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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이틀간 스님은 베트남에서 열린 제20차 유엔 베삭의 날 기념행사(The 20th United Nations Day of Vesak Celebrations 2025)에 참석합니다. 베삭(Vesak)은 부처님의 탄생, 깨달음, 열반을 기념하는 날로, 유엔이 공식 기념일로 지정한 국제 불교 행사입니다.
어제 새벽에 호찌민에 도착해서 한 시간쯤 눈을 붙이고, 오늘 새벽 5시에 다시 일어났습니다. 숙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참가자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전 6시에 호찌민 정토회 회원들과 함께 행사가 열리는 ‘호찌민 불교대학’으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버스는 모든 참가자가 타기를 기다렸다가 오전 6시 30분에 출발했습니다. 베트남 경찰의 특별 교통 통제로 막힘없이 한 시간 만에 호찌민 불교대학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캠퍼스 주차장에서 내려 수많은 인파 속에 섞여 호찌민 대학 행사장으로 향했습니다. 베트남 전통 의상을 입은 시민들과 승려들이 따뜻하게 맞아 주었습니다.
오전 8시, 행사장이 마련된 홀에 도착하니 전통 공연이 막 끝나고 귀빈 소개가 진행 중이었습니다. 이윽고 제20차 유엔 베삭의 날 공식 개막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번 행사는 ‘연대와 포용으로 인류 존엄을: 세계 평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불교적 통찰’을 주제로, 85개국에서 모인 2,700여 명의 국내외 대표단이 참석했습니다. 스님도 차례로 자리에 앉았습니다.
베트남 불교승가회 대표 틱 티엔 넌(Thích Thiện Nhơn) 스님의 환영사로 개막식을 시작했습니다.
“유엔 베삭 데이는 부처님의 생애를 기리는 날일 뿐 아니라 자비와 평화의 메시지를 세계에 전하는 불교인의 축제입니다.”
태국의 프라 브라마푼디트 ICDV((유엔 베삭의 날 국제조정위원회) 의장은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포용의 정신이야말로 오늘날 인류에게 꼭 필요한 불교적 가르침”이라며, 올해의 주제를 “세계 평화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향한 연대의 다짐”으로 정의했습니다.
이번 행사에는 베트남 정부 및 불교계 최고위 인사들과 다수의 해외 귀빈들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국가주석을 비롯해 당 선전부장, 호찌민시 당서기 등 베트남 공산당 정치국원과 정부 부처 대표, 역대 당·국가 지도자, 호찌민시와 각 지방 정부 대표가 대거 참석했습니다.
연단에 오른 루엉 끄엉 베트남 국가주석은 환영 연설을 통해 “베트남은 2000년이 넘는 오랜 불교 전통을 지니고 있으며, 불교는 역사 속에서 호국안민의 정신으로 언제나 민족과 동행해 왔다.”라고 소개했습니다. 그는 또한 “오늘날에도 수많은 승려와 불자들이 가난 퇴치, 재난 구호, 환경 보호, 의료 봉사 등 선행에 앞장서며 국가 발전과 공동체 복지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루엉 끄엉 주석은 “베트남 정부가 법치 내에서 모든 종교 활동의 자유를 보장하고 종교 간 대단결을 구축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히며 “행사 개최국으로서 부처님의 지혜로 더욱 자비롭고 지속 가능한 평화 세계를 건설하는 데 이바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행사를 진행하는 사이사이 스님과 인연이 있는 여러 불교계 인사들이 찾아왔습니다. 인도국제문화연구소 소장 아쉬쉬 바베 님도 오늘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인도 날란다대학교 부총장과 인도공과대학(IIT) 교수도 스님을 알아보고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습니다. 날란다대학교 부총장은 스님께 꼭 학교에 와서 강연을 해 달라며 정중히 요청했습니다.
베트남 불교대학 부총장 겸 국제불교위원회 위원장이자 베삭의 날 준비위원인 틱 낫 뚜(Thích Nhật Từ) 스님도 찾아왔습니다.
“스님, 이렇게 와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제대로 대접을 못 해 드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 행사를 준비하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으셨어요.”
두 분은 웃으며 손을 맞잡았고, 틱 낫 뚜 스님은 스님을 보다 편안한 자리로 안내했습니다.
