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01.14 인도성지순례 4일째_보드가야
“부처님은 어떤 방법으로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요?”

안녕하세요. 인도성지순례 4일째입니다. 오늘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보드가야를 다녀왔습니다. 오후에는 수자타 아카데미로 돌아와 국제지부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었고, 성지순례를 인솔하는 법사님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아직 컴컴한 새벽 5시 30분, 새벽예불을 마치고 순례단은 보드가야로 출발했습니다. 학교를 벗어나 마을 길로 들어섰으나 아직 어둠이 짙었습니다. 순례단은 핸드폰 불빛으로 발밑을 밝히며 조용히 걸었습니다.

이른 시간이었지만 마을 사람들은 벌써 하루를 시작하고 있었습니다. 집 앞마당을 쓸고, 핸드 펌프로 물을 받으며 아이들이 재잘거렸습니다. 어둠 속에서 아이들의 모습은 희미했지만, "나마스떼! (안녕하세요!)"라는 밝은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순례단은 마을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까 조용히 걸었지만 400여 명의 행렬은 쉽게 눈에 띄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들 대부분이 수자타 아카데미 학생들이었기에, 순례단을 낯설어하지 않고 길까지 나와 반갑게 인사를 건넸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를 출발한 지 한 시간쯤 지나자, 동이 트며 주위가 밝아졌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개가 자욱한 모래밭이 나타났습니다. 네이란자라 강변이었습니다.


강물이 말라 있는 날이면 신발을 신고 건널 수 있지만, 오늘은 강물이 흐르고 있어서 모두 신발을 벗고 물을 건넜습니다. 다행히 물은 크게 차갑지 않았습니다.

강을 건너고 모래밭을 지나 부처님께서 쓰러지셨던 장소에 도착했습니다. 순례단은 경전을 독송하며 당시의 상황을 마음속에 그렸습니다. 조금 더 걸어가자, JTS 명상센터가 나타났습니다. 담벼락에 핀 꽃나무들이 마치 순례단을 환영하는 듯 보였습니다.


오전 7시 30분, 명상센터로 들어가 넓은 공터에서 조별로 자리를 깔고 앉아 도시락으로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를 마친 뒤, 스님은 명상센터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이곳은 부처님께서 네이란자라 강변에서 쓰러지셨던 장소와 가깝습니다. 명상센터를 짓기 위해 부지를 확보했지만, 관리를 맡을 사람이 없어서 아직 건립하지 못하고 있어요. 여러분들이 인도에 와서 하나씩 맡아보는 건 어떨까요?” (웃음)

이어서 수자타 아카데미의 설립 배경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수자타 아카데미가 있는 곳은 부처님이 6년간 고행하셨던 중심지입니다. 사람들이 어떻게 그곳에 학교를 세울 수 있었느냐고 물어보는데, 학교를 세운 자리가 원래 마을 사람들이 가장 쓸모없다고 여긴 땅이었습니다. 농사를 짓기에는 가장 무익한 땅이었어요. 그러나 부처님이 고행의 무익함을 깨닫고 중도를 발견하신 곳이라 결과적으로는 가장 의미 있는 장소가 되었습니다.”

스님은 부처님이 6년 고행을 마친 뒤 네이란자라 강에서 목욕하다가 기력이 쇠해 쓰러지신 이야기를 들려주며, 수자타가 유미죽을 공양한 장소도 알려주었습니다.

“이곳 뒤편이 부처님이 유미죽을 드신 장소입니다. 후대에 사람들이 이곳에 절을 세워 ‘수자타 절’이라 불렀지만, 지금은 힌두 절로 바뀌었습니다. 이제 수자타 공양 터로 이동하겠습니다.”

명상센터 밖으로 나가니, 주변 동네에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많은 사람들이 나와 길게 줄지어 있었습니다. 스님은 준비해 온 사탕을 사람들에게 한 움큼씩 나누어주었습니다.

사탕을 나누어주고 수자타 공양 터에 도착해서 스님이 설명을 했습니다.

