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9.6 해외 순회강연(6) 런던(London)
“남편에게 의지를 많이 하니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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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2023년 법륜 스님의 해외 순회강연 중 여섯 번째 강연이 영국 런던(London)에서 열리는 날입니다. 유럽에서 열리는 마지막 강연입니다.

어젯밤 파리에서 강연을 무사히 마친 스님은 잠시 눈을 붙인 후 새벽 2시에 일어나 온라인 생방송을 준비했습니다. 한국에 있는 정토회 회원들을 위해 수행법회 법문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제 숙소에서 방송장소로 홀을 사용하라고 허락해 주었지만, 조명이 켜지지 않았습니다. 건물 직원에게 조명이 자동조절 되어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들은 후 그나마 불빛이 있는 곳을 찾았습니다. 벽면에 타일이 박혀 있는 복도의 한쪽 끝에 자리를 잡고 조명을 설치한 후, 한국 시각으로 오전 10시, 파리 현지 시각으로 새벽 3시에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저는 지금 프랑스 파리에 와 있습니다. 프랑크푸르트에 도착해서 뒤셀도르프를 거쳐 베를린, 뮌헨을 지나 어제저녁에는 파리에서 법회를 했습니다.

옛날에는 청중이 주로 연세 드신 분들이었는데 코로나 이후로 온라인 법회가 많아지면서 청중의 대부분이 젊은 사람들로 바뀐 점이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년에 비해 청중이 많아졌습니다. 방문하는 지역마다 활동가의 수가 적은데도 그들을 도와 강연을 준비해 준 자원봉사자들이 많았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 말씀을 드립니다.

저는 이 방송이 끝나자마자 바로 기차역으로 가서 영국으로 갑니다. 영국에 도착하자마자 저녁 법회를 하게 되고요. 영국에서 강연이 끝나면 미국으로 건너가서 시애틀, 밴쿠버, 로스앤젤레스, 오렌지카운티, 샌디에이고, 샌프란시스코를 거쳐 댈러스에서 강연을 이어가는 것이 다음 주 일정입니다. 다음 주는 미국에서 뵙겠네요.” (웃음)

이어서 스님이 부탄에서 출발하여 파리까지 오게 된 과정을 영상으로 보았습니다.

주말에 전국 으뜸절에서 진행된 실천 활동 모습도 영상으로 본 후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습니다. 그중 한 명은 기도하는 관점과 방법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여행, 출장 등 아침 기도를 하기 어려울 때 어떡하죠?

“저는 종종 여행이나 출장, 연수 등으로 인해 집 밖에서 생활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 새벽 기도를 전혀 할 수 없거나, 명상 정도는 가능한데 절은 하기 어려운 상황이 됩니다. 기도를 거르게 되면 마음이 불편하고, 부족한 대로 하자고 하니 그 또한 마음이 불편할 때가 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질문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조금 달리 적용할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출장 중에 호텔에 있을 때는 침대 옆의 카펫 위에서 그냥 절을 하면 됩니다. 카펫이 깔려 있지 않으면 시트나 방석을 깔고 기도를 하면 됩니다. 기도 시간에 비행기를 타고 있는 중이라면 그 시간에 맞춰서 절을 하기는 어렵지만, 수행문 읽기나 경전 독송 등 나머지는 시간에 맞춰서 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는 나중에 절만 따로 하면 됩니다. 만약에 공항에서 대기 중이라면 공항 한편에 무엇이라도 깔고 기도를 하면 됩니다.

무슬림들은 세계 어느 곳에 있든 늘 정해진 시간이 되면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모든 국제공항에는 무슬림들을 위해 기도 공간을 별도로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나라는 일요일을 휴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소수의 기독교인이 일요일에는 모내기도 안 하고 밭갈이도 안 하고 출근도 안 하고 시험도 치러 오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원칙을 딱 지켰어요. 결국 모든 사람이 거기에 맞출 수밖에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요일이 휴일이 된 거예요. 그것처럼 우리가 남을 불편하게 하는 정도가 아니라면 내가 정한 원칙은 지켜야 합니다. 그런 꼿꼿함이 있어야 흔들리지 않습니다.