이날 행사에는 여러 해외 지도자들의 축사도 이어졌습니다. 아누라 쿠마라 디사나야케 스리랑카 대통령과 라오스, 캄보디아, 미얀마 등 이웃 불교 국가 대표와 인도 대표단, 러시아 부랴티야 공화국 대표, 캄보디아 종교부 장관 등 각국 지도자들의 축사가 계속됐습니다.
11시 30분이 되어 개막식을 마쳤습니다. 개막식에서는 불교가 단지 전통이나 의식이 아니라, 자비와 평화, 그리고 지속 가능한 미래로 나아가기 위한 삶의 방향임을 다시금 되새길 수 있었습니다. 개막식이 끝나자 모든 참가자들이 밖으로 나가 원형 계단에 둘러서서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강당 바로 옆에는 대형 천막 네 개에 식사와 차를 마실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습니다. 1200여 명의 봉사자가 정성스레 베트남식으로 식사를 준비해 주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오후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다시 강당으로 왔습니다. 캄보디아 왕립 불교대학교 바탐방 분교 총장 소비치아 스님도 행사에 참석했습니다. JTS에서는 작년에 이곳의 여자 기숙사 건립을 지원했었습니다. 스님이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기숙사 학생들은 잘 지내고 있나요?”
“네, 아주 잘 지내요. 저녁마다 청소하고요. 학교 행사가 있으면 기숙사 학생들이 도와줍니다. 서로 가족처럼 여기며 지냅니다. 어떻게 하면 더 조화롭게 함께 살아갈 수 있을지 계속 고민하고 있어요.”
“제가 준공식 때 기숙사 운영을 잘하면 기숙사를 하나 더 지어주겠다고 약속했었죠.”
“네, 기숙사 앞에 땅이 하나 매물로 나와 있어요.”
“그래요. 한국 INEB 행사에 오시면 그때 더 자세히 얘기해요.”
오후 1시 15분부터 다시 오후 행사가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동자승들이 나와 잔잔한 율동과 함께 평화를 위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어서 각국의 스님들이 나와 평화를 위한 기도를 했습니다.
이어서 세계 각국의 불교 지도자들이 축사를 했습니다. 부탄, 방글라데시, 네팔, 우간다, 스리랑카, 캄보디아 등 다양한 국가에서 온 대표들이 차례로 부처님 오신 날을 축하하며 각국의 불교 활동과 평화에 대한 염원을 전했습니다.
그중 아프리카 우간다에서 온 붓다라끼따(Bhikkhu Buddharakkhita) 스님은 연단에 올라 “아프리카도 이제 법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라며, 부처님의 가르침이 우간다 국민의 삶 속에 어떻게 스며들고 있는지를 전했습니다.
그는 최근 우간다에서 ‘평화학교(Bright Peace School)’를 설립하여, 240명의 아이들과 함께 불교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다고 소개했습니다. 올해는 고등학교도 새로 문을 열었고, 팔정도를 중심으로 한 수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스님은 100명의 아이들을 절로 초대해 일주일간 명상 수련을 시킨 뒤 귀가를 권유했으나, 아이들이 스스로 집에 돌아가지 않으려 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줬습니다.
“아이들은 집에 돌아가서도 아침저녁으로 명상하고, 자신만의 법당을 만들어 수행을 이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작은 혁명’이었습니다.”
청중은 박수로 노고를 치하했습니다. 우간다 스님의 생생한 사례는 불교가 특정 지역이나 문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어디서든 마음의 평화를 꽃피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오후 2시 30분부터는 미국 불교 협회 회장 보디(Bhikkhu Bodhi) 스님의 기조연설이 이어졌습니다. 연설의 주제는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였습니다. 보디 스님은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개념은 명확한 정의보다 직관적으로 이해되는 것이라며, 불교의 계율 속에는 본래 인간을 존중하라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특히 '약자를 해치지 않고, 모든 생명에 존엄을 부여하는 태도'가 불교적 삶의 핵심이라고 강조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의 존엄을 위협하는 요소로는 무제한의 자본주의, 감시적 기술, 극우 정치, 그리고 전쟁을 꼽았습니다. 그는 '경제적 불평등과 데이터 남용, 혐오 정치는 인간을 대상화하고 도구화하며, 결국 존엄성을 파괴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또한 오늘날 벌어지고 있는 전쟁과 민간인 학살이 그 예라며, 가자 지구에서 벌어지는 참상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며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침묵해서는 안 된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보디 스님은 불교가 지향하는 사회는 평등하고 정의로운 질서를 갖춘 사회라고 설명했습니다. 모든 시민이 기본적인 삶을 보장받고, 교육과 건강권이 보장되며, 성평등이 이루어지는 사회,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연민이 아닌 '양심 있는 자비‘라고 했습니다. 이는 억압받는 사람들과 함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는 자비, 연대하는 자비입니다.
