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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홍수 피해로 수많은 이재민이 발생한 인도 아삼주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하고, 막사이사이상 수상자인 라비 칸난 님이 극빈층을 위해 운영하는 병원을 방문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5시에 아침식사를 하고, 5시 30분에 긴급구호 활동을 하기 위해 홍수 피해 지역으로 향했습니다.
3일 전에 인도JTS 긴급구조단을 파견하여 사전 답사를 하고 구호품을 모두 준비해 두었습니다. 홍수 피해가 가장 심한 아삼주 모리가온 지역 안에서도 뿌라가온 마을이 외부 단체의 지원도 받지 못한 채 가장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모리가온에서 차로 한 시간을 달려 뿌라가온 마을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홍수 피해를 입은 마을을 한 바퀴 둘러보았습니다.
“나마스떼!”
물에 잠긴 마을은 원래 마치 바다였던 것처럼 온 세상이 물바다로 변해 있었습니다. 강물은 아직도 물살이 거셌습니다.
3개 마을에 1067 가구가 물에 잠겼고, 이재민들은 물에 잠긴 집을 떠나 강둑 위에 임시로 텐트를 쳐서 숙식을 해결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이 강둑마저 터지면 피해가 엄청나게 커집니다. 홍수 피해를 입지 않으려면 강둑 밖에는 사람이 안 살아야 하는데 가난하니까 여기밖에 살 곳이 없는 거예요.”
텐트 생활을 한지 일주일이 넘었지만 물이 아직 안 빠져서 모기가 너무 많아 주민들은 모기장이 필요하다고 호소했습니다. 정부에서 1차로 식량 지원을 했으나 4일치에 불과했고, 지금은 비가 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에서 더 이상 지원을 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주민들의 어려운 사정을 듣고 JTS에서는 쌀, 달, 오일, 소금이 들어간 푸드 세트와 아기들을 위한 분유, 모기장을 신속히 준비하여 오늘 주민들에게 배분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홍수 피해 현장을 둘러본 후 이재민들이 구호품을 받기 위해 모여 있는 강당으로 향했습니다. 구호품을 배분하기 전에 먼저 스님이 주민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습니다.
“비가 많이 와서 놀랐죠?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어요? 잃어버린 동물은 없어요?”
“아삼주에서는 16명이 죽었는데, 여기는 다행히 죽은 사람이 없습니다.”
“갑작스러운 홍수로 많은 것을 잃어버린 여러분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큰 도움은 안 되겠지만 임시로나마 필요한 것들을 지원해 드릴 테니 조금이라도 도움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질서를 지켜서 한 명씩 구호품을 받아 가세요.”
이어서 구호품 배분을 시작했습니다. 어제 인도JTS 활동가들이 마을을 방문하여 쿠폰을 미리 나눠주었습니다. 차례대로 줄을 세운 후 쿠폰을 먼저 확인했습니다.
인도JTS 활동가들이 각자 자리에 위치하자 스님이 구호품 배분을 시작했습니다.
“한 번 질서가 무너지면 걷잡을 수 없이 무너져요. 질서를 잘 유지해야 합니다. 자, 시작합시다.”
트럭에서 쌀포대를 내려주면 스님이 쌀포대를 주민들에게 나눠주었습니다.
쌀포대가 무거워서 받을 때마다 휘청거렸지만 주민들의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습니다.
“단야바드!” (감사합니다.)
35도가 넘는 무덥고 습한 날씨 속에서 쌀포대를 계속 들고 나르다 보니 온몸이 땀으로 젖었습니다.
아기가 있는 여성에게는 분유와 비스킷을 추가로 나눠주었습니다.
주민들은 쌀포대를 머리에 이거나 자전거에 싣고 임시 텐트로 향했습니다.
구호품 배분이 모두 끝나자 주민들을 대표해서 마을 이장님이 스님에게 감사 인사를 했습니다.
“아삼주 전체에 홍수 피해가 있었지만 이 지역에는 아무도 도움을 주러 오지 않았어요. 그런데 JTS에서 우리를 찾아와 주셨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저도 하루 종일 같이 배분을 하면 좋은데, 저는 오늘 실차르로 이동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까지 배분을 잘해 주세요.”
