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5.29 백일법문 102일째, 경전강의 갈무리, 향류법사 추도식, 불교사회대학 23강
"소비를 줄이고도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102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경전 강의와 불교사회대학 강의를 갈무리하는 날입니다. 그리고 지난 4월에 돌아가신 향류 법사님의 추도식도 열렸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아침 6시에 제21대 대통령 선거 사전 투표를 하기 위해 서초3동 주민 센터로 향했습니다.

이른 아침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시민들이 투표하기 위해 주민 센터 앞에 줄을 서 있었습니다. 스님도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렸습니다.

소중한 한 표를 행사한 후 스님은 사전 투표소 앞에서 투표 독려 영상을 촬영했습니다.

"투표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할 수 있는 소중한 권리입니다. 권리는 꼭 행사해야 합니다. 이번 선거를 통해 5년 동안 대한민국을 이끌 대통령을 뽑게 됩니다. 여러분의 선택에 따라 이 나라의 운명이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권리 행사가 대한민국의 발전에 꼭 필요한 일이니까, 기권하지 마시고 한 분도 빠짐없이 투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 영상보기(1분 30초)

아침 일찍 투표를 마치고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10시 15분부터 3층 설법전에서 경전 강의를 시작했습니다. 110여 명이 현장에 자리하고, 560여 명이 온라인 생방송으로 접속했습니다.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법상에 올랐습니다.

이번 시간은 지난 100일 동안 진행된 경전 강의를 마무리하는 시간입니다. 수강생들은 아쉬운 마음에 평소보다 더 귀를 쫑긋 세우고 스님 법문에 집중했습니다.

스님은 그동안 배운 금강경을 다 함께 독송해 보자고 제안했습니다. 수강생들은 목탁 소리에 맞춰 금강경을 독송했습니다.

금강경 독송을 마치고 스님이 금강경의 핵심 요지가 무엇인지 요약정리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금강경과 반야심경 강의를 마치는 날입니다. 책거리 날인만큼 두 경전의 요점을 정리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한 선남자, 선여인이 그 마음을 어떻게 항복받고 어떻게 머물러야 하는가?’

이것이 금강경의 주요 질문입니다. 여기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阿耨多羅三藐三菩提心)이란 최상의 깨달음, 즉 무상정등정각(無上正等正覺)을 뜻합니다. 이 법을 깨달으면 모든 번뇌가 사라지고 고요 적정한 상태, 즉 열반에 이르게 됩니다. 그러니 수보리의 질문은 곧 ‘어떤 마음을 내야 그런 경지에 이를 수 있습니까?’라는 뜻입니다. 이 질문에 대해 부처님은 ‘일체중생을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내라. 그러나 일체중생을 구제했다고 하더라도 사실은 단 한 중생도 구제받은 바가 없음을 알아라.’ 하고 대답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금강경의 핵심 내용입니다.

금강경이 전하는 참된 자유의 길

‘이것이 법이다.’라고 하면 아상(我相)‧인상(人相)‧중생상(衆生相)‧수자상(壽者相)에 집착하는 것이고, ‘이것이 법이 아니다.’라고 해도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에 집착한 것이 됩니다. ‘이것이 진리다.’라고 해도 그것은 진리가 아니며, ‘이것이 진리가 아니다.’라고 해도 역시 진리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진리란 ‘이것이다, 저것이다.’ 하고 고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고 합니다.

무유정법은 초기 경전에서는 ‘중도(中道)’로 표현되기도 하고, 후대에는 ‘공(空)’이라는 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게 되면 ‘그것이 영혼이다.’, ‘그것이 참 나다.’, ‘그것이 불성이다.’ 하는 것처럼 어떤 개념을 고정적으로 규정하는 모든 말들이 무유정법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무유정법을 제대로 이해하면 어떤 것도 단정해서 말하지 않게 됩니다. ‘있다.’라고도 하지 않고, ‘없다.’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모든 것은 인연 따라 생겨나므로 ‘이 조건에서는 이렇다.’ 하는 정도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공간을 초월한 절대적인 진리로 정해 버린다면 이미 진리가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단정하는 습관 속에 살고 있기 때문에 무유정법이 처음에는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단정하는 사고 속에는 늘 모순이 따릅니다. 무유정법을 체득하면 마치 얽힌 실타래가 풀리듯이 마음속 모순이 해소되고 번뇌가 잦아듭니다. 다만 무유정법을 머리로만 이해하고 자기 식대로 적용하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처럼 막행막식(莫行莫食)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이 점을 유의해서 여러분 모두 금강경의 가르침 속에서 참된 자유와 걸림 없는 해탈을 얻기 바랍니다.”

