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법륜스님의 백일법문 82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일반 시민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금요 즉문즉설 강연이 열리는 날입니다. 서울에는 하루 종일 봄비가 부슬부슬 내렸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일찍부터 봉사자들이 즉문즉설을 들으러 온 시민들을 맞이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15분이 되자 유튜브 생방송을 시작하고, 삼귀의와 수행문을 함께 낭독했습니다. 대중 160여 명이 자리하고, 유튜브 생중계에는 3700여 명이 접속한 가운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세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외도를 하면서 만난 여자가 임신을 했다며, 아직 남편을 사랑하는 마음이 남아 있는데 어떡하면 좋을지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남편이 바람피운 여자에게 아이까지 생겼습니다, 어떡하죠?
“저는 남편과 연애 기간까지 포함해서 13년 동안 잘 지내왔는데, 얼마 전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겼습니다. 남편의 말로는 3개월 정도 만났고, 지금 그 여자가 임신 중이라고 합니다. 남편은 저에게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아이가 생겼으니 그쪽을 선택하는 게 맞는 것 같다며 일방적으로 이혼을 요구하고 있어요. 저는 계속 남편을 설득하려 했지만, 이제는 놓아줘야 하는 건가 싶기도 합니다. 스님께서 ‘인연이 다하면 놓아야 한다’라고 하신 말씀도 계속 되새겨 보지만, 하루에도 수십 번씩 마음이 무너지고 제 인생을 송두리째 빼앗긴 듯한 기분이 듭니다. 무엇보다 아직 남편을 사랑하는데 인연이 다하면 놓아야 한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아기가 없어요?”
“시험관 시술 중입니다.”
“남편의 어떤 점이 좋습니까?”
“저한테 잘해줬고, 사람 자체가 참 좋은 사람이에요.”
“남편이 나에게 잘해줘서 좋다고 말하면, 남편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 계속 나에게 돈을 줘서 내가 좋다고 하면, 주는 사람 입장에서는 부담이 되겠죠. 마찬가지로 남편이 나를 잘 돌봐줘서 좋다고 말하면, 남편은 계속 돌봐야 한다는 부담을 느낄 수 있어요. 이렇게 일방적으로 누군가가 계속 배려해야 하는 관계는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봅시다. 내가 누군가를 돌보는 것은 괜찮다고 해도, 그게 너무 오래 지속되거나 요구가 많아지면 누구든 지치게 되죠. 자식이 나이가 들었는데도 계속 심리적, 경제적으로 의지하면 부모도 결국 지칩니다. 부부가 경제적으로는 문제가 없나요?”
“저도 일을 하긴 하지만 수입이 거의 없고, 남편의 경제력에 의지해 살아왔습니다.”
“남편이 늘 나에게 잘해줬고, 경제적으로도 내가 의지해 온 데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까지 없다면, 그 관계는 구조적으로 오래 지속되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질문자 입장에서 남편과 헤어지기 어렵다는 건 충분히 이해가 돼요. 하지만 남편 입장에서 보면, 아내가 아이를 낳아준 것도 아니고, 경제적인 혜택을 본 것도 아닌 데다, 정서적으로도 계속 아내를 배려해야 하는 관계예요. 이런 관계는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물론 질문자 입장에서는 많이 아쉽죠. 부모가 나를 끔찍이 챙겨주다가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처럼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상실감을 느끼는 건 당연해요. 그만한 남자를 다시 만나기는 어렵다는 생각도 들고요. 실제로 남편이 생전에 너무 잘해준 경우, 그가 먼저 세상을 떠나고 난 뒤 아내는 좀처럼 재혼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마치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이긴다’는 말처럼, 세상을 떠난 남편이 살아 있는 다른 남자들을 이기는 것과 같아요
이처럼 ‘잘해주는 관계’가 무조건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게 지금처럼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어요. 예를 들어 남편이 무능하고, 내가 돈을 벌어 남편을 부양하고, 남편 쪽에 문제가 있어 아이도 없는데, 거기다 바람까지 피웠다면 어떨까요? ‘아쉽긴 하지만 귀찮은 인연 하나 정리돼서 오히려 다행이다. 네 복은 네가 찬 건데 어쩌겠니?’ 이런 생각이 들 거예요.
