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10.11 논산 훈련소 군장병 즉문즉설, 동국제강 리더십특강, 수행법회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요. 어떡하죠?”

▲ 오디오로 듣고 싶은 분은 영상을 클릭하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하루 종일 세 번의 즉문즉설 강연을 하는 날입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6시에 서울 정토회관을 출발해 논산 육군 훈련소로 향했습니다. 차로 3시간을 달려 9시에 논산 육군 훈련소 군법당 호국연무사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이 차에서 내리자 호국연무사 주지 여일 법사님이 스님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10년 전에 신축한 호국연무사는 5천여 명의 장병이 법회를 들을 수 있는 대규모 법당입니다. 스님은 삼존불을 참배하고 대기실로 이동하여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호국연무사 사무장 님, 공양주 님, 신도 회장님과 대위님도 함께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정토회에서는 법광 법사님이 오랫동안 전국의 군부대를 방문하며 스님의 책을 전하고, 월간정토를 보내주고, 여러 군법사님들과 인연을 맺는 등 많은 활동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 인연으로 오늘 논산훈련소 군장병들과 스님의 만남도 이루어졌습니다.


강연 30분 전에는 논산훈련소 본청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스님이 차에서 내리자 훈련소장님 이하 대대장 분들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접견실로 이동하여 잠시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이 오신다는 소식에 온 훈련소가 들썩했습니다. 군의관들은 이런 강연에 통 참가를 하지 않는데, 오늘 스님 강연에 참석하고 싶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식당에 근무하시는 분들뿐 아니라 이발사님들까지도 강연에 참석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초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감사하지요. 훈련생을 교육하는 장병들이 어려움이 많습니다. 좋은 말씀 많이 부탁드립니다.”

10시가 되어 광개토대왕 대강당으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신병들을 교육하는 부대이다 보니 교육 지원 업무를 하고 있는 많은 병사들이 참석했습니다. 병사들의 리더 역할을 하는 분대장 280여 명을 비롯하여 교육 지원 부대 장병 120여 명, 총 400여 명이 강당에 자리했습니다.

스님이 무대에 오르자 장병들이 큰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스님은 먼저 나라를 지키기 위해 수고하고 있는 장병들을 격려하며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현재 대한민국 안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여러 사회적인 갈등, 높은 자살률, 낮은 출생률과 같은 많은 문제들을 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밖에서 바라보는 대한민국은 한 번쯤은 가보고 싶은 매력적인 나라로 여겨집니다. 대개 한국 사람이 두 가지 사실을 잘 모른다는 이야기들을 합니다. 하나는 자신들이 얼마나 잘 사는 나라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들이 얼마나 위험한 상황에서 살고 있는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70년간 피땀 흘려 경제를 성장시키고 민주화를 이루었습니다. 최근에는 ‘한류’라고 하는 우수한 문화를 만들어서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으로 거듭났습니다. 물론 여전히 개선되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불과 몇십 년 전에는 생각지도 못할 만큼의 수준으로 성장했습니다.

진정으로 나라를 지키는 길

그러한 이면에 우리가 처한 현실은 잠시 전쟁이 멈춰 있는 상태에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만약에 다시 전쟁이 발발한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일궈 놓은 모든 것들이 하루아침에 잿더미로 전락해 버릴 수 있는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이것을 일컬어 안전성이 떨어진다고 해서 흔히 ‘코리아 리스크(Korea Risk)’라고 합니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여러분들 중에는 전문적인 직업인으로서 국가 방위에 전념하는 분도 계시고,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의무를 다하기 위해 군에 입대해서 국가 방위를 지키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 여러분들에게 진정으로 나라를 지키는 길은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또한 그런 일을 위해 노력해 주시는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이런 마음에서 사단장님이 저를 초청해 주셨을 때 기꺼이 시간을 내어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모두 박수)

이어서 장병들의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77명이 질문을 신청했는데 그중 12명의 질문을 선정했습니다. 군 생활을 하면서 겪는 다양한 어려움과 고민에 대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사전에 신청한 질문을 모두 다 받고 현장에서 질문을 더 받았습니다.

두 시간 동안 열 명이 스님에게 질문을 하고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본인이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다며 열정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없어요. 어떡하죠?

“저는 잘하는 것도 없고, 하고 싶은 것도 못 찾은 채, 방황하면서 하루하루를 무료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무언가에 흥미를 갖고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열정적으로 탐구하는 사람이 되겠다고 하는 그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생각을 하니까 생각처럼 되지 않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겁니다.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실은 질문자가 잘하는 것이 아주 많이 있습니다. 자기 손으로 밥 잘 먹잖아요. 자기 발로 잘 걷잖아요. 그런데 왜 잘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합니까?

