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4.5.6 북미동부 순회강연(8) 워싱턴 국제불교위원회 초청 영어 강연
“미국 대학가에 번지는 전쟁 반대 시위,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안녕하세요. 오늘부터 스님은 워싱턴 D.C. 에 5일 동안 머물며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많은 사람들을 만날 예정입니다.


새벽 5시에 미주 정토회관에서 새벽 기도와 명상을 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아침 식사를 하고 8시 15분에 워싱턴 D.C. 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아메리칸 대학교에서 미국 종교학회 회장 박진영 교수님이 종교학회 회원들을 위해 스님과의 대담을 요청해서 그 내용을 영상으로 녹화하기로 했습니다.


9시 30분에 아메리칸 대학교에 도착했습니다. 박진영 교수님이 오늘 대담할 내용을 간단하게 설명한 후 녹화를 시작했습니다.

박 교수님은 스님에게 ‘폭력, 비폭력, 사회정의’에 대한 기조 강연을 요청했습니다. 외국인 시청자를 위해 제이슨 님이 통역을 해주었습니다.

비폭력으로 사회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요?

“요즘 미국의 대학생들이 이스라엘에서 일어나는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를 많이 하고 있어요. 이렇게 폭력이 난무하는 사회에서 비폭력이라는 것이 정말로 실천이 가능한 것인가 하는 질문을 스님께 드리고 싶어요. 비폭력을 실행하려면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할까요?”

교수님의 질문에 대해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는 점점 갈등이 심화되고 일부 지역에서는 결국 전쟁으로 분출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평화를 원하는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왜 이렇게 갈등이 심화되고 때로는 전쟁까지 일어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는 것일까요?

폭력과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

우리 주위를 살펴보면 사람이든 사물이든 각각 조금씩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자기를 중심으로 해서 모두 같아야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같아야 된다는 생각을 바탕에 두면 서로 다른 것들에 대하여 ‘나는 옳고, 너는 그르다’ 하는 평가의 눈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상대의 어떤 행동이나 말에 대하여 틀렸다든지, 나쁘다든지,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어떻게든 고치려고 하고, 그러다 보면 갈등이 생겨나게 됩니다. 또한 그것이 고쳐지지 않으면 내 마음속에서 분노가 일어나서 더 큰 갈등의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조금만 살펴보면 우리들은 같은 점도 있지만 대부분 조금씩 다른 점을 갖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옳다, 그르다, 맞다, 틀리다, 하는 관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옳다 그르다는 생각을 내려놓게 되면 상대의 얘기를 듣고 ‘저 사람은 저렇게 생각하는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믿고 있구나’ 이렇게 받아들이게 되어 내 마음속에서 화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상대를 존중한다는 것은 상대가 옳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나와 다른 상대를 인정하게 되면 우선 내가 화나지 않게 됩니다. 즉, 내 마음의 상태를 평화롭게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서로 다른 것에 대해 대화를 할 수 있습니다. 상대를 설득해서 내 입장을 관철시키는 방법도 있고, 서로 조금씩 양보해서 타협점을 찾아갈 수도 있고, 내가 양보하고 상대의 입장에 동조할 수도 있습니다. 즉, 여러 가지 방법을 우리가 찾아나갈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문제가 일어나도 평화롭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게 될 때, 첫째, 내 마음이 평화로워지고, 둘째,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서로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옳고 그름과 맞고 틀림으로 받아들이면, 첫째, 내 마음에 화가 일어나고, 둘째, 상대를 존중하지 않게 됩니다. 상대가 틀렸다고 생각하니까 고쳐야 된다고 생각하게 되고, 빨리 고치지 않게 되면 화가 나서 결국 거친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서 폭언이나 폭행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사회적인 큰 분열로 나타날 때는 결국 물리력으로 대항을 하게 되니까 전쟁까지 일으키게 됩니다. 모든 폭력과 전쟁이 ‘틀린 것을 바로잡는다’ 하는 관점에서 일어납니다. 자기의 행위가 바르다고 생각하고 행동하기 때문에 폭력이나 전쟁이 격렬하게 일어나게 되는 겁니다.

