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검색
원하시는 검색어를 입력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외국인 수행자들이 천일결사 기도에 입재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환경재단에서 주관하는 그린 토크 콘서트에 참석하여 즉문즉설 강연을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서울 정토회관 방송실에서 오전 8시부터 천일결사 외국인 입재자들을 위한 9차 백일기도 입재식에 참석했습니다.
어제는 한국어를 사용하는 전 세계의 정토행자들이 백일기도를 시작했고, 오늘은 외국어를 사용하는 전 세계의 정토행자들이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외국인 정토행자들이 모두 화상 회의 방에 입장하자 사회자가 반갑게 환영 인사를 했습니다.
“Hello and welcome to the Opening Ceremony of the 9th 100-Day Practice, which is part of the first 1000-Day Practice.”
(제1차 천일결사 중 제9차 백일기도 입재식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오늘 입재식에는 미국, 캐나다, 홍콩, 한국, 일본, 인도네시아, 이탈리아, 아일랜드, 호주, 영국 등에서 천일결사 외국인 입재자 21명이 함께했습니다. 먼저 지난 100일 동안 열심히 수행해 온 분들의 소감을 들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홍콩에 거주하는 크레이그(Craig Lewis) 님이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Jungto Society recently concluded the 100-day 2025 Dharma Talk Festival. And I had the privilege of joining the weekend practice days — for 1,080 prostrations on Saturdays and extended meditation on Sundays.
Although my body has grown more comfortable with sitting in meditation since I became a Jungto practitioner … I’ve always been bothered by physical pain during longer sitting sessions. But something shifted during this year’s practice at Jungto Center: for the first time I was able to sit without moving until the end. During the meditation sessions, I noticed shifting contrasts — between physical discomfort and mental discomfort; between a restless mind and moments of quiet. Yet I felt encouraged and supported by the focus of the practitioners around me.
For 1,080 bows … I was nervous! It seemed like a marathon to me! When I learned to let go of my mind during the practice, I was able to complete all of the bows before the end … I might even say that I found that there was only one prostration needed to complete 1,080.
This experience has helped to change my perspective toward practice. Since taking part in both of these practices, I’ve found that daily practice is now much easier. 108 prostrations used to feel like a burden — and I’d often feel lazy in the morning. Now, I know that 108 bows doesn’t have to be a big deal. I also found longer meditation to be very helpful. Now, I sometimes feel that 10 minutes in the morning isn’t enough. Sitting alongside other practitioners is also a very different experience than sitting alone. This is something that I hope I can explore further.”
(정토회는 최근에 2025 백일법문 축제를 마무리했습니다. 그 기간 동안 저는 주말 정진에 참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졌습니다. 토요일에는 1080배, 일요일에는 집중 명상 정진이 있었습니다.
정토회 수행자가 된 이후로는 명상 자세가 몸에 익었지만, 긴 시간 앉아 있는 동안 느껴지는 신체적인 통증은 늘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런데 이번 정토회의 수행 중 어떤 변화가 있었습니다. 처음으로, 움직이지 않고 끝까지 앉아 있을 수 있었습니다. 명상 시간 동안,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불편함 사이의 변화, 산만한 마음과 고요한 순간들 사이의 대비를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주변 수행자들의 집중력에 큰 용기를 얻고 지지를 받았습니다.
1080배는 정말 긴장됐습니다! 제게는 마치 마라톤처럼 느껴졌습니다. 수행 중에 마음을 놓아버리는 법을 배웠을 때, 모든 절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1080배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절은 단 하나였다.'라고 말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이 경험은 수행에 대한 제 관점을 바꾸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두 수행에 참여한 이후로, 일상 수행이 훨씬 쉬워졌습니다. 예전에는 108배가 부담스럽게 느껴졌고, 아침에 게으름을 피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108배가 결코 큰 일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더 긴 시간의 명상이 아주 유익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아침 10분 명상만으로는 부족하다고 느껴지기도 합니다. 다른 수행자들과 함께 앉아 수행하는 것은 혼자 수행할 때와는 전혀 다른 경험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이 부분을 더 깊이 탐구해 보고 싶습니다.)
