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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우리의 선조들이 처음으로 하늘문을 열고 태백산 신단수 아래에 내려와 홍익인간의 대업을 시작한 개천절입니다. 더불어 우리말을 우리말로 풀이한 『푸른배달말집』 책 펴냄 잔치가 정토사회문화회관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수행과 명상을 마친 후 평화재단으로 향했습니다. 오전 9시에는 서울시 교육감 보궐 선거에 후보로 출마한 정근식 후보가 스님을 찾아와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이 공식 선거 운동을 시작하는 날인데요. 첫 번째 일정을 법륜 스님을 찾아뵙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평소에 스님의 활동을 보고 배운 게 많아서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후보는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작년에 서울대학교를 퇴직한 후 나라가 너무 어수선해서 이렇게 선거에 나서게 되었다고 출마 이유를 이야기했습니다. 아내 분이 정토경전대학을 졸업한 분이어서 함께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평소 교육 문제에 대해 생각해 온 바를 후보께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학교란 가르치는 곳이기도 하고 배우는 곳이기도 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배우는 곳이라고 정의해야 합니다. 배우는 곳이라고 정의하면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 되고, 가르치는 곳이라고 정의하면 선생님이 학교의 주인이 된다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학생들이 배우는 것을 도와주는 사람이 선생님입니다. 그래서 학생들이 가능한 자발적으로 배우도록 하고, 선생님은 그것을 도와주는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옛날에는 선생님이 모든 것을 일일이 가르쳐 주었지만, 요즘은 지식적인 내용은 사전에 영상을 보고 오도록 하고, 수업 시간에는 학생들끼리 토론하고 그걸 선생님이 도와주는 방식으로 교육 시스템이 바뀌어야 창의적인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선생님 혼자서 앞에서 설명하고, 학생들은 대부분 졸고 있는 것이 아직도 우리나라의 교실 풍경이거든요. 지금까지는 대한민국이 발전하는 데에 모방 교육이 많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앞으로 모방 교육으로는 정체 국면을 극복할 수가 없습니다. 미래 사회에 대응할 수 있는 창의적인 인재를 양성하려면 교육 시스템부터 바꾸어야 합니다.”
“스님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교육 개혁이 정말 어렵습니다. 선생님들도 옛날식 교육을 받았죠. 학부모들도 옛날식 교육을 받았죠. 교육 행정 공무원들도 옛날식 교육을 받았죠. 전부 다 옛날 교육만 받았지 미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경험이 없어요. 그러나 아이들은 미래에 살아야 합니다. 어려움은 많겠지만 미래를 내다보고 새로운 시도를 많이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정토회가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겪은 시행착오를 들려주며 한국의 학교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많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오늘 귀한 말씀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화를 마치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오늘부터 바쁘시겠네요.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랍니다.”
점심 식사를 하고 오후 1시 30분부터는 정토사회문화회관 2층 카페에서 손님들을 맞이했습니다. 오늘은 우리말을 우리말로 풀이한 『푸른배달말집』 책 펴냄 잔치가 열리는 날입니다. 그동안 우리말을 가꾸는 일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습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오후 2시가 되어서 다 함께 책 잔치가 열리는 지하 대강당으로 이동했습니다.
먼저 여는 공연으로 ‘우리말 노래’와 ‘상록수’를 한재경 님과 이상신 님이 아름다운 목소리로 불러 주었습니다.
우리말 쉬운 말, 쉬운 말을 해요 ♬
어릴 때부터 쓰던 말, 강아지와 하던 말 ♬
냉이, 민들레, 할미꽃, 제비꽃, 머루, 다래, 으름, 도토리
피라미, 버들, 붕어, 모래무지, 미꾸라지
꾀꼴꾀꼴 꾀꼬리, 뻐꾹뻐꾹 뻐꾸기, 뜸북뜸북 뜸부기 ♬
마음을 울리는 멋진 노래로 책 잔치 무대를 활짝 열었습니다.
