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5.01.12. 인도성지순례 2일째_사르나트
“이곳에서 성지순례를 시작하는 이유”

안녕하세요. 성지순례 2일째 날입니다. 오늘은 태국절 주지스님과의 만남, 사르나트 수계식, 사르나트 박물관 관람, 그리고 새로운 태국절 주지스님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아침식사를 하고 오전 9시에 매년 성지순례객들에게 숙소를 제공하는 태국절 주지스님을 찾아뵙고 인사를 나눴습니다.

태국절 주지스님은 밝은 표정으로 스님을 환영하며, 언제나 숙소를 자유롭게 사용하라고 말씀했습니다. 이번에도 순례단이 편히 머물 수 있도록 숙소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스님은 감사의 뜻으로 인삼차와 보시금을 드렸고, 주지스님은 초전법륜상과 아쇼카석주를 비롯한 여러 선물을 전했습니다.

어제 바라나시에 도착한 순례객들은 새벽에 강가강과 영불탑을 다녀온 뒤 사르나트 수계식에 합류했고, 어제 강가강을 방문했던 순례객들은 오늘 새벽 숙소에서 휴식을 취한 뒤 수계식에 참석했습니다.

스님은 태국절을 방문한 후 오전 10시에 사르나트로 갔습니다. 400여 명의 성지순례단은 먼저 도착하여 다메크 스투파 앞에 가지런히 앉아 있었습니다.

대중은 청법 삼배로 스님께 법을 청하고 입정을 했습니다. 스님은 사르나트 성지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에서 출발해서 인도 델리공항에 도착하였고, 또 밤새도록 버스를 타고 바라나시에 이르렀습니다. 이곳 사르나트까지 오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려서 왔습니다. 그러나 옛날 우리보다 먼저 성지순례를 하셨던 선조들은 이곳까지 도착하기 위해 걸어서 1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습니다. 바닷길로 배를 타고 온 분들도 6개월 이상 걸린 걸로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 것에 비하면 하루나 이틀 걸려서 온 것은 너무나 편하게 온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편하게 온 줄을 알기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더 편하게 오는 길이 있으면 덜 편한 것은 불편한 걸로 인식되기 때문입니다.

출가 수행자가 되어 시작하는 성지순례

그래서 항상 비교를 할 때는 ‘부처님은 그 당시 어떠셨는가?’ 하는 것을 기준으로 해서 순례를 다녀야 합니다. 남방 불교에서는 출가 수행자가 될 때 약속해야 할 네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음식은 걸식해야 합니다. 둘째, 옷은 가사를 입어야 됩니다. 즉 버려진 옷을 입어야 됩니다. 셋째, 잠은 나무 밑에서 자야 합니다. 넷째, 24시간 스스로에게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지낼 자신이 있으면 출가를 하기로 약속하고 출가를 합니다. 그러나 출가를 하고 나면 약속할 때의 마음은 그때뿐이고 출가한 뒤에도 먹는 것, 입는 것, 자는 것에 대해 불평을 하게 되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곳에서 수계식을 하는 이유는 앞에서 말한 네 가지 계율을 받아서 보름 동안은 출가 수행자의 자세로 순례한다는 각오를 다지기 위해서입니다. 순례를 마치는 날 계율을 반납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더라도 오늘부터 보름 동안은 출가수행자의 마음으로 순례를 하시기 바랍니다. ‘밥은 얻어먹고, 옷은 주워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고, 항상 24시간 자신에게 깨어 있어서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한다’ 하는 이것을 원칙으로 삼았으면 합니다. 거기에 못 미치는 나를 바라보고 돌이켜 깨우치며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이 성지순례입니다.

이곳에서 성지순례를 시작하는 이유

왜 성지순례를 룸비니나 보드가야에서 시작하지 않고 사르나트에서 시작을 할까요? 현재 인도의 교통 여건을 고려했을 때 사르나트에서 출발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긴 하지만, 그 이유가 핵심은 아닙니다. 부처님의 탄생지가 네팔의 룸비니라고 하지만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부처님도 태어났을 당시에는 부처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은 깨달음을 얻은 이후에 부처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보드가야를 최고의 성지로 여깁니다.