이와 함께 그는 불교와 사회 전반에서 성평등의 중요성도 강조했습니다. 여성들이 자신의 잠재력을 온전히 발휘할 수 있도록 모든 사회 구조 안에서 성평등이 실현되어야 하며, 특히 불교 승단 내에서는 여성 승려 공동체인 비구니 승가(Bhikkhuni Sangha)가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존중받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불교 전통 안에 여전히 남아 있는 성차별적 구조에 대한 분명한 문제 제기였습니다.
또한 보디 스님은 이날 연설에 참여한 주요 발표자 대부분이 남성이었다는 점을 언급하며, 앞으로는 남녀가 보다 균형 있게 대표성을 갖는 자리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습니다. 단지 형식적인 평등을 넘어, 종교와 사회 전반에 걸쳐 실질적인 성평등이 구현되어야 한다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연설을 마무리하면서 '팔레스타인 민중의 평화와 정의를 지지해야 하며, 우리가 그들과 연대하는 것은 인류 전체의 존엄을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어서 3시 10분부터 본회의 발표가 시작되었습니다. 팜산쪼우 대사의 기조 발언에 이어서 올해 유엔 베삭 데이의 주제인 '연대와 포용으로 인류 존엄을'이라는 주제로 6명의 불교학자와 지도자들이 각국의 사회 현실과 불교의 역할에 대해 깊이 있는 발표를 이어갔습니다.
첫 번째 발표자 틱 냣 뚜 스님(베트남 불교대학 부총장)은 베트남 전통 불교 안에서 지역 공동체와 조화롭게 살아가는 지혜를 소개하며, 종교적 관용이 국가의 통합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 발표자 프라 브라마와차라티라찬 박사(태국 마하출라롱꼰라자비달라야 대학 총장)는 태국 불교 교육의 현장 사례를 소개하며, 자비와 포용이 교육을 통해 어떻게 제도화될 수 있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가르침은 삶 속에서 살아 있어야 하며, 모든 교육은 자비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세 번째 발표자 카람 테지 싱 사라오 교수(인도 델리대학교 전 불교학과장)는 불평등과 착취를 문제 삼으며 '성인이 된 사람은 바꾸기 어렵다.'고 지적했습니다. '우리는 초등학교와 중학교에서부터 필요한 만큼만 쓰고 나누는 삶을 가르쳐야 한다.'며 초기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승단이 의례보다 교육과 계몽에 힘써야 할 때입니다.”라는 말에 참석자들이 깊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네 번째 발표자 타 민화 박사(미국 웨스트대학교 총장)는 전쟁과 빈곤을 겪은 베트남의 역사를 되짚으며, 교육이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니라 '마음의 교육'이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특히 미래 세대가 평화를 창조하려면 자비를 삶 속에서 체득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다섯 번째 발표자 카를로 루익스(유럽 불교 연합 부회장)는 유럽 정치와 불교적 가치의 결합 가능성을 이야기했습니다.
"불교는 종교가 아닌 삶의 철학이며, 정치도 자각과 명상, 절제 속에서 수행될 수 있습니다.”
그는 유럽 정치인으로서의 경험을 토대로, 권력의 함정을 피하는 여섯 가지 불교 수행 덕목을 소개하여 청중으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습니다.
여섯 번째 발표자 사나트 마하위타나게 박사(스리랑카 자야와르데네푸라 대학 마음 챙김 연구소 소장)는 과학적 연구를 통해 마음 챙김 수행이 인간 두뇌에 미치는 긍정적인 변화, 교육 성취도 향상, 암 환자의 회복률 증가 등 구체적인 데이터를 제시했습니다.