다음은 반야심경을 다 함께 독송해 보았습니다. 독송이 끝나자 스님이 그동안 배운 반야심경의 핵심 요지가 무엇인지 정리해 주었습니다.

“반야심경은 금강경 사상을 요약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두 경전 모두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수행의 길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야심경이 밝히는 대승의 지혜

반야심경의 정종분은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 대승 불교의 반야 사상과 공(空) 사상을 이론적으로 설파하는 부분입니다. 제법이 공하다는 점을 다양한 예와 논리로 증명합니다. 공의 세계란 곧 연기의 세계이며, 그 안에는 어떤 실체도 없습니다. 생겨남도 사라짐도 없고, 늘어남도 줄어듦도 없으며, 깨끗함도 더러움도 없습니다.

둘째, 소승 불교의 법집을 비판적으로 지적합니다. 소승은 법에 집착해서 ‘이것이 법이다.’, ‘아니다. 저것이 법이다.’ 하며 논쟁을 벌입니다. 그러니 대승의 관점에서 보면 법이란 ‘이것이다.’ 혹은 ‘저것이다.’ 하고 분별할 수 없는 것이며 분별심 자체를 떠나야 합니다. 그래서 오온(五蘊), 십이처(十二處), 십팔계(十八界), 십이연기(十二緣起), 사성제(四聖諦), 심지어 깨달음조차도 공하다고 말합니다. 깨달음을 얻었다는 생각조차 공하다는 것입니다.

셋째, 반야바라밀다는 단지 이론에 그치지 않습니다. 모든 보살이 수행하고 증득한 열반의 길이자 모든 부처가 깨달아 드러낸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이 수행은 모든 믿음 가운데 가장 깊은 믿음이며, 모든 앎 가운데 가장 밝은 지혜이고, 모든 실천 가운데 가장 높은 수행이며, 무엇과도 비교할 바 없는 최상의 깨달음입니다. 그러니 이 반야바라밀다 수행을 통해서 저 깨달음의 세계, 열반의 세계로 나아가자는 내용입니다. ‘가세, 가세, 저 언덕으로 건너가세. 저 언덕에 이르러 깨달음을 이루세.’라는 외침으로 마무리됩니다.

단정에서 벗어나라, 금강경과 반야심경 속에 담긴 공존의 가르침

이렇게 해서 금강경과 반야심경 공부를 마쳤습니다. 두 경전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가르침은 ‘이것이 옳다.’, ‘저것이 맞다.’ 하는 단정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나는 이것을 믿는다.’, ‘나는 이것이 좋다.’라고 말하는 것은 괜찮습니다. 그러나 ‘이게 옳아!’, ‘이게 진리야!’ 하고 단정짓는 순간 우리는 법집(法執)에 빠지게 됩니다.

더 나아가 ‘나는 이렇게 생각해.’라는 생각을 넘어서 ‘부처님도 이렇게 말씀하셨다.’, ‘법륜스님도 그렇게 말씀하셨다.’라며 권위를 빌리는 것은 더욱 강한 상입니다. 이렇게 권위를 내세우면 문제를 해결하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종교는 본래 마음의 평화를 위한 것이지만, 권위에 기대게 되면 갈등을 해소하기보다는 더욱 장기화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종교적 갈등은 천 년을 넘도록 지속되기도 합니다.

사람은 아무리 고집이 세도 ‘내가 틀릴 수도 있다.’ 하는 생각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개인 간의 다툼은 몇 년이면 해결되고, 나라 간의 전쟁도 수십 년이 지나면 국교를 회복하기도 합니다. 조선은 임진왜란 이후에도 일본에 통신사를 보내 국교를 재개했고, 대한민국도 일제 강점기를 거친 뒤 20여 년 만에 일본과 수교를 맺었습니다. 그러나 가까운 사이일수록 갈등은 오히려 더 깊고 오래갑니다. 남북 간 전쟁은 올해로 75년째입니다. 전쟁은 멈춘 상태지만 평화 협정이 체결되지 않아서 법적으로는 여전히 전쟁 상태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전쟁을 끝내야 합니다.

