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5.31. 백일법문 회향 기념 불심 도문 큰스님 초청 법회, 평화재단 통일의병대회
"2025년에는 남북통일의 물꼬가 트일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이 기나긴 대장정을 마쳤습니다. 오늘은 백일법문 회향 기념으로 정토회 고문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을 모시고 초청 법회를 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불심 도문 큰스님이 도착하는 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아침 9시가 넘어서 불심 도문 큰스님이 도착했습니다. 큰스님이 차에서 내리자 스님이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큰스님,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큰스님은 혼자서 걷기 어려울 정도로 거동이 불편하셨습니다. 법륜스님과 유수스님이 큰스님을 부축하여 정토사회문화회관 조실채로 모셨습니다.

삼배로 인사를 드리자 큰스님은 합장을 하고 빨리어로 삼귀의를 외웠습니다.

“나모 땃사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붓닷사. 붓당 사라낭 가차미. 담망 사라낭 가차미. 상강 사라낭 가차미.”
(번뇌로부터 떠나시고 스스로 깨달음을 이루신 부처님을 존경하며 귀의하옵니다. 부처님과 부처님의 법과 부처님의 제자인 스님들께 귀의하옵나이다.)

큰스님은 법회에 초청해 준 것에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2월 16일에 시작해서 6월 1일까지 105일 동안 매일 기도하고 법문했습니다. 1999년에 첫 번째 백일법문을 했고, 25년이 지나 이번에 두 번째 백일법문을 했습니다. 강좌를 신청해서 100일 동안 법문을 들은 대중이 7천여 명이었고, 한 번 이상 법문을 듣고 다녀간 인원이 3만여 명 정도 됩니다.”

“수고하셨어요. 다 죽어 가는 보잘것없는 늙은 승려를 버리지 않고 설법할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법륜스님에게 너무 미안해요. 용성조사 유훈 실현에 온몸을 바치느라 법륜스님에게는 조금도 지원해 준 게 없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유훈 실현을 반만 하고 나머지는 법륜스님한테 힘을 좀 보태줄 걸 그랬어요.”

“아닙니다. 큰스님께서 유훈을 잘 실현해 주셨기 때문에 저희가 그걸 계승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어서 고마워요.”

스님은 큰스님께 장수 죽림정사 용성 기념관 건립과 천룡사 복원 사업에 대해 보고 드린 후 큰스님께서 법회 전에 잠시 쉬실 수 있도록 조용히 조실채에서 나왔습니다.

오전 10시 30분이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봉독하며 불심 도문 큰스님 초청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400여 명의 대중이 3층 설법전을 가득 메웠습니다.

큰스님이 입장하자 대중은 일제히 기립하여 큰 박수와 환호로 큰스님을 환영했습니다. 설법전 내부가 경건함과 벅찬 감동으로 가득 찼습니다.

먼저 스님이 큰스님을 대중에게 소개하며 환영사를 했습니다.

“오늘은 우리가 지난 100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정진하고 법문을 듣고 공부한 것을 마무리하는 날입니다. 오늘 회향의 날을 맞아 저희들의 스승님이신 불심 도문 큰스님을 모시고 마무리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불심 도문 큰스님께서는 용성조사님과 불법의 인연뿐 아니라 세속의 인연까지 아주 깊은 인연이 있으십니다. 석가여래부촉법 제68세이시고, 조선 불교 중흥률 제6조이신 용성조사님은 3.1 독립 선언에 참여한 33인 중 한 명으로 불교계를 대표하여 독립 선언서에 서명하셨습니다. 또한 서로 다른 세 종교가 힘을 모아 3.1 운동을 할 수 있도록 막후에서 많은 활동을 하셨습니다. 그때 용성조사님을 경제적으로, 그리고 다른 많은 부분에서 후원하신 분이 불심 도문 큰스님의 증조할아버지이신 사은 임동수 거사님입니다. 임동수 거사님과 용성조사님은 친구이자 도반이었고, 동지이며 제자였고, 또한 강력한 후원자이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용성조사님께서는 불교의 지성화·대중화·생활화를 위해 경전을 번역해서 유포하고, 포교당을 세우는 등 불교 혁신 운동에 앞장섰을 뿐 아니라 나라의 독립운동을 돕고, 많은 독립운동가를 양성하기 위해 재정적 지원을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용성조사님의 법을 계승하신 동헌 완규 조사님의 뒤를 이어서 불심 도문 큰스님께서 그 법을 계승하셨습니다. 또한 불심 도문 큰스님은 사은 임동수 거사님의 증손자로서 용성조사님의 모든 유훈을 이어받고 계십니다. 그래서 용성조사님의 10대 유훈을 실현하는 데에 평생을 이바지하셨습니다.