이어서 다 함께 스님에게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외국인 정토행자들을 위해 괴로움이 없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수행자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백일 동안 인도 불가촉천민 마을의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들을 위해 영어 교육 봉사를 해준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오늘은 제1차 천일결사 제8차 백일기도를 회향하는 날이자, 제9차 백일기도에 입재하는 날입니다. 앞으로의 100일을 우리는 어떻게 보내야 할까요?
첫째, 수행자는 수행을 기초로 해야 합니다. 수행이란 괴로움이 없는 자유로운 삶을 살아가는 길입니다. 둘째, 평정심을 유지해야 합니다. 주위 환경에 흔들리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것이 수행자의 태도입니다. 셋째, 사회의 평화는 내면의 평화에서 비롯되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분노가 없고 타인을 미워하지 않을 때 비로소 세상의 평화를 이루는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내 마음의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요? 인생을 살다 보면 누구나 다 어려운 일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다 보면 스트레스를 받고 괴로워질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자기 자신에게 ‘정말 무엇이 문제인가?’ 하고 물어봐야 합니다. 이렇게 삶을 직시해 보면 사실은 아무 문제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겉으로 보기엔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아무 문제도 없습니다. 얼핏 보면 괴로운 것 같지만 깊이 바라보면 괴로워할 일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돈을 잃었다면 분명 아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과연 괴로울 일인가 생각해 보면 괴로워할 일은 아닙니다. 그 돈이 없을 때도 우리는 잘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돈이 없을 뿐이지 괴로워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졌다고 합시다. 그것도 아쉬운 일이긴 하지만 정말 괴로워할 일인지는 다시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어떤 일을 하다 보면 잘 풀리지 않아 힘에 부칠 때가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많으면 몸과 마음이 지칠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괴로워할 일은 아닙니다. 괴로움은 어떤 일 때문이 아니라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괴로운 상태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면 일도 잘 풀리지 않을뿐더러 더욱 어렵게 느껴집니다. 반대로 그 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며 ‘이건 괴로워할 일이 아니다.’ 하고 알아차리고 그 일에 임하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고 일도 훨씬 수월해집니다.
그래서 만약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다면, 먼저 자신에게 ‘무엇이 문제인가?’ 하고 물어보기 바랍니다. 주어진 일을 회피하거나 도망가거나 묻어 두지 말고 똑바로 마주해 보세요. 그렇게 문제를 직시하고 나면 실제로는 아무 문제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를 두고 불교에서는 ‘모든 법의 실상은 공(空)하다.’라고 표현합니다. 먼저 이런 수행적 관점이 잡혀야 합니다. 이 관점이 분명하게 잡혀 있지 않으면 마치 잠꼬대를 하거나 꿈속에서 강도를 만나 도망 다니는 것과 같은 상태에 머물게 됩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수행을 해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걸까요? 사실 근본적으로는 아무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에서는 계속해서 문제가 일어납니다. 이것을 불교 교리로 설명하면, 아무 일도 없다는 말은 근본 무지(根本無知)가 사라진 상태를 뜻합니다. 그런데 현실에서는 늘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것은 찰나 무지(刹那無知) 때문입니다. 과거에 지은 업식의 습관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반응하다 보니 순간순간 어려움과 괴로움, 즉 스트레스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 순간적인 어리석음에 빠지지 않으려면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설령 순간적으로 깨어 있지 못했더라도 ‘놓쳤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바로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으면 괴로움은 사라집니다. 이렇게 알아차리는 연습을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낙숫물이 바위를 뚫듯이 꾸준히 정진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그럼, 언제까지 수행해야 합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해야 한다.’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참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참으면 스트레스를 받고 결국에는 중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언제까지’라는 생각도 버려야 해요. ‘바른 길이라면 다만 할 뿐이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100일이든 1000일이든 꾸준히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이렇게 꾸준히 해 나가다 보면 여러분의 삶에 괴로움이 줄고 평화와 편안함이 많아질 것입니다.