갈등을 줄이려면 어떤 일이든 너무 단정해서는 안 됩니다. 상황이 달라지면 대응도 그에 맞게 달라져야 합니다. 과거에 전쟁을 치렀더라도 지금 다시 싸우는 것은 서로에게 손해일 뿐입니다. 그러니 대화가 필요합니다. 일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과거사 문제가 해결되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국교를 단절할 수도 없습니다. 또 요즘처럼 미국과 중국이 패권 경쟁을 벌이는 상황에서 우리 같은 작은 나라는 어느 한쪽 편만 들 수도 없고, 결국 두 나라와 다 협력하면서 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과거사를 무시하고 협력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반대로 ‘과거사를 다 해결한 뒤에 협력하자.’라고 하면 협력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과거사는 과거사대로 풀려고 노력하면서 동시에 미래를 위한 협력도 함께 해 나가야 합니다.

이런 식의 접근이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중도(中道)’이며 ‘무유정법(無有定法)’입니다. 이런 말들이 좀 비현실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사실은 아주 현실적인 얘기입니다. 우리가 현실이라고 믿고 있는 것조차, 따지고 보면 각자 자기 생각을 현실로 여겨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일종의 꿈속 이야기일 수도 있는 거예요. 정치적으로 여야가 갈리고, 진보와 보수가 부딪히고, 지역마다 갈등이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어느 지역에 가서 이야기를 들어 보면, 그 지역 사람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다른 지역에 가 보면 또 그 지역 사람들도 자기들이 옳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태어나서부터 그렇게 보고 들은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자라 왔으니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 다르다고 해서 틀렸다고 단정하지 말고, 서로 다를 뿐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불교 경전을 공부하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는 이유는 단지 내 마음의 평화를 얻는 데에만 있지 않습니다.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갈등을 조금 더 지혜롭게 풀어가기 위해서도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누군가가 나와 다르면 틀렸다고 생각해서 갈등을 일으키곤 합니다. 그러나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면 그 다름은 오히려 다양성이 됩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서로 다른 생각들이 함께 어우러질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끝으로 금강경과 반야심경 강의를 모두 마치겠습니다.”

이로써 경전 강의를 모두 마쳤습니다. 다음은 경전 강의를 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100일 동안 강의를 해 주신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이어서 100일 동안 경전 강의가 진행될 수 있게 곳곳에서 소임을 맡아 준 봉사자들을 스님이 직접 소개해 주었습니다.

“정토회에는 월급을 받는 직원이 없습니다. 모든 운영이 자원봉사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오늘은 경전 강의를 진행해 준 자원봉사자들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모두 앞으로 나와 주세요.”

수강생 모두가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스님이 격려의 말씀을 해 주었습니다.

“격려의 말을 해 달라고 해서 격려를 드립니다.”

이어서 봉사자를 대표해서 두 분이 앞으로 나와 차례대로 소감을 말했습니다.

“수업만 들을 때는 제가 손님 같았는데, 봉사를 하니까 제가 주인이 되었습니다. 나 혼자 법문을 들으러 오는 게 아니라 수강생들에게 명상도 하러 오라고 권하고 1080배도 하러 오라고 권하면서 100일이 지나니까 제가 정토회의 주인으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그 덕분에 소중한 법문도 들을 수 있어서 감사한 시간이었습니다.”

“스태프 중에는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거리를 버스로 오가면서 봉사하신 분들도 있었고, 일주일에 하루만 봉사하는 게 아니라 사흘, 나흘씩 봉사하는 분들도 있었습니다.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분들을 보면서 오히려 제가 정말 많이 배웠습니다.”

다음은 학생을 대표해서 두 분이 차례로 나와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저는 지난 5년 동안 매일 스님의하루를 읽어 온 스님 팬이었습니다. 제가 경전 강의를 듣는 동시에 딸은 고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학교 가기 싫다며 눈물을 달고 사는 딸 때문에 힘들었는데, 경전 강의를 들으면서 딸을 이해해 주고 기다려 주는 힘이 생겼습니다. 지금은 매일 스님의하루를 읽으며 궁금했던 정토불교대학에 입학할 마음도 생겼습니다.”