분노하지도 않고, 외면하지도 않는, 붓다가 제시한 길

그러면 어떤 갈등이 있을 때 단지 폭력적으로만 행하지 않으면 되는 걸까요? 외부적인 평화만 오면 되는 걸까요? 내부에 어떤 차별이 있어서 그 차별을 극복하려고 누군가가 시정을 요청했는데 그 얘기를 듣고 ‘그러면 갈등이 생기니까 그냥 받아들여라’라고 한다면, 외부적인 평화는 유지되지만 차별받는 사람들의 고통은 해결이 안 됩니다. 그래서 ‘전쟁이 없는 상태는 소극적인 평화이고, 사회적 갈등이 없는 것이야말로 적극적인 평화이다’ 이렇게 말하는 사회학자도 있습니다. 이런 불평등과 차별은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까요?

불교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각각의 자기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것이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차별이 없다는 관점에 서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현실에서는 남녀의 차별, 인종의 차별, 신체장애의 차별 등 다양한 차별이 존재합니다. 그래서 불교에서 말하는 사회 정의는 차별이 있는 현실에서 차별이 없는 세계로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2600년 전에 깨달음을 얻은 고타마 붓다는 계급 차별과 성 차별 등 온갖 차별이 진리인 것처럼 받아들여지는 세상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분이 다르거나 성이 다르다고 인간 존재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에 대해 제자들과 문답을 하였습니다.

‘계급이 높다는 사람이나 계급이 낮다는 사람이나 모두 밥을 먹고, 잠을 자고, 똥을 누고,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사는데, 무슨 차이가 있느냐’

이렇게 아주 세세한 예를 들면서 차별은 없다고 설파했습니다. 그 당시에 가장 큰 차별이 계급 차별과 성 차별이었는데, 붓다는 적어도 상가 안에서는 그 차별을 극복한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러한 사회적인 차별을 극복한 모습을 실현하니까 당시 사회로부터 많은 저항이 따랐지만, 붓다는 그것에 분노하거나 어떤 폭력적 대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저항을 보며 붓다는 ‘좀 기다려라’ 하고 제자들에게 주로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저항하는 그들마저도 이해하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코 차별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들의 저항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결국 평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우리는 ‘내가 옳다’, ‘이것이야말로 정의롭다’ 하는 생각으로 상대에 대하여 적대시합니다. 상대가 폭력으로 저항하면 폭력으로 대항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사회적 정의를 실천하는 것도 평화적으로 해야 된다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입니다. 어떤 문제를 폭력적으로 해결하지 말라는 것이 붓다의 가르침이기 때문에 내 마음을 항상 평화롭게 가지면서 평등을 향한 실천적 행동은 꾸준히 해나가야 합니다.

사실은 어떤 경우에도 자기 마음을 평화롭게 갖는다는 것이 어려운 일이기는 합니다. 또 대부분 자기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것에서 끝나버리고 사회적인 정의 실현에 대해서는 외면할 때가 많습니다. 반대로 사회적인 정의 실현을 위해서 분노하거나 폭력적인 행동도 마다하지 않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 두 가지를 우리가 어떻게 중도적으로 결합할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의 평화를 먼저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자고 해서 마음의 평화가 유지되는 게 아닙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 있겠다’ 하는 마음을 가질 때 마음의 평화는 저절로 유지가 됩니다. 이렇게 마음의 평화를 유지한 상태에서 불평등이 있다면 우리는 평등을 향해서 개선해 나가야 됩니다. 모든 존재는 존중받아 마땅한 평등한 존재입니다. ‘평등을 향해서 나아가는 것이 사회적 정의의 실현이다’ 이런 관점을 분명히 갖고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바로 보디사트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어서 주제에 대해 박진영 교수님과 대담을 나누었습니다.

  • 왜 불교에서는 불살생 계율을 가장 중요하게 여길까요?

  • 비폭력은 힘이 없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도구가 아닐까요?

다음은 미국 종교학회 회원들이 질문한 내용에 대해 교수님이 소개하고 스님이 대답했습니다.

  • 증오를 추구하는 것과 정의를 추구하는 것의 차이를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요?

