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3.22 종교인 모임, 평화재단 연구세미나, 수행법회
“한일정상회담 후 여론이 점점 양극화돼요, 어떻게 봐야죠?”

안녕하세요. 오늘은 평화재단에서 사회 인사들을 만나고 수행법회 생방송을 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친 후 정토사회문화회관으로 향했습니다. 아침 7시가 되자 목사님, 신부님, 주교님, 교령님, 교무님이 속속 도착했습니다. 평화재단 실무자들이 정성껏 차린 밥상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다 함께 평화재단 회의실로 이동했습니다.

오늘은 뉴스에서 연일 보도되고 있는 한일 관계에 대해 우려 섞인 이야기들이 많이 나왔습니다. 특히 두 시간 동안 한일 관계에 대한 현 정부의 태도와 입장이 어떤 위험이 있는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대화를 경청하고 나서 김명혁 목사님이 마지막에 스님에게 한 말씀을 청했습니다.

“오늘은 한일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저한테는 너무 어렵게 느껴져요. 법륜 스님이 좀 정리를 해주시죠.”

스님이 오늘 토론한 내용을 정리하며 앞으로 종교인 모임의 역할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결국 핵을 가진 북한과 어떻게 평화를 유지할 것인지가 제일 중요한 문제 같아요. 지금 현 정부가 하고 있는 것처럼 일본과의 갈등 관계를 푼다든지, 전략적 자산(항공모함, 핵 잠수함, 무인공격기, 핵 탑재 폭격기 등)을 도입한다든지, 이런 조치들은 모두 안보적인 대응입니다. 이런 대응 방식은 결국 북한의 핵 개발을 억제하기보다 확산시키는 결과가 나오기 때문에 오히려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더 높이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거죠.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핵 개발을 동결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려면 북미 관계가 개선되어야 합니다. 외교적으로 북한을 인정해 주는 조치가 필요한 거죠. 이렇게 할 때만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주제는 보수적인 사회 인사들이 문제를 제기해 줘야 영향력이 있습니다. 진보 인사들이 제안을 해선 별 영향력이 없습니다. 보수적인 사회 인사들이 다른 문제는 모두 보수적으로 보더라도 최소한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막는 일에 대해서는 모두 함께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더 노력을 기울여보면 좋겠습니다.”

다시 김명혁 목사님이 의견을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24년 동안 한결 같이 주장해 온 것이 남북의 화해와 평화이지 않습니까. 아무리 상황이 어려워도 계속 평화를 주장하고 북한 주민들에게 인도적 지원을 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여러 제안이 있었지만 스님은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보자고 제안했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지금처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우리가 인도적 지원을 하고 싶어도 남한 정부도 승인을 해주지 않을 것이고, 북한 정부도 받지 않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아요.”

4월과 5월에는 스님이 동남아시아를 비롯해 인도,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부탄 등 JTS 사업을 개척하기 위해 해외에서 머물 예정입니다. 4월에는 종교인 모임을 쉬어가거나, 긴급할 경우 스님 없이 종교인 모임을 갖기로 하고 모임을 마쳤습니다.


종교인 분들을 배웅한 후 스님은 다시 정토회관으로 돌아왔습니다. 오전 10시부터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지난주에 전법활동가 모둠과 일반회원 모둠이 통합이 된 후 두 번째로 열리는 통합 수행법회입니다.

화상회의 방에 회원들이 모두 접속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2차 만일결사가 시작되고 여러 가지 변화들이 많은데요. 이럴 때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개나리꽃이 노랗게 핀 봄이 완연히 왔습니다. 이런 봄날 정토회는 2차 만일결사를 시작했고, 오늘은 1차 천일결사 중 3일째 기도를 마쳤습니다. 임원단도 바뀌고,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신입생도 들어올 예정입니다. 여러분들 중 일부는 불교대학과 경전대학 진행을 맡거나, 돕는이를 맡을 분들도 계시고, 또 모둠장을 맡아서 하실 분들도 계십니다.

