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3.3.16 평화재단 연구위원 회의
“말투 때문에 오해를 자주 받아요, 어떡하죠?”

안녕하세요. 오늘은 평화재단 연구위원들과 하루 종일 회의하는 날입니다.

스님은 평화재단 연구위원들을 만나 한반도 평화 문제와 전쟁 위기, 핵을 가진 북한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서 평화를 유지해나갈 것인지 하루 종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법문이 없었기 때문에 지난주 행복학교 특강에서 있었던 내용을 전하며 글을 마칩니다.

말투 때문에 오해를 자주 받아요, 어떡하죠?

“저의 말투 때문에 생기는 오해로 인해 마음의 상처를 받습니다. 저는 상냥하게 말하는데 사람들로부터 ‘말이 세다’, ‘말이 빠르다’, ‘사투리 때문에 말을 알아듣기 힘들다’, ‘목소리가 커서 화난 것 같다’ 이런 말들을 자주 듣습니다. 내 생각과 다르게 받아들이는 사람들로 인해 마음이 힘듭니다. 직장에서 상담하는 업무를 맡고 있어서 말을 안 할 수는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들이 저의 말투를 오해하지 않을까요?”

“영어를 잘합니까?”

“아니요, 못해요.”

“예를 들어 미국에 가서 산다고 합시다. 직장을 다니는데 영어가 서툴러요. 동료들과 소통이 잘 안되고, 말을 못 알아듣겠다는 지적을 자주 받는다고 합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직장을 그만두어야 해요? 손님이 와도 그냥 입을 다물고 있어야 해요? 그냥 그런 정도는 감수하고 직장을 다녀야 해요?”

“돈을 벌려면 직장을 다녀야 하죠.”

“그런 손실을 좀 덜 입으려면 어떻게 해야 해요?”

“말을 좋게 하는 법을 배워서 손실이 적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질문자는 경상도 사람이세요? 전라도 사람이세요?”

“경상도입니다.”

“경상도 말이 조금 억세잖아요. 서울 사람이 경상도 사람끼리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보면 너무 시끄러워서 싸우는 줄 알잖아요. 제가 요즘 경상도 시골에 살고 있는데요. 노인정 앞에 수도가 하나 있습니다. 노인들이 손발을 씻는 정도까지는 괜찮은데, 일하고 들어오면서 손수레도 씻고 하나 봐요. 그래서 동네 이장이 방송을 하는데 이렇게 말을 했어요.

‘그 똥차는 씻지 마세요. 경고합니다. 1차 경고예요.’

제가 들어도 섬뜩했어요. 동네 사람들을 다 합하면 열일곱 명밖에 안 되거든요. 게다가 대부분이 서로 친척 관계예요. 그런데도 말이 그렇게 거칩니다. 경고한다는 말은 굉장히 거친 말이잖아요. 그런데도 그분은 일상적으로 그런 말을 사용합니다. 게다가 전부 다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분들이에요. 그런데도 말을 ‘경고한다’라고 하는 거예요. 그것도 세 번, 네 번씩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듣는 얘기이니까 괜찮지만, 외부 사람이 들으면 굉장히 센말이죠. 화가 난 것처럼 들려요. 제가 들어도 ‘저분이 아침에 화가 났나?’ 이런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미국으로 이민을 간 사람이 영어를 모르면 불이익을 좀 받아야 되고, 불이익을 막으려면 영어를 좀 더 배워야 하는 겁니다. 그것처럼 경상도식으로 악센트도 세고 사투리도 쓴다면, 직장생활에서 그 정도의 손실을 감수해야 돼요. 그럼 경상도로 이사를 하면 되지, 뭐 때문에 서울에서 살아요? 경상도로 이사를 해서 그냥 시골에서 살면 아무 문제가 없어요. ‘경고합니다’ 이렇게 말해도 아무 문제가 없다니까요. (웃음)

그러지 않고 서울이나 다른 지역에 가서 살면 말투 때문에 ‘화 나서 하는 소리 같다’, ‘미워서 하는 소리 같다’ 하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어요. 손해를 보기 싫으면 미국에 가면 영어를 배워야 하듯이 말을 부드럽게 하는 법이나 지나친 사투리를 조정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저도 사투리를 많이 쓰지만 그래도 여러분들과 소통은 되잖아요. 제가 서울에 처음 올라갔을 때 학원에서 선생을 좀 했습니다. 학생들과 얘기하는데 사투리를 전혀 못 알아들어요. 제 말투를 안 고치면 수업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먹고살려면 고쳐야죠. 만약 제가 그런 일을 안 했으면 아마 사투리를 못 고쳤을 거예요. 왜냐하면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으니까요.