지난 100일 간 활동 중에서 특별히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JTS에서는 인도의 달리트(불가촉천민) 계층의 가난한 아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지역은 워낙 오지라 좋은 선생님을 구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런데 정토회 국제지부 인도 출신 회원 세 분이 그들을 위해 온라인 수업 자원봉사자로 기꺼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물론 현장에 직접 가서 봉사하는 것이 더욱 좋지만, 여러 사정으로 현장 방문이 어려운 경우에는 이렇게 온라인으로 충분히 봉사할 수 있는 일이 많습니다.
이 외에도 JTS는 전 세계에서 다양한 구호 활동을 활발히 펼치고 있습니다. 부탄에서는 가난한 두 개 주의 65개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생활 개선을 위한 지속 가능한 개발 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오랜 내전으로 큰 피해를 입은 시리아에서는 국립 병원을 재건하고, 학교를 세우는 복구 사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에서는 인더스강 범람으로 피해를 입은 지역에 주택을 건설하고 있으며, 필리핀 민다나오 지역에서는 원주민 마을과 무슬림 마을, 그리고 장애 아동을 위한 학교 건립에 힘쓰고 있습니다. 이 외에도 미얀마와 스리랑카 등 여러 나라에서 다양한 지원 사업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자연환경을 보호하거나 가난한 이웃을 위해 재물을 보시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수행자에게는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것 또한 큰 기쁨이 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가진 에너지 가운데 많은 부분을, 자신을 괴롭히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게는 아무 문제가 없다.’ 하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면, 그 에너지를 진정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위해 쓸 수 있게 됩니다. 그럴 때 비로소 나도 좋고 남도 좋은 삶을 살아가는 수행자가 될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하려면 무엇보다 먼저 자신이 괴롭지 않은 경지로 나아가는 수행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 앞으로도 100일 동안 꾸준히 정진해 나가시기를 바랍니다.”
이어서 수행을 하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눈 후 9시가 넘어서 백일기도 입재식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건강이 좋지 않아 조금 일찍 방송실을 나왔습니다. 모레부터 해외 일정이 시작되면 치료를 받을 수가 없어서 잠시 시간을 내어 병원 진료를 받았습니다.
병원을 다녀와 점심 식사를 한 후 12시 20분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하여 대전으로 향했습니다.
6월 5일 세계 환경의 날을 앞두고 환경재단에서 스님에게 '우리 삶을 바꾸는 작은 실천들'을 주제로 강연을 요청했습니다. 차로 2시간 20분을 달려 오후 2시 40분에 강연이 열리는 대전 카이스트 대강당에 도착했습니다. 곧 환경재단 최열 이사장이 도착해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강연을 시작하기 전에 환경재단과 카이스트 관계자들과 함께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카이스트에서는 외부인에게 강연장을 대여해 주지 않는데 오늘은 법륜스님이 강연을 하신다고 해서 특별히 장소를 제공해 주었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강연을 시작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오후 3시가 되자 다 함께 강연장으로 이동했습니다. 700여 명의 시민들이 카이스트 대강당에 자리했습니다. 사회자가 스님을 소개하자 큰 박수를 받으며 스님이 무대 위에 올랐습니다.
스님은 본격적으로 즉문즉설을 하기 전에 오늘 강연 주제인 '우리 삶을 바꾸는 작은 실천들'에 대해 주제 강연을 먼저 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저는 시골에서 농사를 지으며 지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졌고 그 영향으로 우리나라 꿀벌의 절반가량이 죽었다는 뉴스를 들었습니다. 당시에는 단순히 ‘올해는 꿀 농사가 어렵겠구나.’하고 넘겼어요. 그런데 그해 농사를 지어 보니 과일이고 호박이고 오이고 제대로 수확이 안 됐습니다. 이유가 뭘까요? 벌이 부족하니까 수정이 제대로 안 됐던 거예요. 그제야 벌의 존재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자료를 찾아보니, 만약 벌이 완전히 사라져서 자연 수정이 이뤄지지 않게 되면 인류의 식량 생산량이 무려 70퍼센트나 감소한다고 해요. 그 작은 벌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실감하게 되죠. 화산 폭발이나 지진처럼 한 지역이 무너지는 재해보다 벌이 사라지는 일이 훨씬 더 무서운 일입니다. 벌이 사라지면 전체 생태계가 무너지고, 특히 식량 부족이 심각하게 일어나게 됩니다.
