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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오늘은 2024년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여섯 번째 강연이 경남 창원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농사일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한 달 전에 상추 씨앗을 심었는데 기후 변화 때문인지 싹이 트지 않은 것이 많았습니다. 싹이 트지 않은 곳마다 상추 모종을 새로 심었습니다. 사용한 도구를 씻어서 가지런히 정리한 후 아침 울력을 마쳤습니다.
농사일을 마치고 오전 10시부터 전법회원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한 달에 한 번 전법회원들이 모여서 정토회 활동을 하면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 스님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입니다.
전법회원들이 삼배의 예로 스님에게 법문을 청했습니다.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도 무더웠는데, 그래도 오는 가을을 막을 장사는 없는 것 같습니다. 저는 지금 두북 수련원에 내려와 있는데요. 들판이 전부 황금빛으로 변해 있습니다. 모를 심은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벼가 고개를 숙이고 벌써 추수 때가 되었어요. 올해는 특별히 세월이 빨리 흘러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세계 곳곳을 다니다 보니까 시간이 훌쩍 지나가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 나이가 칠십이 넘으니까 내리막길의 속도가 더 빨라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웃음)
이어서 정토회가 앞으로 해결해 나가야 할 몇 가지 과제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평화재단과 JTS 등 사회활동기구에서 하고 있는 일들에 대해 전반적으로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설명을 마친 후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세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수행을 시작한 지 3년 만에 참회하는 마음이 진심으로 우러나는데, 자신의 수행이 어느 정도 되었다고 볼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너 자신을 알라’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 말은 나의 성질, 나의 까르마, 나의 습관, 이런 것을 알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의 감정을 내가 알아야 합니다. 화가 났을 때는 ‘내가 화가 났구나’ 하고 알고, 내가 실수를 했으면 ‘내가 실수를 했구나’ 하고 알고, 넘어졌으면 ‘넘어졌구나’ 하고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사실을 사실대로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생각에 사로잡혀서 화를 내놓고도 ‘내가 언제 화냈니?’ 하고 반발하고, 욕심을 내놓고도 ‘뭐, 나만 욕심 내나?’ 하고 반발합니다. 이렇게 자기가 자기 자신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자기가 자기 자신을 전혀 모르는 사람을 ‘범부중생’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자기가 자기를 알기 시작하는 것이 수행의 첫발입니다.
그러나 수행을 너무 단계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수행에는 ‘1단계는 됐다, 다음 2단계는 무엇인가’ 이런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과거 소승불교에서는 한 때 수행의 단계를 설정하기도 했습니다. 그 후 대승불교가 나오면서 단계 설정을 부정했고, 다시 대승불교에서도 수행의 단계를 설정하니까 선(禪)에서 또 단계 설정을 부정했어요. 왜냐하면 깜깜한 동굴에 불을 밝히면 그 동굴이 점점 밝아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불을 탁 켜면 일시에 밝아지고, 불을 끄면 일시에 어두워집니다. 그래서 수행에 대해 단계를 설정하는 것은 맞지가 않아요. 물론 동굴이 좀 덜 밝고 더 밝고 하는 측면에 대해서는 단계 설정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동굴이 밝아졌느냐, 안 밝아졌느냐 하는 측면에서는 단계라는 게 있을 수 없습니다. 단계 설정을 하면 그에 따른 부작용이 생겨서 부정을 하게 되고, 그래서 단계 설정을 안 하면 수행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막막해서 또 단계 설정을 하게 되고,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역사가 흘러온 겁니다.
그러니 질문자도 ‘단계 설정이라는 건 없다. 내가 나에 대해 알게 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이렇게 내 모습을 자각하는 것이 수행의 출발이면서 동시에 수행의 전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계 설정을 하기가 어려운 겁니다. 왜냐하면 수행의 첫발을 내디뎠지만 이것이 항상 지속되면 수행의 전부라고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질문자가 말한 10단계에서 질문자의 상태는 몇 단계쯤 되겠는지 물었는데, 굳이 단계 설정을 하겠다면 1단계라고 이해하시면 돼요. 그러면 2단계로 가면 깨달음이 더 커지는 걸까요? 그렇게 말할 수는 없습니다. 내 상태를 자각하는 것이 찰나찰나 계속되면 그것이 곧 수행의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고 말하는 겁니다. 처음 마음을 낸 것이 곧 정각을 이룬 때와 같습니다. 단계가 높아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항상 깨어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즉석에서 추가로 더 질문을 받고 대화를 나눈 후 11시 30분에 전법회원 법회를 마쳤습니다.