인도JTS 긴급구조단과 마을 이장들은 다음 마을로 이동하여 구호품 배분을 계속해야 합니다. 스님은 다음 마을에서는 어떻게 배분해야 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지 몇 가지 지침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구호품을 배분할 때는 항상 안전이 가장 중요합니다. 앞으로는 7시에 구호품을 배분한다고 하면, 7시 전에 도착한 사람들에게만 구호품을 배분해야 합니다. 늦게 오는 사람들은 밖에서 기다리게 해야 해요. 안 그러면 일찍 온 사람들이 항의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말뚝을 박고 라인을 쳐서 한 줄로 사람들을 세워야 해요. 그래야 질서가 유지될 수 있습니다. 힘이 없는 할머니들을 위해서는 마을 청년들이 대신 구호품을 받아서 들어주는 것도 필요해요.
배분이 다 끝나고 나면 그때 늦게 온 사람들을 새로 줄 세워서 배분해야 합니다. 늦게 오는 사람들은 구호품을 안 주겠다는 뜻이 아니에요. 늦게 오는 사람이 자꾸 중간에 끼어들면 혼란이 일어나게 됩니다.
만약에 비가 많이 오거나 해서 대부분이 늦는 일이 생기면, 구호품 배분을 한두 시간 후로 연기해야 합니다. 사람이 어느 정도 모이면 배분을 시작해야 합니다. 개인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 사정이 있겠지만 그걸 고려하다 보면 전체 시스템이 무너져서 분쟁이 생겨요. 안전을 최우선으로 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 마을의 일이니까 모두가 힘을 합해서 평등하게 배분이 되도록 하자는 거예요. 다음 마을에 가서 배분할 때는 이 점을 유념하시면 좋겠습니다.”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스님은 인도JTS 활동가들에게도 당부를 했습니다.
“잘했어요. 그런데 구호품을 배분해 보면, 늦게 오는 사람, 쿠폰을 잃어버린 사람, 한 번 받았는데 또 달라고 하는 사람, 이런 사람들이 항상 생깁니다. 그런 일을 최소화하자는 것이지 그런 일이 안 생길 수는 없어요.”
“명심하겠습니다.”
“수고해 주세요.”
오전 8시에 구호품 배분을 모두 마쳤습니다. 인도JTS에서는 이틀 동안 3개의 마을에 구호품을 배분할 계획인데 이제 첫 번째 마을에 대한 배분을 끝냈습니다. 인도JTS 활동가들은 두 번째 마을로 이동하고, 스님은 차를 타고 곧바로 구와하티 공항으로 향했습니다. 차창 밖으로 홍수로 잠긴 마을들이 계속 보였습니다.
오전 10시에 구와하티 공항에 도착하여 체크인을 했습니다.
체크인을 마치고 공항에서 점심식사를 했습니다.
12시 55분에 구와하티 공항을 출발한 비행기는 1시간을 비행하여 1시 55분에 실차르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공항을 나오자 막사이사이상 수상자인 라비 칸난(Ravi Kannan)님이 운영하는 카차르 암병원(CCHRC)에서 직원들이 나와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나마스떼!”
차를 타고 곧바로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숙소에 짐을 풀고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 준비를 했습니다.
인터넷이 잘 되는 곳에 자리를 잡고 현지 시간으로 오후 4시 정각에, 한국 시간으로는 저녁 7시 30분에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유튜브 스트리밍을 시작하자 3900명이 생방송에 접속했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시청자들에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인도 동북부의 아삼 주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실차르(Silchar)에 조금 전에 도착해서 여러분과 지금 이렇게 만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베트남, 캄보디아를 거쳐 방콕에서 여러분들을 뵈었고요. 그리고 부탄에 가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 진행되고 있는 사업을 점검한 후 육로를 통해 국경을 넘어 인도로 들어왔습니다.
인도의 아삼주에는 지금 큰 홍수가 나서 주민들의 피해가 아주 큽니다. 그래서 인도JTS에서는 다섯 명의 활동가를 파견해서 아삼주에서 긴급구호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마침 제가 아삼주를 방문하기로 예정된 일이 있어서 하루 일정을 변경하여 오늘은 이재민들을 위해 식량과 생필품을 지원하는 일을 했습니다. 아침 일찍 긴급구호 활동을 한 후 이곳 실차르로 오게 됐습니다.
실차르에는 라비 칸난이라는 의사가 동료들과 함께 연간 2000명의 가난한 암 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해 주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그분이 작년에 막사이사이상을 수상했는데, 그것을 인연으로 그분의 병원을 둘러보고 어떻게 협력할 수 있을지 이야기도 나누고 격려도 할 예정입니다.”