직장을 다니는 데 문제가 생길 정도라면 영어를 배우듯이 말하는 법을 좀 배워야 합니다. 목소리를 좀 낮추거나, 단어를 좀 선택해서 순화시킨다거나, 말하는 속도를 좀 늦춘다거나, 이렇게 연습을 좀 하면 됩니다.

그것도 도저히 어렵다면 불이익을 감수하는 수밖에 없어요. ‘화 났니?’ 하고 물으면 ‘화 안 났어요’ 하면 됩니다. 오해하면 오해를 좀 받으면 됩니다. 그러면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들이 나한테 적응합니다. 내가 그 사람들한테 적응하는 게 아니에요. 사람들이 ‘저 사람은 말투가 원래 저래’, ‘저 사람은 고향이 경상도라서 저래’, ‘오래 겪어보니까 말은 저렇게 하지만 사람은 괜찮아’ 하고 나를 이해하게 되는 겁니다. 초기에만 손해를 좀 감수하면 그다음엔 괜찮아져요. 이렇게 생긴 대로 살면서 손해를 좀 감수하는 길도 있습니다.

생긴 대로 살면서 사람들이 나한테 적응하게 하든지, 내가 빨리 그 직장에 적응하든지, 그건 질문자의 선택이에요.”

“저도 나름대로 부드럽게 말하려고 하고, 사투리도 안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예를 들어, 한 선생님이 자기가 뭘 원했을 때 제가 ‘예, 괜찮습니다’ 하면 저한테 친절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이건 안 됩니다’ 하면 ‘너무 불친절해요’ 이렇게 말씀하셔서 제가 어떻게 기준을 잡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사람들은 욕설을 좀 해도 자기가 원하는 걸 해주면 좋아하고, 아무리 공손하게 말해도 자기가 원하는 걸 안 해주면 싫어해요. 그런 비난은 감수해야 합니다.”

“알겠습니다.”

“즉문즉설을 할 때도 자기가 원하는 대로 위로하는 말을 해주면 좋아하고, 원하지 않는 답을 해주면 ‘상처를 입었다’,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느냐?’ 하고 반응합니다. 예를 들어, 남편이 죽어서 울고 있는 사람한테 ‘곧 시집가겠네’ 이렇게 얘기하면 엄청나게 상처를 입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제가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남편이 죽어서 너무너무 슬프다는 것은 너무너무 아쉽다는 뜻이잖아요. 남편이라는 빈자리가 너무 커서 누군가로 다시 채워야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생활할 때 빗자루가 꼭 필요한데 잃어버렸다면 다시 사와야 하는 원리와 같습니다.

남편을 잃고 심하게 우는 분에게 ‘1년만 지나면 괜찮을 거예요. 새로 만나는 사람도 생기고 잘 살 겁니다’ 이렇게 위로하면 그분은 ‘저를 어떻게 보시는 거예요?’ 하며 화를 벌컥 냅니다. 그런데 남편이 죽어도 좀 아쉽긴 하지만 ‘사람이란 다 명이 있는데 어떡합니까’ 하는 정도로 말하는 사람은 다른 남자를 금방 사귀지 않아요. 왜 그럴까요? 그 사람은 남자가 있든지 없든지 별로 신경을 안 써서 남편이 죽어도 크게 아쉬운 건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모든 것을 다 이해받으려고 할 필요는 없습니다. 누가 오해를 하면 손해를 좀 보면 됩니다. 시간이 지나서 나중에 상대방이 자기를 좋아하게 되면 ‘저 사람은 말투가 저래도 겪어보니 괜찮은 사람이더라’ 하고 평가를 다르게 할 수도 있어요. 그러니 너무 작은 일에 연연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쉬운 방법은 다른 나라에 가서 산다고 생각하면 돼요. 내 습관대로 살면서 손실을 좀 감수하거나, 아니면 그 상황에 적응하면 돼요. 적응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하는 비난은 별로 신경 쓸 필요가 없습니다.