새로운 변화 앞에서 불편함이 일어날 때

이렇게 2차 만일결사부터는 여러 가지 변화가 있습니다. 전법활동가 법회와 수행법회를 통합해서 수행법회로 단일화했고, 모둠도 통합이 되어 모둠 구성원들이 많아졌습니다. 지난 1차 만일결사 동안 해왔던 것 중에 변하지 않고 그대로 지속하는 것도 있고, 변화한 부분도 있습니다. 이렇듯 새롭게 변화를 하게 되면 적응이 될 때까지 약간 불편을 느끼게 됩니다. 예를 들어 혼자 살다 결혼을 하면 처음에는 좀 불편합니다. 결혼해서 살다가 이혼을 하거나 사별을 해서 혼자 살게 되어도 처음에는 좀 불편합니다. 한국에 살다가 외국에 가면 좋은 점도 있지만 처음에는 좀 불편합니다. 그래서 고국이 그리워 고국에 다시 돌아오면 또 불편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불편함이 외부에서부터 오는 줄 아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이 불편함은 나의 습관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살아온 환경이 바뀔 때 불편함을 느끼게 됩니다.

지난주에 제가 나무를 수십 그루 심었는데요. 나무도 옮겨 심으면 3년간 뿌리를 내리는데 시간이 걸립니다. 나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고 뿌리를 내릴 동안은 잘 자라지 않습니다. 일단 뿌리를 내려 착근을 하면 그다음부터는 쑥쑥 잘 자랍니다.

불편은 느끼되 불만은 갖지 않기

정토회도 2차 만일결사부터는 환경이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불편함이 있을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그러나 불편함은 습관으로부터 오는 것일 뿐 객관적 사실이 아닙니다. 객관적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불편함은 불만으로 나타납니다. 수행자는 불편은 느끼되 불만을 갖지는 말아야 합니다.

저도 겨울 내내 다른 일을 하느라 농사일을 하지 않다가 다시 농사일을 시작하니 몸이 고단하고 적응이 잘 안 됩니다. 예전에는 그 정도 농사일에 피곤하지 않았는데, 요즘은 곯아떨어질 정도로 피곤을 느끼거든요. 이렇게 적응을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립니다.

2차 만일결사를 시작했지만 앞으로 일주일, 열흘, 한 달 동안은 많은 불편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적응이 되기 때문에 괜찮을 거예요. 잘해보려고 바꾼 것이지 불편하게 만들려고 바꾼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러분들은 새로운 것에 적응할 때까지는 불편을 많이 느끼게 될 것입니다. 일단 적응기간 동안의 불편은 감수해야 합니다. 그러나 적응기간이 지났는데도 계속 불편하다면, 개선사항에 대해 제안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새로 시작하는 만일, 새로 시작하는 천일에는 여러분 모두 일과 수행이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해나가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궁금한 점에 대해 질문을 받았습니다. 누구든지 자유롭게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에게 질문했습니다. 그중 한 명은 한일 정상회담 이후 여론이 찬성과 반대로 양극화되고 있는데 어떻게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질문했습니다.

한일정상회담 후 여론이 점점 양극화돼요, 어떻게 봐야죠?

“어떤 나라와의 외교 관계가 일관되기는 힘들겠지만, 요즘 현 정부의 대일 외교를 지켜보면 강제노역 배상 문제나 위안부 문제 해결에 있어서 문제가 있어 보이는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에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한 결과를 보면서 여론은 찬성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 양극으로 나눠지는 것 같습니다. 통일의병으로서 저는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고, 나라의 미래를 위해 우리의 의사를 표현할 방법은 없는지 궁금합니다.”