  • 최근에 팔레스타인 전쟁에 반대하는 시위에 경찰이 투입되고 있는데, 이것이 상황을 해결하는 데에 도움이 될까요?

  • 많은 난민들이 국경을 넘고 있지만, 이들의 생존권과 자국민들의 안전이 상충하는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할까요?

다양한 질문들에 답변을 하고 나니 약속한 두 시간이 모두 지났습니다. 녹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은 박진영 교수님에게 영어로 된 스님의 책을 선물한 후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강의실을 나와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아메리칸 대학교의 학생 식당으로 향했습니다.

“오늘 말씀해 주신 내용이 현재 폭력이 난무하는 미국의 상황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입니다.”

“미국이 이번에 이스라엘의 보복과 학살을 두둔한 것 때문에 미국이 전 세계의 인권을 이야기할 수 있는 도덕적 권위가 완전히 떨어진 것 같아요.”

교수님과 식사를 하며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캠퍼스를 잠깐 둘러본 후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교수님과 작별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오후에는 하원 외교위원회 아시아·태평양 소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영 킴 미국 연방 하원의원을 만나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어떤 정책을 펼치면 좋을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미국 의회를 나와 오후 4시에는 워싱턴 D.C. 중심가에 있는 한 호텔에서 톰 맥데빗(Tom McDevitt) 워싱턴타임스 사장과 마이클 젠킨스(Michael Jenkins) 워싱턴타임스 재단 회장을 만났습니다. 작년 9월에는 워싱턴타임스 본사를 방문해서 젠킨스 회장님을 만났었습니다. 스님은 영어로 인사를 건넸습니다.


“Nice to meet you.” (만나서 반갑습니다.)

“So good to see you again. what a blessing for America! Thank you.”
(다시 뵙게 되어 정말 반갑습니다. 미국에 얼마나 큰 축복인지요! 고맙습니다.)

“제가 워싱턴타임스로 가서 찾아뵈어야 하는데 이렇게 나오시게 해서 죄송합니다. 뒤에 강연이 바로 있어서 이렇게 됐습니다.”

“It’s okay.” (괜찮습니다.)

오후 4시부터 6시까지 두 시간 동안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미국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많은 의견을 서로 나누었습니다.

특히 두 분은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후보, 폼페이오 전 국무장관과 교류가 많은 분들입니다. 그래서 스님은 만약 트럼프 후보가 당선된다면 미국의 대북 정책이 어떻게 바뀌면 좋을지 특별히 당부했습니다.

“지금 제일 위험한 것은 북한의 핵기술이 점점 고도화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소형화가 되고, 대량 생산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장거리 미사일도 더 고도화되었고, 핵잠수함 건조도 시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러시아의 기술이 북한에 어느 정도 유입되었기 때문입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을 빨리 중단시켜서 러시아의 북한에 대한 기술 이전을 막든지, 그게 여의치 않으면 북한과 대화를 적극적으로 해서 러시아의 기술이 북한에 이전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지금처럼 계속 내버려 두고 시간을 끌면 앞으로 심각한 위험을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The North Korean authorities are only focusing on their military goal, nuclear technology, while ignoring the suffering of their people.”
(북한 당국은 주민들의 고통을 외면한 채 그들의 군사 목표인 핵기술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이번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사용한 북한 미사일은 최근에 만들어졌고, 그 안에 미국이나 유럽에서 만든 칩들이 들어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이는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생산을 막는 데에 북한과의 적대적 대치는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핵을 폐기할 수 없다면 적어도 우리는 핵 동결이라도 우선적으로 받아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북한과 미국의 관계를 개선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예전에는 핵 폐기를 조건으로 북미 관계 개선을 도모했다면, 이제는 핵 동결과 북미 관계 개선을 맞바꾸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래야 협상할 수 있습니다. 북한의 위상이 10년 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바뀌었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The bigger problem is that if North Korea continues to have nuclear weapons, South Korea will also try to arm itself with nuclear weapons. Then Japan will also try to arm itself with nuclear weapons. This is something that even China does not want.”
(더 큰 문제는 북한이 계속 핵무기를 갖고 있으면 남한도 핵무장을 하려고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일본도 핵무장을 하려고 하겠지요. 이는 중국도 원치 않는 일입니다.)