그때 저는 벌을 보며 문득 자동차 부속품이 떠올랐습니다. 자동차는 약 2만 개의 부품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중에 단 하나라도 빠지면 제대로 작동하지 않잖아요. 벌도 마찬가지예요. 생태계라는 순환 구조 안에서 벌 하나만 사라져도 전체 순환이 큰 타격을 입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벌이나 나비 같은 작은 생명들이 우리 삶에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조차 잘 모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기후 위기가 앞으로 얼마나 심각한 결과를 가져올지 지금 이 자리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체감하고 있는 기후 위기의 징후라고 해 봐야 갑작스러운 홍수나 가뭄, 산불 같은 자연재해 정도일 겁니다. 그러나 이미 기온이 상승하면서 과일 재배지가 점차 북쪽으로 옮겨가고 있고, 예전에는 서해나 남해에서 잡히던 물고기들도 이제는 잘 잡히지 않죠. 또 동해에서 잡히던 오징어나 황태는 점점 더 북쪽으로 오호츠크해 근처까지 올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들은 지금 당장은 단지 조금 불편하거나 다소 위험한 일 정도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더 지나면, 벌이 지구상에서 완전히 사라진다든지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식량 생산이 어려워지고 생태계 전체가 무너질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는 거예요. 우리는 지금까지는 핵폭탄이나 행성 충돌 또는 아직 발견되지 않은 새로운 바이러스 때문에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다고 상상해 왔습니다. 그런데 앞으로는 그런 것과는 또 다른 전혀 예측하지 못한 위험이 우리 앞에 닥칠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위기를 불러온 데에는 인간의 책임이 크다는 점입니다.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사는 것이라는 생각이 사회 전반에 퍼져 있고, 이 가치관이 대량 소비를 부추겨 왔습니다. 대량 소비는 대량 생산으로 이어지고, 대량 생산은 지구 자원을 빠르게 고갈시킵니다. 그 결과 자원 전쟁이 벌어지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인공 자원이 개발되지만, 또 다른 부작용이 뒤따릅니다. 그뿐만 아니라 대량 소비는 대량 폐기물을 만들어 냅니다. 이 폐기물들은 지구 환경에 큰 영향을 주게 되어 기후 변화가 더욱더 심각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국 자원이 고갈되기 전에 기후 변화로 인류가 먼저 멸망하거나 많은 생명 종이 사라지는 위험에 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지구의 역사 속에서도 기후 변화는 여러 번 급격하게 일어나면서 짧은 시간 안에 수많은 생물 종이 멸종한 적이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자연스러운 순환의 일부라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만, 우리가 인위적으로 만든 결과라면 책임은 우리에게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잘 살기 위해서 한 노력이 오히려 우리를 파멸로 이끌었다면 어리석은 거예요. 그런데도 여전히 사람들은 이 문제의 심각성에 대해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계적으로도 마찬가지예요.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 위기를 인정하지 않았고, 2025년 1월 20일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하자마자 파리 협정에서 다시 탈퇴하겠다는 행정 명령에 서명했습니다. 기후 위기 대응은 전 세계가 함께 협력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정작 주요 국가들은 오히려 협조하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사실 우리 자신도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기후 위기가 그렇게까지 심각한가?’ 하는 생각이 먼저 들고, 그보다는 오늘 하루를 좀 더 편리하게 사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에요.