“스님께서 경전 구절을 현실에 적용할 수 있게 설명해 주신 것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지금은 내 뜻대로 안 되어 짜증이 날 때마다 나를 돌아보게 됩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법문은 보살의 자리이타 정신입니다. 남을 이롭게 하는 것이 나를 살리는 길이라는 것을 몸소 보여 주시는 스님과 늘 일찍 나와서 강의를 준비해 주시는 봉사자들 덕분에 저도 자리이타의 길에 한 걸음을 내딛게 됩니다. 때로는 어둠에 깜빡거릴 때가 있겠지만 이 길이 맞는 길이라 믿고 꾸준히 가겠습니다.”

모두 큰 박수로 공감을 표했습니다. 각자의 처지와 상황은 달랐지만, 스님의 법문을 등불 삼아 조금 더 행복을 향해 나아가는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학생들이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정성껏 준비한 공연을 보았습니다. 먼저 나훈아의 노래를 경전 강의에서 배운 내용으로 개사하여 춤과 노래로 보여 주었습니다.

다음은 용성스님이 만든 불교 소학교 졸업하는 날을 짧은 연극으로 표현해 선보였습니다. 연극을 마치며 다 함께 진도 아리랑을 신나게 불렀습니다.

경전 강의가 대박이구나 ♬

내 복에 웬 공부 두 눈이 번쩍!

아리아리랑 쓰리쓰리랑 아라리가 났네 ♬

아리랑 흠 흠 흠 아라리가 났네

신명 나는 공연에 모두가 어깨춤을 덩실거렸습니다. 사회자가 “법륜스님의 경전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이곳이 바로 극락이었던 것 같습니다.”라고 하자 모두가 공감의 박수를 보냈습니다.

무사히 종강한 것을 기쁜 마음으로 축하한 후 사홍사원으로 백일법문 경전 강의를 마무리했습니다. 다음 주부터는 매주 목요일에 3층 설법전에서 영상 강의 형식으로 열린 법회가 계속 열릴 예정입니다.

참가자들은 조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지하 공양간으로 이동하여 대중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고(故) 향류 법사님 추도식 및 영가 천도 49재 중 6재를 시작했습니다. 상주와 가족들, 그리고 200여 명의 대중이 참석한 가운데 헌공예불을 올린 후 내빈을 대표하여 전해종 정토회 대표님이 분향을 했습니다.

이어서 상주 대표로 장남 곽봉준 님이 영가 전에 차를 올리고, 상주 분들이 함께 삼배를 했습니다.

다음은 고인의 발자취를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을 통해 고인의 생전 모습을 마음속에 기릴 수 있었습니다.

이어서 추도사를 청해 들었습니다. 대전충청지부 천안지회 김복이 님과 행복운동본부 행복학교 진행자 정지안 님이 향류 법사님과 함께 한 인연을 들려 주었습니다.

“법사님은 언제나 누구에게나 높낮이가 없으셨고, 겸손하고 당당하시고, 인품의 향기가 가득한 분이셨습니다. ‘수행은 저렇게 해야 하는구나.’ 많은 걸 느끼고 배우며 제 모습을 비춰볼 수 있었습니다...”

“처음 봉사를 시작할 때 법당에서 뛰쳐나갔던 저를, 도반들과 부딪히며 힘들어했던 저를, 법사님께서는 길 잃은 어린 양 돌보듯이 손잡아 이끌어 주셨고, 그렇게 천방지축이었던 저를 믿음이 가는 존재로 변하게 해 주셨습니다. 나에게는 당신이 부처님이었습니다. 검박함이 무엇이고 진정한 보시는 어떻게 하는지 늘 꼿꼿한 자세로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추도사를 듣고 나니 법사님 생전의 온화한 모습이 생생히 그려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은 정토회 천안지회 회원들이 추모곡을 합창했습니다. 이승철의 ‘그런 사람 또 없습니다’가 설법전에 울려 퍼지자 모두가 향류 법사님을 떠올리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이어서 고인의 왕생극락을 발원하며 영가 천도곡 ‘고운님 잘 가소서’를 함께 불렀습니다. 고인을 향한 그리움과 감사의 마음이 노랫말에 실려 조용히 흐르듯 퍼져 나갔습니다.