“지금이라도 북한의 핵확산을 중단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북미 관계 정상화 말고 달리 북한에 핵 동결을 요구할 방법이 없습니다.”

"you're right. That’s the most important thing right now.”
(맞습니다. 지금은 그게 제일 중요합니다.)

“핵 개발을 동결시킴으로써 일단 위험을 막은 후에 핵 폐기 쪽으로 협상을 진행해 가야 합니다. 우선 핵무기의 대량 생산, 소형화, 장거리 미사일 개발의 확대를 멈추게 해야 합니다. 아직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큰 위협이 되고 있지 않지만, 앞으로 그 양이 많아지면 굉장히 위험합니다. 한국말에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못 먹는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I don’t think China also wants North Korea to proliferate its nuclear weapons. In fact, China is in this position more than we are. If we get China’s cooperation, wouldn’t we be able to suppress North Korea?”
(중국도 북한의 핵확산을 원하지 않다고 봐요. 사실 우리보다 중국이 더 그런 입장이지요. 중국의 협력을 얻어낸다면 북한을 억제할 수 있지 않을까요?)

“예전처럼 미·중 관계가 경쟁 관계가 아닌 협력관계에서는 가능한데, 지금은 미국이 중국을 경쟁 관계로 보기 때문에 중국의 협력을 얻는 것은 절대 수월하지 않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금은 러시아의 협력을 얻기도 어렵지 않습니까. 이런 국제관계 속에서 북한을 다루기가 예전 같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We have already lost many opportunities.”
(이미 우리는 많은 기회를 잃었습니다.)

“물론 북한을 다루는 일은 어렵습니다. 그렇다고 북한의 핵무기 확산을 이대로 방치할 수는 없어요. 하루라도 빨리 이를 중단시키는 것이 우리 모두에게 유리하기 때문이지요. 그러니 국제관계의 변화 속에서 북한의 위상도 예전과 달라졌음을 미국 정부 관계자들에게 확실히 얘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Yes, I will. But things are not that good right now.”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이 그렇게 좋지는 않습니다.)

두 분 모두 스님의 제안에 깊이 공감했습니다. 스님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관심을 가져줄 것을 다시 한번 당부한 후 두 분과 기념사진을 함께 찍었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제가 사무실을 방문해야 하는데 죄송합니다.”

“No. of course not. In times of crisis, the most important thing is people-to-people diplomacy. we’ll pray for you.”
(아닙니다. 위기 상황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게 중요합니다. 스님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저녁 6시에는 워싱턴 D.C. 에 위치한 베트남 절인 <CHÙA GIÁC HOÀNG>으로 이동했습니다. 워싱턴 국제 불교위원회(International Buddhist Committee of Washington DC, IBC) 초청으로 7시 30분부터 영어 통역 강연이 있었습니다. 절 안으로 들어서자 입구에서 법당까지 곳곳이 정성스럽게 잘 가꾸어져 있었습니다.

강연을 하기 전에 스님은 베트남 절의 주지 스님과 한 시간 정도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워싱턴 D.C. 에 올 때마다 이 절에 한 번 들려야지 하면서 못 들렸어요. 오늘에서야 방문하게 되었네요. 이 절은 언제 설립했어요?”

“1976년에 설립했습니다.”

“오래된 절이네요.”

정토회와 베트남 불교는 어떤 교류를 하고 있는지, 주지 스님은 미국에서 어떻게 포교를 하고 있는지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영어 통역으로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40여 명의 외국인이 자리한 가운데 IBC(국제 불교위원회) 사무국장 매트 리 건 님이 스님을 소개했습니다.

스님을 위해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지만 평평한 강당이라 청중과 눈을 마주치기 위해 스님은 서서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질문을 받기에 앞서 외국인 불자들을 위해 다가오는 부처님 오신 날을 앞두고 스님은 경전에 나온 부처님의 탄생 이야기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봐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부처님의 전기를 쓴 사람은 부처님이 태어나실 때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부처님은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자마자 두 발로 서서 동서남북으로 일곱 발자국을 걸었습니다. 왼손은 땅을 가리키고,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괴로움에 빠져 있구나. 내 이를 마땅히 구제하리라’ 하고 외쳤습니다.