다음은 스님이 책 잔치를 시작하며 여는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저도 ‘법륜(法輪)’ 대신 ‘참말 수레바퀴’로 이름을 바꾸어야겠습니다. ‘참말 수레바퀴’라 부르니까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금방 알 수 있네요. ‘법륜’이라고 부를 때는 제가 무엇을 해야 될지 잘 와 닿지 않을 때가 많았거든요. (웃음)
10월 3일 개천절에 『푸른배달말집』을 출간하게 됐습니다. 하늘이 처음 열린 날에 이런 행사를 하는 것이 우연이 아닌 듯 정말 뜻깊게 느껴집니다. 올해는 단군왕검께서 왕위에 오르신 지 4,356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대부분이 잘못 알고 계신 것 같은데, 개천절은 단군왕검이 왕위에 처음 오른 날이 아니라 환웅 천황께서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처음 배달나라를 연 날을 뜻합니다. 환웅 천황께서는 널리 백성을 이롭게 한다는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이 땅에 오기 전 살았던 '한나라'의 발달된 문명을 이 땅에 그대로 재현하겠다는 ‘재세이화(在世理化)’의 정신으로 배달나라를 세웠다고 전해집니다.
보통 선진 문명이 후진 문명 지역으로 들어갈 때는 침략을 하거나 착취를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한나라’라고 하는 발달된 문명을 가진 지역에서 3천여 명의 무리가 이곳 동북아 지역으로 이주해 왔지만 침략이나 착취가 없었습니다. 오히려 덜 발달된 지역의 사람들을 깨우쳐서 더 나은 문명으로 그들을 이롭게 하겠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건국 정신이었습니다. 이 정신은 건국 이념인 동시에 그 어떤 종교보다도 더 깊은 애민 사상을 품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선조들은 나라를 세울 때부터 고귀한 뜻을 갖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로는 올해가 환웅 천황께서 하늘문을 열고 배달나라를 세운 지 5,960년째가 되는 해입니다. 그렇다면 올해를 개천 5,960년, 단기 4,356년 이렇게 부르는 것이 마땅한데, 정부에서 하는 행사마저도 개천절을 단군왕검이 나라를 처음 세운 날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뿌리에 대한 민족의 정체성이 아직까지 잘 잡혀 있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우리에게는 옛날부터 가림토 문자라고 해서 우리의 글자가 있었다고 전해져 내려옵니다. 그러나 우리의 글자가 일상적으로 쓰이지 못하고 결국 중국의 한자를 받아들여 우리말을 표현하게 되었습니다. 뜻글자로 표현을 하다 보니까 말을 소리글자로 표현하지 못하게 되었고, 글을 쓰기 위해서 도입한 한자가 오히려 말을 바꿔 버리는 어려움이 생겼습니다. 이것이 우리말이 겪어야 했던 첫 번째 어려움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만 한문을 배운 사람들은 인구의 5퍼센트밖에 되지 않는 소수의 유생들과 지배 계층이었기 때문에 백성들이 쓰는 우리말은 그대로 전해 내려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말이 겪은 두 번째 어려움은 일제 강점기 때 소학교 교육이 시행되면서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전부 일본식 한자말을 배우게 된 것입니다. 저부터 말을 할 때 일본식 단어를 우리말인 줄 알고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조선 시대에 한문으로 된 말은 인구의 5퍼센트에 불과한 소수에게 영향을 끼쳤던 반면, 일본식 단어는 소학교 교육을 통해 훨씬 더 광범위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우리말에 끼친 영향이 더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 어려움은 해방 이후 시행된 근대 교육인 초등학교의 교과 내용이 일본어에서 한국어로 바뀌었을 뿐이지 말은 다 일본말을 그대로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학교 교육을 안 받았다면 우리말을 더 많이 보존할 수 있었을 텐데, 국민 교육이라고 해서 전 국민이 다 학교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일본 교과서의 글을 그대로 한글 교과서로 옮기면서 우리말을 많이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네 번째 어려움은 해방 이후에 우리가 서양 교육을 받으면서 일어났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말을 영어로 많이 바꿔서 쓰고 있습니다. 일본식 단어는 쓰면서도 일본말인 줄 모르고 우리말로 착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서양말은 우리말로 착각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것은 차이점입니다.
우리말의 이런 여러 어려움들을 해결하고자 많은 분들의 노력이 이어져 왔고, 이번에 최한실 선생님이 『푸른배달말집』을 펴내는 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정말 오랫동안 어려운 작업을 해서 드디어 오늘 『푸른배달말집』을 만들어 냈습니다. 정말 힘든 일을 하셨습니다. 그분들이 얼마나 어려운 일을 하셨고, 또 이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를 우리가 깊이 새겨서 가능하면 우리말을 많이 썼으면 좋겠습니다.