백일법문을 회향하며, 용성조사님의 뜻을 오늘에 이으며

정토회 각 지부의 으뜸절인 아도모례원, 천룡사, 봉림사, 장수 죽림정사와 같은 절은 모두 불심 도문 큰스님께서 평생 힘을 기울여서 가꿔 온 성지입니다. 불심 도문 큰스님은 부처님이 탄생하신 네팔 룸비니에서 가장 큰 절인 대성석가사도 창건하셨습니다. 오늘 법문을 들으면서 우리도 용성조사님의 유훈을 이어 가리라는 다짐을 해 보았으면 합니다.

작년에는 남북 간의 갈등이 고조되어 언제 전쟁이 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용성조사님 탄생 제160주년을 기념하는 날, 정토행자 1만 명이 모여 한반도의 평화, 국민 통합, 국가의 지속적 발전을 염원하며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기적같이 지난 연말에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되고, 한국에서는 비상계엄이 실패로 돌아가면서, 전쟁의 위험이 많이 낮아졌습니다. 이제 곧 한국에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다시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저는 사람이 예측할 수 없는 보이지 않는 힘을 느낍니다. 많은 분들이 '법륜스님은 항상 합리적인 얘기만 하더니 왜 갑자기 이런 말을 하냐?' 하고 의아해하겠지요. 하지만 종교의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이렇게 초월적 경험도 하게 됩니다.

불심 도문 큰스님은 용성조사님의 유훈에 따라 평생 동안 많은 일들을 추진하셨습니다. 또한 고등학생인 저를 가르쳐서 여기까지 오도록 해 주셨습니다. 불심 도문 큰스님을 큰 박수로 환영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내빈을 소개한 후 초청 법회 축하 공연이 이어졌습니다. 먼저 이명숙 님이 ‘한 많은 대동강’, ‘오늘이 젊은 날’ 두 곡을 신나는 리듬에 맞춰 아름다운 목소리로 불러 주었습니다.

청춘엔 기준이 없는 거란 걸
지금도 한창때란 걸
잊지는 말아요 오늘 이 순간이
내 인생에 가장 젊은 날 ♬
나이야 가라 나이야 가라
나이가 대수냐
오늘이 가장 젊은 날 ♬

노래가 끝나자 스님이 다시 마이크를 잡고 큰스님의 만수무강을 기원했습니다.

“방금 부른 노래는 큰스님을 위한 노래 같아요. 큰스님께는 나이를 묻지 마라, 이렇게 노래하는 것처럼 저한테는 들렸습니다. 오늘 큰스님 법문을 들어 보시면 ‘법륜스님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목소리가 크시네.’ 하고 느끼실 겁니다. 올해 91세이신데 20대처럼 목소리가 카랑카랑하십니다. 노래처럼 큰스님께서 만수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대중도 큰 박수로 큰스님의 만수무강을 함께 기원했습니다.

다음은 양미주 님과 김진숙 님이 남도 민요인 '진도 아리랑'을 장구 장단에 맞춰 구성지게 불렀습니다.

너도 부처 나도 부처 모두 부처가 된다니 ♬
여기가 극락이로세 관세음보살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흠 흠 흠 아라리가 났네

흥겨운 장단과 힘찬 가락에 설법전 분위기가 한껏 고조되었습니다. 노래를 더 듣고 싶었지만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음 순서를 이어 갔습니다.

귀한 발걸음을 해주신 큰스님께 대중을 대표하여 정토회 사무처장 백기순 님이 꽃다발을 증정했습니다. 큰스님은 꽃다발을 머리 위로 힘껏 들어 올리셨습니다.