“마음 챙김은 불교를 넘어 인류의 보편적 수행입니다. 베삭 선언에 이를 ‘변화의 수행’으로 명시하면 좋겠습니다.”
청중은 뜨거운 박수로 응답했습니다.
캄보디아 왕립 불교대학교 총장 욘 세나 스님은 최근 미얀마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하며 발표를 시작했습니다. 그는 2주 전, 캄보디아 불자들이 모은 소액의 기부금을 들고 미얀마 샨주(Shan State)를 방문했다고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기부금의 규모가 작아 큰 영향을 줄 수 있을지 회의적이었지만, 현지 피해자들과 직접 만나며 작은 자비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과거 내전 중 캄보디아에서 사찰이 자비와 공동체의 중심이 되었던 경험을 회고하며, 불교의 사회적 참여와 현장 실천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특히 젊은 승려들에게 '법당 안에만 머물지 말고, 고통받는 사람들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하며 다음과 같이 호소했습니다.
“불교는 환상의 종교가 아닙니다. 현실 속에서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할 때, 비로소 살아 있는 가르침이 됩니다. 진짜 절은 전쟁터, 난민촌, 슬럼가가 되어야 합니다.”
그는 노세한 세대가 물러나고 있음을 언급하며, 미래의 불교는 젊은 수행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진솔한 이야기와 실천적 제안은 깊은 울림을 주었고, 많은 참석자들이 박수로 응답했습니다.
발표 후 진행된 자유 토론에서는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인도 등 여러 나라에서 온 청중이 불교적 실천과 사회 참여, 교육, 빈곤 문제 등에 대해 질문을 던졌고, 발표자들은 각자의 전문성과 경험을 바탕으로 진지하게 답변을 이어갔습니다.
저녁 5시 30분이 되어 발표와 토론을 마쳤습니다. 스님은 발표자들에게 다가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캄보디아 왕립 불교대학 총장 욘 세나 스님을 만났습니다. 스님과는 왕립대학교 분교 여자 기숙사 건립 프로젝트를 통해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습니다.
“발표 잘 들었어요.”
“스님, 고맙습니다. 스님은 캄보디아에서 아주 영향력 있는 인물이 되셨습니다.”
“이 책은 사회 실천적 관점에서 부처님의 일생을 쓴 책이에요. 선물입니다.”
“고맙습니다.”
다음으로 미국 불교 협회 회장 보디 스님께 인사를 드렸습니다.
“스님, 여기서 뵙게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스님 말씀하신 대로 잘 실천하겠습니다.”
보디 스님께도 신간『혁명가 붓다』를 선물해 드렸습니다. 다음으로 우간다에서 온 붓다라끼따 스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우간다에서 해 오신 활동 이야기 잘 들었어요.”
“오, 한국에서 오셨군요. 저는 한국을 무척 좋아합니다. 고맙습니다.”
붓다라끼따 스님께도 책을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인도 델리대학교 전 불교학과장인 카람 교수와도 인사를 나누고 책을 선물했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6시 30분부터는 대법당 앞 랑레 문화공원에서 오늘의 마지막 순서인 ‘세계 평화를 위한 연등 점등식’을 시작했습니다. 전 세계 85개국에서 온 1300여 명의 국제 대표를 포함해 약 만 2000명의 참가자가 함께했습니다.
점등식은 문화공연으로 시작해 명상과 경전 독송으로 이어졌습니다.
행사장인 랑레 문화공원 호수에는 7개의 대형 연꽃 장식이 설치되어 행사에 장엄함을 더했습니다. 참가자들도 작은 연등을 밝히며 개인과 세계의 평화를 기원했습니다.
스님과 호찌민 정토회 회원들은 조금 일찍 행사장을 빠져나와 저녁 8시에 버스에 탑승했습니다. 모든 참가자가 버스에 탑승하기를 기다려 9시가 되어 숙소로 출발했습니다.
한 시간을 달려 밤 10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했습니다. 숙소에는 INEB(국제참여불교네트워크)을 통해 정토회를 견학했던 프엉 님이 스님에게 인사를 드리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프엉 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스님은 정토회 회원들과 오늘 행사에 참가한 소감을 간단히 나누었습니다.
