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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101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정토회 회원들이 자신의 수행을 점검하는 수행법회가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렸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320여 명의 대중이 자리했습니다. 끝 무렵에 다다른 백일법문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 수도권에서 많은 대중이 참석하여 자리를 가득 메웠습니다.
오전 10시 15분이 되자 삼귀의와 반야심경을 낭독하며 수행법회를 시작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도 화상 회의 방에 입장하여 온라인으로 참석했습니다.
주간 정토행자 소식을 영상으로 본 후 대중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지난 백일법문을 돌아보며 그동안의 성과와 앞으로 남은 과제를 이야기했습니다.
“백일법문을 시작한 지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100일이 지났습니다. 이렇게 해서 특별 정진의 첫 순서였던 100일 정진이 마무리되어 갑니다. 그러나 제9차 백일기도와 제10차 백일기도에 이르기까지 특별 정진은 멈추지 않고 계속됩니다.
백일법문에 앞서 진행되었던 열린 강좌도 다시 열릴 예정이고, 토요 천일결사 정진, 일요명상, 수행법회도 변함없이 이어질 것입니다. 이번 백일법문 기간에 처음으로 선보인 불교사회대학은 법문 영상을 편집해서 하반기에는 온라인 과정으로 불교사회대학을 개강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렇듯 여러 수업이 계속될 예정이니 비록 직강은 아니더라도 꾸준히 참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이번 백일법문 기간에 헌신적으로 봉사해 주신 모든 분들께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제가 이번 특별 정진 기간에 백일법문을 하게 된 데에는 몇 가지 배경이 있습니다. 첫째, 정토회가 온라인 중심으로 전환된 지 5년이 지나면서 전법과 교육에 있어서는 편리함이 많았지만, 인격적인 감화를 통해 수행을 체험하도록 하는 분위기가 다소 부족해졌다는 평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온라인이 갖는 장점은 그대로 살리면서 부족한 점은 오프라인을 활성화해서 보완해 보기로 했습니다. 그 가운데 첫 100일은 지도법사인 제가 직접 강의를 하면서 대중에게 수행의 기운을 북돋아 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서 백일법문을 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작년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에 한국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웠습니다. 당시 저는 부탄 답사와 인도 성지순례 일정이 예정되어 있었을 때라 국내에 머무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해외에 머무르면서 하루빨리 혼란이 가라앉고 평화로운 사회로 돌아가기를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비상계엄은 해제되었지만, 대통령 탄핵 심판과 이어지는 조기 대선 과정에서 여전히 많은 혼란이 예상되었습니다. 그런 시기에 제가 직접적으로 역량을 보태 뭔가를 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정국 안정을 위해 제가 한국에 머무르며 함께 기도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지난 100일 동안 사회 여론을 형성하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고, 우리 사회가 조금이라도 안정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기도를 했습니다.
탄핵이 되느니 마느니 하며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헌법재판소에서 재판관 전원 일치로 탄핵이 인용되면서 논란이 다소 수그러들었습니다. 다시 안정을 찾는가 싶더니, 이번에는 유력한 대통령 후보에 대한 대법원 판결이 또다시 논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고등법원이 재판을 선거 이후로 연기함으로써 큰 혼란 없이 상황이 안정되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양쪽 진영 모두 자신들에게 불리하다고 법질서를 부정하는 좋지 않은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탄핵에 반대했던 국민의힘도 재판 결과를 수용했고, 더불어민주당도 발의하려고 했던 사법 개혁 법안을 철회하면서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습니다.