제가 국가대표 선수와 달리기 시합을 하면 이길 수 없습니다. 제가 국가대표 선수와 수영 시합을 한다면 역시 이길 수 없습니다. 제가 가수와 노래 대결을 하면 아무리 연습을 해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잘하는 것이 하나도 없는 사람인가요?”

“아닙니다.”

“그것처럼 질문자는 지금 자신보다 잘하는 사람과 비교해서 생기는 문제를 안고 있는 겁니다. 운동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과 비교하고, 노래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과 비교하고, 공부도 나보다 잘하는 사람과 비교를 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는 항상 못하는 사람이 되기 때문에 열등의식이 생길 수밖에 없어요.

이런 열등의식을 치유하는 방법은 장애인 보호 시설에 가서 봉사를 하는 겁니다. 장애인 보호 시설에서 3개월 정도 봉사를 해보면 열등의식이 깨끗하게 없어져요. 자신이 얼마나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는지 알게 되기 때문입니다. 질문자는 눈이 보이잖아요. 시각 장애인에 비하면 엄청나게 유리한 조건입니다. 질문자는 귀도 들리잖아요. 청각 장애인에 비하면 엄청나게 좋은 조건입니다. 질문자는 두 발로 걸을 수도 있잖아요. 휠체어 타고 다니는 사람에 비해서 엄청나게 유리한 조건입니다. 질문자는 한국말도 유창하게 할 줄 알잖아요. 외국인이 한국말을 배우려면 얼마나 힘이 드는데 질문자는 한국말을 이미 잘하니 그것도 유리한 조건입니다. 이렇게 질문자는 가진 것이 이미 많아요. 어떤 특정한 부분을 남과 비교해서 부족하다고 느끼는 것이지 실제로는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잘하는 것이 없다고 느끼는 것은 심리적인 문제이지 실제로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없는 것도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대부분 무언가 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못 해서 괴로운 것이거든요. 하고 싶은 게 없으면 괴로울 일도 없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없으면 오히려 아무거나 해도 되니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하고 싶은 것이 있는 사람은 ‘이거 하자’ 하면 저거 하고 싶고, ‘저거 하자’ 하면 이거 하고 싶고, 그래서 늘 번뇌가 생깁니다. 그러나 질문자처럼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으면, ‘이거 하자’ 하면 이거 하면 되고, ‘저거 하자’ 하면 저거 하면 되니, 아무런 번뇌가 생기지 않습니다. 직업을 선택하는 폭도 넓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좋은 겁니다. 특별히 하고 싶은 게 없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무엇이든 해도 좋다는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질문자는 굉장한 장점을 가지고 있는 거예요.

아무 문제도 없는데 ‘나는 하고 싶은 게 없는 것이 문제다’, ‘나는 특별히 잘하는 게 없는 것이 문제다’, ‘무언가를 열정적으로 탐구하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정적으로 무언가를 탐구하는 것이 꼭 좋은 걸까요? 소가 열정적으로 풀을 뜯습니까? 소는 그냥 풀을 뜯습니다. 소가 풀을 안 뜯을 때 심심해합니까? 배부르면 풀밭에 앉아 있다가 배고프면 풀을 뜯습니다. 그게 자연스러운 생명의 현상이에요. 열정적인 것이 꼭 좋은 것이 아닙니다. 인간이 너무 열정적으로 일한 결과 지구에 온갖 위기가 발생한 겁니다. 인간이 너무 열정적으로 일을 해서 오히려 지구를 망치고, 전쟁을 일으키고, 세상을 시끄럽게 하는 것이지, 열정적이지 않아서 세상에 해를 끼치는 일은 없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입니다. 앞으로는 ‘저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저는 이대로 완전합니다’ 하는 마음을 갖고 살아가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뒤로 돌아서서 관중을 보세요. 어떤가요? 멀쩡하죠?” (박수)

모두가 큰 박수로 격려를 해주었습니다. 다시 스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학교 교육에 있어 경쟁을 아예 안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수학이나 영어와 같은 몇 가지 특정 과목의 성적으로 등수를 매겨서 학생들의 심리에 열등의식을 심어주는 것은 현재 학교 교육이 갖는 큰 문제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가지고 있는 괴로움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이 열등의식은 대부분 학교 교육을 통해 형성됩니다. 옛날에는 종으로 태어났다고 해서 신분으로 열등의식을 심어주기도 했고, 여자라는 성별로 열등의식을 심어주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오늘날에는 재능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에게 열등의식을 심어주고 있는 겁니다.

