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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99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경전 강의와 불교사회대학 강의가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경전 강의를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3층 설법전에는 110여 명이 자리하고, 온라인 생방송으로 56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대중이 삼배의 예로 법문을 청하자 스님이 법상에 올랐습니다.
오늘도 지난 시간에 이어서 그동안 배운 금강경과 반야심경을 총정리하면서 궁금했던 점을 자유롭게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사전에 서면으로 신청한 질문에 차례대로 답변한 후, 현장에서 손을 들어 질문한 분들에게도 답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지난 시간에 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스님의 법문을 상기하며 정말로 그런지 의문이 들었다며 다시 한 번 스님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스님 법문 중에 ‘지구 끝까지 가는 길은 뒤로 돌아서는 것이다.’ 하는 말씀을 듣고 더 노력하지 않아도 지금 이대로 만족하면 행복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현실로 돌아오면 최소한의 돈이 있어야 병원도 가고 수입이 없을 때는 생활비로 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부처님 당시와는 상황이 다르지 않나 싶은데, 돈을 벌지 않고 어떻게 행복하게 살 수 있나요?”
“돈이 없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다만 본인이 ‘돈이 있어야 한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운 거예요. 부처님 당시에도 사람들은 지위가 있어야 하고, 재산이 있어야 하고, 가족이 꼭 있어야 한다고 여겼습니다. 특히 가족이 있어야 내가 죽은 뒤 제사도 지내 주고 뒷일도 처리해 줄 거라 믿었죠. 자식이 없으면 대가 끊긴다고 생각해서 그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출가는 ‘대를 잇는다.’는 개념 자체를 초월한 삶입니다. ‘돈이 있어야 한다.’, ‘대를 이어야 한다.’ 이런 생각은 애초에 출가자에게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게다가 지금은 옛날보다 돈 없이도 살 수 있게 제도가 잘 마련된 시대입니다. 나이 들어 수입이 없고 집도 없다면, 정부에서 기본적인 복지 혜택을 제공합니다. 예를 들어 무주택자이고 재산이 없다면 임대 아파트에 우선 입주할 수 있고, 생활 지원금도 받을 수 있고, 병원 치료 역시 보장됩니다. 몸을 움직일 수 없을 정도가 되면 요양 시설에도 1순위로 입소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제일 애매한 경우는 어중간하게 재산이 있는 경우입니다. 제가 시골에서 본 가장 힘든 사례가 이런 경우였습니다. 자식은 있지만 찾아오지 않고, 집과 땅은 있으나 몸이 불편하니 스스로 돌볼 수가 없는 겁니다. 과거에는 이런 경우 정부 요양 보호사의 지원도 어려웠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거동이 불편한 고령자에게 요양 보호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제도가 생겨서 많이 개선되었습니다. 다만 여전히 재산이 조금 있거나 자식이 있으면 무상 복지 제도에서 제외되기 쉽습니다.
가장 좋은 조건은 자식이 없고, 재산도 없는 경우입니다. 요양원이든 어디든 정부 지원을 받기가 수월하니까요. 그런데 현실에선 자식이 있는데 부모를 돕지 않으면 오히려 문제입니다. 약간의 재산이 있는 분은 그것을 팔아 생활비로 쓰거나 요즘에는 집을 담보로 주택 연금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시골 노인들은 아무리 자식이 불효해도 집이나 땅은 꼭 자식에게 물려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복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거죠.
과거에 출가한 스님들이 늙으면 복지 사각지대에 놓였기 때문에 승려 복지는 늘 불교계의 화두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스님들이 복지 혜택을 제일 잘 받습니다. 자식도 없고 재산도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얼마 전에 노스님들이 사는 아파트를 방문했는데, 60대쯤 된 비교적 젊은 비구니 스님들이 요양 보호사 자격을 따서 그 안에서 노스님을 돌보면 월급을 받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불교 안에서는 젊은 스님이 노스님을 무조건 돌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법적으로는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복지 혜택의 대상이 됩니다. 스승을 돌봐도 가족이 아니니 요양 보호사 자격증이 있으면 요양 보호 인력으로 인정받아 월급을 받을 수가 있는 겁니다.