만약에 제가 미국 사람한테 ‘이 자식, 저 자식’ 하면서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하면 그 사람은 자기를 칭찬하는 줄 알 거예요. 반면에 칭찬하는 내용을 일부러 인상을 팍 써서 말하면 그 사람은 말을 못 알아들으니까 제가 화내는 줄 알 겁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것을 얻으면 말이 조금 거칠어도 크게 상관하지 않습니다.

TV에도 가끔 나왔는데, 식당 주인이 욕쟁이 할머니인 경우를 보신 적 있을 겁니다. 욕을 막 하는데도 음식이 맛있고 값이 싸니까 사람들은 할머니를 욕하지 않습니다. 불친절하다는 사람도 없어요. 식사를 하는 모든 사람이 할머니의 욕을 웃으면서 재미있게 듣습니다. 심지어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이처럼 자기에게 이익이 되면 욕도 크게 문제가 안 되는 거예요.

첫째, 말투를 고치든지, 둘째, 말투를 고치기가 어려우면 그로 인한 손실은 감수하고 자신의 다른 장점을 살리면 됩니다. 질문자가 사투리를 쓰고 억양이 좀 세도 자신의 다른 장점을 살려서 상대방에게 잘해주면 반감이 될 거예요.”

“저는 화가 나거나 흥분이 되면 말이 조금 더 빨라지고 목소리가 더 커져요. 그래서 사람들이 더 많이 오해를 하는 것 같아요.”

“오해가 아니죠. 질문자가 화가 나서 흥분을 한 것은 사실이잖아요.”

“제 마음은 그런 게 아닌데, 흥분하면 말이 빨라지고 목소리가 커져서 더 큰 오해를 하는 것 같아요.”

“그걸 오해라고 생각하면 안 돼요. 본인이 화를 내고 목소리를 크게 내어놓고 그걸 상대가 싫어한다고 해서 오해한다고 생각하면 어떡해요? ‘내가 성질이 나서 그랬구나’ 이렇게 받아들여야죠. 그런 경우는 상대가 오해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화를 내놓고 상대가 웃어주기를 바라는 거잖아요. 성질을 내고 나서 내 마음은 안 그렇다고 상대로부터 이해를 받으려는 것 자체가 잘못된 생각입니다. 내가 화를 내서 상대가 상처를 입었다면 ‘죄송합니다’ 하고 사과를 해야지 왜 상대가 오해를 했다고 생각해요? 화를 내면 누구나 상처를 입기 마련입니다.”

“제 마음은 화가 안 났거든요.”

“내 마음이 화가 났는지 안 났는지 상대방이 어떻게 알 수 있어요? 내 마음이 화가 나지 않아도 큰 목소리로 얘기하면 상대는 내가 화난 줄 압니다. 아무리 내 마음이 화가 나도 웃는 표정을 짓고 차분하게 이야기하면 상대는 내가 화난 줄 몰라요. 마음이란 상대의 눈에 보이지도 않고, 상대가 느끼지도 못합니다.

그러니 질문자가 어리석은 것이라고 볼 수 있어요. 사람이 어떻게 남의 마음을 알 수가 있어요? 옛날부터 ‘천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이런 속담이 있잖아요. 내가 화를 냈는데도 속마음은 안 그렇다는 것을 상대가 알아주기를 바란다는 것은 일종의 과대망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꼭 이렇게 야단을 맞고 싶어서 그런 질문을 하는 겁니까? 꿈에서 깨어나세요.” (웃음)

“감사합니다. 스님께 야단 좀 맞아서 정신을 차리고 싶었습니다.”

“상대가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원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욕심입니다. 누군가가 나에게 천금을 주기 바라는 것보다 더 큰 욕심이에요. 사람은 말을 해야 알아듣습니다. 특히 경상도 남자들은 ‘그걸 꼭 말로 해야 하나?’ 이렇게 말하는데, 사람은 말을 해야 알아들어요. 말을 안 하는데 어떻게 알아듣습니까?