“대한민국에는 5천만 명이 넘는 사람이 살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기독교, 천주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등 다양한 종교를 믿고 있으며 사상도 다양합니다. 보수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도 있고, 진보적인 견해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현재의 국제 정세에서 우리나라가 잘 사는 길에 대한 견해도 다를 수 있습니다. 미국, 일본과 협력해서 권위주의적인 러시아나 중국에 대항하는 것이 낫다는 사람도 있고, 기본적으로 미국, 일본과의 협력은 필요하지만, 주변 강대국인 러시아, 중국과 대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견해를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독립운동을 했지만 분단 이후 북한 정부에서 활동한 사람들에 대한 평가는 독립운동을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 아니면 남북이 분단된 이후의 가치를 기준으로 평가할 것인가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분단 이후 남과 북에서 각각의 정부가 수립된 이후를 기준으로 평가하면 북한 정부에 편든 사람은 소위 공산주의자로 평가되어 적대적인 사람이 됩니다. 하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대항하여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에 기준을 두면 전혀 다르게 평가를 하게 됩니다. 독립운동을 할 때 사회주의 이념에 따라 했는지, 민족주의나 종교적 이념에 따라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일제에 항거한 독립운동을 했다는 것을 중요시하면 독립 영웅이 되는 거죠. 또한 일본군에서 독립군을 때려잡는 일을 했는데 남북이 분단되고 6·25 전쟁 때는 공산당을 때려잡는 일을 열심히 했던 사람은 독립운동의 관점에서는 민족에 큰 죄를 지은 사람이지만, 6·25 전쟁의 관점에서는 나라를 지킨 영웅이 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른 관점 때문에 늘 갈등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같은 사회 안에 다양한 생각이 존재할 때는 그것을 옳거나 그르다고 평가하기보다는 대한민국 사람은 모두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다고 봐야 합니다. 이렇게 다양한 견해를 가진 사람들을 하나로 묶는 것이 대한민국 헌법입니다. 헌법에 보장된 범위 안에서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여러 가지 주장을 수용해야 합니다. 그가 옳다는 것이 아니라 나와 다르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헌법의 범위를 벗어난 주장을 할 때는 종교의 자유나 이념의 자유를 넘어서게 되어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반헌법적인 주장은 다양성의 범위를 넘어서는 것입니다. 물론 전 세계적인 관점으로 범위를 넓히면 다양성에 포함될 수는 있겠지요. 그러나 현재 대한민국 국민의 범주 안에서는 대한민국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말아야 하고, 특히 헌법의 테두리는 벗어나지 말아야 합니다.

헌법 전문에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 독립운동과 4·19 민주이념의 정신을 계승하고 조국의 민주개혁과 평화 통일을 지향한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대한민국의 핵심 가치와 기본 목표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일제의 강제징집과 강제노역의 문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해서 지금 한국과 일본은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겁니다. 1945년 일본 제국주의가 한반도에서 물러나고 독립을 한 후 20년간 한국과 일본은 매우 냉랭한 관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래서 20년 후 1965년에 외교 관계를 수립할 때 일본은 우리 정부에 무상으로 3억 불을 지불하고 차관으로 5억 불을 내주면서 한·일의 과거사는 더 이상 문제 삼지 않기로 한다고 합의했습니다. 따라서 일본은 국제협약을 맺었기 때문에 과거가 어떻든 더 이상 책임이 없다는 견해입니다. 그 말은 일부 일리가 있습니다. 그 협약이 잘못되었다고 하면 별문제이지만, 협약을 맺었기 때문에 우리는 따라야 합니다.

그러나 강제 징용을 당한 개인이 일본 기업에 대해 당시 일본 노동자의 임금을 기준으로 정당한 임금을 지급해 달라는 요구는 언제든 다시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사례는 국제 사회에서 여러 판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강제노역의 당사자들은 일본 기업을 상대로 지급하지 않은 임금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했고, 몇 년에 걸친 소송 끝에 우리나라 사법부의 최고 기관인 대법원에서 일본 기업이 배상을 하라고 판결이 났습니다. 그런데 일본 정부는 일본 기업이 배상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넣었고, 일본 기업이 배상하지 않자 재판부는 우리나라에 있는 그 기업의 자산에 대해 압류를 결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일본은 우리나라에 수출하는 몇 가지 품목에 대해 수출금지를 명령했고, 이로 인해 우리 기업이 피해를 보자 우리 정부는 한·일 간 군사 정보를 교환하는 지소미아(군사정보보호협정)을 중단했습니다. 이렇게 최근 몇 년간은 한·일 관계가 나빠지는 과정이었습니다.

한·일 관계를 개선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과거의 일을 문제 삼아 한·일 관계가 적대적으로 유지되는 것은 과거를 문제 삼아 남북이 적대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너무 과거만을 문제 삼아 적대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고 미래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앞으로 러시아, 중국, 북한의 안보적 위협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한·미·일의 협력도 어느 정도 필요합니다. 이것은 옮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 그런 주장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거죠.