이어서 지난주에 캄보디아에서 여학생 기숙사 준공식을 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영상이 끝나고 스님이 다시 말을 이었습니다.
“캄보디아는 오랜 전쟁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었습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킬링필드’라는 엄청난 불행을 겪은 나라입니다. 그러나 바탐방 지역에서 마지막 평화협상을 하여 적대 세력을 섬멸하거나 끝까지 저항하지 않고 서로 평화조약을 맺고 지금의 평화를 가져왔습니다. 저는 오늘의 남북 관계를 보면서 꼭 상대를 제압하여 내가 승리하는 길을 찾지 말고 상호 이해하고 협력할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여야 정치인들이 압도적으로 상대를 제압하려고 하는 승리의 길보다는 서로 협력하는 평화의 길을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렇게 저는 지금 한국 밖에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도 많은 비가 내려서 수해를 입고 절망에 빠진 분들이 있다는 소식을 뉴스로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시간을 좀 내어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를 해주시거나 마음이라도 그들의 아픔에 함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네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자신을 무척 싫어하고 자신에 대해 험담을 하고 다니는 직장 동료가 있다며,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하는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스님은 가볍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직장에 다녀요?”
“네.”
“그 사람은 애인도 아니고, 남편도 아니고, 가족도 아니기 때문에 질문자가 그 직장을 그만둬버리면 그 사람하고는 만날 일이 없어지잖아요. 직장을 그만둬 버리는 길이 제일 쉽지 않을까요? 그 길을 선택하면 되는데 왜 선택을 못하는 거예요?”
“고민해 보긴 했는데 너무 싫은 그 친구 때문에 직장을 포기하는 게 좀 억울한 감정이 듭니다.”
“그 친구 때문에 직장을 포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니까 그렇지요. ‘방콕이 음식도 싸고 구경거리도 많아 좋은데 날씨가 너무 더워서 못 살겠다’, ‘인도가 너무 좋은데 거리가 너무 지저분해서 못 살겠다’ 이런 생각들은 그 사람들의 문제가 아니잖아요.
나에게 좋은 걸 내가 선택하면 되는 것이지 상대를 탓할 필요는 없습니다. 어디를 가도 모든 사람에게는 다 그런 요소도 있고, 모든 상황에는 그런 일이 생길 소지가 있습니다. 그 회사가 좋지만 그런 친구나 그런 상사가 있는 게 또한 그 회사의 현실이잖아요. 그게 도저히 싫어서 못 견디겠다면 그냥 회사를 그만두면 됩니다. 그 친구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고 싶은 마음하고 회사에서 내가 얻는 이익하고 둘을 비교해 보면 어때요? 아직은 회사에서 얻는 이익이 더 많기 때문에 회사를 그만두지 못하는 거겠죠. 어떻게 생각해요?”
“맞는 것 같습니다. 일도 너무 재밌어서 계속하고 싶은데, 그 동료를 매일 봐야 하는 게 고통스러운 마음입니다.”
“그 동료는 내가 바라는 만큼의 좋은 사람은 아닐지라도 회사에서는 그런 사람도 필요하니까 그냥 두고 보는 게 아닐까요? 모든 사람이 그 사람은 필요 없다고 한다면 벌써 회사에서 그 사람을 내보냈겠지 왜 남아 있겠어요? 그러니 그 사람도 내가 좋아하는 회사의 일부예요. 그걸 감안하고 내가 이 회사에 다닐지 말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게 도저히 싫으면 아무리 회사가 월급도 많이 주고 일이 재미있다 하더라도 포기해야 합니다.
남자가 인물도 잘생겼고, 돈도 많고, 똑똑하고, 다 좋은데 자꾸 바람을 피운다면 내가 선택해야 될 거 아니에요? 남자가 바람피우는 걸 받아들이고 같이 살든지, 다른 열 가지가 좋아도 나는 바람피우는 남자는 싫다고 하면 그만두든지, 둘 중에 자기가 선택을 해야지요.