상황에 구애받게 되면 기도하지 못할 상황이라고 핑계를 대면서 대강 하게 됩니다. 그러면 결국 자기 중심성이 흐트러집니다. 물론 아침 기도에 익숙해진 사람은 하루 정도는 안 할 수도 있고, 시간을 변경해서 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초심자가 처음부터 그렇게 접근하면 자기 중심성을 잃게 됩니다. 오히려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나는 한다.’하는 관점을 가지되 그렇다고 그걸 못했다고 괴로워할 정도로 집착은 하지 마세요. ‘원칙은 지키되 집착은 하지 않는다’ 이런 관점을 가지면 됩니다.

우리가 초상이 났을 때 어떻습니까? 막 울다가도 ‘밥 먹고 해라’ 이러면 밥 먹고 나와서 또 문상객을 접대하지 않습니까? 화장실이 급하면 울다가도 화장실에 갔다 오지 않습니까? ‘초상이 났는데 어떻게 화장실에 가냐?’ 이런 얘기는 하지 않습니다. 그것처럼 초상이 났다 하더라도 손님을 접대하다가 조용히 어디 한편에 가서 기도하고 올 수가 있는 겁니다. 화장실에 가서 기도할 수도 있는 거예요. 남이 볼 때는 너무 극단적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본인이 하기로 한 것은 한다는 원칙을 지켜야 중심이 잡힙니다. 중심이 확실히 잡힌 뒤에는 조금 유연하게 해도 되지만, 초심자가 유연하게 한다는 명목으로 원칙을 자꾸 어기면 결국은 중심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심자라면 ‘하늘이 두 쪽 나도 한다.’ 이런 원칙을 가지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네, 잘 알았습니다.”

이어서 계속해서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한 시간 반 동안 법회를 한 후 새벽 4시 30분에 아침 식사를 했습니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5시에 파리 북역으로 이동했습니다. 너무 일찍 도착하여 문을 열 때까지 40분을 기다렸습니다. 출입국 수속을 밟으려면 기차가 출발하기 한 시간 전에 도착해야 한다고 해서 이른 시간에 서둘렀습니다.



탑승 수속을 마친 후 기차는 아침 7시 10분에 파리 북역을 출발해 영국 런던으로 향했습니다. 넓은 프랑스 평원을 달리던 기차는 도버 해협에 이르러서 바다 밑 해저 터널로 들어갔습니다.


약 2시간 30분을 달려 런던역에 도착했습니다. 프랑스와 시차가 1시간 나기 때문에 영국 시각으로 8시 30분이 되었습니다.

런던 강연 담당자인 전현미 님, 이혜숙 님, 그리고 운전 봉사를 해주시는 이진우 님과 그레이스 김 님이 마중을 나와 스님 일행을 반갑게 환영해 주었습니다.


기차역을 나와 곧바로 숙소로 이동했습니다. 오늘 스님이 머물 숙소는 런던 정토회원 김누리 님 댁입니다. 숙소에 짐을 풀자 강연 담당자들이 찾아와 스님에게 삼배로 인사를 했습니다. 강연 준비 상황을 보고 받고 간단하게 점심 식사를 했습니다.

식사 후 방 한편에 방송 시설을 세팅한 후 오전 11시 30분부터 저녁반 수행법회 생방송을 했습니다. 한국 시각으로는 저녁 7시 30분이었습니다.

“저는 지금 영국 런던에 도착했습니다. 오늘 아침 파리에서 출발해서 이곳 런던에 도착해 여러분들과의 만남이 이뤄지고 있습니다.”

주간반 법회처럼 주말에 전국 으뜸절의 실천 활동 모습을 영상으로 본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네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스님이 닫는 인사를 했습니다.