그런데 문제는 대통령이라 하더라도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헌법 질서를 무너뜨리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남북관계를 풀려고 어떤 노력을 하다 보면 대통령이 국가보안법을 위반하는 일도 생깁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대북 사업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이후에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 하나의 예가 될 수 있습니다. 현 정부는 지난 정부의 남북관계에 관계된 사람들을 모두 재판에 넘겨서 처벌하려고 하잖아요. 굳이 법으로 따지면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강제노역 배상 문제는 대법원에서 배상하라고 판결까지 난 사항인데,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해 그것을 무시하는 것이 과연 국가 이익을 위한 통치행위라고 볼 수 있는가입니다. 현재 여론은 냉랭했던 한·일 관계를 푸는 것은 좋지만 그렇게까지 하는 것은 비굴하다고 평가하는 견해와 국가의 이익을 위해 법을 넘어서는 통치행위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결단을 내린 것이라고 평가하는 견해가 대립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중 어느 하나를 선택할 수 있습니다. 저는 한·일 관계를 풀기 위해 대통령이 어떤 결단을 할 수 있다는 것에는 동의하는 편입니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을 부정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법질서를 훼손할 위험이 있어 좀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판결의 범위 안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배상을 일본 기업이 해야 하는데 일본 정부가 못하도록 막고 있으니까, 우리 정부는 한·일 협정 당시 받은 돈으로 성장한 우리 기업이 돈을 내서 보상해 주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

배상을 요구하는 분 중에는 누구 돈이든 받기만 하면 된다는 사람도 있고, 돈 몇 푼 받으려고 배상을 요구한 게 아니기 때문에 피해를 준 당사자로부터 사과를 받고 그 대가로 배상을 받기를 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위안부 문제 해결에서도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돈을 주는 게 중요하지 않고 일본 정부가 위안부 할머니들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먼저 사과하는 게 중요하다는 분들도 있었고, 돈을 받으신 분들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결방식에 있어서도 갈등이 존재합니다.

가장 좋은 것은 일본이 잘못을 인정하고 대법원 판결의 절차를 밟아나가는 것입니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고 있죠. 일본은 남북관계가 좋지 않아서 안보적 위험에 처해 있는 한국이 먼저 해결하라고 버티고 있는 겁니다. 미국은 중국 견제를 위해 한·미·일 군사 협력이 중요한데 한국과 일본이 티격태격하니 골치가 아픈 상황인 겁니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 정부에게 과거사를 이제 그만 문제 삼으라고 압력을 넣고 있고, 남북관계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급해진 상황이 된 거예요. 그래서 미국과의 전략적인 관계와 한반도의 안보 상황, 한·미·일 협력의 중요성을 고려하다 보니 우리가 일본에게 먼저 고개를 숙이고 양보한 꼴이 된 겁니다.

이렇게 한국 정부가 고개를 숙이니까 우리 국민들은 자존심이 많이 상하게 되었고, 일본 안에서도 일본 정부가 먼저 사과해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하던 시민운동단체들의 처지도 난처해졌다고 합니다. 문제는 이러한 상황이 어디까지 갈 것인가입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현 정부가 1919년 3·1 운동을 깎아내리고 1948년 정부수립일을 건국절로 삼으려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1948년 대한민국 수립일을 건국절로 하면 그 후 북한과 싸워서 어떻게 대한민국을 만들었는지만 강조하고 과거에 친일 했던 행적은 묻어버리게 됩니다. 이와 달리 3·1 운동을 강조하면 상해임시정부가 중요해지고 독립운동이 강조되니까 친일 행적은 모두 흠이 되는 겁니다. 즉 대한민국의 출발을 3.1 운동으로 시작된 상해임시정부로 삼느냐, 아니면 1948년 정부 수립일로 삼느냐에 따라 가치 기준이 완전히 달라지는 겁니다. 1948년을 건국절로 지정하고 기준을 삼으면 일제 강점기에 친일을 했어도 6·25 전쟁 때 북한군을 때려잡은 사람들은 모두 건국의 영웅이 됩니다. 반대로 상해임시정부 수립을 건국의 기준으로 삼으면 친일의 경력을 가진 사람은 국립묘지에 모실 수 없게 됩니다.

그런데 헌법 전문에는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 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 민주 이념을 계승하고’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문제는 단순히 진보와 보수의 논쟁이 아니에요. 대한민국의 정체성, 즉 헌법 정신에 위배되는 쪽으로 가는 것에 대한 우려입니다. 남북관계가 악화되어 현재 대한민국의 처지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렇다고 대한민국의 헌법정신과 국가 정체성까지 훼손하는 방향으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매우 높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여야 정치 세력의 싸움 정도로만 비춰지고 있어서 이 싸움에 잘못 끼어들면 정쟁에 말려들 위험이 있습니다. 지금은 무조건 이편 아니면 저편으로 편을 가르는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섣부른 행동은 자제해야 하지만 매우 우려되는 상황인 것은 사실입니다. 더 이상 지켜볼 것도 없으니 행동으로 나선 사람도 있고, 좀 더 지켜보자는 신중론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개인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는 개인의 선택입니다. 하지만 통일의병이라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과제가 ‘한반도에서 어떻게 평화를 유지할 것인가’입니다. 통일의병은 평화를 위한 행동에 나서야 하기 때문에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모든 사람이 한반도의 전쟁 위험을 막자는 평화운동에 더 집중해야 합니다.