‘그 남자는 바람만 안 피우면 참 좋은데’ 이런 얘기는 할 필요가 없어요. ‘이 회사는 다 좋은데 그거 하나만 문제다’ 이런 얘기도 할 필요가 없어요. 상사 문제도, 동료 문제도, 아랫사람 문제도, 월급 문제도 다 감안을 해보니까 아직은 회사를 다니는 게 이익이 많은 겁니다. 그래서 지금 그 회사를 다니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도 '이것만 없었으면 좋겠다' 자꾸 이런 생각을 하니까 괴로운 것입니다. 그 사람도 그냥 이 세상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예요. 세상 어디를 가든지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어요. 그 사람이 '네가 뭐 잘났어? 네가 문제야' 이렇게 얘기할 때 그 말이 일리가 있으면 '그래, 당신 말이 맞네' 이렇게 받아들이면 되고, 일리가 없으면 '그건 당신의 관점이니까 당신 혼자 그렇게 생각해라. 나는 나대로 산다'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그 사람이 저를 바라보는 모습이 사실일 수가 있잖아요. 그래서 그 사람이 저의 문제점을 얘기했을 때 자꾸 그 말을 되돌아보게 되는 것 같아요.”
“이 세상에 어떤 주장도 사실은 없습니다. 그 사람이 얘기하는 것은 그 사람의 관점이에요. 나를 좋다는 사람의 말도 사실이 아니라 그 사람의 관점이에요. 내가 나쁘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면 그 무리 속에서는 그런 관점을 갖는 사람이 많은 것일 뿐입니다. 진실이 무엇인지는 알기가 쉽지 않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어떤 사실에도 좋고 나쁨이 없다는 것입니다. 좋고 나쁨이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에서 생겨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보는 관점에서 ‘좋다’, ‘나쁘다’ 하고 말하는 것이지 사실은 좋은 것도 없고 나쁜 것도 없습니다. 옳은 것도 없고, 그른 것도 없습니다. 공(空)입니다. 사실은 공(空)이기 때문에 ‘내가 나쁜 게 사실일까’, ‘내가 좋은 게 사실일까’ 이런 생각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신이 있는 게 사실일까’, ‘신이 없는 게 사실일까’ 이런 생각도 잘못된 겁니다. 이 사람은 신이 있다고 믿는 것이고, 저 사람은 신이 없다고 믿을 뿐이에요. ‘두 사람의 믿음이 서로 다르구나’ 이렇게 바라봐야 합니다.
회사 동료들 중에 어떤 사람은 내가 너무 잘난 척한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은 나를 똑똑하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은 나를 솔직하다고 봅니다. 이렇게 사람마다 보는 관점이 서로 다릅니다. '이 사람은 이렇게 보네‘, ’저 사람은 저렇게 보네' 이렇게 받아들이면 됩니다. 그런데 나를 칭찬하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좋고, 나를 나쁘게 보는 사람을 만나면 기분이 나쁘죠. 그래서 인생살이가 좋았다 나빴다 하며 힘들어지는 겁니다.
'세상 사람들 중에는 이렇게 보는 사람도 있고, 저렇게 보는 사람도 있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면 아무 문제도 없어요. 질문자는 모든 사람이 나를 좋게 봐주기를 원하기 때문에 지금 괴로운 겁니다. ‘사람들은 다 자기 마음대로 보는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그리고 나를 험담하고 다니는 사람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초기에는 조금 기분이 나쁩니다. 그 사람이 나를 험담하고 다녀서 내 이미지가 나빠지니까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알고 봤더니 그 사람 안 그렇네. 생각보다 괜찮다' 이렇게 바뀔 가능성이 높습니다. 조금 크게 보면 별 문제가 아니에요. 그래서 스님이 처음부터 얘기를 듣자마자 웃은 겁니다. 별일 아니기 때문이에요. 이런 게 인간 세상입니다.”
“그렇다면 그 동료를 미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계속 살아도 될까요?”
“미워하면 질문자가 손해죠. 그 사람은 그냥 자기가 생긴 대로 사는데 내가 그 사람을 미워하면 나만 괴롭지요. 질문자가 바보라면 그 사람을 계속 미워하면서 사세요. '그래봤자 나만 손해네' 하는 생각이 들면 미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미워할 대상도 아니고, 칭찬할 대상도 아닙니다. 그 사람은 그냥 그렇게 말할 뿐이에요.”
“감사합니다.”
“그 사람을 계속 미워하면서 괴롭게 사는 것도 질문자의 선택이고, '알고 봤더니 그렇게 생긴 인간이네. 미워해봤자 나만 손해네' 하고 미움을 털어버리고 사는 것도 질문자의 선택이에요. 그 사람을 미워하는 것도 나의 관점일 뿐입니다. 누군가는 그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것도 그 사람의 관점이에요. 그 사람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라서 좋아하는 게 아니라 그렇게 바라보는 것일 뿐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양이를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고양이를 싫어합니다. 그건 그 사람의 취향이지, 고양이나 개에게 좋아할 만한 요소가 있거나 싫어할 만한 요소가 있는 게 아니에요. 그냥 고양이는 한 마리 짐승이고, 개도 한 마리 짐승인데,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을 뿐입니다. 그걸 보고 내가 미워하면 나만 손해지요. 산에 가서 나무가 크다고 기분 나빠하고, 나무가 작다고 기분 나빠하고, 그러면 나만 괴롭습니다.
