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님의하루

2022.11.21 애광원 쌀, 과일 전달, 전법활동가 법회
“스님은 그렇게 활동하시면서 수행은 언제 합니까?”

안녕하세요. 어제 일요명상 생방송을 마치고 서울에서 출발해 1시가 되어 두북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새벽 기도와 명상을 마치고 날이 밝자 자재요양병원, 애광원에 보낼 쌀, 과일, 김치, 농산물 등을 트럭에 실었습니다.

법회 시간이 다 되어 일을 마무리하고 방송실로 갔습니다. 10시에 전법활동가 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안녕하세요. 전법활동가 여러분. 날씨가 따뜻하지요. 이곳 두북수련원은 옛날에 지은 학교라 예년 같으면 손발이 시려서 난로를 피웠을 텐데 아직 개시를 안 했습니다. 올해는 예년보다 기온이 훨씬 높아서 꼭 따뜻한 봄날 같습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하긴 하지만요. 그래서 담장 위에 있는 장미꽃들이 5월처럼 아주 아름답게 피어 있는 진풍경을 볼 수 있습니다.

만일결사 회향일이 가까워지고, 세속적으로는 연말에 가까워지니까 다들 일이 많으시죠. 불교 대학에서는 이제 실천적 불교사상을 끝내고 부처님의 일생을 시작했습니다. 경전대학에서는 금강경을 끝내고 기본반부터 반야심경을 시작했어요. 진행자 여러분의 수고에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어제는 연극, 영화, 방송, 문화 예술인의 수행모임인 길벗과 함께 연탄을 배달했습니다. 15가구에 3천 장을 지원했어요. 두 팀으로 나누어서 연탄을 날랐는데 제가 속한 팀은 1600장, 다른 팀은 1400장을 배달했습니다. 어제 할 때는 괜찮았는데 오늘 아침에 자고 일어나니까 옆구리가 아프네요.” (웃음)

어제 구룡마을에서 길벗과 함께 연탄을 나르는 모습을 영상으로 함께 본 후 법문을 이어갔습니다.

“잘 보셨습니까. 우리 전법활동가들도 언제 전부 줄 서서 연탄 한번 날라 볼까요?” (웃음)

스님은 만일결사 회향, 연말을 맞아 각 부분에서 바쁜 활동가들의 상황을 설명하며 이런 상황에서 어떤 관점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살다 보면 이렇게 바쁠 때도 있습니다. 그래도 죽은 것보단 낫잖아요. (웃음) 죽으면 어떤 일도 못 해요. 인생을 살다 보면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식사를 거르기도 하고, 잠을 못 자기도 하는 거예요. 그러니 일이 많을 때는 ‘바빠서 힘들다’라고 생각하기보다 ‘내가 할 일이 있으니까 좋다’ 이렇게 생각해보세요. 일이 없을 때는 지루해하기보다 ‘한가해서 좋다’ 하고, 명상도 하고 산책도 하고 책도 읽으면 됩니다. 이렇게 항상 주어진 상황을 긍정적으로 보는 눈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어서 질문을 받고 법회를 마쳤습니다.

11시 30분에 법회를 마치자마자 스님은 가사를 벗고 앞치마를 둘러멨습니다. 바로 트럭에 몸을 싣고 언양 자재요양병원으로 향했습니다. 오늘은 하루 종일 농산물을 배달하는 날입니다.

트럭 안에서 팔 토시와 장갑을 끼고 짐을 내릴 준비를 했습니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산마다 단풍이 붉게 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올해는 늦가을까지 날씨가 포근하네요. 시골에 살면 산에 더 자주 가야 하는데, 어떻게 된 건지 산에 갈 시간이 없네요.”

요양 병원에 도착하자 비구니 스님들이 반갑게 스님을 환영해 주었습니다.

“스님, 건강하시지요?”

“건강 안 해요. 어제 연탄 배달하고 나서 옆구리가 좀 아파요.”

스님은 트럭 위로 올라가 배 30박스, 사과 5박스, 홍시 3박스, 미역, 무 11박스, 풋고추 4포대를 차례대로 내렸습니다.

“아이고, 이렇게 귀한 농산물을 직접 가져다주시고... 저희도 두북 수련원에 농사일 좀 도와주러 갈게요.”

“괜찮아요. 괜히 일하러 왔다가 몸살 나면 약값이 더 들어요.” (웃음)


비구니 스님들을 비롯해 요양 병원에서 일하는 보살님들과 거사님들도 짐을 내리기 위해 우르르 몰려나왔습니다. 짐을 다 내리자 스님은 곧바로 트럭에 올라탔습니다.