지금 질문자가 괴로운 이유는 그동안 남편에게 받은 혜택이 컸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더 무너지는 거예요. 그렇다고 이혼을 꼭 해줄 필요는 없습니다. 내가 아직 남편이 좋고, 현재의 상태가 나한테 이익이 된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 두면 됩니다. 사정하거나 매달릴 이유도 없어요. 이혼할 생각이 없다고 담담하게 말하고, 조용히 있으면 돼요. 남편이 두 집 살림을 하든 말든 그건 그 사람의 몫입니다. 물론 남편이 문제를 제기하거나 갈등을 일으킬 수도 있겠죠. 그런데 싸우면 싸울수록 관계는 멀어집니다. 왜냐하면 그쪽에서는 새로운 정이 쌓이고, 이쪽에서는 울고 다투는 일만 반복되니까요. 그러니 오히려 남편이 집에 왔을 땐 따뜻하게 대해주세요. 그러면서도 말은 분명히 해야 해요.
‘이건 네가 다른 여자를 만나서 생긴 문제이지 내 잘못은 아니야. 책임은 당신이 져야 해. 지금이라도 관계를 정리하고 돌아온다면 나는 그걸 더 이상 문제 삼지 않을게.’
이렇게 편안하게, 그러나 분명한 입장을 갖고 지내다 보면 어떻게 될까요? 이혼 합의금이 올라갑니다. 어차피 헤어질 거라면 조금이라도 돈을 더 받아야죠. 남편은 바람피우고 아이까지 생겼고, 또 결혼까지 하겠다고 나서는데, 나는 갑자기 혼자 남겨져서 울고 괴로워하는 건 바보 같은 일이에요. 물론 나에게 이 관계를 오래 지속하기 어려운 요소가 있었다는 걸 자각해야겠지만, 어쨌든 이 상황을 만든 건 내가 아니라 남편이잖아요.
내가 뭔가 잘못했기 때문에 과보를 받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이 관계는 애초에 지속 가능하지 않은 구조였다는 걸 인식해야 한다는 뜻이에요. 나는 어리석게도 그저 달콤한 부분만 보고, 그 끝에 닥쳐올 고통은 생각하지 못한 것입니다. 마치 단맛 나는 사탕만 계속 먹다가 결국 이빨 빠지는 고통을 맞닥뜨린 셈입니다. 그러니 이 일은 남편을 미워할 일도 아니고, 전생의 업도 아니고, 하늘이 내린 벌도 아니에요. 그저 자연스럽게 흘러온 결과일 뿐입니다. 내가 몰랐을 뿐이지, 애초에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은 상태였던 거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헤어지는 것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가장 깔끔한 방식은 ‘그래, 너 만나서 지난 13년 동안 즐겁고 행복하게 잘 살았어. 고마웠다. 이제 그만 헤어지자!’ 이렇게 말하고 쿨하게 이별하는 겁니다. 이것이 첫 번째 방법이에요. 두 번째는, 조금 더 현실적이고 지혜로운 방식입니다. 내가 이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책임은 있지만, 남편에게 직접적으로 잘못한 게 없기 때문에 이 관계에서의 도의적 책임은 남편이 져야 한다는 입장에서 대응하는 겁니다. 그래서 남편이 원하는 대로 이혼을 해주는 것은 결과적으로 남편에게만 유리한 일이라는 걸 인식하는 거죠. 이런 경우에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그래, 당신 잘못을 용서해 줄게. 하지만 나는 결혼 생활을 유지하고 싶어. 아이가 필요하면 입양을 하거나 시험관 시도도 해보자. 우리가 다른 문제는 없잖아. 이 상태로 가보자.’