여러분들 모두 재능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야구를 잘해서 공 던지는 재능이 있다고 합시다. 공을 잘 던지는 재능이 과연 조선시대에도 재능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조선시대에 공을 잘 던져서 뭐 하겠어요? 그 시대에는 글씨를 잘 쓰거나 시를 잘 쓰는 것이 재능에 해당했습니다. 각 시대마다 무엇을 기준으로 등수를 매기느냐에 따라 재능이 있고 없고를 판단하는 것이지 어떤 사람도 재능이 있거나 없다고 말할만한 절대적인 근거는 없습니다. 다만 여러분들이 학교 또는 일상생활 속에서 남과 비교하고 비교당하는 습관으로 인해 마음이 위축되는 것입니다. 거기서 벗어났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군 복무를 하는 동안 사회에서 점점 잊히는 느낌이 듭니다.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 제가 화를 못 내서 안 내는 것인지, 애초에 화가 잘 나지 않아서 안 내는 것인지 헷갈립니다. 화를 내야 할 때는 내는 게 좋을까요?
  • 무례한 말을 들었을 때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 가끔씩 내뱉는 말로 사람들에게 깊은 상처를 줍니다. 어떻게 하면 되풀이되는 말실수를 줄일 수 있을까요?
  • 군 생활을 보람 있게 지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 여자 친구가 내년에 재수가 끝나고 대학교에 가는데 제가 집착이 많아서 그런지 자꾸 걱정이 됩니다.
  • 군 생활을 하다 보니 가슴이 답답할 때가 많은데,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강연을 마칠 무렵 즉석에서 손을 번쩍 들고 질문한 장병은 “놀기만 해도 되는 시기가 언제인가요?” 하고 질문을 했는데요. 스님은 이에 대해 답변을 하며 강연을 마무리했습니다.

“놀기만 해도 되는 시기는 유치원 때까지밖에 없어요. (웃음) 진정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은 노동 시간을 단축하거나 임금을 높인다고 이뤄지는 것이 아닙니다. 노동을 놀이화하는 것이 진정한 노동으로부터의 해방입니다. 만약 질문자가 노래방에 가서 돈을 주고 노래를 부르면 그것은 노동입니까, 놀이입니까?”

“놀이입니다.”

“노래방에 가서 돈을 내고 노래하니까 놀이입니다. 그렇다면 가수가 돈을 받고 무대에 서서 노래하면 그것은 놀이입니까, 노동입니까?”

“노동입니다.”

“노래해서 돈을 버는 것이니까 노동이 되죠. 만약 여러분들이 논산 훈련소에 한 달에 100만 원씩 내면서 체력 단련을 하러 왔다면 이곳 생활이 훈련이에요, 놀이예요?”

“놀이입니다.”

“여러분들에게 100만 원씩 받고 논산 훈련소에 입소를 시켰으면 놀이가 되었을 텐데, 월급을 조금만 주고 훈련을 시키니까 저임금 노동이 된 겁니다. 그래서 이곳 생활이 힘든 거예요. (웃음)

평생 놀면서 사는 방법

이렇게 마음의 원리를 알면 일상이 놀이가 될 수 있습니다. 일상이 놀이가 되면 언제부터 언제까지 일한다는 시간제한을 둘 필요가 없습니다. 노는 것도 피곤하면 좀 쉬어야 하겠지만 대체적으로 놀이에는 시간제한이 없습니다. 그러나 돈을 버는 것이 목적이고 그에 따른 수단이 노동이 되면 정해진 시간을 초과하면 힘이 듭니다. 노래 부르는 것이 놀이인 사람은 노래하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지 돈이 목적이 아닙니다.

저는 오늘처럼 강연을 할 때 일절 강사료를 받지 않습니다. 그러면 여러분들은 ‘스님이 우리를 위해 좋은 일을 하시는구나’ 하고 생각하겠지만 사실은 그렇게 하는 것이 저에게 좋습니다. 만약 제가 돈을 받게 되면, 어느 강연이 돈을 많이 주는지 적게 주는지, 어느 강연을 먼저 하고 어느 강연을 나중에 할지, 여러 조건에 구애를 받게 됩니다. 돈을 받는 순간 노동을 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오늘 저는 논산 훈련소에 여러분들과 대화를 나누려고 놀러 왔습니다. (웃음)