그런데 붓다는 누구에게 배워서 깨달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에 이 세상의 어떤 중생도 붓다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붓다가 깨달음을 얻고 나서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아무도 그분이 붓다인 줄 몰랐습니다. 오히려 ‘당신 스승이 누구요?’ 하고 질문하였고, 붓다가 ‘나에게는 더 이상 스승이 될 분이 없습니다’ 하고 대답하면 미친 사람 취급을 했습니다. 사르나트에 이르러서 부처님은 처음으로 설법을 하였고, 그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은 자만이 부처님이 붓다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렇기에 우리 중생에게는 부처가 사르나트에서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사르나트는 부처님의 법이 처음 설해진 곳이기도 하고, 중생이 붓다를 처음으로 알아본 곳이기도 한 것입니다. 어쩌면 불교는 이곳 사르나트에서 시작됐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인도 성지순례의 출발지를 이곳 사르나트로 삼은 것입니다. 처음으로 우리를 깨우쳐주신 부처님의 법이 설해진 이곳 사르나트를 출발해서 어떻게 부처님은 우리를 깨우쳐 주는 분이 되었는지를 역순으로 찾아가 보려 합니다.

사르나트에서 부처님은 함께 수행했던 다섯 비구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제일가는 부자인 구리가 장자의 아들, 야사를 교화하였습니다. 야사는 세상의 온갖 쾌락을 즐기는 젊은이였는데 어느 순간 그 즐거움이 괴로움인 줄을 알게 되어 고통에 빠졌습니다. 그러던 중 그는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출가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야사와의 인연은 그의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에게까지 미쳐 세 사람도 모두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마음이 밝아졌습니다. 그리하여 야사는 출가 수행자가 되었고, 나머지 세 명은 재가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불교의 사부대중 중에서 여성 출가 수행자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을 뿐 이곳 사르나트에서 사부대중의 기초가 형성되었습니다. 불법승 삼보가 이루어졌을 뿐만 아니라 사부대중의 기초가 형성된 곳이기 때문에 조금만 생각해 보아도 불교의 역사에서 이곳 사르나트보다 더 중요한 곳은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전법의 길을 떠나거라

불교가 오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수행자의 모임인 상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상가가 바로 이곳 사르나트에서 형성이 된 것입니다. 출가 상가도 형성이 되고, 재가 상가도 형성이 됐습니다. 나아가 야사의 가족뿐만 아니라 그의 여러 친구들이 붓다를 만나 교화가 됐습니다. 이 나라에 살던 야사의 절친 4명이 출가를 하였고, 해외에 살던 야사의 절친 50명도 출가를 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섯 비구와 야사와 국내 친구 4명, 해외 친구 50명, 총 60명의 수행자가 사르나트에서 출현하게 됐습니다. 붓다까지 합하면 총 61명의 아라한이 이 세상에 출현한 것입니다. 붓다께서는 이 60명의 아라한을 두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신과 인간의 모든 굴레로부터 벗어나 해탈을 얻었다. 너희들 또한 해탈을 얻었다. 자, 이제 전법의 길을 떠나거라. 세상 사람들의 안락을 위해서 이 좋은 법을 설해야 한다. 처음도, 중간도, 끝도 조리 있게 법을 설해라. 세상 속으로 홀로 가라.’

이것이 그 유명한 부처님의 전법 선언입니다. 부처님은 전법 선언을 하신 후 깨달음을 얻은 곳인 우루벨라 촌으로 다시 되돌아가서 당시에 가장 유명했던 대사제인 우루벨라 가섭을 포함한 1천 명의 사람을 교화하셨습니다. 그 후 그들을 이끌고 당시 인도에서 최대의 왕국이었던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으로 가서 빔비사라왕을 교화하셨습니다. 이 일로 인해 일약 전법의 횃불이 세상에 찬란하게 빛을 발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부처님의 이러한 발자취를 따라서 성지순례를 하게 됩니다.”

성지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 순례단은 경전을 독송했습니다.


경전독송을 마친 후 스님과 순례단은 잠시 명상을 했습니다.