우리가 지금까지는 많이 소비하는 삶을 잘사는 삶으로 여겨왔지만, 이제 그 가치관은 한계에 다다랐습니다. 더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방식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그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요. 많이 소비하는 삶에 익숙해졌고 그게 마치 당연한 것처럼 굳어져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젠 마치 소비 중독이 된 것처럼 멈추고 싶어도 쉽게 안 멈춰집니다. 그럼 어떻게 될까요? 결국은 파국을 맞게 될 겁니다. 벼랑 끝에 다다라 수많은 희생이 뒤따르고, 어쩌면 생물 중 일부만 살아남게 될 수도 있겠죠.
그런데 정말로 나만 잘살면 되는 것일까요? 이 세상은 내 아이들과 우리 후손들도 함께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만이 아니라 이 땅의 다른 많은 생명들과도 함께 공존해야 합니다. 그렇게 생각한다면 우리는 지금 소비를 줄이는 것을 넘어서서 소비를 멈추어야 합니다. 그래서 정토회에서는 지금 ‘소비 멈춤 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소비를 멈추자!’ 이것이 오늘 제가 여러분께 하고 싶은 얘기입니다.
앞으로 저에게 남은 삶이 길어 봐야 한 10년 정도 될 겁니다. 그래서 저는 더 이상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 이미 있는 옷만으로도 평생 입고도 남기 때문입니다. 옷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있는 옷만 해도 다 못 입을 것 같아요. 그리고 제가 입고 있는 승복과 가사, 장삼은 남겨 봐야 입을 사람도 없어요. 여러분은 그나마 물려주면 누군가는 입겠지만 저는 그럴 가능성도 없습니다. 결국 불태우는 일밖에 더 있겠어요. 그러니 지금 당장 소비를 멈추어야 합니다. 이제는 옷이든 신발이든 뭐든 간에 ‘소비 멈춤’이 필요한 때입니다.
지금 우리가 직면한 환경 문제나 기후 위기의 근본 원인은 결국 과도한 소비에 있습니다. 우리가 너무 많이 소비하기 때문에 이산화탄소 배출도 그만큼 많아지고, 그 결과 기후 위기가 찾아오는 거예요. 즉, 과소비가 기후 위기를 초래한 겁니다. 그렇다면 이 과소비의 주범은 누구일까요? 저소득층일까요? 아니면 고소득층일까요? 분명한 것은 풍요롭게 사는 사람들이 훨씬 많은 것을 소비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고소득층은 이런 기후 위기 시대에 부러움의 대상이 되어야 할까요? 아니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저는 고소득층이 부러움의 대상이 될 게 아니라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수많은 생명을 위협하고 세상에 커다란 불행을 가져오는 사람이라면 그건 단순한 잘못이 아니라 중대한 범죄에 해당합니다. 기후 위기 시대에 과소비는 범죄 행위입니다. 다만 아직은 법이 그 죄를 제대로 규정하지 못하고 있을 뿐이에요. 예를 들어 도박도 그냥 소소하게 하면 놔두다가 판돈이 커지면 처벌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지금의 과소비도 인류 전체를 위협하는 중범죄로 법에 명시된다면 분명 엄청난 처벌을 받아야 할 일이 될 겁니다.
그런데 아직 법에 명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처벌하기는커녕 오히려 부러워하고 있습니다. ‘나도 저렇게 한번 살아 봤으면…...’ 하며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부러워하고 있지만, 만약 저한테 그들이 소비하는 물건들을 준다면 저는 쓰레기통에 버릴 겁니다. 여러분은 어때요? 누가 준다고 해도 쓰레기통에 버리겠어요? 아니면 쓰레기통에 있는 걸 보고 다시 주워 오겠어요? (웃음)
여러분은 그런 과소비를 비난하면서도 막상 부잣집 며느리가 된다거나 사위가 된다고 하면 기뻐하고 부러워합니다. 사돈이 된다고 해도 좋아할 거예요. 이런 마음가짐이 바뀌지 않으면 기후 위기를 극복하기는 정말 어렵습니다. 지금과 같은 기후 위기 시대에 지나친 소비는 단지 개인의 문제가 아닙니다. 인류 전체와 모든 생명체의 삶을 위협할 수 있는 중대한 범죄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자각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예전과 비교하면 먹을 것도 입을 것도 잠잘 곳도 넉넉합니다. 지금 누리는 삶만 해도 옛날로 치면 왕보다 더 잘 사는 거예요. 그러니 더 갖고 싶은 마음에 자꾸 욕심내지 않아도 됩니다. 이렇게 마음을 바꾸면, 첫째, 삶이 한결 편안해집니다. 둘째, 남들과 비교하거나 경쟁할 일이 줄어들어 갈등이 적어집니다. 셋째, 적게 소비하고 남는 것을 남과 나눌 수 있어서 삶에 여유가 생깁니다. 무엇보다 이런 삶은 기후 변화를 극복해 나갈 수 있는 실질적인 실천이 됩니다.