미국의 경우, 자식이 부모를 돌보면 국가에서 급여를 지급하는 제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간호사 자격을 가진 사람이 방이 여러 개 있는 집을 임대해서 노인들을 돌보면, 개인 요양 시설을 운영할 수 있습니다. 이때 월급도 나오고 집세도 지원받을 수 있죠. 예전에 시애틀에서 괜찮은 집이 하나 나왔는데, 터도 넓고 가격도 싸서 좋은 조건이었어요. 다만 운영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때 한 분이 아이디어를 냈어요. 큰 방은 법당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방은 요양 시설로 활용하자는 거예요. 정토회 회원 중에는 간호사 자격을 가진 분들도 있으니, 그분들이 운영하면 가능할 거라는 제안이었습니다. 미국은 간호사가 일정 경력을 쌓으면 약 처방 등 의사의 역할도 수행할 수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얼마 전 우리나라에서도 정부가 유사한 제도를 추진하려 했지만, 의사들의 반발로 무산된 바 있습니다.
정토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정토회 공동체에 들어와서 상주하는 행자들은 공동체 안에서 식사, 주거, 교통, 의료 지원을 받습니다. 65세가 넘으면 정부에서 지급되는 노인 연금을 고스란히 본인 용돈으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젊을 때는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느라 수입이 없었지만, 노년기에는 공동체가 기본적인 생활을 함께 책임져 주기 때문에 오히려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결국 지금 시대에는 돈이 없어서 문제라기보다는 애매하게 가진 것이 남아 있어서 문제인 경우가 더 많습니다. 미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예 재산이 없으면 정부가 생활비 대부분을 지원해 줍니다. 아주 부자인 경우 역시 걱정이 없습니다. 문제는 어중간하게 가진 경우입니다. 게다가 미국은 병원비와 의료 보험료가 굉장히 비쌉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은 병원비나 의료 보험료가 아주 저렴한 편입니다. 외국과 비교해 보면, 한국의 의료나 복지 제도는 비교적 잘 갖춰진 편에 속합니다. 따라서 ‘돈이 있어야 병원에 갈 수 있다.’, ‘돈이 있어야 노후를 잘 살 수 있다.’ 하는 생각은 오늘날에는 꼭 들어맞지 않습니다. 돈이 없다고 해서 병원 진료를 받지 못하거나, 거동이 불편할 때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기본적인 생활과 의료 서비스는 보장되지만, 더 나은 삶의 질이나 추가적인 지원을 원할 경우에는 어려움이 따릅니다. 그러나 소박한 삶을 추구하는 수행자라면, 큰돈이 없어도 충분히 살아갈 수 있습니다.
게다가 꼭 돈을 벌지 않더라도, 쓰지만 않으면 자연스럽게 돈이 조금은 남습니다. 돈이 부족한 이유는 결국 안 벌어서가 아니라 써서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수행 생활을 하면 돈을 쓰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습니다. 환경 운동을 한다는 차원에서도 ‘없어서 못 쓴다.’ 이렇게 생각할 게 아니라 ‘있어도 안 쓴다.’ 하는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없어서 못 쓰면 괜히 마음이 위축되기 쉽지만 ‘지구를 위해 있어도 안 쓴다.’ 하는 자세를 지니면 정말로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수입이 많고 적은 것은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돈을 안 쓰고 사는 법을 조금만 연습하면 누구나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환경 운동에도 도움이 되고, 남의 눈치 보며 껄떡거리지 않아도 되고, 무엇보다 비굴하지 않아서 좋습니다. 그런데 ‘없어서 못 쓴다.’ 이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위축됩니다. 자꾸 남과 비교하게 되고 기가 죽습니다. 그렇게 되면 번뇌도 따라오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돈이 태산처럼 쌓여 있어도 ‘나는 안 쓴다.’ 하는 관점을 가지면 어떨까요? 돈을 많이 갖고 있으면서 안 쓰는 것과 돈이 없어서 안 쓰는 것 중에 어느 쪽이 더 편할까요? 돈이 없어서 안 쓰는 쪽이 훨씬 더 마음이 편합니다. 옷도 마찬가지입니다. 옷장에 옷을 가득 채워 놓고 안 입는 게 편한가요? 입을 옷이 몇 벌 없어서 안 입는 게 편한가요? 여러분은 어떤가요? 여러분은 안 쓰더라도 물건을 집에 꽉 채워 놓아야 마음이 든든한가 본데, 그게 더 어렵습니다.