이어서 수계식을 진행했습니다. 순례단의 자세가 경건해졌습니다. 순례단은 스님을 수계법사로 청하는 청법가를 하고 수계를 청했습니다. 순례객은 호궤합장을 하고 지난 허물을 참회하는 연비를 했습니다.

대중은 지난 세월 동안 알게 모르게 지은 허물을 참회했습니다. 오른손 엄지손가락을 이마에 대고 왼쪽 팔을 뻗어 호궤합장을 했습니다. 대중이 호궤합장을 하자, 법사님들은 불을 피운 향 끝으로 순례자 한 사람 한 사람의 팔뚝을 살짝 눌러 연비 의식을 진행했습니다.


400명의 순례단은 지난 시간을 참회하여 몸과 마음을 청정히 한 후, 다시 삼보에 귀의함으로써 계를 받을 준비를 모두 갖추었습니다. 대중이 삼배를 하자 스님은 오계를 하나하나 설명하고 잘 지킬 수 있는지 물었습니다. 대중은 호궤합장을 하고 ‘잘 지키겠습니다’ 하며 계를 받았습니다.


이어서 스님의 발원문이 이어졌습니다.

“거룩하신 부처님, 저희 한국에서 온 정토행자들은 지금 부처님께서 처음 설법하신 이곳 바라나시 성밖 사르나트 녹야원에 있습니다. 다섯 비구가 부처님의 첫 가르침을 듣고 깨달음을 얻어 승가의 일원이 되듯이, 야사 비구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출가하듯이, 구리가 장자와 야사 비구 어머니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재가 수행자로 발심하듯이,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 정진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부처님은 어떻게 수행하셨는가’, ‘부처님은 세상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떤 마음으로 그들의 아픈 마음을 어루만졌는가’, ‘부처님은 무엇을 드시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주무시며, 세상 일에 어떤 관점으로 임하셨는가’ 하는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기 위해서 부처님의 4대 성지, 8대 성지, 10대 성지를 돌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한발 한발 따라가고자 합니다. 오늘 이렇게 계를 받고 성지순례를 하는 동안만이라도 밥은 얻어먹고, 옷은 주워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며, 항상 깨어있는, 출가 수행자의 네 가지 약속을 잊지 않겠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내 마음을 맑고 밝게 편안하게 갖겠습니다. 그렇게 하지 못할 때라도 곧 참회하고 본래 자리로 돌아가는 자세를 갖겠습니다.

이러한 인연으로 다생겁래 지은 모든 업이 소멸되고, 미래에는 세세생생 보살도를 행할 것을 기원합니다. 오늘 이와 같이 수계받은 공덕, 저희가 나고 자란 대한민국에 회향하오니 남북은 평화롭고 국내 정치는 화합하며, 국민들은 행복한 삶을 살기를 기원합니다.”

이어서 가사와 발우 수여식이 이어졌습니다. 스님은 먼저 가사와 발우를 수여하는 의미에 대해 설명한 후 오백 대중을 향해 가사와 발우를 전했습니다.


“출가 수행 대중들에게 가사와 발우를 드리겠습니다”

“잘 받았습니다”

400명의 순례단이 가사를 수하자 삽시간에 노랑물결이 사르나트 녹야원을 가득 메웠습니다.

그 모습이 경건하기 그지없어 지나가던 외국인들도 발걸음을 멈추었습니다.



계를 받고 가사를 수한 순례단은 다메크스투파를 향해 예불을 올렸습니다.


앉아 있는 것이 익숙하지 않아 오랜 시간 앉아 있는 게 쉽지 않은 사람도 몇몇 보였습니다. 하지만 예불을 올리는 순례단은 힘듦이나 어려움을 내색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에 오롯이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스님은 출가수행자들에게 다시 법문을 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지혜의 눈을 얻은 후에 출가를 했습니다. 왜냐하면 부처님의 가르침을 본인이 직접 경험해보지 않은 상태에서 자기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부처님을 따라가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 깨달음을 얻게 되면 세상의 지위나 재물, 쾌락, 명예 이런 것들이 마치 꿈속의 이야기로 느껴지기 때문에 마치 꿈을 꾸다가 꿈을 깨듯이 모든 것을 버리고 홀연히 집을 떠날 수가 있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 귀의하여 출가하는 데에는 아무런 절차가 없었습니다. 부처님이 그저 ‘오라 비구여. 여기 좋은 법이 잘 설해져 있도다. 부지런히 수행 정진하라’ 이렇게 말하면 바로 출가를 인정받았습니다.

