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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JTS가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피해 복구 구호활동을 하고 있는 가지안테프(Gaziantep)로 이동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4시 50분에 에어비앤비 숙소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5시 20분에 프랑크푸르트 공항으로 출발했습니다.
지난 4일 동안 스님과 동행하며 통역을 해준 임혜지 님과 운전을 해준 최순진 님, 프랑크푸르트 강연 총괄을 해준 추희숙 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님, 조심히 가세요.”
출국 수속을 하고 비행기에 탑승했으나 8시에 출발 예정인 비행기는 1시간 30분이나 지연이 되어 9시 30분에 이륙을 했습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3시간을 이동하여 튀르키예 이스탄불 공항에 현지 시간으로 오후 1시 30분에 도착했습니다.
수하물을 찾고 입국 수속을 한 후 다시 비행기를 타기까지 시간이 촉박했습니다. 비행기에서 나오자마자 달려 입국 수속장에 도착했습니다. 줄을 선 사람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입국수속을 마친 후 수하물을 찾고 출구로 나갔습니다.
출구에는 JTS 박지나 대표님과 통역을 맡은 와합 님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서로 인사를 나눈 후 곧바로 국내선 비행기를 타기 위해 함께 탑승구로 이동했습니다.
스님은 이동하는 틈틈이 와합 님과 지진 피해 복구 상황과 JTS 사업의 방향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오후 3시 20분에 이스탄불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 50분을 이동하여 오후 5시 10분에 가지안테프(Gaziantep)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수하물을 찾고 공항을 나오자 JTS와 지진피해 복구 사업을 함께 하고 있는 화이트 헬멧(White Helmets) 활동가가 마중을 나와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Welcome to Gaziantep. We have been waiting for your visit for a long time. We are so happy to see you today.”
(가지안테프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는 스님의 방문을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만나게 되어 너무나 행복합니다.)
반갑게 악수를 나누고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식당으로 이동해 화이트 헬멧(White Helmets) 활동가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하며 지진 피해 복구 상황과 내일 답사 일정에 대해 의논을 했습니다.
지난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피해 복구를 돕고 있는 JTS에서는 화이트 헬멧과 협력하여 3500명이 다니는 학교 건물을 새로 짓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화이트 헬멧에서 프로젝트를 총괄하는 사람, 학교건축 총책임자, 가지안테프 총책임자가 자리한 가운데 학교 건축 상황과 지진 피해 이후 사람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먼저 시리아에서 하루빨리 전쟁이 멈추기를 소망하는 마음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작년에 지진 피해 지역을 처음 다녀가셨는데, 어떠셨습니까?”
“저는 지진 피해 지역이 사막에 있는 줄 알았는데 직접 가서 보니 지중해 연안이어서 들녘이 올리브숲으로 가득하고 평화로워 보였습니다. 전쟁과 지진 피해만 없었으면 정말로 아름다운 나라가 되었겠구나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아시리아, 수메르 등 고대문명에 관심이 많은데 그런 역사 깊은 문명을 계승한 곳이 이 지역이라는 사실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저희 나라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쉽게도 지금은 전쟁 중이라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고대문명을 보여드릴 수가 없습니다. 전쟁이 멈추게 되면 스님께 고대문명의 역사가 깃든 도시들을 많이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저도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스님은 어려운 조건 속에서 학교를 짓느라 수고가 많았던 화이트 헬멧 활동가들을 격려해 주었습니다.
“어려운 가운데 학교를 짓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저희가 스님에게 더 감사합니다. 스님이 아니었으면 저희는 학교 짓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겁니다. 스님과 JTS 덕분에 우리가 아이들이 미래를 꿈꾸며 공부할 수 있게 학교를 지어줄 수가 있었습니다. 저희도 너무 행복하고 뿌듯합니다. 학교를 준공해서 수업을 다시 시작하게 되면 학생들에게 한국 문화도 소개하고, 후원해 준 JTS를 소개하는 자료도 전시할 예정입니다.”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해가 저물었습니다. 스님은 학교를 준공하게 되면 지진피해로 희생된 선생님과 학생들을 추모하는 작은 공원도 만들면 좋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지진이 나서 아이들도 많이 죽고, 선생님들도 많이 돌아가셨잖아요. 학교 준공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딛고 희망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지진으로 희생된 학생들과 선생님들을 추모하는 기념 공원을 작게 만들면 어떨까요? 비석이라도 하나 세워서 희생자들의 이름을 한 명씩 적고, 앞으로 그들의 뜻을 이어서 이 학교를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마음을 담아보면 좋겠습니다.”