“이번 주말에도 여러분 모두 전국의 으뜸절에서 많은 봉사활동을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정토회가 말만 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도 한다는 것을 보여주어서 수행의 모범이 되도록 해주시길 바랍니다.”

오후 3시 30분에는 이곳 대학에 연구원으로 와 있는 전 경남지사 김경수 님 부부가 찾아왔습니다. 스님에게 큰 절로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눈 후 함께 저녁 식사를 했습니다. 저녁식사는 전명진 님이 따뜻한 토란국을 준비해주셨습니다.

손님이 돌아가고 오후 5시에 강연장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오늘 강연이 열리는 곳은 버크벡 런던 대학교(Birkbeck, University of London)입니다. 스님은 강연장에 일찍 도착하여 접수 중인 청중들과 악수도 하고, 인사도 했습니다.

오후 6시에는 영어 정토불교대학 첫 번째 과정을 수료한 디페쉬(Depesh) 님이 찾아와 스님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영국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살고 있으며 IT 회사에서 현재 네트워크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는 분입니다.

“Thank you very much for your time.”

(스님께서 시간을 내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결혼은 하셨어요?”

“I live alone.”

(혼자 살고 있습니다.)

“혼자 살든 결혼해서 살든 행복해야 합니다.”

“I think I need to practice even more since I am not married and living.”

(저는 결혼을 해서 살고 있지 않기 때문에 더욱더 수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불교대학의 두 번째 과정은 부처님의 일생에 관해서 공부하게 되는데, 그냥 한 사람의 일생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아간 사람의 일생을 공부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공부하고 나면 직접 인도에 가서 부처님의 발자취를 따라서 순례를 해봐야 합니다. 내년 1월에는 외국인을 위한 영어 통역이 제공되는 인도 성지순례를 준비해 보려고 하니까 꼭 한 번 참석해 보세요.”

“thank you. I’m really looking forward to it.”

(감사합니다. 정말 기대가 됩니다.)

스님은 디페쉬(Depesh) 님을 격려하면서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잠시 휴식한 후 저녁 6시 30분에 런던 즉문즉설 강연을 시작했습니다. 19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스님이 모습을 보이자 뜨거운 환호와 박수가 쏟아졌습니다.


참가자들은 20대부터 40대까지 젊은 층이 많았습니다. 며칠 전 스님이 부탄을 다녀온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아홉 명이 손을 들고 스님에게 자신의 인생 고민을 이야기했습니다. 질문자가 대부분 젊은 사람들이어서 분위기도 가볍고 유쾌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영국인 남자와 얼마 전 결혼을 했는데 자꾸 의지하는 마음이 든다며 두려운 마음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남편에게 의지를 많이 하니까 두려운 마음이 듭니다

“저는 얼마 전 결혼을 했습니다. 둘 다 초혼이고요. 남편이 영국 사람인데 제가 의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런던에 온 지는 3년이 되었는데 이직을 엄청 많이 하는 가운데 남편은 일주일 전에 회사 일로 사우디에 출장을 갔습니다. 남편과 2개월을 떨어져 있어 보니 너무 외로웠습니다. 그러다가 별생각이 다 드는 제 모습을 알아차리게 되었습니다. ‘내가 남편에게 너무 많이 의지하고 있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미래가 두려워졌습니다.

저는 외동딸로 자랐고, 아버님은 1년 전에 돌아가셨고, 어머님은 한국에서 혼자 살고 계십니다. 어머님마저 돌아가시면 저는 남편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그래서 ‘혹시 남편도 사고가 나서 나보다 빨리 죽으면 어떡하지?’ 하는 쓸데없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아직 건강하게 살아 있는 사람을 두고 염려까지 하는 제 상태가 더 심해지면 큰일 나겠구나 싶어서 정신이 번쩍 차려졌습니다. 이렇게 의지심이 많은 저는 어떤 수행을 해야 할까요?”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자 스스로가 남편에게 의지하든, 의지를 안 하든, 두려움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첫째, 의지하고 살아도 아무 문제가 없어요. 부모님에게 의지해서 살다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남편에게 의지해서 살면 되고, 남편에게 의지해서 살다가 남편이 돌아가시면 다른 남자한테 의지해서 살면 됩니다.”