이어서 대중이 삼배의 예로 큰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큰스님은 고려대장경 6부 가운데 연기화엄부의 제1 게송을 읊으며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삼세(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부처님을 알고자 한다면, 그는 마땅히 법계의 성품을 관찰해야 하리니,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지은 것임을 알게 되리라.”

이어서 소승아함부의 제1 게송을 읊어 주셨습니다.

“모든 악을 짓지 말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마음을 청정히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이어서 불교의 여러 중요한 경전의 핵심 게송을 읽고, 각각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게송을 읊은 후 큰스님은 오늘 법문을 하게 된 경위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회향 기념 법회니까 당연히 법륜스님이 법문을 해야 하는데, 늙고 병들어 쓸모없는 이 스님을 버리지 아니하고 한 말씀해 달라고 해서 이 법상에 올라왔습니다. 법륜스님은 천재이고, 근면한 수행자이고, 의리가 있는 선지식입니다. 이렇게 훌륭한 분을 만난 여러분은 참 복이 많은 겁니다. 저는 한 번도 법륜스님을 제대로 공부시킨 적이 없습니다. 제가 동국대학교 불교대학에 보내주겠다고 하니까 ‘저는 이미 불심 도문 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다른 대학은 갈 필요가 없습니다.’ 이렇게 말하고 대학을 안 가 버렸어요. 그런데도 오히려 대학 나온 사람들이 가방을 들고 법륜스님을 따라 다니며 배웠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법륜스님에게 불교를 배우고 있으니 얼마나 복이 많습니까?”

대중은 큰 박수로 화답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큰스님은 1919년 3.1 운동 직후 4월에 상해 임시 정부가 빠르게 세워질 수 있었던 역사적 근거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서기 1919년, 기미년(己未年) 3월 1일에 3·1 독립운동이 벌어지고, 국외인 동토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수립되었습니다. 초대 대통령은 우남 이승만 박사이고, 초대 국무총리는 이동휘, 국무총리 비서는 이강훈 애국지사입니다. 이강훈 애국지사는 귀국 후 대한민국 광복회 회장을 역임하셨습니다. 청뢰 이강훈 광복회 회장님께서 논증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 정부가 들어설 수 있었던 배경

조선 왕조 말기 조선 제일의 부자 운봉(雲峰) 박형집(朴炯集) 3만 석 거부께서는 외동아들 박봉주(朴奉珠)에게 1만 석, 외동딸 선정심 박정에게 1만 석, 사위 사은 임동수 진위대(鎭衛隊) 참위에게 1만 석을 각각 유산으로 증여하였습니다. 3만 석 박형집 첨사의 손자요, 1만 석 박봉주의 셋째 아들인 박종암 애국지사는 조카 박순형 애국지사와 3만 석 박형집 첨사의 외증손자 철생 임철호 애국지사와 함께 독립운동을 한 애국지사이셨습니다.

이들이 모두 힘을 합하여 동토 중국 상해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시 모든 경비를 마련했습니다. 조선 말기 조선 제일의 부자 3만 석 거부 박형집 첨사의 외동딸 선정심 박정과 사위 사은 임동수 진위대 참위 내외분이 용성조사와 함께 대한민국 임시 정부 수립 기금을 마련한 것입니다. 상해에서 대한민국 임시 정부를 수립할 때 용성조사가 이렇게 많은 자금을 그 운영 자금으로 증정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청뢰 이강훈 광복회 회장님께서 1945년 광복 후에 귀국하여 이 사실을 밝히게 되면서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이런 선조들의 뜻을 이어서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 평화를 위해 힘써 주실 것을 당부드리면서 오늘 법회를 마치겠습니다. 질문 있습니까?”

질문이 없자 큰스님은 주장자를 세 번 내리치신 뒤 제자들의 부축을 받으며 법상에서 내려오셨습니다.

사홍서원으로 초청 법회를 마친 후 점심 식사 시간을 가졌습니다.

큰스님뿐만 아니라 큰스님과 함께 온 일행 분들을 위해 정성껏 공양을 준비했습니다. 함께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한 후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 바쁘신데 이렇게 시간을 내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스님은 큰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큰스님이 차에 타실 때까지 배웅해 드렸습니다.

