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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스님은 자형이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누님 댁을 찾았습니다. 누님과 자형을 위로한 후 경주로 가서 법신스님을 만나 국수로 점심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후에는 사단법인 미소원에서 JTS에 성금을 전달하기 위해 두북 수련원을 방문했습니다.
미소원(이사장 장유정)에서는 매년 인도 JTS에 결핵 환자 의료지원 및 우물파기 후원금을 21년째 기부하고 있습니다.
“꾸준히 후원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결핵 환자가 처음에는 몇 백 명이었는데, 여러분들이 계속 후원함으로 해서 숫자가 많이 줄었어요. 우물 덕분에 식수 문제도 많이 해결이 되었고요. 벌써 인도 수자타아카데미가 개교한 지 30주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1월에 30주년 기념식을 해요.”
“아이고, 벌써 그렇게 되었나요? 스님, 정말 고생 많이 하셨습니다.”
스님은 미소원 장유정 이사장님과 후원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 후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스님도 감사의 마음을 담아서 직접 농사지은 쌀을 선물했습니다.
“스님, 내년에는 저희 미소원에도 꼭 오셔서 법문을 해주십시오. 늘 바쁘셔서 저희도 부탁드리기가 죄송하지만 한 번은 법문을 하러 와주셔야지예.”
“예, 알겠습니다.”
오후 5시에는 스님과 두북초등학교를 함께 졸업한 동창생들이 두북 수련원을 방문했습니다. 스님이 졸업한 두북초등학교가 폐교된 후, JTS가 노인복지 사업을 하기 위해 이곳을 임차해서 20년째 사용해 오고 있습니다. 다들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하여 학교 곳곳을 둘러보았습니다.
스님은 모교를 방문한 20여 명의 동창생들에게 저녁 식사를 대접한 후 옛 추억에 대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동창생들이 돌아가고 저녁에는 원고 교정과 업무를 본 후 하루 일과를 마쳤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주 금요 즉문즉설 강연에서 질문자와 스님이 나눈 대화 내용을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질문자의 얘기를 들으면서 종교의 발생과 믿음에 대해 근본적으로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이 죽으면 헤어지는 것이 너무나 아쉽지요. 부모와의 이별도 너무 아쉽지만, 부모보다 더 안타까운 것이 자식과의 이별입니다. 부부의 이별도 마찬가지이고, 친구 역시 그렇습니다. 그래서 옛날부터 ‘사람이 죽으면 좋은 곳으로 간다’ 하는 말로 위로를 삼았습니다. 죽으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고 영혼이 있어서 하늘나라와 같은 좋은 곳으로 간다고 믿으니까 위안이 되었던 것입니다. 인도에서는 그곳을 천상이라고 불렀고, 기독교에서는 천국이라고 불렀고, 불교에서는 극락이라고 불렀습니다. 또 바닷가에 사는 사람들은 바다 밑에 용궁이라는 좋은 세계가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죽어서 좋은 곳에 가 있어도 실제로 내가 보지는 못하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은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죽어서 저 멀리 가는 것보다는 다시 내 가까이에서 자식으로 태어나거나 친구로 태어난다면 이것이 훨씬 더 위안이 될 수 있잖아요. 또 가난한 사람은 부자로 태어나고, 장애를 가진 사람은 장애없이 태어나고, 신분이 낮은 사람은 신분이 높은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보시를 했더니 다음 생에 아주 큰 부잣집에 태어나거나 왕자로 태어난다는 이야기들이 나온 겁니다. 경주 불국사 창건 설화에도 가난한 사람이 보시를 한 공덕으로 재상집에 태어나서 재상이 되어 생전의 부모를 위해서는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들은 모두 생전에 너무 가깝게 지냈던 집착에 따르는 아쉬움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옛날에는 소나 말과 같은 동물에 대해서는 아무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에게만 그렇게 생각을 했지요. 그런데 요즘에는 애완용으로 기르는 고양이나 개와 너무 가까이 지내다 보니 그 집착의 정도가 자식에 대한 집착 이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래서 사람에 대한 호칭을 부를 때도 강아지 이름을 붙여서 ‘아무개 엄마’라고 부를 정도가 되었습니다. 이름도 애완견이 아닌 반려견이라고 합니다. 그동안 아내나 남편을 반려자라고 하는데 그 정도로 위상을 승격시켰습니다.
이렇게 가까이 지내던 동물이 죽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아쉬움으로 ’ 강아지도 극락에 간다’, ‘강아지도 환생을 한다’ 하는 믿음을 갖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습니다. 죽은 강아지를 위해서 49재를 지내는 경우도 많아졌고요. 반려견의 유골함을 만들거나 그 유골을 묻거나 뿌려주면서 사람과 똑같이 장례식을 하죠. 이렇게 된 이유는 강아지와의 관계가 사람 사이의 관계와 같아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개는 사람과 똑같이 대우를 하면서 다른 동물인 소나 말이나 돼지에게는 왜 안 그럴까요? 왜 다른 동물은 잡아먹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개는 안 된다고 생각할까요? 그 이유는 자기가 좋아하고 집착하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하고, 나머지는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역사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개는 오랫동안 사람들과 가까이 지냈고, 더군다나 유목 생활을 많이 했던 서양 사람들은 사냥개와 가까이 지냈고, 특히 미국에 이민 온 사람들은 개가 자신을 지켜주는 동료 역할을 했기 때문에 개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습니다. 요즘은 주로 애완견이나 반려견으로 개를 많이 키우다 보니 질문자와 같은 감정을 느끼는 분들이 더욱 많아진 것 같아요. 앞으로는 작은 곤충이나 식물이라도 너무 아끼다가 죽으면 이런 감정을 느끼는 문제가 생길 수 있을 겁니다.