산에는 큰 나무도 있고, 작은 나무도 있고, 양지에서 자라는 식물도 있고, 음지에서 자라는 식물도 있고, 다양한 종류가 있잖아요. 그것처럼 사람도 생긴 것이 다양하고, 얼굴 빛깔도 다양하고, 성격도 다양하고, 믿음도 다양하고, 취향도 다양합니다. 내가 볼 때는 왜 저렇게 생겼나 하지만 그렇게 태어난 걸 어떡해요? 내가 볼 때는 사람이 왜 저런 생각을 하나 싶지만 그 사람은 태어나서 그렇게밖에 생각을 못 하는 걸 어떡해요? 왜 저 사람은 저걸 믿나 하지만 저 사람은 어릴 때부터 부모도 그렇게 믿었는 걸 어떡해요? 그게 안 좋아 보이면 나는 그렇게 안 하면 될 뿐입니다. 그러면 질문자의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질문자가 좀 더 지혜롭다면 그런 사람 때문에 회사를 때려치울 필요가 없는 겁니다. 질문자가 어리석으면 동료가 내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는다고 회사를 때려치우게 되는 겁니다.”
“감사합니다. 그 사람이 저를 참 힘들게 하긴 했지만 세상에는 그런 일이 늘 일어날 수 있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그 사람이 나를 힘들게 한 게 아니에요. '그 사람을 보고 내가 힘들었다' 이렇게 표현해야 됩니다. 나를 힘들게 하려고 그렇게 말했는지 그 사람한테 한 번 물어보세요. 그 사람은 그냥 자기가 느낀 대로 말했을 뿐이지, 질문자를 괴롭히려고 그렇게 말한 것은 아니라고 대답할 겁니다. 자기 성질을 못 이겨서 그렇게 말했을 뿐이에요. 그러니 ‘그 사람이 나를 힘들게 했다’ 이렇게 보지 말고 ‘그 사람 행동을 보고 내가 힘들어했네. 그래봐야 나만 손해네’ 이렇게 받아들여 보세요. 그런 사람도 세상의 한 부분으로 보면 됩니다. 그 사람 때문에 내가 괜히 힘들어할 필요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에 답변을 다 하고 나니 생방송을 마칠 시간이 되었습니다. 스님이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까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네요. 다음 주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여러분을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다음 주에 또 뵙겠습니다.”
생방송을 마치고 스님은 라비 칸난 님을 만나기 위해 카차르 암병원(CCHRC)으로 향했습니다. 저녁 6시 30분에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라비 칸난 님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반갑습니다. 어떻게 지내셨어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칸난 님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보러 왔습니다.”
차담을 나누며 함께 온 일행을 소개하고 서로의 안부를 주고받았습니다.
“스님 일정을 보니까 무척 피곤하실 것 같은데 괜찮으신가요?”
“예, 저는 아주 좋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이곳에서 종일 시간을 냈습니다. 오늘 아침에는 아삼주 모리가온 지역에 홍수 피해가 크게 났다고 해서 이재민들을 위해 긴급구호 활동을 하고 왔습니다.
저는 승려기 때문에 사람들의 심리적인 어려움을 치료하는 일을 합니다. 내일 즉문즉설을 할 때도 종교적 이야기보다는 인생살이에서 겪는 어려움을 이야기하면 됩니다.”
라비 칸난(Ravi Kannan)님은 작년 11월 막사이사이상 수상식에서 스님과 처음 만났습니다. 연간 5000명의 빈곤층 환자들에게 암 치료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돈이 없어서 치료를 받을 수 없는 사람은 없어야 한다’라고 말한 라비 칸난 님의 수상 소감을 듣고 스님도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수상식이 끝나고 꼭 병원을 방문하겠다고 약속했고 오늘 드디어 병원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칸난 님은 자신의 동료들을 정성스럽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한 분 한 분을 소개할 때마다 칸난 님이 동료들을 얼마나 아끼는지 고스란히 전해졌습니다.
“이 병원에서 일하는 460명 중에서 230명이 간호사입니다. 이 분은 간호사들을 총괄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계신 분입니다.”