“늙고 병든 승려를 이렇게 불러 주셔서 고맙습니다.”

“아닙니다. 큰스님. 용성조사 기념관을 준공하고, 천룡사를 복원할 때까지 꼭 건강하게 살아 계셔야 합니다.”

큰스님이 떠나시고 스님은 곧바로 9층 강당으로 향했습니다.

오후 2시부터는 평화재단 통일의병이 주최하는 전국통일의병대회에 참석했습니다. 통일의병들은 오전에 매헌 윤봉길 기념관을 참배하고, 평화재단에 도착하여 통일의병 활동 영상을 함께 시청한 후, 본부별로 인사 시간을 갖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통일의병들이 꽃다발과 함께 큰 박수로 환영해 주었습니다.

곧바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최근 국내외 정세를 이야기하며 한반도 평화를 위해 통일의병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했습니다.

“우여곡절이 있었습니다만,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이제 곧 어떤 형태로든 새로운 질서가 들어설 것입니다. 당분간은 혼란이 계속되겠지만 점차 안정되지 않겠나 생각해 봅니다. 작년 봄이나 여름만 해도, 이러다가 전쟁이 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고, 실제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았던 것 같아요. 그러나 다행히 그 위기를 넘겼고, 지금은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습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다행히 전쟁의 위기를 넘긴 한반도, 그 이유는

첫째,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으로 1차 위기가 일단 넘어갔습니다. 둘째, 윤석열 대통령의 계엄 시도가 실패하면서 긴장이 더 낮아질 수 있었습니다. 대통령이 탄핵되었고, 곧 새로운 정부가 선거를 통해 들어서면 전쟁의 위험은 더욱 줄어들 것으로 예상됩니다. 셋째, 북한이 러시아에 군대를 파견한 것도 아이러니하게 전쟁 가능성을 낮추는 요인으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북한이 러시아에 군사를 파병하면서 힘이 분산되니까 남한의 움직임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측면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련의 흐름을 보면,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일들이 마치 누군가가 설계한 것처럼 맞물려서 전쟁의 위기를 넘긴 것 같아요. 종교적인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가 간절히 기도했던 6.13만인대법회의 공덕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웃음)

이제 전쟁의 위기는 넘겼지만,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불안 속에서 살아야 하겠습니까? 이번 기회에 코리아 리스크를 극복해야 하지 않겠냐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는 전쟁을 완전히 종식하고, 북미 관계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한반도의 전쟁 위험, 코리아 리스크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저는 그 가능성이 점점 생겨나고 있다고 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형성된 미소 냉전 체제가 공산권의 붕괴로 일정 부분 해체되었습니다. 그러나 공산주의 체제가 무너지지 않은 나라들에서는 냉전 구도가 여전히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북한 문제는 미국 중심의 세계 질서 속에서 쉽게 해결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미국 스스로 기존 국제 질서를 해체하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려는 흐름이 생겼어요. 그 과정에서 기존 체제 아래서는 도저히 풀 수 없었던 복잡한 문제들이 해결의 실마리를 조금씩 드러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새로운 질서를 구축하는 과정에서는 혼란이 뒤따르겠지만, 이 혼란 속에서 한반도 문제도 함께 풀리기를 희망합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현재의 남북문제는 남북 간 협의로 해결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2018년 문재인 정부 당시에는 '운전자론'을 내세워 우리가 중심에 서서 북미 관계를 개선하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입장을 취할 형편이 아닙니다. 북한은 이미 남한과의 관계를 두 개의 적대 국가로 규정해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남북 간 대화를 통한 해결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봅니다.