여러분도 가능하면 돈에 너무 연연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일은 많이 하고 월급을 적게 주는 직장에서 일하면 큰소리치면서 마음 편히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은 적게 하고 월급을 많이 주는 곳에 가서 일하게 되면 윗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일해야 합니다. 밥을 못 먹고살던 시절에는 그렇게 살기도 했지만, 요즘같이 밥 못 먹을 걱정이 없는 시대에 살면서 그렇게까지 기죽고 살 필요가 있습니까? 일반적으로 대기업을 좋은 직장이라고 하지만, 대기업에서 일하는 것은 늘 눈치 보고 살아야 하는 노예살이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 돈이 중요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돈에 연연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유치원을 다닐 때까지는 놀기만 하면 되는 시기입니다. 그 시기가 지나면 뭘 해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진정으로 노는 방법은 노동을 놀이화해서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의 사고를 혁명적으로 바꾸면 무슨 일을 해도 놀이처럼 해 나갈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 앞으로의 인생을 놀이터로 삼아서 행복하게 살아갔으면 좋겠습니다.”

큰 박수와 함께 논산 훈련소 군장병들과의 대화를 마쳤습니다.

훈련소 소장님이 무대에 올라와 열정적으로 강연을 해준 스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담아 선물을 주었습니다.

기념사진을 찍고 나서 무대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장병들은 강연장 밖으로 걸어 나가는 스님에게 뜨거운 박수갈채를 보내며 감사의 마음을 표했습니다.


논산 훈련소를 출발하여 곧바로 서울로 향했습니다. 오후 3시에 서울 중구에 위치한 동국제강 그룹 본사에 도착했습니다. 동국제강 그룹은 창립자인 장경호 회장이 불교 중흥을 발원하고 불교방송(BBS)을 설립하는 등 불교 발전을 위해 많은 공로가 있는 기업입니다. 이런 인연을 알기에 스님도 강연 요청을 받고 흔쾌히 시간을 내었습니다.


본사 건물에 도착하자 홍보팀 담당 직원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강연을 하기 전 대기실에서 동국제강그룹 장세주 회장님과 차담을 나누었습니다. 스님은 동국제강그룹이 불교 발전에 기여해 준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차담을 마치고 강연장으로 들어서자 많은 직원들이 자리한 가운데 큰 박수로 스님을 환영했습니다. 먼저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우리 불교계는 동국제강에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창업자인 장경호 회장님이 불교 발전을 위해서 많은 후원을 해주신 덕분에 불교방송(BBS)이 설립되었고, 그 외에도 불교 발전을 위해서 많은 기여를 하셨습니다. 저도 한 사람의 불교인으로서 그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을 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여러분과 대화를 나누러 왔습니다.”

이어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많은 분들이 질문을 신청했습니다. 차례대로 손을 들고 스님과 대화를 이어나갔습니다. 강의 주제가 ‘리더십특강’이다 보니 리더십에 대한 질문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중 한 명은 함께 일하는 직원들에 대한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속도가 느린 직원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회사에서 일을 하다 보면 제가 원하는 속도와 직원들이 따라오는 속도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납니다.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는 제 모습을 보면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계속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저희 회사에서는 ‘백스테이지 리더십’이라고 해서 리더들한테 직원들이 자신의 역량을 효과적으로 쓸 수 있도록 뒤에 물러나서 차분하게 계획하고 지도하는 것을 권장하고 있는데, 항상 그렇게 안 되는 제 모습을 봅니다. 제가 인간이 좀 덜 돼서 그런 걸까요?”

“너무 잘나서 그렇습니다.” (웃음)

“아니면 경험이 부족해서 그런 걸까요? 리더로서 자질이 부족한 것인지 저한테 수없이 자문하고 있습니다.”

“잘나서 그렇다니까요!”

“직원들과 속도를 좀 맞춰나갈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습니다.”

“학교는 가르치는 곳입니까, 배우는 곳입니까? 가르치는 곳이 학교라는 생각과 배우는 곳이 학교라는 생각은 천지 차이입니다. 가르치는 곳이 학교라면 선생이 학교의 주인이고 학생은 그 대상이 되는 거예요. 공자님의 말씀을 비롯하여 동양에서 내려오는 가치관에서는 학교의 주인이 선생님입니다. 가르치는 자가 주인입니다. 이런 경우 학생은 거의 아랫사람 수준으로 전락하죠. 그런데 배우는 곳이 학교라고 생각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모르는 사람이 가서 배우는 곳이 학교라고 생각하면 학생이 학교의 주인이 됩니다. 그럼 선생님은 무슨 존재일까요? 선생님은 학생을 도와주는 보조자에 불과합니다. 배우는 곳이 학교이면 학생이 1순위가 되고, 학생이 배우는 것을 도와주는 선생님이 2순위가 되고, 선생님을 도와주는 교육공무원이 3순위가 되는 겁니다. 이렇게 질서가 잡혀야 학교가 제대로 굴러가는데, 현재 학교 교육은 거꾸로 교육공무원이 1번이고, 그 밑에 선생님이 있고, 선생님 밑에 학생이 있는 구조입니다.

