해드려야겠다.’,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를 도와 드려야겠다.’ 하며 아이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하는 거예요.  

좋은 점은, 아이들 눈에 엄마가 불쌍해 보여서 아이들이 엇나가지 않고 바르게 자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엄마는 ‘네가 건강한 게 중요하지,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는 그다음 문제야.’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엄마를 기쁘게 하는 건 네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거야.'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런 격려가 아이에게 어느 정도 도움이 됩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따로 있습니다. 아이들이 보기에 엄마가 좀 불쌍해 보인다는 인식 자체를 바꾸는 거예요. 아빠 없이 살아도 괜찮고, 엄마가 기쁘고 당당하게 살아간다면 아이들의 그런 미안함이 점점 사라지게 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엄마는 우리 없어도 잘 살겠다.’ 하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합니다.” 

“그럼 제가 매사 기쁘고 쾌활하게 살면, 아이들에게 짐이 덜 될까요?”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보기에 ‘엄마는 우리 없이도 잘 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부담이 덜 됩니다. 그런데 ‘우리가 잘못하면 엄마가 더 힘들겠지.’라고 생각하면 엄마는 아이들에게 무거운 짐이 됩니다. 좋게 말하면 효자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엄마가 아이들의 짐이 되고 있는 겁니다.  

부모가 ‘내가 너를 많이 도와줬다.’ 하는 말을 자녀에게 자주 하면, 아이는 그 빚을 갚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짐을 지게 됩니다. 요즘 우리나라는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인도나 베트남 같은 나라에서는 가족에 대한 책임감을 무겁게 지고 살아가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가족 모두가 장남 하나에 집중해서 공부시키고, 유학까지 보내니 그 아이 자유로운 삶을 살기 어렵죠. 어떻게든 공부해서 돈을 많이 벌어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좋게 말하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지만, 나쁘게 말하면 인간의 자유로움에 큰 울타리를 쳐 놓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이 볼 때는 그저 효자 같아서 좋겠지만, 자식에게는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마음이 아니라면 무거운 짐일 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그것이 썩 좋은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 부모님이 저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셨으면 아마 출가하기 어려웠을 거예요. 제 부모님은 초등학교도 못 나오신 시골 분들이셨습니다. 저는 부모님의 사랑은 받았지만 빚진 건 많지 않았어요. 초등학교를 졸업 후로 혼자 살았으니 출가가 좀 수월했죠. 만약 논 팔아서 학비 대주고 대학까지 보내 주셨다면 부모님께 진 빚을 갚아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을 거예요. 

질문자의 자녀가 자유롭게 살기를 바란다면 거래하는 마음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너한테 투자하니까 나중에 갚아라.’ 하는 생각은 단순한 상거래일 뿐입니다. 그렇게 되면 부부 관계도, 부모와 자식 관계도 사랑이 아니라 거래예요. 여러분의 가정을 부정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마음이 그런 식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질문자는 아이들에게 너무 집착하지 말고, 밥해 주고 기본적인 것만 챙기면 됩니다. 그리고 ‘엄마는 공부도 좋지만, 그보다 더 좋은 건 건강이야.’라고 이야기해 주세요. 공부할 필요 없다는 말은 거짓말이잖아요. 공부 잘하는 건 좋은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이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에게 이렇게 말해 주세요.  

‘돈을 많이 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건강하게 사는 거다. 엄마는 네가 돈 벌어서 주는 것보다 네 삶을 잘 사는 걸 더 기쁘게 생각한다. 그러니 너희 인생을 자유롭게 살아라.’ 

하지만 엄마가 여전히 불쌍해 보인다면 그런 말들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질문자가 쾌활하게 살고, 정토회 회원이 되어 봉사하며 사회에 이바지하는 삶을 산다면, 아이들 눈에는 ‘우리 엄마는 우리 없이도 잘 살겠다. 아빠 없이도 괜찮다.’라는 생각이 들게 됩니다. 질문자에게 남자가 필요하면 남자 친구를 사귀고 아이들한테 소개해 주면서 ‘엄마는 이렇게 잘 사니까 엄마 걱정하지 말고 너희 인생 살아라.’ 이렇게 얘기해 주세요. 아니면 남자 없이도 불쌍해 보이지 않고 당당하게 살아가는 모습만 보여 줘도 아이들의 짐은 점점 가벼워질 것입니다.” 

“제가 아이들에게 아무리 괜찮다고 해도 아이들이 걱정했던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스님, 감사합니다.” 