“예, 정말 좋은 제안입니다. 준비해 보겠습니다.”
이어서 지진 피해 복구가 어느 정도 진척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이 궁금한 점을 물었습니다.
“지진 피해를 입고 1년 6개월이 지났는데 현재 상황이 어떤가요? 대부분의 학교가 복구되었는지, 학생들이 정상적으로 학교를 다니고 있는지, 학교가 완전히 부서져서 새로 지어야 하는 학교가 더 있는지, 일부 학교를 보수해서 사용하고 있는 상황은 어떠한지, 대략 어느 정도로 회복이 되었나요?”
화이트 헬멧 활동가들이 현재 상황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지진피해를 입은 학교 건물 복구가 많이 된 편이지만, 대부분 수리만 한 편입니다. 아직도 20퍼센트 정도는 수리도 안 되고 있습니다. 특히 학생들의 경우 내전이 일어나기 이전과 비교했을 때 100만 명 이상이 교육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들리브(Idlib)라는 도시는 인구가 15만 명이었는데 내전 이후 난민들이 모여들어 90만 명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학교 건물은 옛날 그대로입니다. 통계를 뽑아 보니 50퍼센트의 아이들이 학교를 못 다니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 아이들을 위해 많은 학교를 새로 지어야 합니다. 굉장히 심각한 상황인데, 공식적으로는 어디에서도 이 문제가 언급되고 있지 않습니다. 새로운 학교가 정말 많이 필요합니다.”
다시 스님이 궁금한 점을 묻고, 대화가 계속 이어졌습니다.
“학교란 교실만 있으면 되는 게 아니고 반드시 선생님이 있어야 하는데, 선생님을 어떻게 양성하려고 계획하고 있나요?”
“시리아 북부 지역에는 원래 200만 명이 살고 있는데, 지진 이후 350만 명의 난민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선생님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금 대학에서도 교육학과에서 교사를 많이 배출하고 있고, 찾아보면 많은 선생님을 모집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아이들 교육 문제를 한꺼번에 다 해결할 수 있으면 가장 좋지만 예산과 인력 부족으로 현실적으로는 일부분만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선순위를 정해야 합니다. 첫째, 중학교보다는 초등학교 만드는 것을 우선해야 하고, 둘째, 무조건 건물만 지으려고 하지 말고 텐트 학교부터 확산시키는 것을 연구해 볼 필요가 있고, 셋째, 교사자격증이 없더라도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약간의 훈련을 받아서 교사를 할 수 있게 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이렇게 가장 기본적인 교육을 먼저 시행하면서, 텐트 학교를 건물 학교로 전환해 나간다든지, 임시 교사를 정규 교사로 바꿔나간다든지 하면 좋겠어요. 교육은 시기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화이트 헬멧 활동가들은 그동안 국제 사회의 지원이 식량에 집중되어 있었다고 하면서 스님의 제안대로 교육 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는 것에 크게 공감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이후 사업의 방향을 구체화하기 위해 세 가지를 제안했습니다.
“모레 회의를 할 때 세 가지를 준비해 주세요. 첫째, 학교 준공식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둘째, 지진으로 인한 학교 건물의 피해 현황과 복구 현황 그리고 남은 과제가 무엇인지, 셋째, 350만 명의 난민아이들 교육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여기에 대해 많은 논의를 했으면 좋겠습니다.
학교 건물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이 교육의 시기를 놓치지 않도록 해주어야 합니다. 나무 밑이든 텐트 안이든 일단 아이들이 교육을 받을 수 있게 해주는 게 가장 중요합니다. 아이들 교육 문제를 빨리 해결하고 싶은데 교사를 도저히 구하기가 어렵다면, 온라인 기술을 활용한 교육 방법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규학교를 하나 만들어서 거기서는 우수한 교사가 양질의 교육을 하도록 하고, 나머지 수백 개의 학교에서는 그 수업을 온라인으로 전부 연결해서 듣도록 하는 겁니다. 대신 교실마다 영상 틀어주고 과제 내주고 아이들을 관리해주고 하는 보조교사가 한 명씩 필요합니다. 이렇게 온라인 기술을 도입하면 한꺼번에 몇 만 명이 양질의 수업을 듣도록 하는 게 가능합니다. 텐트 학교 하나에 보조교사 한 명만 있으면 어디서든 학교를 열 수 있으니까 빠른 속도로 많은 학생들에게 교육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난민캠프에는 인터넷이 없는 곳이 많습니다.”