과거에는 보수 정부의 대북 적대 정책으로 인해 남북 관계가 악화되더라도, 정권이 바뀌면 회복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재인 정부 시기조차 북한은 남한이 통일 문제를 함께 해결할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어요. 진보 정부조차도 자신들의 체제를 온전히 인정하지 않는다고 결론을 내린 거예요. 이로 인해 남북 관계는 파탄에 이르렀고, 윤석열 정부가 들어선 후로는 완전히 적대적인 두 국가 관계로 고착화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단순히 정권이 바뀌면 남북 관계가 회복될 것이라 기대하는 것은, 남한의 진보 세력이 북한을 잘 모르는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남북 관계를 풀기 위해서는 북미 관계 정상화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또한 북일 관계 역시 개선되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남한은 직접 나서서 중재하겠다는 태도를 취하기보다는, 한발 물러서서 방해하지 않고 후원하는 입장에 서는 것이 현실적입니다. 물론 민족 문제에 우리가 주체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현실은 안타깝고 좌절감을 주기도 해요. 그러나 지금은 현실을 직시하고 문제를 풀어야 할 때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기여하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 평화 체제를 어떻게 정착시키느냐입니다.

남북 간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새 정부의 정책 방향

그래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면, 남북 관계 개선에 대해 조급하게 서두르기보다는, 미국과 일본이 각각 북미, 북일 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데 방해하지 않고 지원하는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해서 북미 관계가 개선된다면, 그 흐름을 발판 삼아 적대적 관계였던 남북 관계도 협력적인 관계로 전환할 수 있을 것입니다. 통일 문제는 좀 더 장기적인 시각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하여 용성조사님이 말씀하신 대로, 2025년부터 새로운 대한민국이 출발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두 가지예요. 첫째,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평화를 지키는 것입니다. 둘째, 북한 주민의 고통을 줄이는 인도적 지원 문제입니다. 이 두 가지가 바로 우리가 대북 정책을 바라볼 때 핵심적으로 고려해야 할 기준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대북 정책은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줄이기보다 오히려 높이고 있으며, 북한 주민의 고통을 완화하기보다 오히려 강화하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이 정책은 잘못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정책이 압박이든 대화든, 어떤 방식이든 간에 한반도의 전쟁 위기를 낮추고 북한 주민의 고통을 덜어주는 방향으로 나아가야만 진정한 민주 정부의 정책이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처럼 두 가지 기준 모두 충족하지 못한다면, 정책 자체가 실패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말해요.

‘이 정책의 목표가 북한 주민을 괴롭히는 것이냐? 그렇다면 대성공이다. 하지만 북한의 위협을 줄이기 위한 정책이라면 실패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많은 문제를 안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 75년간 누구도 해결하지 못한 한국 전쟁의 과제를 해결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 하는 기대도 해 보게 됩니다. 어쨌든 지금 필요한 것은 더욱 적극적으로 대화의 문을 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어서 통일의병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네 명이 스님에게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2025년에 남북 통일의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전망이 있는데, 이에 대해 스님은 어떻게 내다보고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2025년에는 남북통일의 물꼬가 트일 수 있을까요?

“우리는 현재 트럼프의 재당선이라든지,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 또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또 중국의 경제 둔화, 북한 정권 내부의 불안정 문제 등 세계적 격랑 속에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2025년 이내에 남북통일의 물꼬를 트거나 가시적인 성과를 도출할 수 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무엇이며, 스님이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저는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 저는 통일은 고사하고 대화도 올해 안에는 열리기 어렵지 않나 이렇게 생각합니다. 비공식적 접촉도 가능할까 모르겠어요. 북한은 남한을 적대 국가라고 규정해 버렸기 때문에 남한 사람, 남한 물건, 남한 돈은 절대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한은 대남 관련 부서도 다 없애 버렸어요. 공식적인 접촉 통로는 외무부예요. 얼마 전에 고기를 잡다가 남한으로 떠내려온 주민들이 있었잖아요. 이들을 돌려 보내려고 해도 북한에 연락이 안 됩니다. 데려가라고 해도 북한에서 답이 없어요.