다가오는 6월 3일에 대통령 선거가 마무리되면 대한민국은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됩니다. 물론 이후에도 일정한 혼란이 어느 정도 지속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보셨듯이 중심이 잡히지 않은 상태에서의 혼란은 사회를 큰 위험에 빠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의 혼란은 중심이 어느 정도 잡힌 상태에서의 혼란이기 때문에 사회 안정에 큰 위협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는 갈등이 좀 있더라도 사회 전체를 위태롭게 할 정도는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에는 남북 관계가 전쟁 위기로 치달을 만큼 여러 위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비롯해 국제 정세의 변화, 북한과 러시아 간의 군사 동맹, 한국의 정권 교체 등 다양한 요인이 맞물리면서 마치 누군가가 계획한 것처럼 전쟁의 위험은 상당히 낮아졌습니다. 아직 평화를 향한 뚜렷한 방향이 잡히지 않아서 지금도 갈등을 유발하는 정책들이 계속되고는 있습니다. 그동안 한국은 대통령의 부재로, 미국은 관세 전쟁으로 어수선한 상황에 있었습니다. 여기에 남북 간의 긴장을 조장하던 한미 군사 훈련이 과거의 관성으로 인해 여전히 시행되면서 위험 요소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에 새 정부가 들어서고, 미국과의 관세 갈등도 조만간 마무리되면, 평화를 향한 작지만 의미 있는 발걸음을 시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이제 큰 고비는 넘겼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국내적으로도 그렇고, 한반도 전체적으로도 그렇고, 우리가 작년 6·13만인대법회에서 간절히 염원하고 기도했던 바와 같이 최소한 전쟁의 위험만큼은 어느 정도 가라앉은 것 같습니다. 그러나 평화를 향한 본격적인 길은 아직 열리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백일법문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음 날 6월 4일 새벽에 해외로 출국하게 됩니다. 공교롭게도 그날이 새 정부가 출범하는 날 아침입니다. 앞으로는 해외 일정을 통해 북한과 미국 간의 관계 정상화, 북한과 일본 간의 관계 정상화, 그리고 남북 간의 화해와 협력이 이루어지도록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여 볼 계획입니다. 이런 일들이 최소한의 수준에서라도 성사된다면, 한반도에서의 전쟁을 완전히 종식하여 전쟁 위험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시스템까지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앞으로 우리가 함께 풀어야 할 과제입니다.”
이어서 스님은 대통령 선거일을 앞두고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수단인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다음은 사전 신청한 분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오늘은 온라인에서 한 명이 스님에게 질문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저는 막내로 태어나 부모님의 사랑을 받기보다는 늘 형제들과 비교당하며 자랐습니다. 그래서인지 돈을 많이 벌어 잘난 척하며 살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는 일마다 족족 망하고, 팔랑귀라 사기도 여러 번 당했습니다. 그 덕분에 정토회에 올 수 있었으니 ‘비싼 수업료 치렀다.’라고 스스로를 위로했는데, 최근에 또 사기를 당했습니다. 제 나이가 곧 예순이고, 누군가는 ‘재수 없으면 120살까지 산다.’고도 합니다. 부부 합산 최저 생계비가 300만 원이라는데, 저희 수입을 계산해 보니 한 달에 50만 원이 모자랐습니다. 불안한 마음에 유튜브를 찾아보다가 ‘1000만 원으로 주식 만들기’라는 문구에 혹했습니다. 주식 공부를 시켜 주고 수익까지 내준다는 말에 현금 서비스에 카드론까지 받아 투자했지만 다 날렸습니다. 저는 늘 이렇게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낚싯밥을 덥석 물고 맙니다. 이런 습관에서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요?”
“아주 좋은 질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공감하셨는지 여기저기서 웃음이 나오네요. 그 웃음은 비웃음이 아니라 ‘나도 저랬지.’ 하는 공감의 표현일 겁니다. 이제 곧 예순이라니, 그동안 여러 번 비슷한 일을 겪었다면 이제는 어느 정도 삶에 대한 판단이 서야 합니다. 20대나 30대에는 ‘내가 대통령이 될 수도 있겠다.’ 혹은 ‘내가 부자가 될 수도 있겠다.’ 하는 꿈을 꾸어도 괜찮습니다. 그러나 60살 정도가 되면, 지금 노력해서 그런 꿈을 이룰 확률이 매우 낮다는 걸 알아야 합니다. 새로운 도전을 하지 말라는 건 아니지만, 이룰 확률이 10퍼센트 이하로 떨어졌다고 할 수 있어요. 만약 비가 올 확률이 10퍼센트 이하라면, 현실적으로는 비가 거의 안 오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어떻게 하면 돈을 더 벌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은 이제 내려놓아야 합니다. 질문자가 할 일은, 노후 생계비가 300만 원인데 50만 원이 부족하다고 해서 그 돈을 더 벌려고 하기보다는 관점을 바꿔서 ‘적게 쓰고 사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부부가 300만 원은 있어야 산다고 생각하지만, 질문자는 200만 원으로 생활하는 방법을 정토회에서 배우면 됩니다. 그러면 오히려 50만 원이 남아요. 그 남은 50만 원은 어려운 이웃을 돕는 데에 보시하면 됩니다. (웃음)
이제부터는 ‘어떻게 50만 원을 더 벌까?’ 하는 생각이 아니라 ‘어떻게 200만 원으로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식으로 생각을 바꾸고, 적게 쓰며 사는 연습을 시작해야 합니다. 습관은 나이가 들면 잘 안 고쳐져요. 그러니 지금부터 시작하는 게 좋습니다.