“위성에서 인터넷 데이터를 받는 ‘스타링크’라는 위성 인터넷 서비스가 나왔잖아요. 그걸 잘 활용하면 되지 않을까요?”
“스님께서 주신 아이디어가 너무 좋습니다. 하지만 인프라가 거의 구축되어 있지 않아서 인프라도 함께 구축하면서 아이들 교육 문제도 해결해 나가야 합니다. 아직 저희들도 교육 문제는 많이 고민해 보지 못했습니다.”
“좋아요. 모레는 이 문제들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눠봅시다.”
내일 답사할 때 JTS가 짓고 있는 학교 외에도 보수하지 못한 학교와 보수 중인 학교를 몇 곳 더 보여줄 것을 요청한 후 대화를 마쳤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스님은 원고 교정과 업무들을 본 후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엊그제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린 즉문즉설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대화를 나눈 내용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자꾸 ‘남이 잘못했다’ 이렇게 생각하면 그 사람을 미워하게 됩니다. 반대로 ‘내가 잘못했다’ 이렇게 생각하면서 나를 미워하는 것이 자책감과 후회입니다.
남편을 향해서 ‘술만 안 먹으면 좋겠다’ 하고 바라보지만 그 사람 수준에서는 그게 안 되는 걸 어떡해요? 안 되는 걸 내가 자꾸 원하고 있기 때문에 미움이 생기는 겁니다. ‘내가 조금만 자존감이 있었으면’, ‘내가 조금만 마음이 넓었으면’ 하고 바라지만 질문자의 수준으로는 그렇게 하는 게 안 되었잖아요. 그런 행동을 두고 ‘과대망상’이라고 하는 겁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이 비난을 받았다고 펄쩍펄쩍 뛰어요. 본인이 없는 데서 자기들끼리 뒷말을 했다고 아주 괴로워합니다. 그러면 제가 ‘당신은 부처님보다 잘 났습니까?’ 이렇게 물어봅니다. 그러면 ‘아니요’ 하고 대답합니다. 우리가 훌륭한 분이라고 여기는 부처님에 대해서도 비난하고 욕하는 사람들이 부처님 당시에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욕하는 정도가 아니라 혹세무민 하는 자라고 해서 십자가에 못을 박아 죽였어요. 그런데 내 주제에 뭐가 잘났다고 욕을 안 얻어먹으려고 합니까? 그래서 과대망상이라고 하는 겁니다.
질문자도 ‘조금만 잘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늘 생기지만 질문자는 정작 그 ‘조금’을 하는 게 잘 안 되잖아요. 그러니 ‘저 사람이 조금만 잘했으면 이혼을 안 했을 텐데’ 하는 말과 ‘내가 조금만 잘했으면 이혼을 안 했을 텐데’ 하는 말은 둘 다 똑같은 말입니다.
질문자의 생각에는 자신이 조금 발전한 것 같다고 하지만, 하나도 발전한 게 없어요. 똑같아요. 단지 이혼에 대한 책임을 저쪽으로 가져갔다가 지금은 이쪽으로 가져왔다는 그 차이밖에 없습니다. 남을 미워하면서 내가 괴로워하나, 나를 미워하면서 내가 괴로워하나 마찬가지예요. 발전은 무슨 발전입니까? 저기 있던 걸 여기로 옮겨놓은 것일 뿐이죠. ‘내가 부족해서 그런 일이 생겼다, 그때 잘못을 안 했더라면’ 이런 얘기는 필요 없는 얘기이고 이미 다 지나간 얘기입니다. 그때 잘못한 것은 사실이잖아요. ‘그래. 그때 내가 어리석어서 이혼을 했다’ 이렇게 사실을 인정하고 끝나야 돼요. '앞으로 내가 만약에 누군가를 새로 만난다면 이걸 참고해서 좀 덜 어리석어야 되겠다’ 이렇게 생각을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때는 미운 감정에 사로잡혀서 그 사람의 좋은 점을 몰랐는데, 이렇게 헤어지고 보니 그 사람의 괜찮은 점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는 얘기인 것 같네요. 원래 옛날부터 ‘나 먹기는 싫어도 남 주기는 아깝다’ 하는 말처럼 지금 질문자도 남에게 주고 보니 아깝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우리는 항상 가지고 있을 때는 그 가치를 잘 모르다가 막상 내놓고 나면 그제야 좋은 점들을 보게 됩니다. 모든 사람은 다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어요. 그런데 나와 같이 있을 때는 좋은 점을 당연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나쁜 점들만 보이는 겁니다. 또 헤어지면 나쁜 점은 안 보이고 좋은 점들만 보입니다. 그러니 이런 감정에 미련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 미련이 남는다면 그냥 전화해서 솔직하게 얘기하면 돼요.