부처님이 정말 이렇게 태어났다는 것이 아니라 전기를 쓴 작가가 이렇게 탄생을 묘사했다는 것입니다. 종교적으로는 부처님이 위대하신 분이니까 사실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것은 사실이 아니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중학교 때 불교를 처음 접하고 불교학생회에 다녔는데, 부처님이 태어나자마자 섰다는 말이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소가 새끼를 낳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송아지가 어미 소의 배에서 나오자마자 딱 서는 것이었습니다. 정말로 태어나자마자 선 거잖아요. ‘이야, 태어나자마자 설 수가 있네!’ 하고 자세히 살펴보니까 어미 소가 새끼를 서서 낳은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엄마가 아기를 낳을 때 서서 낳으면 아기도 태어나자마자 서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경전을 보니까 부처님의 어머니가 나뭇가지를 잡고 서서 아기를 낳았어요. ‘그래서 부처님도 태어나자마자 섰나 보다’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웃음)

부처님의 탄생 모습을 인류 문화사적으로 해석해 보면

저는 어릴 때부터 이렇게 무엇이든지 과학적으로 규명을 해보는 걸 좋아했어요. 그것처럼 여러분도 부처님의 전기를 읽을 때는 사실이냐 아니냐로 접근하기보다는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지 살펴보면 좋겠어요.

인도의 전통문화에 의하면 크샤트리아 계급인 왕족은 브라만 신의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난다고 되어있습니다. 그러니 부처님이 어머니의 오른쪽 옆구리로 태어났다는 것은 부처님이 왕족으로 태어났다는 것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인도의 전통문화에서는 인간이 여섯 가지 사이클을 가지고 돌고 있다고 해서 ‘육도를 윤회한다.’ 하는 말이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가장 열악한 곳을 ‘지옥’이라고 말합니다. 그보다 조금 낫지만 굶주림 속에서 사는 세계를 ‘아귀’라고 말합니다. 그보다 조금 더 나은 세계가 짐승의 세계인 ‘축생’입니다. 그다음의 세계가 능력은 엄청나게 크지만, 화를 잘 내는 ‘아수라’의 세계입니다. 그다음에 ‘인간’ 세계가 있습니다. 그다음에 신들의 세계가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이 지은 바에 의해서 이렇게 여섯 가지 세계를 돌고 돈다는 겁니다. 여섯 발자국은 이 육도윤회를 말하며 부처님이 일곱 발자국을 걸었다는 것은 육도윤회를 벗어나서 해탈과 열반을 성취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부처님이 한 손은 하늘을 가리키고 한 손은 땅을 가리키면서 말했다고 하는 것도 상징적인 표현으로 해석해 볼 수 있습니다. 하늘 위라고 하는 것은 신들의 세계이고, 하늘 아래라고 하는 것은 인간 세계입니다. 신과 인간의 세계를 통틀어서 깨달은 이 붓다가 가장 존귀한 존재라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붓다는 어떤 왕보다도 높고, 어떤 신보다도 더 높은 존재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붓다는 사람과 신들의 스승이다.’ 이런 표현도 있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고통 속에 빠져 있다. 내 이를 마땅히 구제하리라’ 하는 표현도 붓다의 교화 활동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모습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붓다가 된 것이 아니라 붓다가 되었기 때문에 태어남을 이렇게 묘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즉 전기를 쓴 작가가 붓다의 열반 후 몇백 년이 지난 뒤에 이렇게 묘사한 것입니다.

오늘 제가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해서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옛날이야기에 대해서는 인류 문화사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서입니다. 우리가 옛날이야기를 해석할 때는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지 접근하지 말고, 항상 그것이 무엇을 상징하는 것인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어서 청중으로부터 질문을 받았습니다. 다섯 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질문을 했습니다. 최근에 미국에서 가장 이슈가 되고 있는 전쟁 반대 시위에 관한 질문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중 한 명은 지금 미국 대학가에서 진행되는 시위에서 학생들이 분노에 휩싸여 있는 모습을 본다며 이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은 무엇인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미국 대학가에 번지는 전쟁 반대 시위, 분노를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요?