돈이 꼭 있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고정 관념이고, 괴로움의 원인입니다. 시대가 변했기 때문에 거기에 맞게 생각도 바꿔야 합니다. 지금은 자식도 돈도 없이 늙어도 충분히 살 수 있는 사회입니다. 다만 그렇게 살 수 있는 용기와 관점의 전환이 필요할 뿐입니다.”
질문에 답변을 마치고, 다음 시간에도 즉문즉설 시간을 갖기로 하고 강의를 마쳤습니다.
참가자들은 조별로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지하 공양간으로 이동하여 대중과 함께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오후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이후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저녁에 있을 불교사회대학 강의 준비를 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정토사회문화회관 지하 대강당에서 불교사회대학 22강 강의를 했습니다. 현장에는 170여 명이 자리하고, 온라인 수업에는 190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실천 불교 수행론’을 주제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한 불교의 역할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사회적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불교의 지혜’를 주제로 강의를 이어 갔습니다.
먼저 한국 사회의 다양한 병리 현상과 트라우마에 대해 각종 연구소에서 설문 조사를 한 결과를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정신 불안과 집단 우울의 확산, 국가적 재난 사고, 남북 분단, 계층, 지역 격차로 인한 트라우마가 한국 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영상이 끝나자 스님이 주제에 대한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병리 현상과 트라우마에 관한 조사 보고서를 살펴보았습니다. 현대인들은 과거보다 경제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정신적인 갈등이나 질환으로 인해 오히려 예전보다 더 행복하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황입니다. 불교에서 가르치는 수행은 이러한 정신적 질환을 치유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불교는 단순히 종교를 넘어 모든 인류로부터 보편적인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정토회는 30년 전부터 사회 문제를 단순히 사회 현상으로만 보지 않고, 개인의 정신 건강 역시 매우 중요한 요소로 인식해 왔습니다.
방금 영상에서 본 내용은 연구소에서 현대인의 정신 질환을 사회적 현상으로 파악하여 분석한 결과인데, 저도 그 내용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그러나 이 외에도 현대인의 정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한 가지 요인이 더 있습니다. 여러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여러 가지 대답들이 나왔습니다. 다시 스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바로 어린 시절의 성장 배경입니다. 먼저 아이가 잉태된 순간부터 태교가 매우 중요합니다. 산모가 임신 중에 과도한 스트레스를 받거나 과로, 흡연, 음주, 약물 복용 등으로 인해 신체적으로 건강하지 못하면 그 영향이 고스란히 태아에게 전달됩니다. 심한 경우 장애를 유발하거나 선천적인 신경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하고, 예민한 심리적, 신체적 불안을 안고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적으로 산모의 심리적 안정과 육체적 건강을 보장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두 번째로 중요한 시기는 생후 만 3세까지입니다. 이 시기는 아이의 자아가 형성되는 결정적인 시기로, 아이의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사람이 바로 엄마입니다. 