“다들 오늘 하루 수고했어요. 시간이 늦었으니까 간단하게 오늘 소감을 나누어 봅시다.”
정토회 회원들은 차례로 한두 문장씩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큰 규모의 국제 행사를 보면서 정토회가 행사를 진행하는 방식과 비교해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무척 피곤하지만 좋았습니다.”
“스님 덕분에 이런 큰 국제 행사에 참여할 수 있어서 정말 감사했습니다.”
“내용은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지만, 스님의 얼굴을 뵙는 것만으로도 너무 좋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소감을 나누었습니다.
“스님들을 한꺼번에 이만큼 많이 본 건 저도 처음이에요. 오전에도, 오후에도 비슷한 얘기를 반복하는 발표들이 많았지만, 이런 국제 행사에서는 내빈들 중에 누구는 말을 시키고, 누구는 말을 안 시킬 수가 없잖아요. 행사를 진행해 보면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와준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머릿수 채워주고, 앉아서 들어 주는 것만으로도 큰 역할을 한 겁니다. 모든 참가자가 연단에 올라가서 말을 할 수는 없잖아요. 다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내일은 새벽 6시에 출발해야 해서 나누기를 빠르게 마치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프엉 님은 나누기가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프엉 님은 박사 과정을 준비 중이며, 베트남 불교 승가와 정부의 관계, 그리고 불교가 사회 발전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지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유학 준비와 연구 주제에 대한 고민 등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진지한 대화 끝에 프엉 님은 법륜스님에게 진심 어린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스님, 제가 스님의 가르침을 따르고 있다는 걸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한국어를 이해하지 못해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스님의 하루> 영문판 덕분에 매일 스님의 법문을 접할 수 있었고, 깊이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절을 시작했어요. 108배는 아니지만 매일 30분씩 수행하고 있습니다. 스님께서 불교의 눈으로 사회문제를 바라보고 설명해 주시는 법문이 저에게 정말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특히 ‘부처님은 신이 아니라 인간이었고,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을 찾아 우리에게 알려 주셨다.’고 하신 말씀과 사회의 차별과 불공정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에 대한 가르침은 제 활동의 방향을 바꿔 주었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약 한 시간가량 대화를 나누고 나니 밤 11시 30분이 지났습니다. 스님은 내일 베트남의 큰 스님들에게 드릴 선물을 정리하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새벽 5시에 일어나 하루 종일 UN 베삭의 날 행사에 참가한 후 밤 비행기를 타고 한국으로 귀국할 예정입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달 25일 금요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저에게는 27살 큰딸과 25살 작은딸이 있습니다. 요즘 큰딸이 3주째 말도 안 하고, 집에서는 밥도 안 먹고 잠만 자다가 출근합니다. 셋이 함께 살게 된 후로 큰딸은 동생을 보려고 하지도 않고, 같이 밥 먹는 것도 거부했습니다. 큰딸은 ‘엄마가 동생만 예뻐해서 그렇다.’ 하고, 작은딸은 ‘언니가 문제다.’라며 저더러 편들지 말라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셋 중 한 명은 나가야겠다고 하자, 작은딸은 ‘언니가 나갔으면 좋겠다.’고 하고, 큰딸은 제 생각을 물었습니다. 저는 둘째가 나갈 생각이 없다고 했고, 첫째는 나갈 의향이 있다기에 첫째에게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때부터 큰딸은 아예 인연을 끊은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내년에는 미국으로 아예 나가 살 계획인데, 지금처럼 놔둬도 괜찮을까요?”
“큰딸은 현재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상태입니다. 지금 가장 좋은 방법은 병원에서 진료를 받아보는 거예요. 다만 병원에 가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강제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병원이라는 말만 꺼내도 큰딸은 '나를 정신병자로 보느냐!'며 강하게 반발할 가능성이 큽니다. 이미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상태인데 본인도, 동생도 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고, 서로 건강한 사람처럼 갈등을 빚고 있는 거예요.