동료들에 대한 자세한 소개를 마치고, 6시 50분부터 라비 칸난 님의 안내로 병원을 한 바퀴 돌아보았습니다.
제일 먼저 소개한 곳은 환자들이 병원을 찾아왔을 때 첫 번째로 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환자들이 제일 처음 병원에 도착하면 이곳에서 상담을 받습니다. 환자가 처음 이 병원에 왔을 때 그 처음이 제일 중요합니다. 대부분 자신의 병에 대해서 엄청난 두려움을 갖고 오기 때문에 신중하게 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곳에서 상담을 먼저 해서 어떤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알려줍니다.
이 병원에서는 처음 상담할 때 500루피(8천 원)만 내면 평생 그 환자에 대한 치료 비용이 무료입니다. 왜냐하면 병원에 올 때마다 비용을 내야 하면 그게 부담이 되어 치료를 못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 번 비용을 내면 평생 올 수 있게끔 하고 있습니다.”
“정말 좋은 일을 하십니다.”
병원의 운영 목적이 가난한 사람들도 암 치료를 받을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접수부터 암 진단, 치료, 입원 생활 등 모든 과정에서 가난한 이들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었습니다.
칸난 님은 환자가 병원에 왔을 때 진료실을 찾아가는 순서대로 차례차례 안내해 주었습니다. 공간에 대한 소개뿐만 아니라 직원을 만날 때마다 그 사람이 이 병원에서 어떤 역할을 얼마나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지 애정을 가지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습한 날씨에 에어컨도 없는 공간에서 땀이 줄줄 흘렀지만, 설명하는 칸난 님의 얼굴에도, 소개를 받는 직원들의 얼굴에도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이어서 물리 치료실과 치과 진료실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모든 방에 불이 켜져 있고, 의사와 간호사가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스님이 질문했습니다.
“병원은 몇 시까지 엽니까?”
칸난 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마지막 환자의 진료가 끝날 때까지 운영합니다. 문 닫는 시간이 따로 없습니다. 환자들은 멀리에서 오기 때문에 이 병원에서 일하는 모든 직원이 지켜야 할 원칙은 ‘누군가가 오면 반드시 만나 주어야 한다’입니다. 가난한 환자들이 먼 곳에서 큰 마음을 내어 병원을 찾아오는데, 병원에 늦게 도착해 허탈하게 집에 돌아가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자리를 옮겨 최첨단 장비인 양전자방출단층촬영(Pet CT) 장비가 있는 건물로 가보았습니다.
“이 병원의 모든 기계와 장비들은 기부를 받은 것입니다. 현재 의료 기술적으로 이만한 장비가 없다고 하면서 누군가가 지원해 준 것입니다. 전자파를 이용해서 암을 치료하는 장비입니다.”
“최신 기계도 도입했네요.”
칸난 님은 자신 있게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가난한 사람이라고 해서 질이 떨어지는 치료를 받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최첨단 장비가 있는 건물이 1층으로만 되어 있었습니다. 칸난 님이 설명했습니다.
“이 건물은 원래 4층으로 지으려고 계획했는데 1층까지밖에 못 지었습니다. 한꺼번에 지을 수 있는 돈이 없다 보니까 지원하는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조금씩 시설과 장비를 확충하고 있습니다.”
스님이 질문했습니다.
“앞으로 홍수 피해가 자주 나면 장비가 위험할 텐데요. 기후 위기가 오면 홍수가 더 자주 생길 겁니다. 건물을 더 올려서 장비도 2층으로 올려야 하지 않을까요?”
“다행히 이 장비는 홍수 피해가 생긴 다음에 들어와서 아직 피해가 없었습니다. 너무 무거워서 2층으로 올리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웃음)
다시 병동으로 가서 말기암 환자들이 입원해 있는 곳을 보았습니다.
“완치가 어려운 환자들을 이곳에서 보호하고 있습니다.”
칸난 님은 이 병원의 특별한 운영 원칙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이 병원에는 돈을 많이 내면 이용할 수 있는 특별실이 없습니다. 모든 환자가 똑같이 비용을 내고, 똑같이 보호를 받습니다. 누군가 돈을 많이 낼 수 있다고 해서 돈을 많이 받으면 그 사람을 특별하게 대해 주어야 하잖아요. 그러면 가난한 사람들은 돈을 조금밖에 못 내니까 제대로 보호를 못 받게 됩니다.”