참석한 대중은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천도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향류 법사님이 정토회에 어떤 기여를 했는지 이야기한 후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져야 진정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것이 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은 향류 법사님의 영가(靈駕)를 천도하기 위한 칠칠재(七七齋), 49재 중 여섯 번째 재인 육재(六齋)에 해당하는 날입니다. 향류 법사님은 정토회가 대전 지역에 뿌리를 내리는 데 그치지 않고, 충청남도와 충청북도는 물론 세종시까지 확산하는 데 큰 역할을 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광주와 전라도 지역에서도 정토회 확산을 위해 중요한 역할을 맡아 지대한 영향을 끼치셨습니다. 이렇게 하루 24시간을 온전히 수행 정진과 전법 활동에 헌신하신 분은 정토회 안에서도 드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향류 법사님의 빈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고 정토회 회원들 사이에서 그리움도 깊어져 오늘 추도식에 많은 분이 함께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수행적 관점에서 보면, 부처님과 같은 위대한 스승이 돌아가셨을 때도 수행자들은 슬픔에만 머무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결집해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경전으로 만들고, 남겨진 대중을 잘 추슬러 조직화했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이 살아 계실 때보다 더 널리 이 법을 전 세계로 전파하였습니다. 돌아가신 부처님은 한 분이었지만 그분의 분신이라 할 수 있는 수많은 수행자인 보디사트바(Bodhisattva)들이 세계 전역으로 흩어져 이 좋은 법을 전파하고 이어 갔습니다.

당시의 교통 여건을 생각하면 도저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머나먼 길이었습니다. 인도에서 힌두쿠시 산맥을 넘고,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을 지나 마침내 지금의 한반도까지 불법이 전해졌습니다. 백제에는 마라난타(摩羅難陀) 대사가, 고구려에는 순도화상(順道和尙)이, 신라에는 ‘검은 얼굴의 사람’이라는 뜻으로 묵호자(墨胡子)라 불린 아도화상(阿道和尙)이 불법을 전했습니다. 또 남쪽 바닷길을 따라 수천만 리의 험난한 여정을 거쳐 인도 아유타국의 장유화상(長遊和尙)과 허황옥 공주가 가야에 도착해 불법을 전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여정 속에서 이 법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 오늘 이 자리에 함께한 우리가 다시 한 번 되새겨 볼 수 있었으면 합니다.

향류 법사님을 그리며, 이제 우리가 그 길을 잇겠습니다

향류 법사님이 지녔던 수행의 향기를 그리워하고 그분을 추도하고자 한다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분명합니다. 그분이 걸어오신 길, 또 걸어가고자 하셨던 길을 우리 삶 속에서 이어 가는 것입니다. 그분이 전하려 했던 법과 수행 정신을 우리 주변에 널리 펼쳐서 세상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자유롭고 행복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야말로 향류 법사님이 가장 기뻐하고 보람 있게 여기실 일입니다.

이제 우리는 향류 법사님이 하셨던 일들을 조금씩 나누어 맡아 함께 모자이크 붓다가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렇게 한다면 법사님이 살아 계실 때보다 더 많은 일들을 해내고 더 깊은 수행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좋은 부처님 법을 전국 방방곡곡으로 널리 전해야 하고, 종교가 다르거나 세대가 달라도 그들의 눈높이에 맞게 문턱을 낮춰 전법을 해야 합니다. 나아가 한국을 넘어 세계로, 언어의 장벽을 넘어 법을 전하는 일 또한 계속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향류 법사님을 추도하며 가슴 깊이 새겨야 할 다짐입니다.

여러분의 추도사를 들어 보면 ‘극락에 가소서’라는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향류 법사님은 이미 극락에 이르러 아미타 부처님의 영접을 받아 그곳에서 법문을 들으며 정진하고 계실 것입니다. 그렇다고 천도재가 불필요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그렇게 알고 있지만, 혹시라도 남아 있을지 모를 여지를 덜어내고 완전함을 기하고자 천도재를 지내는 것입니다. 저는 향류 법사님이 극락에 갔을 뿐만 아니라, 그 안락함마저도 뿌리치고 다시 우리가 있는 이곳으로 오셔서 함께 수행하고 전법하고 실천 활동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나라고 할 것이 본래 없기에, 그분이 어떤 이름을 가지고 이곳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여러 다른 모습으로 여러분 속에 내재되어 활동하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향류 법사님의 재일(齋日)을 맞아 여러분이 그분의 수행과 전법, 봉사하는 삶을 본받아 자신의 길로 삼고 발심한다면, 향류 법사님은 이미 내 안에 되살아나 함께 있는 것이 됩니다. 내가 그렇게 발심하지 않는다면 그분이 비록 우리 곁에 있어도 그분을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추도하는 데 그칠 것이 아니라 그 뜻을 이어받아 지니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그런 발심을 한다면 이미 향류 법사님은 천도가 다 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그러면 더 이상 울며 슬퍼할 일도 없고 아쉬워할 일도 없습니다. 이미 나의 일부로서 내 안에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새로 발심함으로써 향류 법사님을 천도해야 합니다. 정토회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 정진하고, 남는 힘으로 전법하고 정토를 실현하는 수행자들의 모임입니다. 과거에 연연하면 슬픔과 아쉬움만 남지만, 미래를 내다보면 희망과 기쁨이 우리 앞에 펼쳐집니다. 향류 법사님의 칠칠재(七七齋)를 회향하면서 모두가 과거를 딛고 미래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법문을 마음에 새기며 입정을 한 후 영가의 천도를 발원하며 다 함께 장엄 염불을 독송했습니다. 상주들이 먼저 영단에 차를 올리고, 이어서 대중이 차례로 나와 차를 올렸습니다.