“옛날 성차별이 심했던 봉건 사회에서 여성에게 남편이 없다는 것은 곧 사회 취약 계층으로 전락하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당시 여자는 사람으로 취급받지 못했습니다. 모든 것이 남자를 기준으로 배분되었기에 남편이 없다는 것은 가장 극빈층에 속하는 것과 다름없었어요. 부유한 여성이라 해도 남편이 없으면 무시당했습니다. 여자는 권력을 가질 수 없었고, 오직 남자의 그늘 아래 살아야 했기 때문이에요. 문화적으로 여자는 남자의 일부로 여겨졌고, 심지어 남편이 죽으면 아내도 따라 죽어야 한다는 생각까지 있었습니다. ‘미망인(未亡人)’이라는 표현도 존경의 명칭으로 들리지만, 사실은 ‘아직 따라 죽지 못한 사람’ 즉, 마땅히 남편을 따라 죽어야 하는데 죽지 않고 사는 죄인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용어들은 오늘날에는 적절하지 않고 사라져야 할 표현들이죠.  

지금 시대는 홀로된 여성이 남자와 함께 살고 싶으면 재혼을 해도 되는 시대입니다. 뿐만 아니라 남자가 없어도 사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스스로 열등의식을 갖거나 부족함을 참아 가며 살 필요가 없습니다. 남자가 필요하다면 자유롭게 만나면 되고, 필요하지 않다면 당당하게 혼자 살아가면 됩니다. 세상에는 봉사하며 평생 혼자 사는 사람도 있고, 결혼해서 자녀까지 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삶을 이미 살았음에도 굳이 새로운 불편을 감수하며 사는 것이 과연 의미가 있을까요? 이제는 자기 삶에 자부심을 갖고 당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이런 모습으로 살아갈 때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짐을 내려놓게 됩니다.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시면 슬퍼하지 말라고 해도 슬퍼요. 마음의 허전함이 크니까요. 그런데 만약 부모가 병상에 오래 누워 계시면 상황이 달라져요. 3년이나 5년씩 누워 지내면 자식은 직장생활도 가정생활도 제대로 못 하고 간병에 온 힘을 쏟아 죽을 고생을 하게 되죠. 그런 상황에서 이번엔 돌아가시겠구나 싶어 온 가족이 모였는데 다시 회복하시고,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어떨까요? 그 과정에서 면역이 생깁니다. 그래서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나온 겁니다. 오랜 병치레가 정을 끊는다는 뜻입니다.  

죽는 사람 입장에서는 갑자기 죽는 게 제일 편합니다. 하지만 남은 사람을 생각한다면 좀 아프다가 죽는 편이 낫습니다. 정을 떼야 하기 때문이에요. 그러니 부모님이 갑자기 돌아가셨다고 너무 섭섭하게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부모님께는 좋은 일이었다고 생각해 보세요. 반대로 부모님이 긴 병을 앓아서 힘들다면 ‘정 떼려고 그러시는구나.’ 하고 이해하면 됩니다. 

어느 쪽이든 괜찮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긴 병에 힘들다고 아우성치고, 갑작스러운 죽음에는 또 섭섭하다고 아우성칩니다. 이런 게 문제라는 거예요. 이것은 단지 세상에서 일어나는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갑자기 돌아가시면 아쉬움이 남고, 오래 앓고 돌아가시면 수고로움이 따른다는 정도의 차이일 뿐입니다. 

또 혼자 사는 것이 아직은 같이 사는 것보다 좀 부족함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편안함도 있지 않습니까? 부부가 한집에 살아도 서로 눈치 좀 보고 살잖아요. 눈치 보고 의심도 생기고, 밤늦게 들어오면 자다 일어나야 하고, 귀찮은 일이 많잖아요. 혼자 살면 그런 눈치 볼 일이 거의 없습니다.  

부부가 결혼해서 같이 살다가 해외 발령으로 떨어져 지내면 처음엔 힘듭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 생활에 익숙해지고 편안해집니다. 그러다 다시 합치면 오히려 불편함이 생기고, 갈등이 일어나기도 해요. 그래서 가능하면 부부는 떨어지지 말고 함께 사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 사는 게 다 습관이니까요.  

질문자도 조금 더 당당하게 살아 보세요. 그러면 아이들의 어깨에 얹힌 무거운 짐도 자연스레 내려놓아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라오스를 답사하며 현지에서 예정된 만남 일정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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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의수호자

스님
잘다녀오십시오

2025-06-07 18:43:17

문병식

혼자 살더라도 당당하게 잘 살아야 아이들에게 짐이 되지 않는것이구나 알게 됩니다. 자꾸 무엇인가를 해주며 부담을 주면 아이에게 빚을 주는것과 같음을 알겠습니다. 또한 혼자살면 자유롭게 살수 있어서 좋고, 같이 살면 함께 살아서 좋은줄 알겠습니다.

2025-06-07 14:42:38

순선

스님 고맙습니다 존경합니다

2025-06-07 13: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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