“이곳은 부처님이 쓰러지셨던 장소와 수자타 집터의 중간쯤 됩니다. 부처님께서 수자타로부터 유미죽을 공양받은 곳입니다. 여기에는 부처님과 수자타를 상징하는 두 개의 탑이 있었는데 작은 탑은 없애버렸네요. 이곳뿐 아니라 어제 참배했던 전정각산도 케이블카 설치를 한다고 유적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소중한 유적들이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수자타 공양 터에 세운 탑을 바라보며 삼배를 드리고 경전을 독송한 뒤, 반야심경을 독송했습니다.


이후 순례단은 부처님이 우루벨라가섭을 교화한 터와 화룡을 보관했던 뱀굴을 둘러본 후 논둑길을 걸어 수자타 탑으로 갔습니다.


수자타 탑에 도착한 스님은 수자타의 공덕에 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우리들이 도착한 이곳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린 수자타의 집터에 세운 탑입니다. 인도에는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 여러 탑이 남아 있습니다. 그중 가장 큰 탑이 바이샬리에서 쿠시나가르로 가는 길목에 세워진 케사리아탑입니다. 그다음으로 큰 탑은 쉬라바스티에 있는 천불화현 탑이고, 세 번째로 큰 탑이 바로 이 수자타 탑입니다.

수자타 탑은 한때 마을 한복판에 방치되어 있었지만, 최근 몇 년간 꾸준히 정비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탑 꼭대기에 자라고 있는 보리수나무는 약 30년 전 발굴 작업이 이루어졌을 때 기념으로 심은 거예요. 시간이 흘러 그 나무가 이렇게 우뚝 자라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이 성도 직전에 마지막으로 드신 공양은 바로 수자타의 유미죽이었습니다. 그래서 후대에서는 수자타의 공양을 최고의 공덕으로 칭송합니다. 부처님께 공양하는 것은 쉬울 수 있지만, 이름 없는 수행자에게 공양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수자타의 공덕이 가장 큰 공덕으로 전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이 하는 일도 이름이 나고, 잘 알려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들을 돕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공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순례단은 탑을 향해 삼배를 드리고 염불을 하며 탑을 한 바퀴 돌아나가 네이란자라강을 가로지르는 큰 다리를 건너 오전 10시에 보드가야 대탑에 도착했습니다.




먼저 도착한 스태프들이 대탑 앞 큰 보리수 아래에 자리를 잡고 참배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순례단이 모두 모여 가사를 입고 준비를 마치자, 탑돌이를 시작했습니다.



탑돌이를 마친 뒤 자리로 돌아와 대탑을 향해 삼배를 올리고 잠시 명상을 했습니다.



명상을 마친 후 대중이 스님께 법을 청하자, 스님은 이곳 보드가야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법문을 시작했습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신 보드가야에 잘 오셨습니다. 우리는 오늘 아침에 부처님께서 6년 고행하신 전정각산을 출발해서 부처님께서 목욕하시다 쓰러지신 곳과 수자타의 공양을 받고 건강을 회복하신 곳을 지나 니련선하(尼蓮禪河) 강을 건너왔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부처님께서 마지막 용맹정진에 들어가셨다고 하는 보리수 아래에 도착했습니다.

부처님은 어떤 방법으로 무엇을 깨달은 것일까요?

불교의 가장 중요한 가르침은 연기법과 중도입니다. 부처님께서 중도를 발견하신 곳은 전정각산이고, 연기법을 깨달으신 곳은 바로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보드가야입니다. 부처, 해탈, 열반, 윤회, 이런 말은 원래 인도에서 있었던 말입니다. 인도 전통에서 말하는 용어와 불교에서 말하는 용어의 해석이 다를 뿐 모두 원래 있었던 용어들입니다. 그런데 인도의 전통 사상에서 찾아볼 수 없고 불교만이 갖고 있는 새로운 용어가 바로 중도와 연기법입니다. 그런 불교의 독특함이 생겨난 곳이 바로 이곳 보드가야 지역입니다.