만약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적게 쓰는 거라면, 심리가 위축되거나 스스로 무능력하다고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돈이 있어도 지구 환경을 생각해서 안 쓴다고 생각하거나, 많이 소비하는 것은 기후 위기 시대에 범죄라는 생각을 갖고 적게 쓰면 당당해질 수 있습니다. ‘돈이 있어도 안 쓴다.’ 이렇게 당당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돈을 적게 쓰고 재활용 물건을 사용하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너는 돈이 없니?’ 하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하면 됩니다.
‘나는 지구 환경을 생각해서 안 쓰는 거야. 기후 위기 시대에 많이 쓰는 건 범죄야. 너희를 비난할 마음은 없지만 아직 법이 안 정해져서 그렇지 사실 윤리적으로 보면 많이 쓰는 것은 범죄야.’
이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내가 잘했다고 내세울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위축될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수행적 관점을 갖고 적게 쓰는 삶을 살면 내면이 당당해져서 헐떡거리며 살지 않게 됩니다. 적게 쓰는 삶은 기후 위기 시대에 환경 측면으로도 좋고, 수행적으로도 내면이 당당해져서 좋고, 또 남는 게 있으면 나눌 수 있어서 좋습니다. 물질적으로 나누기 어렵다면 남은 시간을 봉사하는 데에 사용하면 됩니다. 봉사도 사실은 보시와 똑같습니다. 돈으로 하느냐 시간과 재능으로 하느냐의 차이일 뿐 본질은 같습니다. 적게 쓰고 산다는 관점을 분명히 갖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12시가 다 되었습니다.
이어서 백일법문 수행법회를 갈무리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먼저 법문을 해주신 스님에게 감사한 마음을 담아 케이크와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다 함께 축하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백일 축하합니다. 법문 감사합니다. ♬
법륜스님 백일법문. 정말 행복합니다. ♬
마지막으로 대중 모두가 스님에게 큰 하트를 보냈습니다.
“스님, 사랑합니다.”
스님도 합장을 하며 감사한 마음을 전했습니다. 다음은 100일 동안 애써주신 봉사자들을 소개했습니다. 봉사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모두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습니다.
스님이 봉사자들을 위해 격려의 말을 해 주었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분들이 있어서 100일 동안 수행법회가 열릴 수 있었습니다. 격려를 해 달라고 해서 격려를 드립니다.” (웃음)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으며 사홍서원으로 수행법회를 마쳤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평화재단으로 가서 찾아온 손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이어서 오후 3시에는 강대인 대화문화아카데미 이사장과 정성헌 DMZ평화생명동산 이사장 두 분이 평화재단을 방문하여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지난 20일에 대화문화아카데미에서 ‘전환 포럼’을 준비하는 첫 모임을 가진 이후 앞으로 모임을 어떻게 운영해 나갈지 의논을 했습니다. 갈수록 심해지는 한국 사회의 갈등을 어떻게 줄여나갈 수 있을지, 대통령 선거 이후에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두 시간 동안 토론을 한 후 모임을 마쳤습니다.
“이사장님, 너무 조급해하지 마세요. 천천히 모임을 만들어 나갑시다.”
스님은 강대인 이사장과 정성헌 이사장을 1층 현관 입구까지 배웅해 드린 후 지하 공양간으로 이동하여 대중과 함께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110여 명의 대중이 자리하고, 정토회 회원들은 온라인 화상 회의 방에 접속한 가운데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은 대통령 선거일을 앞두고 국민들이 어떤 관점을 갖고 투표에 임해야 하는지 몇 가지 기준을 이야기하며 주권을 행사하는 수단인 투표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대통령 선거일이 되면 대한민국 국민 모두가 투표를 해야 합니다. 여러분도 투표를 해야 할 텐데요. 그러면 어떤 관점을 갖고 투표를 해야 할까요?
첫째,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사실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니 대통령이 국민의 눈치를 봐야 할까요? 국민이 대통령의 눈치를 봐야 할까요? 대통령이 국민의 눈치를 봐야 합니다.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제 국가로, 나라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 1항에는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라고 명시되어 있고, 2항에는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라고 분명히 명시되어 있습니다.
