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인데 갑자기 날씨가 봄날씨처럼 포근해졌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7시 30분부터 김장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어제 밤늦게까지 배추 뒤집기를 했지만, 행자들은 파이팅을 외치며 밝은 얼굴로 울력을 시작했습니다.
스님도 작업복과 고무장화를 신고 와서 배추를 씻는 일부터 함께 했습니다. 배추를 눌러놓았던 물통들을 내려놓고 비닐을 벗겨 내니 밤새 배추 800 포기가 소금에 절여져서 숨이 팍 죽어 있었습니다.
행자님 몇 명이 전신 장화를 신고 대형 튜브 속으로 들어가서 배추를 건져 3단 나무 상자로 연결되는 미끄럼틀에 올려 두었습니다.
“배추 내려갑니다!”
배추가 미끄러져서 물에 퐁당 빠지면 양쪽에서 3단계로 배추를 깨끗이 씻었습니다. 스님은 1단계에서 배추를 씻는 일을 했습니다.
배추를 건져 올리는 행자님들이 힘들어하자 스님이 자리를 바꾸어 행자님들을 도와주었습니다.
배추를 건져 올리다 보니 아직 숨이 죽지 않은 배추들이 보였습니다.
“아직 숨이 죽지 않은 게 있어요. 전부 골라서 통에 따로 담아 주세요.”
숨이 죽지 않은 배추는 따로 통에 담아 가며 계속 배추를 씻었습니다. 곧 법사 교육을 받고 있는 화엄반 행자님들도 수련 중에 울력 시간이 되어 배추 씻기에 합류했습니다. 일손이 늘어나자 창고 안에는 깨끗이 씻은 배추가 빠른 속도로 차곡차곡 쌓여 나갔습니다.
동시에 창고 한 켠에서는 배추김치 사이사이에 넣을 무를 썰고, 포장할 박스에 비닐도 하나씩 씌워놓았습니다.
오전 내내 배추 씻기에 집중한 결과 점심 무렵에 덜 절여진 배추를 제외하고 모든 배추를 씻었습니다.
스님은 마지막으로 떨어진 배춧잎을 체로 알뜰하게 건져 모았습니다. 바닥에 흘린 배춧잎 조각 하나까지도 싹 긁어모았습니다. 대형튜브에 담긴 소금물은 오후에 대중들이 김장 축제를 위해 다시 사용한다고 해서 그대로 두었습니다.
배추에 물기가 빠지기를 기다리며 먼저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습니다.
“수고했어요. 밥 먹고 쉬었다가 합시다.”
창고 한쪽에서는 최말순 보살님과 묘덕 법사님이 김칫소를 만들고 있었습니다. 행자들이 점심을 먹으러 간 사이 스님은 김칫소 만드는 일을 도왔습니다.
큰 대야에 모든 소양념을 넣고 갖가지 채소와 골고루 섞어 버무렸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 부탁하면 되지 왜 팔이 아픈 할머니가 이걸 하고 있어요?”
“죽기 전까지 하던 일을 해야죠.”
“행자들이 일을 야무지게 못하니까 그렇구나. 제가 야무지게 해 줄게요.” (웃음)
스님은 양념을 다 버무린 후 행자들이 점심 반찬으로 먹을 수 있도록 배추를 먹기 좋게 찢어 양념을 버무려주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부터는 김칫소를 배추에 넣고 버무리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가장 시간이 많이 걸리는 일입니다. 살리고센터에서 특별히 제작한 머릿수건을 단단히 쓰고 최말순 보살님에게 양념버무리는 법을 배웠습니다.
모두 마스크를 쓰고 본격적으로 김치 공장을 가동했습니다. 한쪽에서 절인 배추의 밑동을 부지런히 잘라주면, 행자들이 다듬은 배추를 양념을 버무리는 선반으로 배달했습니다. 치대기를 맡은 행자들은 배추에 김칫소를 이리저리 문질러서 배추 전체에 색이 들게 한 다음 배춧잎 사이사이 다시 김칫소를 채워 넣었습니다. 마지막에는 김칫소가 떨어져 나오지 않도록 겉잎으로 감싸 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서툴러서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점점 요령이 생겨서 김치가 빠른 속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스님은 잘 만들어진 김치를 박스에 담는 일을 도맡았습니다.
“김치 가져다주세요!”
“네, 여기 김치가 갑니다.”
“무 가져다주세요!”
“네, 여기 무 갑니다.”
배추의 뿌리 쪽이 서로 엇갈리게 하고, 자른 단면이 위를 보게끔 해서, 김칫소가 빠지지 않도록 정성을 기울여 하나씩 담았습니다. 또 남은 무 조각을 썰어 김치 사이사이에 넣었습니다.