그러다 남편이 두 집 살림에 지치면 정리를 요구하겠죠. 그때는 나에게 충분한 보상이나 합의가 이뤄지도록 조건을 제시하겠죠. 세 번째 방식은 가장 흔하지만 피해야 할 방식입니다. 감정적으로 폭발하고, 울고불고 난리 치면서 매일 괴로워하다가 결국 남편의 마음도 완전히 떠나게 만드는 경우예요. 그러다 화를 참지 못해 폭력을 쓰거나 주거침입 같은 법적인 문제로 이어지면, 그때는 보상도 제대로 못 받고 관계도 완전히 망가지고, 인생 자체를 후회하는 상황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과거의 13년도 결국 허망하게 느껴질 뿐이에요. 실제로 많은 사람이 이 단계까지 가곤 합니다. 쥐약을 먹는 쥐처럼 스스로 무너지는 바보 같은 선택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건 이미 벌어진 일인데, ‘이런 일이 없었으면 좋았을 텐데’라고 집착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식을 만 원에 샀는데 지금 8천 원이 됐다면, 이제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를 고민해야죠. 남편이라는 새 차를 샀는데 흠집이 나서 중고차가 됐다면, 이걸 수리해서 탈지, 팔고 다른 중고차를 살지 판단하면 됩니다. 그 여자도 결국 나와 살던 남편을 데리고 간 거잖아요. 남편이 원래부터 그 여자와 바람을 피우던 사람이 아니라면, 그 여자가 지금 함께 지낸다고 해도 내가 밀린 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훨씬 더 유리하죠. 결혼도 내가 먼저 했고, 법적인 권리도 내 쪽에 있고, 13년이라는 세월도 나와 함께 보냈어요. 그러니 내가 자존심 상한다고 흔들릴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예전에 미국에서 불교를 믿는 어떤 남자의 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남자의 집을 방문했을 때, 부인의 흔적이 전혀 없길래 결혼하지 않았냐고 물었더니 ‘결혼했었어요. 아들도 하나 있어요. 그런데 지금은 이혼했어요’라고 하더군요. 왜 이혼했냐고 물었더니 ‘10년 살고 헤어졌습니다. 제 친구 중엔 제가 가장 오래 산 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문화가 정말 많이 바뀌었구나' 하고 느꼈습니다. 관계라는 것도 결국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의 문제입니다. 13년의 기억이라도 있는 것이 아무런 기억도 없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지금 상황을 분노로 덮어버리면, 과거의 모든 시간이 후회로 변해버리게 됩니다. 남편이 다른 여자가 좋다는 데도 계속 그 옆에 붙어서 사는 건 자존심이 상하지 않나요? 제가 보기에는 질문자가 좀 불쌍하게 느껴져요. 헤어지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는데, 얘기를 들어보니까 남편이 잘 돌봐주고, 경제적으로 의존하고 있어서 그런 거잖아요. 그렇게 엄마가 돌보는 어린애처럼 사니까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최고의 선택은 ‘그래, 고마웠다’ 하고 웃으며 보내주는 겁니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익을 조금이라도 얻고 싶다면, 절대 먼저 이혼 얘기를 꺼내지 마세요. 그냥 조용히 버티는 거예요. 혼을 내더라도 그 여자와의 관계가 완전히 정리되고 남편이 다시 돌아왔을 때 해야 합니다. 그래야 상대도 도망갈 데가 없고, 내가 주도권을 쥘 수 있어요. 협상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 쪽에서 분명 보상 조건을 걸어올 겁니다. 지금처럼 ‘아이가 생겼으니, 이혼만 해달라’ 하는 식으로 쉽게 끝내려는 건 절대 받아주면 안 됩니다. 질문자가 받을 수 있는 보상이 더 많이 남아 있어요. 그러니 지금은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말고 이성적으로 현명하게 대응하시기 바랍니다.”