부부 갈등이나 엄마의 심리적 불안, 육체적 피로에서 오는 화나 짜증이 아이에게 그대로 전달되어 나쁜 영향을 줍니다. 아이가 따뜻하게 보호받지 못하거나 버려지거나 학대받거나, 혹은 지속적인 부부 갈등 속에서 자라면 아이의 정신 건강에 매우 나쁜 영향을 미칩니다. 아이의 자아 형성에 영향을 주는 성장 환경을 시기별로 나누어 보면 태아기, 0세에서 3세 사이, 유치원과 초등학교 시절입니다. 그중에서 평생에 걸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시기는 태중과 생후 3세까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시기에 따뜻한 보살핌을 받지 못하면, 마치 면역 체계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아무리 치료해도 병이 잘 낫지 않는 것처럼, 성인이 되어도 사회생활이나 인간관계에서 지속적인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앞서 영상에서 본 조사 결과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지만, 저는 어린 시절 성장 배경이 현대인의 정신 건강에 가장 큰 영향을 준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린 시절이 어렵더라도 학교 교육과 사회적 보호가 잘 이루어진다면 정신 질환 발병을 어느 정도 줄일 수는 있습니다. 반대로 어린 시절에 정서적으로 안정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은 사회 환경이 조금 나빠도 면역 체계가 잘 갖추어진 것과 같기 때문에 정신적 어려움을 덜 겪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릴 때 정서가 불안정한 상태에서, 경쟁이 심하고 차별이 많은 사회에 놓일 경우입니다. 이 두 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하면서 정신적 고통은 더욱 심해집니다. 이런 현상은 앞으로 더욱 심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사회 환경보다 산모의 정신 건강과 가정 내 갈등, 정서적 건강을 보존받지 못한 성장 과정이 아이의 정신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훨씬 더 크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먼저 산모가 육체적, 정신적으로 모두 건강할 수 있도록 돕는 제도가 필요합니다. 또한 아이가 유아기에 안정적으로 성장하도록 사회 시스템을 갖춰야 합니다. 예를 들어 산모가 심리적으로 안정되도록 돕는 교육을 제공하거나, 생후 3세까지 아이가 충분한 사랑과 보살핌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이런 일이 엄마 혼자의 책임이나 가정의 역할로 여겨졌지만, 출산율이 낮아진 지금은 사회가 함께 나서야 합니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일은 더 이상 한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에 대한 기여라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3년 유급 육아 휴직 같은 특별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이런 문제들이 개선될 수 있습니다.
엄마 자신도 유년기의 가정 환경이 아이의 정신 건강에 얼마나 중요한지 자각해야 합니다. 아이가 어리다고 해서 부부 싸움이나 감정적인 행동을 함부로 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생후 3세 이후부터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며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할 때는 따뜻하고 성실한 선생님이 필요합니다. 이 시기부터는 엄마가 아이를 돌보는 역할의 일부를 선생님에게 맡기고, 자신은 직장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사회가 뒷받침해야 합니다. 물론 엄마 역시 아이를 위해 자신의 삶의 일부를 희생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이런 각오가 없다면 아이를 낳지 않거나, 낳더라도 키우지 않는 편이 아이 건강에 더 나을 수도 있습니다.