둘째, 국민은 각자 다른 일을 해야 하기에 대통령과 국회 의원들에게 국민의 권리를 위임하는 겁니다. 그래서 대리인을 선출해서 권한을 맡기고, 대신 국민은 심부름꾼인 그들에게 월급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낸 세금으로 그들에게 월급을 주는 거예요. 또한 국회 의원은 지역 주민의 의견을 대변해서 제도를 만드는 지역 대표 일꾼입니다. 우리가 제도를 직접 만들기 어려우니까 그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법을 만들라고 국회 의원이 있는 거예요. 그런데 현실은 대통령도 국회 의원도 국민을 주인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좀 강한 어조로 말하자면 국민을 자신들의 하수인으로 착각하는 듯합니다.
이런 문제가 생긴 책임은 대통령이나 국회 의원만이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있습니다. 경상도나 전라도에서 국회 의원이 되는 것은 그 지역 주민이 결정합니까? 아니면 정당에서 공천을 주는 사람들이 결정합니까? 정당에서 공천을 주는 사람들이 결정합니다. 그러니 국회 의원으로 선출된 사람들은 지역 주민에게 충성을 하게 될까요? 정당에 충성을 하게 될까요? 정당에 충성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정당에서는 공천 결정을 정당의 선거 관리 위원회가 아니라 정당 대표나 최고 위원 몇 명이 모여서 결정합니다. 그래서 줄을 잘 서야 합니다. 나중에 공천을 해준 사람과 다른 방향으로 행동하면 배신자라고 낙인을 찍습니다.
왕이 신하를 임명하는 왕조 사회에서는 왕의 뜻을 따르지 않으면 배신자가 되었고, 왕의 말을 듣지 않으면 반역죄를 저지르는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민주 국가에서는 국가의 주인인 국민의 뜻에 반하는 사람이 배신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아직도 민주 공화국이라는 개념이 부족합니다. 정당의 말이 아닌 국민의 말을 따르는 것이 옳은 일인데, 오히려 국민이 나서서 정당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배신자라고 욕하잖아요. 투표할 때도 지역에서 지지하는 정당의 공천을 받은 사람에게 무조건 표를 주니까 국민이 국회 의원이나 대통령의 하수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거예요. 대한민국이 민주주의 국가라고 하지만 국민의 의식 수준은 아직 주인 의식이 부족한 상황인 겁니다.
그래서 투표를 할 때는 내가 주인이라는 의식을 분명하게 가져야 합니다. 투표하러 가는 것은 주권을 행사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중에는 ‘뽑을 사람이 없어서 투표를 안 하겠다.’ 하는 사람이 있어요. 만약 투표를 안 한 사람이 많을 경우 선거가 무효가 되는 법이 있다면, 투표하지 않는 것도 주권 행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 법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교육감 보궐 선거의 경우 투표율이 20퍼센트밖에 안 되지만 한 표라도 더 얻은 사람이 당선됩니다. 내가 안 찍는다고 선거가 무효가 되는 게 아니에요. 기권 표가 일정 비율 이상이면 선거가 무효라는 법이 있어야 기권도 권리 행사로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는 주권자가 기권을 행사할 수 없는 시스템입니다. 일단 투표소에 가서 후보자 중 한 명을 찍거나, 무효표라도 만들어야 주권을 행사한 것이 됩니다. 투표소에 가지도 않고 ‘다 싫다.’라고 하는 것은 권리 행사를 포기하는 거예요. 그러나 투표소에 직접 가서 ‘다 싫다.’라고 표시하는 것은 권리 행사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꼭 투표를 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으로 누구를 뽑아야 할까요?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었으면 좋겠다.’ 또는 ‘저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나라가 잘되겠다.’ 하는 확신이 있는 사람에게는 굳이 투표를 권유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것은 최선의 선택에 해당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은 당연히 투표장에 나갑니다. 또한 딱 마음에 드는 후보는 없더라도 여러 후보 가운데 그래도 이 사람밖에 없다고 판단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차선을 선택하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도 사람들은 투표하러 갑니다.