"I want to follow up with questions about protests. Literally a week ago, I was protesting on my campus in Austin, Texas. In that experience, I gained profound insights into the value of Buddhist practice while protesting. I tried to practice right speech and compassion for the plight of Palestinians, without any hatred or anger towards anybody or any institution. While protesting, I was pepper-sprayed, arrested, and spent two nights in jail. Throughout that experience, I witnessed the profound suffering that I assume is going on every day within the walls of a jail, as well as the profound need for the other young people arrested with me, who were experiencing anxiety and fear. In the hours before I was put in my cell, I tried to teach my fellow students how to meditate and cope with being alone with their minds for so long, as I believe many young people don't often have that experience. I share this story because I'm curious to hear your advice on how to engage with people at these protests who may express opinions I disagree with, or who may not come from a Buddhist background or believe in Buddhism, and how to demonstrate the value or effectiveness of these practices in such situations.“
(저는 시위에 관한 질문에서 추가로 이어지는 질문을 하려고 합니다. 저는 한 주 전에 텍사스 오스틴에 있는 제가 다니는 대학교에서 시위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시위하는 동안 불교 수행의 가치에 대한 깊은 통찰을 얻었습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한 연민을 가지고 시위에 참여하면서, 어떠한 증오나 분노도 없이 올바른 언어 사용을 실천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시위를 하던 중 후추 스프레이를 맞고 체포되어 이틀 동안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는 매일 그 감옥 안에서 일어나고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깊은 고통을 실감했고, 저와 함께 체포된 다른 청년들이 겪는 불안과 두려움에 대한 깊은 공감을 느꼈습니다. 제가 감방에 들어가기 몇 시간 전, 저는 다른 학생들에게 명상하는 방법과 오랜 시간 동안 혼자 있을 때 어떠한 마음으로 대처해야 하는지 가르쳤습니다. 저는 많은 청년들이 그런 경험을 자주 하지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특히 시위 중에 제 의견과 다른 말을 하는 사람들이나 불교 배경이 없거나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과 어떻게 소통해야 할지에 대한 조언을 듣고 싶어서입니다. 이러한 수행의 가치나 효과를 그들에게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에 대해 조언을 구하고 싶습니다.)

“남을 가르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가족이 죽거나 자신의 조국을 빼앗긴 사람들은 분노에 휩싸이기 쉽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분노하지 마라’, ‘평정심을 가져라.’ 하고 말하면 그 말이 그들의 귀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그들은 ‘당신은 가족이 죽지 않았으니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하고 반발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남을 가르치려고 하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닙니다.

보디사트바라면 중생의 고통을 자신의 고통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중생의 고통이 부당하다고 생각되면 항의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기 마음속에 분노와 증오가 있는지 살펴서 그것을 누그러뜨려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마음에 분노가 없으면 행동을 하지 않게 됩니다. 또 분노를 가지고 행동하게 되면 폭력적으로 변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수행자는 분노 없이 적극적으로 행동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이 쉽지 않죠. 그렇기에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두려워하지 않고, 도망가지 않고, 회피하지 않고, 그리고 분노하지 않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모범을 보일 때 사람들에게 불법을 올바로 전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당신은 화가 나지 않습니까?’, ‘당신은 두렵지 않은가요?’ 하고 물을 겁니다. 물론 나도 화가 나고, 두려움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이 화를 내거나 두려워한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질문자가 시위하는 목표는 무엇인가요? ‘인도적 지원이 행해져야 한다.’, ‘폭격이 멈춰야 한다.’, ‘민간인이 다쳐서는 안 된다.’ 하는 것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올바르지 않은 일에 미국인이 낸 세금이 쓰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이런 목표를 실현하려면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해야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참여하려면 폭력적인 행동을 취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면 사람들이 두려워서 참여하지 못하게 됩니다. 문제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가 어떤 방식을 선택할 것인가입니다. 비폭력적으로 행동할 때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수 있습니다. 그들이 설령 나에게 폭력적으로 대응하더라도 나는 비폭력적으로 대응하는 것이 목표 달성에 더 효과적입니다. 그리고 이런 관점으로 접근하면 저항을 덜 받게 됩니다. 어떤 일이든 변화를 가려오려면 저항이 따르게 되어 피해가 발생하므로 나부터 모범을 보이면서 행해야 합니다.