믿는 불교, 아는 불교가 아니라 행하는 불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법을 듣지 않고 지혜의 눈이 뜨이지 않은 상태에서 출가 수행자가 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그러나 보니 출가 수행자가 된 사람이 세상 사람들도 이해하기 어려운 상식 이하의 행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사람을 때리기도 하고, 남의 물건을 허락 없이 가져가기도 하고, 출가한 후에 집에 가서 부인과 자고 오기도 하고, 거짓말도 하고, 술에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계율이라는 것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원래 부처님 당시 초기에는 계율이라는 게 없었습니다. 자신이 가진 높은 지위를 버린 사람이 다른 사람을 때리거나 속일 리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욕설을 할 일이 없었어요. 많은 재물을 버리고 출가한 사람이 남의 물건을 탐할 리가 없었고, 자기 부인을 버리고 출가한 사람이 다른 여인에게 관심을 가질 리도 없었습니다. 모든 걸 버리고 온 사람이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 행패 부릴 일도 없었고요. 그래서 오계라는 계율이 전혀 필요가 없었습니다.

반면에 재가 수행자는 세상 속에 살면서 수행을 하다 보니까 싸울 수도 있고, 돈에 욕심을 낼 수도 있고, 부인 외에 다른 여인에게 관심을 가질 수도 있고, 거짓말할 수도 있고, 술 먹고 취할 수도 있는 위험이 있었어요. 그래서 계율은 원래 재가 수행자를 대상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수행자가 세상 속에 사는 것을 인정하는 대신 적어도 다섯 가지는 반드시 지키라고 한 겁니다.

첫째, 남을 때리거나 죽여서는 안 된다. 그러면 수행자라고 할 수 없다.

둘째, 주지 않는 남의 물건을 갖거나 훔치거나 빼앗는다면 수행자가 될 수 없다.

셋째, 세상에 살고 있으니 결혼을 할 수는 있지만 다른 남자나 여인에게 관심을 갖거나, 특히 상대의 동의를 얻지 않고 성추행이나 성폭행을 한다면 수행자라고 할 수가 없다.

넷째, 입에 욕설을 담고 남을 속이는 행위를 하면서 수행자라고 할 수는 없다.

다섯째, 술을 한두 잔 마실 수는 있지만 술에 취한다면 수행자라고 할 수 없다.

재가 수행자는 최소한 이 다섯 가지는 지켜야 됩니다. 남을 해치거나, 남에게 손해를 끼치거나, 남을 성적으로 괴롭히거나, 말로 괴롭히거나, 술 먹고 취해서 괴롭히는 것은 안 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처음에는 재가 수행자를 대상으로 오계가 설해진 겁니다. 그러나 눈을 뜨지 못한 자들이 출가를 함으로 해서 오계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출가 수행자가 생겼기 때문에 출가와 재가를 막론하고 수행자가 되려면 이 계율을 같이 지키도록 되었습니다.