물론 한국의 정부가 바뀌면 북한의 적대 정책이 조금 순화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은 한국 괴뢰라고 부르지만, 괴뢰라는 말을 조금 순화해서 표현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기본적으로 북한과의 접촉은 다 끊겼어요. 남한에서는 ‘개성에 투자했다.’, ‘금강산에 투자했다.’, ‘평양에 병원을 세웠다.’ 이렇게 말하면서 북한에 있는 자산에 대해 약간의 권한이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북한은 모든 권한 문제를 다 정리했습니다. 그런 관계이기 때문에 쉽사리 회복되기 어렵습니다. 북한이 이미 주민들에게 적대 국가라고 공표를 했고, 모든 제도를 그런 방향으로 만들어서 예전처럼 다시 회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단은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푸는 게 최우선입니다. 그리고 일본과도 관계를 풀어야 해요. 그렇게 해서 북한이 조금 안정된 이후에 남북 관계를 좀 풀어 가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경제적 도움이 필요할 때 어느 나라가 도울 수 있을까요? 미국은 지금 북한을 도울 수 있는 형편이 못 됩니다. 여러분도 지금 미국의 관세 정책을 보셔서 알잖아요. 이런 상황에서 미국은 북한을 경제적으로 지원할 형편이 못 됩니다. 그래서 미국은 우선 북한과의 관계를 풀어야 하고, 경제적 지원은 일본과 한국이 하든지 해야 합니다.

그런데 북한으로서는 좀 어려움이 있어요. 남한의 돈이 들어오면 민심이 남한 쪽으로 쏠릴 위험이 있다는 겁니다. 중국에서 돈이 들어오면 중국에 약간 고개를 숙여야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러시아와 미국은 지금 경제적 지원을 해 줄 수 있는 형편이 안 돼요. 제일 형편이 넉넉하고 안전한 나라가 일본입니다. 그러나 북한은 일본을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런 면에서 남북 관계가 쉽게 풀릴 것이라고 저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 정부가 들어서도 남북 관계의 긴장을 풀려고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남한 안에서의 국민 통합입니다. 남북 관계를 급하게 풀려고 하면 남한에서 보수 세력의 저항이 생깁니다. 나중에 정권이 바뀌어도 지속적으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일관적인 정책을 추진하려면 진보와 보수가 합의한 만큼 정책을 추진해야 합니다. 섣불리 손대지 말고, 우선 남한 안에 국민 통합을 가져올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정책을 먼저 시도해야 합니다. 먼저 북미 관계와 북일 관계가 풀리도록 지원하고, 남북문제는 내년쯤 점진적으로 부드럽게 풀어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변화된 정세를 항상 반영해야 합니다. 옛날에 약속한 것만 자꾸 고집하면 싸움밖에 안 돼요. 이 변화된 정세 위에서 우리가 어떻게 방향을 재설정할 것인지 논의하면서 남북 관계를 풀어 나가야 합니다. 대부분의 통일 운동 단체에서는 진보 세력이 집권하면 남북 관계가 활성화될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제가 볼 때는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져 오후 4시가 다 되어 대화를 마쳤습니다.

다 함께 통일의병의 다짐을 낭독하고, 스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은 쉴 틈 없이 곧바로 평화재단 회의실로 향했습니다. 오후 4시 10분부터는 청년특별지부와 정토회 사회활동위원회 책임자들이 모인 가운데 ‘청년 전법’을 주제로 회의를 했습니다.

스님이 올해 하반기에는 정토회가 청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기 위한 청년 축제를 열어 보자고 제안한 이후 세 번째 회의입니다. 오늘도 많은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여러 가지 제안들이 있었습니다. 청년들의 아이디어를 경청한 후 마지막으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제가 제안하고 싶은 것은 한국 청년들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축제를 열어 보자는 것입니다. 주눅 들어 있는 청년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가져다 줄 수 있는 어떤 행사를 만들어 보자는 거예요. 현실적으로 어느 정도 가능한지 더 검토해 보고, 다음에 다시 회의를 합시다.”

다음 회의 날짜를 잡은 후 오후 5시 30분에 회의를 마쳤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곧바로 DMZ생명평화동산 이사장 정성헌 님이 찾아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해가 저물고 스님은 실내에서 업무를 본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제2차 만일결사 중 1차 천일결사, 9차 백일기도 입재식이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서 열리고, 이어서 오후에는 백일법문 회향식이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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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명화

스님감사합니다 스님 강건하시고 행복하세요

2025-06-04 07:53:00

ㅎㅎ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2025-06-04 01:2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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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도 통달하신 스님은 정치입문 추천합니다. 국회의원 되시고, 국회의장하시고, 다음은 대통령되어서 남북통일하시고 …

2025-06-04 01: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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