영가 천도 기도가 끝나고 향류 법사님의 동료와 지인으로부터 한 말씀 듣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향염 법사님과 김정미 님이 소회를 나누어 주었습니다. 소회를 듣다 보니 수행자로서 올곧게 살아오면서 늘 맑은 미소를 잊지 않으셨던 고인의 모습에 새삼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이어서 향류 법사님이 우리에게 주었던 사랑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을 담아 다 함께 ‘사랑으로’를 불렀습니다. 서로 손을 맞잡고 노래를 부르며 따뜻한 나눔을 실천한 향류 법사님을 생각했습니다.

다음은 상주 대표로 곽봉준 님이 참석한 대중에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추모식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실 어머니는 오래전에 출가하셨기 때문에 소속이 우리집이 아닙니다. 집에서도 우리 엄마가 아니라 법사님이라고 생각할 때가 더 많았고요. 그래도 어쨌든 제가 상주이니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해 주신 것에 감사 인사를 드리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웃음)

오늘 추모식을 하는데 눈물이 많이 났습니다. 어머니와 사이가 좋았기 때문에 더 슬펐던 것 같습니다. 제가 어머니에게 애착이 많다는 사실을 살펴볼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저도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큰 선물을 받았는데, 여러분도 각자 어머니로부터 받은 선물을 잘 간직하며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남편인 곽영술 거사께서 추모식을 마무리하는 인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집사람은 전법을 할 때도 그랬고, 매사 끈질기게 하는 성품을 갖고 있었어요. 오늘 말해 보고 안 되면 내일 또 말하고, 이번 달에 말해 보고 안 되면 다음 달에 또 말하고, 봄에 말해 보고 안 되면 가을에 또 말하고 그랬습니다. 저를 깨달음의장에 보낼 때도 그랬어요. 제가 ‘가지 마!’ 하고 딱 거절을 하니까 야금야금 설득을 하면서 ‘그럼 당신부터 먼저 쳐다보고 오세요.’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저도 정토회와 인연이 되어서 벌써 30년이 지났습니다. 지금 돌아보니까 집사람이 저한테 준 가장 큰 선물이 정토회와 인연을 맺게 해 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그동안 집사람 말을 안 듣고 속 많이 썩였는데, 남은 생은 정토회에서 도반들 말 잘 들으면서 봉사하며 살겠습니다.”

거사님의 진심 어린 인사에 설법전 안이 뭉클한 감동으로 가득 찼습니다. 많은 이들이 눈시울을 붉혔고, 따뜻한 박수로 깊은 위로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사홍서원으로 추도식을 마친 후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참석한 대중은 지하 공양간에서 다과를 들며 상주들과 담소를 나눈 후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마지막 강의인 23강 수업을 시작했습니다. 현장에 170여 명이 자리하고, 온라인으로 190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불교의 지혜’를 주제로 현대인들의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을 살펴보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에 대해 배웠습니다. 오늘은 ‘붓다의 눈으로 본 문명 전환과 불교의 역할’을 주제로 마지막 강의를 이어 갔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잘 산다.’라고 여기는 기준은 많이 생산하고 많이 소비하는 것입니다. 심리적으로도 소비를 많이 하면 잘 사는 것이고, 소비 수준이 높을수록 잘 사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잘 사는지 아닌지를 가늠하는 기준이 소비 수준에 달려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정말 그럴까요?