“그런데 제가 남편하고 약속한 것이 있습니다. 남편이 돌아가시고 나면 저는 출가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죽은 뒤에는 그런 약속을 안 지켜도 됩니다.” (웃음)

“그 약속 때문에 매일 금강경을 사경 하면서 발원을 합니다.”

“발원한다고 해서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결혼하면 남편에게 의지하게 되듯이 출가를 하면 부처님에게 의지하게 될 수가 있거든요. 그러니 남편이 죽은 이후까지 걱정을 안 해도 됩니다. 의지처를 둔다는 것은 이 사람에게 의지하다가 이 사람이 죽으면 저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을 뜻합니다.

남편이 돌아가시고 나서 ‘당신 죽으면 나는 어떻게 살아요!’ 하고 슬피 우는 사람일수록 남자가 빨리 생길 가능성이 높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은 의지심이 많은 사람이라 의지처가 꼭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돌아가시고 나면 남편 없는 세상이 너무 힘들다고 아우성을 치지만 금방 다른 남자에게 의지해서 살길을 찾습니다. 처음에는 약간 당황하다가 곧 다른 남자를 의지처로 삼게 되는 거죠.

예를 들어 질문자가 다리가 아파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다가 지팡이를 잃어버렸다고 합시다. 그렇다고 절뚝거리며 걸어 다닐 수는 없잖아요. 무슨 지팡이라도 짚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럴 때 지팡이를 짚는 것에 대해 자꾸 나쁘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예요. 다리가 아픈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둘째, 질문자가 죽을 때까지 계속 지팡이를 짚고 다니면 사람들이 속된 말로 ‘다리병신’이라고 부를 수도 있습니다. 질문자가 장애인이 안 되겠다고 생각하면 지팡이를 버려야 되지 않겠어요? 자유로운 사람이 되려면 지팡이를 버려야 합니다.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내 인생의 주인이 내가 될 수 있습니다.”

“제가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남에게 의지하지 않는 사람이 되려면 타인에게 득(得)을 보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합니다. 어떤 일에도 타인으로부터 이익을 보려고 생각하지 않아야 해요, 경제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상대방이 나를 이해해 주기만을 바라지 말고, 내가 상대방을 이해해 주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사랑해 주기만을 바라지 말고, 내가 상대방을 사랑해 주어야 합니다. 상대방이 나를 도와주기만을 바라지 말고, 내가 상대방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맞아요. 스님께서 말씀하셨던 ‘사랑 고파 병’처럼 저는 늘 남들한테 이해를 바라며 살았던 것 같습니다.”

“부처와 중생이라고 말을 할 때, 부처는 주는 사람을 말하고 중생은 받는 사람을 말합니다. 중생은 부처한테 뭐든지 달라고 하지만, 부처는 중생에게 뭐든지 주려고 합니다. 주는 사람은 주인이라고 볼 수 있고, 받는 사람은 종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하느님에게 뭐든지 받기만을 바란다면 여러분들은 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주는 사람이기 때문에 주인이라고 할 수 있고요.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의지심을 버려야 합니다. 출가한다고 하면서 의지심을 그대로 갖고 있다면 출가해 봐야 그것은 가출에 불과합니다. 원래 부처님이 말씀하신 출가란 의지심을 버린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누구에게도 의지하지 않는 것이 출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가한 사람이 부처님에게 의지하는 마음을 갖는다면, 그것은 부처님을 또 다른 남편으로 삼는 것과 같이 단지 의지처를 바꾼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의지심을 버려야 합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무언가를 달라는 소리를 안 하잖아요. 그렇다고 해서 무언가를 줄 수 없는 상황에서도 베풀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베풀 수 있으면 베풀고, 베풀 수 없을 때는 최소한 구걸하지는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돈이든 감정이든, 또는 이해든 사랑이든, 상대방에게 구걸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이 주인 된 삶으로 나아가는 길입니다.