그런데 수행자라고 하면 다른 사람이 볼 때 존경하는 마음이 들어야 하지 않겠어요? 배우자든, 친구든, 직장 동료든, 저 사람이 수행자라고 하면 약간 존경하는 마음이 들 정도로는 살아야 되기 때문에 세 가지가 더 추가되었습니다. 첫째, 아무리 재물이 많아도 사치하지 말고 검소하게 살아야 합니다. 둘째, 수행자라면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겸손해야 됩니다. 셋째, 수행자라고 하면서 기분이 들뜨는 즐거움을 추구해서는 안 됩니다. 오계는 적어도 내가 타인의 이익을 훼손하거나 타인을 괴롭히거나 타인을 해치면 안 된다는 금기 사항이고, 이 세 가지는 권유 사항입니다. 이것을 ‘지악수선(止惡修善)’이라고 합니다. 악은 멈추고 선은 닦는다는 의미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이 정도만 지켜도 굉장하겠죠? 그런데도 가장 기본적인 삶의 자세를 안 갖춘 불자들이 많아요.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다 불자가 되어도 세상에는 아무런 변화가 없을 겁니다. 성추행범들이 가진 종교를 조사해 보면 불교 신자가 전혀 없을까요? 이혼한 사람들을 통계를 내어보면 불교 신자가 거의 없다는 결과가 나올까요? 폭행범을 전부 조사해 보니까 불교 신자는 없다는 통계가 나올까요? 사기꾼을 전부 조사해 보니 불교 신자는 없다는 결과가 나올까요? 술 먹고 주정하는 사람들을 전부 조사해 보니 불교 신자는 없다는 결과가 나올까요? 불교를 믿으면서도 이런 기본적인 계율도 지키지 않는다면 불교를 믿는다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믿는 불교나 아는 불교가 되어서는 안 되고 행하는 불교가 되어야 합니다.

부처님의 법이 널리 퍼진 이유

부처님은 당시 사회에서 주류가 아니고 비주류였어요. 비주류였던 부처님이 인도의 전통 사회에서 불교를 창시해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수 있었던 이유는 부처님과 부처님의 제자들이 최소한의 계율을 지키며 모범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였기 때문입니다. 절대로 남을 해치지 않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음으로 해서 누가 봐도 ‘사람 참 괜찮네’ 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다 떨어진 옷을 입고, 밥을 얻어먹고, 나무 밑에서 자도 아무도 그들을 멸시하거나 하찮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의 법이 널리 퍼진 이유는, 첫째, 수행자들이 인격적으로 신뢰를 받을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둘째, 밥은 얻어먹고, 옷은 주워 입고, 잠은 나무 밑에서 자니까, 출가 수행자가 많아져도 상관이 없었어요. 지금의 불교는 수행자가 많아지면 집 지어야지, 밥 해야지, 이런 물질적인 뒷받침을 해내지 못하기 때문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당시에는 처음부터 이런 방식으로 출발해서 출가를 천 명이 하든, 만 명이 하든, 물질적인 뒷받침을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순식간에 불교가 확산될 수 있었어요. 대신 깨달음을 얻기 위해 집을 나오기가 쉽지 않은 게 제일 큰 문턱이었습니다. 그러나 일단 집을 나오면 부처님의 법이 눈을 뜨게 해 주었기 때문에 입는 옷, 먹는 음식, 자는 것에 대해서 전혀 구애를 안 받을 수가 있었습니다.

불교 신자 숫자가 많아져야 한다, 절의 재산이 많아져야 한다, 지위가 높은 사람 가운데 불교 신자가 급격하게 늘어나야 한다, 이런 것은 다 세속적인 관점에서 나온 말입니다. 우리가 불법을 지키면서 오히려 세속을 정화하려면, 지위가 없고, 재물이 없고, 지식은 부족해도 주위 사람으로부터 신뢰를 얻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 사람은 정말 믿을 만한 사람이야’ 이런 평가를 받을 정도로 모범이 되어야 해요. ‘결혼하지 마라’, ‘혼자 살아라’, ‘고기를 먹지 마라’ 이런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으려면, 남을 해치지 않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고, 남을 괴롭히지 않아야 합니다. 적어도 내가 타인에게 해가 안 되고, 조금이라도 득이 되면 자연적으로 신뢰를 얻게 됩니다. 너무 형식적인 계율만 강조해도 안 되지만, 계율이 없다면 어떻게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겠어요?

사람들에게 신뢰를 주는 방법

그래서 성지순례를 하는 보름 동안은 계율을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성지에서 절을 얼마나 했느냐, 성지에 대해서 지식적으로 얼마나 아느냐, 이런 것이 필요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밥 지을 시간인데 식사 당번을 하지 않고 대탑에 절하러 간다면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얻기가 어렵다는 겁니다. 남의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최소한 자기 몫은 해야 됩니다. 물건을 들 일이 있으면 같이 들고, 청소를 할 일이 있으면 같이 청소를 해야 합니다. 적어도 내가 다른 사람에게 득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지 득을 보는 사람이 되지는 않겠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도반 사이에 신뢰가 생기는 거예요. 아는 것이 많다고 신뢰가 생기는 게 아닙니다. 한 방에서 같이 지내보면 물건을 어질러 놓는 사람보다 정리정돈을 잘하는 사람에게 신뢰가 더 생깁니다. 오히려 남이 어질러 놓은 것을 치워주는 사람이 되면 더 좋지요.