이것이 자칫 잘못하면 외국어를 반대하고 자국어만 쓰자고 하는 국수주의적인 개념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내 나라에 말이 없다면 남의 나라말을 차용해서 쓸 수가 있지만, 우리말이 더 쉽고 더 간략하고 뜻도 금방 전달되는데 오히려 남의 나라말을 쓰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말을 쓰면 뭔가 낮춰지는 것 같고, 한자어와 같이 정형화된 단어를 쓰면 뭔가 높임말인 것처럼 여기는, 이런 잘못된 생각에서 우리가 우리말을 더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일입니다. 이제는 모든 사람이 다 평등해졌고, 국민이 나라의 주인이 된 세상이니까 우리의 마음을 더 잘 표현할 수 있는 우리말을 한번 써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그런데 저부터도 학교 교육을 통해서 입에 익은 말들이 대부분 왜말인 경우가 많습니다. 특히 불교는 한자어로 된 말을 많이 사용하다 보니 우리말을 쓰려고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어린 시절로 돌아가서 어린아이들이 하는 말을 쓰면 저절로 되지 않겠나’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저는 가난한 나라에 가서 아이들의 문맹 퇴치를 위해 학교를 짓거나 학용품을 지원하는 일을 많이 하는데요. 그 나라에는 동요가 많이 없다 보니 우리의 동요를 그 나라 말로 바꿔서 부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말을 그 나라 말로 아무리 바꿔보려고 해도 못 바꾸는 말이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바로 의성어입니다. 뻐꾹뻐꾹 하는 새소리는 도저히 그 나라 말로 표현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소리 나는 대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은 제가 지금까지 경험한 것으로는 우리말만큼 잘 표현되는 말이 없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는 새소리와 동물들의 동작을 표현한 것이 많지 않습니까? 그런데 ‘멍멍’과 같은 의성어는 그 나라 언어로 표현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런데 우리말은 소리가 나는 대로 쓰일 수 있는 것을 보면서 우리말이 얼마나 뛰어난지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거기다 한글까지도 컴퓨터 분야나 인공 지능 분야에서 굉장히 적합한 글자라는 것이 여러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습니다.
요즘 한류라고 해서 한국의 문화, 음악, 드라마가 외국에 많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해외에 나가보면 우리가 어렸을 때 영어를 할 줄 몰라도 ‘땡큐’나 ‘굿모닝’은 했던 것처럼, 전 세계 어디를 가도 저를 보면 사람들이 ‘안녕하세요’ 또는 ‘감사합니다’ 하고 한국말을 할 줄 압니다. 이렇게 우리말이 전 세계로 전파가 되고 있고, 한국 문화를 배우고자 하는 세계 인구가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많이 퍼지고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이미 이런 한류를 발현할 수 있는 DNA를 역사적으로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 기반이 있었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의 문화가 이렇게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이지 단순히 최근에 노력해서 이룩한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 조금 더 창조적이 되려면 우리말과 우리 역사에 대해 좀 더 깊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의 교육이 대부분 다른 나라의 기술과 문화를 모방하는 교육이었지 않습니까? 하지만 모방하는 방식은 이제 한계점에 도달했습니다. 새로운 것을 개척하고 창의성을 발휘하려면 우리의 고유한 것과 외부로부터 들어온 것이 융합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전통만을 고집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전통을 더 잘 알 때 우리의 마음속에 자긍심도 생겨날 수 있습니다. 그런 취지로 오늘 이런 자리가 마련이 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많은 내빈들이 와 계십니다. 최한실 선생님과 함께 민주화 운동을 하셨던 분들, 농민 운동을 하셨던 분들, 또 우리 문화를 지키기 위해 다방면에서 노력하셨던 선후배 분들이 많이 참여해 주셨습니다. 또 우리말을 사랑하시는 분들, 그리고 정토회 회원 여러분들도 많이 참석해 주셨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오늘 최한실 선생님의 ‘우리말 살려 쓰기’에 대한 강의를 잘 들어보시고 우리부터 우리말을 썼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푸른누리의 들꽃 님께서 책 『푸른배달말집』이 태어나기까지의 이야기를 영상과 함께 나누어 주었습니다.