이런 삶을 우리가 함께 살아간다면 어떨까요? 나도 좋고 남도 좋고 세상도 좋아지는 이런 삶을 우리가 살아야 하지 않겠어요? 이런 관점을 가져야 현대 문명에도 희망이 생깁니다. 그런데도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떤 분은 ‘스님, 지금 그런다고 뭐가 달라지겠어요? 이미 늦은 것 아닙니까?’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길이 있다면 가야 하지 않을까요? 그 길이 성공할지 실패할지는 두 번째 문제입니다. 아무 길도 없다면 모를까 조금이라도 나아질 수 있는 길이 있다면, 하루라도, 한 달이라도 우리는 그 길을 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사람도 살고 환경도 살리는 길을 함께 가야 합니다.”
이어서 참석자들로부터 자유롭게 질문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한 시간 동안 여섯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어떻게 하면 인생을 잘 살 수 있는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점점 어른으로 성장해 가고 있는데, 잘 살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잘 사는 것에도 여러 기준이 있겠지만, 어떤 삶이 진정 잘 사는 삶일까요? 삶을 살아가는 가장 지혜로운 태도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무엇이 문제인지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별일 아니네!’라는 관점을 갖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태도입니다. 이혼을 앞두고 괴롭다면 ‘뭐가 문제니?’ 하고 자신에게 물어보세요. ‘헤어지는데 왜 괴로운가?’ 하고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보길 바랍니다. 어차피 헤어진다고 해도, 만나기 전 상태로 돌아가는 것뿐이잖아요. 본전이에요. (웃음)
결혼하기 전엔 혼자서도 잘 살았잖아요. 그런데 결혼 생활을 해 보니 오히려 혼자일 때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어 헤어지려는 거잖아요. 결국은 원하던 대로 돌아왔는데 도대체 뭐가 문제인가요? 삶에서 괴로움이 찾아온다고 회피하려거나 덮어 두지 말고 그때마다 자신에게 ‘이게 정말 문제인가?’ 하고 물어봐야 합니다.
가령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면 ‘뭐가 문제지? 어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왜 문제인가?’ 하고 자문해 보세요. 인류 역사상 죽지 않은 사람은 없고, 죽음은 그저 하나의 자연스러운 사실입니다. 그런데 왜 그게 문제인가요? 결국 문제는 죽었다는 사실이 아니라, 내 안에 있는 ‘죽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집착입니다. 이미 죽었는데 안 죽었으면 좋았겠다고 미련을 갖는 그게 바로 어리석음입니다.
지혜롭게 살려면 괴로움이 밀려올 때마다 ‘뭐가 문제지?’ ‘그래서 그게 왜 문제인데?’ 하고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그렇게 몇 번 되짚어 보다 보면 ‘별일 아니네!’ 하고 저절로 깨닫게 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다음 질문자는 나이가 27살이 된 청년이었는데, 아직도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다며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저는 올해 나이가 27살인데, 아직도 뭘 하고 싶은지 잘 모르겠습니다. 주변에 친구들은 다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서 잘 살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어디서 살아요? 엄마와 함께 살아요?”
“혼자 삽니다.”
“아무 일도 안 한다고 했는데 그럼 무슨 돈으로 살아요?”
“일을 하고 있기는 합니다.”
“그래도 본인이 벌어서 밥값은 하고 있나요?”
“네.”