스님이 김치를 빈틈없이 꽉 담으면 포장을 담당한 행자들이 박스를 옮겨 비닐을 묶고 뚜껑을 덮은 후 테이프로 봉했습니다. 김치 박스가 차곡차곡 쌓여갔습니다.
모두가 일념으로 김치를 치대고 있는 가운데 김칫소가 거의 다 떨어져 버렸습니다. 잠시 휴식 시간을 갖고 대책 회의를 했습니다. 김칫소를 추가로 만들려면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럼 김치 양념을 더 만들어주세요. 저는 어제 배추 수확한 밭 정리를 마저 하고 내려올게요.”
김칫소를 추가로 만드는 동안 스님은 행자님들 몇 명과 함께 밭정리를 하러 갔습니다.
먼저 산밑밭으로 가서 어제에 이어 남은 세 두둑에 비닐을 벗겼습니다. 땅이 단단해서 비닐을 깔끔하게 걷어내는데 시간이 한참 걸렸습니다.
한 해 동안 여러 작물들로 가득 찼던 밭은 다시 빈 땅이 되었습니다.
“이제 내년 농사를 위해서 밭에 거름을 주고 갈아놓아야 해요.”
다음은 어제 수확했던 마을 어르신댁 배추밭으로 갔습니다. 이 밭은 흙이 부드러워 비닐이 쑥쑥 걷혔습니다. 바람까지 도와 순식간에 비닐을 다 걷었습니다.
이번에는 마늘밭으로 가보았습니다. 스님이 65회 라몬막사이사이 시상식에 참가하는 동안 문수팀 행자님들이 마늘을 심어두었습니다. 하얀 부직포를 걷어내니 기특하게도 초록색 싹이 쑥쑥 올라와 있었습니다.
마늘이 뿌리를 내려 튼튼한 싹을 틔웠으니 이제 추운 겨울도 끄떡없습니다. 스님과 행자님들은 부직포를 모두 걷어냈습니다.
다시 사용할 수 있도록 부직포를 고이 접어 다음 밭으로 가보았습니다.
이 밭에는 마늘과 양파를 심었는데, 부직포가 바람에 이리저리 날려있었습니다. 커다란 부직포를 걷어 반듯하게 갰습니다.
밭을 정리하고 나온 부직포며 지주대, 끈을 창고에 정리한 후 울력을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그 사이 화광법사님의 도움으로 김칫소를 새로 만드는 작업이 끝났습니다. 저녁 6시 10분부터 다시 김치 만들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오늘 밤에 선물용 김치는 모두 끝냅시다.”
스님은 낮에 하던 일을 이어서 김치를 박스에 담는 일을 했습니다.
“마지막 박스입니다.”
한 시간 동안 부지런히 작업한 끝에 선물용 김치 포장을 모두 끝냈습니다. 이제 남은 양념을 다 사용할 때까지 절인 배추를 양념에 버무리는 일이 남았습니다.
“저는 저녁에 강의가 있어서 가보겠습니다. 강의 끝나고 다시 와서 함께 할게요.”
스님은 강의 시작 5분 전까지 작업을 하다가 서둘러 방송실로 향했습니다.
저녁 7시 30분부터 금요 즉문즉설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6,100여 명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이번 주는 날씨가 많이 포근해졌죠. 12월인데 봄날처럼 날씨가 포근해졌습니다. 그러나 겨울은 춥습니다. 특히 가난한 사람들은 추운 나날을 보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여러분들도 연말에는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를 하거나 보시를 하는 작은 정성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스님이 지난주에 지적장애인 보호 시설인 거제도 애광원에 김장을 할 수 있게 배추를 나누어 주고, 방송, 영화, 드라마 등 문화예술인들의 수행 모임인 길벗 모임과 함께 가난한 마을에 연탄 배달을 하고 온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보았습니다.
▲ 영상 보기
“잘 보셨습니까? 여러분들도 연말이 가기 전에 이웃에게 작은 도움이 되는 실천행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네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네팔에서 온 여성 분이었는데요. 상대가 나쁜 행동을 해도 늘 참고 살아왔는데, 이러다가 울화병에 걸리게 되는 것인지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화가 나도 늘 참습니다, 이러다가 울화병에 걸릴까요?
“저는 네팔에서 시집온 다문화 가족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착하게 자란 것 같습니다. 지금도 싸울 줄 모르고 상대방한테 큰소리를 칠 줄 몰라요. 항상 이해심이 많다 보니까 상대방이 저한테 나쁜 행동을 하면 '참자. 참으면 시간이 지나고 시간이 지나면 해결된다' 하고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한테도 참아야 된다고 가정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주변에 있는 제 친구들이 현재 제 모습을 보고, 기분 나쁘면 소리도 지르고 싸우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살아야 된다고 합니다. 이렇게 참고 살면 울화병에 걸린다고 하는데, 제가 제대로 살고 있는 게 맞나요? 아니면 친구들의 의견을 따라서 화가 나면 화도 내고 큰소리도 치고 살아야 되나요?”