‘여보, 우리 다시 만나자,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내가 당신의 좋은 점을 몰랐다. 내가 미쳐서 귀한 보배를 알아보지 못하고 버렸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당신만 한 사람도 없더라. 내가 사과할게.’
이렇게 솔직하게 말하면 됩니다. 미련이 남는다면 최선을 다해 다시 시도해 봐야 합니다. 체면을 따지면 안 돼요. 그렇게 해봐야 미련이 안 남거든요. ‘내가 다시 노력해도 소용이 없구나’ 이렇게 결론이 나야 혼자 살든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든 후회가 없습니다. 만약 미련을 계속 갖고 있으면 ‘그때 내가 더 해 볼 걸’ 하고 후회를 자꾸 하게 되어 내 삶에 계속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러니 만약 미련이 남는다면, 그 사람을 보기보다는 자신을 들여다봐야 합니다. ‘술을 마신다’, ‘바람을 피운다’ 이런 걸 따지면서 상대가 바뀌기를 바라지 말고, ‘그 모든 걸 감안하더라도 이 사람은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네’ 하고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처음에는 상대가 100점짜리인 줄 알고 결혼을 했는데, 살아보니 70점밖에 안 돼요. 그래서 이혼하고 다른 사람을 찾으려고 하면 50점짜리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이혼하고 나서 후회를 하게 되는 겁니다. 100점짜리인 줄 알고 차를 샀는데 흠집이 나서 70점밖에 안 되길래 중고차 시장에 내놓고 다른 중고차를 보러 갔더니 그만한 차가 없는 겁니다. 그러면 다시 중고차를 사야 할까요? 원래 차를 팔지 말아야 할까요?” (웃음)
“원래 차를 팔지 않으면 됩니다.”
“그래서 항상 헤어질 때도 감정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합니다. 어차피 다른 중고차들도 다른 사람들이 타던 겁니다. 새 차를 살 게 아니라면 그래도 내가 오래 탄 중고차가 낫지 않나요? 남이 실컷 탄 중고차가 더 낫습니까?
저는 후회가 왜 생기는지에 대해서 말하는 겁니다. 결혼을 할 때 좋은 점만 보고 성급하게 결정을 했기 때문에 막상 살아보면 후회가 생기는 거예요. 마찬가지로 이혼을 할 때는 안 좋은 점만 보고 덜컥 결정을 합니다. 결혼할 때 충분히 생각하지 못한 점을 반성했다면, 이혼할 때는 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지 않나요? 그런데 여러분은 충분한 고려를 하지 않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어요. 한번 후회하면 됐지 왜 두 번이나 후회해요? 첫 번째는 몰라서 그랬다 하더라도, 두 번째는 경험이 있으니 조금 더 지혜로워져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이혼하라거나 이혼하지 말라거나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닙니다. 결혼할 때 덜 신중했기 때문에 이혼할 때는 좀 더 신중하라는 말을 하는 겁니다. 여러분들이 결혼을 하든 이혼을 하든 전 세계적으로 보면 그게 중요한 일이겠어요? 산에 사는 동물들이 어느 동물과 교미하든 그게 뭐가 중요해요? 자연생태계 전체를 놓고 보면 하등 중요한 게 아니에요. 이 동물과 살든, 저 동물과 살든, 상대를 열 번을 바꾸든, 저는 그런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이혼을 하지 말라는 얘기를 안 합니다. 다만 결혼할 때 잘못했다고 이미 후회를 해놓고서는 또 똑같은 방식으로 이혼하고 후회를 하려고 하니까 제가 한 번 점검해 주는 것입니다.