“2014년 진주에서 열린 ‘토박이말 바라기 모임’에서 김수업 님을 만나 ‘겨레 말과 삶’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말집(사전)을 만들자고 처음 뜻을 세웠습니다.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한실 님은 주저앉지 않고, 첫 뜻을 이루려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뚜벅뚜벅 걸었습니다. 처음 뜻 세우고 열한 해만에 『푸른배달말집』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습니다.”
주저앉지 않고 우리말을 살리기 위한 길을 걸어오신 최한실 선생님의 의지에 마음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어서 이 책의 나눔 글을 써준 새몸 이기상 교수의 말씀, 『푸른배달말집』의 펴낸 곳을 대표하여 안그라픽스 출판사의 안마노 대표의 말씀을 차례대로 들었습니다.
다음은 이 책의 지은이 최한실 선생님의 말씀을 청해 들었습니다. 사회자가 큰 박수로 무대로 모시겠다고 하자 최한실 선생님이 웃으며 말문을 열었습니다
“방금 큰 박수를 치자고 하셨는데, 박수는 우리말로 무엇이라고 표현할까요?”
“손뼉.”
“다시 손뼉을 크게 한 번 쳐 보십시오.”
크게 손뼉을 치며 우리말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입만 열면 우리말이 술술 나와야 되는데, 어쩌다가 우리가 입만 열면 남의 나라 말을 사용하게 되었을까요? ‘이 틀은 어떻게 써?’ 이렇게 말하면 되는데 ‘이 기계의 사용법이 무엇인가요?’ 하고 어려운 말을 쓰거든요. 사용한다는 표현은 왜말입니다. 우리는 ‘말’이라는 쉬운 표현이 있는데도 굳이 ‘언어’라고 표현합니다.
학교를 우리말로 ‘배곳’이라고 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배곳에서 배워 쓰는 말은 모두 일본말에서 왔습니다. 우리말 낱말이 모자라서 말을 넉넉하게 하려고 들여다 쓴다면 다른 나라 말이더라도 받아들여 써야겠지요. 그런데 일본말에서 온 말은 멀쩡한 우리말을 밀어내고 안방을 차지한 말들입니다.
오늘 ‘책 잔치’를 한다고 여러분을 초대했는데, ‘출판 기념회’는 왜말입니다. 요즘은 ‘출판 기념회’라는 말도 안 쓰고 ‘북 콘서트’라는 말을 더 많이 쓰죠. 밥집에서 먹으면 낮은 데서 먹는 것 같고, 대부분은 식당에서 먹는다고 표현하고, 요즘은 레스토랑에서 먹는다고 해야 높은 데서 먹는 것 같잖아요. (웃음)
‘사람’이라는 우리말은 ‘살다’는 뜻의 ‘살’과 ‘암’이 붙어서 ‘살암’에서 온 말입니다. 이것은 살아있는 목숨 가운데 가장 잘 사는 목숨이라는 뜻입니다. 이런 뜻을 부어서 우리 겨레가 ‘사람’이라는 말을 지어낸 겁니다. 그래서 사람은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되고 잘 살아야 됩니다. 마음이 고요하고 흐뭇할 뿐만 아니라 두루 고루 잘 살아야 한다는 뜻이 ‘사람’이라는 말속에 들어 있습니다. 옆에 사람이 배고파서 굶어 죽어가는데 나 혼자 떵떵거리고 잘 사는 것을 우리 겨레는 사람이라고 부르지 않았습니다. 집이 없는 사람에게는 빈방이라도 하나 내어 주는 것이 우리 겨레였습니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말을 되찾아 쓰는 것이 옳습니다. 우리 얼이 깃든 우리말을 살려내는 일은 우리 겨레를 살리고 나라를 밑바탕에서 튼튼하게 하는 일입니다.”
최한실 선생님은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일본말과 잉글말(영어)을 예로 들며 그 말들을 우리말로 바꾸었을 때 얼마나 그 의미가 더욱 살아날 수 있고, 우리 겨레의 정신이 빛날 수 있는지 풍부한 사례를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점에 대해 질의응답 시간을 가진 후 강연을 마쳤습니다. 이어서 우리말 수수께끼 시간을 가졌습니다. 최한실 선생님이 문제를 내면 청중이 손을 들고 정답을 맞혔습니다.
“365일을 우리말로 읽으면 어떻게 될까요?”
“서온예순닷새입니다.”
“2024년을 우리말로 읽으면 어떻게 될까요?”
“두즈믄스물네 해입니다.”