그런데 소비를 하려면 그만큼 생산도 따라 줘야 합니다. 대량으로 소비하려면 대량 생산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대량 생산을 가능하게 하려고 노예를 동원했습니다.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며 필요한 물자를 만들어 냈던 것입니다. 그러다가 땅을 많이 가진 사람이 넓은 토지를 이용해 대량 생산을 하면서 부를 쌓았습니다. 이후 산업 사회로 접어들면서 자본과 기술을 앞세워 지금의 대량 생산 체제가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대량 생산 체제는 많은 자원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결국 자원 고갈이라는 문제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자원 부족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첫째, 경쟁을 통해 자원을 확보하는 방법입니다. 요즘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 주는 방식처럼 힘으로 밀어붙여 자원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자칫하면 전쟁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습니다. 둘째, 기술을 통해 인공 자원을 만들어 내는 방법입니다. 대표적으로 플라스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문제가 있습니다. 인공 자원은 장기간 사용해도 안전한지, 어떤 부작용이 있는지 검증이 제대로 안 되었습니다. 자연 자원은 수만 년에서 수십만 년에 걸쳐 부작용이 어느 정도 드러났지만, 인공 자원은 검증이 안 되어서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단지 자원이 부족하다는 문제만 겪는 게 아니에요. 그 자원을 둘러싼 복잡한 문제들까지 함께 안고 있는 상황입니다.

처음에는 ‘자원 부족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 인류의 큰 과제였습니다. 지금도 자원을 둘러싼 경쟁이나 갈등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상보다 훨씬 더 빨리 드러난 문제가 하나 있는데, 바로 대량 소비로 인한 폐기물입니다. 이 문제는 예상보다 훨씬 더 심각하고 빠르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불과 30년 전만 해도 자원 고갈이 주된 과제였는데, 지금은 대량 소비의 부작용인 기후 변화와 미세 플라스틱 문제가 훨씬 더 위협적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소비를 줄이고도 과연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요?

‘많이 소비하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라는 생각은 최근에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닙니다. 인류 문명이 시작된 이래로 점점 확대되었고, 자본주의에 이르러서는 완전히 발전의 가치관이 되어 버렸습니다. 고대나 중세까지만 해도 물질적 소비가 곧 잘 사는 것이라는 기준은 그리 절대적이지 않았습니다. 조선 시대만 해도 선비라면 꼭 재산이 많아야 한다고 여기지는 않았잖아요. 지금은 신분의 귀천을 따지지는 않지만, 대신 부(富)를 기준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경향이 훨씬 강해졌습니다. 이제는 부가 삶의 기준이자 거의 절대 가치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그렇다면 ‘소비를 줄이고도 과연 우리가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이 물음에 근본적으로 답을 하려면 먼저 해결해야 할 게 있습니다. ‘적게 소비하고도 만족하며 살 수가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 문제가 풀리지 않으면 어떤 근본적인 해결책도 내놓을 수가 없습니다. 과거의 여러 종교나 사상 중에는 적게 소비하면서도 행복할 수 있다는 관점을 가진 경우가 있었습니다. 불교도 그런 사상 가운데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절에 가 보면 대부분 복을 달라고 기도하잖아요. 하지만 부처님이 처음 제시하신 불교의 관점은 이것과는 달랐습니다. 이것을 수행적 불교라고 합니다. 수행적 불교는 적게 소비하고, 자신의 권위를 내려놓고, 검소하고 겸손한 자세로 살면서도 인간이 최고의 행복에 이를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니 과거를 돌아보면 ‘소비를 줄이고도 행복할 수 있는가?’에 대한 해답은 이미 제시되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현대 문명이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 우리는 미래 문명을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미래 문명을 이끌어갈 사람은 보디사트바, 즉 보살이라고 생각합니다. 보살은 부처를 향해 나아가지만, 그 완성은 곧 중생계를 없앰으로써 이루어진다고 보는 관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살은 다시 중생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중생을 구제하는 길이 곧 성불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보살 사상입니다.

이 맥락에서 등장하는 정토(淨土)라는 말은 단순히 바깥에 존재하는 어떤 이상향이 아닙니다. 보살의 마음속에 있는 정토, 즉 유심정토(唯心淨土)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살에게 있어서 정토란, 이미 완성된 세계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 자체입니다. 보살은 그 과정 속에서 이미 정토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과뿐 아니라 과정도 똑같이 중요한 것입니다. 아직 결과가 완성되지 않았다고 해서 보살이 정토에 살고 있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 많은 실천을 하고 있지만, 설령 통일이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통일을 간절히 바란다는 것은 남과 북을 따로 보지 않고 하나로 바라본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저는 이미 통일된 사회에 살고 있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는 현실적으로는 남한에 살고 있고, 국적도 남한이고, 남한의 법을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간절히 통일을 염원하고 있다면 이미 저는 남과 북이 하나된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만약 남과 북을 분리해서 보고 통일을 원한다면, 그것은 결국 북한을 없애고 통일하자는 말이나 남한을 없애고 통일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습니다.