“얘기도 못 나누고 너무 빨리 가서 미안해요. 오늘은 바쁘니까 다음에 또 올게요.”

트럭은 다시 두북 수련원으로 향했습니다. 창고 안에 트럭을 세우고 빈 트럭에 다시 농산물을 가득 실었습니다.


두 트럭 가득 짐을 야무지게 싣고 거제로 출발했습니다.


두 시간을 달려 거제 애광원에 도착했습니다.


식품 창고 앞에 김임순 원장님이 마중을 나와 있었습니다. 원장님은 70여 년 전 한국 전쟁 중 고아들을 돌보기 위해 애광원을 설립했습니다. 고아를 돌보던 애광원은 전쟁이 끝나고 점점 고아가 줄자 중증, 지적장애인을 위한 시설로 전환했습니다.

“어서 오세요.”

“원장님, 쌀, 과일이랑 농사지은 무, 묵은지 좀 가져왔습니다.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98세입니다.”

“정정하시네요.”

원장님께 인사를 드리고 스님은 트럭에 짐을 풀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이 짐을 내리기 시작하자 애광원 선생님들이 달려 나와 함께 쌀과 과일, 채소를 내렸습니다.




김임순 원장님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말했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애광원은 장애인복지법에 의거해 일부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으나 수백 명의 장애인들의 생활과 재활, 교육을 지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스님은 ‘내가 못하는 일을 해주니 고맙다’고 하며 매년 애광원 생활인들과 나들이를 해왔습니다. 코로나가 확산되고 농사를 짓기 시작하면서는 농산물을 배달하고 있습니다.

금세 두 트럭에 실려있던 짐이 식품창고로 옮겨졌습니다.

“스님, 차 한 잔 하고 가시지요.”

“아닙니다. 회의가 있어서 바로 가봐야 해요.”

“그럼 애광원 70주년을 맞아서 생활인들이 만든 것 좀 보고 가세요.”

스님은 이사님의 요청에 전시관으로 가보았습니다.


애광원의 70주년을 기념해 의미 있는 사진으로 70이라는 글자를 만들었습니다. 사진들 속에 스님도 있었습니다.

“잘 만들었네요.”


김임순 원장님도 뒤이어 전시관으로 오셨습니다. 스님은 원장님을 모시고 함께 사진을 찍었습니다.


“이제 가보겠습니다. 내년부터는 나들이를 갈 수 있을 것 같네요.”

“고맙습니다.”

원장님은 트럭이 사라질 때까지 서서 배웅을 해주셨습니다.

두북으로 돌아가는 사이 해가 지고 날이 어둑어둑 해졌습니다.

5시가 되어 두북수련원에 도착했습니다.


스님은 곧바로 공동체 법사님들과 화상 회의를 했습니다.

화상 회의가 끝나자 저녁 7시 30분부터 저녁반 전법활동가를 위한 법회를 시작했습니다. 활동가들이 화상회의 방에 모두 입장하자 스님이 인사말을 하고, 어제 서울 구룡 마을에서 길벗과 함께 연탄 배달을 하고 온 영상을 함께 보았습니다.

저녁에는 사전에 질문을 신청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즉석에서 누구든지 자유롭게 질문을 했습니다. 다섯 명이 손들기 버튼을 누르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는데요. 그중 한 명은 반야심경에 나오는 대승 보살의 수행 방법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대승불교의 수행법은 무엇인가요?

“반야심경 1강을 공부해 보니 ‘보살이 완전한 부처가 되려면 중생계를 다 구제해야 부처를 이룬다’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 문장이 어떤 의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스님께 질문을 드립니다. 원효 대사가 파계를 하고 빈민촌으로 들어가서 중생 구제를 한 것도 같은 취지인지 헷갈립니다.”

“왼쪽에는 검은 동그라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중생을 뜻합니다. 오른쪽에는 하얀 동그라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부처를 뜻합니다. 그 사이에 가운데 있는 것이 보살입니다. 한쪽 면은 밝은 빛이 비쳐서 밝고, 한쪽 면은 어둠의 그림자가 비쳐서 어두워요.