요즘은 학생과 선생님 사이에 누가 더 중심이냐 하는 문제로 서로 대립하고 있죠. 과거에는 선생님이 중심이었고, 요즘은 학생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고 해서 ‘학생 인권’이라는 개념이 나오면서 서로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게 지금 교육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입니다. 학교는 배우는 곳이라는 생각을 토대로 하면, 선생님의 역할은 많이 아는 데에 있지 않고 잘 가르치는 데에 있습니다.

일사천리로 가르치고, 아이들의 질문도 안 받고, 성적이 나쁘면 야단만 치는 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이 아닙니다. 좋은 선생님은 아이들이 뭘 모르는지를 잘 아는 사람입니다. 모르는 아이들의 심정을 잘 알아야 잘 가르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의 무엇을 모르는지 질문을 많이 받는 선생님은 가르치는 실력이 갈수록 일취월장합니다. 꼭 많이 알아야 잘 가르치는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자기가 맡은 일에 대해 잘 모르더라도 경우에 따라서는 모르는 게 장점이 될 수 있어요.

똥이 방에 있으면 오물이니까 밖에 버려야 되지만, 똥이 밭에 있으면 거름으로 쓰이니까 주워서 가져와야 합니다. 방에 있는 똥은 오물이니까 버리고, 밭에 있는 똥은 거름이니까 주워오면, 일을 두 번 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똥이 있는 위치에 따라 오물도 될 수 있고 거름도 될 수 있다는 이치를 알면, 버릴 것도 없고 취할 것도 없어집니다. 그래서 도의 관점에서 보면, 버릴 것도 없고, 가질 것도 없으니, 있는 그대로 쓰면 됩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들이 직원을 평가할 때 어떤 한 가지를 기준으로 ‘이 사람은 능력이 없다’ 하고 판단하면 안 됩니다. 느린 사람은 느린 사람대로, 빠른 사람은 빠른 사람대로, 각각 장점이 있습니다. 일을 잘하고 똑똑하면 성질이 있어서 꼭 시끄럽습니다. 그런 사람은 주변 사람들과 화합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그럴 때 ‘이 사람은 일은 잘하는데, 화합을 못해서 문제다’ 이렇게 볼 게 아니라 그 사람의 장점으로 봐야 합니다. 일정한 권한을 주고 일을 맡기면 잘 해내니까 그런 업무를 배정하면 됩니다. 좀 둔하고 느린 사람은 주변 사람과 잘 어울려서 협동을 잘하니까 팀워크가 필요한 업무를 배정하면 됩니다.

똘똘한 사람은 팀워크가 필요한 업무를 주면 팀원들이 성에 안 차서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많으니까 자율권을 가지고 개인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업무를 주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팀워크를 활용해서 함께 할 수 있는 업무를 주고, 이렇게 각자의 재능에 맞게 일을 주어야 합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무유정법(無有定法)’이라고 합니다. 정해진 법이 없고 인연에 따라 적절한 길이 생겨난다는 뜻입니다. 한 가지 기준에 따라 일률적으로 등수를 매겨서 사람을 쓰지 말고, 느리면 느린 대로, 빠르면 빠른 대로, 인연과 근기에 따라서 조정을 하면 됩니다.

그래서 질문자와 같은 사람은 인도에 파견하면 절대로 안 됩니다. 인도에 파견을 가면 인도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되는데, 인도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속이 터져서 같이 일을 못할 겁니다. 그런데 인도 사람들이 그렇게 일하는 이유는 경험이 없어서 그래요. 평생 인도의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은 깨끗한 것이 어떤 것인지 몰라요. 집을 지을 때 바닥에 페인트를 흘리고 엉망으로 해 놔서 왜 이렇게 했냐고 물어보면 말귀를 못 알아듣습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본 것 중에는 제일 깨끗한 모습이거든요. 그래서 인도 사람들과 일을 할 때는 똑같은 설명을 최소한 열 번은 한다고 생각해야 됩니다. 한 번 설명해 주고 왜 모르냐고 생각하면 안 돼요.