이곳에서 부처님은 전통적인 인간의 행복론인 쾌락주의도 해탈의 길이 아니고, 신흥 사상가들이 새롭게 제기한 고행주의도 진정한 해탈의 길이 아님을 발견했습니다. 오직 해탈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이쪽으로도 저쪽으로도 치우치지 않는 중도의 길이었습니다. 욕망을 따라가는 것과 욕망을 억제하는 것은 모두 욕망에 대한 반응일 뿐입니다. 부처님께서 새로 발견한 제3의 길은 두 길 사이가 아니라 두 길을 버린 새로운 길입니다. 즉, 욕망을 다만 알아차릴 뿐 욕망을 따르지도 않고 거부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욕망에 반응하지 않는 것이 바로 욕망으로부터 진정으로 자유로워지는 길입니다.

새로운 길인 중도를 발견하기 전에 부처님께서는 고행을 하셨습니다. 고행을 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몸을 돌보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몸을 돌보지 않기 위해, 첫째, 먹는 음식은 거친 음식을 먹었습니다. 둘째, 부드러운 잠자리를 추구하지 않았습니다. 자연에 사는 짐승이나 가축이 앉을 때 자리를 고르게 만들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셋째, 세수와 몸을 씻는 행위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중도를 깨달으시고 난 다음 굳이 고행을 일부러 할 것까지는 없다는 것을 자각했습니다. 그래서 제일 먼저 냇가로 가서 목욕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과 함께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들은 부처님이 수행을 포기하고 타락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물을 데운 것도 아니고, 물에 입욕제를 뿌린 것도 아니고, 그냥 흐르는 냇물에 목욕을 하신 거예요. 짐승들도 더우면 냇가에 가서 목욕을 하잖아요. 이런 모습을 보면 수행의 원칙으로 삼았던 고행이 자연스러움보다 더 극단으로 치우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거기다 부처님이 수자타가 끓여 온 유미죽을 받아 드시는 것을 보고 다섯 수행자는 이제 부처님이 완전히 타락했다고 단정하고 바라나시 근교의 사르나트 고행림으로 떠나버립니다. 부처님께서는 다섯 수행자에게 중도를 설명할 겨를도 없었습니다.

혼자 남게 된 부처님은 건강이 어느 정도 회복되자 새로 발견한 중도의 원칙에 따라서 긴장도 하지 않고 욕망을 따르지도 않고 편안한 가운데 깨어있는 선정을 닦을 장소를 물색했습니다. 수자타에게 유미죽을 공양받고 몸을 회복한 곳이 강이 Y자로 흐르는 곳 사이에 있었기 때문에 강을 건너서 동편 쪽으로 갈지, 강을 건너서 서편 쪽으로 갈지 망설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경전에는 둥게스와리 산신은 ‘동편 쪽으로 오셔서 성도 하십시오’ 하고 청했다고 하고, 천신은 ‘강을 건너 서편 쪽으로 가십시오’ 하고 청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망설이다가 강을 건너 서편 쪽으로 가셨는데 그 자리가 바로 이곳입니다. 지금 우리가 앉은 위치가 강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곳이에요.