사람 사이에 신뢰는 고기를 먹는지 안 먹는지 이런 형식적인 계율이 아니라 실천 행위에서 생겨납니다. 언행을 바르게 해야 서로 믿고 살 수가 있습니다. 불교의 위대함은 초기 수행자들의 기본적인 삶의 자세가 소박하고, 겸손하고, 당당한 것에 있습니다. 그 점을 오늘 초전 법륜 성지에서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새겼으면 좋겠습니다.”

순례단은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법을 전하겠다는 마음을 담아 삼배를 올린 후 사홍서원으로 오늘 초전법륜성지 사르나트 참배를 모두 마쳤습니다. 대중은 발우를 들고 부처님의 정신을 새기며 탑돌이를 시작했습니다. 석가모니불 염불 소리가 점점 크게 사방을 메웠습니다.


스님의 뒤를 따라 400여 명의 장엄한 행렬이 이어졌습니다. 걸음마다 노란 가사의 출렁임은 커다란 물결처럼 보였습니다.


탑돌이를 마친 순례객은 다메크 스투파를 배경으로 하고 대탑 앞에 섰습니다.

제34차 성지순례 참가자 400명은 전체 사진을 찍고 4시간에 걸친 사르나트 참배를 잘 마쳤습니다.

수계식을 마친 후 스님은 사르나트 박물관으로 갔습니다. 어제 오후에 도착한 순례객들은 사르나트 박물관을 관람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박물관을 관람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유물 관람에 필요한 배경 지식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설명을 마치고 신태국절로 이동했습니다.

이곳은 2년 전부터 성지순례단에게 숙소를 제공해 온 사찰입니다. 신태국절 주지스님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싶다고 요청하여 직접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스님.”

“안녕하세요. 제가 작년에도 인사드리러 왔었는데 기억하시나요?”

“물론입니다. 작년에는 순례객이 500명이나 오셨죠?”

“맞습니다.”

“스님께 귀한 선물을 드리려고 이렇게 뵙자고 했습니다.”

주지스님은 돌을 정교하게 조각하여 만든 사리탑을 선물했습니다. 스님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인삼차를 선물했습니다.

이어서 계속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주지스님은 보드가야의 수자타아카데미와 부탄에서 진행 중인 지속가능한 개발사업 등 스님의 활동에 큰 관심을 보이며 다양한 질문을 쏟아냈습니다. 1시간이 지나 스님은 대화를 마무리하며 일어섰습니다.

“스님, 나중에 보드가야에 오시면 꼭 연락 주세요. 수자타아카데미 개교기념식이 1월 15일에 있습니다. 시간 되시면 꼭 참석해 주세요.”

“알겠습니다. 보드가야에 가게 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스님, 이렇게 전 세계를 다니며 활동하시니 인도에 오래 머무시진 못하겠네요. (웃음)”

신태국절을 나와 숙소에 도착하니 오후 5시였습니다. 스님은 법사님들과 함께 성지순례의 진행 상황과 내일 일정을 점검하는 회의를 했습니다.

내일은 새벽 3시 40분에 기상하여, 4시 30분에 수자타아카데미로 출발할 예정입니다.


2025 3월 정토불교대학

전체댓글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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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주

고맙습니다

2025-02-04 21:41:23

이은정

수계식에 대한 팔 동작에 대한 설명이 수정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사진과는 반대로 묘사해놨습니다.

2025-01-26 02:56:21

배현정

한말씀 한말씀
마음에 잘 새깁니다.
발원문 속에서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이 느껴져 찡합니다.
고맙습니다 스님
덕분에 참 행복합니다((()))

2025-01-19 08:3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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