질문자도 본인이 너무 똑똑해서 직원들과 부딪히는 겁니다. 똑똑한 자기를 기준으로 생각해서 ‘왜 이것도 모르냐’ 하니까 주변 사람들과 트러블이 생기는 거예요. 함께 일하는 사람을 자세히 관찰해야 합니다. 그 사람이 일하는 속도가 느리거나, 그 사람의 어떤 능력이 부족하다고 해서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그 사람의 특성을 연구해서 그 사람의 특성에 맞는 업무를 주어야 합니다. 하루에 한두 시간이라도 그 업무를 익힐 수 있는 시간을 주는 것도 방법입니다. 그 사람의 업무 처리 속도가 조금 느리다고 해서 내 기준에 일률적으로 맞추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러면 내 기준에 맞춰지지 않으니 나는 나대로 스트레스를 받고, 그 사람도 억압받는 느낌이 들고 조급해져서 업무 효율이 더 떨어집니다. 내 기준을 강요하지 말고 직원들의 특징을 잘 살펴서 그에 맞게 업무를 배정해야 효율이 생깁니다.

또 요즘에는 정신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천덕꾸러기로만 보지 말고 심리 치료를 받도록 해서 회사에 적응할 수 있게 도와주어야 합니다. 문제점을 지적하기만 하지 말고 그 사람의 문제점을 잘 살펴서 치료도 받고, 휴가도 쓸 수 있게 해 주세요. 도저히 적응을 못하면 다른 업무로 전환을 해주고요. 이런 배려를 해주는 게 필요합니다.

리더가 너무 똑똑하면 그 사람을 이을 다음 리더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밑에 있는 사람들이 리더를 따라 하는 것에만 급급하다 보니 문제 해결 능력이 없어져요. 그래서 왕조가 망할 때를 보면 위대한 왕 다음에 나라가 망합니다. 그러니 직원들이 말을 안 듣고 기대에 좀 못 미치더라도 큰 틀에서 남을 해치지 않는다면 대부분의 일에 대해서는 조금 여유 있게 지켜보는 것이 좋습니다. 야단을 치면 심리적으로 억압만 받게 될 뿐이에요. 특히 요즘 청년들은 열 명 중에 두세 명이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습니다. 약간 상식적인 선에서 벗어난다 싶으면 심리치료도 받아 보도록 하는 게 필요합니다. 무조건 내 방식대로 하려고 하지 말고 항상 연구하는 관점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좀 더 나은 삶을 희망하는 것이 욕심이라고 할 수 있는지요? 현재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는 마음이 올라와도 그 마음을 달래는 좋은 방법이 있을까요?
  • 자연과 공생하면서도 인간의 삶을 발전시킬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할까요? 만약 있다면 지금부터라도 어떻게 바꾸어 나가야 할까요?
  • 스님의 즉문즉설을 보면 나이, 종교, 남녀, 신분 등 모든 분들의 고민과 질문들에 대해서 막힘없이 명쾌한 답변을 주십니다. 무수히 많은 즉문즉설을 관통하는 대전제가 있나요?
  • 아이가 무리한 것을 해달라고 요구할 때 부모로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예전에 제가 학교 다닐 때보다 훨씬 풍족한 조건을 가졌는 데도 말이죠.

스님의 명쾌한 답변에 웃고 박수 치며 고개를 끄덕이다 보니 약속한 한 시간이 금방 지나갔습니다. 더 질문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오후 5시가 되어 강연을 마쳤습니다.

동국제강그룹 장세주 회장님이 강연장 밖 입구까지 스님을 배웅해 주었습니다.

“바쁘실 텐데 시간 내어 주시고 좋은 말씀 들려주셔서 감사합니다.”

“별말씀을요.”

다시 차를 타고 서울 정토회관으로 향했습니다. 한강을 건너는데 벌써 해가 저물고 있었습니다. 새벽 6시에 길을 나서서 두 번의 강연을 하고 저녁 6시에 다시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후 7시 30분부터는 방송실에서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이 모두 화상회의 방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제3차 백일기도를 시작하고 3일이 지났습니다. ‘작심삼일’이라는 말이 있죠. 어떤 결심을 하고 3일을 못 넘긴다는 의미인데요. 우리는 지금 3일을 넘겼고, 이제 5일을 넘기고, 일주일을 넘기고, 열흘을 넘기며 가다 보면, 어느새 보름을 넘기고, 한 달을 넘기고, 50을 넘기고, 70일을 넘기고, 이렇게 하면 내년 1월에 3차 백일기도를 마무리하고 4차 백일기도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정진의 가장 큰 특징은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쉼 없이 꾸준히 하는 것이 정진입니다. 여러분 모두 정진을 놓치지 않고 꾸준히 해 나가시기 바랍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개인 고민을 비롯하여 정토회 활동과 관련하여 다양한 질문들이 있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지난주에 스님이 워싱턴 D.C. 에서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모습을 보고 많은 감동을 받았다며 어떻게 하면 스님처럼 용기를 내어 북한 인도적 지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지 질문했습니다.