부처님은 이곳 보리수 아래에서 보리수를 등 뒤에 두고 동편으로 앉으셨습니다. 지금, 이 보리수와 대탑 사이에 네모진 돌이 하나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께서 앉으셨던 자리를 상징해서 후대에 돌로 새겨 놓은 것입니다. 불교인들이 제일 신성시하는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자리라고 해서 ‘금강보좌’라고 합니다. 그래서 태국 불자들이 그 위에 금으로 집을 지어서 덮어 놓았습니다. 사람들이 보리수 밑에 양쪽으로 앉아서 전부 기도하는 이유가 여기에 ‘금강보좌’가 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이 정진을 하기 위해 보리수를 등 뒤로 하고 동편을 향해서 앉고자 하는데, 마침 그때 목동이 여기에서 풀을 베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풀을 베고 있는 목동에게 그 풀의 이름을 물어보니 ‘쿠사’라고 대답합니다. ‘쿠사’를 한문으로 번역하면 ‘길상초’ 예요. 부처님께서 목동에게 길상초 한 단을 얻어 자리에 깔고 앉으셨습니다. 우리나라의 풍속으로 치면 그냥 땅바닥에 앉지 않고 볏짚 한 단을 가져와서 바닥에 풀어서 앉았다고 이해하시면 됩니다. 땅바닥에 볏짚을 좀 깔면 푹신합니다. 그것처럼 길상초를 깔고 앉으신 겁니다. 경전 기록에 의하면 ‘내가 깨닫기 전에는 이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라’ 하고 다짐을 하셨다고 합니다. 이것을 ‘대결정심’이라고 합니다. 죽었으면 죽었지 물러서지 않겠다는 굳은 의지를 ‘대결정심’이라고 합니다. 경전을 보면 고행할 때는 항상 군인이 전쟁에 나가서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다는 각오로 임했습니다. 그러나 이제 중도를 발견했기 때문에 그런 긴장을 하지 않고 편안한 가운데 깊은 명상에 들어가셨습니다. 경전에는 깨닫기까지 7주가 걸렸다고 되어 있습니다. 즉 49일간 정진하신 것입니다. 49일간의 용맹정진 후 샛별을 보는 순간 모든 무지가 사라졌습니다. 마치 눈을 감고 있던 사람이 눈을 뜨고, 어두운 밤에 불을 밝힌 것처럼 모든 것이 환하게 보였습니다.

부처님은 무엇을 깨달았고, 깨닫고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이 세상에 한없는 중생들이 나고 죽는 삶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인연이 모여서 형성되고, 인연이 사라지면 흩어지는 수많은 존재들의 변화무상함을 한눈에 본 것입니다. 그리고 천안통, 숙명통, 누진통이 열렸습니다. 즉 인연을 지으면 그 결과를 아는 것을 천안통이라고 합니다. 내가 지금 어떤 일을 당했다면, 이는 어떤 과거의 원인으로 인해 지금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원인을 알면 억울해할 일이 없습니다. 기꺼이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내가 받는 모든 것은 다 지은 인연의 결과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과거의 원인을 아는 것을 숙명통이라고 합니다. 내가 인연을 지으면 미래의 과보가 어떻게 될지를 알고, 과보를 받을 때는 과거에 어떤 인연을 지었는지를 알게 되면 괴로울 일이 없습니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 현재와 미래의 관계를 알아서 늘 현재에 깨어있는 것이 누진통입니다. 누진통이 열려야 아라한이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이 고뇌의 최후이니라!

이렇게 해서 부처님은 자신이 어릴 때부터 가졌던 의문이 다 풀렸습니다. 본인이 갖고 있던 번뇌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것이 고뇌의 최후이니라!’ 하고 선언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49일 동안 깨달음의 고요함과 기쁨을 만끽했습니다.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내용은, 첫째, 연기법입니다. 부처님은 연기법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없으면 저것도 없다. 이것이 생겨나므로 저것이 생겨나고,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이 연기법이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한 것이 십이연기입니다. 십이연기는 원인의 원인을 규명해 나가는 과정을 설명한 것입니다. 공간적 연기는 실체가 없다는 ‘무아’의 가르침이 되었고, 시간적 연기는 원인과 결과라는 변화의 측면에서 ‘무상’의 가르침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연기법이 곧 무상과 무아입니다. 연기법을 알면 모든 고뇌가 사라지고, 연기법을 모르면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무상과 무아를 알면 열반을 증득하고, 무상과 무아를 모르면 일체가 고통이 됩니다. 이것을 삼법인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이 깨달은 가장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이를 대중이 깨닫게 하기 위해 적용한 것이 사성제입니다. 괴로움이라는 현실을 자각하고(고성제), 그 원인을 규명하며(집성제), 그 원인을 소멸하면 괴로움이 없는 경지에 이르게 되고(멸성제), 그 괴로움이 재발하지 않으려면 여덟 가지 깨어있음을 유지해야 합니다(도성제). 이것이 고집멸도와 팔정도입니다.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은 매우 간단한 체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후대에 학자들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오히려 복잡하게 만들어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법문을 마치고 함께 경전을 독송했습니다.