“사실은 벌써 남편 쪽에서 협상이 들어왔어요. 지금 살고 있는 자기 명의의 아파트를 주겠다고 하고, 앞으로 2년 동안은 지금처럼 생활비도 계속 주겠다고 합니다. 조건은 단 하나, 그냥 이혼만 해달라는 겁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나는 이혼하기 싫다. 가고 싶으면 가라. 하지만 이혼은 못 하겠다’ 이렇게 말했어요. 그랬더니 남편은 눈도 마주치지 않고 너무 냉담하게 굴었고, 저도 마음이 너무 힘들어졌습니다.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아직은 같은 집에 있으니, 있는 동안에는 잘 지내보자’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솔직한 제 감정은 너무 지쳐 있어서, 결국 어제는 ‘네가 그렇게 힘들어하니 나도 이혼을 생각해 보겠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 말을 하면서 너무 힘들었지만 결국 제가 감당해야 할 몫이기에 스님께 기도문을 받고 싶습니다. 매일 108배를 하면서 제 마음이 조금이나마 편안해졌으면 합니다.”
“오늘부터 ‘부처님, 별일 아닙니다.’ 이렇게 기도하세요. 제가 듣기엔 아무 일도 아니에요. 그냥 내버려 두면 됩니다. 들어오면 들어오고, 안 보면 안 보고, 나가면 나가는 겁니다. 그걸로 기분 나빠할 필요가 없어요. 그리고 웃으면서 ‘자기가 저지른 일 가지고 왜 나한테 화를 내? 웃기지 않아?’ 이렇게 말하세요. 그러면서 밥도 차려주고, 유머 섞인 말로 그냥 일상을 이어가면 됩니다. ‘별일 아닙니다.’ 이 말을 되뇌면서 기도하세요. 그러다가 상대가 정말 원하고 보상도 충분히 제시한다면, 그때는 ‘그래, 네가 그렇게 원하니 내가 봐줄게’ 하고 보내주면 됩니다. 괴로워하면서 붙들려하는 것은 어린애 같은 마음이에요.”
“네, 감사합니다.”
“대부분의 경우, 상대가 잘해주니까 연애를 시작하고 결국 결혼까지 이어집니다. 그런데 잘해주었다는 이유로 시작한 관계는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잘해주는 것'이 기준이 되어버리면, 막상 현실을 함께 살면서 기대가 충족되지 않아서 실망하게 되거든요. 그런 관계는 마치 독을 품은 예쁜 꽃을 먹는 것과 같아요. 겉은 아름답지만 먹으면 독이 되죠.
그래서 오히려 이런 이치를 너무 많이 알면 스님처럼 살게 되는 겁니다. 차라리 모르는 게 나아요. 몰라야 눈이 어두워서 속기도 하고, 괴롭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게 사는 재미가 됩니다. 요모조모 맞춰가며 살다가 또 헤어지고, 또 외로워서 못 살고, 그러다가 또다시 사랑하고, 이게 바로 세상살이예요. 그래서 저는 세상일에 별로 걱정을 안 해요. 오늘 웃다가도 내일 울고, 오늘 울다가도 내일 또 웃고, 늘 그런 것이니까요. 제가 드리고 싶은 말은 별일이 아니라는 겁니다.
지금 여기서 내가 먼저 무너지면 내가 을이 되는 거예요. 반대로 내가 평정심을 유지하면 내가 갑이 됩니다. 내가 주도권을 쥐게 되는 거죠. 이 상황을 만든 건 남편인데, 지금은 오히려 내가 눈치 보고 전전긍긍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내가 어리고, 어리석고, 의지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에 분노까지 섞이면 결국 원수가 되고, 모든 걸 잃고, 인생이 낙오되기 쉽습니다.”
“질문드리기 전까지는 너무 힘들었고, 받아들이기도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스님께서 별일 아니라고 해주신 말씀이 정말 큰 위로가 되었어요. 그리고 일방적으로 받기만 하는 관계는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말씀도 깊이 와닿았습니다. 저도 이제는 어린아이처럼 굴지 않고, 좀 더 씩씩하게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게 됐습니다. 감사합니다.”