올해는 남북이 정전협정을 맺은 지 70년이 되는 해입니다. 올해 7월까지는 한반도 평화를 위해 국민 통합을 이루어내야 하는 과제가 남아있기 때문에 좀 더 신중했으면 해요. 통일의병으로서 원래의 목적에 충실하자는 입장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속해서 정토회의 새로운 변화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더 이상 질문이 없자 12시가 다 되어 수행법회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정토회 회원들은 모둠별로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하고, 스님은 방송실을 나왔습니다.

오후 1시부터는 ‘대한제국 전후사의 인식’을 주제로 동국대 교수 황태연 님이 강의를 했습니다. 대한제국은 1897년부터 1910년 일본에 강제 병합될 때까지 13년 동안 존재했지만, 그동안 주목받지 못했던 역사입니다.

황 교수님은 한국 근대사의 서술 체계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의 시각으로 정리되었다는 점을 지적하며 한국 근대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습니다.

“오늘 강의의 주제는 ‘어떻게 대한제국의 전후사를 봐야 할 것인가’입니다. 저는 1894년부터 1945년까지 50년을 갑오, 갑진왜란에 맞선 항일전쟁에서 승리의 역사로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역사책에는 계속 한국 민족이 일제에 패배만 한 걸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약 그렇게 패배만 했으면 어떻게 우리가 독립을 할 수 있었겠습니까?

한국 근대사에는 두 번의 패망과 두 번의 부활이 있었습니다. 1894년 갑오왜란으로 패망한 조선은 명성왕후 시해에 공분한 백성들이 일으킨 의병전쟁을 통해 대한제국으로 부활했습니다. 대한제국은 1904년 갑진왜란으로 망했지만 3.1운동을 비롯한 국민전쟁을 통해 대한민국으로 부활했어요. 한국은 당시 멸망한 24개국 중 ‘임시정부’를 세워 싸운 유일한 나라였습니다.”

교수님은 1894년 2월, 동학군의 봉기에서부터 1945년 카이로 선언까지 한국 근대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펼쳐냈습니다. 토론할 시간 없이 세 시간이 강의로만 꽉 찼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이 다음에 한 번 더 강의를 요청하며 세미나를 마쳤습니다.

“오늘 강의를 듣고 대한제국과 근대사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저도 몇 가지 질문드리고 싶은 것이 있지만 오늘은 시간이 다 되어서 이만 마쳐야겠습니다. 다음에 교수님을 한 번 더 초청해서 토론을 해보면 좋겠습니다.

용성스님께서도 1905년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7년에 중국에 가서 망명 정부를 세울 것을 염두에 두고 독립운동을 준비하셨습니다. 주류 역사의 시각으로 보면 나라를 빼앗기기 전에 왜 벌써 그런 준비를 했는지 이해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강의의 내용으로 보면 당시 사람들이 이미 1904년에 나라가 망했다고 보고 그런 준비를 했다고 볼 수 있겠네요.

또 주류 역사학계뿐만 아니라 진보학계에서도 역사 왜곡이 있을 수 있다는 말씀에도 귀를 기울여 들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에 기초하지 않고 민족의 혁명성만 강조하다 보니 조선왕조는 타도해야 할 대상으로만 생각하게 되어서 고종과 대한제국의 노력을 도외시한 면도 있다는 것을 지적하셨네요. 그동안 혼자 외롭게 연구를 많이 하셨습니다. 그동안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다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열강을 해주신 교수님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세미나를 마쳤습니다.