“정말 평등하게 운영하네요.”
현재 150명이 입원해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다음은 수혈 의학과로 갔습니다. 인도에서는 보기 드물게 헌혈하는 시스템을 완비했다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암을 치료하고 수술을 하려면 혈액이 많이 필요합니다. 피를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예전에는 치료를 시작할 때부터 가족 중에서 누가 헌혈을 할 것인지부터 물어봐야 했습니다. 가족들의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일반 시민들이 헌혈을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했습니다. 헌혈에 대한 시민들의 반응이 엄청 좋습니다. 지금은 더 이상 가족들한테 헌혈을 요구하는 것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스님이 질문했습니다.
“헌혈하는 사람이 한 달에 몇 명이나 되나요?”
“한 달에 300명 정도 됩니다. 헌혈 운동 캠페인도 하고 있습니다. 아삼주에서 헌혈을 받는 횟수가 가장 많아서 상까지 받았습니다.”
“좋은 일을 하십니다.”
수혈의학과 의사 선생님이 설명을 마치고 한국말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다시 방문해 주세요.”
의사 선생님은 스님에게 이 말을 하기 위해 하루 종일 한 문장을 연습했다고 합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서류가 무척 많은 곳이었습니다. 환자들에 대한 모든 기록을 전산화하고 있었습니다.
“이분은 2008년부터 15년 동안 입력 작업을 해오신 분입니다. 어떤 환자에 대한 치료를 시작했다면 이후에도 환자의 상태가 어떤지 계속 추적해야 합니다. 한 사람에 대한 기록이 이만큼 됩니다. 예전에는 이렇게 서류 뭉치로 보관했는데 현재 컴퓨터에 2015년 기록까지 입력을 마쳤습니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조직 검사를 통해 암을 진단하는 곳이었습니다.
“보통은 병원에서 조직 검사 결과가 나오기까지 짧게는 3일, 길게는 10일이 걸립니다. 여기서는 조직 검사 결과가 1시간 이내에 나오도록 시스템을 개발했습니다. 왜냐하면 가난한 사람들은 검사 결과가 나오는데 3일이 걸린다고 하면 그다음에 다시 병원에 안 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24시간 내에 모든 검사가 마무리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그래서 시간과 돈을 70퍼센트 이상 절약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는 온갖 시설을 다 갖춘 종합병원에서도 검사 결과를 일주일씩 기다려야 해요.”
다음은 중환자실과 수술실을 둘러보았습니다.
보호자 한 명이 함께 상주할 수 있고, 편하게 내 집처럼 생활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병원 한쪽은 가정집처럼 빨래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대부분 시골에서 올라온 환자들이 많은데, 가족들도 병원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습니다. 여기에 빨래를 해서 널어도 됩니다. 병원이지만 지저분해도 괜찮습니다.”
스님은 이런 운영 방식에 특별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자유롭고 좋네요. 한국은 이렇게 할 수가 없으니까 간병인에게 들어가는 돈이 병원비보다 더 많습니다. 병원비가 한 달에 1000달러 든다면 간병비가 3000달러 듭니다. 병원비는 의료보험으로 해결이 되는데, 간병비는 개인에게 부담이 큽니다. 그런데 이 병원은 가족이 와서 함께 살 수 있으니까 정말 좋네요. 가난한 사람들은 간병비를 댈 수가 없잖아요. 좀 지저분해 보이기는 하지만 이 방식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스님이 질문했습니다.
”그런데 환자는 병원에서 식사를 주지만 보호자는 식사를 어떻게 하나요?”
“보호자한테도 식사를 줍니다. 옛날에 환자인 남편의 밥을 아내가 뺏어 먹어서 부부 싸움이 일어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일이 있고 난 다음부터는 보호자에게도 밥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전산실을 보고, 소아암 병실도 보았습니다. 소아암 병동에는 여러 아이들이 있었습니다. 스님이 나타나자 아이들이 달려 나와 인사를 했습니다.
병원의 구석구석을 둘러보았는데 만나는 모든 직원들이 한결같이 얼굴에 환한 미소를 띠고 있는 게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병원의 한편에는 병원의 미션과 목적이 적혀 있었습니다. 병원 운영의 모든 면이 환자에게 초점이 맞추어져 있었고, 특히 빈곤층을 위한 배려가 깊이 담겨 있었습니다.
“환자 및 직원과의 모든 상호작용에서 공감을 표시합니다.”
“우리 병원에 들어오는 어떤 환자도 돈이 없다고 외면당하지 않습니다.”