“요즘처럼 출산율이 낮은 시대에 누구 아이든 아이가 하나 생긴 것은 나쁜 일이 아니라 좋은 일이에요. 그 여자가 아이를 낳아 키우겠다면 그냥 두세요. 그런데 만약 질문자도 아이가 필요하다면, 남편과 타협을 해서 이렇게 대국적으로 제안을 하세요.
‘그 아이는 내가 키울게. 대신 그 여자와 관계를 정리하고, 그 아파트는 그 여자 명의로 넘겨줘. 나는 아파트보다 당신을 더 중요하게 생각해.’
남편이 도저히 그렇게는 못 하겠다고 하면 남편을 놓아줘야 해요. 이 자유로운 세상에 남의 목에 밧줄을 걸고 내 마음대로 하려는 건 옳지 않아요. 인간은 누구나 자기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으니까요.”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데 주기적으로 부정적인 마음이 올라옵니다. 어떻게 하면 긍정적인 마음으로 살 수 있을까요?
이직을 하려고 하는데 직장 동료들이 조의금을 보내준 것이 마음의 빚으로 남아 있습니다. 어떻게 마음의 빚을 정리하고 갈 수 있을까요?
오늘은 세 가지 질문을 받고 나니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아쉽지만 12시가 되어 강연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대중과 함께 지하 1층 공양간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 1시에는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미팅을 마친 후 오후 3시에는 동학만리 출판기념회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한국의 집으로 향했습니다.
얼마 전 천도교의 염상철 선도사님이 스님을 찾아와 ‘동학만리’ 출판봉고식에서 축사를 부탁했습니다. ‘동학만리’는 지난 20여 년 동안 전국의 동학과 천도교 유적지, 그리고 수운 최제우 대신사와 그의 뒤를 이은 해월 최시형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 기록한 기행문입니다. 스님께서는 평소 수운 최제우 선생을 깊이 존경해 왔기에 기꺼이 축사를 맡기로 했습니다.
스님이 도착하자 염상철 선도사님이 반갑게 환영을 해주었습니다.
잠시 차담을 나눈 후 오후 4시에 출판봉고식을 시작했습니다. 출판봉고식은 일반적인 출판기념회와는 다르게, 출판된 책이나 문헌을 천도교의 교조 및 선열들에게 ‘봉고(奉告)’, 즉 알리고 올리는 의례입니다.
천도교 의식에 따라 맑은 물을 올려 하늘에 예를 표하고 정성을 전하는 청수봉전과 심고를 한 후 경과보고가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책을 통해 드러난 마음과 정성을 한울님께 올려드리는 예식인 도서봉헌을 한 후 꽃을 전달했습니다.
이어서 윤석산 천도교 전 교령님의 축사가 있은 후 스님이 무대에 올라 축사를 해주었습니다.
“먼저 염상철 선도사님의 ‘동학만리’ 책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한 수행자로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라는 책을 내기 위해 인도 전역을 일일이 다니며 부처님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에서 어떤 가르침이 있었는지 지난 30년간 직접 확인해 왔습니다. 그런 만큼 ‘동학만리’를 읽으며 이 책에 얼마나 많은 수고와 정성이 깃들어 있는지를 알 수 있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책이 아니라 하나의 순례의 길이자 수행의 길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번 노고에 깊이 감사드리며 출간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는 울산에서 태어나 경주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저도 성이 경주 최 씨라 경주에 있는 최제우 대신사님의 탄생과 수도 과정, 유적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정작 제가 태어난 울산에 있는 유적은 잘 몰랐습니다. 이번에 축사를 부탁받고 책을 미리 받아 읽으며, 고향에 내려갈 일이 있으면 울산지역에 있는 유적을 꼭 직접 답사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뿌리, 우리가 천도교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저는 천도교나 동학에 대해 단순히 이웃 종교를 넘어서 대한민국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늘 빚진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의 뿌리는 상해임시정부이며, 상해임시정부의 뿌리는 3·1 독립운동이고, 3·1 독립운동의 뿌리는 천도교의 동학 정신이기 때문입니다. 