점심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실내에서 업무를 보았습니다. 오후 4시에 지난 7월에 돌아가신 큰 형님 산소를 둘러보고 지역 인사들을 만나 차담을 나눈 후 창원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창원에서 코로나 팬데믹 이후 처음으로 오프라인 즉문즉설을 하는 날입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6시 30분에 강연이 열리는 늘 푸른 전당에 도착했습니다.
창원 행복센터에서 온 많은 봉사자들이 곳곳에서 강연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사전에 강연을 신청한 600여 명 외에도 100여 명이 강연장에 도착해 입장을 기다렸습니다.
사전 공연을 함께 본 후 저녁 7시 30분에 행복한 대화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스님을 소개하는 영상을 본 후 스님이 무대로 올라오자 700명의 청중들이 큰 박수로 환호했습니다.
유튜브 생방송에는 3600여 명이 접속했습니다. 먼저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이 스님에게 질문을 하고, 이어서 현장에서 즉석 질문을 받았습니다. 2시간 동안 여덟 명이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다양한 연령대의 가지각색의 사연이 담긴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남편이 도무지 말을 안 해서 같이 생활을 하기가 어렵다며 답답한 마음을 하소연했습니다.
“질문자가 말을 안 하면 됩니다.” (웃음)
“저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말로 좀 풀어야 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집에만 가면 저도 말을 안 하거든요. 하지만 사람 사이에 꼭 해야 할 말은 있지 않습니까?”
“꼭 해야 할 말이란 게 없어요. ‘꼭 해야 할 말이 있다’ 하는 그 생각이 잘못된 거예요. 질문자는 집에서 개를 키우나요?”
“개는 안 키웁니다.”
“개를 한번 키워 보세요. 개가 내가 묻는 말에 대답을 할까요? 개는 말을 안 하기 때문에 키우기가 쉬운 겁니다. 개한테 ‘밥 먹을래? 안 먹을래? 말을 해라!’ 이렇게 합니까? 그냥 밥을 줍니까?”
“묻지 않고 그냥 밥을 줍니다.”
“질문자가 잘못 생각하는 거예요. ‘여보, 밥 차려놨어’ 이러거나 ‘밥 먹자’ 이러면 되지, 왜 ‘먹을래? 안 먹을래?’ 이렇게 물어요? 그냥 ‘밥 먹자’ 이러면, 본인이 안 먹고 싶을 때는 본인이 안 먹겠다고 답할 거예요. 밥을 먹고 싶을 때는 아무 말하지 않고 와서 먹을 겁니다. 질문자가 자꾸 ‘먹을래? 안 먹을래?’ 이렇게 묻는 게 문제입니다. 앞으로는 그냥 강아지를 키운다고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웃음)
남편은 본인이 알아서 똥오줌을 가리잖아요. 그리고 자기가 알아서 자동차 검사도 해준다면서요. 자동차 검사를 하려고 했는데 ‘이미 해놨다’ 하면 ‘아이고, 잘 됐네’ 이러면 되잖아요. 질문자가 직접 차를 몰고 가서 검사하는 게 쉬워요? 검사가 다 되었다는 소식을 듣는 게 쉬워요?”
“검사를 해놓았다는 그 말을 저한테 안 해준다니까요!”
“질문자가 자동차 정비소에 가서 검사를 한 다음 자동차를 가져오는 게 쉬워요? 물어보니까 ‘이미 검사가 다 됐습니다’ 해서 바로 가져오는 게 쉬워요?”
“예, 이해했습니다.”
“남편이 질문자한테 아무 손해도 끼치는 게 없잖아요. 그런데도 질문자가 자꾸 남편을 문제 삼으면 아이들도 아버지가 문제가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게 됩니다. 질문자가 문제를 안 삼아 버리면 남편은 아무 문제가 없어요. 아이들이 ‘아빠는 왜 말을 안 해?’ 하고 물으면 오히려 ‘너희 아버지는 말을 안 해도 다 알아서 하시는 분이야’ 이렇게 얘기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아무 문제가 없이 저절로 잘 알아서 커요. 다만 질문자가 말할 대상이 없는 게 좀 힘들 수가 있는데, 화장실에 가서 혼자서 막 얘기하세요.”