이 문제는 성차별과는 다른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급진적인 여성 운동이나 페미니즘의 주장 중에는 자연 생태계의 원리나 개인의 건강한 성장 질서를 간과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런 부작용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드러나고 있고, 사회가 스스로 조정 과정을 거치는 중입니다. 과거에는 여성이 오랫동안 억압과 차별을 받아 왔기 때문에 이것을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다소 극단적인 주장들이 나오기도 했습니다. 특히 엄마의 역할에 대한 고려 없이 성평등이라는 가치만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경향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관점은 종의 보존이나 인류 공동체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한쪽으로 치우칠 위험이 있습니다. 이런 균형을 맞추기에는 아직 시기상조인 듯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시행착오와 사회적 반대 여론을 겪으며 점차 수정될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계급 해방 운동이 급진과 온건을 오가며 정반합(正反合) 과정을 통해 합리적인 노선을 찾아간 것과 비슷한 과정을 겪게 될 것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태아기와 유아기의 정서적 안정을 위한 준비와 관련하여 개인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각성이 덜 되어 있습니다. 언제쯤 보편적인 인식으로 자리 잡을지는 더 시간이 걸릴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도 과거 총리 한 분이 3년 유급 육아 휴직을 공약으로 내세운 적이 있었지만 실제로 시행되지는 못했습니다. 예산 등의 현실적인 문제로 당장은 어렵더라도 '1년 유급, 2년 무급 육아 휴직'부터라도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무급이라 해도 고용만 보장된다면 여성들은 경력 단절 없이 아이를 돌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제도가 없다면 아이를 어느 정도 키운 뒤 다시 취업 시장에 나서야 하고, 단절된 경력으로 인해 전문성을 갖추기 어렵습니다. 그러면 여성은 출산과 육아를 위해 자신의 경력을 포기해야 하는 처지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많은 여성이 아이를 아예 낳지 않거나, 낳더라도 생후 1년이 되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맡기고 직장에 복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이 문제는 사회적으로 충분한 토론과 논의를 거쳐 공감대를 이루고 합의점을 찾아야 할 과제입니다.
개인의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사회 제도적으로는 어떻게 접근해야 할까요? 우울증이나 정신 분열증 같은 정신 질환은 조기에 발견하고 치료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교는 물론이고, 지역 사회의 주민 센터 같은 곳에 정신 건강 문제를 다룰 수 있는 전문가들이 충분히 배치되어야 합니다. 앞으로 인공 지능의 발달로 많은 직업이 줄어들 수도 있지만, 오히려 이 분야의 일자리는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학교에서 급식을 제공할 때 영양사가 반드시 필요하듯이, 정신 건강을 돌보는 데에도 정신과 의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만약 정신과 의사가 부족하다면, 그에 준하는 상담 심리 전문가나 정신 건강 전문 간호사 자격을 갖춘 인력이 배치되어야 합니다. 육체 건강을 관리하듯이 정신 질환도 조기에 발견해 치료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시스템이 갖추어진다면 현재보다 자살 등의 정신 질환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정신 질환을 신체 질환만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정신 질환을 병으로 보기보다는 성격 문제라든가 마음가짐의 문제쯤으로 치부해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정신 차려라!’ 하고 넘기거나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지겠지.’ 하고 방치합니다. 특히 가까운 사람일수록 문제를 알아채기 어렵습니다. 낯선 사람은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지만, 가까운 사람은 익숙해서 변화에 둔감해지기 때문이에요. 이런 문제가 조기에 발견되지 않고 방치되면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 간에 갈등이 생깁니다. 교사가 아이를 학대하거나, 학부모가 교사를 괴롭혀 결국 교사가 견디지 못하는 상황이 생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조기에 발견해 치료하면 저절로 해결될 수 있습니다. 문제가 발견되었을 경우에는 담임 교사가 아니라 반드시 상담 전담 교사가 맡아야 합니다. 해당 학생을 정신과 의사와 연계해서 학부모도 함께 상담해야 합니다. 이렇듯 교사는 아이들을 가르치고 돌보는 데 집중하고, 정신 건강 문제는 전문 인력이 맡아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는 학부모가 모든 문제를 담임 교사에게 전가합니다. 민원을 제기하고, 전화를 걸어 심리적 압박을 가하기 때문에 정신적으로 취약한 교사들은 버텨내지 못합니다. 그러다 보니 교사가 자살하는 비극적인 사건이 자꾸 벌어지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거꾸로 교사가 아이를 학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유치원에서도 이러한 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사람으로 유아 교육과를 갓 졸업한 20대 젊은 여성을 배치하는 건 적절하지 않습니다. 아이를 돌보는 데 필요한 것은 면허나 학위가 아니라 직접 아이를 낳고 길러본 경험입니다. 아이를 둘 이상 낳아 키워본 경력은 대단한 자산입니다. 이런 경험을 가진 사람이 아이를 돌본다면, 단지 대학에서 유아 교육을 전공한 사람보다 훨씬 더 효과적으로 아이를 돌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따뜻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을 반영한 전문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합니다.