3·1 독립운동을 천도교, 불교, 기독교가 함께 했다고 하지만, 불교와 기독교는 일부 승려들과 목사들의 참여에 그쳤던 반면, 천도교는 교단 전체가 모든 재정과 준비를 도맡았습니다. 이로 인해 일제의 탄압 역시 불교나 기독교는 일부 개인에게만 미쳤지만, 천도교는 교단 전체가 피해를 입었습니다. 이것이 오늘날 천도교가 어려움을 겪게 된 첫 번째 원인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두 번째 원인은 남북이 분단되면서 많은 국민이 이산의 아픔을 겪었고, 천도교 역시 교단이 분열되는 고통을 겪어야 했다는 점입니다. 이로 인해 천도교가 오늘날 소수 종교로 전락하게 된 원인이 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천도교가 우리 역사와 민족에 끼친 영향을 생각하면 종교를 떠나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그 은혜를 기억하고 그 역사를 정확히 아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들은 그런 은혜를 알고 감사하는 마음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쉽습니다. 마치 천도교의 공로 없이 지금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처럼 이야기되는 것을 들을 때마다 마음이 씁쓸해집니다. 대한민국이 제대로 된 국가라면 선조들의 은혜에 감사하는 자세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지 못한 현실에서 저는 늘 마음에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고,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한 것도 그 빚을 조금이라도 갚고자 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동학만리’는 누구나 읽기 쉽도록 글씨도 크고, 사진도 큼직하며, 구성도 매우 보기 쉽게 편집이 되어 있습니다. 애써주신 것에 대해 진심으로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이 책을 계기로 우리 국민이 천도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동학과 천도교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갖게 되길 바랍니다.”
다음은 윤경로 한성대 총장님의 축사가 있은 후 저자인 염상철 선도사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책의 제목은 ‘동학만리’입니다. ‘동학’은 정신적인 생명의 근원을 뜻하고, ‘만리’는 만 권의 책을 읽고, 만 리의 길을 걷고, 만 사람을 사귀라는 뜻입니다. 저에게 ‘도원기서’는 만 권의 책에 견줄만한 가르침을 주었고, 저는 그 책 속의 장소와 시간을 따라 만 리의 길을 걸으며 동학만리를 집필하였습니다. 과거의 가르침이 오늘의 삶 속에서 다시 살아 숨 쉬고, 우리가 함께 걷는 이 길이 다음 세대를 위한 새로운 희망의 발자취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이어서 출판을 기념하며 장학금과 후원금 전달식을 하고, 마지막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한 후 출판봉고식을 모두 마쳤습니다.
행사장을 나온 스님은 잠시 자리를 이동하여 강대인 대화문화아카데미 명예원장님을 만나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강대인 원장님은 한국 사회가 점점 분열이 심해지고 있는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하면서 향후 3년 동안은 국민통합의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유튜브 방송 프로그램을 운영해 보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스님, 한국 사회가 이렇게 심하게 갈라져서야 되겠습니까? 갈라진 사회를 봉합할 수 있는 중도층을 양성하는 것이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제가 PD를 할 테니까 스님께서도 좀 역할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알겠습니다. 이사장님이 기획을 하시면 방송 부분은 제가 지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으로도 계속 논의를 이어나가기로 하고 다음 만남을 기약했습니다.
해가 저물고 다시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지하 공양간에서 저녁식사를 간단하게 한 후 금요 즉문즉설 강연을 하기 위해 대강당으로 향했습니다.
많은 시민들이 직장에서 퇴근하고 즉문즉설을 듣기 위해 정토사회문화회관을 찾았습니다. 유튜브에 5100여 명이 접속하고 현장에서 140여 명이 자리했습니다.