독송을 마치고 스님이 설명을 덧붙였습니다.

“경전이 조금 길긴 했지만, 자세해서 좋았죠? 경전에는 인도 문화에서 비롯된 신화적인 표현들이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그 안에는 매우 사실적인 내용도 담겨 있습니다. 부처님의 법은 약 2600년 전에 설해졌지만, 지금 이 자리에서 설해도 전혀 논리적 모순이 없고, 정말 우리가 감탄할 만한 훌륭한 법입니다. 이런 좋은 법을 만난 것을 기뻐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으신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후에도 이곳에서 7주 동안 머무르셨는데, 이 기간에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하면 이 좋은 법을 쉽게, 조리 있게 설법할 수 있을까’를 깊이 고민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12 연기와 사성제 같은 전법의 방편을 생각하신 후, 위대한 스승인 웃타카라마푸트라에게 이 법을 전하려고 했지만, 그 스승은 이미 세상을 떠난 뒤였습니다. 결국 부처님은 자신의 깨달음을 이해할 만한 사람들로 옛날에 함께 정진했던 다섯 수행자들을 떠올리셨습니다. 처음에 그들은 다시 돌아온 부처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관념에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에 개의치 않고 자신의 깨달음을 솔직하게 나누었고, 그들 역시 결국 이 법을 받아들여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이 법은 그들이 알고 있던 기존의 가르침과는 차원이 달랐습니다. 기존 방법으로 수행 정진을 많이 한다고 해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이 법은 누구에게나 보편적이고, 오히려 더 쉽게 다가갈 수 있다는 점이 야사 비구의 교화로 증명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보신 것처럼 보드가야는 전 세계 불교인들의 성지이자 정신적인 고향입니다. 앞으로 인도 불교가 전 세계적으로 다시 뿌리를 내리게 된다면, 이곳 보드가야가 중심이 될 것입니다.”

설명을 마치고 스님은 순례단이 충분히 성지를 둘러볼 수 있도록 2시간의 자유 시간을 주었습니다. 순례단이 천천히 성지를 참배하는 동안 스님은 보드가야 대탑의 주지 스님을 만났습니다. 스님은 순례단이 대탑에서 행사를 할 수 있도록 공간을 배려해 준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하며 보시금을 전달했습니다.

스님은 오후 3시가 넘어 수자타 아카데미로 돌아와 잠시 휴식한 후 4시 30분에 해외에 거주하는 국제지부 및 해외지부 회원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회원들에게 지금까지 순례하며 느낀 소감과 불편한 점에 관해 물었습니다. 회원들은 자유롭게 소감과 의견을 이야기했습니다.

회원들과 대화를 마치고 곧바로 6시부터는 성지순례를 인솔하는 법사들과 함께 회의를 했습니다. 성지순례 기간 동안 법사님들이 유념해야 할 상황과 지금까지 진행 사항 중에서 점검해야 할 부분들을 논의했습니다.

회의를 마치며 스님은 저녁 프로그램 담당자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오늘 저녁에는 JTS 사업을 소개하고 질의응답 하는 시간이죠? 그렇다면 제가 안 들어가는 게 더 좋겠어요. 제가 있으면 사람들이 계속 저에게만 물어요. 인도에서 활동하셨던 법사님들이 대중의 질문에 답변을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예, 알겠습니다.”

스님은 내일 일정을 점검한 뒤 숙소에서 원고를 교정하고 하루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수행법회 방송을 한 후 수자타 아카데미 31주년 개교기념식을 할 예정입니다.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36

0/200

박민주

고맙습니다

2025-02-07 23:29:40

최상훈

고맙습니다

2025-01-24 23:45:29

임영현

연기법과 중도를 설명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연기법을 적욯하여 저에게 일어난 마음을 잘 살피며 지내야겠다는 마음입니다.

2025-01-20 21: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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