“화가 나면 참는 것보다는 화를 내는 게 더 나아요.”
“화가 나면 싸움도 생기고 하니까 그냥 참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저만 조용히 하면 상대방도 저한테 큰 소리를 안 하게 되니까요.”
“너무 많이 참으면 나중에 울화병에 걸릴 위험이 있어요. 나중에는 뒷골이 땅기고 머리도 아픕니다. 울화병에 걸리지 않는다면 화를 내는 것보다는 참는 게 좋습니다. 참아서 울화병에 걸릴 정도로 마음속에 스트레스가 많이 쌓인다면 갈등이 좀 생기더라도 건강을 챙기는 게 더 중요합니다. 참는 것 때문에 질문자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나요? 울화병이 생기면 눈이 침침해지고 뒷골이 당기고 머리가 아픈 증상이 있거든요. 그런 정도가 아니라면 참아도 괜찮습니다. 만약 그런 증상이 나타나면 병이 든 거니까 차라리 화를 내는 게 낫습니다.”
“울화병 증상은 참을 당시에 나오나요, 아니면 시간 지나서 나중에 나오나요?”
“시간 지나면 나옵니다. 아직 그런 증상은 없어요?”
“네. 아직 그 정도는 아니에요.”
“참는 게 많이 힘들어요? 참는 것도 괜찮아요?”
“저는 상대방이 저한테 나쁜 행동을 하면 ‘나만 착하게 살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그렇게 사는 게 많이 불편해요? 아니면 ‘조금 참으면 되니까 별일 아니다’ 하고 지나가요?”
“네팔 속담에 개가 나를 물어도 나는 개를 물면 안 된다는 말이 있어요. 그렇게 생각하며 살고 있어요.”
“그 정도면 아직 괜찮아요. 참으면서 살아 보세요. 한국 사람들이 화를 잘 내지 않습니까? 화를 내서 싸우는 것보다는 참는 게 나아요. 그런데 참아서 병이 날 정도라면, 병원에서 의사도 참지 말고 화를 내라고 말합니다. 화를 내는 게 좋다는 뜻이 아니라 그게 병이 되니까 그런 처방을 내리는 겁니다. 질문자가 병이 날 정도는 아니라면 참는 게 낫죠. 옛날부터 어른들이 ‘화가 나도 참아라’ 하는 말을 자주 하잖아요. 화를 내고 말다툼을 하게 되면 싸움이 번지니까요. 한국에서도 50년 전에는 대부분의 여성들에게 남편이나 시어머니에게 ‘화내지 말고 참아라’ 하고 가정교육을 시켰습니다.
예부터 시집을 가는 딸에게 3년 동안 세 가지를 해야 한다고 당부했습니다. 첫째, 눈 감고 살아라. 주위에서 화내는 것을 못 본 체하라는 말입니다. 둘째, 귀 막고 살아라. 어떤 비난을 해도 못 들은 체하라는 말입니다. 셋째, 입 막고 살아라. 아무리 억울해도 화를 내거나 대들지 말라는 겁니다. 참고 참아야 나중에 복이 온다고 가르쳤어요. 그런데 요즘은 인권, 남녀평등 이런 사상이 보편화되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기가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참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한국 사회 어디를 가봐도 갈등이 많지 않습니까? 좋은 현상은 아니에요. 그렇다고 참고 살아야 했던 옛날이 좋으냐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그렇다면 수행은 무엇일까요? 참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겁니다. 이해하게 되면 참을 게 없어져요. '저 사람은 성질이 좀 급하구나 ‘, ’저 사람은 말을 좀 험하게 하구나' 하고 상대를 이해하면 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것은 참는 것과 달라요. 참으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상대가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면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게 돼요. 밖에서 볼 때는 참는다고 말하지만 나는 참는 게 아니라 이해를 하기 때문에 스트레스를 안 받습니다. 이렇게 하면 울화병이 나지 않아요.”