삼귀의와 수행문을 낭독하고 나서 스님이 무대에 올랐습니다. 한 시간 동안 일곱 명이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고3 아들을 심하게 훈육을 해서 부자지간에 싸움으로 번질까 봐 두렵다며 스님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고3 아들을 심하게 훈육하는 남편,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제 아들이 고등학교 1학년, 2학년 때는 좀 놀기도 했지만, 나름대로 공부를 잘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고3이 되어 보니, 가려는 대학의 수시모집 점수가 생각보다 높았습니다. 불안해하던 아들은 지금은 정시모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들을 응원하며 밀어주지만, 남편은 아이를 많이 다그칩니다. 올해 초에는 아들에게 ‘너는 꾸준함도 없고 정시는 어려우니까, 수시모집을 준비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제가 옆에 있을 때는 남편이 그렇게까지 티를 내지는 않습니다. 그 정도는 저도 이해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남편이 훈계를 시작하면 아이를 방에 가둬 놓고 두 시간씩 고문하듯 말한다는 점입니다. 남편은 아들이 자기 말에 동의할 때까지 화를 내며 계속 몰아세웁니다. 아들이 대답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머리를 때리기도 합니다. 고3이 된 아들은 이제 남편의 팔을 붙잡고 맞서기도 하는데, 저는 그러다 싸움으로 번질까 두렵습니다.
아들은 최근 한 5개월 동안 어떤 일에도 의욕이 없고 공부도 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보기에 아들은 우울증인 것 같습니다. 나중에 이 일이 어떤 트라우마로 남을까 걱정도 됩니다. 저는 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따로 살 생각까지 하고 있습니다. 이런 아들과 남편 사이에서 저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요?”
“아이가 맏이인가요?”
“네.”
“먼저 아이를 정신과에 데려가 보세요. 의사에게 아이의 상태를 설명하고 진단을 받아보는 게 우선입니다. 우울증이나 심신미약 같은 진단이 나오면 그에 따라 처방을 받아 치료하면 됩니다. 질문자 혼자 끙끙 앓지 마시고요. 병원에서 아이에게 특별한 이상이 없다는 진단이 나와야 대화를 시작해 볼 수 있습니다. 병이 있는데도 아이를 몰아붙이면 아이가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마치 다리를 다친 사람에게 절을 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습니다. 절을 하면 좋지만, 다리를 다친 사람에게 ‘젊은 사람이 그것도 못 해?’ 하면서 고함을 지르는 건 안 되잖아요? 먼저 못 하는 이유를 물어봐야 합니다. 무릎이 아프다고 하면 엑스레이나 MRI를 찍어서 확인을 해야 해요. 아무 이상이 없다면 꾀병일 수도 있으니 심리적인 문제로 접근해야 합니다. ‘좀 힘들겠지만, 같이 한번 해보지 않을래?’ 하면서 함께 극복하는 방향으로 가는 겁니다. 그런데 진짜 아픈 사람에게 극복해 보자고 하면 병이 더 심해집니다.
질문자의 아이도 마찬가지예요. 보통 아이들이 고1이나 고2 때는 좀 놀더라도 고3이 되면 공부하는 게 정상이죠. 부모가 아이들을 야단치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대부분의 아이는 야단을 맞고 하루 이틀 기분이 상해있다가도 다시 공부를 시작해요. 그런데 질문자의 아들은 의기소침한 상태가 오래 지속되고 있다는 게 문제입니다. 아들에게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래서 우선 병원 진료를 받아보시라는 겁니다. 질환이 있다면 치료하면 되고, 아니라면 다행입니다.
질환이 아니라면 아이와 대화를 시작할 수 있어요. ‘공부가 싫다면 대학에 가지 않으려는 생각이니?’하고 물어보고, ‘대학은 가고 싶어’라고 하면 ‘그러면 싫어도 공부해야 하지 않겠니?’하고 스스로 선택하게 해야 합니다. ‘공부해라’ 혹은 ‘하지 마라’가 아니라,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고 선택권을 주는 겁니다.