“그럼 됐어요. 사람이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을 때도 있고, 하고 싶지 않지만 내 재능이 인정받아 어쩔 수 없이 하게 되는 일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경우에는 스트레스를 받기 쉽죠. 그런 일은 생계를 위한 일로 받아들이고, 하고 싶은 일은 취미로 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노래를 하고 싶지만, 그걸로 생계 유지가 어렵다면, 다른 일로 밥벌이를 하면서 노래는 아마추어 가수가 되어서 즐기면 돼요. 반대로 하고 싶은 일도 없고 잘하는 일도 없다면 그냥 밥벌이만 하면 됩니다. 자연계의 모든 생명체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나요? 잘하는 일을 하며 사나요? 둘 다 아닙니다. 그저 밥벌이하면서 삽니다.
범죄만 아니라면 무슨 일을 하든 괜찮습니다. 물건을 나르든, 청소를 하든, 밥벌이만 하면 되는 거예요. 다른 사람 말에 휘둘릴 필요가 없어요. ‘너 진짜 하고 싶은 게 뭐야?’ 이런 말들에 너무 흔들리지 마세요. 예전에는 음악이나 체육을 하고 싶어도 ‘그걸로는 밥 벌어 먹기 힘드니 공대에 가라. 아니면 상대에 가라!’ 이렇게 말하던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회가 달라졌어요. 예술로도 먹고살 수 있는 시대가 되다 보니, 이제는 반대로 ‘하고 싶은 걸 해라!’ 하는 말이 나오게 된 겁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걸 해라!’ 하는 말과 ‘하고 싶은 게 뭔지 찾아라!’ 하는 말은 전혀 다른 얘기입니다. 요즘은 초등학생들에게조차 부모나 선생님이 자꾸 ‘너 하고 싶은 게 뭐니?’ 하고 묻습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혼란스러워져서 저한테 와서 ‘스님, 저는 하고 싶은 게 없는데 어떡하면 좋아요?’ 이렇게 묻습니다. 부모와 선생님의 이런 태도가 요즘 아이들에게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어요. 잘하는 게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게 인생이에요.
오히려 하고 싶은 게 없어서 고민이라면, 저는 그것이 더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아무거나 해도 되기 때문이에요. 내가 딱 음악을 하고 싶다고 정해 놓으면 음악을 못하게 되었을 때 큰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그런데 하고 싶은 게 없다면 아무 대학이나 가도 되고, 아무 학과나 가도 되고, 어떤 일을 해도 괜찮아요. 오히려 직업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모는 자녀에게 자꾸 ‘너 진짜 하고 싶은 게 뭐니?’ 이런 질문을 하면 안 됩니다. 사실 그 질문은 부모가 이루지 못한 자신의 꿈을 아이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욕망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아이가 뭔가 하고 싶다는 것을 유도해서 그 일이 잘되면 대리 만족을 느끼고, 욕심이 커져서 아이를 통해 대박을 내려는 쪽으로 가기도 합니다. 그러다 아이는 병들고 맙니다.
부모의 욕망을 아이에게 투사해서는 안 됩니다. 아이들은 그저 건강하게 자라고 스스로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면 되는 거예요. 어릴 때는 학대하지 말아야 하고, 사춘기에는 과잉보호하지 말아야 하고, 무엇이든 스스로 살아갈 수 있도록 키워야 합니다. 우리 아이가 1등 했다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우리 아이가 혼자서도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것이 진짜 중요한 거예요.”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어느덧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이 강연을 마치고 내려오자, 현장 참가자 대상 이벤트가 진행되었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강연장을 나와 환경재단 관계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인사를 나눈 후 오후 5시에 대전을 출발하여 두북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3시간을 달려 저녁 7시가 넘어 두북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장수 죽림정사에서 용성조사 탄신 161주년 기념 법회를 한 후 현장 참석자들과 즉문즉설 시간을 갖고, 용성기념관 건축 현장을 둘러본 후, 오후에는 서울로 이동하여 저녁에는 ‘청년 전법’을 주제로 활동가들과 회의를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30
전체 댓글 보기스님의하루 최신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