문제는 후보들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서 찍을 사람이 없다고 여길 때입니다. 이럴 때 대부분 기권을 하게 됩니다. ‘놀러나 가자! 전부 다 싫은 놈들인데 투표는 해서 뭐해!’ 하는 식이죠. 이럴 때야말로 주권을 행사해야 합니다. 이런 경우 ‘둘 다 나라를 망칠 것 같은데 그럼 누구를 찍느냐?’라는 반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이럴 때는 주식 투자에 비유해 보면 이해가 쉬워요. 손절매를 생각해 보세요. 누가 더 많이 나라를 말아먹을지를 보는 겁니다. ‘둘 다 나라를 말아먹겠지만 누가 더 많이 말아먹겠냐?’ 이 기준으로 보면 대강 판단이 됩니다. 가장 나쁜 사람 하나만 고르면 됩니다. 그 사람을 제외하면 선택을 하기가 쉽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 주변에 어떤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봐야 해요. 그가 속한 정당의 구조와 국회 의원 구성, 당내 민주주의 수준, 지지 세력이 누구인지, 후보의 성격은 어떤지를 종합적으로 살펴야 합니다. 그 결과 저 사람이 당선되면 나라에 더 큰 어려움이 따를 것 같다면 더 나쁜 사람을 피해 덜 나쁜 사람을 선택해야 합니다. 이것이 차악을 선택하는 방법이에요. 최악을 피하기 위해 차악을 선택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선거 시스템에서 주권자가 취할 수 있는 최선의 선택입니다. 기권은 사표(死票)가 되어버려서 투표의 의미가 없어집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투표에 꼭 임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저 사람이 나라를 잘 운영할 것 같다고 할 때 그 기준은 무엇으로 삼아야 할까요?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달라요. 은행에서 대출받은 사람은 금리 인하를, 주식 투자자는 주가 상승을, 부동산업자는 부동산값 상승을, 집을 사려는 사람은 부동산값 하락을 바랍니다. 사람마다 요구하는 내용이 상반되기 때문에 무엇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딱 잘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이해득실이 아니라 국가 전체의 관점에서 보자면 가장 중요한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한반도 평화 문제입니다. 전쟁이 일어난다면 그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전쟁만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그래서 ‘평화를 지켜낼 수 있는 후보인가?’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모든 후보가 전쟁을 막을 의지가 확실하다면 그다음으로는 남북 간 대화의 활로를 열 수 있는지, 나아가 남북 교류와 협력을 증진할 수 있는지, 궁극적으로 남북의 평화적 통일을 염두에 두고 있는 후보인지 살펴보면 됩니다. 그러나 지금은 무엇보다도 평화를 지킬 수 있는 후보인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둘째, 경제 문제입니다. 많은 사람이 경제가 어려워졌다고 말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는 아직 경제가 조금 나빠져도 큰 타격을 받는 구조는 아닙니다. 경제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성장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분배의 문제입니다. 생산이 늘어나면 분명 모두에게 유리합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 충분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필요충분조건이 되려면 생산이 늘어나는 동시에 분배가 공평해야 합니다. ‘공평하다.’ 하는 것은 꼭 똑같이 나눈다는 뜻이 아니라 적어도 착취가 없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셋째, 외교 문제입니다. 현재 국제 사회는 미국과 중국 간의 패권 경쟁으로 갈등이 깊어져 가고 있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우리는 기존의 한미 동맹을 더 발전시킬 것인지, 아니면 현 수준을 유지할 것인지 잘 판단해야 합니다. 또한 한중 관계를 단절할 것인지, 유지할 것인지도 신중하게 따져야 합니다. 남한과 북한은 오랜 갈등을 겪어 왔지만, 앞으로는 협력하는 쪽이 더 나을 수 있습니다. 일본은 우리를 식민 지배했지만, 이제는 미래를 위해 협력하는 것이 더 유익할 수 있어요. 과거에만 너무 매이지 말고, 현재의 정세와 미래를 보면서 외교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북한이 남한을 침략했다거나, 일본이 우리를 식민 지배했다거나, 중국이 어쨌다거나, 이런 옛날얘기를 반복하는 것은 이제 그만해야 합니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주장한다고 ‘종북 빨갱이’라 부르고, 일본과의 교류를 말하면 ‘토착 왜구’라 부르는 것은 정치적 선동입니다. 우리는 그런 선동에 놀아나면 안 됩니다. 가능하면 합리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배제보다는 포용을, 독선보다는 협치를 해나갈 때 나라가 바로 섭니다.