전쟁을 막아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게 어렵습니다

“수행법회에서 보여준 영상과 스님의 하루를 통해서 스님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많은 분과 대화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정말 감동적이었고, 동시에 스님께서 직접 움직이셔야 할 정도로 전쟁의 위험이 많이 높아졌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저는 지금 일본에 살고 있습니다. 대개 일본 사람들은 북한에 대해 납치, 핵무기,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위험한 국가라고 인식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이럴 바에는 전쟁을 하는 게 낫다고 쉽게 이야기하는 청년들이 있습니다.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저는 ‘한반도에서 절대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을 살려야 한다’ 이런 말들을 꺼내는 것조차 어렵게 느껴집니다. 제가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며, 어떤 실천을 해야 할까요?”

“사람이 너무 슬퍼서 죽고 싶다거나, 화가 나서 상대를 죽여 버리고 싶을 정도로 감정이 격해지면, 비상식적인 행동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순간이 지나 감정이 좀 가라앉고 차분해지면 이성적으로 되돌아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인류는 2차 세계대전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지거나 자기만 옳다는 감정에 휩싸이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을 하게 되는지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말기나 나치 독일의 행태를 보면 거의 광기에 휩쓸려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광기에 휩쓸리면 사람을 죽이는 행위도 아무렇지 않게 하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이라는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치르고 난 후 그 광기에서 벗어나 되돌아보니까 인간이 해서는 안 되는 악마 같은 짓을 했다고 알게 된 거죠. 이를 반성하면서 앞으로는 어떤 이해관계가 충돌해서 전쟁을 하더라도 전쟁과 직접 관계없는 민간인을 학살하지는 말자고 약속하게 됩니다. 설령 적군이라 하더라도 다치면 확인 사살하지 말고 치료해 줘야 하고, 항복해서 포로가 된 적군은 죽이지 않고 전쟁이 끝난 후에 송환해야 한다고 합의를 했습니다.

전쟁에 눈이 어두워 광기에 휩쓸리면 살아 있는 사람을 죽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전쟁이 끝난 뒤에 아직 살아있는 사람을 확인 사살하기도 하고, 포로로 잡힌 사람들을 죽여 버리기도 합니다.

지금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을 보세요. 광기에 휩쓸리니까 민간인을 학살하지 않습니까? 하마스가 민간인을 납치하고 학살했다는 걸 이유로 내세우면서 이스라엘 역시 지금 팔레스타인에 무차별 폭격을 하여 민간인을 엄청나게 학살하고 있습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 민간인을 학살한 것은 분명히 잘못된 거예요. 그걸 두둔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그걸 이유로 분노해서 수많은 팔레스타인 민간인을 죽이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겁니다. 광기에 휩싸이니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거예요.

적군이라 하더라도 사람이 굶어 죽으면 식량을 지원해야 합니다. 지금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를 봉쇄해서 전기와 물도 끊어 버리고 식량 보급도 차단한다고 하니까 이에 대해 유럽에서는 반대를 하지 않습니까? 유럽 대부분의 나라들은 기본적으로 하마스가 잘못했고 이스라엘을 지지한다고 말하지만, 이스라엘의 보복 행동에 대해서도 국제법에 어긋난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이스라엘 군을 지원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거든요. 유엔에서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점령하고 있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러 번 결의했지만, 안보리 상임 이사국인 미국은 계속 반대표를 던져 왔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대부분 미국에 우호적이다 보니 이스라엘의 불법적인 팔레스타인 점령에 대해서 눈을 감고 있습니다. 마치 일본강점기 때 일본이 우리나라를 지배한 것을 강대국들이 다 눈 감고 그냥 넘어간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일본의 침략에 저항했던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와 같은 독립투사들도 국제사회에서는 테러리스트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북한 주민들은 미사일을 쏜 적도 없고, 핵무기를 개발하지도 않았어요. 북한 주민들도 북한 독재 정권의 희생자들입니다. 일본 제국주의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예요. 우리가 일본 제국주의를 비판해야지 일본 국민을 미워하면 안 됩니다. 일본 국민 역시 그 시대에 희생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북한 정부를 미워하면서 북한 주민도 같이 미워합니다. ‘북한 주민들은 굶어 죽어도 돼. 저런 놈들한테 왜 식량을 지원하느냐’ 하고 생각하는 것이 바로 광기입니다. 광기는 마음이 흥분되어 제정신이 아닌 상태를 뜻합니다.