슬픈 감정을 느끼는 이유는 집착과 애정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집착과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애정을 버리라고는 할 수는 없겠지요. 이에 대한 치료법은 애정을 지닌 사람에게 애정을 버리라고 말하기보다는 ‘좋은 곳에 갔다’ 또는 ‘다시 태어난다’ 하는 믿음을 갖도록 해서 위로를 해주는 것입니다. ‘죽으면 끝이야! 아무것도 없어’ 이렇게 말하는 것은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됩니다. 종교의 역할은 위로를 해주는 거예요. 슬픔을 덜 수 있도록 ‘좋은 곳에 태어난다’, ‘좋은 곳에 환생한다’ 이렇게 말해 줌으로써 아쉬움, 근심, 걱정을 덜어주는 것이 종교의 역할입니다. 종교에 따라 ‘천국에 갔다’, ‘극락에 갔다’, ‘용궁에 갔다’, ‘환생했다’ 등 여러 가지가 믿음이 있지만, 인도나 티베트 같은 곳에서는 주로 환생을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부처님의 가르침인 금강경의 핵심은 제법이 공한 도리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집착할 바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만약 질문자가 ‘금강경을 독송하면 강아지가 극락에 간다’ 이런 생각을 갖고 있다면, 질문자는 금강경이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거예요. 금강경의 핵심 구절이 이렇습니다.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
약견제상비상 즉견여래(若見諸相非相 卽見如來)
이 구절의 뜻은 이렇습니다.
무릇 상을 지은 것은 다 허망하다.
모든 상에 실체가 없는 줄 알면 그것이 곧 부처를 보는 것이다.
실체가 없기 때문에 집착할 것이 없다는 의미입니다. 집착할 바가 없음을 깨닫는 것이 금강경의 가르침입니다. 금강경이 가르치는 내용은 형상을 지은 것은 다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한 줌의 재로 돌아가는 것에 대하여 아무런 아쉬움이 없어야 금강경의 가르침을 체득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죽었을 때 금강경을 독송하라고 하는 이유는 죽은 사람에 대한 집착을 놓기 위해서입니다.
질문자가 ‘금강경을 많이 독송했으니 좋은 곳에 갔겠지요?’ 이렇게 물었는데, 만약 제가 ‘그래, 좋은 곳에 갔다’ 하고 대답한다면 이것은 종교적인 위로입니다. 그러나 즉문즉설은 진리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금강경의 가르침을 이해해서 ‘내가 강아지에 대해 너무 집착했구나’ 이렇게 자각하고 집착을 내려놓는 일이 천도입니다. 개가 좋은 곳에 갔다고 믿는 것이 천도가 아니라 내가 개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이 천도입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아쉬움이 남아서 늘 울고 있으면 천도가 안 된 것입니다. ‘우리 부모님은 극락이든 천국이든 좋은 곳에 갔겠지. 안녕히 가세요’ 하고 집착을 내려놓으면, 그것이 천도입니다.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면 모든 영가가 천도된다는 말은 금강경의 본래 가르침을 체득하면 모든 영가가 천도된다는 뜻입니다.
사람을 고뇌에서 벗어나게 하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집착을 놓지 못하는 사람에게 좋은 곳에 갔다는 믿음을 통해서 위로하는 길이 있어요. 이것을 쓸데없는 이야기라고 치부해서는 안 됩니다. 슬픈 감정에 빠진 사람에게는 위로가 필요해요. 그렇다고 그 말이 진짜 사실이라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면 많은 사람을 혹세무민 하는 부작용이 나타날 수 있어요, ‘환생한다’, ‘천국에 간다’ 이런 것은 믿음이에요. 그렇게 믿는 사람을 보고 이러니 저러니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그렇게 믿음으로서 위로를 얻어 고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둘째, 붓다의 가르침인 깨우침을 통해 번뇌에서 벗어나는 길이 있습니다. 우리는 가까운 존재의 죽음에 대해 아쉬운 마음이 생깁니다. 그 아쉬움으로 인해서 영혼설이 나오고, 내생설이 나오고, 환생설이 나오고, 온갖 것이 다 나온 거예요. 인간의 문화는 지난 1만 년 동안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형성되어 왔고, 그것이 우리 사회의 종교 문화로 정착되었습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진실을 깨닫게 되면 모든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이라는 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니 ‘금강경을 수지 독송하였으니 반려견이 좋은 곳에 갔을 거야’ 이렇게 믿어서 집착을 내려놓아도 괜찮고, ‘이 슬픔은 나의 집착 때문이구나’ 이렇게 자각해서 집착을 내려놓아도 괜찮습니다. 핵심은 집착을 내려놓음으로써 고뇌에서 벗어나는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집착이 문제의 근원임을 잘 알았습니다. 금강경을 독경한다며 폼만 잡지 않고, 제법이 공함을 깨닫겠습니다.”
내일 스님은 비행기를 타고 일본 도쿄로 가서 한국 교민들을 위해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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