병원에서 아이에게 정신질환이나 심리적 문제가 있다고 하면 남편과 대화해야 합니다. ‘여보, 병원에서 아이가 심신박약이라고 해요. 지금은 자꾸 다그치면 오히려 악화될 수 있대요’ 이렇게 말하는 겁니다. 남편의 방식이 잘못됐다고 몰아붙이지 말고,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상태이니 당분간 치료에 집중하자고 말해보세요. 누가 잘했고 잘못했는지를 따지기보다는,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를 먼저 이해하고 타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첫째, 병원 진료부터 받으시고, 둘째, 치료가 필요한 경우엔 치료를, 아니라면 아이와 대화를 시작하세요.
그리고 질문자가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와버리면, 남편이 외도할 가능성이 큽니다. 혼자 살게 되면 다른 여자가 생기기 쉽죠. 마치 우물에서 물을 한 바가지 퍼내면 어느새 또다시 채워지는 것처럼 세상 이치가 그래요. 그래서 지혜롭게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제1의 화살을 맞을지언정 제2의 화살을 맞지 마라.’하고 말씀하셨어요. 문제가 생기면 그 근본 원인을 살펴서 해결해야지, 어리석게 대응하면 일이 점점 커집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셔야 해요.
사실 별일 아닙니다. 살다 보면 이런저런 문제들이 생기죠. 최근 우리나라 정치도 마찬가지예요. 밤에 잠을 자려는데 갑자기 계엄을 선포하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계엄이 해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또 대통령이 구속됐다가, 자고 나니 풀려나 있었습니다. 우리의 세상살이가 늘 이렇습니다. 세상의 변화에 따라 이쪽저쪽으로 쓸려 다니면 정신이 없어서 살 수 없습니다. 어제는 25도까지 오르면서 완전히 여름 같더니, 오늘은 기온이 갑자기 뚝 떨어져서 덜덜 떨 정도입니다. 그럴 땐 그냥 옷 하나 더 입으면 됩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일단 아이를 병원에 데려가세요. 진단이 나오면 그 결과에 맞게 순서대로 대응하면 됩니다. 집을 나오는 건 제일 마지막에 해볼 방법이에요.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는 말이 있죠? 얘기를 들어보면 질문자가 좀 어리석은 것 같아요. 아이는 지금 그 정도만 해도 잘한다고 봐야죠. 좀 더 지혜롭게 대응하시면 좋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제가 엄마이다 보니 남편보다 아이를 먼저 위하는 마음에 집을 나가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스님 말씀을 들으면서 '내가 걱정과 불안이 앞섰구나!'하고 알게 되었습니다. 병원부터 가보고, 천천히 생각해 보겠습니다.”
청중 모두가 큰 박수로 질문자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기독교와 불교 양쪽 종교 중에 저에게 맞는 부분만 받아들이는 스스로를 크리스천 부디스트(Christian Buddhist)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방식의 신앙생활이 저의 욕심일까요?
난치성 뇌전증으로 세 번의 죽을 고비를 넘었고, 지금 저에게 유일한 목표는 깨달음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저 같은 상황의 재가 수행자는 어떻게 수행해야 합니까?
회사에서 저만 급여가 오르지 않았다는 사실이 납득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급여도 인상을 받고 회사 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요?
저는 나르시즘이 심한 것 같습니다. 매일 제가 나온 영상이나 사진을 들여다보느라 시간을 많이 빼앗깁니다.
불교에서는 사람으로 태어나는 게 어렵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막상 태어난 세계가 일체가 괴로운 사바세계라는 게 모순적으로 느껴집니다.
불안 성향이 높은 30대 직장인입니다. 저는 농업 쪽 일을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다 되었습니다. 다음 주 이 시간을 기약하며 사홍서원으로 강연을 마쳤습니다.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곧바로 서울을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고속도로 위를 3시간 30분 동안 달려 밤 12시 30분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자원봉사자 100여 명과 함께 두북 수련원 농장에서 양파 수확, 풀 뽑기, 쑥 캐기 등 농사 울력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23
금광화
스님 감사합니다
2025-05-12 22:04:36
이은영
일어난 일에 대한 사고의전환! 양면은 존재하고 지혜로운 쪽으로 판단할 수 있는 마음의 힘을 길러야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