또한 구걸하는 것이 나쁘다는 생각도 하지 않아야 합니다. 구걸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고, 구걸하는 것은 나쁜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 구걸을 안 하면 스스로 주인이 되지만, 구걸을 한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보통 구걸을 한다고 할 때, 이 사람한테 구걸하다가 이 사람이 안 주면 저 사람한테 구걸하러 가고, 저 사람이 안 주면 또 다른 사람한테 구걸하러 가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렇게 구걸하듯이 살면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질문자의 경우 구걸을 하면서 동시에 주인으로도 살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바로 모순입니다. 구걸하려면 거지로 살아야 하는 것이고, 그게 싫으면 주인으로 살아가야 하는 겁니다.

사실 대부분의 사람이 구걸하며 살아갑니다. 내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돈은 내가 벌면 되잖아요. 그런데도 하느님한테 ‘돈 벌게 해 주세요’하고 바랍니다. 평생을 함께 살아갈 사람은 내가 선택하면 되잖아요. 그런데도 부처님한테 ‘좋은 사람을 만나게 해 주세요’하고 바랍니다. 시험에 합격하려면 내가 열심히 공부하면 되잖아요. 그런데도 부처님한테 ‘합격시켜 주세요’ 하고 바랍니다. 그럴 때는 보통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합격시켜 달라고 부탁할까요?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부탁할까요?”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부탁합니다.”

“공부를 못하는 사람이 합격시켜 달라고 해서 부처님이 그 소원을 들어주면, 부처님이 공부 잘하는 한 명을 빼고 공부 못하는 한 명을 합격시킨 것이 되잖아요. 한마디로 부처님이 입시 브로커가 되는 겁니다. 내가 믿는 부처님이 입시 브로커가 되어야 내 소원이 성취되는 거예요. 이렇게 모순된 행동을 우리가 하고 있습니다. 종교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종교의 그런 면은 잘못됐다는 뜻입니다.”

“스님이 평소에 기복 신앙을 버려야 된다고 말씀해 오셨잖아요. 그런데 저는 제 안에 기복 신앙이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기복 신앙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질문자가 잘못 알아들은 겁니다. 기복 신앙을 갖고 싶은 사람은 가지면 됩니다. 다만 정토회는 기복 신앙을 하지 않습니다.”

“저는 정토회 회원이지만 부처님한테 기도하면 마음이 좀 편안해지거든요. 그럼 그것도 하면 안 될까요?”

“해도 됩니다. 정토회는 기복 신앙을 하지 않지만, 정토회에 속한 개개인은 무엇을 하든 개인의 자유입니다. 신앙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정토회는 수행으로서의 불교에 대해 가르치고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는 길을 추구해 나가기 때문에, 정토회 이름으로는 기복 신앙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예요. 정토회 회원 열 명을 모아놓고 ‘우리 아이가 입학시험에 합격하게 해 주세요’하고 목탁을 두드리면서 기도하는 것은 안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개인이 혼자 법당에서 ‘우리 아이 합격하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하는 것은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종교의 자유는 헌법에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종교가 다르다고 해서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정토회는 타인의 종교에 대해서 부정하지 않습니다. 또한 타인의 이념과 사상에 대해서도 부정하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북한 출신이든, 공산주의자든, 교회를 다니든, 절에 다니든, 차별하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알았습니다.”

계속해서 질문이 이어졌습니다. 모두가 스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귀 기울여 집중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아홉 명이 질문을 한 후 마지막으로 현장에서 한 명의 질문을 더 받고 나서 스님이 정리 말씀을 해주었습니다.

“영국에 와서 산다고 해서 반드시 인생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한국에 있던 콩을 작황이 좋다고 해서 영국에 갖고 가서 심으면 팥이 될까요?”

“아니요.”