수수께끼를 풀다 보니 마쳐야 할 시간이 되었습니다. 정답을 맞힌 분들에게는 환경 상품을 선물했습니다.
우리 겨레가 이제라도 겨레말을 써야 하는 까닭을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책 잔치를 마치고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어서 무대 위에서 책 이름 써주기(책 사인회) 시간을 가진 후 2층 카페로 이동하여 뒤풀이를 했습니다. 참석한 분들에게는 최한실 선생님이 직접 산에서 주운 밤을 선물했습니다.
스님도 차담을 나누며 내빈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서학과 달리 자주적이고 주체적인 입장에서 동학을 창도한 최제우 대신사의 탄신 200주년을 맞이하여 11월 말에 순례를 떠날 예정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스님과 내빈들은 동학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최한실 선생님과 내빈들을 배웅한 후 스님은 오후 5시에 서울을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4시간을 달려 밤 9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 9월 7일에 열린 즉문즉설 강연에서 스님과 질문자가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그 사람이 지금 여윳돈이 있어요, 없어요?”
“매일 아침 주식 투자 얘기를 합니다. 돈을 번 얘기를 동료들이랑 하기도 하고요. 여윳돈은 있는 것 같습니다.”
“돈을 줄 때 그냥 줬어요. 빌려줬어요?”
“같이 사업에 투자했다가 제가 중간에 빠지면서 돌려받기로 약속했던 돈이에요.”
“그러면 ‘약속한 돈이니까 돌려 달라’고 얘기해 보면 되죠.”
“여러 번 얘기해서 조금씩은 받았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주다가 나머지 돈에 대해서는 아예 없었던 일처럼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아직 남았다고 얘기해 주면 되잖아요.”
“카톡으로 그 얘기를 해주었는데, 시간이 좀 지나니까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계속 정기적으로 메시지를 보내 보세요. ‘돌려주세요. 4천 불 남았습니다. 제가 조금 어렵습니다’ 이렇게 정기적으로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 좋습니다. 답이 있든지 없든지 메시지를 계속 보내는 겁니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요? 4천 불을 받는 게 문제가 아니에요. 그렇게 하면 형이 앞으로 돈을 빌려 달라는 소리를 두 번 다시 못 합니다. 그렇게 해서 돈을 받으면 다행이고, 못 받아도 상대는 앞으로 돈이 없어도 빌려 달라는 소리를 못 하니 예방 효과가 있습니다. 그래서 절대로 그냥 놔두면 안 돼요.
만날 때마다 정기적으로 ‘그 돈 돌려줘요. 제가 조금 어렵습니다’ 하고 말하세요. 상대가 성질이 나도록 하지는 말고 잊어버릴 만하면 메시지를 보내고, 잊을 만하면 또 보내되 성질을 돋우지는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가 기분이 날 때 돈을 돌려줄 수가 있어요. 성질을 팍 돋워 버리면 관계도 나빠지지만 ‘돈 갖고 쩨쩨하게 구네. 너한테는 돈이 있어도 안 준다’ 이렇게 결심해 버리면 돈도 못 받고 관계도 나빠져요. 그렇다고 가만히 내버려 두면 잊어버립니다. 그래서 정기적으로 알려야 합니다. 돈을 받으면 다행이고, 못 받더라도 예방 효과가 있습니다.”
내가 못 받은 돈만 자꾸 아까워하면 안 돼요. 앞으로 또 돈을 잃을 수 있는 일을 미리 막는 것도 굉장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작은 돈을 빌려주고 못 받는 것에 대해 너무 아까워할 필요가 없어요. 그런 경험을 한 번 하고 나면 다시는 큰돈을 잃을 위험이 없기 때문입니다. 몇 천 불 정도는 그냥 보증금이라고 생각하세요. 보증금을 걸어 놓으면 상대가 돈을 빌려 달라는 소리를 다시는 못 하게 되니 예방 효과가 있습니다.
돈을 받는 일에 너무 매달리면 형제간의 우애가 깨지고, 돈도 못 받게 돼요. 그냥 내버려 두면 나중에 또 사정이 어렵다고 하면서 빌려 달라고 합니다. 그러면 안 빌려줄 수도 없고 애매하잖아요. 그래서 이렇게 관계를 적당하게 낚싯밥 걸어 놓듯이 밀고 당기기를 해야 하는 겁니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내일은 올해 들어 일곱 번째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이 광주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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