바보 같은 짓을 똑같이 되풀이하지 말라는 얘기인데, 여러분들은 이걸 이혼하지 말라는 얘기로 받아들여요. 저는 여러분들이 결혼하든, 이혼하든, 돈을 벌든, 돈을 벌지 않든, 그런 것들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 문제로 괴로워하기 때문에 제가 몇 마디 조언을 해주는 겁니다. 결혼을 해도 괴롭지 않아야 하고, 이혼을 해도 괴롭지 않아야 합니다. 혼자 살아도 괴롭지 않고, 둘이 살아도 괴롭지 않다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매일매일 한 사람씩 바꿔 살아도 괴롭지 않다면 그것도 괜찮아요. 그건 자유니 까요.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 아니라면요. 그런데 여러분들의 문제는 자신이 선택해 놓고 책임도 지지 않고 괴로워한다는 겁니다.
질문자는 한국에 살아도 되는데 자기가 원해서 스위스에 와놓고는 스위스를 욕하면 모순이잖아요. 그것처럼 수많은 남자 중에 제일 좋다고 생각해서 선택해 놓고는 상대를 나쁜 인간이라고 욕하면 모순 아니에요? 그렇게 본인이 선택한 사람을 나쁜 인간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제가 질문자를 우습게 보는 거예요. 질문자의 눈을 어떻게 믿을 수 있으며, 질문자의 정신 상태를 어떻게 믿을 수 있겠어요?
그러니 이혼을 했다 하더라도 상대를 욕하면 안 됩니다. 서로 안 맞는 게 있으니까 헤어질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를 욕할 이유는 없다는 거예요. 자식이 부모를 계속 욕하면 어떻게 될까요? 자식은 부모의 육체적인 것만 닮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가지 정신적인 면도 많이 닮게 됩니다. 그러니 부모가 나쁜 사람이라고 말하면 자신에게도 그 나쁜 면이 전이가 되어 있는 겁니다. 그래서 자존감이 떨어져요. 부모님을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자존감이 생길 수 있겠습니까?
만약 여러분이 자신의 배우자에게 ‘너는 짐승보다도 못한 사람이야’ 이렇게 말하면, 자기 자식도 짐승보다 못한 사람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아내나 남편을 욕하지 말라는 거예요. 자식이 없으면 배우자를 욕해도 됩니다. 그러나 자식이 있으면 그 자식은 짐승의 자식이 되잖아요. 결국 자기를 욕하는 것이 되는 겁니다. 자신의 자존감을 없애는 행위예요.
이혼한 뒤에도 아이들 앞에서 배우자를 욕하게 되면 아이들의 자존감이 없어집니다. 남이 자신의 부모를 욕할 때는 상처가 될 수도 있지만 상처가 안 될 수도 있어요. 왜냐하면 상대가 잘못 알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부모가 배우자를 욕하게 되면, 예를 들어 엄마가 아빠의 욕을 하게 되면, 그 말이 맞으면 아빠가 나쁜 사람이 되고, 그 말이 틀리면 엄마가 나쁜 사람이 됩니다. 왜냐하면 엄마는 거짓말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래도 저래도 아이에게는 정신분열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부모는 아이들이 상처를 입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이혼하는 것은 자유인데 절대로 아이들 앞에서 아내나 남편을 비난하면 안 됩니다. 항상 ‘내가 부족해서 그렇다. 너희 아빠는 좋은 사람이었다’ 이렇게 아이에게 말해야 나에게도 좋고 남편에게도 좋고 아이에게도 좋습니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모두에게 좋은 길을 가야 합니다. 꼭 이혼했기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 입는 것이 아닙니다. 상대를 비난하고 미워하기 때문에 아이들이 상처를 입게 되는 거예요.”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내일은 새벽 4시에 숙소에서 수행법회 생방송을 한 후 국경 변으로 이동하여 지진 피해 복구 현장을 둘러보고 JTS가 짓고 있는 학교 건물을 방문하고, 화이트 헬멧 활동가들과 미팅을 한 후 다시 가지안테프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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