보살은 한쪽은 어둡고 한쪽은 밝은 존재입니다. 보살이 중생 쪽으로 점점 가면 어둠의 영역이 커지고, 부처 쪽으로 점점 가면 밝은 쪽이 점점 커집니다. 이럴 때 보살이 부처 쪽으로 근접해 가면 부처가 될까요? 부처가 될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반대편에서 어둠의 그림자가 비치기 때문입니다. 즉 중생계가 있는 한 보살은 완전한 부처가 될 수 없습니다. 보살이 부처 쪽으로 나아가면 어둠의 그림자가 50%에서 30%로 줄고, 10%, 5%, 1%, 0.1%까지 적어질 수는 있지만, 반대편에 중생계가 있는 한 보살은 100% 밝아질 수는 없습니다.

그러면 보살이 100% 밝아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히려 부처의 세계 쪽으로 가지 말고 중생의 세계로 가서 중생의 어둠을 완전히 없애 버려야 합니다. 그래야 100% 밝아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살이 부처가 되는 방법이고 원리입니다.

사홍서원에 '중생을 다 건지오리다’ 이런 구절이 있죠. 수행자는 부처를 향해 나아가는 쪽으로 수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보살은 중생을 구제하는 것으로 수행을 삼습니다. 부처가 되어서 중생을 구제하는 게 아니고, 중생을 구제하는 것으로 부처되는 수행을 합니다. 같은 내용을 금강경에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수보리가 ‘부처가 되려면 어떻게 하면 됩니까?’ 하고 질문하니까 부처님께서 ‘중생을 다 구제하겠다는 마음을 내라’ 하고 대답합니다. 이런 연유로 나온 것이 보살 사상입니다.

마찬가지로 지장보살은 ‘지옥 중생이 한 명이라도 남아 있으면 나는 부처를 이루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원을 세웠습니다. 이 말은 ‘지옥에 한 중생이라도 있으면 나는 부처가 될 수가 없다’ 이런 얘기와 같습니다. 나는 부처가 못 되어도 좋으니까 중생만 구제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라 중생을 구제하는 것으로 부처가 되는 수행을 삼겠다는 의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스님은 그렇게 활동하시면서 수행은 언제 합니까’ 하고 질문을 합니다. 이런 질문은 소승의 관점에서 하는 질문이에요. 수행을 명상하는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질문을 하는 겁니다. 원래 대승 사상은 소승 사상과는 차원이 완전히 다릅니다. 중생을 구제하는 것으로서 부처의 길로 나아갑니다.

내가 뭔가 얻겠다고 하면 얻지 못할 때 괴로움이 생깁니다. 그러나 내가 주겠다는 마음을 내면 얻겠다는 괴로움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것이 금강경 제3분의 중요한 내용이에요. 대승의 핵심 사상이 담겨 있다고 해서 제목이 ‘대승정종분’입니다.

이렇게 대승 불교의 수행법은 소승불교와 많이 다릅니다.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하는 속담이 있듯이 더러움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그것을 경계하는 것이 소승불교의 수행법이라면, 까마귀 노는 곳에 가서 까마귀를 하얗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 대승불교의 수행법입니다. 더러움에 물들지 않기 위해서 더러움과 떨어져 지내는 것이 소승 수행이라면, 내가 걸레가 돼서 중생의 때를 닦아 내버리는 것이 대승 수행입니다.

이렇게 대승의 사상은 굉장히 심오한 반면에 또한 잘못 받아들여지면 막행막식 하면서 ‘나는 대승 수행을 한다’ 하고 말하고 다니는 일이 벌어질 가능성도 매우 큽니다. 사사무애법계와 사법계는 현실에서 보면 똑같이 보이는 것과 같아요. 두 가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그의 마음에 번뇌가 있느냐 없느냐입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계속 질문들이 이어졌습니다. 질문에 모두 대답을 하고 나니 밤 9시가 훌쩍 넘었습니다.

내일은 지난달에 INEB 행사로 해외에서 잠시 한국에 귀국한 활동가들이 두북 수련원을 방문하기로 했습니다. 스님은 하루 종일해외에서 온 활동가들과 경주 남산을 다녀온 후 두북 수련원과 농장을 안내하고, 저녁에는 정토경전대학 생방송 수업을 할 예정입니다.

전체댓글 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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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각

애광원에 그런 스토리가 있었군요. 전쟁고아.. 원장님의 표정에서 종교는 다르지만 마음이 느껴지는듯합니다. 고맙습니다.

2022-12-06 10:21:06

박복희

소승불교 수행법과 대승불교 수행법위 차이를 스님의 활동에서 제대로 알아갑니다. 수행,보시,봉사를 놓치지않겠습니다.

2022-12-03 17:26:37

금강지

주겠다는 마음을 내면 얻겠다는 괴로움이 사라집니다.
명심하여 스스로 괴롭지 않도록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2022-12-01 07: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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