현재 시행 중인 제도 중에는 잘못된 방향으로 운영되는 것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는 경우 보육료가 나오고, 아이를 집에서 직접 돌보는 경우 양육 수당이 나옵니다. 그런데 아이를 집에서 직접 돌보는 경우에는 지원이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결국 이런 제도는 엄마와 아이의 분리를 유도하게 됩니다.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그 시간에 수영을 하거나 외출을 즐기기도 합니다. 아이를 보내야만 지원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결과적으로 이 제도는 아이를 중심에 두고 설계된 것이 아니라 어른을 위한 제도입니다. 아이를 이해하고 보살필 수 있는 전문적인 안목을 가진 사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전혀 현장을 모르는 어른들이 여성의 권리를 우선적으로 주장해서 만들어낸 제도인 것입니다. 여성들이 출산과 양육에서 해방되어 자기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 과정에서 정작 아이가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되는지는 고려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대부분의 정책이 아이 중심이 아니에요. 왜냐하면 아이들에게는 투표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른이 결정한 대로 이리저리 끌려 다닐 뿐이에요.
예전에는 노동자, 여성, 가난한 사람들이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시대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위해 운동가들이 나서서 권리를 대변했습니다. 지금은 웬만한 사회적 약자는 다 스스로 의견을 내고 단체를 만들어 연대도 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스스로 입장을 대변하지 못하는 두 집단이 있어요. 하나는 어린아이들입니다. 더 넓게 보면 앞으로 태어날 아이들도 포함이 되겠죠. 다른 하나는 북한 주민들입니다. 북한 주민들 역시 남북의 대결 구도 속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전혀 표현하지 못합니다. 이렇게 자신을 대변할 권리가 없는 사람들을 우리가 헤아려야 합니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입장을 대변하려고 하면 곧바로 ‘남자니까 그런 소리 한다.’, ‘여성의 권리는 왜 무시하느냐.’ 하는 반응이 나옵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하려면 욕을 먹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저는 욕하는 사람을 미워하거나 비난하지 않습니다. 그들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렇게 말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우리가 지금까지 충분히 고려하지 않았던 어린아이들과 북한 주민들의 입장을 좀 더 헤아려 보자는 거예요.
환경 운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의 이익만 대변하지 말고 자연의 관점도 대변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각종 연구소에서 설문 조사한 결과로는 드러나지 않은 요인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물론 설문 조사에서 나온 것처럼, 지금 우리 사회는 분단 문제 해결, 남북 간 평화 구축, 지방 차별 해소, 세대 간 갈등 극복, 과시적인 문화 극복, 학벌 중심주의 타파 등 많은 사회적 과제를 안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회 운동을 통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이런 사회적 과제를 만들어 내는 인간 내면의 근본 원인까지도 우리가 함께 고려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변화는 어렵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은 강연을 일찍 마치고 그동안 수업을 하면서 궁금했던 점에 대해 질문을 받는 시간을 길게 가졌습니다. 다양한 질문에 답변을 한 후 다음 시간에는 ‘붓다의 눈으로 본 문명 전환과 불교의 역할’을 주제로 강의하기로 하고 밤 9시가 넘어서 수업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백일법문 100일째 날입니다. 오전에는 주간반 정토불교대학 '인간 붓다' 4강 수업을 하고, 저녁에는 저녁반 정토불교대학 '인간 붓다' 4강 수업을 할 예정입니다.
환경의 날을 앞두고
법륜스님과 함께하는 그린토크콘서트가 열립니다
환경을 위한 삶,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요?
그 해답을 함께 고민하고 나눌 자리에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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