병원의 미션과 목적이 칸난 님의 얼굴, 직원들의 태도, 병원 운영 방식에서 모두 실현되고 있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식당과 주방을 살펴보았습니다. 직원이 460명이고 환자와 보호자까지 포함하면 굉장히 많은 양의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공간인데 매우 좁아 보였습니다.
스님이 의아해하며 물었습니다.
“이 작은 주방으로 모든 환자들의 밥을 지을 수 있습니까?”
“네, 아직까지 괜찮습니다.”
한 시간 동안 병원을 둘러보고 병원 옆에 있는 조그마한 라비 칸난 님의 집으로 갔습니다.
아내인 시타 님이 반갑게 스님을 맞이해 주었습니다.
“스님이 하신 일들을 다 읽어보았습니다. 마음 깊이 감명을 받았습니다.”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남편이 하신 일이 더욱 위대하다고 생각합니다.”
작고 소박한 집에는 에어컨도 없었습니다. 병원에는 최첨단 장비가 계속 늘어나고 있지만, 칸난 님의 집은 변함없이 검소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스님의 인생에 대한 질문을 받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어떻게 출가를 하게 되었는지, 출가할 때 어머니가 마음 아파하지 않았는지, 스님도 민주화 운동을 했는지, 민주화 운동을 할 때 화가 나지는 않았는지, 여러 가지 질문에 대해 스님은 편안하게 대답을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인생에서 후회가 되는 일은 없었는지에 대해 물었습니다.
“스님은 인생에서 후회가 되는 일이 있었나요?”
스님이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특별히 후회하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고, 그냥 매일매일 하루를 살아갈 뿐입니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지나 놓고 보면 별 차이가 없습니다. 십 년 전 오늘 저녁에 고기를 먹었든, 채소를 먹었든, 굶고 잤든, 그게 지금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날은 차이가 있는 것 같았지만, 지금 돌아보면 아무 차이가 없잖아요. 제가 오늘 실차르에 와서 좋은 호텔에서 잤든, 나무 밑에서 잤든, 당장 오늘은 중요하게 느껴질지 몰라도 십 년 후에 돌아보면 실차르에 와서 어디에서 잤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것보다 더 큰 가치들이 있지 않습니까? 예를 들면, 삶과 죽음이요.”
“가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내가 가치를 부여하고 사는 것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배고픈 사람에게는 밥을 주어야 한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것도 내가 그렇게 의미를 부여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본래부터 그런 의미가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토끼가 한 마리 사는 것이나 사람이 한평생 사는 것이나 아무 차이가 없다고 생각해요. 그냥 태어났으니까 이 세상을 살아갈 뿐입니다. 그렇게 세상을 바라봐야 매일매일 지금에 깨어있을 수 있고, 지금의 삶을 즐길 수 있습니다.
좋은 옷을 하나 사 입을 때 느끼는 만족감과 옷이 없는 사람에게 옷을 나눠 주었을 때 느끼는 만족감을 서로 비교해 보고 더 나은 쪽을 선택해서 살면 됩니다. 좋은 음식을 사 먹을 때의 만족감과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나눠줄 때의 만족감을 비교해 보고 어느 게 더 나은지 판단해 보면 돼요. 좋은 일을 하면 다음 생에 좋은 곳에 태어난다,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한 게 아닙니다. 항상 자신이 선택하고 거기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고 살아가면 됩니다. 어떤 선택이 더 좋은 게 아닙니다. 우리가 선택을 망설이는 이유는 그 선택에 대한 결과를 책임지지 않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꾸 ‘어떤 선택이 더 좋은가’ 하고 생각하는데 선택에는 좋고 나쁜 것이 없습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안 지려고 하기 때문에 망설여지는 것입니다.”
대화를 나누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지나갔습니다.
스님은 정성껏 안내를 해준 칸난 님 부부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저녁식사까지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바쁘신데 직접 다 안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신의 얼굴에서 번져 나오는 미소와 친절함을 보니까 왜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존경하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었어요.”
칸난 님이 수줍게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우리 팀이 대단해서 그렇습니다. 동료들이 정말 대단한 사람들입니다.”
인사를 나누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내일은 다시 카차르 암병원(CCHRC)을 방문하여 라비 칸난 님과 대화를 나누고, 환자들의 가정을 방문하여 환자들이 어떻게 가정에서 케어를 받고 있는지 둘러보고, 저녁에는 병원 직원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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