“예, 알겠습니다.”
“질문자가 답답한 건 이해가 돼요. 말을 서로 주고받는 게 안 되니까 답답할 수는 있는데, 그렇다고 그만한 일로 이혼을 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없으면 모르겠는데 그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심정은 이해가 되지만 손해는 없기 때문에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감사합니다.”
“남편이 내가 원하는 만큼 안 해주는 건 맞습니다. 그러나 남편이 나한테 특별히 무슨 손해를 끼치는 건 없습니다. 강아지 한 마리 키우는 것과 비교하면 강아지보다는 남편이 말을 많이 하잖아요. (웃음)
사실은 말이 없는 게 좋은 점도 많습니다. 며칠 전에 제가 호주에서 즉문즉설을 했는데, 어떤 남자가 저한테 이런 질문을 했어요.
‘며칠 전에 우리 집에 강아지 한 마리가 들어왔는데, 그 강아지가 저보다 집안 서열이 높아졌습니다. 제가 볼 때 강아지는 아무것도 한 게 없는데 전생에 무슨 복을 지어서 오자마자 서열이 저보다 높아진 겁니까?’
질문자가 볼 때는 강아지가 왜 집안 서열이 높아진 것 같아요?”
“가족들이 강아지를 다 좋아하니까 그랬겠죠.”
“강아지는 잔소리를 안 하기 때문입니다. 왜 사람들이 사람을 안 키우고 강아지를 키울까요? 강아지는 말대꾸를 안 하니까 사람을 키우는 것보다 훨씬 나은 겁니다. 집에 강아지가 있으면 돌봐줄 사람이 없어서 여행도 못 갑니다. 사람은 남한테 맡겨도 되고, 자기가 알아서 밥도 먹을 수 있어서 훨씬 키우기가 쉬운데, 사람은 잔소리를 하거나 말대꾸를 자꾸 해서 키우기가 힘들어요. 그래서 질문자의 남편은 키우기 제일 쉬운 사람이에요. (웃음)
내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남편이 말을 해도 문제가 되고, 말을 안 해도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중도가 중요한 거예요. 중도란 상대가 말하기 싫다고 하면 말을 안 하고, 말하고 싶다고 하면 말을 해주고, 이렇게 하는 겁니다. 그런데 남편은 그런 수준이 안 돼요. ‘그래도 우리 남편은 손해는 안 끼친다’ 항상 이렇게 생각해야 내가 괴롭지 않습니다.”
“잘 알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다 마치고 나서 스님이 마무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인생은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라는 정답이 없습니다. 무엇이든 여러분들이 선택하고 그것에 대해 책임을 지는 거예요. 지금의 내 모습은 다 누가 만든 걸까요? 다 자기가 만든 거예요. 사회가 이렇게 만들었다는 말도 맞긴 합니다. 누군가 미끼를 던지더라도 내가 미끼인 줄 알아차리면 안 먹을 수 있습니다. 미끼인 줄 몰라서 먹으면 낚일 수밖에 없는 거예요. ‘미끼를 안 던졌으면 되잖아?’ 이런 얘기는 아무 소용이 없는 얘기입니다. 누군가 미끼를 던졌고 나는 이미 낚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다음부터는 눈앞에 보이는 이익을 보더라도 조심해야겠구나. 한번 낚여서 입술이 찢어졌으면 됐지 똑같은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자’ 이렇게 경험을 통해서 개선해 나가야 합니다. 그런 관점을 갖고 모두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큰 박수와 함께 강연을 마쳤습니다.
곧바로 무대 위에서 책 사인회를 했습니다. 참석한 대부분의 청중들이 길게 줄을 서서 스님의 사인을 받고 스님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스님, 정말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제 인생이 행복해졌습니다.”
어떤 분은 스님에게 삼배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책 사인회를 끝마치고 강연을 준비한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창원, 파이팅!”
스님은 봉사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강연장을 나왔습니다.
“모두 수고하셨어요.”
강연장을 나온 스님은 다시 창원을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차로 1시간 10분을 달려 밤 11시에 두북 수련원에 도착한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구미 아도모례원에서 열리는 용성조사 오도일 기념식에 참석하여 법문을 하고, 오후에는 대구경북 지부 회원의 날 행사에 참석하여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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