“저는 급한 성격은 아닙니다. 하지만 매일매일 바쁘게 살다 보니 요즘 잠시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떤 일을 시작하면 끝까지 마무리를 못하고, 운동을 하려고 해도 끝까지 못합니다. 핸드폰으로 영화를 보려고 해도 끝까지 못 봅니다. 인내심이 없습니다. 이렇게 가만히 못 있는 제 성격을 보면 답답합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떤 일을 꼭 끝까지 해야 되는 건 아니에요. 영화를 끝까지 봐서 뭐 해요? 보다가 중간에 그만둬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어떤 약속을 해서 어떤 서류를 언제까지 제출해야 된다거나 원고를 언제까지 써주기로 했다거나, 이런 경우라면 끝까지 해야죠. 하지만 일상생활에서 밥을 먹는 것은 꼭 끝까지 안 먹어도 되잖아요. 먹다가 바쁘면 그만둬도 됩니다. 영화도 보다가 다른 일이 생기면 그만둬도 됩니다. 왜 끝까지 봐야 된다고 생각해요?”
“끝까지 못 한다고 엄마가 자꾸 큰소리를 치세요.”
“그러면 엄마한테 '이 일은 끝까지 안 해도 되는 일이야' 이렇게 말하면 되죠. 꼭 끝까지 해야 되는 일이 있고, 안 해도 될 일이 있어요. 친정 엄마가 지금 한국 와 있어요?"
“네.”
“그러면 엄마한테 ‘나 덕분에 엄마도 한국 와서 잘 살잖아. 내가 끝까지 일을 못 해도 엄마보다 낫잖아’ 이렇게 웃으면서 얘기하면 돼요. 끝까지 안 해도 괜찮습니다. 뭐든지 꼭 끝까지 해야 되는 것은 아니에요.”
“네, 고맙습니다.”
“외국에서 와서 생활하려니까 문화가 달라서 조금 힘들죠?”
“처음에는 많이 힘들었어요.”
“한국과 네팔은 문화도 다르고, 믿음도 다르고, 전통도 다르고, 의식도 다릅니다. 이런 문화는 어느 것이 옳고 그른 것이 없습니다. 그냥 서로 다를 뿐이에요. '우리는 이렇게 했는데, 여기는 저렇게 하네' 하고 받아들이면 됩니다. ‘한국이 옳고, 네팔이 그르다’ 이렇게 생각하라는 뜻이 아니에요. '한국 사람은 이렇게 하네. 나도 이렇게 한번 해보지 뭐’ 하면서 배우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나의 정체성을 버리고 맹목적으로 따라 하라는 뜻이 아니라 '문화가 서로 다를 뿐이니까 그렇게 한 번 해보지 뭐' 이렇게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왜 한국 사람은 저렇게 할까?' 이렇게 생각해도 안 되고, '네팔에서 그동안 잘못했구나' 이렇게 생각해도 안 돼요. 서로 다른 겁니다. '이렇게 하는 방법도 있네' 하면서 배우는 관점에서 바라보면 크게 어렵지 않게 한국에서 생활할 수 있어요. 서로 다르다는 관점을 가지고 배워보세요. 차례를 지내거나, 명절을 보내거나 할 때 '한국 사람은 이렇게 하네' 하면서 가벼운 마음으로 지내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저는 어제부터 공동체에 함께 살고 있는 대중들과 김장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김장이 덜 끝나서 방송을 마치면 곧바로 김장을 하러 가야 합니다. 오늘 밤에 김장을 모두 끝내려고 해요. 다음 일주일도 스트레스 받지 말고 행복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스님은 서둘러 작업복과 고무장화를 신고 김장을 하기 위해 창고로 향했습니다.
“김장을 얼마나 했어요?”
“다 끝냈습니다. 새로 만든 양념을 모두 사용했어요. 남은 배추는 내일 김장 축제에 내면 될 것 같습니다.”
스님이 방송을 하는 동안 행자들이 김장을 다 마친 상태였습니다.
“수고했어요. 몸이 아픈 사람은 없어요?”
“감기에 걸려서 골골하는 사람이 나오고 있습니다.”
“김장을 일찍 끝냈으니 내일 경주남산순례를 가면 좋은데, 안 되겠네요. 다들 푹 쉬세요.”
사용한 고무장갑과 장화를 깨끗하게 씻어서 말려둔 후 뒷정리를 하고 모두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부터 이틀 동안 두북 수련원에서는 김장 축제를 합니다. 오전에는 김장 축제 입재식에 참석하여 인사말을 하고, 경전대학 학생들과 즉문즉설 시간을 가진 후, 오후에는 평화재단 통일의병 정기 총회에 참석하여 인사말을 하고, 저녁에는 두북 수련원을 찾아온 손님들과 대화를 나눌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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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하이
그렇다면 수행은 무엇일까요? 참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는 겁니다. 이해하게 되면 참을 게 없어져요. '저 사람은 성질이 좀 급하구나 ‘, ’저 사람은 말을 좀 험하게 하구나' 하고 상대를 이해하면 내 마음이 편안해집니다. 이것은 참는 것과 달라요. 참으면 내가 스트레스를 받게 됩니다. 상대가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하면 내가 스트레스를 안 받게 돼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