‘누가 집에서 나가야 하느냐’는 선택에서 질문자가 처음에 잘못 판단했기 때문에 일이 지금처럼 악화된 겁니다. 정신적으로 건강한 쪽이 독립하는 게 맞습니다. 만약 가족 중 누군가 집을 나가야 한다면, 동생이 나가는 게 맞습니다. 둘째는 비교적 마음이 안정되어 있으니 혼자 지내도 큰 문제가 없어요. 반면에 첫째는 심리적으로 불안정하므로 가족의 보호 아래에 두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가장 이상적인 방법은 큰딸이 자발적으로 병원에 가서 상담받는 것입니다. 그게 어렵다면 상황을 그대로 두고 지켜보거나, 갈등의 중심에 있는 동생을 일시적으로 분리시키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가 집을 비우면 큰딸의 긴장이 조금 풀릴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의 문제가 전적으로 둘째 때문은 아니에요. 큰딸이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동생이 갈등의 대상이 된 것뿐입니다. 큰딸 입장에서는 엄마가 동생을 더 좋아해서 결국 동생 편을 들었다고 오해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음속으로 ‘더 이상 엄마도 아니다.’, ‘너희들과는 말도 섞기 싫다.’ 하는 식의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이런 심리 상태가 악화되면 자해나 극단적인 선택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 후회하겠지.’라는 생각으로 번지면 자살 위험도 커집니다. 정신 질환에는 두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정당하다는 걸 증명하려고 타인을 해치는 유형이고, 다른 하나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유형입니다. 일상에서도 남편이나 자식과 다툴 때 ‘내가 죽어야 정신 차리겠냐!’ 하고 소리칠 때가 있죠. ‘내가 사라져야 너희가 내 존재의 소중함을 알게 될 거야.’ 하고 생각하는 심리가 자해 성향입니다. 화가 나니까 상대를 해치거나 자신을 해쳐서 상대가 후회하게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지금 큰딸도 이와 비슷한 심리 구조를 보이고 있어요. 그래서 절대로 자극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잔소리도 금물이고, 설득도 금물입니다. 그저 말없이 옆에 있어 주는 게 최선이에요.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다면, 동생이 언니 눈에 띄지 않도록 배려해 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병원 진료를 권하는 방법도 있지만, 말 한마디를 잘못하면 오히려 상황이 악화될 수 있습니다.”
“제가 심리 상담을 권했더니, 큰딸이 ‘왜 나만 받아야 하느냐?’ ‘내가 뭐가 문제냐?’ 하면서 심하게 반발했습니다.”
“반발을 하는 이유는 병을 인정하면 자신이 문제라는 걸 받아들여야 하기 때문입니다. 큰딸은 지금 문제가 엄마와 동생에게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자신은 잘못이 없다고 믿고 있어요. 그런데 상담을 받는 순간 문제의 원인이 자신에게 있다고 인정하는 셈이 되니까 거부 반응이 나오는 거예요. 정신 질환이 있는 사람들이 병원이나 상담을 거부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병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문제를 마주하게 되니까요.
지금은 큰딸을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것이 최선입니다. 동생에게도 언니를 자극하지 말고,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지내게 해야 해요. 그래도 큰딸의 상태가 더 악화된다면, 동생을 잠시 다른 곳에 머무르게 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완전히 내보내는 게 아니라 큰딸의 심리가 안정될 때까지 일시적으로 분리하는 거예요. 이건 단순히 자매 간의 경쟁 문제가 아닙니다. 큰딸의 심리적 어려움에서 비롯된 문제예요. 다행인 것은, 그래도 큰딸이 아직 직장에는 나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상태가 더 악화되면 직장에도 못 나가고 하루 종일 방 안에만 있을 수도 있어요. 지금은 그래도 출근하고 있다는 게 그나마 다행입니다.”
“직장도 나가고, 취미로 보드를 탑니다. 오늘도 보드를 타러 나갔어요.”
“네, 그건 좋은 신호예요. 지금, 이 상황에서 질문자가 너무 깊이 개입하지 말고 그냥 지켜보는 게 좋습니다. 그래도 뭔가 하고 싶다면 동생을 잠시 분리시켜 큰딸이 스스로 마음을 추스를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도 한 방법이에요. 물론 동생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불만이 생길 수도 있지만, 지금은 심리적으로 불안한 큰딸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큰딸이 방 안에 있을 때, 동생이 거실에서 밥 먹고 웃고 떠들면 자극이 되겠죠?”
“당연하죠. 큰딸은 ‘자기들끼리 좋아서 시시덕거린다.’ 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네, 잘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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