넷째, 기후 위기 시대인 동시에 인공지능(AI) 시대인 지금 에너지 공급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매우 중요합니다. 에너지 필요량은 늘어나는 반면 부작용은 커지고 있어서 어떻게 조화를 이룰 것인지 정책적으로 정교한 균형 감각이 요구됩니다. 재생 에너지 확대, 에너지 효율 개선, 탄소 배출 감축이라는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술 혁신과 함께 사회적 합의와 제도적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다섯째, 지금 우리 사회가 심각하게 안고 있는 문제 중 하나는 출산율 저하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교육 정책과 주택 정책이 함께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사교육을 하지 않아도 되도록 공교육을 살리는 정책을 펼쳐 나가야 하고, 청년들을 위한 저렴한 주택 보급이 시행되어야 하고, 여성들이 출산 후에도 경력 단절을 겪지 않도록 3년 유급 휴가 제도를 도입하는 등, 청년들이 출산 후에도 안정된 생활을 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해 주는 정책이 시행되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을 하는 사람들이 국회 의원과 대통령입니다. 국회 의원이 법을 만들고 대통령이 그것을 집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들의 투표가 국가 발전을 위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잘못된 선택을 하면 결국 국민이 고생하게 되는 거예요. 직원을 잘못 뽑으면 회사가 어려워지고, 유능한 직원을 뽑으면 회사가 잘 굴러가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 가지 기준이 있을 수 있지만 여러분이 이러한 점들을 충분히 고려해서 투표에 임하기 바랍니다.
누군가가 참 괜찮다고 느껴도 그 후보의 지지율이 1퍼센트나 10퍼센트에 불과하다면 현실적으로 당선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최악과 차악이 분명히 구분된다면, 최악의 후보가 대통령이 되는 일은 반드시 막아야 합니다. 그럴 때는 차악이라 하더라도 선택하는 게 현실적인 판단입니다. 그런데 최악과 차악을 구분 못 하겠다는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투표를 포기하기보다는 미래를 위한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투표에 참여해야 합니다.
당선 가능성은 낮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후보에게 투표하는 것도 충분히 의미가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비록 그 후보가 이번에는 당선되지 않더라도 국민의 몇 퍼센트가 그 사람을 지지한다는 메시지를 사회에 전할 수 있는 거예요. 지금 치열하게 경쟁하는 두 후보만이 대통령 후보가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보여 주는 일이기도 합니다. 거대 양당의 후보가 잘해서 국민들이 찍어준 게 아니라는 점을 알리는 효과도 있습니다. 사실은 국민들이 차악으로 선택을 한 것인데, 막상 당선되면 그 후보는 국민이 자기를 지지해서 찍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만약 당선자가 그런 착각을 하는 것이 기분 나쁘다면, 거대 양당의 후보 모두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지지율이 낮은 후보 중 한 명에게 투표를 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둘 다 마음에 안 든다는 의사 표현이 됩니다. 이런 관점을 갖고 신중하고 현명하게 투표하시길 바랍니다.”
이어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온라인에서 두 명이 질문을 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용기를 내어 솔직하게 질문해 주신 분들에게 청중 모두가 큰 박수를 보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100일 동안 수행법회 진행을 위해 수고해 준 저녁반 봉사자들을 소개했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자 대중이 큰 박수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다음은 봉사자들을 대표해서 두 분이 나와 스님에게 꽃다발을 전달했습니다.
대중들도 박수를 치며 함께 축하의 마음을 나누었습니다. 다음은 봉사자를 대표하여 한 분이 일어서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자랑을 좀 하고 싶습니다. 100일 동안 매일 나와서 봉사를 했습니다. 어느 날 제가 카트에 짐을 가득 싣고 엘리베이터를 탔습니다. 그런데 스님도 엘리베이터를 타고 계셨어요. 그때 스님께서 ‘왜 혼자서 짐을 나르고 있느냐?’라고 하시면서 카트를 이동하는 것을 도와주셨습니다. 그 일을 겪고 나서 제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제가 스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하트를 날리고 싶습니다.”
대중 모두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하트를 보냈습니다.
“스님, 사랑합니다.”
사홍서원으로 수행법회를 마친 후 대중은 모둠별로 동그랗게 둘러앉아 마음 나누기를 하였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102일째 날입니다. 아침 6시에 사전투표소를 방문하여 제21대 대통령 선거 투표를 한 후, 오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3층 설법전에서 백일법문 마지막 경전 강의를 하고, 저녁에는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마지막 수업인 23강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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