불교사회대학 강의를 마치면서 다 같이 이 구절을 따라 해 보겠습니다.

‘보살에게 있어서 정토란 이미 완성된 세계가 아니라 완성을 향해 보살이 활동하는 세계다.’

이것으로 모든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오늘은 강연을 일찍 마치고 그동안 수강하면서 궁금했던 점에 대해 질문을 받는 시간을 길게 가졌습니다. 다양한 질문에 답변한 후 불교사회대학 마지막 강의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불교사회대학이 진행될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여러 역할을 해 준 봉사자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가 강의할 때 화면에 다양한 자료들을 보여 주었죠? 이런 자료들도 법륜스님이 만들까요? 저는 만들 줄 몰라요. 평화재단 기획위원장과 콘텐츠팀에서 많은 자료들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번에 한 법문을 영상으로 편집해서 불교사회대학 교육 과정을 개설하기 위해서 많은 분들이 봉사해 주고 계십니다. 모두 앞에 나오세요.”

수강생 모두가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불교사회대학을 진행하는 것은 행복운동본부에서 맡아 주셨습니다. 봉사자 분들 모두 앞에 나오세요.”

팀장, 담당, 진행자, 각각의 소임이 소개되자 뜨거운 박수갈채가 쏟아졌습니다.

다음은 불교사회대학을 갈무리하며 수강생과 봉사자 모두의 마음을 담아 스님에게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이어서 수강생을 대표하여 안소현 님이 앞으로 나와 불교사회대학 수강 소감을 발표했습니다.

“불교의 관점에서 현대 사회의 문제를 바라보고 그것을 지혜롭게 풀어 가는 스님의 법문이 흥미로웠습니다. 특히 불교가 과학적 법칙에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점이 놀라웠습니다. 마음 나누기 시간에는 다양한 분들의 다양한 시각을 들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이번 강의를 통해 실천하지 않는 수행은 수행이 아니라는 말씀이 깊이 다가왔습니다. 봉사를 희생이 아닌 수행의 방법으로 실천하시는 분들을 보며 저 역시 그렇게 살고 싶어졌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봉사도 수행의 일환으로 삼고 정토불교대학과 경전대학에도 입학하여 배움과 실천을 함께 하는 수행자가 되고자 합니다. 이 여정의 끝에 다시 한 번 마음속에 되뇌어 봅니다. 우리는 모자이크 붓다입니다. 나와 세상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다음은 봉사자를 대표하여 진행자 소임을 맡은 오의석 님이 소감을 말했습니다.

“저는 청주에서 일주일에 두 번 서울로 올라와 봉사를 했습니다. 불교사회대학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면 밤 12시가 넘었습니다. 점점 피곤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기본에만 충실하자고 마음을 다잡았지만, 나중에는 기본에 충실하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몸은 고달팠지만 마음은 행복했습니다. 법륜스님의 주옥같은 법문 덕분에 더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계속해서 다른 봉사에도 참여하고 싶습니다.”

소감을 나누어 준 두 분에게 큰 박수를 보낸 후 사홍서원으로 불교사회대학을 모두 마쳤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103일째 날입니다. 백일법문 기간 중 열리는 마지막 금요 즉문즉설 강연입니다.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서 주간반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하고, 저녁에는 저녁반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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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감사합니다

2025-06-02 15:17:20

CACTUS

조금이나마 금강경, 반야심경을 배우며 깨우침을 알아가는 것 같아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감사합니다.

2025-06-01 23:32:09

정태식

“여러분의 선택에 따라 이 나라의 운명이 좋아질 수도 있고, 나빠질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의 권리 행사가 대한민국의 발전에 꼭 필요한 일이니까, 기권하지 마시고 한 분도 빠짐없이 투표해 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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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전쟁이나 평화를 결정할 수 있는 막중한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6.3일 빠짐없이 투표합시다.

2025-06-01 21:4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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