이어서 오후 4시부터는 평화재단 기획위원들과 회의를 했습니다. 현재 남북 관계와 여야 갈등 상황을 진단하고 평화재단의 역할에 대해 모색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저물고 저녁 7시 30분에는 저녁반 회원들을 위한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오전처럼 2차 만일결사를 시작하고 난 후 정토회의 여러 가지 변화들에 대해 어떤 관점을 갖고 바라봐야 하는지 스님이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나무를 옮겨 심어도 적응하는데 3년은 걸립니다. 작년에 저도 산에 나무를 심을 때 거름이 되라고 구덩이에 낙엽을 많이 집어넣고 심었어요. 그런데 대다수가 죽었습니다. 왜냐하면, 나무를 심을 때는 뿌리가 흙과 접촉이 되어야 수분이 공급될 수 있거든요. 뿌리를 내린 다음에 거름을 줘야 하는데, 그냥 구덩이를 파고 주위에 낙엽이 많다고 해서 집어넣었더니 안에 공기가 차서 뿌리와 흙이 접촉이 잘 안 되었어요. 비라도 많이 왔으면 괜찮았을 텐데 작년 봄에 많이 가물었기 때문에 대다수가 죽게 된 거예요.

인연을 따라 시의적절하게

이처럼 열심히만 한다고 되는 게 아니라 이치에 맞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올해는 거름을 메고 산에 올라갔는데도, 먼저 땅을 파고 물을 부은 다음 뿌리와 흙이 밀착되게 하고 공기가 차지 않도록 잘 다진 후 거름을 안 넣었습니다. 뿌리가 내리면 그다음에 거름을 주기로 했습니다. 늘 과수를 심는 사람에게는 이런 방식이 너무나 당연하지만, 처음 해보는 사람들은 그저 거름을 주기만 하면 좋은 줄로 알지 않습니까? 그래서 누가 이렇게 하면 좋다고 말한다고 해서 다 좋은 게 아니에요. 그 행위가 필요한 시점에 딱 맞을 때 그 행위를 해야 좋은 일이지, 거름이나 물이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항상 인연을 따라 시의적절(時宜適切)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인 중도(中道)입니다. ‘적절하다’, ‘넘치지도 않고 부족하지도 않다’ 하는 것이 중도입니다. 여러분들이 불교대학을 진행할 때 과잉친절을 해도 학생들이 부담을 느끼고, 그렇다고 친절하지 않게 해도 수업 분위기가 냉랭해집니다. 연락을 너무 많이 하면 간섭으로 느끼고, 그렇다고 너무 안 하면 외면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란 말이냐’ 이러는데, 중도라는 것은 딱 정해져 있는 게 아니라 해보면서 거기에 맞추는 것입니다. 적절함을 찾는 과정에는 늘 시행착오가 생깁니다. 함부로 했기 때문에 시행착오가 생긴 게 아니라 아무리 계획을 세우고 잘 맞춰서 해도 딱 맞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약간 밀었다가, 약간 당겼다가 이렇게 적절하게 조절하면서 상대의 근기, 상황, 조건을 맞춰 가는 거예요. 그러면 100퍼센트 정확하게 할 수는 없지만 비교적 100퍼센트에 가깝도록 근접해 나갈 수는 있습니다.

연습을 통해서 조금씩 앞으로

여러분도 새로 맡은 일에 부담을 갖지 말고,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면서 조절해 나가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목표를 향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것을 연습이라고 합니다. 수행이란 연습을 통해서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지고 일을 하면, 실수를 해도 자책하지 않게 되고, 잘했을 때도 이것이 꼭 내가 잘해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들뜨지도 않게 됩니다. 실수를 해도 자책하지 말고 ‘조금 과했구나’, ‘조금 부족했구나’, ‘이런 것을 고려하지 않았구나’ 하면서 다음에 할 때는 다시 조정을 해나가면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욕심을 내기 때문에 조금 잘되면 들뜨게 되고, 조금 안되면 좌절하거나 자책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늘 고락을 오르내리는 윤회(輪廻)를 하게 돼요. 새 봄을 맞이해서 그런 관점을 갖고 수행을 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녁 법회에서도 다양한 질문들이 쏟아졌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법문이 끝나고 회원들은 화상회의 방에 모여 마음 나누기를 이어나가고, 스님은 방송실을 나왔습니다.

내일은 하루 종일 평화재단을 찾아온 손님들과 미팅을 한 후 저녁에는 서울을 출발하여 두북 수련원으로 이동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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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

불편하되 불만은 갖지 않는 수행자의 자세,
한일관계가 우호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 깊이 새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23-03-31 21:16:05

수미상

스님의 지혜의 말씀 잘새깁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
분노와걱정과 두려움으로 지켜보던
요즘 사회현상들을 조금 넓게 펴보며
시의적절한때를 보겠습니다.
부디 평화로운 세상되길 간절히 발원합니다.()

2023-03-29 19:22:00

김숙경

_()_

2023-03-29 12:26: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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