서로의 생각이나 감정을 편안하게 드러내야 교감이 이루어집니다. 말로 생각을 나누는 것이 소통이라면, 말로 마음을 나누는 것이 교감입니다. 행복학교에서는 계속 마음 나누기를 하는 이유도 교감을 하기 위해서예요. 자기 마음을 살펴서 드러내는 것이 마음 나누기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마음을 알아차리고 드러내는 것을 잘 못해요. 어렸을 때부터 ‘참아라’ 하는 소리를 많이 들어서 참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린 겁니다. 그래서 상호 교감이 잘 안되는 경우가 많아요. 어릴 때부터 자신의 마음을 편안하게 드러내는 훈련이 되어야 하는데, 대부분 꾹 참았다가 팍 터뜨리죠. ‘왜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느냐!’ 고 말이 거칠게 나오는 이유는 참기 때문입니다.

여러분도 자기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세요. 조금 기분이 나쁠 때 ‘그렇게 말하니까 기분이 좀 안 좋네요’ 하고 말했을 때는 감정이 쌓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번, 세 번, 가슴 속에 쌓아 두었다가 도저히 못 참게 되면 목소리가 커지고 화가 벌컥 납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이러면서 화를 내는 것은 마치 압력솥과 같은 상태입니다. 참으면 반드시 거칠게 말이 나오게 됩니다. 목소리가 크고 화를 벌컥 내는 사람은 평소에 자신의 감정을 살피지 않고 억누른 사람일 가능성이 높아요.

첫째, 자신의 마음 상태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둘째, 가볍게 자신의 마음을 드러내놓는 연습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감정이 쌓이지 않습니다. 그러면 감정이 폭발할 일이 없어져요.”

“감사합니다. 저는 사투리를 고치기는 힘들 것 같고, 말을 부드럽고 천천히 하는 연습을 많이 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라기보다는 내 마음을 드러내어 표현하는 연습을 해보겠습니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인다면, 손실을 감수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상대방이 ‘너는 화가 나서 말하는 것 같다’ 이렇게 말하면 ‘죄송합니다. 제가 아직 사투리가 안 고쳐지네요’ 하고 사과하면 됩니다. 이렇게만 할 수 있으면 화를 내고 살아도 큰 문제가 없어요.

일단 상대의 지적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상대가 나를 오해했다’, ‘나는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다’ 이런 생각 자체를 하지 말아야 해요. 사실인지 아닌지에 관계없이 상대가 내 말을 그렇게 받아들였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가 어떤 의도로 말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상대가 그렇게 받아들였다면 ‘죄송합니다. 그렇게 받아들이셨군요’ 하고 인정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손실을 감수하며 사는 방법입니다. 손실을 감수하며 살 수 있다면 말투를 고치지 않아도 사는 데에 큰 지장이 없어요. 말투는 금방 고쳐지지 않습니다. 말투를 고치는 노력도 필요하지만, 일단 손실을 기꺼이 감수하는 자세가 굉장히 중요해요.”

“감사합니다.”

내일까지 평화재단 연구위원들과의 회의가 계속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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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구름

화를 내면서 내속마음은 안그렇다.. 저도 가끔 그럴때가 있는데요 정말 스님께 제대로 혼나내요 ㅎ 상대방이 그렇게 받아들이면 내말이 그렇게 비췄구나.. 죄송합니다~ 화를 내지않고 내감정을 드러내는 연습을 많이 해야 겠습니다

2023-04-09 18:30:21

진달래

오늘도 감사합니다.()

2023-04-06 10:49:24

상심

저도 글쓴이와 같이 경상도 사람이고 설에서 몆년을 살면서 말투는 사투리을 안쓴다고 하는데 어떤이는 저보고 이쁘게 말하는 법을 배우라고 하는 이쁘게 말하는 법이 어떻게 해야하는걸까요?
왜 이는 그대로의 저을 보지 안는걸까요?
저보고 바뀌라고만 하는데 상대는 왜 바꾸지 안으려 할까요?그럴땐 어떻게 해야하나요?

2023-03-26 09:4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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