인간은 인종, 피부색, 성별, 언어, 종교, 민족, 정치적 견해, 사회적 지위 등에 의해 차별받아서는 안 되며 모두가 평등하며 누구나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굶으면 먹을 것을 주어야 하고, 목마르면 마실 것을 주어야 하고, 아프면 약을 주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이미 2,000년 전에 이와 같이 말씀하셨고, 부처님은 2,500년 전에 그렇게 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이런 성인의 말씀이 아니더라도 인류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아무리 서로 감정이 격해져서 싸우더라도 민간인을 해쳐서는 안 되고, 인도적 지원은 해야 한다’ 하고 합의를 보았어요. 이 사실을 왜 떳떳하게 얘기를 못 합니까? 이것은 어떤 특정 종교의 주장이 아니고 세계사람 모두가 합의한 내용입니다.

평화협상으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계속 전쟁을 하면 희생만 커질 뿐입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은 과거에 아무리 억울한 일을 당했다 하더라도 무력을 사용하여 공격했다는 점에서 잘못된 거예요. 그 핑계로 팔레스타인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는 이스라엘의 행위도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상대가 미국 사람이든 일본 사람이든 중국 사람이든 전쟁을 반대하는 데에 망설이거나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까짓것 한 판 하지 뭐!’라고 얘기하는 사람들은 전쟁이 나면 참전하지 않거나 빨리 도망갈 수 있는 조건에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입니다.

지금 팔레스타인에 전쟁이 일어나 비참한 현실이 펼쳐지는 것을 보셨잖아요? 만약 서울이 폭격을 당해 다 파괴되고, 수도권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남쪽으로 피난을 가고, 고층 건물들과 아파트가 전부 미사일에 맞아서 부서졌다고 합시다. 그에 대한 보복으로 평양에 있는 건물을 다 때려 부쉈다고 해서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그렇게 바보 같고 어리석은 행동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입니다. 평화를 지켜내자고 말하는 데에 두려워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이것은 누구를 편드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비난하자는 것도 아닙니다. 평화를 지키고 인도적 위기에 처한 사람을 돕자는 것입니다.

전쟁을 하지 말고 평화적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얘기하는데, 망설일 이유가 뭐가 있어요? 또한 100명이 미쳐서 날뛴다 해도 단 한 명이라도 바르게 말하는 게 옳지 않을까요? 독일 나치 전범들이 유대인들을 대규모로 학살할 때 나도 덩달아서 학살하라고 외치는 게 옳아요? 아무리 세상이 미쳐 날뛰더라도 사람을 학살하는 건 옳지 않다고 말해야지요.”

“네, 잘 들었습니다. 전쟁에 대한 두려움이 계속 커져가고 있었는데, 이 광기 속에서 한 사람이라도 올바른 말을 해야 한다고 하신 말씀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광기에 미쳐있을 때는 일일이 대응할 필요가 없어요. 미쳐 날뛰는 사람한테는 아무리 얘기해 봐야 싸움만 되지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광기를 두려워할 이유는 없습니다. 인도적 지원과 평화를 위한 실천은 바른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것 때문에 손실이 생긴다면 그 손실을 감수할 생각을 해야 합니다. 비난한다면 비난을 받고, 구타를 한다면 구타를 좀 당하면 돼요. 그걸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효과가 없는 행동을 굳이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리석은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 신기가 있다든지, 절을 많이 하면 귀문이 열릴 수 있다든지, 이런 무속 신앙의 말들이 종종 생각이 나서 수행할 때 마음에 걸립니다. 어떡하죠?
  • 명상할 때 몸, 느낌, 마음, 법에 대한 관찰을 언제 해야 하나요? 명상수련을 할 때는 왜 호흡에만 집중해야 되는지 궁금합니다.
  • 저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들에 대해 불편한 감정이 듭니다. 집에서 동물을 키우는 것이 정말로 동물을 위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잘못된 생각을 하는 건가요?

대화를 다 나누고 나니 밤 9시가 다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정토회의 책임봉사자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세히 설명을 한 후 많은 회원들이 수행하고 봉사하는 삶을 꾸준히 해나갈 것을 당부했습니다.

오늘도 긴 하루였습니다. 내일은 아침 일찍 서울을 출발하여 부산으로 이동한 후, 오후에는 평화재단이 주최하는 평화 2.0 포럼에 참석하여 ‘글로벌 복합 위기와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전문가들과 세미나를 하고, ‘한반도 평화’를 주제로 부산 시민들과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53

0/200

김종근

감사합니다

2023-10-30 13:28:24

세명화

스님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행복하시고 강건하세요 감사합니다

2023-10-18 02:05:57

CACTUS

북한에 대해 평화적인 협상 노력이 절실하게 필요한 것 같아요. 모두가 한 마음 되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2023-10-16 23:47:06

전체 댓글 보기

스님의하루 최신글

목록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