앞에서 붓다가 출생할 때의 모습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 붓다가 말한 첫 번째 문장인 ‘사람과 신들 가운데 가장 존귀하다.’ 하는 문장은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분노나 두려움, 괴로움이 없는 상태를 목표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두 번째 문장은 ‘세상이 고통 속에 있어서 내가 그들을 편안하게 하리라’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일, 즉 불평등과 차별을 철폐하는 데에 앞장서야 합니다. 이것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입니다.

저는 선택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고, 사람을 붓다의 길로 가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기후 위기를 얘기하면서 아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면 이것은 모순이잖아요? 지금도 지구상에는 굶주리는 사람이 있고, 병든 사람이 있습니다. 나는 먹고 입고 자는 것이 충분하다면 일단 조금이라도 그들을 위해서 기부를 해야 합니다. 증오심으로 투쟁을 한다면 전쟁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사회가 좀 더 평화로워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먼저 자기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는 데 늘 관심을 두어야 합니다. 내 마음이 편안하지 않고 긴장이 된다면 하고자 하는 일을 오래 할 수 없습니다. 결국 지쳐서 멈추게 됩니다. 변화를 가져오려면 꾸준히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평정심을 유지하라는 말은 참여하지 않음을 포장하는 말이 아닙니다. 내가 평정심을 유지해야 이 일을 꾸준히 해서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뜻입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미국의 많은 대학 캠퍼스에서 팔레스타인 전쟁 반대 시위가 일어나고 있고, 친구들과 부모들은 저의 신변 안전을 걱정합니다. 이 걱정을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 오랫동안 미워하던 친척이 있습니다. 법문을 많이 들어도 도무지 미움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미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새로운 직장에 들어갔는데 비합리적인 규칙이나 상황들이 너무 많습니다. 제가 어떤 선택을 하고,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까요?

  • 어머니가 몇 년 전에 돌아가셨는데 너무 슬픕니다. 매일 죄책감에 시달립니다. 이 감정을 어떻게 극복하면 좋을까요?

질문에 대해 모두 답변하고 나니 밤 9시가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과 좋은 만남을 가졌습니다. 부처님 오신 날을 여러분과 함께 축하하고 환영합니다. 붓다가 이 세상에 온 의미를 우리가 다시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고 참석한 분들과 눈을 맞추며 악수하고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어떤 분은 스님에게 진심으로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제가 죽을 만큼 힘들었는데 스님 덕분에 살았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몇몇 분들과 반갑게 인사를 한 후 베트남 절을 나왔습니다.

차에 오른 스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제가 여러 사람을 살렸으니 지옥에는 안 가겠네요.”

그 말을 듣고 행자님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스님께서는 중생 구제하러 지옥에 가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래서 못 갈까 봐 걱정이에요.” (웃음)

밤 10시에 워싱턴 미주 정토회관에 도착한 후 내일 일정을 공유하고 하루 일과를 마무리했습니다.

내일은 조셉 디트라니 대사님과 조찬 모임을 하고, 맨스필드 재단으로 이동하여 프랭크 자누지 등 미국 안보 전문가들과 미팅하고, 오후에는 국무부에서 북한 인권 특사와 대화를 나누고, 저녁에는 평화운동가인 애나벨 박과 리치 타플 목사님과 미팅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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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근

감사합니다

2024-05-16 13:42:25

수미상

지옥에 못갈까봐 걱정이라는 말에 눈물이 핑도네요.
저는 지옥는 정말 가기 싫은데요.
죽어서도 지옥가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시겠다는 그 마음에 감동입니다.

2024-05-13 15:22:00

금광화

스님 감사합니다

2024-05-13 05: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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