“어디를 가나 카르마(karma)는 그대로 있습니다. 카르마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비로소 행복이 오는 것이지, 사는 장소를 옮긴다고 해서 행복이 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일시적으로 도움이 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문제가 다시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니 타인으로부터 행복을 구하지 말아야 합니다. 자신의 카르마를 이해하고 거기로부터 자유로워질 때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열등의식을 극복하는 길

이런 이치를 체득하게 되면 오히려 여러분들이 영국 사람들에게 높은 정신문명을 전해줄 수 있게 됩니다. 영국 사람들이 갖고 있는 좋은 점들을 배우기도 해야 하지만, 이런 이치를 여러분이 영국 사람들에게 전해주는 역할을 하게 되면 여러분은 더 이상 인종적인 문제나 경제적인 문제로 인해 열등의식을 갖지 않게 됩니다.

‘당신들이 돈은 더 많지만 내가 더 행복하다.’

‘외모는 당신들이 더 잘 생겼지만 내가 더 자유롭다.’

이런 당당함을 갖고 살 수 있습니다. 영국에 살고 있으면서 영국의 안 좋은 부분을 욕하며 사는 것은 나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습니다. 그럴 거면 당장 한국으로 가는 게 낫습니다. 나와 좀 다르더라도 상대를 이해하면서 각자의 장점을 살려 나가는 삶의 자세를 가졌으면 합니다.”

박수와 환호 소리가 강연장에 오랫동안 울려 퍼졌습니다.

강연을 마치고 무대에서 책 사인회가 이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소중한 보물이라도 되는 듯 책을 가슴에 품고 줄지어 섰습니다. 스님도 사람들의 눈을 맞추고, 사람들도 스님의 눈을 맞추며 한 마디씩 건넸습니다. 영국인 남편과 온 여성은 여러 권의 책을 내밀며 말했습니다.

“스님, 저희 남편이 암에 걸렸습니다. 스님 강연을 듣고 좋은 기운 받으러 왔습니다.”

“축하드립니다. 암을 발견했으니까요.”

남편은 고개를 끄덕거리며 활짝 웃어 보였습니다. 유학생 한 분도 인사를 했습니다.

“스님, 제가 정말 어려운 시절에 스님 강연을 듣고 108배를 해서 극복할 수 있었어요. 정말 정말 감사해요.”

“잘했어요.”

온몸에서 감사함이 묻어났습니다. 강연장 뒤편에서 사람들이 계속 책을 사서 줄을 섰습니다. 사인회는 끝날 듯 끝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강연을 준비해 준 봉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자기소개와 더불어 짧은 소감 나누기를 했습니다. 정토 행자와 그 2세가 함께 봉사하기도 했습니다. 스님은 법문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한국어 공부를 열심히 할 것을 당부했습니다. 스님과 직접 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에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봉사자들과 기념사진을 찍은 후 밤 9시 30분에 스님은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한국과 업무 소통을 한 후 곧바로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일은 런던 히드로 공항을 출발하여 10시간 비행을 한 후 미국 시애틀 공항에 오전 11시 30분에 도착합니다. 미국 입국 수속을 밟고 시애틀 수련원으로 이동하여 정토회 회원들과 간담회를 하고, 저녁에는 시애틀에 살고 있는 한국 교민들을 위한 즉문즉설 강연을 할 예정입니다.

이제 북미 지역으로 넘어가 미국과 캐나다에서 해외 순회 강연을 이어갑니다. 해외에 인연이 있는 분들에게 많이 소개해 주세요.

기간 : 2023년 9월 1일 ~ 9월 22일
도시 : 총 21개 도시
강연 : 총 23회 (한국어 14회, 영어통역 9회)
문의 : jungtousa@jungto.org

전체댓글 72

0/200

김병윤

너무나 감동적입니다 ㅠㅠㅠ

2023-09-20 16:10:14

정은희

주인의 삶ㆍ구걸의 삶^^
스님 순회 하시는 동안 아프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고맙습니다

2023-09-17 15:37:12

윤정애

감사합니다. 잘 보았습니다.

2023-09-15 20:5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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